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돌날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정일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8-11-09

정의

함경남도의 부녀자들이 바닷가나 강변 또는 산에 모여서 춤을 추고 놀면서 부르던 춤과 노래. 함경남도 지방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

분포지는 신포시, 북청군, 신창군, 덕성군, 단청군을 비롯한 함남 일대와 갑산군, 풍산군 같은 양강도의 일부 지역이다. 이 중에 돈돌날이가 가장 활발하게 불린 대표적인 지역은 신포시, 북청군 같은 함남의 동해안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북청군에서는 한식 다음날 각 마을의 부녀자들이 남대천 강가나 속후의 모래산에 모여 달래를 캐며 지내다가, 오후가 되면 춤을 추며 노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를 달래터놀이라고 하였고, 여기에서 추는 춤을 달래춤이라고 하였다. 이 놀이에서 부르는 노래는 돈돌날이를 비롯하여 이 강산 서산에, 도레미쏘, 삼천리노래, 거스러미노래, 라리라라따, 전갑성타령, 미나리꽃, 양류나청산, 시집 안 가겠다고, 리리흘리리, 좋구 좋소를 비롯하여 20여 가지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노래가 ‘돈돌날이’이다. 이러한 연유로 돈돌날이는 차츰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돈돌날이가 이러한 여러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말로 굳어져 있다.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노래를 부르며 노는 놀이와 춤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를 전후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돈돌날이하는소리들이 창가의 영향으로 형성된 노래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돈돌날이하는소리들은 제4음과 제7음인 ‘파’와 ‘시’가 빠진 ‘도-레-미-솔-라’로 구성되는 일본식 요나누끼 음계로 구성되어 있고, 또 선율의 진행도 창가와 닮아 있어서 ‘미-솔-라-도-레’로 구성되는 이 지역 향토 민요의 고유 음계와 다른 면을 보인다. 따라서 돈돌날이의 놀이와 춤은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의 민속적 전통 위에 일본에서 들어온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돈돌날이의 춤판은 봄이 되어 한창 생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부녀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으면서 시작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흥이 오르면, 둥그렇게 둘러앉은 가운데로 뛰어들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 다시 이들의 춤에 흥이 올라 여러 사람들이 잇달아 춤판에 끼어들어 그 수가 늘어나 판이 커진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면 자연스레 춤을 선도하는 사람이 생겨나 그에 의해 때로는 둥그렇게, 때로는 여러 모양으로 대열을 이루면서 춤판은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도록 노래들 또한 모두 경쾌한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 노래들을 되도록 힘차게 소리를 내지르며 부르는 경향이 있다. 노래가 춤판의 흥겨움을 유발하고, 또 그러한 흥겨움에 호응하도록 구성되어 있고, 동시에 그러한 분위기가 나도록 다소 격앙되게 노래하는 것이다.

돈돌날이의 춤판은 돈돌날이를 부르면서 시작된다. 돈돌날이는 후렴이 있는 노래지만, 제창으로 부르며, 돈돌날이라는 말은 사설과 후렴에 모두 들어 있으면서 자주 반복된다.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모래 청산에 돈돌날이요
모래 청산에 돈돌날이요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시내 강변에 돈돌날이요
시내 강변에 돈돌날이요
(후렴)
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
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
(한국구연민요: 연구편)

돈돌날이는 돈돌라리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돈돌은 돌고 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돌고 돈다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서 일제가 물러가고, 식민지가 된 조국도 해방되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밖에 돈돌을 동틀로 이해하여 어둠이 가고 새로운 날이 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돈돌날이의 해석에 함경남도 민중들의 항일의식이 개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돈돌날이판에서 돈돌날이에 이어서 부르는 노래는 20여곡에 이를 만큼 다양한 것이지만, 그것들의 내용과 성격은 항일과 시대 의식, 여성적 정서와 관심, 놀이적 정서와 흥취를 표현한 것으로 구분된다. 다음은 이 중에 항일과 시대 의식을 지닌 노래에 해당하는 노래이다.

‘이 강산 서산에’
이강산 서산에 해가 떨어진다
얼씨구나 잘한다 재미가 쓰러진다
얼씨구나 잘한다 재미가 쓰러진다
일출 동산에 해가 솟아온다
얼씨구나 잘한다 새날이 밝아온다
얼씨구나 잘한다 새날이 밝아온다
(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서산에 해가 떨어진다”는 것은 해를 상징으로 하는 일본이 패망한다는 뜻이며, 또 “일출 동산에 해가 솟아온다”는 것은 조국이 해방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얼씨구나 잘한다”며 노래할 수 있다. 이처럼 돈돌날이하는소리에 항일 의식 또는 시대 의식이 드러나는 노래는 이 밖에도 후렴에 “빛나는 조선”을 반복하여 외치는 ‘삼천리노래’, 일본 경찰을 경계하는 ‘거스러미노래’, 징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라리라라따’ 같은 것들이 있다.

