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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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천진기(千鎭基)
갱신일 2019-01-15

정의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地官들이 음택과 양택 등 풍수를 보거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나침반.

역사

윤도는 흔히 패철佩鐵, 쇠, 나경羅經,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이라고도 한다.남쪽을 가리키는 자침의 원리는 중국 한대漢代에 이미 실용화하여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다. 한반도의 낙랑樂浪 고분에서 출토된 식점천지반式占天地盤(1세기)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원반圓盤과 방반方盤의 두 반으로 이루어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을 나타냈다. 원반의 중심에는 북두칠성이 있고, 그 주위에 12월 신명神名을 둘렀으며, 그다음 원에는 간지가 기입되어 있다. 정방형 방반에는 8괘・10간・28수 등이 배열되어 있고, 그 중심에 원반을 올려놓고 회전하여 점치는 데 사용하였다.

한국의 경우, 윤도의 기본 원리인 중요한 천문학이 삼국시대에 발달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윤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박사天文博士, 백제의 천문학을 담당하던 일관부日官部,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 등을 보면, 당시에음 양오행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 『주역周易』과 천문학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윤도를 쓰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이후 통일신라 말기에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풍수도참 사상이 발달하면서, 윤도는 지상地相을 보는 데 중요한 기구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도 풍수도참 사상이 널리 유행해, 고려건국과 관련된 설화 속에도 풍수 이야기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해와 달을 비롯한 여러 별을 관찰해 천체의 움직임에 관한 지도를 만들고 별자리의 변화에 대한 계산을 해낼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농사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천문학의 발달과 윤도의 기본이 되는 『주역』의 활발한 연구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윤도가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던 ‘윤도’라는 명칭이 실록에 등장한다. 1600년(선조 33)에는 명나라 출신의 지리 전문가 이문통李文通이 ‘나경’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윤도처럼 생겼지만, 윤도보다 더 자세하여 내면과 외면에는 각양의 양식이 갖춰져 있었고 크기도 커서 작은 소반만 하였으며, 해 그림자를 재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문통의 말에 의하면 당나라 때부터 집안에 전해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문통을 통해 지리에 관한 서적을 베끼고 나경을 똑같이 만들 수 있도록 청하니 허락했다. 그리고 이문통이 광화문 안의 어로御路 위에 나경을 놓고 지세地勢를 살폈다. 이 기록에서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윤도가 쓰이고 있었고, 중국의 나경이라는 명칭은 윤도와 같으며, 윤도와 나경은 지세를 살피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조선의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 윤도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 윤도 제작을 맡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관상감에서 윤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윤도에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점성술의 요소와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절후節候 등이 있는 것과 일치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수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윤도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뱃사람이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는 데 이용하기도 하고 , 천문학자나 일반인의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을 정하는 데도 윤도가 사용되었다. 거의 모든 휴대용 해시계에는 간단한 윤도를 함께 붙이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사대부들은 부채의 끝에 작고 단순한 모양의 2・3층 짜리 윤도를 만들어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부채에 매단 선추는 12방위 또는 24방위만을 표시한 소형 지남침으로 가장 실용적인 멋을 가졌으며, 아름다운 조각과 더불어 조선의 독특한 휴대용 나침반으로 발달하였다. 이렇듯 윤도는 묏자리를 보는 지관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던 생활과학 도구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윤도와 관련된 학문이 미신으로 격하되어 쇠락하면서 윤도 역시 잊히게 되었다. 현재 윤도의 제작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기능보유자 김종대)’으로 지정・전승되고 있다.

윤도를 전라북도 고창 성내면 산림리 낙산洛山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300여 년 전이다. 조선시대에는 흥덕현에 속해 여기에서 만든 윤도를 ‘흥덕 패철’이라 했다. 흥덕 패철의 제작과 전승의 계보는 전全씨—한韓씨—서徐씨—한(한운장)씨—김권삼(현 보유자의 조부)—김정의(현 보유자의 백부)—김종대(현 보유자)—김희수(현 보유자의 아들)로 이어진다.

