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영수(金榮洙)

정의

가톨릭 장례절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장례일) 하느님께 고인을 맡긴다는 의미로 하는 미사.

역사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의 장례에는 사람이 죽기전에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대 로마의 관습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반영되었다. 운명・수시매장 등 장례의 과정을 통해 슬픔과 위로가 위령미사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매장 후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관습도 포함되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음복과 위령미사가 모두 시행되다가 위령미사만 드리게 되었으나, 그 구체적인 사항은 지역이나 수도원별로 차이가 적지 않았다. 다양한 장례와 매장 예절이 정리되어 로마교회 안에 공포된 것이 1614년 『로마예식서』이다. 20세기 초까지 사용된이 예식서는 성당에서의 행하는 사죄赦罪예식을 중심으로 하며, 장례절차가 고인의 집, 성당에서의 예절, 묘지예절 등 세 부분으로 간소화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이 예식서는 유럽문화 중심으로 서술되어 다른 민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 선교를 둘러싸고 1636년부터 100여 년 동안 의례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조상제사와 공자 숭배로 대표되는 중국의 유교식 의례가 인정되지않아, 그 결과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가톨릭 신자에 대한 큰 박해가 일어났다. 가톨릭에서 다른 지역의 문화를 인정하게 된 것은 예식서가 개정된 20세기 초기 이후의 일이었다. 1939년 교황청의 신앙포교성에서는 일본의 신사참배와 중국의 공자 화상이나 위패에 대한 존경, 시신이나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것을 지역의 문화로 인정함에 따라 다소의 허용이 이루어졌다. 이후 1962년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도들의 장례예식에서 지역문화의 정신과 풍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확립하고, 1969년 새로운 장례 예식서가 공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에 이미 로마의 표준예식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기도인 연도煉禱를 수록한 『천주성교예규』가 있어, 이에 따라 장례를 거행하고 있었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방침에 따라 1976년 『장례예식서』를 발간하였고, 2003년 주교회의에서는 1864년 목판본으로 간행된 『천주성교예규』를 현대 감각에 맞추어 『상장예식』으로 새롭게 발간하였다. 오늘날 장례의 지침이 되는 『상장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맞게, 무덤이나 죽은 이의 시신 혹은 이름의 패 앞에서 절과 분향, 음식 진설을 허용하였다. 또한, 우제를 인정하는 등 우리 고유의 문화적 전통에 따른 상례・제례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

가톨릭에서는 죽음을 성인들의 통공通功에 의해 부활을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에게 인간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부활을 향한 문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장례미사를 비롯한 모든 장례절차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적(Pascha的) 성격을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례미사가 핵심이 되는 가톨릭의 장례절차는 고인이 집을 떠나는 출관예식과 성당에서 거행하는 장례미사와 고별식, 그리고 묘지로 가는 운구예식, 무덤 축복과 매장, 하관예식 등으로 구분된다.

『상장예식』에 의하면, 가톨릭의 장례절차는 임종과 운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죽음이 임박하면 가족들은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임종을 앞둔 사람의 옷을 갈아입힌 다음, 임종을 맞이할 장소로 옮긴다. 그런 다음 상황에 따라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유언과 축복을 청하며, 또한 사제를 청하여 병자성사(종부성사)를 받는 순으로 임종예식을 거행한다.

죽음을 앞둔 이가 운명하게 되면 곧 죽음을 확인하고 운명예식을 거행한 뒤에, 수시收屍를 하게 된다. 먼저 정갈한 물로 얼굴을 씻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펴주며, 두 손에 십자가나 묵주를 쥐여 주어 가슴 위에 얹어 놓는다. 시신 위에 홑이불을 덮고 검은 휘장이나 병풍으로 가려 세운 후, 향상香床을 차려 놓고 촛불과 향 , 성수를 준비하여 상주부터 분향한다. 빈소는 영정 사진과 꽃으로만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나, 가정의 관습에 따라 과일과 떡을 올리기도 한다. 수시를 전후로 교회와 친지들에게 알려 공동체의 기도를 청하며, 이때부터 문상을 받을 수 있다.

