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의례(一生儀禮)

한자명

一生儀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시기마다 치르는 의례.

역사

일생의례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이미 사람의 탄생을 위한 기자祈子의례가 있었음이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의례가 행해지며, 출생 후 성장하여 혼례를 치르고 일정 기간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산 사람들이 상례를 치른다. 상례가 끝나면 그 사람은 죽은 조상이 되어 제사를 받는다. 이러한 혼례와 상례, 제례는 모두 한 사람의 일생에서 볼 수 있는 의례이다.

일생의례에 대한 내용은 고문헌에도 나타난다. 3세기에 중국의 사가史家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고구려의 혼인제도인 서옥壻屋, 그리고 장례에 대한 내용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혼인할 경우, 구두로 혼인을 약속하면 여자 집에서 큰 집 뒤쪽에 작은 집을 짓는데, 이것을 ‘서옥’이라고 한다. 사위가 저녁에 여자의 집 문밖까지 도착하면, 스스로 이름을 아뢰고 무릎을 꿇고 절한다. 그런 다음딸과의 동침을 간청한다. 이와 같은 행동을 두세 번 하면 여자의 부모가 비로소 허락하여, 사위가 작은 집으로 들어가 딸과 동침할 수 있게 한다. 여자 집에 기대어 재물을 축적하고, 낳은 아이가 장성하면 처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풍속은 음란하다. …… 남녀가 혼인하면 이미 장례를 위한 옷(수의壽衣)을 틈틈이 만들어 둔다. 이곳 사람들은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데 금은보화는 모두 장례를 위해 사용한다.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열 지어 심는다.”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위치했던 동옥저東沃沮에서는 초분草墳으로 추정되는 장례법을 다음과 같이 행했다. “큰 나무로 겉널을 만든다. 그 길이는 10여 장丈이나 되고, 한쪽을 열어 입구로 삼았다. 방금 죽은 사람은 임시로 매장하되 시체를 가릴 정도의 흙으로만 덮어놓았다가, 피부와 살이 전부 썩으면 뼈를 거두어 겉널 속에 안치한다. 한 가족의 뼈는 모두 같은 겉널에 넣고, 살아 있을 때의 모습처럼 나무를 깎아 형상을 만드는데, 죽은 사람의 수에 따라 형상의 수를 결정한다. 또 흙을 빚어 만든 세 발 달린 솥 속에 쌀을 넣고 새끼줄로 이어 겉널 입구 끝에 매달아 둔다.”

이 밖에도 한韓과 변진弁辰, 부여夫餘의 장례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부여와 고구려, 예濊에서 하늘에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에서는 사람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단편적인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통해 이미 일생의례에 포함되는 각종 의례가 고대부터 행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의 관찬 자료에는 왕족의 혼례와 상례, 그리고 제례와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 일생의례의 범주가 관혼상제에서 벗어나 출생의례, 회갑연 등 수연壽宴까지 넓어진 것은 사실상 현대사회에 이르러서이다. 그렇다고 하여 옛사람들이 관혼상제만을 고려하고, 출산의례 같은 다른 일생의례를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미 왕족의 태胎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만, 출생의례라는 용어를 개념화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내용

일생의례는 한 개인이 평생 거치는 의례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뿐 아니라 출산의례, 수연례도 포함된다. 곧 한 인간이 살면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겪는 의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일생의례를 ‘평생의례’ 혹은 ‘통과의례’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관혼상제라고 하였다. 관혼상제는 관례・혼례・상례・제례의 사례四禮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례家禮 또는 사례라 불리는 내용을 관혼상제라 하는데,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시기마다 치르는 의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일 가운데 어른이 될 때, 혼인할 때, 죽었을 때, 그리고 죽은 다음, 즉 죽은 조상을 대할 때의 의례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성장해 가면서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곧 그 밖의 개인이 겪는 일 가운데서 출생과 돌 , 회갑 같은 것보다 이 네 가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례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출생의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였다는 내용은 여러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관혼상제는 유교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구려와 동옥저 관련 기록에서 보았듯이 우리 식의 일생의례가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성리학과 함께 수입된 주자의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우리 관혼상제는 유교의례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식의 예법이 필요함에 따라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예서가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관혼상제의 사례四禮가 수록되어 있지만, 가례의 이론적 근거였던 효윤리孝倫理는 우리나라에서 숭조보근崇祖報根을 강조하는 면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위로는 조상제사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손을 보존하는 것을 효의 으뜸으로 삼게 되었다. 그 결과로 아들 얻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생긴 출산의례가 가례와 비슷한 비중으로 발달하였다.

