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생업

집필자 박호석(朴虎錫)

정의

가을에 다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추수(秋收)라고도 한다.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기 위해 이삭이나 열매만을 따거나 줄기까지 베는 일(작물에 따라 따기, 꺽기, 베기라고 함)과 이를 말리는 일 그리고 알곡을 떨어내는 타작(마당질이라고도 함)으로 구분한다.

내용

가을걷이는 벼, 콩, 팥, 기장, 조, 옥수수, 수수, 메밀과 같이 가을에 여무는 곡식을 줄기째 베거나 뽑아서 이삭만을 따서 말린 다음 알곡을 내는 타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칭한다. 보리와 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식을 가을에 수확하기 때문에 일이 많고, 또 추분부터 시작해서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갈무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재배 규모가 적은 작물이 아니면 가을걷이는 이웃과 품앗이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2, 「치농편(治農篇)」 조도조(早稻條)에는 벼 베는 길일(吉日)을 경오(庚午), 임신(壬申), 계유(癸酉), 기묘(己卯), 신사(辛巳), 임오(壬午) 계미(癸未), 갑오(甲午), 계묘(癸卯), 갑진(甲辰), 기유(己酉) 일로 적고 있으나, 파종할 때와는 달리 실제로 가을걷이에 날을 가리거나 하는 풍습은 볼 수 없다. 아마도 가을걷이의 특성상 때를 놓치면 일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무엇을 가리고 말고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요 작물의 가을걷이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벼의 경우를 보면 예전에는 서리가 내린 다음에야 벼베기를 시작했다. 나락이 제대로 여물고 볏짚도 잘 말라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서 벼베는 시기가 다소 빨라지기는 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한로(寒露)가 제철이고 남부지방에서는 이보다 열흘 가량 늦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지방은 추분(秋分)에, 남부지방은 한로에 한창이다. 따라서 옛날보다는 40~50일이나 빨리 추수가 시작된다.

이처럼 벼 베기가 빨라진 이유는 기계화에 따라 모내기가 앞당겨진 데다가 품종에 따라서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이삭이 패고 45일이 지나 나락이 90퍼센트 정도 여물었을 때 베어야 소출도 가장 많고 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 베기는 낫으로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면서 벼를 베어서 단으로 묶어내는 바인더(reaper binder)라는 수확기를 사용하였으며, 지금은 대부분이 벼를 베어 탈곡까지 하는 콤바인(combined harvester)을 쓴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보통 네 줌(뭇)을 한 단으로 묶는데, 한 단은 쌀이 한 되 가량 나오는 분량이 된다. 그리고 논바닥에 볏단을 세워 말릴 때는 20단을 ‘한 가리’ 또는 ‘한 광’이라고 하고, 이를 타작하면 쌀이 한 섬이 된다. 20단이 넘는 긴 가리를 ‘장광’이라 하고, 이때는 한 광마다 볏단을 거꾸로 세워 그 양을 표시한다. 이를 줄가리친다고 한다.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벼를 베면 바로 단으로 묶어서 논바닥이나 논둑에 세워서 보통 20여 일 간 말린다. 그러나 충청도 일부와 남부지방, 특히 평야 지역에서는 벼를 벤 즉시 단으로 묶지 않고 논바닥에 깔아 일주일 가량 말린 다음 단으로 묶는다. 그리고 묶은 단은 바로 논바닥이나 논둑에 쌓는데, 이삭이 안으로 가고 밑동이 밖으로 나오게 하여 열십자(十)자 모양으로 쌓는다. 50단을 한 가리라 하고 이를 동가리친다라고 한다.

볏단이 다 마르면 타작할 곳으로 옮기는데, 보통 지게로 져 나르거나 발채나 달구지를 써서 소로 날랐는데, 달구지나 경운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옮긴 볏단은 마당이나 텃밭에 낟가리를 치는데, 바닥에 짚이나 거적을 깔고 밑동은 밖으로 이삭은 안으로 하여 동그랗게 쌓아 올리면서 위로 갈수록 넓혀서 배가 부르게 쌓는다. 그리고 낟가리의 꼭대기에는 이엉이나 거적을 덮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다. 보통 한 가리에 3~4백단을 쌓지만 농사가 많은 곳에서는 5~7백단을 쌓기도 했다.

