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

한자명

冷麵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절식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갱신일 2018-11-27

정의

차게 식힌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만든 음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冷麪)이라고 하면서, 음력 11월의 시절음식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오늘날 냉면은 사시사철 언제나 먹을 수 있다.

내용

현재까지 알려진 냉면 관련 기록이 있는 문헌으로는 장유(張維)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을 꼽을 수 있다. 이 책 권27에 ‘자장냉면(紫漿冷麪, 자줏빛 육수의 냉면)’이란 시가 실렸다. 그 중 냉면과 관련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비치고, 옥색의 가루가 눈꽃처럼 흩어진다.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입속에서 살아나고, 옷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그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뚫는다(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客愁從此破).”라고 했다. 이후 『재물보(才物譜)』, 『진찬의궤(進饌儀軌)』, 『동국세시기』, 『규곤요람(閨壼要覽)』의 기록에도 냉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후에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당시의 한양에서도 유행을 하였음을 짐작한다.

냉면을 내리는 국수틀은 한자로 ‘면자기(麵榨機)’라고 쓴다. 그 구체적인 실체는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잘 기록되어 있다. 냉면을 만드는 면자기는 사람이 올라가서 힘을 주도록 만들어졌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이 그린 ‘국수내리는모양’이란 그림에 잘 나와 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어 근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평양에는 전문적으로 냉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1910년대에 평양의 대동문 앞에는 2층으로 된 냉면집이 있었다. 1920년대가 되면 평양 시내에 수십 곳의 냉면집들이 속속 들어섰다. 그래서 평양면옥상조합(平壤麵屋商組合)이 생겼을 정도였다.

평양냉면집은 1920년대 초반에 서울로 진출한다. 낙원동의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그리고 돈의동의 동양루가 모두 냉면 전문점으로 그 당시 이름을 떨쳤다. 소설가 김랑운은 1926년 『동광(東光)』8에 소설 「냉면(冷麵)」을 발표했다. 한참 세계 경제의 공황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신문사 기자인 순호가 여름이 극성을 부리는 8월 줄어든 월급봉투를 들고 집을 향하다가 종로 근처에 내려 돼지편육과 채를 썬 배쪽 그리고 노란 겨자가 위에 수북한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과정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1930년대가 되면 냉면은 배달 음식으로 서울에서 팔렸다. 유기그릇에 담긴 냉면은 15전에 배달되었고, 배달부에게 별도로 10전을 수고비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지역의 유명한 냉면으로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있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조금 섞어 반죽을 하면 단단한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을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국수를 뽑아낸다. 여기에 편육, 쇠고기볶음, 오이채, 배채, 삶은 계란 중에서 알맞은 재료를 고명으로 골라 국수 위에 올린다. 국물로는 쇠고기, 닭고기, 꿩고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끓인 육수를 차게 하여 쓰든지, 동치미 국물을 붓는다. 여기에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서 먹는 냉면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에 비해 함흥냉면은 국수에 홍어나 가재미를 썰어서 고추장과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하여 비벼서 먹는다. 반면, 감자녹말로 만든 삶은 국수를 국물에 말지 않고 홍어회나 가재미의 생선회를 맵게 하여 먹는 것이 함흥냉면이다.

그 밖에 남한 지역의 이름난 냉면으로 진주냉면이 있다. 진주냉면은 순메밀로 국수를 만들며, 쇠고기를 삶아 수육을 썰고 그 국물을 냉면육수로 쓰는데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얼음 공장이 생기면서 냉면은 겨울만 아니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1929년 12월 1일에 발간된 『별건곤(別乾坤)』4-7에는 ‘김소저’란 필명으로 「사시명물(四時名物) 평양냉면(平壤冷麵)」이란 글이 실렸을 정도다. 당시 서울의 냉면집 밖에는 길게 늘어뜨린 종이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선전 방식은 서울 돈의동의 동양루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람이 불면 마치 수양버들 가지가 흩날리듯 흰 종이자락이 나부꼈다. 이와 같은 냉면집의 유행은 일본의 화학조미료 회사 아지노모도(味の素)가 1927년 평양 대동문 근처에 냉면집을 열어서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그 후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동치미 국물 육수와 함께 화학조미료가 첨가된 육수에 만 냉면도 팔리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후 남한 전역에서 냉면이 유행을 했고, 이제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으며, 특히 불고기나 갈비 같은 고기를 먹고 난 후 냉면을 먹는 관습이 자리를 잡았다.

참고문헌

谿谷集, 閨壼要覽(延大), 東國歲時記, 林園經濟志, 才物譜, 進饌儀軌
冷麵 (金浪雲, 東光8, 1929)
別乾坤4-7 (景仁文化社, 1929)
우리 생활 100년-음식 (한복진, 현암사, 2001)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주영하, 사계절출판사, 2005)

냉면

냉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절식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갱신일 2018-11-27

정의

차게 식힌 국물에 국수를 말아서 만든 음식.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서는 메밀국수를 무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섞은 것을 냉면(冷麪)이라고 하면서, 음력 11월의 시절음식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오늘날 냉면은 사시사철 언제나 먹을 수 있다.

