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農樂)

한자명

農樂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이용식(李庸植)

정의

농민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는 제반 문화 현상. 농악(農樂)을 가리켜 풍물굿, 풍장굿, 두레굿, 매구라고 부르기도 하고, 단순히 ‘굿’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연행 주체나 목적에 따라 마을굿, 당산굿, 걸립굿, 판굿, 마당밟기(뜰밟기)라고도 하며, 연행 시기에 따라 대보름굿, 백중굿,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농악을 굿이라고 부르고 세시놀이와 관련하는 것은 농악이 단순한 연희 혹은 놀이가 아니라 각종 세시명절에 연행되어 벽사진경과 감사제라는 민간신앙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농악은 농사일의 고된 노동을 공동체적 신명으로 푸는 중요한 기능을 지닌다. 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평택농악(平澤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나호), 이리농악(裡里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 강릉농악(江陵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호),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峯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등 다섯 지방의 농악이 지정되었다.

유래

농악의 기원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고대국가의 풍습을 기록한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보이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같은 제천의식에서 농악의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악가무(樂歌舞)를 수반하는 제천의식이 현재의 농악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형태의 농악이 형성된 것은 아마도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된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규모의 집단 노동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풍물패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각종 의식이나 놀이에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농악이 발전했을 것이다.

농악의 기원에 관해 군대기원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농악에는 실제로 군대와 관련된 용어와 연행이 많다. 농악패는 여러 모양의 진(陣)을 짜고, 농악패의 기수가 드는 깃발도 군대의 영기(令旗)와 각종 깃발에서 비롯된 것이고, 농악패가 쓰는 전립(戰笠, 상모 혹은 벙거지)은 군대의 유풍이다. 또한 농악패의 악기도 군대와 관련된 것이다. 징과 북은 군대의 전진과 후퇴를 알리는 악기이고, 나발은 멀리까지 소리를 내는 군대의 신호용 악기이며, 태평소도 예전에는 군영에서 연주하던 악기이다. 이렇게 농악패에 남아 있는 군대 문화의 흔적은 농악이 조선 후기 군대의 음악 문화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용 및 특징

{농악(農樂)의 특징} 농악패는 악기를 연주하는 치배(잽이)와 여러 종류의 분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는 잡색(뒷치배) 그리고 각종 깃발을 드는 기수(旗手)로 구성된다. 치배는 쇠(꽹과리, 깽매기, 꽹쇠), 징, 장구, 북, 소고의 순서로 편성된다. 마을에 따라 법고(벅구), 태평소(호적, 날라리, 새납), 나발, 영각(令角) 등을 편성하는 곳도 많다. 상쇠는 농악패의 행렬과 음악을 주도하는 역할 외에도 집안의 가신(家神)을 위한 고사소리나 덕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잡색을 주도하는 대포수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쇠 대신에 고사소리나 덕담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농악패의 깃발은 농기(農旗)와 영기가 기본이고, 용(龍)을 그려 넣은 용기(龍旗)를 편성하는 곳도 있다.