문상은 소박하고 정중한 복장으로 예의를 갖추며 , 빈소에 가서 성수를 뿌리고 분향한 후 고인과 상주에게 절을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도록 한다. 이후에 장례기간 내내 고인을 위해 한국 가톨릭 고유의위 령기도[煉禱]를 바친다.

보통의 경우, 죽음이 분명히 확인되는 장례 2일차에 염습과 입관을 한다. 염습은 시신을 깨끗하게 씻긴다음 수의를 입히는 과정이며, 입관은 염습한 시신을 관에 넣는 것을 말한다. 염습과 입관은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장례지도사가 담당하며, 사제나 장례 봉사자의 주도로 예식을 거행한다.

염습과 장례가 끝나면 본격적인 장례절차가 시작된다. 장례절차는 크게 빈소에서 나와 성당으로 향하는 출관, 장례미사와 고별식, 그리고 묘지로 이동하면서 바치는 운구예식, 무덤 축복과 매장으로 이어지는 하관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가장 장엄한 예식은 장례미사이다. 제대諸臺에 깔끔한 꽃장식을 하고 부활초를 켜며, 사제는 흰색이나 보라색 또는 검은색 제의를 입는다 . 그리고 성당으로 입장하기 전에 영구 앞에 와서 가벼운 묵례로 고인과 유족에게 인사한 뒤에 관에 성수와 향을 뿌리며 함께 기도를 올린다. 이어 성가와 함께 십자가를 선두로 복사단과 사제가 입당하며, 그 뒤를 고인의 관을 밀며 연령회원들이 입당하고, 다음으로 상주와 유가족들이 성당 안으로 입당하게 된다. 제대 앞에 관을 놓고, 관 앞에는 따로 작은 십자가와 영정사진, 이름을 쓴 지방을 배치한다. 그리고 양쪽으로 촛대를 각 세 개씩 여섯 개를 놓는다. 유족들이 맨 앞에 자리를 잡으면 미사가 시작된다.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와 보편지향기도는 장례미사 경본에 의하여 바쳐지지만, 성찬의 전례부터는 일반적인 미사와 같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끝나면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따라 고별식이 이어진다. 이는 발인 전이나 매장 전에 신자공동체를 떠나는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예식이다. 고별식에서 유족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관 주위를 둘러서며 집전 사제는 기도와 향을 드린다. 이때 참석한 신자들이 고별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유가족들과 친지들은 관 앞으로 나와 분향을 하며 고별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예식은 끝이 난다.

뒤이어 묘지나 화장장으로 가는 운구예식이 있다. 매장의 경우, 무덤에 도착하면 무덤 축복 이후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가운데 하관예식이 거행된다 . 성수를 뿌리고 독서와 청원기도, 유가족을 위한 기도로 장례미사는 마무리된다. 화장으로 모시는 경우, 화장장에 도착하여 시신을 사르기 전에 기도와 성경 봉독, 화답송을 바치고, 화장하는 중이거나 쇄골 또는 습골할 때에 위령기도를 바친다. 납골이나 산골散骨을 할 때에도 예식서에 따라 기도를 바치며,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장례는 마무리된다.

특징 및 의의

장례미사를 비롯한 한국가톨릭의 장례예식이 가진 특징은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우제虞祭 허용, 염습 과정, 명정銘旌을 쓰는 방법, 고인의 시신이 들어갈 영구靈柩를 하나의 실처럼 꾸며 광중에 안치하는 매장의 방법, 절을 하는 문상 방법 등은 우리 고유의 상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장례기간 내내 우리 고유의 가락으로 구성된 연도를 드린다는 점이나 장례를 공동체의 일로 간주하는 정신 등은 우리 문화와 가톨릭의 결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참고문헌

선종(김시덕, 국립민속박물관, 2011), 한국가톨릭대사전(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2006), 한국 천주교 상제례 문화의 토착화(허윤석, 사목연구10,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 2002).

장례미사

장례미사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영수(金榮洙)

정의

가톨릭 장례절차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으로, 죽은 지 3일째 되는 날(장례일) 하느님께 고인을 맡긴다는 의미로 하는 미사.