내용

현재까지 알려진 냉면 관련 기록이 있는 문헌으로는 장유(張維)의 문집인 『계곡집(谿谷集)』을 꼽을 수 있다. 이 책 권27에 ‘자장냉면(紫漿冷麪, 자줏빛 육수의 냉면)’이란 시가 실렸다. 그 중 냉면과 관련된 대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줏빛 육수는 노을빛처럼 비치고, 옥색의 가루가 눈꽃처럼 흩어진다. 젓가락을 입에 넣으니 그 맛이 입속에서 살아나고, 옷을 더 입어야 할 정도로 그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뚫는다(紫漿霞色映 玉紛雪花勻 入箸香生齒 添衣冷徹身 客愁從此破).”라고 했다. 이후 『재물보(才物譜)』, 『진찬의궤(進饌儀軌)』, 『동국세시기』, 『규곤요람(閨壼要覽)』의 기록에도 냉면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7세기 이후에 북한 지역은 물론이고 당시의 한양에서도 유행을 하였음을 짐작한다. 냉면을 내리는 국수틀은 한자로 ‘면자기(麵榨機)’라고 쓴다. 그 구체적인 실체는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잘 기록되어 있다. 냉면을 만드는 면자기는 사람이 올라가서 힘을 주도록 만들어졌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이 그린 ‘국수내리는모양’이란 그림에 잘 나와 있다. 19세기 말에 접어들어 근대적인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평양에는 전문적으로 냉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자리를 잡았다. 1910년대에 평양의 대동문 앞에는 2층으로 된 냉면집이 있었다. 1920년대가 되면 평양 시내에 수십 곳의 냉면집들이 속속 들어섰다. 그래서 평양면옥상조합(平壤麵屋商組合)이 생겼을 정도였다. 평양냉면집은 1920년대 초반에 서울로 진출한다. 낙원동의 부벽루, 광교와 수표교 사이의 백양루 그리고 돈의동의 동양루가 모두 냉면 전문점으로 그 당시 이름을 떨쳤다. 소설가 김랑운은 1926년 『동광(東光)』8에 소설 「냉면(冷麵)」을 발표했다. 한참 세계 경제의 공황으로 인해 생활이 어려웠던 시절, 신문사 기자인 순호가 여름이 극성을 부리는 8월 줄어든 월급봉투를 들고 집을 향하다가 종로 근처에 내려 돼지편육과 채를 썬 배쪽 그리고 노란 겨자가 위에 수북한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과정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 1930년대가 되면 냉면은 배달 음식으로 서울에서 팔렸다. 유기그릇에 담긴 냉면은 15전에 배달되었고, 배달부에게 별도로 10전을 수고비로 주는 경우도 있었다. 북한 지역의 유명한 냉면으로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있다. 평양냉면은 메밀가루에 녹말을 조금 섞어 반죽을 하면 단단한 덩어리가 되는데, 이것을 국수틀에 넣고 눌러서 국수를 뽑아낸다. 여기에 편육, 쇠고기볶음, 오이채, 배채, 삶은 계란 중에서 알맞은 재료를 고명으로 골라 국수 위에 올린다. 국물로는 쇠고기, 닭고기, 꿩고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끓인 육수를 차게 하여 쓰든지, 동치미 국물을 붓는다. 여기에 식초와 겨자를 곁들여서 먹는 냉면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이에 비해 함흥냉면은 국수에 홍어나 가재미를 썰어서 고추장과 마늘 등으로 양념을 하여 비벼서 먹는다. 반면, 감자녹말로 만든 삶은 국수를 국물에 말지 않고 홍어회나 가재미의 생선회를 맵게 하여 먹는 것이 함흥냉면이다. 그 밖에 남한 지역의 이름난 냉면으로 진주냉면이 있다. 진주냉면은 순메밀로 국수를 만들며, 쇠고기를 삶아 수육을 썰고 그 국물을 냉면육수로 쓰는데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얼음 공장이 생기면서 냉면은 겨울만 아니라, 사시사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1929년 12월 1일에 발간된 『별건곤(別乾坤)』4-7에는 ‘김소저’란 필명으로 「사시명물(四時名物) 평양냉면(平壤冷麵)」이란 글이 실렸을 정도다. 당시 서울의 냉면집 밖에는 길게 늘어뜨린 종이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와 같은 선전 방식은 서울 돈의동의 동양루에서 가장 먼저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다. 바람이 불면 마치 수양버들 가지가 흩날리듯 흰 종이자락이 나부꼈다. 이와 같은 냉면집의 유행은 일본의 화학조미료 회사 아지노모도(味の素)가 1927년 평양 대동문 근처에 냉면집을 열어서 그들의 제품을 판매하도록 만들기까지 했다. 그 후 조선간장으로 간을 한 동치미 국물 육수와 함께 화학조미료가 첨가된 육수에 만 냉면도 팔리기 시작했다. 1950년대 이후 남한 전역에서 냉면이 유행을 했고, 이제는 계절을 따지지 않고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으며, 특히 불고기나 갈비 같은 고기를 먹고 난 후 냉면을 먹는 관습이 자리를 잡았다.

참고문헌

谿谷集, 閨壼要覽(延大), 東國歲時記, 林園經濟志, 才物譜, 進饌儀軌冷麵 (金浪雲, 東光8, 1929)別乾坤4-7 (景仁文化社, 1929)우리 생활 100년-음식 (한복진, 현암사, 2001)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주영하, 사계절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