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탈춤

한자명

康翎-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양종승(梁鍾承)
갱신일 2018-11-12

정의

강령탈춤은 황해도 강령(康翎)지방에서 유래된 마당놀이로서 탈꾼이 탈(가면)을 쓰고 춤을 추면서 노래와 극적인 대사를 하는 종합예술극. 강령탈춤은 주로 정초, 대보름, 초파일, 단오, 추석 같은 명절날 놀았으며, 때에 따라서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대동 행사 때 놀았다. 이를 강령탈놀이, 강령가면극, 강령가면무극이라고도 한다.

유래

강령탈춤이 언제부터 전해져 왔는가를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강령탈춤의 양반·말뚝이과장(科場)에 진한양반, 마한양반, 변한양반이 등장하지만, 이와 관련된 자료나 근거가 없으므로 등장인물만을 가지고 삼한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강령은 몇 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독자적으로 탈춤이 전승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해주나 인근 지역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리라는 추측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강령탈춤이 미미한 형태로 전승되다가 19세기 말에 체계를 갖추어 비로소 1900년을 전후하여 번성하였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강령탈춤과 인근 지역과의 관련성에 관한 문헌 또는 구전 자료가 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령탈춤은 해주, 옹진 같은 황해도 남쪽 지역의 탈춤들과 서로 영향을 받으며 전승, 발전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황해도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탈춤들의 가면형태, 춤형식, 연기방법, 과장별 순서를 분석하여 볼 때, 크게 봉산, 재령, 신천, 은율의 봉산탈춤형과 해주, 강령의 해주탈춤형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한일합방 후 강령 출신으로서 옥관자(玉貫子)까지 탄 관기(官妓) 김금옥이 은퇴한 후 고향 강령으로 돌아와 탈춤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강령탈춤은 한국전쟁 때 남하한 전승자들에 의해 서울과 인천에서 재현되었고, 1970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강령탈춤은 원래 전승지인 황해도 강령지방을 떠나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한 일대에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강령탈춤은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승 발전되어 오다가 20세기 중반에 들어 대사가 기록되고 탈꾼들은 대사본을 외워서 공연했다. 따라서 강령탈춤은 시대적 사회상을 기반으로 한 즉흥 마당극에서 고정된 대사본에 의해 공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강령탈춤 대사는 여러 명의 채록자와 정리자들에 의해 여러 개의 이본(異本)이 있다.

최초의 대사본은 1943년에 채록되어 1957년과 1972년에 발표된 임석재 채록본이다. 탈춤 현장에서 채록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인 강령탈춤 지도자 송규흠을 비롯하여 연희자 최승원, 최준봉을 대상으로 채록된 것이다. 이 채록은 당시 양정중학교에 다니면서 은사 임석재 선생에게 강령탈춤에 대해 제보한 김응규의 노고가 있었다.

강령탈춤의 두 번째 대사본은 1955년 김일출에 의해 채록되어 1958년에 발표된 것이다. 이 채록본은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민속탈놀이 연구』에 8쪽 분량으로 수록되었다. 뒤늦게 남북 문화 및 학문 교류사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져 1998년에 영인본이 나왔다. 본문에 따른 주석 번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석 말미에 보면 1955년 5월에 현지 조사를 통해 함계휘, 최승원 그리고 다른 두 명이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함계휘나 최승원은 강령탈춤 연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최승원은 임석재가 채록할 당시 구술자였으며, 함계휘는 김응규와 함께 활동하였던 사람이다.

강령탈춤의 세 번째 대사본은 1967년과 1983년에 발간된 최상수 채록본이다. 최상수본 강령탈춤 대사는 해서지방의 다른 가면극 대사본과 함께 『해서가면극의 연구』로 발간되었는데, 정확한 조사 장소, 일시, 제보자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채록자 최상수는 강령 현지에서 채록하였다고 증언하였다.