역사

그리스도교 초기 공동체의 장례에는 사람이 죽기전에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고대 로마의 관습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반영되었다. 운명・수시・매장 등 장례의 과정을 통해 슬픔과 위로가 위령미사로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매장 후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관습도 포함되었다. 중세에 접어들면서 음복과 위령미사가 모두 시행되다가 위령미사만 드리게 되었으나, 그 구체적인 사항은 지역이나 수도원별로 차이가 적지 않았다. 다양한 장례와 매장 예절이 정리되어 로마교회 안에 공포된 것이 1614년 『로마예식서』이다. 20세기 초까지 사용된이 예식서는 성당에서의 행하는 사죄赦罪예식을 중심으로 하며, 장례절차가 고인의 집, 성당에서의 예절, 묘지예절 등 세 부분으로 간소화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이 예식서는 유럽문화 중심으로 서술되어 다른 민족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국 선교를 둘러싸고 1636년부터 100여 년 동안 의례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조상제사와 공자 숭배로 대표되는 중국의 유교식 의례가 인정되지않아, 그 결과로 중국과 한국에서는 가톨릭 신자에 대한 큰 박해가 일어났다. 가톨릭에서 다른 지역의 문화를 인정하게 된 것은 예식서가 개정된 20세기 초기 이후의 일이었다. 1939년 교황청의 신앙포교성에서는 일본의 신사참배와 중국의 공자 화상이나 위패에 대한 존경, 시신이나 고인의 사진 앞에서 절을 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것을 지역의 문화로 인정함에 따라 다소의 허용이 이루어졌다. 이후 1962년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신도들의 장례예식에서 지역문화의 정신과 풍습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확립하고, 1969년 새로운 장례 예식서가 공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에 이미 로마의 표준예식을 바탕으로 우리 고유의 기도인 연도煉禱를 수록한 『천주성교예규』가 있어, 이에 따라 장례를 거행하고 있었다. 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방침에 따라 1976년 『장례예식서』를 발간하였고, 2003년 주교회의에서는 1864년 목판본으로 간행된 『천주성교예규』를 현대 감각에 맞추어 『상장예식』으로 새롭게 발간하였다. 오늘날 장례의 지침이 되는 『상장예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맞게, 무덤이나 죽은 이의 시신 혹은 이름의 패 앞에서 절과 분향, 음식 진설을 허용하였다. 또한, 우제를 인정하는 등 우리 고유의 문화적 전통에 따른 상례・제례 지침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내용

