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조제(馬祖祭)

한자명

馬祖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2월 > 의례

집필자 김철웅(金澈雄)

정의

말의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말의 조상인 천사성(天駟星)에 지내는 국가의례.

유래

『주례(周禮)』의 「동악증의(東嶽證義)」에 따르면, 마조(馬祖)는 천사방성(天駟房星)이요, 선목(先牧)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방목(放牧)을 가르친 사람이요, 마사(馬社)는 마구간의 토신이요, 마보(馬步)는 말을 해치는 재앙의 신이라고 하였다. 마조제는 중국 고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우리나라의 경우 마조제(馬祖祭)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정종 12년(1046) 2월에 마조(馬祖)에 제사를 지냈다. 고려시대의 마조제는 마조단(馬祖壇)에서 소사(小祀)로 거행하였는데, 2월 중에 좋은 날을 받아 제사를 지냈으며,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썼다.

마조제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거행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에 따르면, 소사로 중춘(仲春, 2월) 중기(中氣) 후의 강일(剛日)에 마조제를 지냈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국가 의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마조제 역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왕실 보급용 말을 기르던 전곶목장(箭串牧場)의 말들이 병이 들자 이곳에서 마조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임시로 행해지던 것이 정조 21년 1월에 들어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의 건의로 종전대로 부활되었다. 곧 윤시동이 “마조단이 동교(東郊)에 있는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중춘 중기 후 강일에 제사지낸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전(祀典)에 실린 것 중에 폐할 수 없는 것인데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고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올해부터 예에 따라 거행하소서.” 하고 건의하자 정조가 이에 따랐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 마조제의 헌관(獻官), 전사관(典祀官), 제집사(諸執事)를 정하였다. 그 뒤 1908년 7월에 폐지되었다.

의의

말은 군사용, 교통과 통신용, 또는 외교상의 교역품으로 활용되었으므로 말의 양육과 보호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말을 중시하고 보호하려는 의례의 하나로 마조제를 행하였다. 말에 대한 의례로 마조제 외에도 선목제(先牧祭), 마사제(馬社祭), 마보제(馬步祭)가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儀, 世宗實錄, 周禮, 韓國中世禮思想硏究 (李範稷, 一潮閣, 1991), 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 韓國中世 國家祭祀의 體制와 雜祀 (金澈雄, 韓國硏究叢書68, 韓國硏究院, 2003)

마조제

마조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2월 > 의례

집필자 김철웅(金澈雄)

정의

말의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말의 조상인 천사성(天駟星)에 지내는 국가의례.

유래

『주례(周禮)』의 「동악증의(東嶽證義)」에 따르면, 마조(馬祖)는 천사방성(天駟房星)이요, 선목(先牧)은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방목(放牧)을 가르친 사람이요, 마사(馬社)는 마구간의 토신이요, 마보(馬步)는 말을 해치는 재앙의 신이라고 하였다. 마조제는 중국 고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우리나라의 경우 마조제(馬祖祭)에 대한 첫 기록은 고려시대에 나타난다. 『고려사(高麗史)』에 따르면, 정종 12년(1046) 2월에 마조(馬祖)에 제사를 지냈다. 고려시대의 마조제는 마조단(馬祖壇)에서 소사(小祀)로 거행하였는데, 2월 중에 좋은 날을 받아 제사를 지냈으며,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썼다. 마조제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거행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五禮)」에 따르면, 소사로 중춘(仲春, 2월) 중기(中氣) 후의 강일(剛日)에 마조제를 지냈다. 그런데 임진왜란으로 국가 의례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마조제 역시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왕실 보급용 말을 기르던 전곶목장(箭串牧場)의 말들이 병이 들자 이곳에서 마조제를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임시로 행해지던 것이 정조 21년 1월에 들어 우의정 윤시동(尹蓍東)의 건의로 종전대로 부활되었다. 곧 윤시동이 “마조단이 동교(東郊)에 있는데,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의하면 중춘 중기 후 강일에 제사지낸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전(祀典)에 실린 것 중에 폐할 수 없는 것인데 옛날에는 제사를 지내고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고 있으니,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올해부터 예에 따라 거행하소서.” 하고 건의하자 정조가 이에 따랐다. 그리고 같은 해 7월에 마조제의 헌관(獻官), 전사관(典祀官), 제집사(諸執事)를 정하였다. 그 뒤 1908년 7월에 폐지되었다.

의의

말은 군사용, 교통과 통신용, 또는 외교상의 교역품으로 활용되었으므로 말의 양육과 보호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말을 중시하고 보호하려는 의례의 하나로 마조제를 행하였다. 말에 대한 의례로 마조제 외에도 선목제(先牧祭), 마사제(馬社祭), 마보제(馬步祭)가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儀, 世宗實錄, 周禮韓國中世禮思想硏究 (李範稷, 一潮閣, 1991)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韓國中世 國家祭祀의 體制와 雜祀 (金澈雄, 韓國硏究叢書68, 韓國硏究院,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