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등놀이

한자명

觀燈-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정일

집필자 편무영(片茂永)
갱신일 2019-05-17

정의

음력 사월 초파일을 맞이하여 벌이던 등(燈)놀이의 총칭.

내용

한국적 파일놀이의 중핵을 말한다면, 그것은 등(燈)이며 관등(觀燈)놀이이다. 팔일장(八日粧)은 이때의 아동천국(兒童天國)을 상징하며 예쁘게 치장하는 놀이이고, 다른 놀이들은 초파일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놀이의 대부분은 등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고, 등놀이야말로 파일놀이의 한국적 보편성이자 불교문화권에서 볼 때는 특수성을 지닌다. 관등놀이의 연원은 고려시대의 팔관회나 정월연등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등놀이가 유입된 이후 고려시대부터 한국적 등놀이로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시대부터는 초파일의 관등놀이가 일반화되었다.

불교에서의 관등은 마음을 밝히는 등으로 해석하지만, 세간의 관등놀이는 한마디로 등을 달고 논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등놀이를 넓게 본다면 등을 달고 즐기는 관등, 호기놀이, 굴등놀이, 낙화놀이, 불꽃놀이, 제등행렬, 횃불놀이가 포함된다.

지금은 절에서나 등(燈)을 달지만 과거에는 초파일 며칠 전부터 뜰에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가족 수대로 등을 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을 등간(燈竿) 또는 등주(燈柱)라고 하는데, 그 위에 꿩깃을 꽂고 물들인 비단으로 기를 매달기도 했다. 기록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등간을 호기(呼旗)라고도 하지만, 호기의 본래 의미는 호기놀이[呼旗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기놀이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아동들이 종이를 오려 기를 만들고 또 북을 치면서 거리를 몰려다니며 연등행사에 쓰일 준비물을 얻기 위한 놀이였다.

그 밖에 평양의 굴등놀이가 유명한데, 4~5미터에 해당하는 장대를 양 옆에 세우고 거기에 등줄을 건너 맨 다음 직경 1미터, 높이 1.5미터의 큰 등(그 안에 20여 개의 촛불을 켠다)을 한가운데 맨다. 그 등줄을 잡아당기면 등불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구경하는 놀이이다. 역시 평양의 방석불놀이는 석양이 비낄 때 연광정 앞 대동강 물 위에 수십 개의 방석을 띄우고 거기에 광솔불을 달고는 물 위의 불바다를 구경하는 것이다.

낙화놀이는 줄불놀이라고도 하며 마산, 안동, 영산, 거창, 고성, 진해 등지에서 보고된 바 있다. 느티나무나 참나무 껍질로 숯을 만들어 가루로 빻은 다음 3~5센티미터 정도의 한지를 오려 숯을 넣고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 불씨주머니를 만든다. 빨리 점화시키기 위해 유황을 줄불 끝에 묻히기도 한다. 밤하늘에 불꽃이 연속적으로 튀며 찬란한 불꽃을 흩어놓는 것이 마치 수천수만의 반딧불이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떨어지는데, 물이 있는 곳에서는 불꽃이 물에 반사되어 더욱 장관이다. 경남 영산에서는 숯가루에 화약을 섞기도 하며, 거창에서는 창호지를 부고(訃告)에 모아 사용했다.

원래 등을 달고 논다는 것은 불꽃놀이같이 딱총이나 폭죽을 이용하여 노는 놀이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불꽃놀이를 대신하여 등을 달고 제등행렬을 거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행렬에는 동원된 학생들이 중심이었고 차츰 시민들도 동원되기 시작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의 신풍속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거의 비슷한 제등행렬이 규정화되어 있었고, 접이등[倭燈]도 이때 유입되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제등행렬이 훨씬 더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초파일이 원래부터 종합 문화축제의 성격이 강한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不咸文化論, 慵齋叢話, 朝鮮常識問答
중세등불놀이에 관한 연구 (김호섭, 력사과학112, 과학백과사전출판사)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2)
초파일민속론 (편무영, 민속원, 2002)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佛敎民俗놀이 篇 (國立文化財硏究所, 2002)
韓國宗敎民俗試論 (편무영 외, 민속원, 2004)

관등놀이

관등놀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정일

집필자 편무영(片茂永)
갱신일 2019-05-17

정의

음력 사월 초파일을 맞이하여 벌이던 등(燈)놀이의 총칭.