돈돌날이는 여성들의 놀이이다. 뒤에는 남성들이 함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 춤판의 주류는 여성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돈돌날이를 하면서 여성적 정서와 관심을 노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갑섬타령’
양천전촌에 전갑섬이 오매한촌에 말이났소
나는싫소 나는싫소 갱피방아찧기가 나는싫소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양촌전촌에 전갑섬이 별안대이촌에 말이났소
나는싫소 나는싫소 밥임나르기 나는싫소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양촌전촌에 전갑섬이 해안전촌에 말이났소
나는좋아요 나는좋아 해안퉁소가 나는좋소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전갑섬은 북청군 신북청면 신북청리에 있는 전씨 집성촌인 양천마을의 처녀이다. 전갑섬의 혼사 말이 이곳저곳에 났는데, 그의 반응은 이러하다. ‘속후면의 오매 한촌은 피농사를 많이 지어서 피방아를 많이 찧어야 하기 때문에 싫고, 신북청에 있는 별안대 이촌은 밭농사가 많아서 밥을 이어 날라야 하므로 싫다. 이에 반해 청해면의 해안전촌에는 퉁소를 잘 부는 총각이 있기에 그 곳으로 시집가고 싶다.’ 출가를 앞둔 처녀들의 심리와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노래이다. 이 밖에 다소 희롱하는 기분으로 총각을 노래한 ‘양류나청산’, 시집가는 날 처녀의 심리를 표현한 ‘시집 안 가겠다고’도 돈돌날이하는소리로서 여성적 정서와 관심을 그린 노래에 해당한다.

춤판이 어우러져 흥이 오르면, 노래도 그에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돈돌날이하는소리에 놀이적 정서와 흥취를 담은 노래들이 편입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구 좋소’
좋구 좋소 에라 좋구나
이십살 애들이 놀기 좋구나
십팔세 젊은시절이 놀기 좋구나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아름다운 매화꽃이 곱게 피었네
라리라 이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젊음은 봄이며, 봄은 젊음이다. 노래에는 젊음과 봄을 만끽하는 발랄한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돈돌날이하는소리로 놀이의 흥취를 돋구는 노래는 이 밖에도 미나리꽃을 들고 춤을 추자고 하는 ‘미나리꽃’, 주로 해학적 소재를 담아 노래하는 ‘리리흘리리’가 있다.

의의

돈돌날이하는소리처럼 민요창가의 요소가 끼어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또한 돈돌날이하는소리처럼 조국애와 항일 의식이 분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노래가 여럿 존재하는 경우도 역시 매우 드물다. 여기에는 함경도가 역사적으로 민중적 저항이 강한 곳이며, 또한 일본에 의한 근대산업이 일찍부터 들어선 곳이고, 개화기 이래 신학문이 활발하게 교육된 곳이라는 역사와 사회적 환경이 배경으로 놓여 있다. 돈돌날이는 본래 달래터놀이로부터 시작되었기에, 기본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여성의 축제라는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달래터놀이의 춤판에서 부르던 전통 민요가 있었을 터인데, 창가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끼어들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돈돌날이의 춤과 놀이는 전통 문화가 새로운 외국 문물의 영향을 받으며 쇠퇴되거나 변화되어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북청지방 민요들의 특색 (문하연, 문화유산4, 조선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57)
민요따라 삼천리 (최창호, 평양출판사, 1995)
한국구연민요-연구 편 (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
창가에서 민요로-함경도 북청민요 ‘돈돌날이’의 형성에 관한 연구 (이용식, 한국민요학7, 한국민요학회, 1999)

돈돌날이

돈돌날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정일

집필자 강등학(姜騰鶴)
갱신일 2018-11-09

정의

함경남도의 부녀자들이 바닷가나 강변 또는 산에 모여서 춤을 추고 놀면서 부르던 춤과 노래. 함경남도 지방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내용