1969년에 이두현, 김기수 채록 및 정리본이 나왔는데, 이는 강령탈춤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67호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간행한 것이다. 탈춤 현장에서 채록된 것이 아니라 주요 대상자들을 미리 선정한 후 임석재 채록본을 토대로 하여 제보자들의 구술을 정리한 것이다. 1979년에는 이재인 정리본이 발간되었다. 이것은 이두현, 김기수가 작성한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 실린 대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982년에는 양종승 정리본이 문화재보호협회에서 발간한 『탈춤대사집』에 수록되었다. 이는 당시 강령탈춤보존회에서 사용하던 대사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986년에는 김영석 정리본이 발간되었는데, 기존에 발간된 대사본들을 기초삼아 작성한 것이다. 1989년에는 김정순, 김실자 정리본이 문화재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강령탈춤보존회에서 공식적인 전수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앞서 발간된 정리본과 같이 기존 대본들을 토대로 정리하였다. 2002년에는 정형호 정리본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펼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록보존사업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대사본은 기존의 채록본과 정리본들 그리고 현재 강령탈춤보존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김정순, 김실자 대사본을 토대로 하고, 강령탈춤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희자들을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4년에 새로운 채록본과 정리본이 김응규, 양종승에 의해 발간되었다. 이는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강령 출신 이겸하, 김응규, 송순희의 구술에 의해 채록된 것이다.

내용

강령탈춤에서 사용하는 탈은 모두 종이탈이며 총 스무 종류가 있다. 원숭이탈, 사자탈, 마부탈, 말뚝이탈, 목중탈, 상좌탈, 진한양반탈, 마한양반탈, 변한양반탈, 도령탈, 취발이탈, 취발이새끼탈, 노승탈, 소무탈, 미얄영감탈, 미얄할멈탈, 용산삼계집탈, 무당탈, 남강노인탈, 문사장탈이 그것인데, 탈은 일회용으로 만들어지며 탈놀이가 끝난 후 뒷놀이에서 모두 태운다. 이는 탈놀이의 종결을 뜻할 뿐만 아니라 탈판과 탈꾼에 끼어들었을지도 모를 나쁜 액을 없애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탈을 보관하였다가 다시 사용한다.

강령탈춤은 앞놀이, 탈놀이, 뒷놀이 등 3단계로 구분된다. 앞놀이는 길놀이와 서막고사로 꾸며지고, 탈놀이는 총 7개 과장으로 짜이는데, 제1과장 사자춤(원숭이춤과 마부춤 포함), 제2과장 말뚝이춤, 제3과장 목중춤, 제4과장 상좌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제1경 팔목중춤, 제2경 노승춤, 제3경 취발춤), 제7과장 미얄영감·미얄할미춤(제1경 미얄영감춤, 제2경 미얄함멈춤, 제3경 무당춤)으로 되어 있다. 뒷놀이는 탈태우기와 뒷풀이로 구성된다.

강령탈춤의 길놀이는 출연자들이 모두 줄지어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돈다. 맨 앞에 깃발을 앞세우고 그 다음에 꽹과리, 징, 장구, 북, 새납 등의 악사들이 따라간다. 이어서 말뚝이 2명, 사자 2마리, 마부 2명, 원숭이, 상좌 2명, 목중 2명, 취발이, 노승, 진한양반(맏양반), 마한양반(둘째양반), 변한양반(재물대감), 도령, 미얄영감, 미얄할멈, 용산삼계집, 남강노인, 문사장, 무당 순의 탈꾼들이 악사 뒤를 따른다. 소무는 말이나 가마를 타기도 하고 남강노인은 검정소를 타기도 한다. 길놀이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탈판으로 행하는데, 그 목적은 탈놀이의 시작을 알리고 동시에 나쁜 액이나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여 마을을 정화시키기 위함이다. 길놀이를 마치고 나면 탈판 중앙에서 서막고사를 지낸다.

강령탈춤 탈놀이는 제1과장 사자춤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 원숭이춤과 마부춤이 포함된다. 사자는 흰 바지저고리에 털이 달린 사자바지를 입는다. 마부는 흰 바지저고리에 검정색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두르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꽃패랭이를 쓴다. 원숭이는 빨간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홍색 띠를 허리 뒤로 두른다. 빨간양말장갑을 낀다. 사자춤 음악은 길놀이장단, 느린타령, 자진굿거리이다. 사자춤에는 암사자와 숫사자 두 마리가 등장하는데, 앞사자꾼은 사자탈을 양손으로 쳐올려 잡고 뒷사자꾼은 오른손을 뒤로 돌려 사자 꼬리를 잡는다. 마부 두 명이 각각의 사자를 몰게 된다. 원숭이가 사자 주위에서 춤을 춘다.

