만석중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정일

집필자 편무영(片茂永)
갱신일 2019-01-28

정의

음력 사월 초파일에 행하는 그림자놀이의 하나인 무언인형극(無言人形劇). 만석(萬石)중놀이, 망석(忘釋)중놀이, 망석(亡釋)중놀이, 만석승무(曼碩僧舞), 망석중이놀이라고도 한다.

내용

기본적으로 흰 천을 쳐놓고 횃불로 그림자를 비추어 노는 초파일의 잡희(雜戱)였으나, 그 유래는 영등놀이[影燈戱]와도 관련이 있다. 영등(影燈) 역시 초파일 관등놀이의 하나로 등 자체에 그림자를 비춰서 즐겼다.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는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초파일 그림자놀이와 괴뢰(傀儡)를 소개하였는데, 만석중놀이도 그 중의 하나라는 기록이 있다.

영등이란 등의 틀을 두 겹으로 만들어 바깥쪽에는 종이나 붉고 푸른 비단을 붙이고, 안쪽에는 여러 가지 그림을 붙여 풍차가 회전함에 따라 안쪽의 등불이 바깥 틀에 그림자를 비추도록 한 것으로 주마등(走馬燈)을 연상하면 된다. 그림자의 내용도 다양하여 말을 타고 매와 개를 데리고 호랑이, 사슴, 노루, 토끼를 사냥하는 모습을 비추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내용까지 이런 식으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는 이미 유사한 놀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재철은 『조선연극사』에서 만석중놀이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방에 등을 달았는데 막이 오르면 십장생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만석은 목각인형으로 중심에 서고, 오른편에는 사슴과 노루가 만석중과 놀며, 왼편에는 용과 잉어가 나타나 마치 여의주를 상징하듯 서 있는 등(燈)을 서로 얻으려는 듯 희롱하는데, 등이 잉어와 용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꿈틀거리는 화려한 용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스님이 삶의 무상함을 뜻하는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의 춤을 춘다. 용과 잉어는 사라지고 스님의 바라춤 속에 깨달음을 얻게 되면 막이 내린다.

만석중 인형의 얼굴은 바가지로 만들고 팔, 다리, 몸뚱이는 나무를 이용한다. 인형의 크기는 아이만한데, 가슴에 구멍을 두 군데 뚫어 좌우 양손과 양다리 끝에 각각 실을 연결해서 움직이게 하였다. 인형 뒤에서 가슴에 난 구멍을 통해 줄을 잡아당기면 양쪽 손은 가슴을, 양쪽 다리는 머리를 치는데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뚝딱거린다. 만석중 인형은 옷을 입히지 않고 몸에 색칠도 하지 않으며, 중앙에 고정시켜 놓는다. 사슴과 노루는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갈색을 칠하였으며, 사이를 떼어놓고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 실이 켕기기 때문에 서로 물고 뜯고 차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절에서는 정해진 사람이 꽹과리, 북, 장구 같은 타악기 반주에 맞춰 연출을 하고, 마을에서는 누구나 심심풀이로 여러 가지 인형을 조종하며 즐겼다.

개성에서는 1920년대까지 절이나 부근 마을에서 초파일에 불교의 포교수단으로 놀았다고 하나, 그 내용이나 참여자를 보아 민속연희적 성격이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초파일의 전승성이 약해지고 제등행렬을 비롯한 식전행사가 중요하게 자리잡기 시작하였는데, 만석중놀이도 일제의 ‘난장취제법’에 의한 지도 대상이었다. 전승놀이 대신 일제가 초파일의 주요 행사로 권장한 것은 아동대회(합창, 무용, 체육대회), 성극(聖劇)·음악의 밤, 제등행진, 시국강연회였다. 특히 불교 포교를 위한 성극·음악의 밤은 성탄절을 의식하여 만든 연극공연으로 일본의 의도대로 동아시아 각국에 퍼졌다.

서울에서는 “매년 음력 사월 초파일 남대문 밖 남묘에서 거행하는 그네뛰기는 금년에도 대규모로 거행한다는데, 특히 조선 고래부터 유명하던 망석중이놀이도 있을 터인바, 부근 일반 주민들은 방금 준비에 분망중이라더라.”라고 하여, 남묘에는 초파일을 맞아 수많은 등이 달리고 만석중놀이가 해마다 공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기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나 부인네들이었고, 방울등에 밝힌 불빛이 장관을 이루었다.

의의

역사적 우여곡절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만석중놀이는 그 희귀성과 다양성, 또 놀이적 효과나 교육적 효과로 보아 반드시 널리 재현시켜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참고문헌

高麗史,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東亞日報 (1923년 5월 12·23일자)
朝鮮演劇史 (金在喆 著, 民俗苑, 1981)
한국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만석중놀이

만석중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정일

집필자 편무영(片茂永)
갱신일 2019-01-28

정의

음력 사월 초파일에 행하는 그림자놀이의 하나인 무언인형극(無言人形劇). 만석(萬石)중놀이, 망석(忘釋)중놀이, 망석(亡釋)중놀이, 만석승무(曼碩僧舞), 망석중이놀이라고도 한다.

