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일(臘日)

한자명

臘日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2월 > 정일

집필자 최인학(崔仁鶴)

정의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 납일(臘日)은 납평(臘平), 가평(嘉平), 가평절(嘉平節), 납향일(臘享日)이라고도 한다.

유래

부여(夫餘)에서는 영고(迎鼓)라 하여 12월 중 하루를 택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신라(新羅)에서는 12월 인일(寅日)에 제사를 지냈고,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는 술일(戌日)로 정하여 지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을 납일로 정하게 되었다.

납일에 대해서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중국 한나라 때의 학자인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랍(未臘)으로써, 적제(赤帝)는 술랍(戌臘)으로써, 백제(白帝)는 축랍(丑臘)으로써, 흑제(黑帝)는 진랍(辰臘)으로써 한다라고 했으므로 한국은 미(未)에 해당하므로 미일을 납일로 삼았다(청제는 봄을 맡은 동쪽의 신이고, 적제는 여름을 맡은 남쪽의 신이고, 백제는 가을을 맡은 서쪽의 신이고, 흑제는 겨울을 맡은 북쪽의 신이다. 한국은 동쪽에 해당하므로 미일로 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용

납일이 되면 대개 음력으로 12월 연말이므로 지난 일년을 돌아보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 해 동안의 농사 형편이나 그 밖의 일을 고하는 제사를 묘사(廟社)에서 지내는데, 조정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 형편에 대하여 고했다. 또 사직에서는 농사 형편을 아뢰고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종묘대제(宗廟大祭)와 사직대제(社稷大祭)라고 한다.

한편 민간에서도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초하루 아침에 사당에 지내는 제사나 명절에 지내는 제사와 같다. 이와 같이 이날에 제사 지내는 것을 납향(臘享)이라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이날 종묘사직에 제사 지내는 것을 사맹삭(四孟朔)과 더불어 오대제향(五大祭享)이라 했다(사맹삭이란 춘하추동의 각 첫 달 곧 음력 정월, 사월, 칠월, 시월을 말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내의원에서 각종의 환약을 만들어 올린다. 이것을 납약진상(臘藥進上)이라고 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근시(近侍)와 지밀나인[至密內人] 등에게 나누어 준다. 청심원(淸心元)은 정신적 치료를 하는 데 효과가 있고, 안신원(安神元)은 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며, 소합원(蘇合元)은 곽란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건륭(健隆) 경술년(1790)에 새로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의 두 종류의 환약도 만들었으니 실로 밝으신 생각에서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들은 소합원보다 효과가 더욱 빠르다. 그것을 모두 영문(營門)에 나누어주어 군사들을 치료하는 데 쓰게 했다. 또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관청에서도 많이 만들어 나누어주기도 하고 서로 선물하기도 했다.”라고 한다. 이날 제조한 약을 납약(臘藥)이라고 한다.

