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보제(馬步祭)

한자명

馬步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의례

집필자 김철웅(金澈雄)

정의

11월에 말을 해치는 재앙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

유래

마보제(馬步祭)는 마조(馬祖), 선목(先牧), 마사(馬社)와 함께 중국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주례(周禮)』 권33 「하관사마(夏官司馬)」 교인조(校人條)에 의하면, “봄에 마조에게 제사지낼 때는 망아지를 쓰고, 여름에 선목에 제사지낼 때는 거세한 수말을 쓰며, 가을에 마사에 제사지낼 때는 길들인 말로써 하고, 겨울에 마보에 제사지낼 때는 헌납한 말 중에 어부(馭夫)가 길들인 말을 쓴다.”라고 하였다.

내용

우리나라의 경우 마보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6 「세가(世家)」6에 의하면, 정종 12년(1046) 2월에 마조에 제사를 지냈는데, 아마도 이때에 마보, 마사, 선목에 대한 제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사』 권63 「지(志)」17 예(禮)5 길례소사(吉禮小祀)에 의하면, 마조제는 중춘(仲春)에, 선목제중하(仲夏)에, 마사제는 중추(仲秋)에, 마보제는 중동(仲冬)에, 모두 길일(吉日)을 택하여 지냈다. 마보제는 이들 제사와 함께 소사(小祀)로 거행되었는데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썼다.

마보제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거행되었다. 태종 11년 10월에 마보, 마사, 마조, 선목 등에 제사하는 데 모두 강일(剛日)에 지낼 것을 명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와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에 의하면, 마보제는 마조제, 선목제와 함께 소사에 올라 있으며, 중동 중기 이후의 강일에 제사한다고 하였다. 마보단(馬步壇)은 동교(東郊)인 흥인문 밖 사근사리(沙斤寺里)에 있었다. 신위(神位)는 단 위의 북방에 두고 남쪽을 향하게 하고 희생은 돼지 한 마리를 썼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례는 제대로 행해지지 못했는데 마보제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정조 21년 1월에 들어 마조제가 부활되었으나 이와 관련된 마보제, 마사제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마보제는 마사제, 선목제와 함께 폐지되었다고 한다.

의의

말은 군사용, 교통통신용 또는 교역품으로 널리 활용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양육과 보호는 매우 중요한 국가 사무였다. 따라서 말에 대한 제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리하여 말과 관련하여 마보제, 마조제, 마사제, 선목제를 지냈다. 곧 마보제는 말을 중시하고 보호하려는 의례의 하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序例, 國朝五禮儀, 大典會通, 世宗實錄, 周禮, 太宗實錄, 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 韓國中世 國家祭祀의 體制와 雜祀 (金澈雄, 韓國硏究叢書68, 韓國硏究院, 2003)

마보제

마보제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의례

집필자 김철웅(金澈雄)

정의

11월에 말을 해치는 재앙의 신에게 지내는 제사.

유래

마보제(馬步祭)는 마조(馬祖), 선목(先牧), 마사(馬社)와 함께 중국 고대부터 시작되었다. 『주례(周禮)』 권33 「하관사마(夏官司馬)」 교인조(校人條)에 의하면, “봄에 마조에게 제사지낼 때는 망아지를 쓰고, 여름에 선목에 제사지낼 때는 거세한 수말을 쓰며, 가을에 마사에 제사지낼 때는 길들인 말로써 하고, 겨울에 마보에 제사지낼 때는 헌납한 말 중에 어부(馭夫)가 길들인 말을 쓴다.”라고 하였다.

내용

우리나라의 경우 마보제는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6 「세가(世家)」6에 의하면, 정종 12년(1046) 2월에 마조에 제사를 지냈는데, 아마도 이때에 마보, 마사, 선목에 대한 제사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려사』 권63 「지(志)」17 예(禮)5 길례소사(吉禮小祀)에 의하면, 마조제는 중춘(仲春)에, 선목제는 중하(仲夏)에, 마사제는 중추(仲秋)에, 마보제는 중동(仲冬)에, 모두 길일(吉日)을 택하여 지냈다. 마보제는 이들 제사와 함께 소사(小祀)로 거행되었는데 희생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썼다. 마보제는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거행되었다. 태종 11년 10월에 마보, 마사, 마조, 선목 등에 제사하는 데 모두 강일(剛日)에 지낼 것을 명하였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오례의(五禮儀)」와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 권1에 의하면, 마보제는 마조제, 선목제와 함께 소사에 올라 있으며, 중동 중기 이후의 강일에 제사한다고 하였다. 마보단(馬步壇)은 동교(東郊)인 흥인문 밖 사근사리(沙斤寺里)에 있었다. 신위(神位)는 단 위의 북방에 두고 남쪽을 향하게 하고 희생은 돼지 한 마리를 썼다. 임진왜란 이후 국가의례는 제대로 행해지지 못했는데 마보제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정조 21년 1월에 들어 마조제가 부활되었으나 이와 관련된 마보제, 마사제에 대해서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대전회통(大典會通)』에 의하면 마보제는 마사제, 선목제와 함께 폐지되었다고 한다.

의의

말은 군사용, 교통통신용 또는 교역품으로 널리 활용되었으므로 이에 대한 양육과 보호는 매우 중요한 국가 사무였다. 따라서 말에 대한 제사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그리하여 말과 관련하여 마보제, 마조제, 마사제, 선목제를 지냈다. 곧 마보제는 말을 중시하고 보호하려는 의례의 하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國朝五禮序例, 國朝五禮儀, 大典會通, 世宗實錄, 周禮, 太宗實錄朝鮮初期 國家祭禮 硏究 (韓亨周, 一潮閣, 2002)韓國中世 國家祭祀의 體制와 雜祀 (金澈雄, 韓國硏究叢書68, 韓國硏究院,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