타작은 넓은 마당에서 하기 때문에 마당질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무렵이면 타작이 끝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눈이 올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있었다. 타작은 양이 많지 않으면 탯돌이나 절구통을 쓰지만 많을 때는 개상을 썼다. 자리개를 두 손으로 쥐고 볏단을 감아 어깨 뒤로 돌려서 개상 위에 내려치면 나락이 떨린다. 덜 떨린 것은 도리깨로 마저 떨었다. 그리고 빗처럼 생긴 날 사이에 이삭을 먹여 나락을 훑어내는 그네도 사용했다.

근대적인 개념의 탈곡기가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초기에는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족답탈곡기가 사용되었고, 뒤이어 발동기가 돌리는 동력탈곡기, 경운기가 돌리는 자동탈곡기의 순서로 발전하였다. 동력탈곡기가 사용되면서 낟가리나 전통적인 마당질은 사라졌으며, 지금은 콤바인이 벼를 벰과 동시에 탈곡까지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벼 베기나 탈곡하는 광경을 보기가 어렵다.

콩은 입하(立夏) 때 심으면 백로 전에 거두고 하지(夏至) 때 심으면 벼 베기를 할 무렵에 수확한다. 콩은 주로 손으로 뽑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낫이나 호미로 콩대를 꺾어서 수확하기도 한다. 수확한 콩은 반 아름 크기의 단으로 묶어서 세워 말리거나, 2~3미터 길이의 서까래 나무 6~8개를 위는 모아 묶고 아래는 벌려 원추 모양으로 만든 다음 중간에 두세 곳에 새끼로 테를 둘러 고정한 일종의 건조대인 얼루기에 콩 단을 걸쳐서 말린다. 얼루기 한 틀에는 열 짐 가량 말릴 수가 있다. 타작은 마당에 말린 콩대를 펴 널고 도리깨로 두드리거나 족답탈곡기로 벼처럼 떨었다. 최근에는 콩탈곡기를 사용한다.

팥도 콩과 마찬가지로 뽑아서 얼루기에 말리고 도리깨로 턴다. 팥은 덩굴식물이기 때문에 족답탈곡기는 쓸 수가 없고 줄기와 이삭(꼬투리)을 함께 넣는 콩탈곡기를 사용한다.

벼 베기가 끝날 때면 조를 수확한다. 다래끼를 허리에 차고 창칼로 이삭을 따서 담는다. 하루에 혼자서 다섯 섬쯤 딸 수 있다. 이삭은 중태에 담거나 발채를 얹은 지게에 담아 운반했다. 이삭을 멍석에 펴 널어 말린 다음 도리깨로 떨거나 절구에 넣고 찧어서 알곡을 냈다. 밭에 남은 줄기는 낫으로 베어서 땔감이나 소먹이로 썼다.

옥수수는 쪄서 먹는 것은 7월에 따지만 식량으로 쓸 것은 9월에나 수확한다. 옥수수자루를 먼저 따내고 낫으로 줄기를 베거나, 줄기를 벤 다음 옥수수자루를 따낸다. 따낸 옥수수는 손으로 겉껍질을 완전히 벗기거나 일부를 남겨서 4~6자루를 한 송이로 묶는데, 완전히 벗긴 옥수수는 멍석에 널어 말리고, 송이로 묶은 것은 사람 키 높이의 밧줄이나 장대에 걸어서 말린다.

완전히 마르면 도리깨로 떨거나 틈틈이 손으로 알곡을 따낸다. 근년에는 옥수수 탈립기를 쓰기도 하고 경운기 로타리를 이용하여 떨기도 한다. 최근에는 쪄먹는 옥수수만 재배하기 때문에 가을걷이를 보기가 어렵다.