내용

기본적으로 흰 천을 쳐놓고 횃불로 그림자를 비추어 노는 초파일의 잡희(雜戱)였으나, 그 유래는 영등놀이[影燈戱]와도 관련이 있다. 영등(影燈) 역시 초파일 관등놀이의 하나로 등 자체에 그림자를 비춰서 즐겼다. 『고려사(高麗史)』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에는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志)』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초파일 그림자놀이와 괴뢰(傀儡)를 소개하였는데, 만석중놀이도 그 중의 하나라는 기록이 있다. 영등이란 등의 틀을 두 겹으로 만들어 바깥쪽에는 종이나 붉고 푸른 비단을 붙이고, 안쪽에는 여러 가지 그림을 붙여 풍차가 회전함에 따라 안쪽의 등불이 바깥 틀에 그림자를 비추도록 한 것으로 주마등(走馬燈)을 연상하면 된다. 그림자의 내용도 다양하여 말을 타고 매와 개를 데리고 호랑이, 사슴, 노루, 토끼를 사냥하는 모습을 비추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삼국지의 내용까지 이런 식으로 보여주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부터는 이미 유사한 놀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재철은 『조선연극사』에서 만석중놀이를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방에 등을 달았는데 막이 오르면 십장생이 차례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만석은 목각인형으로 중심에 서고, 오른편에는 사슴과 노루가 만석중과 놀며, 왼편에는 용과 잉어가 나타나 마치 여의주를 상징하듯 서 있는 등(燈)을 서로 얻으려는 듯 희롱하는데, 등이 잉어와 용의 입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어 꿈틀거리는 화려한 용의 그림자를 배경으로 스님이 삶의 무상함을 뜻하는 ‘운심게작법(運心偈作法)’의 춤을 춘다. 용과 잉어는 사라지고 스님의 바라춤 속에 깨달음을 얻게 되면 막이 내린다. 만석중 인형의 얼굴은 바가지로 만들고 팔, 다리, 몸뚱이는 나무를 이용한다. 인형의 크기는 아이만한데, 가슴에 구멍을 두 군데 뚫어 좌우 양손과 양다리 끝에 각각 실을 연결해서 움직이게 하였다. 인형 뒤에서 가슴에 난 구멍을 통해 줄을 잡아당기면 양쪽 손은 가슴을, 양쪽 다리는 머리를 치는데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쉴 새 없이 뚝딱거린다. 만석중 인형은 옷을 입히지 않고 몸에 색칠도 하지 않으며, 중앙에 고정시켜 놓는다. 사슴과 노루는 두꺼운 종이를 오려서 갈색을 칠하였으며, 사이를 떼어놓고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면 실이 켕기기 때문에 서로 물고 뜯고 차는 것처럼 보인다. 일반적으로 절에서는 정해진 사람이 꽹과리, 북, 장구 같은 타악기 반주에 맞춰 연출을 하고, 마을에서는 누구나 심심풀이로 여러 가지 인형을 조종하며 즐겼다. 개성에서는 1920년대까지 절이나 부근 마을에서 초파일에 불교의 포교수단으로 놀았다고 하나, 그 내용이나 참여자를 보아 민속연희적 성격이 강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부터 초파일의 전승성이 약해지고 제등행렬을 비롯한 식전행사가 중요하게 자리잡기 시작하였는데, 만석중놀이도 일제의 ‘난장취제법’에 의한 지도 대상이었다. 전승놀이 대신 일제가 초파일의 주요 행사로 권장한 것은 아동대회(합창, 무용, 체육대회), 성극(聖劇)·음악의 밤, 제등행진, 시국강연회였다. 특히 불교 포교를 위한 성극·음악의 밤은 성탄절을 의식하여 만든 연극공연으로 일본의 의도대로 동아시아 각국에 퍼졌다. 서울에서는 “매년 음력 사월 초파일 남대문 밖 남묘에서 거행하는 그네뛰기는 금년에도 대규모로 거행한다는데, 특히 조선 고래부터 유명하던 망석중이놀이도 있을 터인바, 부근 일반 주민들은 방금 준비에 분망중이라더라.”라고 하여, 남묘에는 초파일을 맞아 수많은 등이 달리고 만석중놀이가 해마다 공연되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여기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아이나 부인네들이었고, 방울등에 밝힌 불빛이 장관을 이루었다.

의의

역사적 우여곡절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만석중놀이는 그 희귀성과 다양성, 또 놀이적 효과나 교육적 효과로 보아 반드시 널리 재현시켜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참고문헌

高麗史, 京都雜志, 東國歲時記東亞日報 (1923년 5월 12·23일자)朝鮮演劇史 (金在喆 著, 民俗苑, 1981)한국민속대사전 (한국민속사전 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