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俗節)

한자명

俗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효경(金孝慶)

정의

1년 중 시기마다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일상생활을 비롯하여 제사일, 국가의 공적인 행사, 공휴일 등으로 활용되던 날.

역사

고대국가인 고구려에서는 3월 3일에 국중대회를 개최하여 유화柳花와 주몽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냥을 즐겼다. 신라에서는 8월 15일에 가배嘉俳라는 여성들의 적마績麻 경쟁으로 부족 간의 연합을 꾀했다. 이를 ‘속절’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는 관행이라 하겠다.

더욱 명확한 속절의 활용은 고려시대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 「형법지」에서는 원정(1월 1일), 상원(1월 15일), 한식, 상사(3월 3일), 단오(5월 5일), 중구(9월 9일), 동지(12월 23일), 팔관(11월), 추석(8월 15일) 등의 ‘속절’을 금형일禁刑日로 지정하고 있다. 원정・상원・한식・팔관・추석은 태음력, 상사・단오・중구・동지는 태양력과 연관된다. 양력과 음력을 모두 포함하는 이런 날들은 형 집행을 하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날로 간주되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날이 관료의 휴가일로 지정되었다. 『고려사』 「직관지」 급가給暇조에는 매월 초1일・8일・15일・23일(매월 휴일), 원정元正, 납일臘日(동지 뒤 셋째 술일戌日, 7일 휴일), 상원上元, 한식寒食, 입하立夏, 하지夏至, 중원(中元, 7월 15일), 팔관八關(3일 휴일), 매월 입절일入節日(1일), 정월 내의 자일子日과 오일午日, 입춘立春, 인일人日, 연등燃燈(2월 15일), 춘분春分, 춘사春祀, 제왕사회諸王社會(삼월 삼짇날), 단오端午, 삼복三伏(각 1일), 칠석七夕, 입추立秋, 추석秋夕, 추사秋祀, 社稷祭日, 추분秋分, 수의授衣(9월 초하루), 중양重陽(9월 9일), 하원下元(10월 15일), 동지冬至, 일월식日月食(1일 휴일) 등이 수록되었다. 금형일과 중복되는 날 중 원정은 7일, 상원은 3일, 나머지 날들은 1일 휴가일이다. 이러한 날들은 공무公務가 쉬는 공휴일이므로 비단 관료뿐만 아니라 백성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사회이념을 실현하는 도구로 이러한 날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었다. 관료의 휴가일은 위와 같은 ‘속절’ 대신에 송나라의 삼순三旬을 채용하여 10일에 한 번꼴로 쉬게 하고 상사・중오・중양에만 특별히 휴가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수의 속절이 정치적 활용에서 제외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비유교적인 유래를 지닌 날이나 유교적이념에 맞지 않는 관행이 시행되는 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교화가 진행됨에 따라 속절도 유교식 의례일로 대체되었다. 그중 많은 날이 제사일로 지정되었다.

수많은 속절 중 유교식 제사일로 간주한 날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한다. 『가례』에는 “청명, 한식, 중오, 중원, 중양 등이 향속鄕俗에서 숭앙하는 날이다.”라고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향속에서 중시하던 속절을 포함하여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등의 기수基數 날들과 1월 상원(1월 15일), 유두(6월 15일), 중원(7월 15일), 중추(8월 15일), 10월 1일, 욕불(4월 8일), 한식, 답청, 동지, 납일 등을 속절로 간주하였다. 이런 날들에는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었다. 정조(1월 1일), 한식, 단오(5월 5일), 추석은 세속에서 귀중하게 숭상하는 날이었다. 반면에 상원, 답청(3월 3일), 칠석(7월 7일), 중원(7월 15일), 중양(9월 9일), 납일, 동지는 가볍게 여기는 날들이었다. 이러한 경중의 차이에 근거하여 사명일四名日과 그 밖의 속절로 구분하여 예를 완성했다.

『주자가례』 통례조에 “사당에 제사를 올리는 날들을 속절이라 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속절에 사당에 제사를 올려야 하나, 속절에는 이전 시기의 비유교적인 관행이 여전히 실행되었으므로 『가례』에 입각한 예제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비록 황당무계하고 비루한 풍속이 있더라도 시대에 따라 풍속을 따르는 데에는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주자는 제철에 나는 음식을 바치는 예를 만들었고 , 공자는 너희가 알 바 아니라는 훈계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일이 쓰이는 까닭입니다.”라는 두 가지 인식론이 대두하지만, 결국 주자의 견해가 수용되었다.