제2과장 말뚝이춤은 두 말뚝이가 똑같은 가면, 복색, 소도구를 갖추고 왼손에 5척 내지 6척 되는 곤장을 든다. 말뚝이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색 더거리를 입는다. 허리에 황색 띠를 뒤로 두르고 왕방울을 찬 후 채찍을 꽂는다. 양 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꽃패랭이를 쓴다. 두 말뚝이가 각각 탈판 양쪽에서 달음질치듯 껑충껑충 중앙으로 뛰쳐나와 서로 마주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같은 동작을 반복한 후 서로 마주보고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염불 장단과 타령 장단에서는 곤장을 들고 추다가 마지막 자진굿거리에서는 허리 뒤에 꽂아 두었던 채찍을 들고 마주 서서 춤을 춘다.

제3과장 목중춤은 첫째 목중과 둘째 목중이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차례로 등장하여 춤을 춘다. 목중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칡베 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송낙을 쓴다. 첫 목중이 등장하여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장삼춤을 추고 나면 이어서 둘째 목중이 등장하여 장삼으로 첫 목중을 후려쳐 내쫓고 염불, 느린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춘 후 퇴장한다.

제4과장 상좌춤에서는 두 명의 상좌가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양쪽 귀퉁이에서 등장하여 마주 서서 춤을 춘다. 상좌춤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백장삼을 입은 후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건다. 염불, 느린타령,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춘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은 양반 가문에 못난 네 명의 양반이 두 명의 하인 말뚝이에게 끌려나와 대사와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진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회색 칡베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묶고 지팡이를 짚으며 그려진 화선을 들고 머리에 가면을 쓴 후 개가죽관을 쓴다. 마한양반은 진한양반의 차림새와 같고 백색 부채와 지팡이를 짚고 가면을 쓴 후 총관을 쓴다. 변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옥색 도포쾌자를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매며 화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홍관을 쓴다. 도령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쾌자를 입고 술띠를 맨다. 백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복건을 쓴다. 두 말뚝이는 말뚝이춤 과정의 차림새와 같고 채찍을 든다. 양반­말뚝이춤 과정은 주로 자진굿거리 장단을 사용하고, 변한양반이 등장해서는 장타령장단, 만세바지장단, 굿장단 등을 사용한다. 양반ㆍ말뚝이춤은 장삼춤, 부채춤, 지팡이춤, 병신춤, 무당춤, 한삼춤, 채찍춤으로 이루어진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은 크게 세 가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술 취한 취발이가 그를 따르는 일곱 명의 목중과 함께 팔목중춤의 군무를 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두 명의 상좌를 대동한 노승이 아리따운 소무(小巫)를 보고 동하여 불법을 파계하는 춤이며, 세 번째는 취발이가 노승한테서 빼앗은 소무를 데리고 흥겹게 즐기다가 소무가 낳은 취발이 새끼를 데리고 글공부를 가르치는 춤으로 되어 있다. 목중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맨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취발이는 흰 바지저고리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점박이가 박힌 붉은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황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왕방울을 찬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양손에 푸른 느티나무 또는 버드나무 한 묶음을 든다. 소무는 홍치마 노랑저고리에 남쾌자를 입고 제비홍띠를 허리 뒤로 둘러맨다. 색동한삼을 손목에 끼고 가면을 쓴 후 벙거지를 쓴다. 상좌는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백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둘렀으며 염주를 목에 건다. 노승은 회색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회색 칡베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어깨에 멘다.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화선과 육환장을 들며 가면을 쓴 후 송낙을 쓴다. 노승·취발이춤은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춘다.