농악은 전승 과정에서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 현재 농악은 지역별로 호남좌도농악, 호남우도농악, 영남농악, 경기농악(웃다리농악), 영동농악의 5개 권역으로 구분하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호남좌도농악에는 임실필봉농악이 지정되어 있고, 호남우도농악에는 이리농악이 지정되어 있으며, 영남농악에는 진주삼천포농악이 그리고 경기농악에는 평택농악이 지정되어 있다. 또 영동농악에는 강릉농악이 지정되어 있다.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峯農樂)} 호남좌도농악은 전라도 동북부 지역인 임실, 진안, 남원, 곡성 등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은 가락이 힘차고 호남우도농악과 영남농악의 사이에 위치해서 두 농악의 중간적 성격을 띤다. 임실필봉농악은 걸출한 상쇠인 양순용이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는 걸궁패의 상쇠로 활동하다가 필봉농악단을 구성하여 전주대사습놀이(1979)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84)에 입상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임실필봉농악의 편성은 대개 쇠 4, 징 3, 장구 7~8, 북 1~2, 소고 8~12가 기본이다. 여기에 날라리와 나발 각 1명, 기수 그리고 잡색(대포수, 양반, 조리중, 각시, 화동, 창부, 농구, 무동) 등으로 구성된다. 임실필봉농악은 편성이 큰데, 이는 다수가 참여하여 공동체의 단결을 도모하려는 마을농악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 복색을 보면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조끼를 입고 삼색띠(가사)를 두르고, 머리에는 고깔을 쓰는 것이 기본이다. 쇠잽이들은 색동(까치동) 반소매 동리가 달린 쇠옷을 입고, 등에 삼색드림과 허리에 청색드림을 두르고, 머리에는 흰 두루미털로 만든 부포를 단 전립을 쓴다. 소고는 머리에 고깔을 쓰는 고깔소고와 전립을 쓰고 채상놀이를 하는 채상소고로 구분된다.

임실필봉농악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호남좌도농악에서는 모든 치배들이 전립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전문 연희 집단인 걸립패의 영향으로 채상놀이를 하기 위해서인데, 채상놀이는 고도로 숙련된 치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호남좌도농악의 치배들이 화려한 채상놀이를 하는 것을 두고 흔히 머리 위쪽을 주로 움직인다는 의미로 ‘윗놀음’이 발달했다고 한다.

임실필봉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 장단으로 된 갠지갠, 된삼채, 질굿, 두마치, 이채, 삼채, 사채, 육채, 칠채, 휘모리 등이 있고, 혼소박 장단인 오채질굿, 3소박 6박 장단 장단인 일체 등이 있다. 3소박 4박자 가락 중에는 2+2+2의 2소박으로 치는 가락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리농악(裡里農樂)} 호남우도농악은 전라도의 서남부 지역인 익산(이리), 김제, 정읍, 부안, 고창, 영광, 광주에서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 농악은 가락이 화려하고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호남우도농악은 1920년대에 정읍지방의 민중 종교인 보천교가 농악을 종교 음악으로 채택하면서 정읍을 중심으로 뛰어난 치배들이 모여들면서 크게 성행했다. 정읍농악이 처음 입장료를 받고 공연하는 포장걸립을 했고, 1950년대에 여성농악단이 크게 활약한 곳도 호남 우도 지역이다. 이리농악의 역사는 예능보유자인 김형순(1933년생)이 부안에서 이리로 이주하여 농악단을 결성하고 주변의 이름난 치배들이 모여들어 전국농악경연대회(1983)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85)에서 입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리농악의 편성은 꽹쇠 4, 징 2, 장구 5~6, 북 2, 소고 12~16(고깔소고와 채상소고)이 기본이고, 여기에 나발과 새납 각 1명, 기수 그리고 잡색(대포수, 조리중, 창부, 양반, 각시, 무동) 등으로 구성된다. 치배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가 기본이다. 이 위에 꽹쇠와 징수는 색동 반소매가 달린 쇠옷을 입는다. 상쇠는 등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거울 모양의 장식을 두 개 단다. 나머지 치배는 소창옷을 입고 삼색띠를 맨다. 꽹쇠와 영기수는 머리에 전립을 쓰고 나머지 치배는 고깔을 쓴다. 소고잽이 중에는 채상소고를 쓰고 상모놀이를 하는 잽이도 있다. 치배들이 대부분 고깔을 쓰는 것은 여러 모양의 진(陳)을 짜면서 노는 ‘아랫놀음’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리농악에서는 오방진, 쌍방울진 등의 여러 진놀이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발달했다.

