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네뛰기(荡秋千)

한자명

荡秋千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전신재(全信宰)

정의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나뭇가지나 두 기둥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에 길게 두 줄을 매어 늘이고, 줄 아래에 밑싣개(앉을깨)를 걸쳐 놓고 올라가서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는 놀이이다. 한자어로는 추천희(鞦韆戱), 반선희(半仙戱), 유선희(遊仙戱)라고도 한다.

이칭 및 어원

그네의 방언은 매우 다양하다. 최학근의 『한국방언사전』에 그네의 방언이 66가지가 올라 있다. 빈도수가 많은 것은 구늘, 군대, 군데, 군듸, 군디, 군지, 굴기, 굴리, 그눌, 그늘, 근데, 근뒤, 근디, 훌기이다. 대체로 ‘ㄹ’음이 들어가는 어휘들은 함북, 함남, 평북, 평남의 방언이고, ‘ㄷ’음이 들어가는 어휘들은 경북, 경남, 전북, 전남의 방언이다. 제주에서는 개동개, 굴매, 굴메, 굼메, 궁글, 줄레로 부른다. 특이한 방언으로는 둥개(전남), 술래(경남), 쉬천(함남), 질매(전북), 춘천(강원·경북·전북), 호수마(충북), 훈주(전북)가 있다.

고어에서 그네는 글위, 그릐, 그리 등으로 나타난다. 『두시언해(杜詩諺解)』(1941),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악장가사(樂章歌詞)』(16세기 중엽)에는 글위로,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그릐로, 『동문유해(同文類解)』(1748)에는 그리로 각각 나타난다. 19세기 자료에는 근의, 그늬, 근우, 그느로 나타난다. 장자백 춘향가에 근의로, 경판본 춘향가에 그늬로, 고대본 춘향가에 근우로, 신재효 동창 춘향가에 그느로 각각 나타난다.

그네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네 뛸 때 발을 구르다’의 ‘구르다’가 활용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근의 희’, 곧 끈[繩]의 놀이[戱]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자는 글위 계열에 주목한 것이고, 후자는 근의 계열에 주목한 것이다. 위의 두 견해는 본격적인 연구 결과는 아니고, 한두 줄로 간단히 언급된 것이다. 이 단어의 변천 과정을 그릐>그리>그늬로 본다면 후자는 타당성이 없다.

유래

그네뛰기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것인지, 외국에서 전래된 것인지,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흔적은 없다. 갓난아기의 요람이 발전하여 그네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고, 농민들이 밭에 나갈 때 아이들끼리 집에서 잘 놀도록 대문에 추천을 매어주었는데, 이것이 그네로 발전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추녀를 향해 뛰었기 때문에 추천(鞦韆)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중국 춘추시대에 북방의 산융족(山戎族)이 즐기던 추천이 제(齊)나라로 전해졌고,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산융족은 한식 때 추천놀이를 하였고, 제나라가 산융과 전쟁을 하면서 추천이 제나라에 전해졌으며, 중국에서도 한식에 궁중에서 추천놀이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단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네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서부터 나타난다. 고려 현종(顯宗) 때 중국 사신 곽원(郭元)이 “고려에서는 단오에 추천놀이를 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최충헌(崔忠獻)은 고종 3년(1216) 5월 단오에 개성 백정동궁(栢井洞宮)에다 그네를 매고 3일간에 걸쳐서 4품 이상의 문무관을 초청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최이(崔怡)는 고종 32년(1245) 5월에 강화도에서 종실(宗室)의 사공(司空) 이상과 재추들을 위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이때 산처럼 높게 채붕을 가설하고 수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치고, 그 안에 비단과 채색비단 꽃으로 장식한 그네를 매었으며, 은과 자개로 장식한 큰 분(盆) 4개를 놓고 거기에다가 얼음산을 만들었다. 또 큰 통 4개에다가 10여 종의 이름난 생화들을 꽂아 놓아서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악(伎樂)과 온갖 잡희[百戱]를 보여주었는데, 팔방상 공인(八坊廂工人) 1,350여명이 모두 성대히 옷차림을 하고 뜰로 들어와서 주악(奏樂)하여 각종 악기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그네는 고려시대에는 상류계층에서 화려한 놀이로 즐겼다. 그리고 그네는 독자적인 놀이가 아니라 잔치나 기악백희(伎樂百戱)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 고종(高宗) 때 지어진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도 그네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네는 호두나무, 쥐엄나무에 붉은 줄로 매어져 있으며, 젊은 남녀가 즐기는 놀이로 암시되어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그네에 관한 시를 여러 편 남겼는데, 이를 통하여 고려시대에 민간에서도 단오에 그네뛰기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15세기 후반에 한양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 뒷골목에 화려하게 그네터를 설치하고, 도성을 남북 두 패로 나누어 내기를 하였는데, 장안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성현(成俔)의 시에 그네가 높이 솟아올라 방울을 울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신광수(申光洙)의 시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춘향가’의 최초 자료인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 춘향가(晩華本春香歌)’(1754)에서 춘향은 그네뛰기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그넷줄은 붉은색으로 묘사되었고, 그네를 뛰는 춘향은 선녀에 비유하였다.