제7과장 미얄영감·할미춤은 크게 세 가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미얄영감춤, 두 번째는 미얄할멈춤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미얄영감, 미얄할멈, 용산삼계집 세 사람의 삼각관계에서 애정과 갈등을 소재로 한 서민생활의 애환 및 일부처첩(一夫妻妾) 생활상을 다룬다. 영감은 난리통에 할멈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주막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 첩으로 삼는다. 할멈은 고생 끝에 영감과 상면한다. 영감을 사이에 둔 할멈과 용산삼계집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결국 할멈이 쫓겨난다. 세 번째 춤은 영감과 첩으로부터 내쫓긴 할멈이 죽게 되자 마을의 원로격인 남강노인이 등장하여 무당을 불러 미얄할멈을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진오귀굿을 한다.

탈놀이가 끝난 후 사용한 탈들을 모두 모닥불에 태운다. 그리고 뒷풀이가 이어진다. 뒷풀이에서는 탈꾼, 악사, 관객이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밤새껏 신명풀이를 하고 논다. 뒷풀이는 탈판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장이다.

강령탈춤은 해서 지역의 다른 탈춤과 함께 사위춤 형식으로 전승 발전되어 왔다. 사위춤 형식이란 예를 들어, 남쪽지방의 오광대 및 들놀음의 덧뵈기춤이나 중부지방 산대놀이깨끼춤(거드름춤)과는 달리, 북쪽지방 황해도 일대에서만 전승되어 온 춤 형식으로서 흰색 한삼을 손목에 끼고 활달하게 뿌리면서 동적인 춤을 춘다. 한편, 강령탈춤에는 사위춤과 함께 다른 지역의 탈춤에서는 보이지 않는 칡베장삼춤이 있다. 이는 칡베장삼을 이용하여 활기차게 감고 뿌리면서 추는 일종의 장삼춤이다. 강령탈춤에는 하얀 한삼을 이용하여 추는 한삼사위춤뿐만 아니라 기다란 칡베장삼을 이용한 칡베장삼춤이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

강령탈춤에는 총 16종의 기본춤이 있는데, 이것들은 강령탈춤 전 과장에 두루 쓰이는 기본적인 춤사위이다. 16가지의 기본 춤사위는 겹사위(곱사위), 앉아여닫이, 엇사위(뽑는사위), 엎매기, 고개잡이, 인사사위, 겨누기, 앉아뛰기, 돌며앉아뛰기, 쪼그려뛰기, 양사위, 한삼걷기, 코차기, 엎발찧기, 외사위 그리고 돌며외사위이다.

참고문헌

강령탈춤 대사 (임석재, 현대문학29, 1957)
조선민속탈놀이연구 (김일출, 과학원출판사, 1958)
無形文化財 調査報告書 第六七號 康翎탈춤 (李杜鉉·金琪洙, 文化財管理局, 1969)
춤사위 (鄭昞浩 著,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81)
海西 假面劇의 硏究 (崔常壽, 正東出版社, 1983)
康翎탈춤 硏究 (梁鍾承, 韓國民俗學17, 韓國民俗學會, 1984)
韓國假面劇硏究 (朴鎭泰, 새문社, 1985)
탈 (金永石, 銀河出版社, 1986)
강령 말뚝이 과장 연구-춤사위 의미론적 연구를 중심으로 (이명경, 한국무용연구4, 한국무용연구회, 1986)
황해도탈놀이 (徐淵昊, 悅話堂, 1988)
강령탈춤교본 (김실자·김정순, 강령탈춤보존회, 1989)
한국가면극-그 역사와 원리 (전경욱, 悅話堂, 1998)
강령탈춤을 통해 본 가면극의 무용적 요소 (양종승, 고전희곡연구5, 한국고전희곡학회, 2002)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 (정형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강령탈춤 자료집-주석 연희본 및 무용적 짜임새 (양종승, 민속원, 2004)

강령탈춤

강령탈춤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정일

집필자 양종승(梁鍾承)
갱신일 2018-11-12

정의

강령탈춤은 황해도 강령(康翎)지방에서 유래된 마당놀이로서 탈꾼이 탈(가면)을 쓰고 춤을 추면서 노래와 극적인 대사를 하는 종합예술극. 강령탈춤은 주로 정초, 대보름, 초파일, 단오, 추석 같은 명절날 놀았으며, 때에 따라서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마을 주민들의 화합을 다지는 대동 행사 때 놀았다. 이를 강령탈놀이, 강령가면극, 강령가면무극이라고도 한다.