이리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인 인사굿, 양산도, 긴삼채, 짧은삼채, 매도지, 달어치기 외에 2소박 4박자인 이채, 오방진이 있고, 혼소박 4박자인 오채질굿, 우질굿, 호호굿이 있다. 이렇게 이리농악은 가락의 종류도 많고 치배들이 변주가락을 화려하고 섬세하게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 영남농악은 경상도 일대에 전승되는 농악이다. 진주와 삼천포(사천시)는 서로 인접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오랜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당시 진주농악의 황일백과 삼천포농악의 문백윤이라는 두 걸출한 상쇠가 전한 가락을 ‘농악 12차’라는 가락으로 합친 것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은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군악(軍樂)적인 요소가 많고 남성적인 농악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의 편성은 쇠 3~4, 징 2~3, 장구 3~5, 북 2~5, 벅구 8 혹은 12명이 기본이다. 여기에 나발과 호적, 기수, 그리고 잡색 등이 편성된다. 치배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기 기본이다. 상쇠는 등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쇠를 두 개 단다. 쇠잽이와 징잽이, 그리고 북잽이는 부포가 달린 상모를 쓰고, 장구잽이와 벅구잽이는 상피지가 달린 채상모를 쓴다. 이렇게 진주삼천포농악의 치배들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윗놀음을 많이 하는데, 이는 예전의 걸립패의 흔적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의 가락은 다른 지방의 농악 가락에 비해 매우 빠르게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린 음악에서만 연주할 수 있는 혼합박자의 가락이 드물고 대부분의 가락이 3소박 4박자로 되어 있다. 가락의 종류로는 얼림굿, 인사굿, 오방진(진풀이), 덧배기, 길군악, 연풍대, 영산다드래기(자부랑깽), 다드래기, 등맞이굿, 호호굿, 굿거리 등이 있다.

{평택농악(平澤農樂)} 경기농악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고도로 숙련된 기예를 연행하던 유랑 예인 집단인 걸립패 혹은 사당패의 영향이 크다. 따라서 경기농악은 한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마을농악이라기보다는 그 마을에 거주하는 명인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인 단체(행중)의 성격이 강하다. 평택농악도 젊어서 걸립을 하던 최은창이라는 명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평택농악은 전문 연희패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치배의 편성도 단출해서 보통 쇠 2, 징 1, 장구 3, 북 2의 8치배가 기본이다. 여기에 법고 8명과 무동 8명, 호적과 양반 각 1명, 기수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법고와 무동은 상황에 따라 훨씬 적은 수가 편성되기도 한다. 평택농악에 무동이 많은 것은 삼무동 혹은 오무동(‘곡마단’이라고 함) 같은 무동놀이를 위해서이다. 평택농악에서는 12발 상모놀이를 하기도 한다.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가사)를 두르고, 머리에는 나비상을 단 전립을 쓴다. 법고잽이는 전립을 쓰고 채상놀이를 한다.

평택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으로 된 것이 많은데 쩍쩍이, 삼채, 좌우치기, 양산더드래기, 연풍대 등이 있다. 이 외에도 2소박 4박으로 된 자진가락(이채)과 더드래기도 있고, 혼소박 가락의 마당일채와 길군악 칠채 등이 있다.

(江陵農樂)} 영동농악은 다른 어느 지방의 농악에 비해 향토성이 깊이 배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강릉농악은 전형적인 마을농악의 전통을 간직한 것으로서, 정초의 지신밟기나 정월대보름다리밟기, 2월의 좀상놀이, 3월의 화전(花煎)놀이 같은 명절의식과 관련되어 마을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위해 농악을 연행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강릉농악은 치배의 복색도 다른 지역에 비해 독특하며, 가락이 빠르고 힘찬 특징이 있다.

강릉농악은 강원도 강릉 홍제동 농악의 상쇠였던 박기하와 사천면 하평농악을 이끌던 김용현이 연합하여 1985년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입상하고 같은 해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강릉농악은 강릉시의 4개 농악대(두산동, 원호평동, 저동, 사천답교)가 연합한 것으로서, 강릉농악의 판굿은 어느 한 지역의 판굿이 아니라 강릉 지역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여 연출한 것이다.