내용

그네뛰기는 전국적으로 전승되었다. 무라야마(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 따르면, 그가 조사한 227개 지역 중에서 11개 지역을 제외한 216개 지역에서 그네뛰기가 행해지고 있다. 이 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그네뛰기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단오뿐만 아니라 사월 초파일부터 단오까지 그네뛰기를 하는 지역이 많고, 젊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도 그네뛰기를 하는 지역도 많다. 경기도 양주에서는 남자는 낮에, 여자는 밤에 그네를 뛰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충남 아산, 전북 옥구, 전남 순천·화순·장흥·강진·담양·해남·함평, 경남 함안·양산·진양·합천, 황해 은율, 함북 명천·성진·부령에서는 추석에도 그네를 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제주도에서는 추석에 그네뛰기를 한다. 그리고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단오에 젊은 남녀들이 그네뛰기놀이를 하는데, 서울이나 시골이 다 같고 특히 관서 지역에서 성대하게 한다. 어디에서나 옷을 곱게 차려입고 그네뛰기를 하며 좋은 음식으로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그네는 버드나무, 느티나무, 소나무의 가지에 매기도 하고, 평지에 두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에 매기도 한다. 후자를 ‘땅그네’라고 한다. 그넷줄은 볏짚이나 삼으로 만든 새끼줄이나 동아줄을 이용한다. 땅그네를 특별히 화려하게 꾸밀 때에는 색헝겊으로 그네틀을 장식한다. 그넷줄 아랫부분에 두 발을 올려놓는 부분을 밑싣개 혹은 앉을깨라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잡는 부분에는 안전줄을 달아 놓는다. 안전줄은 부드러운 무명으로 만들며, 두 손목과 그넷줄을 매어 놓는 다.

그네 뛰는 방법은 외그네뛰기와 맞그네뛰기(쌍그네뛰기)가 있다. 전자는 한 사람이 뛰는 것이고, 후자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함께 뛴다. 맞그네뛰기는 본격적인 외그네뛰기 다음에 여흥으로 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네뛰기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행한다. 첫째, 그네가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나뭇가지나 꽃가지를 목표물로 정해 놓고 그네를 굴러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에 무는 방법으로, 이것은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둘째, 그네 앞쪽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것에 닿도록 하는 방법으로, 밑에서 조종하여 방울줄을 점점 높여감으로써 최고 높이를 측정한다. 성현의 시로 보아 적어도 15세기에 이 방법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앉을깨 밑에 자눈[尺目]을 박은 줄을 매어 놓고 그넷줄의 정지 지점부터 공중으로 몇 미터 올라갔는지를 측정하여 우열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이것은 근래에 창안된 것이다.