기장은 소출이 적고 수확하는 일이 까다로워 예전부터 많이 심지 않았다. 다만 알곡을 떨어내고 남은 이삭으로 빗자루를 매기 위해서 조금씩 심었다. 기장은 빗자루 크기를 고려하여 낫으로 대(줄기)를 베어 넉넉하게 단으로 묶은 다음 집으로 운반한다. 대에 달린 잎을 훑어내고 길이를 맞추어 가지런히 한 다음 한 줌씩 묶어서 작두로 이삭 목 아랫부분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이삭에 달린 알곡은 발바닥으로 비벼 떨어내고 그래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호미날로 긁어서 떨었다. 알곡은 찧어서 양식으로 쓰고, 남은 이삭(빗목)은 시래기 엮듯 엮어서 그늘에 매달아 말린 다음 빗자루를 매는 데 썼다. 지금은 기장을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다.

메밀은 보리나 감자를 수확한 다음 후작(後作)으로 재배하거나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한 논 그리고 기온이 서늘한 산간지방에서 재배하는 소위 대파작물(代播作物)에 속한다. 그래서 메밀은 파종 시기가 아주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벼 베기 전에 수확하는 여름메밀과 서리올 때 수확하는 가을메밀로 구분한다.메밀은 열매가 밑동 부분에 달린 것부터 익어 올라오며, 먼저 익은 것은 쉽게 낟알이 떨어지기 때문에 절반 정도가 검은 빛을 내면 낫으로 베고, 한 아름씩 묶어서 마당질할 곳으로 운반한다. 단을 세우거나 얼루기에 걸쳐서 말린 다음 도리깨로 떤다.

참고문헌

增補山林經濟, 作物學槪要 (趙載英, 鄕文社, 1962),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韓國 在來農耕의 地域差 (張籌根 외, 韓國의 農耕文化-京畿大學 博物館 開館 特輯, 京畿大學出版, 198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한국 민속의 세계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한국의 농기구 (박호석·안승모, 어문각, 2001)

가을걷이

가을걷이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생업

집필자 박호석(朴虎錫)

정의

가을에 다 여문 곡식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추수(秋收)라고도 한다. 가을걷이는 곡식을 거두기 위해 이삭이나 열매만을 따거나 줄기까지 베는 일(작물에 따라 따기, 꺽기, 베기라고 함)과 이를 말리는 일 그리고 알곡을 떨어내는 타작(마당질이라고도 함)으로 구분한다.

