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바루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2

정의

음력 4월을 전후한 시기에 서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져 오던 여성들의 놀이. ‘등바루(등빠루)’의 어원을 ‘등불을 밝힌다’ 혹은 ‘등불을 켜들고 마중 나온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놀이를 할 때 등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등불과 관련된 어원은 근거가 미약하다.

내용

등바루놀이는 1950~1960년대까지 충남 서해안의 장고도, 안면도, 간월도, 고대도, 원산도를 비롯한 섬마을과 해변에서 널리 전승되었다. 그 시기는 굴이 많이 나는 음력 4월에 바닷물이 가장 멀리 빠지는 조금 무렵이었으며, 놀이 대상은 초경(初經)을 경험한 15~18세 처녀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부녀자들까지 참석하기도 하였고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을 소(小)처녀, 중(中)처녀, 노(老)처녀로 구분하여 놀기도 했다. 이 놀이는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고도에는 속칭 ‘명장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만조 때는 독립된 섬이 되지만 물이 빠지는 간조 때는 장고도와 연결되는 독특한 섬이다. 해당화가 만발하는 계절이 오면 동네 처녀들이 놀이하기에 좋은 날을 잡는다. 그리고 하루 전에 미리 명장섬 백사장으로 나아가 부지런히 돌을 날라 ‘돌방’을 쌓는다. 이는 삼면에 돌담을 쌓아 만든 타원형의 방을 일컫는데, 남성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바닷가 쪽에 입구를 낸다. 돌방은 등바루놀이를 하는 날 처녀들이 화장도 하고 옷을 갈아입는 장소로 활용되므로, 바닥은 자갈로 평평하게 다듬고 고운 모래를 펴서 정성껏 꾸민다. 또한 돌담 한 켠에는 모래로 낮은 단을 쌓는데, 이것을 부뚜막 또는 조왕이라고 한다. 여기에 물질할 때 쓰는 어항을 올려놓고 해당화를 꽂아둔다. 예전에 소처녀와 노처녀로 나누어서 놀이할 때에는 돌방을 두 개 만들었다고 한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마을 처녀들은 작업복 차림으로 화장품과 한복을 가지고 돌방으로 속속 모여든다. 각자 가져온 물품을 이곳에 넣고 해당화와 찔레나무를 꺾어 그것으로 돌방을 장식한다. 아울러 돌방 위에는 대나무를 걸쳐 지붕을 만든 다음, 역시 찔레나무와 해당화로 곱게 단장한다. 이어서 바구니를 메고 개펄로 나아가 굴을 캐는데, 이때 여럿이 굴을 따며 노래를 부르고 누가 더 큰 것을 채취하는지 내기를 하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처녀의 부모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과 반찬을 가지고 돌방으로 온다. 그러면 가장 먼저 찾아온 집의 밥부터 차례로 나누어 먹는다. 식사를 마친 처녀들은 돌방으로 들어가 치장을 하고 형형색색의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한데 어우러져 ‘까그매’, ‘줄방넘기’, ‘해당화뺏기’ 같은 동요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겹게 논다. 이렇게 해가 질 무렵까지 진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면 비로소 돌방을 허물고 집으로 돌아온다. 등바루놀이는 3~4일 동안 지속되는 것이 통례인데, 대개는 며칠씩 굴을 딴 다음 마지막 날 곱게 옷을 입고 놀이를 한다.

등바루놀이는 1973년과 1980년 장고도의 사례가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장려상과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다. 이때 ‘여왕뽑기’, ‘굴캐기 경연’, ‘등불마중’ 같은 극적인 요소를 새롭게 추가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지역사례

고대도에서는 굴을 캐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등바루놀이를 했다. 아침부터 처녀들이 화사하게 옷을 갈아입고 한자리에 모여서 멍석놀이도 하고 ‘까그매’, ‘까치놀이’ 같은 동요를 부르며 해질 무렵까지 실컷 놀았다. 그러다가 ‘등빠루 둠벙’으로 가서 백지에 밥을 싸서 바다에 던지며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