내용

윤도는 자침磁針을 중심으로 동심원의 숫자에 따라 동심원이 1개인 1층 윤도에서 동심원이 36개인 36층 윤도까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실용화할 수는 없으므로, 기본 24방위를 기준으로 8~9층 정도의 윤도를 흔히 사용한다. 윤도의 구성은 중심에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이 있고 24방위를 기본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에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 및 24절후가 조합을 이루며 배치되는 형태이다. 윤도의 구성은 사용자에 따라 다르다. 즉, 방향을 잡기 위해 바닷사람들이 사용하는 윤도와 지형과 지세를 보는 풍수가들이 사용하는 윤도는 다르다. 보통 윤도 사용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층수]만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윤도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층수(36층)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모두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윤도의 이용도 단지 풍수가들이 지세를 잡는데 그치고 있다. 현재 지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윤도는 보통 9층 정도이다. 윤도장 김종대가 만드는 윤도의 층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 5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曜水—②황천黃泉—③봉침24산蜂針24山—④정침24산正針24山—⑤60투지透地
• 7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②황천—③쌍삼오행雙三五行—④봉침24산—⑤정침24산正針24山—⑥72천산穿山—⑦60투지
• 9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②황천—③쌍삼오행—④봉침24산—⑤정침24산—⑥72천산—⑦중침24산中針24山—⑧60투지—⑨정침120분금正針120分金

이렇게 구성된 윤도는 현장에서 지관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세와 지기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 데 사용된다. 그중 9층 윤도를 현장에서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8요수’는 묏자리나 집터를 잡을 때 등진 방위인 좌를 본다. ‘황천’은 자리 잡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앞쪽 방향을 잡을 때 쓰인다. ‘쌍삼오행’으로, 만물을 생성하고 만상을 변화시키는 수・금・화・목・토 오행의 삼합을 본다. ‘봉침24산’ 또는 천반봉침天盤縫針으로 득수得水와 파구破口 등 물의 방향을 살피는 데 사용한다. ‘정침24산’ 또는 지반정침地盤正針은 좌향을 잡는 기본 24방위를 가리킨다. 주로 용(풍수에서 산이나 능선을 용이라고 한다)이 오는 방위를 잰다. ‘72천산’은 후룡後龍(혈 뒤에 높게 솟은 산)에서 생기가 가장 왕성한 혈로 용이 들어가는 지점인 입수까지 산의 지형을 보는 것이다. ‘중침24산’ 또는 인반정침人盤定針으로 사砂를 볼 때 사용한다. 사는 일정한 땅의 산수 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혈주변 환경을 뜻한다. ‘60투지’로 입수入首에서 혈穴까지의 방위를 본다. 용과 맥이 흐르다가 보통 물을 만나면 멈추는데, 이때 그 멈춘 자리가 기가 모인 곳이다. ‘정침120분금’으로 정확한 좌향을 결정한다. 하관할 때 오행을 기본으로 망자의 생년을 보아 생生하게 방향을 맞추어 약간 틀어 주거나, 길한 방향으로 관의 좌향을 결정하는 데 쓰인다.

김종대가 제작하는 윤도의 종류는 평철, 선추패철 ,면경철, 거북패철 등이다. 평철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원통형 윤도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며 보통 7~9층짜리를 많이 만든다. 윤도를 부채의 고리에 매달아 쓰는 장식품으로 사용한다. 선추의 윤도는 속을 파고, 서랍처럼 만든 기본 24방위만 새겨 넣어 뺐다가 닫을 수도 있다. 이 선추는 방위를 보는 것이 주용도이지만, 해시계로 쓸 수 있게 바늘을 하나 더 달아 실용적이다. 면경철은 선비들의 소지품으로 뚜껑에는 거울을 넣어 비춰볼 수 있게 하고, 몸체에는 방위를 새겨 방향을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을 조각하여 선추처럼 멋을 부렸다. 거북패철은 김종대의 선대先代는 만들지 않았던 모양으로, 김종대가 가끔 만들고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존하는 윤도의 완전한 형식은 1848년(헌종 14, 도광道光 28)에 관상감에서 만든 교간본校刊本 24층 윤도 판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기능보유자인 김종대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이 판본은 정간과 분금을 하고 각자를 하는 데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최고의 윤도 실물도 김종대가 소장한 ‘한씨韓氏 24층 윤도’이다. 이것은 김종대의 조부 김권삼에게 윤도만드는 일을 넘겼던 ‘한운장’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제작 연대는 약 150~200년 전이다. 앞의 관상감 판본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씨의 24층 윤도는 자침 부분이 없어지고, 나무판을 여러 겹 붙여서 만들어 손상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전하는 윤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층수가 큰 24층이라는 점에서 역사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6),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윤도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

윤도

윤도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천진기(千鎭基)
갱신일 2019-01-15

정의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地官들이 음택과 양택 등 풍수를 보거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알기 위해 사용하는 일종의 나침반.