전통적으로 관혼상제의 네 가지 예법은 한민족의 일생의례를 규정하는 규범이었지만, 오늘날 관혼상제라는 예법으로 한국인이 평생 겪는 의례를 담기에는 미흡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생의례는 시대가 요구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평생의례는 한 개인이 평생에 반드시 거치는 의례라는 점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결국 ‘일생’과 ‘평생’이라는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뜻이다. 통과의례라는 용어는 반 게넵(A. Van Gennep)이 쓴 통『과의례(Rites of Passage)』라는 책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반게넵의 『통과의례』에서도 사람의 일생의례를 담고 있는데, 우리 관혼상제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출생의례를 비롯하여 우리 관례와 대비될 수 있는 성인식, 그리고 혼례와 상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 제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생의례에서 다루지 않은 경계의례, 계절의례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통과의례는 인간 생활에서 주기성을 띤 것이든 임시성을 띤것이든 여러 가지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 의하여 생기는 생활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달한 의례를 일컫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일생의례와는 구별해야 한다. 즉 우리 일생의례를 통과의례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인의 일생의례』에서는 오늘날 일생의례의 범주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일생의례의 종류를 출산의례, 혼례, 수연례, 상장례, 제례의 다섯 종류로 나누고 의례마다 세부적으로 그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상류층의 의례도 있겠으나, 일반 서민의 민속으로서의 일생의례 관련 내용이 더욱 많은 양을 차지한다. 기존의 관혼상제와 비교할 때 출산의례와 수연례를 포함한 반면, 관례는 일찍이 사라졌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사실 관례는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행하던 제한적인 일생의례로서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쇠퇴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간혹 큰문중에서 장손의 관례를 치르거나 유림儒林이 주관하여 관례 행사를 하기도 한다. 아이를 갖는 일부터 아이를 낳고 산후까지의 과정을 담은 출산의례는 크게 기자의례祈子儀禮, 산전産前, 산후産後, 해산解産, 산후의례産後儀禮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소개했다. 그리고 육아 문제를 다룬 사례도 있다.

혼례는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혼인을 청하여 허락해주기를 바라는 절차인 의혼議婚을 시작으로 크게 납채納采・연길涓吉・납폐納幣・혼례식신행新行・현구고례見舅姑禮・재행再行・근친覲親으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설명했다. 그리고 끝으로 기타 항목을 두어 시집살이, 쌍둥이 혼인, 민며느리와 데릴사위혼, 사후혼死後婚, 재혼再婚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수연례壽宴禮는 회갑이 중심이 되었으며 회혼례回婚禮를 조사・보고한 사례도 있다.

상례는 상례와 장례를 구분하여 상장례라는 항목으로 하고, 크게 초종初終, 염습殮襲, 성복成服과 발인發靷, 치장治葬, 우제虞祭와 탈상脫喪으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설명했다. 그리고 기타 항목을 두어 초분草墳, 이장移葬, 화장火葬, 상엿집, 객사자와 미혼자의 죽음, 어린아이의 죽음, 전염병에 의한 죽음, 쌍둥이의 죽음, 임산부의 죽음, 상례 관련 계契 등 죽음과 관련된 민속을 수록했다. 제례는 차례와 기제사忌祭祀, 묘제墓祭 등 세 종류의 제례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묘제는 시제時祭를 뜻한다. 그리고 기타 항목으로 임자 없는 조상에 대한 공동제사를 서술했다.