그러나 『가례』의 규정을 수행하면서 문제가 된 것은 사당의 부재이다. 조선에서는 사명일에 상총上塚 제사를 올렸으나, 『주자가례』에서 사시제는 사당에서 거행하고, 상묘는 10월 초하루에 한다고 했다. 『가례』의 이론과 실제 상황이 달랐기에, 이를 절충하여 속절에 대한 제사가 완비되었다. 이이의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에서는 사명일에는 참례參禮하고, 그 밖의 속절에는 천신薦新하라고 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수용됨에 따라 속절은 지금까지도 천신하는 날로 간주된다.

내용

우주가 운행하면서 발생하는 사계절의 변화를 비롯하여, 추위와 더위가 갈마드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날들이 의미를 부여받는다. 특별한 날들로는 고정불변의 태양력에 근거하여 15일 단위로 나눈 절기節氣를 비롯해, 시대마다 공휴일과 축제일, 제사일 등으로 활용되었던 특별한 날인 ‘속절’이 있다. 그런데 속절은 절기를 포함하기도 하므로 가장 광의의 용어라 할 만하다. 속절은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명절’, ‘세시’, ‘가절’, ‘영절 ’, ‘유명일’, ‘명일’, ‘절령’, ‘절일’ 등과 유사하다. 이 단어는 구어口語가 아니라 문어文語의 성격을 띤 용어로, 전근대 사회에서 관찬 사서나 의례집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은 명절이라 통칭하지만 전근대사회에서는 각 용어가 조금 달리 사용되었다. ‘세시歲時’는 한 해를 단위로 반복되는 주기적 시간의 특정한 때를 통칭한다. 그러한 날들에 베풀어지는 행사의 길흉吉凶에 따라 흉한 일을 행하는 날은 ‘속절’이라 하고, 길한 것을 행하는 날은 ‘세시’라 칭하기도 한다. ‘영절令節’은 국가로부터 명령[令]을 부여받은 날을 지칭하는데, 정사政事 즉 각 나라가 정한 경축일의 의미를 지닌다. ‘명절名節’은 오늘날 흔히 사용하지만, 전근대사회에서는 별반 그 쓰임이 없었다. 그래서 세시와 혼용되기도 하였지만, 세시의 쓰임이 더욱 많다. ‘명일名日’은 그저 이름 있는 날이라는 뜻이지만, 여느 세시와 달리 유독 이름이 난 날들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삼명일’, ‘사명일’, ‘육명일’ 등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의 ‘삼명일三名日’은 대표적인 경축일로 정조正朝・단오・동지를 말하며, ‘육명일六名日’은 선대 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나 왕실 외가 조상의 분묘에 봉제하는 정조・한식・단오・중추・동지・납향臘享 등을 일컫는다. 반면에 세속에서 가장 귀히 여긴 날은 ‘사명일四名日’은 설・한식・추석・동지이다. ‘절일節日’은 세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영절이나 임금의 탄강일・성절일・춘추절 등으로 탄생일을 포함하여 더욱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속절’은 사신을 위한 잔칫날을 비롯하여, 시식時食을 올리는 날, 민간 상례와 연관되는 날, 국가의례와 관련된 날을 두루 포함한다. 조선에서 ‘속절’이라 할 때는 정조・상원・답청(3월 3일)・한식・단오・유두・칠석・중원・중추・중구・동지・납일 등을 두루 일컫는다. 고려시대에도 금형일禁刑日을 ‘속절’로 지칭했는데, 그것에 유두・칠석・중원・납일 등을 추가한 것이다. 조선의 ‘속절’은 고려의 금형일에 도교의 축일인 칠석과 중원, 수렵사회의 전통을 지닌 납일, 중국에 연원을 둔 유두 등을 포함하는 용어로, 더욱 넓은 개념이라 하겠다. 속절에 담긴 개념의 폭이 넓은 것은 ‘속俗’자가 지닌 의미와 연관 깊다. ‘속’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를 일컬으므로, ‘속절’은 거부감 없이 내재화되어 있고 특별히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뜻하며, 따라서 국가에서 지정한 공휴일이나 국가의례일, 사대부의 묘사일, 민속축제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속절이 국가에서 임금, 사대부, 백성까지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시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때문에 속절은 칠석, 중원, 납일 등처럼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린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결국 속절은 공식적인 의미를 지닌 세시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승되어 온 채로 그 의미를 상징하는 비공식적인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가장 광의적인 용어라 하겠다. 속절은 해당 시기에 이미 널리 알려져 익숙한 날들을 칭하므로 시대마다 그 대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징 및 의의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전근대사회에는 ‘속절’이라 불렀다. 자연의 움직임에 의 존해 생활하던 시기에 속절은 중요한 공무를 수행하는 날로 중시되었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제사일 혹은 민속관행을 실행하는 날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속절은 자연의 주기를 인간 세상에 활용하는 한 방법이었기에 오늘날까지 그 의미가 축소된 채 전승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高麗史, 沙溪全書, 牛溪先生集, 栗谷先生全書, 朝鮮王朝實錄, 朱子家禮, 泰村先生文集, 澤堂先生別集, 문헌으로 보는 고려시대 민속(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조선전기 속절의 명칭과 인식체계(김효경, 역사민속학53, 역사민속학회, 201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국립민속박물관, 2004), 한국중세예사상연구(고영진, 한길사, 1995).