역사

윤도는 흔히 패철佩鐵, 쇠, 나경羅經, 지남반指南盤, 지남철指南鐵이라고도 한다.남쪽을 가리키는 자침의 원리는 중국 한대漢代에 이미 실용화하여 점을 치는 데 사용되었다. 한반도의 낙랑樂浪 고분에서 출토된 식점천지반式占天地盤(1세기)은 하늘과 땅을 상징하는 원반圓盤과 방반方盤의 두 반으로 이루어져,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을 나타냈다. 원반의 중심에는 북두칠성이 있고, 그 주위에 12월 신명神名을 둘렀으며, 그다음 원에는 간지가 기입되어 있다. 정방형 방반에는 8괘・10간・28수 등이 배열되어 있고, 그 중심에 원반을 올려놓고 회전하여 점치는 데 사용하였다. 한국의 경우, 윤도의 기본 원리인 중요한 천문학이 삼국시대에 발달했던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윤도를 제작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천문박사天文博士, 백제의 천문학을 담당하던 일관부日官部,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신도 등을 보면, 당시에음 양오행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 『주역周易』과 천문학을 활발히 연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이미 윤도를 쓰고 있었다고 추측된다. 이후 통일신라 말기에 승려 도선道詵에 의해 풍수도참 사상이 발달하면서, 윤도는 지상地相을 보는 데 중요한 기구가 되었다. 고려시대에도 풍수도참 사상이 널리 유행해, 고려건국과 관련된 설화 속에도 풍수 이야기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해와 달을 비롯한 여러 별을 관찰해 천체의 움직임에 관한 지도를 만들고 별자리의 변화에 대한 계산을 해낼 정도로 천문학이 발달했다. 이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농사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윤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의 하나인 천문학의 발달과 윤도의 기본이 되는 『주역』의 활발한 연구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윤도가 널리 사용되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이전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던 ‘윤도’라는 명칭이 실록에 등장한다. 1600년(선조 33)에는 명나라 출신의 지리 전문가 이문통李文通이 ‘나경’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윤도처럼 생겼지만, 윤도보다 더 자세하여 내면과 외면에는 각양의 양식이 갖춰져 있었고 크기도 커서 작은 소반만 하였으며, 해 그림자를 재는 것도 있었다고 한다. 이문통의 말에 의하면 당나라 때부터 집안에 전해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문통을 통해 지리에 관한 서적을 베끼고 나경을 똑같이 만들 수 있도록 청하니 허락했다. 그리고 이문통이 광화문 안의 어로御路 위에 나경을 놓고 지세地勢를 살폈다. 이 기록에서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윤도가 쓰이고 있었고, 중국의 나경이라는 명칭은 윤도와 같으며, 윤도와 나경은 지세를 살피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확인된다. 조선의 여러 기록을 통해 조선시대에 윤도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 윤도 제작을 맡아 했음을 알 수 있다. 관상감에서 윤도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윤도에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점성술의 요소와 계절의 변화를 나타내는 절후節候 등이 있는 것과 일치한다. 조선시대에는 풍수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윤도가 다양한 용도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뱃사람이나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는 데 이용하기도 하고 , 천문학자나 일반인의 휴대용 해시계에 정확한 남북을 정하는 데도 윤도가 사용되었다. 거의 모든 휴대용 해시계에는 간단한 윤도를 함께 붙이는 것이 통례가 되었다. 사대부들은 부채의 끝에 작고 단순한 모양의 2・3층 짜리 윤도를 만들어 매달고 다니기도 했다. 부채에 매단 선추는 12방위 또는 24방위만을 표시한 소형 지남침으로 가장 실용적인 멋을 가졌으며, 아름다운 조각과 더불어 조선의 독특한 휴대용 나침반으로 발달하였다. 이렇듯 윤도는 묏자리를 보는 지관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하게 쓰이던 생활과학 도구였다. 그러나 광복 이후 서구 문물의 영향으로 윤도와 관련된 학문이 미신으로 격하되어 쇠락하면서 윤도 역시 잊히게 되었다. 현재 윤도의 제작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기능보유자 김종대)’으로 지정・전승되고 있다. 윤도를 전라북도 고창 성내면 산림리 낙산洛山마을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은 약 300여 년 전이다. 조선시대에는 흥덕현에 속해 여기에서 만든 윤도를 ‘흥덕 패철’이라 했다. 흥덕 패철의 제작과 전승의 계보는 전全씨—한韓씨—서徐씨—한(한운장)씨—김권삼(현 보유자의 조부)—김정의(현 보유자의 백부)—김종대(현 보유자)—김희수(현 보유자의 아들)로 이어진다.