분포지는 신포시, 북청군, 신창군, 덕성군, 단청군을 비롯한 함남 일대와 갑산군, 풍산군 같은 양강도의 일부 지역이다. 이 중에 돈돌날이가 가장 활발하게 불린 대표적인 지역은 신포시, 북청군 같은 함남의 동해안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북청군에서는 한식 다음날 각 마을의 부녀자들이 남대천 강가나 속후의 모래산에 모여 달래를 캐며 지내다가, 오후가 되면 춤을 추며 노는 풍습이 있었다. 이러한 놀이를 달래터놀이라고 하였고, 여기에서 추는 춤을 달래춤이라고 하였다. 이 놀이에서 부르는 노래는 돈돌날이를 비롯하여 이 강산 서산에, 도레미쏘, 삼천리노래, 거스러미노래, 라리라라따, 전갑성타령, 미나리꽃, 양류나청산, 시집 안 가겠다고, 리리흘리리, 좋구 좋소를 비롯하여 20여 가지이다. 이 중에 대표적인 노래가 ‘돈돌날이’이다. 이러한 연유로 돈돌날이는 차츰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이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은 돈돌날이가 이러한 여러 의미를 모두 내포하는 말로 굳어져 있다.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노래를 부르며 노는 놀이와 춤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를 전후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돈돌날이하는소리들이 창가의 영향으로 형성된 노래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돈돌날이하는소리들은 제4음과 제7음인 ‘파’와 ‘시’가 빠진 ‘도-레-미-솔-라’로 구성되는 일본식 요나누끼 음계로 구성되어 있고, 또 선율의 진행도 창가와 닮아 있어서 ‘미-솔-라-도-레’로 구성되는 이 지역 향토 민요의 고유 음계와 다른 면을 보인다. 따라서 돈돌날이의 놀이와 춤은 달래터놀이와 달래춤의 민속적 전통 위에 일본에서 들어온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여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돈돌날이의 춤판은 봄이 되어 한창 생기가 감도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부녀자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으면서 시작된다.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가 흥이 오르면, 둥그렇게 둘러앉은 가운데로 뛰어들어 춤을 추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러면 다시 이들의 춤에 흥이 올라 여러 사람들이 잇달아 춤판에 끼어들어 그 수가 늘어나 판이 커진다. 그리고 이렇게 하여 한껏 분위기가 고조되면 자연스레 춤을 선도하는 사람이 생겨나 그에 의해 때로는 둥그렇게, 때로는 여러 모양으로 대열을 이루면서 춤판은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된다. 이러한 분위기에 맞도록 노래들 또한 모두 경쾌한 리듬으로 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이 노래들을 되도록 힘차게 소리를 내지르며 부르는 경향이 있다. 노래가 춤판의 흥겨움을 유발하고, 또 그러한 흥겨움에 호응하도록 구성되어 있고, 동시에 그러한 분위기가 나도록 다소 격앙되게 노래하는 것이다. 돈돌날이의 춤판은 돈돌날이를 부르면서 시작된다. 돈돌날이는 후렴이 있는 노래지만, 제창으로 부르며, 돈돌날이라는 말은 사설과 후렴에 모두 들어 있으면서 자주 반복된다. ‘돈돌날이’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모래 청산에 돈돌날이요 모래 청산에 돈돌날이요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 시내 강변에 돈돌날이요 시내 강변에 돈돌날이요(후렴)돈돌날이 돈돌날이 돈돌날이요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리라 리라리 돈돌날이요(한국구연민요: 연구편) 돈돌날이는 돈돌라리로 표기되기도 하는데, 여기서 돈돌은 돌고 돈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돌고 돈다는 것은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로서 일제가 물러가고, 식민지가 된 조국도 해방되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는 뜻을 내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밖에 돈돌을 동틀로 이해하여 어둠이 가고 새로운 날이 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느 경우든 돈돌날이의 해석에 함경남도 민중들의 항일의식이 개재되어 있음은 분명하다. 돈돌날이판에서 돈돌날이에 이어서 부르는 노래는 20여곡에 이를 만큼 다양한 것이지만, 그것들의 내용과 성격은 항일과 시대 의식, 여성적 정서와 관심, 놀이적 정서와 흥취를 표현한 것으로 구분된다. 다음은 이 중에 항일과 시대 의식을 지닌 노래에 해당하는 노래이다. ‘이 강산 서산에’이강산 서산에 해가 떨어진다얼씨구나 잘한다 재미가 쓰러진다얼씨구나 잘한다 재미가 쓰러진다 일출 동산에 해가 솟아온다 얼씨구나 잘한다 새날이 밝아온다 얼씨구나 잘한다 새날이 밝아온다(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서산에 해가 떨어진다”는 것은 해를 상징으로 하는 일본이 패망한다는 뜻이며, 또 “일출 동산에 해가 솟아온다”는 것은 조국이 해방을 맞이한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얼씨구나 잘한다”며 노래할 수 있다. 이처럼 돈돌날이하는소리에 항일 의식 또는 시대 의식이 드러나는 노래는 이 밖에도 후렴에 “빛나는 조선”을 반복하여 외치는 ‘삼천리노래’, 일본 경찰을 경계하는 ‘거스러미노래’, 징용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라리라라따’ 같은 것들이 있다. 돈돌날이는 여성들의 놀이이다. 뒤에는 남성들이 함께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하지만, 역시 춤판의 주류는 여성이다. 상황이 이러하므로 돈돌날이를 하면서 여성적 정서와 관심을 노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갑섬타령’양천전촌에 전갑섬이 오매한촌에 말이났소 나는싫소 나는싫소 갱피방아찧기가 나는싫소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양촌전촌에 전갑섬이 별안대이촌에 말이났소 나는싫소 나는싫소 밥임나르기 나는싫소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양촌전촌에 전갑섬이 해안전촌에 말이났소 나는좋아요 나는좋아 해안퉁소가 나는좋소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 에헤야(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전갑섬은 북청군 신북청면 신북청리에 있는 전씨 집성촌인 양천마을의 처녀이다. 전갑섬의 혼사 말이 이곳저곳에 났는데, 그의 반응은 이러하다. ‘속후면의 오매 한촌은 피농사를 많이 지어서 피방아를 많이 찧어야 하기 때문에 싫고, 신북청에 있는 별안대 이촌은 밭농사가 많아서 밥을 이어 날라야 하므로 싫다. 이에 반해 청해면의 해안전촌에는 퉁소를 잘 부는 총각이 있기에 그 곳으로 시집가고 싶다.’ 출가를 앞둔 처녀들의 심리와 정서가 잘 드러나 있는 노래이다. 이 밖에 다소 희롱하는 기분으로 총각을 노래한 ‘양류나청산’, 시집가는 날 처녀의 심리를 표현한 ‘시집 안 가겠다고’도 돈돌날이하는소리로서 여성적 정서와 관심을 그린 노래에 해당한다. 춤판이 어우러져 흥이 오르면, 노래도 그에 어울릴 수 있어야 한다. 돈돌날이하는소리에 놀이적 정서와 흥취를 담은 노래들이 편입되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좋구 좋소’좋구 좋소 에라 좋구나이십살 애들이 놀기 좋구나 십팔세 젊은시절이 놀기 좋구나 삼천리 강산에 새봄이 왔구나 아름다운 매화꽃이 곱게 피었네 라리라 이강산에 새봄이 왔구나(한국구연민요: 연구편) 젊음은 봄이며, 봄은 젊음이다. 노래에는 젊음과 봄을 만끽하는 발랄한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이처럼 돈돌날이하는소리로 놀이의 흥취를 돋구는 노래는 이 밖에도 미나리꽃을 들고 춤을 추자고 하는 ‘미나리꽃’, 주로 해학적 소재를 담아 노래하는 ‘리리흘리리’가 있다.