5월에 젊은이들이 축제를 벌이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젊음의 축제는 발랄한 성(性)이 풍요로운 생산과 맞물리는 주술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네뛰기는 이러한 젊음의 축제에 잘 어울리는 놀이이다. 일상에 갇혀 있던 젊은 여성들은 5월 단오를 맞아 그네를 타고 하늘로 솟으며 젊음을 마음껏 발산한다. 한편, 그네뛰기는 다리의 힘을 길러주며 몸을 탄력 있게 가꾸어주기도 한다. 단오에 그네를 뛰면 한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고, 또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그래서 그네를 뛰면서, “5월 단오에 모기야 물러가라.” 하고 외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國歲時記, 宋史, 洌陽歲時記, 朝鮮王朝實錄, 訓蒙字會, 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著, 朝鮮總督府, 1941), 朝鮮常識 (崔南善, 東明社, 1948), 麗謠箋注-古歌硏究 續篇 (梁柱東 著, 乙酉文化社, 1954),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韓國方言辭典 (崔鶴根 著, 明文堂, 1987), 어원사전 (安玉奎 著, 吳正煥 編, 東北朝鮮民族敎育出版社, 1989), 북한 학자가 쓴 조선의 민속놀이 (도유호 외 씀, 주강현 해제, 푸른숲, 1999), 우리나라 민속놀이 (沈雨晟, 東文選, 2000)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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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뛰기

그네뛰기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전신재(全信宰)

정의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그네를 뛰면서 즐기는 놀이. 그네뛰기는 나뭇가지나 두 기둥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에 길게 두 줄을 매어 늘이고, 줄 아래에 밑싣개(앉을깨)를 걸쳐 놓고 올라가서 몸을 날려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하는 놀이이다. 한자어로는 추천희(鞦韆戱), 반선희(半仙戱), 유선희(遊仙戱)라고도 한다.

이칭 및 어원

그네의 방언은 매우 다양하다. 최학근의 『한국방언사전』에 그네의 방언이 66가지가 올라 있다. 빈도수가 많은 것은 구늘, 군대, 군데, 군듸, 군디, 군지, 굴기, 굴리, 그눌, 그늘, 근데, 근뒤, 근디, 훌기이다. 대체로 ‘ㄹ’음이 들어가는 어휘들은 함북, 함남, 평북, 평남의 방언이고, ‘ㄷ’음이 들어가는 어휘들은 경북, 경남, 전북, 전남의 방언이다. 제주에서는 개동개, 굴매, 굴메, 굼메, 궁글, 줄레로 부른다. 특이한 방언으로는 둥개(전남), 술래(경남), 쉬천(함남), 질매(전북), 춘천(강원·경북·전북), 호수마(충북), 훈주(전북)가 있다. 고어에서 그네는 글위, 그릐, 그리 등으로 나타난다. 『두시언해(杜詩諺解)』(1941), 『훈몽자회(訓蒙字會)』(1527), 『악장가사(樂章歌詞)』(16세기 중엽)에는 글위로, 『역어유해(譯語類解)』(1690)에는 그릐로, 『동문유해(同文類解)』(1748)에는 그리로 각각 나타난다. 19세기 자료에는 근의, 그늬, 근우, 그느로 나타난다. 장자백 춘향가에 근의로, 경판본 춘향가에 그늬로, 고대본 춘향가에 근우로, 신재효 동창 춘향가에 그느로 각각 나타난다. 그네의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그네 뛸 때 발을 구르다’의 ‘구르다’가 활용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근의 희’, 곧 끈[繩]의 놀이[戱]로 보는 견해가 있다. 전자는 글위 계열에 주목한 것이고, 후자는 근의 계열에 주목한 것이다. 위의 두 견해는 본격적인 연구 결과는 아니고, 한두 줄로 간단히 언급된 것이다. 이 단어의 변천 과정을 그릐>그리>그늬로 본다면 후자는 타당성이 없다.