내용

윤도는 자침磁針을 중심으로 동심원의 숫자에 따라 동심원이 1개인 1층 윤도에서 동심원이 36개인 36층 윤도까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실용화할 수는 없으므로, 기본 24방위를 기준으로 8~9층 정도의 윤도를 흔히 사용한다. 윤도의 구성은 중심에 남북을 가리키는 자침이 있고 24방위를 기본으로 여러 개의 동심원에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 및 24절후가 조합을 이루며 배치되는 형태이다. 윤도의 구성은 사용자에 따라 다르다. 즉, 방향을 잡기 위해 바닷사람들이 사용하는 윤도와 지형과 지세를 보는 풍수가들이 사용하는 윤도는 다르다. 보통 윤도 사용자가 자신에게 필요한 내용[층수]만 넣어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다. 윤도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모든 층수(36층)가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모두 해석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윤도의 이용도 단지 풍수가들이 지세를 잡는데 그치고 있다. 현재 지관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윤도는 보통 9층 정도이다. 윤도장 김종대가 만드는 윤도의 층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 5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曜水—②황천黃泉—③봉침24산蜂針24山—④정침24산正針24山—⑤60투지透地• 7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②황천—③쌍삼오행雙三五行—④봉침24산—⑤정침24산正針24山—⑥72천산穿山—⑦60투지• 9층 윤도의 구성: ①8요수—②황천—③쌍삼오행—④봉침24산—⑤정침24산—⑥72천산—⑦중침24산中針24山—⑧60투지—⑨정침120분금正針120分金 이렇게 구성된 윤도는 현장에서 지관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지세와 지기를 찾아서 자리를 잡는 데 사용된다. 그중 9층 윤도를 현장에서 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8요수’는 묏자리나 집터를 잡을 때 등진 방위인 좌를 본다. ‘황천’은 자리 잡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앞쪽 방향을 잡을 때 쓰인다. ‘쌍삼오행’으로, 만물을 생성하고 만상을 변화시키는 수・금・화・목・토 오행의 삼합을 본다. ‘봉침24산’ 또는 천반봉침天盤縫針으로 득수得水와 파구破口 등 물의 방향을 살피는 데 사용한다. ‘정침24산’ 또는 지반정침地盤正針은 좌향을 잡는 기본 24방위를 가리킨다. 주로 용(풍수에서 산이나 능선을 용이라고 한다)이 오는 방위를 잰다. ‘72천산’은 후룡後龍(혈 뒤에 높게 솟은 산)에서 생기가 가장 왕성한 혈로 용이 들어가는 지점인 입수까지 산의 지형을 보는 것이다. ‘중침24산’ 또는 인반정침人盤定針으로 사砂를 볼 때 사용한다. 사는 일정한 땅의 산수 형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혈주변 환경을 뜻한다. ‘60투지’로 입수入首에서 혈穴까지의 방위를 본다. 용과 맥이 흐르다가 보통 물을 만나면 멈추는데, 이때 그 멈춘 자리가 기가 모인 곳이다. ‘정침120분금’으로 정확한 좌향을 결정한다. 하관할 때 오행을 기본으로 망자의 생년을 보아 생生하게 방향을 맞추어 약간 틀어 주거나, 길한 방향으로 관의 좌향을 결정하는 데 쓰인다. 김종대가 제작하는 윤도의 종류는 평철, 선추패철 ,면경철, 거북패철 등이다. 평철은 특별한 장식이 없는 원통형 윤도로 가장 보편적인 형태이며 보통 7~9층짜리를 많이 만든다. 윤도를 부채의 고리에 매달아 쓰는 장식품으로 사용한다. 선추의 윤도는 속을 파고, 서랍처럼 만든 기본 24방위만 새겨 넣어 뺐다가 닫을 수도 있다. 이 선추는 방위를 보는 것이 주용도이지만, 해시계로 쓸 수 있게 바늘을 하나 더 달아 실용적이다. 면경철은 선비들의 소지품으로 뚜껑에는 거울을 넣어 비춰볼 수 있게 하고, 몸체에는 방위를 새겨 방향을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표면에는 다양한 문양을 조각하여 선추처럼 멋을 부렸다. 거북패철은 김종대의 선대先代는 만들지 않았던 모양으로, 김종대가 가끔 만들고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존하는 윤도의 완전한 형식은 1848년(헌종 14, 도광道光 28)에 관상감에서 만든 교간본校刊本 24층 윤도 판본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10호 윤도장 기능보유자인 김종대의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이 판본은 정간과 분금을 하고 각자를 하는 데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최고의 윤도 실물도 김종대가 소장한 ‘한씨韓氏 24층 윤도’이다. 이것은 김종대의 조부 김권삼에게 윤도만드는 일을 넘겼던 ‘한운장’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제작 연대는 약 150~200년 전이다. 앞의 관상감 판본을 바탕으로 만든 것이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씨의 24층 윤도는 자침 부분이 없어지고, 나무판을 여러 겹 붙여서 만들어 손상이 많이 되었기 때문에, 실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전하는 윤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층수가 큰 24층이라는 점에서 역사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과학기술사(전상운, 정음사, 1976), 한국의 중요무형문화재‐윤도장(국립문화재연구소,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