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

한자명

新行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박동철(朴東喆)
갱신일 2019-02-13

정의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앞으로 한평생을 살아갈 시댁으로 길을 나서는 일.

내용

혼례식을 마치고 시댁으로 신행을 가는 시기는 매우 다양하다. 1년을 묵었다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 한 달을 묵었다가 들어가는 신행, 사흘 만에 들어가는 신행, 그리고 혼례식을 하고 그날 바로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이 있다. 지역에 따라 1년을 묵혀 가는 신행을 ‘묵신행’ 또는 ‘해묵이’라 하고, 달을 묵혀 가는 것은 ’달묵이’, 사흘 만에 가는 것은 ‘삼일신행’, 혼례식 당일 들어가는 것은 ‘도신행’이라고 한다. 1950년대까지 농촌 여성들은 1년을 묵었다 신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에는 전통혼례를 한 경우에도 대부분 당일 시댁으로 들어갔다.

신행 기간 중 신랑이 신부 집에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고 한다. 신랑이 재행을 갈 때는 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떡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간다. 신부의 신행 기간이 길면 신랑은 몇 차례 신부 집에 재행을 간다. 혼례식을 올린 당일에 신행을 간 경우에도 재행을 가는데, 경상북도에서는 이때 신랑의 재행을 “딸을 시집보내 섭섭해 하는 신부 부모의 눈물을 거두러 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부가 신행 기간을 마치고 시댁으로 갈 때는 좋은 날을 받아 시아버지 도포 등의 혼수를 가지고 간다. 신행을 갈 때는 보통 신부 아버지가 상객上客으로 갔다가 신랑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돌아온다. 신부는 신행을 갈 때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간다. 가마는 신부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빌린다. 가마꾼들은 품삯을 주고 사서 가는 경우가 많다. 신부집과 신랑집의 거리가 멀지 않으면 신부는 집에서부터 가마를 타고 신랑집까지 간다. 그러나 신행길이 먼 경우에는 신부집 가마를 타고 중간까지 와서 신랑집 가마로 바꿔 타기도 한다. 현대적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후, 신부집과 신랑집이 가마를 타고 오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일 경우에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마을 초입까지 와서 가마를 탄다. 신랑집이 신부집 한집 건너 앞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마를 탔을 정도로 신행길에 가마는 지켜야 할 예로 인식되었다. 조선 후기에 쓰인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혼례 과정 중의 하나로 친영親迎이 소개되어 있다. “모姆(수모手母)가 색시를 모시고 나가 가마에 오른다. 신랑은 말에 타고 색시 수레에 앞서 간다. 신랑집에 이르면 색시를 인도하고 들어간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가는 것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가마를 타고 오는 신부의 신행길은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었다. 사면이 막혀 있는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장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던 신부에게 신행길은 가마멀미를 비롯해 갖가지 힘들었던 기억들로 가득한 여정이었다. 가마를 타고 힘들게 신행 온 신부는 시댁으로 들어올 때도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신부를 태운 가마가 신랑집 마당으로 들어서면 가마꾼들은 신부를 가마에 태운 채 마당에 놓인 짚불을 넘어 들어온다. 이것을 보통 ‘양밥한다’고 하는데 신부를 쫓아 나쁜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신식혼례가 정착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 가마를 타고 짚불을 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신부는 신행을 올 때 찹쌀을 요강에 담아 가마 안에 넣어 오기도 한다. 신부가 신행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이 찹쌀로 시어머니가 밥을 지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 찰밥은 “찐득하게 잘 살라고”, “차지게 잘 살라고”, “찰떡같이 잘 살라고” 먹는 것이다.

신부가 신행을 오는 날은 신랑집이 잔치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마을 사람들과 집안 일가친척들이 마당에 솥뚜껑을 걸어 놓고 전을 부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한다. 마을 사람들은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쌀이나 감주를 한 동이씩 가지고 와서 부조한다. 신랑은 신부가 신행을 오는 동안 집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특징 및 의의

신행 기간의 차이는 신부집의 경제적 사정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년 동안 묵었다가 가는 신행은 신부집의 경제적 사정이 좋아야 가능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한 가정의 수입이 한정되어 있다면 많은 식구 수는 그만큼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혼인으로 인한 식구 수의 감소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통사회에서 가난한 집의 여성들은 일찌감치 집을 떠나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혼인한 딸을 일 년 동안 친정에 머물게 하려면 그만큼 가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만약 신부집이 일 년 동안 딸을 데리고 있을 정도의 형편이 못 되었다면, 신부가 1년 동안 묵은 배경을 설명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신부집의 형편이 어땠느냐에 따라서 그 배경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경북지역 중 길쌈이 유명했던 어느 마을에서는 많은 여성이 1년을 묵었다 신행을 갔다. 이들은 1년을 묵는 동안 길쌈을 해서 가정의 소득을 높이는 한편, 혼수로 가져갈 시어른들의 옷감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길쌈곳(길쌈을 많이 하는 마을) 출신 여성들이 묵은 1년은 어려운 집안 형편과 혼수 마련을 위해 길쌈하는 기간이었다. 신부가 어떠한 신행을 했는지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혼례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 배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청운마을 혼례문화의 지속과 변화에 관한 연구(박동철,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한국가족제도연구(김두헌,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한국민속학개론(이두현・장주근・이광규, 학연사, 1983).

신행

신행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박동철(朴東喆)
갱신일 2019-02-13

정의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앞으로 한평생을 살아갈 시댁으로 길을 나서는 일.