의의

돈돌날이하는소리처럼 민요에 창가의 요소가 끼어든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또한 돈돌날이하는소리처럼 조국애와 항일 의식이 분명하게 형상화되어 있는 노래가 여럿 존재하는 경우도 역시 매우 드물다. 여기에는 함경도가 역사적으로 민중적 저항이 강한 곳이며, 또한 일본에 의한 근대산업이 일찍부터 들어선 곳이고, 개화기 이래 신학문이 활발하게 교육된 곳이라는 역사와 사회적 환경이 배경으로 놓여 있다. 돈돌날이는 본래 달래터놀이로부터 시작되었기에, 기본적으로 봄을 맞이하는 여성의 축제라는 문화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달래터놀이의 춤판에서 부르던 전통 민요가 있었을 터인데, 창가의 영향을 받은 노래들이 끼어들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돈돌날이의 춤과 놀이는 전통 문화가 새로운 외국 문물의 영향을 받으며 쇠퇴되거나 변화되어가는 현상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도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북청지방 민요들의 특색 (문하연, 문화유산4, 조선과학원 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1957)민요따라 삼천리 (최창호, 평양출판사, 1995)한국구연민요-연구 편 (한국구연민요연구회, 집문당, 1997)창가에서 민요로-함경도 북청민요 ‘돈돌날이’의 형성에 관한 연구 (이용식, 한국민요학7, 한국민요학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