이상의 분류가 일생의례를 설명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이 내용을 통해 예서에 담긴 내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며 의례의 관행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일생의례라면 자칫 전통적인 관혼상제가 중심이 되어 실제 관행과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의례마다 예서에서 볼 수 없는 민속을 다양하게 수록하여 현장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징 및 의의

한국의 일생의례에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녹아있다. 출산의례는 예서에는 없지만, 관행으로 다양한 내용이 나타난다. 혼례와 상례, 제례는 예서를 근거로 한 관혼상제와 우리나라에서 펴낸 『사례편람』등을 기본으로, 실생활의 관행을 예법으로 많이 수용하면서 정착하였다. 일생의례 가운데 혼례의 변화가 가장 크고 상례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편이다. 그리고 제례는 종류가 축소되었지만, 그 내용은 지속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오늘날 전통적인 출산의례는 퇴색하여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병원 출산에 적절한 새로운 민속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양태는 달라지지만, 일생의례는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생의례는 과거 한국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좌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관혼상제(이민수 역, 을유문화사, 1981), 국역 사례편람(우봉이씨대종회, 1992), 사람의 한 평생(정종수, 학고재, 2008), 삼국지(진수, 김원중역, 신원문화사, 1994), 조선전(이민수 역, 탐구당, 1984), 통과의례(A. Van. Gennep, 서영대 역, 인하대학교출판부, 1986),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집문당, 1995), 한국인의 일생의례(국립문화재연구소, 2009~2011),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한국풍속지(양재연 외, 을유문화사, 1971).

일생의례

일생의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시기마다 치르는 의례.

역사

일생의례는 인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단군신화에 이미 사람의 탄생을 위한 기자祈子의례가 있었음이 나타난다. 이처럼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의례가 행해지며, 출생 후 성장하여 혼례를 치르고 일정 기간 살다가 세상을 떠나면 산 사람들이 상례를 치른다. 상례가 끝나면 그 사람은 죽은 조상이 되어 제사를 받는다. 이러한 혼례와 상례, 제례는 모두 한 사람의 일생에서 볼 수 있는 의례이다. 일생의례에 대한 내용은 고문헌에도 나타난다. 3세기에 중국의 사가史家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고구려의 혼인제도인 서옥壻屋, 그리고 장례에 대한 내용이 아래와 같이 기록되어있다. “혼인할 경우, 구두로 혼인을 약속하면 여자 집에서 큰 집 뒤쪽에 작은 집을 짓는데, 이것을 ‘서옥’이라고 한다. 사위가 저녁에 여자의 집 문밖까지 도착하면, 스스로 이름을 아뢰고 무릎을 꿇고 절한다. 그런 다음딸과의 동침을 간청한다. 이와 같은 행동을 두세 번 하면 여자의 부모가 비로소 허락하여, 사위가 작은 집으로 들어가 딸과 동침할 수 있게 한다. 여자 집에 기대어 재물을 축적하고, 낳은 아이가 장성하면 처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 풍속은 음란하다. …… 남녀가 혼인하면 이미 장례를 위한 옷(수의壽衣)을 틈틈이 만들어 둔다. 이곳 사람들은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는데 금은보화는 모두 장례를 위해 사용한다.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소나무와 잣나무를 열 지어 심는다.” 고구려 개마대산蓋馬大山의 동쪽에 위치했던 동옥저東沃沮에서는 초분草墳으로 추정되는 장례법을 다음과 같이 행했다. “큰 나무로 겉널을 만든다. 그 길이는 10여 장丈이나 되고, 한쪽을 열어 입구로 삼았다. 방금 죽은 사람은 임시로 매장하되 시체를 가릴 정도의 흙으로만 덮어놓았다가, 피부와 살이 전부 썩으면 뼈를 거두어 겉널 속에 안치한다. 한 가족의 뼈는 모두 같은 겉널에 넣고, 살아 있을 때의 모습처럼 나무를 깎아 형상을 만드는데, 죽은 사람의 수에 따라 형상의 수를 결정한다. 또 흙을 빚어 만든 세 발 달린 솥 속에 쌀을 넣고 새끼줄로 이어 겉널 입구 끝에 매달아 둔다.” 이 밖에도 한韓과 변진弁辰, 부여夫餘의 장례법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부여와 고구려, 예濊에서 하늘에 제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한에서는 사람에 대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단편적인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통해 이미 일생의례에 포함되는 각종 의례가 고대부터 행해졌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등의 관찬 자료에는 왕족의 혼례와 상례, 그리고 제례와 관련된 내용이 풍부하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 일생의례의 범주가 관혼상제에서 벗어나 출생의례, 회갑연 등 수연壽宴까지 넓어진 것은 사실상 현대사회에 이르러서이다. 그렇다고 하여 옛사람들이 관혼상제만을 고려하고, 출산의례 같은 다른 일생의례를 간과한 것은 아니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미 왕족의 태胎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다만, 출생의례라는 용어를 개념화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내용