내용

혼례식을 마치고 시댁으로 신행을 가는 시기는 매우 다양하다. 1년을 묵었다가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 한 달을 묵었다가 들어가는 신행, 사흘 만에 들어가는 신행, 그리고 혼례식을 하고 그날 바로 시댁으로 들어가는 신행이 있다. 지역에 따라 1년을 묵혀 가는 신행을 ‘묵신행’ 또는 ‘해묵이’라 하고, 달을 묵혀 가는 것은 ’달묵이’, 사흘 만에 가는 것은 ‘삼일신행’, 혼례식 당일 들어가는 것은 ‘도신행’이라고 한다. 1950년대까지 농촌 여성들은 1년을 묵었다 신행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후에는 전통혼례를 한 경우에도 대부분 당일 시댁으로 들어갔다. 신행 기간 중 신랑이 신부 집에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고 한다. 신랑이 재행을 갈 때는 부모의 허락을 받은 후 떡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가지고 간다. 신부의 신행 기간이 길면 신랑은 몇 차례 신부 집에 재행을 간다. 혼례식을 올린 당일에 신행을 간 경우에도 재행을 가는데, 경상북도에서는 이때 신랑의 재행을 “딸을 시집보내 섭섭해 하는 신부 부모의 눈물을 거두러 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신부가 신행 기간을 마치고 시댁으로 갈 때는 좋은 날을 받아 시아버지 도포 등의 혼수를 가지고 간다. 신행을 갈 때는 보통 신부 아버지가 상객上客으로 갔다가 신랑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이튿날 돌아온다. 신부는 신행을 갈 때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간다. 가마는 신부 집에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을 빌린다. 가마꾼들은 품삯을 주고 사서 가는 경우가 많다. 신부집과 신랑집의 거리가 멀지 않으면 신부는 집에서부터 가마를 타고 신랑집까지 간다. 그러나 신행길이 먼 경우에는 신부집 가마를 타고 중간까지 와서 신랑집 가마로 바꿔 타기도 한다. 현대적 교통수단이 발달한 이후, 신부집과 신랑집이 가마를 타고 오기 어려울 만큼 먼 거리일 경우에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마을 초입까지 와서 가마를 탄다. 신랑집이 신부집 한집 건너 앞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가마를 탔을 정도로 신행길에 가마는 지켜야 할 예로 인식되었다. 조선 후기에 쓰인 『사례편람四禮便覽』에는 혼례 과정 중의 하나로 친영親迎이 소개되어 있다. “모姆(수모手母)가 색시를 모시고 나가 가마에 오른다. 신랑은 말에 타고 색시 수레에 앞서 간다. 신랑집에 이르면 색시를 인도하고 들어간다.”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댁으로 가는 것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가마를 타고 오는 신부의 신행길은 무척이나 힘든 여정이었다. 사면이 막혀 있는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장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던 신부에게 신행길은 가마멀미를 비롯해 갖가지 힘들었던 기억들로 가득한 여정이었다. 가마를 타고 힘들게 신행 온 신부는 시댁으로 들어올 때도 쉽게 들어오지 못한다. 신부를 태운 가마가 신랑집 마당으로 들어서면 가마꾼들은 신부를 가마에 태운 채 마당에 놓인 짚불을 넘어 들어온다. 이것을 보통 ‘양밥한다’고 하는데 신부를 쫓아 나쁜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농촌에서 신식혼례가 정착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까지 가마를 타고 짚불을 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었다. 신부는 신행을 올 때 찹쌀을 요강에 담아 가마 안에 넣어 오기도 한다. 신부가 신행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이 찹쌀로 시어머니가 밥을 지어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 찰밥은 “찐득하게 잘 살라고”, “차지게 잘 살라고”, “찰떡같이 잘 살라고” 먹는 것이다. 신부가 신행을 오는 날은 신랑집이 잔치하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마을 사람들과 집안 일가친척들이 마당에 솥뚜껑을 걸어 놓고 전을 부치고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한다. 마을 사람들은 올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쌀이나 감주를 한 동이씩 가지고 와서 부조한다. 신랑은 신부가 신행을 오는 동안 집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특징 및 의의

신행 기간의 차이는 신부집의 경제적 사정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년 동안 묵었다가 가는 신행은 신부집의 경제적 사정이 좋아야 가능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한 가정의 수입이 한정되어 있다면 많은 식구 수는 그만큼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여성의 혼인으로 인한 식구 수의 감소는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가능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전통사회에서 가난한 집의 여성들은 일찌감치 집을 떠나 남의 집에 식모살이를 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혼인한 딸을 일 년 동안 친정에 머물게 하려면 그만큼 가계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했다. 만약 신부집이 일 년 동안 딸을 데리고 있을 정도의 형편이 못 되었다면, 신부가 1년 동안 묵은 배경을 설명하기 곤란한 면이 있다. 신부집의 형편이 어땠느냐에 따라서 그 배경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경북지역 중 길쌈이 유명했던 어느 마을에서는 많은 여성이 1년을 묵었다 신행을 갔다. 이들은 1년을 묵는 동안 길쌈을 해서 가정의 소득을 높이는 한편, 혼수로 가져갈 시어른들의 옷감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길쌈곳(길쌈을 많이 하는 마을) 출신 여성들이 묵은 1년은 어려운 집안 형편과 혼수 마련을 위해 길쌈하는 기간이었다. 신부가 어떠한 신행을 했는지는 지역의 사회・경제적 환경이 혼례문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 배경을 다각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청운마을 혼례문화의 지속과 변화에 관한 연구(박동철,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한국가족제도연구(김두헌, 서울대학교출판부, 1980), 한국민속학개론(이두현・장주근・이광규, 학연사,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