최연(崔演)이 지은 『간재선생문집(艮齋先生文集)』 권8에 보면, 납일에 내의원에서 숙직하면서 납약 제조를 감시하며, 임금에게 올리며 느낀 소감을 몇 줄 적었는데 “소신은 재능이 없으나 능히 나라의 의원이 되었으니, 다만 선단(仙丹)을 바치며 만수를 축원합니다. 천년 동안 옥토끼는 영단(靈丹)을 절구에 찧었고, 신선은 얼룩얼룩 문채가 나는 만개의 과단(顆團)을 만들었습니다. 삼가 대궐에 헌상하여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오니, 오래도록 천하를 무위로 다스리고 홍안으로 사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열양세시기』에는 “중국 북경 사람들은 청심환이 다 죽어가는 병자들을 소생시키는 신단(神丹)이라 하여 우리 사신이 북경에 들어가기만 하면 왕공(王公), 귀인들이 모여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왕왕 들볶이는 것이 귀찮아 약방문을 전해주어도 만들지를 못하는 것이 약밥의 경우와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북경 안에는 우황이 없어 낙타 쓸개를 대용하므로 비록 약방문대로 만들었으나 복용해보면 영묘한 효력이 없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납일(臘日)의 ‘납(臘)’자는 사냥한다는 뜻의 ‘렵(獵)’자에서 유래된 글자로 이날 사냥하는 풍속이 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경기도 산간에 있는 군에서는 전부터 이날에 쓸 돼지를 공물로 바치는데 군민을 풀어 산돼지를 찾아 사냥하므로 상감(정조)께서 특히 이를 파허고, 장용영(將勇營)의 장교들로 하여금 포수들을 데리고 용문산과 축령산으로 가서 잡아다가 바치도록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날 잡은 짐승의 고기는 사람에게 다 좋지만 특히 참새는 늙고 약한 사람에게 이롭다고 하므로 민간에서는 그물을 많이 쳐서 잡는 관습이 있다. 참새를 잡아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천연두)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서울 장안에서는 새총을 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이날만은 참새 잡는 것을 허용한다. 농촌에서는 청소년들이 패를 지어 새 통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새가 사는 지붕의 추녀를 찾아다닌다. 통발을 추녀에 대고 긴 막대기로 추녀를 치면 새들이 자다가 놀라서 날아 나오다가 통발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또는 새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밭을 찾아가 그물을 치고 대나무를 흔들면 놀라서 날아가려다가 그물에 걸리게 된다. 납일에 잡은 새는 맛이 있을 뿐 아니라 어린아이가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침을 흘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새는 여름 동안은 풀을 뜯어먹고 또 벌레를 잡아먹으므로 고기 맛이 없으나 가을부터는 곡식만 주워먹으니 납일 무렵이면 제일 맛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참새가 소 등에 올라가서 네 고기 열점과 내 고기 한점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참새잡이와 아울러 납일에 잡은 고기를 납일고기[臘肉]라고 한다.

또한 납일에 온 눈의 녹은 물은 약용으로도 쓰며, 그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납일에 내린 눈을 곱게 받아 깨끗한 독안에 가득 담아두었다가 그 녹은 물로 환약을 만들 때 반죽하고 안질을 앓는 사람이 눈을 씻으면 효과가 있다고 하며, 책이나 옷에 바르면 좀이 먹지 않고 김장독에 넣으면 김장의 맛이 변하는 일이 없이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납일에 오는 눈을 ‘납평치’ 또는 ‘납설수(臘雪水)’라고도 한다.

납일에 충청과 호남에서는 저녁에 엿을 고는 풍속이 있다. 꿀과 엿에서 주로 당분을 취하던 옛날에는 엿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길일인 납일에 엿을 고면 잘 되고, 또 납일의 엿이 맛이 좋으며 약으로도 쓰여 이날 엿을 고는 풍속이 생겼다. 초저녁부터 솥에 불을 때고 엿을 고기 시작하면 새벽이 되어서야 엿이 되고 단지 안에 퍼넣어 두었다가 긴요하게 쓴다. 이날 고아 먹는 엿을 일컬어 납향엿이라고 한다. 또 이날은 노루, 사슴, 메추리 같은 고기로 전골을 만들어 진상하는데, 이것을 납평전골이라 한다.

한편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권8에는 납연(臘宴)을 베푼 광경이 그려져 있다. “납일에 납연을 베풀었는데, 이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납일의 거센 바람에 아랑곳 않고, 사방 마을 노인들이 반열에 함께 참여하였네. 처음 자리에는 질서 있게 약간 예의를 차리다가, 취한 후에는 시끄럽게 서로 다투어 즐거워하네.”

참고문헌

艮齋先生文集,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洌陽歲時記, 佔畢齋集, 芝峯類說,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朝鮮歲時記 (洪錫謨 外·李錫浩 譯註, 東文選, 1991),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4)

납일

납일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2월 > 정일

집필자 최인학(崔仁鶴)

정의

동지 뒤 세 번째 미일(未日). 납일(臘日)은 납평(臘平), 가평(嘉平), 가평절(嘉平節), 납향일(臘享日)이라고도 한다.