일생의례는 한 개인이 평생 거치는 의례를 말하는데 여기에는 관혼상제冠婚喪祭뿐 아니라 출산의례, 수연례도 포함된다. 곧 한 인간이 살면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겪는 의례를 포함하는 것이다. 일생의례를 ‘평생의례’ 혹은 ‘통과의례’라고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관혼상제라고 하였다. 관혼상제는 관례・혼례・상례・제례의 사례四禮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가례家禮 또는 사례라 불리는 내용을 관혼상제라 하는데, 한 개인이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시기마다 치르는 의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일 가운데 어른이 될 때, 혼인할 때, 죽었을 때, 그리고 죽은 다음, 즉 죽은 조상을 대할 때의 의례 내용을 설명한 것이다. 이는 한 개인이 성장해 가면서 이러한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라 하겠다. 곧 그 밖의 개인이 겪는 일 가운데서 출생과 돌 , 회갑 같은 것보다 이 네 가지에 더욱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사례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출생의 문제를 대단히 중시하였다는 내용은 여러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 관혼상제는 유교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구려와 동옥저 관련 기록에서 보았듯이 우리 식의 일생의례가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성리학과 함께 수입된 주자의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우리 관혼상제는 유교의례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 식의 예법이 필요함에 따라 『사례편람四禮便覽』 등 예서가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관혼상제의 사례四禮가 수록되어 있지만, 가례의 이론적 근거였던 효윤리孝倫理는 우리나라에서 숭조보근崇祖報根을 강조하는 면으로 확대되었다. 따라서 위로는 조상제사를 받들고 아래로는 자손을 보존하는 것을 효의 으뜸으로 삼게 되었다. 그 결과로 아들 얻기를 바라는 염원에서 생긴 출산의례가 가례와 비슷한 비중으로 발달하였다. 전통적으로 관혼상제의 네 가지 예법은 한민족의 일생의례를 규정하는 규범이었지만, 오늘날 관혼상제라는 예법으로 한국인이 평생 겪는 의례를 담기에는 미흡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생의례는 시대가 요구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평생의례는 한 개인이 평생에 반드시 거치는 의례라는 점에서 사용하는 용어인데, 결국 ‘일생’과 ‘평생’이라는 용어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뜻이다. 통과의례라는 용어는 반 게넵(A. Van Gennep)이 쓴 통『과의례(Rites of Passage)』라는 책의 명칭에서 따온 것이다. 반게넵의 『통과의례』에서도 사람의 일생의례를 담고 있는데, 우리 관혼상제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출생의례를 비롯하여 우리 관례와 대비될 수 있는 성인식, 그리고 혼례와 상례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기독교 문화권에 제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간과되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우리가 일생의례에서 다루지 않은 경계의례, 계절의례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통과의례는 인간 생활에서 주기성을 띤 것이든 임시성을 띤것이든 여러 가지로 일어나는 어떤 사건에 의하여 생기는 생활의 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발달한 의례를 일컫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따라서 우리 일생의례와는 구별해야 한다. 즉 우리 일생의례를 통과의례와 같은 의미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인의 일생의례』에서는 오늘날 일생의례의 범주를 다음과 같이 설정했다. 일생의례의 종류를 출산의례, 혼례, 수연례, 상장례, 제례의 다섯 종류로 나누고 의례마다 세부적으로 그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상류층의 의례도 있겠으나, 일반 서민의 민속으로서의 일생의례 관련 내용이 더욱 많은 양을 차지한다. 기존의 관혼상제와 비교할 때 출산의례와 수연례를 포함한 반면, 관례는 일찍이 사라졌기 때문에 포함하지 않았다. 사실 관례는 왕실이나 상류층에서 행하던 제한적인 일생의례로서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쇠퇴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간혹 큰문중에서 장손의 관례를 치르거나 유림儒林이 주관하여 관례 행사를 하기도 한다. 아이를 갖는 일부터 아이를 낳고 산후까지의 과정을 담은 출산의례는 크게 기자의례祈子儀禮, 산전産前, 산후産後, 해산解産, 산후의례産後儀禮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소개했다. 그리고 육아 문제를 다룬 사례도 있다. 혼례는 전통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에게 혼인을 청하여 허락해주기를 바라는 절차인 의혼議婚을 시작으로 크게 납채納采・연길涓吉・납폐納幣・혼례식・신행新行・현구고례見舅姑禮・재행再行・근친覲親으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설명했다. 그리고 끝으로 기타 항목을 두어 시집살이, 쌍둥이 혼인, 민며느리와 데릴사위혼, 사후혼死後婚, 재혼再婚 등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수연례壽宴禮는 회갑이 중심이 되었으며 회혼례回婚禮를 조사・보고한 사례도 있다. 상례는 상례와 장례를 구분하여 상장례라는 항목으로 하고, 크게 초종初終, 염습殮襲, 성복成服과 발인發靷, 치장治葬, 우제虞祭와 탈상脫喪으로 나누어 세분화한 항목을 설명했다. 그리고 기타 항목을 두어 초분草墳, 이장移葬, 화장火葬, 상엿집, 객사자와 미혼자의 죽음, 어린아이의 죽음, 전염병에 의한 죽음, 쌍둥이의 죽음, 임산부의 죽음, 상례 관련 계契 등 죽음과 관련된 민속을 수록했다. 제례는 차례와 기제사忌祭祀, 묘제墓祭 등 세 종류의 제례를 소개했는데, 여기서 묘제는 시제時祭를 뜻한다. 그리고 기타 항목으로 임자 없는 조상에 대한 공동제사를 서술했다. 이상의 분류가 일생의례를 설명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지만, 이 내용을 통해 예서에 담긴 내용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으며 의례의 관행을 파악해 볼 수 있다. 일생의례라면 자칫 전통적인 관혼상제가 중심이 되어 실제 관행과 괴리감을 느낄 수도 있는데, 의례마다 예서에서 볼 수 없는 민속을 다양하게 수록하여 현장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징 및 의의