강릉농악의 치배는 쇠 3, 징 2, 장구 2, 북 3, 소고 8, 법고 8, 무동 8, 농기수 1, 호적 1명 등으로 구성된다. 예전에는 여러 잡색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동 이외에는 편성되지 않는다. 강릉농악에서는 소고와 법고를 구별하는데, 소고는 법고에 비해 크기가 크고 자루를 달아서 악기를 치면 “철철” 하는 소리가 난다.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른다. 머리에는 짧고 두꺼운 방망이 상모를 매단 벙거지를 써서 상모놀이는 하지 않는다. 쇠잽이는 상모지를 매단 벙거지를 쓰며, 상쇠(상공)는 남색 등지기를 입는다. 소고잽이는 다른 치배와 같은 복색이지만 법고잽이는 긴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쓰고 채상놀이를 한다. 기수와 무동 그리고 호적수는 모두 고깔을 쓴다.

강릉농악의 가락은 일채(한마치),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신식 행진가락), 굿거리, 구식 길놀이(12채), 구식 행진가락(천부당만부당), 칠채(멍석말이)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2소박 4박 혹은 3소박 4박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三國志, 農樂 (鄭昞浩, 悅話堂, 1986), 호남우도 풍물굿 (김익두 외, 전북대학교, 1994), 호남좌도 풍물굿 (김익두 외, 전북대학교, 1994), 풍물굿 연구 (김원호, 학민사, 1999)

음원

농악

농악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이용식(李庸植)

정의

농민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풍농을 기원하고 액운을 막기 위해 행하는 제반 문화 현상. 농악(農樂)을 가리켜 풍물굿, 풍장굿, 두레굿, 매구라고 부르기도 하고, 단순히 ‘굿’이라고 하기도 한다. 또 연행 주체나 목적에 따라 마을굿, 당산굿, 걸립굿, 판굿, 마당밟기(뜰밟기)라고도 하며, 연행 시기에 따라 대보름굿, 백중굿, 호미씻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농악을 굿이라고 부르고 세시놀이와 관련하는 것은 농악이 단순한 연희 혹은 놀이가 아니라 각종 세시명절에 연행되어 벽사진경과 감사제라는 민간신앙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 것임을 보여준다. 또한 농악은 농사일의 고된 노동을 공동체적 신명으로 푸는 중요한 기능을 지닌다. 농악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가호), 평택농악(平澤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나호), 이리농악(裡里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다호), 강릉농악(江陵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라호),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峯農樂, 중요무형문화재 제11-마호) 등 다섯 지방의 농악이 지정되었다.

유래

농악의 기원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다. 고대국가의 풍습을 기록한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보이는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같은 제천의식에서 농악의 기원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악가무(樂歌舞)를 수반하는 제천의식이 현재의 농악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형태의 농악이 형성된 것은 아마도 조선 후기에 이앙법이 널리 보급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증대된 시기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대규모의 집단 노동이 이루어지면서 노동의 신명을 돋우기 위한 풍물패의 음악이 시작되었고, 이것이 노동 현장뿐만 아니라 각종 의식이나 놀이에 두루 쓰이기 시작하면서 농악이 발전했을 것이다. 농악의 기원에 관해 군대기원설을 제기하기도 한다. 농악에는 실제로 군대와 관련된 용어와 연행이 많다. 농악패는 여러 모양의 진(陣)을 짜고, 농악패의 기수가 드는 깃발도 군대의 영기(令旗)와 각종 깃발에서 비롯된 것이고, 농악패가 쓰는 전립(戰笠, 상모 혹은 벙거지)은 군대의 유풍이다. 또한 농악패의 악기도 군대와 관련된 것이다. 징과 북은 군대의 전진과 후퇴를 알리는 악기이고, 나발은 멀리까지 소리를 내는 군대의 신호용 악기이며, 태평소도 예전에는 군영에서 연주하던 악기이다. 이렇게 농악패에 남아 있는 군대 문화의 흔적은 농악이 조선 후기 군대의 음악 문화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용 및 특징