유래

부여(夫餘)에서는 영고(迎鼓)라 하여 12월 중 하루를 택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속이 있었다. 신라(新羅)에서는 12월 인일(寅日)에 제사를 지냈고, 고려(高麗) 문종(文宗) 때는 술일(戌日)로 정하여 지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을 납일로 정하게 되었다. 납일에 대해서 이수광(李睟光)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중국 한나라 때의 학자인 채옹(蔡邕)의 설을 인용하여 “청제(靑帝)는 미랍(未臘)으로써, 적제(赤帝)는 술랍(戌臘)으로써, 백제(白帝)는 축랍(丑臘)으로써, 흑제(黑帝)는 진랍(辰臘)으로써 한다라고 했으므로 한국은 미(未)에 해당하므로 미일을 납일로 삼았다(청제는 봄을 맡은 동쪽의 신이고, 적제는 여름을 맡은 남쪽의 신이고, 백제는 가을을 맡은 서쪽의 신이고, 흑제는 겨울을 맡은 북쪽의 신이다. 한국은 동쪽에 해당하므로 미일로 정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용

납일이 되면 대개 음력으로 12월 연말이므로 지난 일년을 돌아보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한 해 동안의 농사 형편이나 그 밖의 일을 고하는 제사를 묘사(廟社)에서 지내는데, 조정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 형편에 대하여 고했다. 또 사직에서는 농사 형편을 아뢰고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종묘대제(宗廟大祭)와 사직대제(社稷大祭)라고 한다. 한편 민간에서도 여러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초하루 아침에 사당에 지내는 제사나 명절에 지내는 제사와 같다. 이와 같이 이날에 제사 지내는 것을 납향(臘享)이라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면 이날 종묘사직에 제사 지내는 것을 사맹삭(四孟朔)과 더불어 오대제향(五大祭享)이라 했다(사맹삭이란 춘하추동의 각 첫 달 곧 음력 정월, 사월, 칠월, 시월을 말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의 기록에 의하면 “내의원에서 각종의 환약을 만들어 올린다. 이것을 납약진상(臘藥進上)이라고 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근시(近侍)와 지밀나인[至密內人] 등에게 나누어 준다. 청심원(淸心元)은 정신적 치료를 하는 데 효과가 있고, 안신원(安神元)은 열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며, 소합원(蘇合元)은 곽란을 다스리는 데 효과적이다.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 건륭(健隆) 경술년(1790)에 새로 제중단(濟衆丹)과 광제환(廣濟丸)의 두 종류의 환약도 만들었으니 실로 밝으신 생각에서 고안해낸 것이다. 이것들은 소합원보다 효과가 더욱 빠르다. 그것을 모두 영문(營門)에 나누어주어 군사들을 치료하는 데 쓰게 했다. 또 기로소(耆老所)에서도 납약을 만들어 여러 기신(耆臣)들에게 나누어주고 각 관청에서도 많이 만들어 나누어주기도 하고 서로 선물하기도 했다.”라고 한다. 이날 제조한 약을 납약(臘藥)이라고 한다. 최연(崔演)이 지은 『간재선생문집(艮齋先生文集)』 권8에 보면, 납일에 내의원에서 숙직하면서 납약 제조를 감시하며, 임금에게 올리며 느낀 소감을 몇 줄 적었는데 “소신은 재능이 없으나 능히 나라의 의원이 되었으니, 다만 선단(仙丹)을 바치며 만수를 축원합니다. 천년 동안 옥토끼는 영단(靈丹)을 절구에 찧었고, 신선은 얼룩얼룩 문채가 나는 만개의 과단(顆團)을 만들었습니다. 삼가 대궐에 헌상하여 임금의 장수를 기원하오니, 오래도록 천하를 무위로 다스리고 홍안으로 사시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열양세시기』에는 “중국 북경 사람들은 청심환이 다 죽어가는 병자들을 소생시키는 신단(神丹)이라 하여 우리 사신이 북경에 들어가기만 하면 왕공(王公), 귀인들이 모여 구걸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왕왕 들볶이는 것이 귀찮아 약방문을 전해주어도 만들지를 못하는 것이 약밥의 경우와 같다. 