유래

강령탈춤이 언제부터 전해져 왔는가를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강령탈춤의 양반·말뚝이과장(科場)에 진한양반, 마한양반, 변한양반이 등장하지만, 이와 관련된 자료나 근거가 없으므로 등장인물만을 가지고 삼한시대부터 유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편, 강령은 몇 개의 작은 마을이 모여 이루어진 지역이어서 독자적으로 탈춤이 전승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해주나 인근 지역에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리라는 추측 또한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강령탈춤이 미미한 형태로 전승되다가 19세기 말에 체계를 갖추어 비로소 1900년을 전후하여 번성하였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강령탈춤과 인근 지역과의 관련성에 관한 문헌 또는 구전 자료가 전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령탈춤은 해주, 옹진 같은 황해도 남쪽 지역의 탈춤들과 서로 영향을 받으며 전승, 발전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황해도 일대에서 전승되어 온 탈춤들의 가면형태, 춤형식, 연기방법, 과장별 순서를 분석하여 볼 때, 크게 봉산, 재령, 신천, 은율의 봉산탈춤형과 해주, 강령의 해주탈춤형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한편, 한일합방 후 강령 출신으로서 옥관자(玉貫子)까지 탄 관기(官妓) 김금옥이 은퇴한 후 고향 강령으로 돌아와 탈춤 형성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현재 강령탈춤은 한국전쟁 때 남하한 전승자들에 의해 서울과 인천에서 재현되었고, 1970년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강령탈춤은 원래 전승지인 황해도 강령지방을 떠나 지금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한 일대에서 폭넓게 전승되고 있다. 강령탈춤은 처음에는 구전으로 전승 발전되어 오다가 20세기 중반에 들어 대사가 기록되고 탈꾼들은 대사본을 외워서 공연했다. 따라서 강령탈춤은 시대적 사회상을 기반으로 한 즉흥 마당극에서 고정된 대사본에 의해 공연되고 있다. 지금까지 강령탈춤 대사는 여러 명의 채록자와 정리자들에 의해 여러 개의 이본(異本)이 있다. 최초의 대사본은 1943년에 채록되어 1957년과 1972년에 발표된 임석재 채록본이다. 탈춤 현장에서 채록된 것은 아니지만 실제적인 강령탈춤 지도자 송규흠을 비롯하여 연희자 최승원, 최준봉을 대상으로 채록된 것이다. 이 채록은 당시 양정중학교에 다니면서 은사 임석재 선생에게 강령탈춤에 대해 제보한 김응규의 노고가 있었다. 강령탈춤의 두 번째 대사본은 1955년 김일출에 의해 채록되어 1958년에 발표된 것이다. 이 채록본은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민속탈놀이 연구』에 8쪽 분량으로 수록되었다. 뒤늦게 남북 문화 및 학문 교류사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알려져 1998년에 영인본이 나왔다. 본문에 따른 주석 번호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주석 말미에 보면 1955년 5월에 현지 조사를 통해 함계휘, 최승원 그리고 다른 두 명이 구술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함계휘나 최승원은 강령탈춤 연희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최승원은 임석재가 채록할 당시 구술자였으며, 함계휘는 김응규와 함께 활동하였던 사람이다. 강령탈춤의 세 번째 대사본은 1967년과 1983년에 발간된 최상수 채록본이다. 최상수본 강령탈춤 대사는 해서지방의 다른 가면극 대사본과 함께 『해서가면극의 연구』로 발간되었는데, 정확한 조사 장소, 일시, 제보자 등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채록자 최상수는 강령 현지에서 채록하였다고 증언하였다. 1969년에 이두현, 김기수 채록 및 정리본이 나왔는데, 이는 강령탈춤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중요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제67호로 문화재관리국에서 간행한 것이다. 탈춤 현장에서 채록된 것이 아니라 주요 대상자들을 미리 선정한 후 임석재 채록본을 토대로 하여 제보자들의 구술을 정리한 것이다. 1979년에는 이재인 정리본이 발간되었다. 이것은 이두현, 김기수가 작성한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에 실린 대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982년에는 양종승 정리본이 문화재보호협회에서 발간한 『탈춤대사집』에 수록되었다. 이는 당시 강령탈춤보존회에서 사용하던 대사본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986년에는 김영석 정리본이 발간되었는데, 기존에 발간된 대사본들을 기초삼아 작성한 것이다. 1989년에는 김정순, 김실자 정리본이 문화재관리국의 지원을 받아 출간되었다. 강령탈춤보존회에서 공식적인 전수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앞서 발간된 정리본과 같이 기존 대본들을 토대로 정리하였다. 2002년에는 정형호 정리본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펼치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기록보존사업으로 간행되었다. 여기에 수록된 대사본은 기존의 채록본과 정리본들 그리고 현재 강령탈춤보존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김정순, 김실자 대사본을 토대로 하고, 강령탈춤보존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희자들을 대상으로 정리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2004년에 새로운 채록본과 정리본이 김응규, 양종승에 의해 발간되었다. 이는 1981년과 1982년에 걸쳐 강령 출신 이겸하, 김응규, 송순희의 구술에 의해 채록된 것이다.