내용

가을걷이는 벼, 콩, 팥, 기장, 조, 옥수수, 수수, 메밀과 같이 가을에 여무는 곡식을 줄기째 베거나 뽑아서 이삭만을 따서 말린 다음 알곡을 내는 타작까지 일련의 과정을 통칭한다. 보리와 밀을 제외한 대부분의 곡식을 가을에 수확하기 때문에 일이 많고, 또 추분부터 시작해서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갈무리가 끝나야 하기 때문에 재배 규모가 적은 작물이 아니면 가을걷이는 이웃과 품앗이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2, 「치농편(治農篇)」 조도조(早稻條)에는 벼 베는 길일(吉日)을 경오(庚午), 임신(壬申), 계유(癸酉), 기묘(己卯), 신사(辛巳), 임오(壬午) 계미(癸未), 갑오(甲午), 계묘(癸卯), 갑진(甲辰), 기유(己酉) 일로 적고 있으나, 파종할 때와는 달리 실제로 가을걷이에 날을 가리거나 하는 풍습은 볼 수 없다. 아마도 가을걷이의 특성상 때를 놓치면 일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에 무엇을 가리고 말고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요 작물의 가을걷이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벼의 경우를 보면 예전에는 서리가 내린 다음에야 벼베기를 시작했다. 나락이 제대로 여물고 볏짚도 잘 말라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 들어서 벼베는 시기가 다소 빨라지기는 했지만, 중부지방에서는 한로(寒露)가 제철이고 남부지방에서는 이보다 열흘 가량 늦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부지방은 추분(秋分)에, 남부지방은 한로에 한창이다. 따라서 옛날보다는 40~50일이나 빨리 추수가 시작된다. 이처럼 벼 베기가 빨라진 이유는 기계화에 따라 모내기가 앞당겨진 데다가 품종에 따라서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이삭이 패고 45일이 지나 나락이 90퍼센트 정도 여물었을 때 베어야 소출도 가장 많고 쌀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 베기는 낫으로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들면서 벼를 베어서 단으로 묶어내는 바인더(reaper binder)라는 수확기를 사용하였으며, 지금은 대부분이 벼를 베어 탈곡까지 하는 콤바인(combined harvester)을 쓴다. 낫으로 벼를 벨 때는 보통 네 줌(뭇)을 한 단으로 묶는데, 한 단은 쌀이 한 되 가량 나오는 분량이 된다. 그리고 논바닥에 볏단을 세워 말릴 때는 20단을 ‘한 가리’ 또는 ‘한 광’이라고 하고, 이를 타작하면 쌀이 한 섬이 된다. 20단이 넘는 긴 가리를 ‘장광’이라 하고, 이때는 한 광마다 볏단을 거꾸로 세워 그 양을 표시한다. 이를 줄가리친다고 한다.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벼를 베면 바로 단으로 묶어서 논바닥이나 논둑에 세워서 보통 20여 일 간 말린다. 그러나 충청도 일부와 남부지방, 특히 평야 지역에서는 벼를 벤 즉시 단으로 묶지 않고 논바닥에 깔아 일주일 가량 말린 다음 단으로 묶는다. 그리고 묶은 단은 바로 논바닥이나 논둑에 쌓는데, 이삭이 안으로 가고 밑동이 밖으로 나오게 하여 열십자(十)자 모양으로 쌓는다. 50단을 한 가리라 하고 이를 동가리친다라고 한다. 볏단이 다 마르면 타작할 곳으로 옮기는데, 보통 지게로 져 나르거나 발채나 달구지를 써서 소로 날랐는데, 달구지나 경운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옮긴 볏단은 마당이나 텃밭에 낟가리를 치는데, 바닥에 짚이나 거적을 깔고 밑동은 밖으로 이삭은 안으로 하여 동그랗게 쌓아 올리면서 위로 갈수록 넓혀서 배가 부르게 쌓는다. 그리고 낟가리의 꼭대기에는 이엉이나 거적을 덮어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다. 보통 한 가리에 3~4백단을 쌓지만 농사가 많은 곳에서는 5~7백단을 쌓기도 했다. 타작은 넓은 마당에서 하기 때문에 마당질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서리가 내리는 상강(霜降) 무렵이면 타작이 끝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눈이 올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있었다. 타작은 양이 많지 않으면 탯돌이나 절구통을 쓰지만 많을 때는 개상을 썼다. 