참 이상한 일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북경 안에는 우황이 없어 낙타 쓸개를 대용하므로 비록 약방문대로 만들었으나 복용해보면 영묘한 효력이 없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납일(臘日)의 ‘납(臘)’자는 사냥한다는 뜻의 ‘렵(獵)’자에서 유래된 글자로 이날 사냥하는 풍속이 있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는 “경기도 산간에 있는 군에서는 전부터 이날에 쓸 돼지를 공물로 바치는데 군민을 풀어 산돼지를 찾아 사냥하므로 상감(정조)께서 특히 이를 파허고, 장용영(將勇營)의 장교들로 하여금 포수들을 데리고 용문산과 축령산으로 가서 잡아다가 바치도록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날 잡은 짐승의 고기는 사람에게 다 좋지만 특히 참새는 늙고 약한 사람에게 이롭다고 하므로 민간에서는 그물을 많이 쳐서 잡는 관습이 있다. 참새를 잡아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천연두)를 깨끗이 한다고 하여, 서울 장안에서는 새총을 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이날만은 참새 잡는 것을 허용한다. 농촌에서는 청소년들이 패를 지어 새 통발을 가지고 다니면서 새가 사는 지붕의 추녀를 찾아다닌다. 통발을 추녀에 대고 긴 막대기로 추녀를 치면 새들이 자다가 놀라서 날아 나오다가 통발 속으로 들어가고 만다. 또는 새들이 많이 모여 사는 대밭을 찾아가 그물을 치고 대나무를 흔들면 놀라서 날아가려다가 그물에 걸리게 된다. 납일에 잡은 새는 맛이 있을 뿐 아니라 어린아이가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고 침을 흘리지 않는다고 전한다. 새는 여름 동안은 풀을 뜯어먹고 또 벌레를 잡아먹으므로 고기 맛이 없으나 가을부터는 곡식만 주워먹으니 납일 무렵이면 제일 맛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때는 “참새가 소 등에 올라가서 네 고기 열점과 내 고기 한점을 바꾸지 않는다.”라는 속담도 있다. 참새잡이와 아울러 납일에 잡은 고기를 납일고기[臘肉]라고 한다. 또한 납일에 온 눈의 녹은 물은 약용으로도 쓰며, 그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납일에 내린 눈을 곱게 받아 깨끗한 독안에 가득 담아두었다가 그 녹은 물로 환약을 만들 때 반죽하고 안질을 앓는 사람이 눈을 씻으면 효과가 있다고 하며, 책이나 옷에 바르면 좀이 먹지 않고 김장독에 넣으면 김장의 맛이 변하는 일이 없이 오래 저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납일에 오는 눈을 ‘납평치’ 또는 ‘납설수(臘雪水)’라고도 한다. 납일에 충청과 호남에서는 저녁에 엿을 고는 풍속이 있다. 꿀과 엿에서 주로 당분을 취하던 옛날에는 엿을 소중히 여겼다. 그래서 길일인 납일에 엿을 고면 잘 되고, 또 납일의 엿이 맛이 좋으며 약으로도 쓰여 이날 엿을 고는 풍속이 생겼다. 초저녁부터 솥에 불을 때고 엿을 고기 시작하면 새벽이 되어서야 엿이 되고 단지 안에 퍼넣어 두었다가 긴요하게 쓴다. 이날 고아 먹는 엿을 일컬어 납향엿이라고 한다. 또 이날은 노루, 사슴, 메추리 같은 고기로 전골을 만들어 진상하는데, 이것을 납평전골이라 한다. 한편 김종직(金宗直)의 『점필재집(佔畢齋集)』 권8에는 납연(臘宴)을 베푼 광경이 그려져 있다. “납일에 납연을 베풀었는데, 이날 바람이 불고 눈이 내렸다. 납일의 거센 바람에 아랑곳 않고, 사방 마을 노인들이 반열에 함께 참여하였네. 처음 자리에는 질서 있게 약간 예의를 차리다가, 취한 후에는 시끄럽게 서로 다투어 즐거워하네.”

참고문헌

艮齋先生文集, 京都雜志, 東國歲時記, 洌陽歲時記, 佔畢齋集, 芝峯類說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5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朝鮮歲時記 (洪錫謨 外·李錫浩 譯註, 東文選, 1991)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