내용

강령탈춤에서 사용하는 탈은 모두 종이탈이며 총 스무 종류가 있다. 원숭이탈, 사자탈, 마부탈, 말뚝이탈, 목중탈, 상좌탈, 진한양반탈, 마한양반탈, 변한양반탈, 도령탈, 취발이탈, 취발이새끼탈, 노승탈, 소무탈, 미얄영감탈, 미얄할멈탈, 용산삼계집탈, 무당탈, 남강노인탈, 문사장탈이 그것인데, 탈은 일회용으로 만들어지며 탈놀이가 끝난 후 뒷놀이에서 모두 태운다. 이는 탈놀이의 종결을 뜻할 뿐만 아니라 탈판과 탈꾼에 끼어들었을지도 모를 나쁜 액을 없애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근래에는 탈을 보관하였다가 다시 사용한다. 강령탈춤은 앞놀이, 탈놀이, 뒷놀이 등 3단계로 구분된다. 앞놀이는 길놀이와 서막고사로 꾸며지고, 탈놀이는 총 7개 과장으로 짜이는데, 제1과장 사자춤(원숭이춤과 마부춤 포함), 제2과장 말뚝이춤, 제3과장 목중춤, 제4과장 상좌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제1경 팔목중춤, 제2경 노승춤, 제3경 취발춤), 제7과장 미얄영감·미얄할미춤(제1경 미얄영감춤, 제2경 미얄함멈춤, 제3경 무당춤)으로 되어 있다. 뒷놀이는 탈태우기와 뒷풀이로 구성된다. 강령탈춤의 길놀이는 출연자들이 모두 줄지어 풍악을 울리면서 마을을 돈다. 맨 앞에 깃발을 앞세우고 그 다음에 꽹과리, 징, 장구, 북, 새납 등의 악사들이 따라간다. 이어서 말뚝이 2명, 사자 2마리, 마부 2명, 원숭이, 상좌 2명, 목중 2명, 취발이, 노승, 진한양반(맏양반), 마한양반(둘째양반), 변한양반(재물대감), 도령, 미얄영감, 미얄할멈, 용산삼계집, 남강노인, 문사장, 무당 순의 탈꾼들이 악사 뒤를 따른다. 소무는 말이나 가마를 타기도 하고 남강노인은 검정소를 타기도 한다. 길놀이는 마을을 한 바퀴 돌아 탈판으로 행하는데, 그 목적은 탈놀이의 시작을 알리고 동시에 나쁜 액이나 해로운 기운을 제거하여 마을을 정화시키기 위함이다. 길놀이를 마치고 나면 탈판 중앙에서 서막고사를 지낸다. 강령탈춤 탈놀이는 제1과장 사자춤부터 시작하는데 여기에 원숭이춤과 마부춤이 포함된다. 사자는 흰 바지저고리에 털이 달린 사자바지를 입는다. 마부는 흰 바지저고리에 검정색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두르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꽃패랭이를 쓴다. 원숭이는 빨간색 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홍색 띠를 허리 뒤로 두른다. 빨간양말과 장갑을 낀다. 사자춤 음악은 길놀이장단, 느린타령, 자진굿거리이다. 사자춤에는 암사자와 숫사자 두 마리가 등장하는데, 앞사자꾼은 사자탈을 양손으로 쳐올려 잡고 뒷사자꾼은 오른손을 뒤로 돌려 사자 꼬리를 잡는다. 마부 두 명이 각각의 사자를 몰게 된다. 원숭이가 사자 주위에서 춤을 춘다. 제2과장 말뚝이춤은 두 말뚝이가 똑같은 가면, 복색, 소도구를 갖추고 왼손에 5척 내지 6척 되는 곤장을 든다. 말뚝이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홍색 더거리를 입는다. 허리에 황색 띠를 뒤로 두르고 왕방울을 찬 후 채찍을 꽂는다. 양 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꽃패랭이를 쓴다. 두 말뚝이가 각각 탈판 양쪽에서 달음질치듯 껑충껑충 중앙으로 뛰쳐나와 서로 마주보고는 깜짝 놀란다. 