자리개를 두 손으로 쥐고 볏단을 감아 어깨 뒤로 돌려서 개상 위에 내려치면 나락이 떨린다. 덜 떨린 것은 도리깨로 마저 떨었다. 그리고 빗처럼 생긴 날 사이에 이삭을 먹여 나락을 훑어내는 그네도 사용했다. 근대적인 개념의 탈곡기가 도입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로 초기에는 사람이 발로 밟아 돌리는 족답탈곡기가 사용되었고, 뒤이어 발동기가 돌리는 동력탈곡기, 경운기가 돌리는 자동탈곡기의 순서로 발전하였다. 동력탈곡기가 사용되면서 낟가리나 전통적인 마당질은 사라졌으며, 지금은 콤바인이 벼를 벰과 동시에 탈곡까지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벼 베기나 탈곡하는 광경을 보기가 어렵다. 콩은 입하(立夏) 때 심으면 백로 전에 거두고 하지(夏至) 때 심으면 벼 베기를 할 무렵에 수확한다. 콩은 주로 손으로 뽑는데, 일부 지방에서는 낫이나 호미로 콩대를 꺾어서 수확하기도 한다. 수확한 콩은 반 아름 크기의 단으로 묶어서 세워 말리거나, 2~3미터 길이의 서까래 나무 6~8개를 위는 모아 묶고 아래는 벌려 원추 모양으로 만든 다음 중간에 두세 곳에 새끼로 테를 둘러 고정한 일종의 건조대인 얼루기에 콩 단을 걸쳐서 말린다. 얼루기 한 틀에는 열 짐 가량 말릴 수가 있다. 타작은 마당에 말린 콩대를 펴 널고 도리깨로 두드리거나 족답탈곡기로 벼처럼 떨었다. 최근에는 콩탈곡기를 사용한다. 팥도 콩과 마찬가지로 뽑아서 얼루기에 말리고 도리깨로 턴다. 팥은 덩굴식물이기 때문에 족답탈곡기는 쓸 수가 없고 줄기와 이삭(꼬투리)을 함께 넣는 콩탈곡기를 사용한다. 벼 베기가 끝날 때면 조를 수확한다. 다래끼를 허리에 차고 창칼로 이삭을 따서 담는다. 하루에 혼자서 다섯 섬쯤 딸 수 있다. 이삭은 중태에 담거나 발채를 얹은 지게에 담아 운반했다. 이삭을 멍석에 펴 널어 말린 다음 도리깨로 떨거나 절구에 넣고 찧어서 알곡을 냈다. 밭에 남은 줄기는 낫으로 베어서 땔감이나 소먹이로 썼다. 옥수수는 쪄서 먹는 것은 7월에 따지만 식량으로 쓸 것은 9월에나 수확한다. 옥수수자루를 먼저 따내고 낫으로 줄기를 베거나, 줄기를 벤 다음 옥수수자루를 따낸다. 따낸 옥수수는 손으로 겉껍질을 완전히 벗기거나 일부를 남겨서 4~6자루를 한 송이로 묶는데, 완전히 벗긴 옥수수는 멍석에 널어 말리고, 송이로 묶은 것은 사람 키 높이의 밧줄이나 장대에 걸어서 말린다. 완전히 마르면 도리깨로 떨거나 틈틈이 손으로 알곡을 따낸다. 근년에는 옥수수 탈립기를 쓰기도 하고 경운기 로타리를 이용하여 떨기도 한다. 최근에는 쪄먹는 옥수수만 재배하기 때문에 가을걷이를 보기가 어렵다. 기장은 소출이 적고 수확하는 일이 까다로워 예전부터 많이 심지 않았다. 다만 알곡을 떨어내고 남은 이삭으로 빗자루를 매기 위해서 조금씩 심었다. 기장은 빗자루 크기를 고려하여 낫으로 대(줄기)를 베어 넉넉하게 단으로 묶은 다음 집으로 운반한다. 대에 달린 잎을 훑어내고 길이를 맞추어 가지런히 한 다음 한 줌씩 묶어서 작두로 이삭 목 아랫부분을 잘라버린다. 그리고 이삭에 달린 알곡은 발바닥으로 비벼 떨어내고 그래도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은 호미날로 긁어서 떨었다. 알곡은 찧어서 양식으로 쓰고, 남은 이삭(빗목)은 시래기 엮듯 엮어서 그늘에 매달아 말린 다음 빗자루를 매는 데 썼다. 지금은 기장을 재배하는 농가가 거의 없다. 메밀은 보리나 감자를 수확한 다음 후작(後作)으로 재배하거나 가뭄으로 모내기를 못한 논 그리고 기온이 서늘한 산간지방에서 재배하는 소위 대파작물(代播作物)에 속한다. 그래서 메밀은 파종 시기가 아주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벼 베기 전에 수확하는 여름메밀과 서리올 때 수확하는 가을메밀로 구분한다.메밀은 열매가 밑동 부분에 달린 것부터 익어 올라오며, 먼저 익은 것은 쉽게 낟알이 떨어지기 때문에 절반 정도가 검은 빛을 내면 낫으로 베고, 한 아름씩 묶어서 마당질할 곳으로 운반한다. 단을 세우거나 얼루기에 걸쳐서 말린 다음 도리깨로 떤다.

참고문헌

增補山林經濟作物學槪要 (趙載英, 鄕文社, 1962)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韓國 在來農耕의 地域差 (張籌根 외, 韓國의 農耕文化-京畿大學 博物館 開館 特輯, 京畿大學出版, 1983)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한국 민속의 세계4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한국의 농기구 (박호석·안승모, 어문각,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