{농악(農樂)의 특징} 농악패는 악기를 연주하는 치배(잽이)와 여러 종류의 분장을 하고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우는 잡색(뒷치배) 그리고 각종 깃발을 드는 기수(旗手)로 구성된다. 치배는 쇠(꽹과리, 깽매기, 꽹쇠), 징, 장구, 북, 소고의 순서로 편성된다. 마을에 따라 법고(벅구), 태평소(호적, 날라리, 새납), 나발, 영각(令角) 등을 편성하는 곳도 많다. 상쇠는 농악패의 행렬과 음악을 주도하는 역할 외에도 집안의 가신(家神)을 위한 고사소리나 덕담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잡색을 주도하는 대포수는 경우에 따라서는 상쇠 대신에 고사소리나 덕담도 해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다. 농악패의 깃발은 농기(農旗)와 영기가 기본이고, 용(龍)을 그려 넣은 용기(龍旗)를 편성하는 곳도 있다. 농악은 전승 과정에서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 현재 농악은 지역별로 호남좌도농악, 호남우도농악, 영남농악, 경기농악(웃다리농악), 영동농악의 5개 권역으로 구분하며, 각 지역을 대표하는 농악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호남좌도농악에는 임실필봉농악이 지정되어 있고, 호남우도농악에는 이리농악이 지정되어 있으며, 영남농악에는 진주삼천포농악이 그리고 경기농악에는 평택농악이 지정되어 있다. 또 영동농악에는 강릉농악이 지정되어 있다.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峯農樂)} 호남좌도농악은 전라도 동북부 지역인 임실, 진안, 남원, 곡성 등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은 가락이 힘차고 호남우도농악과 영남농악의 사이에 위치해서 두 농악의 중간적 성격을 띤다. 임실필봉농악은 걸출한 상쇠인 양순용이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는 걸궁패의 상쇠로 활동하다가 필봉농악단을 구성하여 전주대사습놀이(1979)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84)에 입상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임실필봉농악의 편성은 대개 쇠 4, 징 3, 장구 7~8, 북 1~2, 소고 8~12가 기본이다. 여기에 날라리와 나발 각 1명, 기수 그리고 잡색(대포수, 양반, 조리중, 각시, 화동, 창부, 농구, 무동) 등으로 구성된다. 임실필봉농악은 편성이 큰데, 이는 다수가 참여하여 공동체의 단결을 도모하려는 마을농악의 전통을 잇는 것이다. 복색을 보면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남색 조끼를 입고 삼색띠(가사)를 두르고, 머리에는 고깔을 쓰는 것이 기본이다. 쇠잽이들은 색동(까치동) 반소매 동리가 달린 쇠옷을 입고, 등에 삼색드림과 허리에 청색드림을 두르고, 머리에는 흰 두루미털로 만든 부포를 단 전립을 쓴다. 소고는 머리에 고깔을 쓰는 고깔소고와 전립을 쓰고 채상놀이를 하는 채상소고로 구분된다. 임실필봉농악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호남좌도농악에서는 모든 치배들이 전립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전문 연희 집단인 걸립패의 영향으로 채상놀이를 하기 위해서인데, 채상놀이는 고도로 숙련된 치배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호남좌도농악의 치배들이 화려한 채상놀이를 하는 것을 두고 흔히 머리 위쪽을 주로 움직인다는 의미로 ‘윗놀음’이 발달했다고 한다. 임실필봉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 장단으로 된 갠지갠, 된삼채, 질굿, 두마치, 이채, 삼채, 사채, 육채, 칠채, 휘모리 등이 있고, 혼소박 장단인 오채질굿, 3소박 6박 장단 장단인 일체 등이 있다. 3소박 4박자 가락 중에는 2+2+2의 2소박으로 치는 가락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이리농악(裡里農樂)} 호남우도농악은 전라도의 서남부 지역인 익산(이리), 김제, 정읍, 부안, 고창, 영광, 광주에서 전승되는 농악이다. 