한국의 일생의례에는 한국인의 삶의 방식이 녹아있다. 출산의례는 예서에는 없지만, 관행으로 다양한 내용이 나타난다. 혼례와 상례, 제례는 예서를 근거로 한 관혼상제와 우리나라에서 펴낸 『사례편람』등을 기본으로, 실생활의 관행을 예법으로 많이 수용하면서 정착하였다. 일생의례 가운데 혼례의 변화가 가장 크고 상례는 상대적으로 변화가 적은 편이다. 그리고 제례는 종류가 축소되었지만, 그 내용은 지속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오늘날 전통적인 출산의례는 퇴색하여 지극히 제한적이지만, 병원 출산에 적절한 새로운 민속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 양태는 달라지지만, 일생의례는 지속과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일생의례는 과거 한국인의 삶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 그리고 미래의 좌표가 될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관혼상제(이민수 역, 을유문화사, 1981), 국역 사례편람(우봉이씨대종회, 1992), 사람의 한 평생(정종수, 학고재, 2008), 삼국지(진수, 김원중역, 신원문화사, 1994), 조선전(이민수 역, 탐구당, 1984), 통과의례(A. Van. Gennep, 서영대 역, 인하대학교출판부, 1986),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집문당, 1995), 한국인의 일생의례(국립문화재연구소, 2009~2011),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한국풍속지(양재연 외, 을유문화사, 1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