유래

그네뛰기가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것인지, 외국에서 전래된 것인지, 이에 대해 깊이 연구한 흔적은 없다. 갓난아기의 요람이 발전하여 그네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고, 농민들이 밭에 나갈 때 아이들끼리 집에서 잘 놀도록 대문에 추천을 매어주었는데, 이것이 그네로 발전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추녀를 향해 뛰었기 때문에 추천(鞦韆)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중국 춘추시대에 북방의 산융족(山戎族)이 즐기던 추천이 제(齊)나라로 전해졌고, 이것이 다시 우리나라로 전해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산융족은 한식 때 추천놀이를 하였고, 제나라가 산융과 전쟁을 하면서 추천이 제나라에 전해졌으며, 중국에서도 한식에 궁중에서 추천놀이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단오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네에 관한 기록은 고려시대에서부터 나타난다. 고려 현종(顯宗) 때 중국 사신 곽원(郭元)이 “고려에서는 단오에 추천놀이를 한다.”라는 말을 전했다. 최충헌(崔忠獻)은 고종 3년(1216) 5월 단오에 개성 백정동궁(栢井洞宮)에다 그네를 매고 3일간에 걸쳐서 4품 이상의 문무관을 초청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최이(崔怡)는 고종 32년(1245) 5월에 강화도에서 종실(宗室)의 사공(司空) 이상과 재추들을 위하여 연희를 베풀었다. 이때 산처럼 높게 채붕을 가설하고 수단 장막과 능라 휘장을 둘러치고, 그 안에 비단과 채색비단 꽃으로 장식한 그네를 매었으며, 은과 자개로 장식한 큰 분(盆) 4개를 놓고 거기에다가 얼음산을 만들었다. 또 큰 통 4개에다가 10여 종의 이름난 생화들을 꽂아 놓아서 보는 사람의 눈을 황홀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악(伎樂)과 온갖 잡희[百戱]를 보여주었는데, 팔방상 공인(八坊廂工人) 1,350여명이 모두 성대히 옷차림을 하고 뜰로 들어와서 주악(奏樂)하여 각종 악기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그네는 고려시대에는 상류계층에서 화려한 놀이로 즐겼다. 그리고 그네는 독자적인 놀이가 아니라 잔치나 기악백희(伎樂百戱)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려 고종(高宗) 때 지어진 ‘한림별곡(翰林別曲)’에서도 그네는 고급스럽고 화려한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 그네는 호두나무, 쥐엄나무에 붉은 줄로 매어져 있으며, 젊은 남녀가 즐기는 놀이로 암시되어 있다. 이규보(李奎報)는 그네에 관한 시를 여러 편 남겼는데, 이를 통하여 고려시대에 민간에서도 단오에 그네뛰기가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15세기 후반에 한양 한복판인 종로 네거리 뒷골목에 화려하게 그네터를 설치하고, 도성을 남북 두 패로 나누어 내기를 하였는데, 장안의 부녀자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성현(成俔)의 시에 그네가 높이 솟아올라 방울을 울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고, 신광수(申光洙)의 시에 아름다운 옷을 입은 여인이 하늘로 솟아오르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춘향가’의 최초 자료인 유진한(柳振漢)의 ‘만화본 춘향가(晩華本春香歌)’(1754)에서 춘향은 그네뛰기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다. 이 장면에서 그넷줄은 붉은색으로 묘사되었고, 그네를 뛰는 춘향은 선녀에 비유하였다.