이 지역 농악은 가락이 화려하고 섬세한 것이 특징이다. 호남우도농악은 1920년대에 정읍지방의 민중 종교인 보천교가 농악을 종교 음악으로 채택하면서 정읍을 중심으로 뛰어난 치배들이 모여들면서 크게 성행했다. 정읍농악이 처음 입장료를 받고 공연하는 포장걸립을 했고, 1950년대에 여성농악단이 크게 활약한 곳도 호남 우도 지역이다. 이리농악의 역사는 예능보유자인 김형순(1933년생)이 부안에서 이리로 이주하여 농악단을 결성하고 주변의 이름난 치배들이 모여들어 전국농악경연대회(1983)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1985)에서 입상하면서 유명해졌다. 이리농악의 편성은 꽹쇠 4, 징 2, 장구 5~6, 북 2, 소고 12~16(고깔소고와 채상소고)이 기본이고, 여기에 나발과 새납 각 1명, 기수 그리고 잡색(대포수, 조리중, 창부, 양반, 각시, 무동) 등으로 구성된다. 치배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가 기본이다. 이 위에 꽹쇠와 징수는 색동 반소매가 달린 쇠옷을 입는다. 상쇠는 등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거울 모양의 장식을 두 개 단다. 나머지 치배는 소창옷을 입고 삼색띠를 맨다. 꽹쇠와 영기수는 머리에 전립을 쓰고 나머지 치배는 고깔을 쓴다. 소고잽이 중에는 채상소고를 쓰고 상모놀이를 하는 잽이도 있다. 치배들이 대부분 고깔을 쓰는 것은 여러 모양의 진(陳)을 짜면서 노는 ‘아랫놀음’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이리농악에서는 오방진, 쌍방울진 등의 여러 진놀이가 다른 지역의 농악에 비해 발달했다. 이리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인 인사굿, 양산도, 긴삼채, 짧은삼채, 매도지, 달어치기 외에 2소박 4박자인 이채, 오방진이 있고, 혼소박 4박자인 오채질굿, 우질굿, 호호굿이 있다. 이렇게 이리농악은 가락의 종류도 많고 치배들이 변주가락을 화려하고 섬세하게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진주삼천포농악(晋州三千浦農樂)} 영남농악은 경상도 일대에 전승되는 농악이다. 진주와 삼천포(사천시)는 서로 인접하여 사회경제적으로 오랜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을 당시 진주농악의 황일백과 삼천포농악의 문백윤이라는 두 걸출한 상쇠가 전한 가락을 ‘농악 12차’라는 가락으로 합친 것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은 다른 지방의 농악에 비해 군악(軍樂)적인 요소가 많고 남성적인 농악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의 편성은 쇠 3~4, 징 2~3, 장구 3~5, 북 2~5, 벅구 8 혹은 12명이 기본이다. 여기에 나발과 호적, 기수, 그리고 잡색 등이 편성된다. 치배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기 기본이다. 상쇠는 등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쇠를 두 개 단다. 쇠잽이와 징잽이, 그리고 북잽이는 부포가 달린 상모를 쓰고, 장구잽이와 벅구잽이는 상피지가 달린 채상모를 쓴다. 이렇게 진주삼천포농악의 치배들은 전원이 전립을 쓰고 윗놀음을 많이 하는데, 이는 예전의 걸립패의 흔적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의 가락은 다른 지방의 농악 가락에 비해 매우 빠르게 몰아치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느린 음악에서만 연주할 수 있는 혼합박자의 가락이 드물고 대부분의 가락이 3소박 4박자로 되어 있다. 