이같은 동작을 반복한 후 서로 마주보고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을 춘다. 염불 장단과 타령 장단에서는 곤장을 들고 추다가 마지막 자진굿거리에서는 허리 뒤에 꽂아 두었던 채찍을 들고 마주 서서 춤을 춘다. 제3과장 목중춤은 첫째 목중과 둘째 목중이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차례로 등장하여 춤을 춘다. 목중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칡베 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가면을 쓰고 송낙을 쓴다. 첫 목중이 등장하여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장삼춤을 추고 나면 이어서 둘째 목중이 등장하여 장삼으로 첫 목중을 후려쳐 내쫓고 염불, 느린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춘 후 퇴장한다. 제4과장 상좌춤에서는 두 명의 상좌가 똑같은 가면과 복색을 갖추고 양쪽 귀퉁이에서 등장하여 마주 서서 춤을 춘다. 상좌춤의 복색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백장삼을 입은 후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두르고 염주를 목에 건다. 염불, 느린타령, 굿거리 장단에 맞춰 춤춘다. 제5과장 양반­말뚝이춤은 양반 가문에 못난 네 명의 양반이 두 명의 하인 말뚝이에게 끌려나와 대사와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진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회색 칡베장삼을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묶고 지팡이를 짚으며 그려진 화선을 들고 머리에 가면을 쓴 후 개가죽관을 쓴다. 마한양반은 진한양반의 차림새와 같고 백색 부채와 지팡이를 짚고 가면을 쓴 후 총관을 쓴다. 변한양반은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고 옥색 도포와 쾌자를 입는다. 허리에 옥색 술띠를 매며 화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홍관을 쓴다. 도령은 흰 바지저고리에 남쾌자를 입고 술띠를 맨다. 백선을 들고 가면을 쓴 후 복건을 쓴다. 두 말뚝이는 말뚝이춤 과정의 차림새와 같고 채찍을 든다. 양반­말뚝이춤 과정은 주로 자진굿거리 장단을 사용하고, 변한양반이 등장해서는 장타령장단, 만세바지장단, 굿장단 등을 사용한다. 양반ㆍ말뚝이춤은 장삼춤, 부채춤, 지팡이춤, 병신춤, 무당춤, 한삼춤, 채찍춤으로 이루어진다. 제6과장 노승­취발이춤은 크게 세 가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술 취한 취발이가 그를 따르는 일곱 명의 목중과 함께 팔목중춤의 군무를 추는 것이고, 두 번째는 두 명의 상좌를 대동한 노승이 아리따운 소무(小巫)를 보고 동하여 불법을 파계하는 춤이며, 세 번째는 취발이가 노승한테서 빼앗은 소무를 데리고 흥겹게 즐기다가 소무가 낳은 취발이 새끼를 데리고 글공부를 가르치는 춤으로 되어 있다. 