가톨릭에서는 죽음을 성인들의 통공通功에 의해 부활을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에게 인간의 죽음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부활을 향한 문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장례미사를 비롯한 모든 장례절차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파스카적(Pascha的) 성격을 지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례미사가 핵심이 되는 가톨릭의 장례절차는 고인이 집을 떠나는 출관예식과 성당에서 거행하는 장례미사와 고별식, 그리고 묘지로 가는 운구예식, 무덤 축복과 매장, 하관예식 등으로 구분된다. 『상장예식』에 의하면, 가톨릭의 장례절차는 임종과 운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죽음이 임박하면 가족들은 주위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임종을 앞둔 사람의 옷을 갈아입힌 다음, 임종을 맞이할 장소로 옮긴다. 그런 다음 상황에 따라 임종을 앞둔 사람에게 유언과 축복을 청하며, 또한 사제를 청하여 병자성사(종부성사)를 받는 순으로 임종예식을 거행한다. 죽음을 앞둔 이가 운명하게 되면 곧 죽음을 확인하고 운명예식을 거행한 뒤에, 수시收屍를 하게 된다. 먼저 정갈한 물로 얼굴을 씻어주고, 손과 발을 가지런히 펴주며, 두 손에 십자가나 묵주를 쥐여 주어 가슴 위에 얹어 놓는다. 시신 위에 홑이불을 덮고 검은 휘장이나 병풍으로 가려 세운 후, 향상香床을 차려 놓고 촛불과 향 , 성수를 준비하여 상주부터 분향한다. 빈소는 영정 사진과 꽃으로만 장식하는 것이 보통이나, 가정의 관습에 따라 과일과 떡을 올리기도 한다. 수시를 전후로 교회와 친지들에게 알려 공동체의 기도를 청하며, 이때부터 문상을 받을 수 있다. 문상은 소박하고 정중한 복장으로 예의를 갖추며 , 빈소에 가서 성수를 뿌리고 분향한 후 고인과 상주에게 절을 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도록 한다. 이후에 장례기간 내내 고인을 위해 한국 가톨릭 고유의위 령기도[煉禱]를 바친다. 보통의 경우, 죽음이 분명히 확인되는 장례 2일차에 염습과 입관을 한다. 염습은 시신을 깨끗하게 씻긴다음 수의를 입히는 과정이며, 입관은 염습한 시신을 관에 넣는 것을 말한다. 염습과 입관은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장례지도사가 담당하며, 사제나 장례 봉사자의 주도로 예식을 거행한다. 염습과 장례가 끝나면 본격적인 장례절차가 시작된다. 장례절차는 크게 빈소에서 나와 성당으로 향하는 출관, 장례미사와 고별식, 그리고 묘지로 이동하면서 바치는 운구예식, 무덤 축복과 매장으로 이어지는 하관예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가장 장엄한 예식은 장례미사이다. 제대諸臺에 깔끔한 꽃장식을 하고 부활초를 켜며, 사제는 흰색이나 보라색 또는 검은색 제의를 입는다 . 그리고 성당으로 입장하기 전에 영구 앞에 와서 가벼운 묵례로 고인과 유족에게 인사한 뒤에 관에 성수와 향을 뿌리며 함께 기도를 올린다. 이어 성가와 함께 십자가를 선두로 복사단과 사제가 입당하며, 그 뒤를 고인의 관을 밀며 연령회원들이 입당하고, 다음으로 상주와 유가족들이 성당 안으로 입당하게 된다. 제대 앞에 관을 놓고, 관 앞에는 따로 작은 십자가와 영정사진, 이름을 쓴 지방을 배치한다. 그리고 양쪽으로 촛대를 각 세 개씩 여섯 개를 놓는다. 유족들이 맨 앞에 자리를 잡으면 미사가 시작된다. 미사 중에 말씀의 전례와 보편지향기도는 장례미사 경본에 의하여 바쳐지지만, 성찬의 전례부터는 일반적인 미사와 같다.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끝나면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따라 고별식이 이어진다. 이는 발인 전이나 매장 전에 신자공동체를 떠나는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하는 예식이다. 고별식에서 유족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관 주위를 둘러서며 집전 사제는 기도와 향을 드린다. 이때 참석한 신자들이 고별노래를 부르는 가운데 유가족들과 친지들은 관 앞으로 나와 분향을 하며 고별의 인사를 드리는 것으로 예식은 끝이 난다. 뒤이어 묘지나 화장장으로 가는 운구예식이 있다. 매장의 경우, 무덤에 도착하면 무덤 축복 이후 유가족들이 촛불을 들고 있는 가운데 하관예식이 거행된다 . 성수를 뿌리고 독서와 청원기도, 유가족을 위한 기도로 장례미사는 마무리된다. 화장으로 모시는 경우, 화장장에 도착하여 시신을 사르기 전에 기도와 성경 봉독, 화답송을 바치고, 화장하는 중이거나 쇄골 또는 습골할 때에 위령기도를 바친다. 납골이나 산골散骨을 할 때에도 예식서에 따라 기도를 바치며,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장례는 마무리된다.

특징 및 의의

장례미사를 비롯한 한국가톨릭의 장례예식이 가진 특징은 우리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우제虞祭 허용, 염습 과정, 명정銘旌을 쓰는 방법, 고인의 시신이 들어갈 영구靈柩를 하나의 실처럼 꾸며 광중에 안치하는 매장의 방법, 절을 하는 문상 방법 등은 우리 고유의 상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특히 장례기간 내내 우리 고유의 가락으로 구성된 연도를 드린다는 점이나 장례를 공동체의 일로 간주하는 정신 등은 우리 문화와 가톨릭의 결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참고문헌

선종(김시덕, 국립민속박물관, 2011), 한국가톨릭대사전(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2006), 한국 천주교 상제례 문화의 토착화(허윤석, 사목연구10, 가톨릭대학교 사목연구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