가락의 종류로는 얼림굿, 인사굿, 오방진(진풀이), 덧배기, 길군악, 연풍대, 영산다드래기(자부랑깽), 다드래기, 등맞이굿, 호호굿, 굿거리 등이 있다. {평택농악(平澤農樂)} 경기농악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고도로 숙련된 기예를 연행하던 유랑 예인 집단인 걸립패 혹은 사당패의 영향이 크다. 따라서 경기농악은 한 마을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마을농악이라기보다는 그 마을에 거주하는 명인을 중심으로 하는 개인적인 단체(행중)의 성격이 강하다. 평택농악도 젊어서 걸립을 하던 최은창이라는 명인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렇듯 평택농악은 전문 연희패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치배의 편성도 단출해서 보통 쇠 2, 징 1, 장구 3, 북 2의 8치배가 기본이다. 여기에 법고 8명과 무동 8명, 호적과 양반 각 1명, 기수 등으로 구성된다. 이 중 법고와 무동은 상황에 따라 훨씬 적은 수가 편성되기도 한다. 평택농악에 무동이 많은 것은 삼무동 혹은 오무동(‘곡마단’이라고 함) 같은 무동놀이를 위해서이다. 평택농악에서는 12발 상모놀이를 하기도 한다.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가사)를 두르고, 머리에는 나비상을 단 전립을 쓴다. 법고잽이는 전립을 쓰고 채상놀이를 한다. 평택농악의 가락은 3소박 4박으로 된 것이 많은데 쩍쩍이, 삼채, 좌우치기, 양산더드래기, 연풍대 등이 있다. 이 외에도 2소박 4박으로 된 자진가락(이채)과 더드래기도 있고, 혼소박 가락의 마당일채와 길군악 칠채 등이 있다. (江陵農樂)} 영동농악은 다른 어느 지방의 농악에 비해 향토성이 깊이 배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강릉농악은 전형적인 마을농악의 전통을 간직한 것으로서, 정초의 지신밟기나 정월대보름의 다리밟기, 2월의 좀상놀이, 3월의 화전(花煎)놀이 같은 명절의식과 관련되어 마을 공동체의 대동단결을 위해 농악을 연행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강릉농악은 치배의 복색도 다른 지역에 비해 독특하며, 가락이 빠르고 힘찬 특징이 있다. 강릉농악은 강원도 강릉 홍제동 농악의 상쇠였던 박기하와 사천면 하평농악을 이끌던 김용현이 연합하여 1985년에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입상하고 같은 해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현재 강릉농악은 강릉시의 4개 농악대(두산동, 원호평동, 저동, 사천답교)가 연합한 것으로서, 강릉농악의 판굿은 어느 한 지역의 판굿이 아니라 강릉 지역 전체의 내용을 포괄하여 연출한 것이다. 강릉농악의 치배는 쇠 3, 징 2, 장구 2, 북 3, 소고 8, 법고 8, 무동 8, 농기수 1, 호적 1명 등으로 구성된다. 예전에는 여러 잡색이 있었지만, 지금은 무동 이외에는 편성되지 않는다. 강릉농악에서는 소고와 법고를 구별하는데, 소고는 법고에 비해 크기가 크고 자루를 달아서 악기를 치면 “철철” 하는 소리가 난다. 치배는 흰 바지저고리에 삼색띠를 두른다. 머리에는 짧고 두꺼운 방망이 상모를 매단 벙거지를 써서 상모놀이는 하지 않는다. 쇠잽이는 상모지를 매단 벙거지를 쓰며, 상쇠(상공)는 남색 등지기를 입는다. 소고잽이는 다른 치배와 같은 복색이지만 법고잽이는 긴 상모지가 달린 벙거지를 쓰고 채상놀이를 한다. 기수와 무동 그리고 호적수는 모두 고깔을 쓴다. 강릉농악의 가락은 일채(한마치), 이채, 삼채, 사채, 길놀이(신식 행진가락), 굿거리, 구식 길놀이(12채), 구식 행진가락(천부당만부당), 칠채(멍석말이)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2소박 4박 혹은 3소박 4박으로 되어 있다.

참고문헌

三國志農樂 (鄭昞浩, 悅話堂, 1986)호남우도 풍물굿 (김익두 외, 전북대학교, 1994)호남좌도 풍물굿 (김익두 외, 전북대학교, 1994)풍물굿 연구 (김원호, 학민사,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