내용

그네뛰기는 전국적으로 전승되었다. 무라야마(村山智順)의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 따르면, 그가 조사한 227개 지역 중에서 11개 지역을 제외한 216개 지역에서 그네뛰기가 행해지고 있다. 이 조사를 보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5월 단오에 젊은 여인들이 그네뛰기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단오뿐만 아니라 사월 초파일부터 단오까지 그네뛰기를 하는 지역이 많고, 젊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도 그네뛰기를 하는 지역도 많다. 경기도 양주에서는 남자는 낮에, 여자는 밤에 그네를 뛰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충남 아산, 전북 옥구, 전남 순천·화순·장흥·강진·담양·해남·함평, 경남 함안·양산·진양·합천, 황해 은율, 함북 명천·성진·부령에서는 추석에도 그네를 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보면 제주도에서는 추석에 그네뛰기를 한다. 그리고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따르면 단오에 젊은 남녀들이 그네뛰기놀이를 하는데, 서울이나 시골이 다 같고 특히 관서 지역에서 성대하게 한다. 어디에서나 옷을 곱게 차려입고 그네뛰기를 하며 좋은 음식으로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그네는 버드나무, 느티나무, 소나무의 가지에 매기도 하고, 평지에 두 기둥을 세우고 기둥 윗부분에 가로지른 나무에 매기도 한다. 후자를 ‘땅그네’라고 한다. 그넷줄은 볏짚이나 삼으로 만든 새끼줄이나 동아줄을 이용한다. 땅그네를 특별히 화려하게 꾸밀 때에는 색헝겊으로 그네틀을 장식한다. 그넷줄 아랫부분에 두 발을 올려놓는 부분을 밑싣개 혹은 앉을깨라고 한다. 그리고 손으로 잡는 부분에는 안전줄을 달아 놓는다. 안전줄은 부드러운 무명으로 만들며, 두 손목과 그넷줄을 매어 놓는 다. 그네 뛰는 방법은 외그네뛰기와 맞그네뛰기(쌍그네뛰기)가 있다. 전자는 한 사람이 뛰는 것이고, 후자는 두 사람이 마주 서서 함께 뛴다. 맞그네뛰기는 본격적인 외그네뛰기 다음에 여흥으로 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네뛰기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행한다. 첫째, 그네가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나뭇가지나 꽃가지를 목표물로 정해 놓고 그네를 굴러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에 무는 방법으로, 이것은 가장 오래된 방법이다. 둘째, 그네 앞쪽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것에 닿도록 하는 방법으로, 밑에서 조종하여 방울줄을 점점 높여감으로써 최고 높이를 측정한다. 성현의 시로 보아 적어도 15세기에 이 방법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앉을깨 밑에 자눈[尺目]을 박은 줄을 매어 놓고 그넷줄의 정지 지점부터 공중으로 몇 미터 올라갔는지를 측정하여 우열을 결정하는 방법으로, 이것은 근래에 창안된 것이다. 5월에 젊은이들이 축제를 벌이는 것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젊음의 축제는 발랄한 성(性)이 풍요로운 생산과 맞물리는 주술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네뛰기는 이러한 젊음의 축제에 잘 어울리는 놀이이다. 일상에 갇혀 있던 젊은 여성들은 5월 단오를 맞아 그네를 타고 하늘로 솟으며 젊음을 마음껏 발산한다. 한편, 그네뛰기는 다리의 힘을 길러주며 몸을 탄력 있게 가꾸어주기도 한다. 단오에 그네를 뛰면 한여름에 모기에 물리지 않고, 또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그래서 그네를 뛰면서, “5월 단오에 모기야 물러가라.” 하고 외치기도 한다.

참고문헌

高麗史, 東國歲時記, 宋史, 洌陽歲時記, 朝鮮王朝實錄, 訓蒙字會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著, 朝鮮總督府, 1941)朝鮮常識 (崔南善, 東明社, 1948)麗謠箋注-古歌硏究 續篇 (梁柱東 著, 乙酉文化社, 1954)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韓國方言辭典 (崔鶴根 著, 明文堂, 1987)어원사전 (安玉奎 著, 吳正煥 編, 東北朝鮮民族敎育出版社, 1989)북한 학자가 쓴 조선의 민속놀이 (도유호 외 씀, 주강현 해제, 푸른숲, 1999)우리나라 민속놀이 (沈雨晟, 東文選,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