충남 태안군 고남면 고장마을에서는 등바루놀이를 위해 분홍저고리와 남색치마를 단체로 준비했다. 돌방 대신 백사장의 모래로 각자 집을 짓는데, 이는 자신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개펄에서 딴 석화는 모래집에 모아놓고 화장을 한 뒤, 소리를 잘하고 똑똑한 처녀 한 명을 선정하여 놀이를 주도하도록 했다. 이때 뽑힌 처녀는 ‘짐(밥)’을 차려놓고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것은 용왕신께 ‘갯것(해산물)’의 채취가 잘되도록 기원하는 의례이다. 뿐만 아니라 처녀들은 진종일 풍물을 치며 놀다가 두 패로 갈라서 어느 한 편이 “굴아! 조개야!” 하고 외치면, 다른 편에서 이를 받아 “굴아, 조개야!” 하고 반복하여 소리를 지른다. 이어 모래를 한 주먹씩 집어서 바다를 향해 던진다. 이렇게 하면 이듬해에도 굴과 조개를 많이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의의

등바루놀이는 어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서해 도서 지역의 특징이 잘 갈무리된 미혼 여성들의 놀이였다. 지난날 이 지역 여성들의 주된 어로 활동은 굴과 조개채취였으므로, 성수기인 음력 4월에 놀이를 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동시에 이 놀이를 통해 장차 해산물 채취의 주역이 될 여아들을 자연스레 생업 현장에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문화적 장치의 기능도 있었다. 즉 어촌에서 여아는 15~18세가 되면 가사일은 물론 해산물의 채취에서도 한몫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용왕제를 지내며 굴과 조개를 부르는 의식이지만 한 해라도 놀이를 거르면 마을이 편치 않다는 속설에서 알 수 있듯이 등바루놀이에는 섬마을의 풍어와 평안을 염원하는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녹아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등바루놀이는 음력 섣달그믐에 충남 도서 지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하던 또 다른 풍어놀이인 ‘등불써기놀이’와도 연관성이 있다.

참고문헌

향토문화 (충남대학교, 1986)
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
島嶼誌(上·中·下) (忠淸南道·韓南大學校 忠淸文化硏究所 共編, 충청남도, 1997)
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하권 (김용덕 편, 창솔, 2004)

등바루놀이

등바루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12

정의

음력 4월을 전후한 시기에 서해안 도서 지역을 중심으로 전해져 오던 여성들의 놀이. ‘등바루(등빠루)’의 어원을 ‘등불을 밝힌다’ 혹은 ‘등불을 켜들고 마중 나온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놀이를 할 때 등불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등불과 관련된 어원은 근거가 미약하다.

내용

등바루놀이는 1950~1960년대까지 충남 서해안의 장고도, 안면도, 간월도, 고대도, 원산도를 비롯한 섬마을과 해변에서 널리 전승되었다. 그 시기는 굴이 많이 나는 음력 4월에 바닷물이 가장 멀리 빠지는 조금 무렵이었으며, 놀이 대상은 초경(初經)을 경험한 15~18세 처녀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는 부녀자들까지 참석하기도 하였고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들을 소(小)처녀, 중(中)처녀, 노(老)처녀로 구분하여 놀기도 했다. 이 놀이는 마을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장고도의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고도에는 속칭 ‘명장섬’이라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만조 때는 독립된 섬이 되지만 물이 빠지는 간조 때는 장고도와 연결되는 독특한 섬이다. 해당화가 만발하는 계절이 오면 동네 처녀들이 놀이하기에 좋은 날을 잡는다. 그리고 하루 전에 미리 명장섬 백사장으로 나아가 부지런히 돌을 날라 ‘돌방’을 쌓는다. 이는 삼면에 돌담을 쌓아 만든 타원형의 방을 일컫는데, 남성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바닷가 쪽에 입구를 낸다. 돌방은 등바루놀이를 하는 날 처녀들이 화장도 하고 옷을 갈아입는 장소로 활용되므로, 바닥은 자갈로 평평하게 다듬고 고운 모래를 펴서 정성껏 꾸민다. 또한 돌담 한 켠에는 모래로 낮은 단을 쌓는데, 이것을 부뚜막 또는 조왕이라고 한다. 여기에 물질할 때 쓰는 어항을 올려놓고 해당화를 꽂아둔다. 예전에 소처녀와 노처녀로 나누어서 놀이할 때에는 돌방을 두 개 만들었다고 한다. 이튿날 동이 트기 전에 마을 처녀들은 작업복 차림으로 화장품과 한복을 가지고 돌방으로 속속 모여든다. 각자 가져온 물품을 이곳에 넣고 해당화와 찔레나무를 꺾어 그것으로 돌방을 장식한다. 아울러 돌방 위에는 대나무를 걸쳐 지붕을 만든 다음, 역시 찔레나무와 해당화로 곱게 단장한다. 이어서 바구니를 메고 개펄로 나아가 굴을 캐는데, 이때 여럿이 굴을 따며 노래를 부르고 누가 더 큰 것을 채취하는지 내기를 하기도 한다. 아침이 되면 처녀의 부모들이 정성껏 준비한 밥과 반찬을 가지고 돌방으로 온다. 그러면 가장 먼저 찾아온 집의 밥부터 차례로 나누어 먹는다. 식사를 마친 처녀들은 돌방으로 들어가 치장을 하고 형형색색의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한데 어우러져 ‘까그매’, ‘줄방넘기’, ‘해당화뺏기’ 같은 동요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겹게 논다. 이렇게 해가 질 무렵까지 진종일 놀다가 날이 저물면 비로소 돌방을 허물고 집으로 돌아온다. 등바루놀이는 3~4일 동안 지속되는 것이 통례인데, 대개는 며칠씩 굴을 딴 다음 마지막 날 곱게 옷을 입고 놀이를 한다. 등바루놀이는 1973년과 1980년 장고도의 사례가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전하여 장려상과 문화공보부장관상을 받았다. 이때 ‘여왕뽑기’, ‘굴캐기 경연’, ‘등불마중’ 같은 극적인 요소를 새롭게 추가하여 지금까지 전해져 온다.