목중들은 흰 바지저고리에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홍색 띠를 뒤로 둘러맨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색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취발이는 흰 바지저고리에 일월(日月)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점박이가 박힌 붉은 더거리를 입고 허리에 황색 띠를 뒤로 둘러매고 왕방울을 찬다. 양다리에 좌청우홍의 긴 대님을 허벅지와 허리띠로 연결하여 묶는다. 양손에 푸른 느티나무 또는 버드나무 한 묶음을 든다. 소무는 홍치마 노랑저고리에 남쾌자를 입고 제비홍띠를 허리 뒤로 둘러맨다. 색동한삼을 손목에 끼고 가면을 쓴 후 벙거지를 쓴다. 상좌는 흰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백장삼을 입고 흰 고깔을 쓴다. 홍가사를 어깨에 둘렀으며 염주를 목에 건다. 노승은 회색 바지저고리에 행전을 차며 회색 칡베장삼을 입고 붉은 가사를 어깨에 멘다. 백팔염주를 목에 걸고 화선과 육환장을 들며 가면을 쓴 후 송낙을 쓴다. 노승·취발이춤은 염불, 타령, 자진굿거리 장단에 맞춰 춘다. 제7과장 미얄영감·할미춤은 크게 세 가닥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미얄영감춤, 두 번째는 미얄할멈춤이 이어진다. 여기서는 미얄영감, 미얄할멈, 용산삼계집 세 사람의 삼각관계에서 애정과 갈등을 소재로 한 서민생활의 애환 및 일부처첩(一夫妻妾) 생활상을 다룬다. 영감은 난리통에 할멈을 잃고 돌아다니다가 주막에서 젊은 여자를 만나 첩으로 삼는다. 할멈은 고생 끝에 영감과 상면한다. 영감을 사이에 둔 할멈과 용산삼계집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결국 할멈이 쫓겨난다. 세 번째 춤은 영감과 첩으로부터 내쫓긴 할멈이 죽게 되자 마을의 원로격인 남강노인이 등장하여 무당을 불러 미얄할멈을 좋은 곳으로 보내기 위한 진오귀굿을 한다. 탈놀이가 끝난 후 사용한 탈들을 모두 모닥불에 태운다. 그리고 뒷풀이가 이어진다. 뒷풀이에서는 탈꾼, 악사, 관객이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면서 밤새껏 신명풀이를 하고 논다. 뒷풀이는 탈판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하는 마지막장이다. 강령탈춤은 해서 지역의 다른 탈춤과 함께 사위춤 형식으로 전승 발전되어 왔다. 사위춤 형식이란 예를 들어, 남쪽지방의 오광대 및 들놀음의 덧뵈기춤이나 중부지방 산대놀이의 깨끼춤(거드름춤)과는 달리, 북쪽지방 황해도 일대에서만 전승되어 온 춤 형식으로서 흰색 한삼을 손목에 끼고 활달하게 뿌리면서 동적인 춤을 춘다. 한편, 강령탈춤에는 사위춤과 함께 다른 지역의 탈춤에서는 보이지 않는 칡베장삼춤이 있다. 이는 칡베장삼을 이용하여 활기차게 감고 뿌리면서 추는 일종의 장삼춤이다. 강령탈춤에는 하얀 한삼을 이용하여 추는 한삼사위춤뿐만 아니라 기다란 칡베장삼을 이용한 칡베장삼춤이 포함되어 있어 주목된다. 강령탈춤에는 총 16종의 기본춤이 있는데, 이것들은 강령탈춤 전 과장에 두루 쓰이는 기본적인 춤사위이다. 16가지의 기본 춤사위는 겹사위(곱사위), 앉아여닫이, 엇사위(뽑는사위), 엎매기, 고개잡이, 인사사위, 겨누기, 앉아뛰기, 돌며앉아뛰기, 쪼그려뛰기, 양사위, 한삼걷기, 코차기, 엎발찧기, 외사위 그리고 돌며외사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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