내용

한국적 파일놀이의 중핵을 말한다면, 그것은 등(燈)이며 관등(觀燈)놀이이다. 팔일장(八日粧)은 이때의 아동천국(兒童天國)을 상징하며 예쁘게 치장하는 놀이이고, 다른 놀이들은 초파일이 아니더라도 볼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러므로 놀이의 대부분은 등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고, 등놀이야말로 파일놀이의 한국적 보편성이자 불교문화권에서 볼 때는 특수성을 지닌다. 관등놀이의 연원은 고려시대의 팔관회나 정월연등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등놀이가 유입된 이후 고려시대부터 한국적 등놀이로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조선시대부터는 초파일의 관등놀이가 일반화되었다. 불교에서의 관등은 마음을 밝히는 등으로 해석하지만, 세간의 관등놀이는 한마디로 등을 달고 논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관등놀이를 넓게 본다면 등을 달고 즐기는 관등, 호기놀이, 굴등놀이, 낙화놀이, 불꽃놀이, 제등행렬, 횃불놀이가 포함된다. 지금은 절에서나 등(燈)을 달지만 과거에는 초파일 며칠 전부터 뜰에 장대를 세우고 그 끝에 가족 수대로 등을 다는 풍습이 있었다. 그것을 등간(燈竿) 또는 등주(燈柱)라고 하는데, 그 위에 꿩깃을 꽂고 물들인 비단으로 기를 매달기도 했다. 기록에 따라서는 이와 같은 등간을 호기(呼旗)라고도 하지만, 호기의 본래 의미는 호기놀이[呼旗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호기놀이란 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 아동들이 종이를 오려 기를 만들고 또 북을 치면서 거리를 몰려다니며 연등행사에 쓰일 준비물을 얻기 위한 놀이였다. 그 밖에 평양의 굴등놀이가 유명한데, 4~5미터에 해당하는 장대를 양 옆에 세우고 거기에 등줄을 건너 맨 다음 직경 1미터, 높이 1.5미터의 큰 등(그 안에 20여 개의 촛불을 켠다)을 한가운데 맨다. 그 등줄을 잡아당기면 등불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게 되는데, 이것을 구경하는 놀이이다. 역시 평양의 방석불놀이는 석양이 비낄 때 연광정 앞 대동강 물 위에 수십 개의 방석을 띄우고 거기에 광솔불을 달고는 물 위의 불바다를 구경하는 것이다. 낙화놀이는 줄불놀이라고도 하며 마산, 안동, 영산, 거창, 고성, 진해 등지에서 보고된 바 있다. 느티나무나 참나무 껍질로 숯을 만들어 가루로 빻은 다음 3~5센티미터 정도의 한지를 오려 숯을 넣고 꽈배기 모양으로 꼬아 불씨주머니를 만든다. 빨리 점화시키기 위해 유황을 줄불 끝에 묻히기도 한다. 밤하늘에 불꽃이 연속적으로 튀며 찬란한 불꽃을 흩어놓는 것이 마치 수천수만의 반딧불이 춤추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떨어지는데, 물이 있는 곳에서는 불꽃이 물에 반사되어 더욱 장관이다. 경남 영산에서는 숯가루에 화약을 섞기도 하며, 거창에서는 창호지를 부고(訃告)에 모아 사용했다. 원래 등을 달고 논다는 것은 불꽃놀이같이 딱총이나 폭죽을 이용하여 노는 놀이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불꽃놀이를 대신하여 등을 달고 제등행렬을 거행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행렬에는 동원된 학생들이 중심이었고 차츰 시민들도 동원되기 시작하였는데, 일제강점기의 신풍속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거의 비슷한 제등행렬이 규정화되어 있었고, 접이등[倭燈]도 이때 유입되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제등행렬이 훨씬 더 성대하게 거행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초파일이 원래부터 종합 문화축제의 성격이 강한 반면 일본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不咸文化論, 慵齋叢話, 朝鮮常識問答중세등불놀이에 관한 연구 (김호섭, 력사과학112, 과학백과사전출판사)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慶尙南道 篇 (文化財管理局, 1972)초파일민속론 (편무영, 민속원, 2002)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佛敎民俗놀이 篇 (國立文化財硏究所, 2002)韓國宗敎民俗試論 (편무영 외, 민속원,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