지역사례

고대도에서는 굴을 캐기 시작한 지 사흘째 되는 날 등바루놀이를 했다. 아침부터 처녀들이 화사하게 옷을 갈아입고 한자리에 모여서 멍석놀이도 하고 ‘까그매’, ‘까치놀이’ 같은 동요를 부르며 해질 무렵까지 실컷 놀았다. 그러다가 ‘등빠루 둠벙’으로 가서 백지에 밥을 싸서 바다에 던지며 용왕제를 지내기도 했다. 충남 태안군 고남면 고장마을에서는 등바루놀이를 위해 분홍저고리와 남색치마를 단체로 준비했다. 돌방 대신 백사장의 모래로 각자 집을 짓는데, 이는 자신의 자리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개펄에서 딴 석화는 모래집에 모아놓고 화장을 한 뒤, 소리를 잘하고 똑똑한 처녀 한 명을 선정하여 놀이를 주도하도록 했다. 이때 뽑힌 처녀는 ‘짐(밥)’을 차려놓고 용왕제를 지내는데, 이것은 용왕신께 ‘갯것(해산물)’의 채취가 잘되도록 기원하는 의례이다. 뿐만 아니라 처녀들은 진종일 풍물을 치며 놀다가 두 패로 갈라서 어느 한 편이 “굴아! 조개야!” 하고 외치면, 다른 편에서 이를 받아 “굴아, 조개야!” 하고 반복하여 소리를 지른다. 이어 모래를 한 주먹씩 집어서 바다를 향해 던진다. 이렇게 하면 이듬해에도 굴과 조개를 많이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의의

등바루놀이는 어업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서해 도서 지역의 특징이 잘 갈무리된 미혼 여성들의 놀이였다. 지난날 이 지역 여성들의 주된 어로 활동은 굴과 조개채취였으므로, 성수기인 음력 4월에 놀이를 함으로써 일의 능률을 한층 높일 수 있었다. 동시에 이 놀이를 통해 장차 해산물 채취의 주역이 될 여아들을 자연스레 생업 현장에 적응하도록 유도하는 문화적 장치의 기능도 있었다. 즉 어촌에서 여아는 15~18세가 되면 가사일은 물론 해산물의 채취에서도 한몫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용왕제를 지내며 굴과 조개를 부르는 의식이지만 한 해라도 놀이를 거르면 마을이 편치 않다는 속설에서 알 수 있듯이 등바루놀이에는 섬마을의 풍어와 평안을 염원하는 여성들의 간절한 소망이 녹아 있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등바루놀이는 음력 섣달그믐에 충남 도서 지역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하던 또 다른 풍어놀이인 ‘등불써기놀이’와도 연관성이 있다.

참고문헌

향토문화 (충남대학교, 1986)충남의 민속예술 (한상수, 충청남도, 1995)島嶼誌(上·中·下) (忠淸南道·韓南大學校 忠淸文化硏究所 共編, 충청남도, 1997)한국민속문화대사전 상,하권 (김용덕 편, 창솔,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