속절

속절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김효경(金孝慶)

정의

1년 중 시기마다 특별한 의미를 담아 일상생활을 비롯하여 제사일, 국가의 공적인 행사, 공휴일 등으로 활용되던 날.

역사

고대국가인 고구려에서는 3월 3일에 국중대회를 개최하여 유화柳花와 주몽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냥을 즐겼다. 신라에서는 8월 15일에 가배嘉俳라는 여성들의 적마績麻 경쟁으로 부족 간의 연합을 꾀했다. 이를 ‘속절’이라 칭하지는 않지만 특정한 날을 중히 여기는 관행이라 하겠다. 더욱 명확한 속절의 활용은 고려시대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고려사高麗史』 「형법지」에서는 원정(1월 1일), 상원(1월 15일), 한식, 상사(3월 3일), 단오(5월 5일), 중구(9월 9일), 동지(12월 23일), 팔관(11월), 추석(8월 15일) 등의 ‘속절’을 금형일禁刑日로 지정하고 있다. 원정・상원・한식・팔관・추석은 태음력, 상사・단오・중구・동지는 태양력과 연관된다. 양력과 음력을 모두 포함하는 이런 날들은 형 집행을 하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날로 간주되었다. 이외에도 다수의 날이 관료의 휴가일로 지정되었다. 『고려사』 「직관지」 급가給暇조에는 매월 초1일・8일・15일・23일(매월 휴일), 원정元正, 납일臘日(동지 뒤 셋째 술일戌日, 7일 휴일), 상원上元, 한식寒食, 입하立夏, 하지夏至, 중원(中元, 7월 15일), 팔관八關(3일 휴일), 매월 입절일入節日(1일), 정월 내의 자일子日과 오일午日, 입춘立春, 인일人日, 연등燃燈(2월 15일), 춘분春分, 춘사春祀, 제왕사회諸王社會(삼월 삼짇날), 단오端午, 삼복三伏(각 1일), 칠석七夕, 입추立秋, 추석秋夕, 추사秋祀, 社稷祭日, 추분秋分, 수의授衣(9월 초하루), 중양重陽(9월 9일), 하원下元(10월 15일), 동지冬至, 일월식日月食(1일 휴일) 등이 수록되었다. 금형일과 중복되는 날 중 원정은 7일, 상원은 3일, 나머지 날들은 1일 휴가일이다. 이러한 날들은 공무公務가 쉬는 공휴일이므로 비단 관료뿐만 아니라 백성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이라는 사회이념을 실현하는 도구로 이러한 날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되었다. 관료의 휴가일은 위와 같은 ‘속절’ 대신에 송나라의 삼순三旬을 채용하여 10일에 한 번꼴로 쉬게 하고 상사・중오・중양에만 특별히 휴가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다수의 속절이 정치적 활용에서 제외된 것이다. 정치적으로 비유교적인 유래를 지닌 날이나 유교적이념에 맞지 않는 관행이 시행되는 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교화가 진행됨에 따라 속절도 유교식 의례일로 대체되었다. 그중 많은 날이 제사일로 지정되었다. 수많은 속절 중 유교식 제사일로 간주한 날들은 『주자가례朱子家禮』에 근거한다. 『가례』에는 “청명, 한식, 중오, 중원, 중양 등이 향속鄕俗에서 숭앙하는 날이다.”라고 하였는데, 조선에서는 향속에서 중시하던 속절을 포함하여 1월 1일,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 9월 9일 등의 기수基數 날들과 1월 상원(1월 15일), 유두(6월 15일), 중원(7월 15일), 중추(8월 15일), 10월 1일, 욕불(4월 8일), 한식, 답청, 동지, 납일 등을 속절로 간주하였다. 이런 날들에는 경중輕重의 차이가 있었다. 정조(1월 1일), 한식, 단오(5월 5일), 추석은 세속에서 귀중하게 숭상하는 날이었다. 반면에 상원, 답청(3월 3일), 칠석(7월 7일), 중원(7월 15일), 중양(9월 9일), 납일, 동지는 가볍게 여기는 날들이었다. 이러한 경중의 차이에 근거하여 사명일四名日과 그 밖의 속절로 구분하여 예를 완성했다. 『주자가례』 통례조에 “사당에 제사를 올리는 날들을 속절이라 칭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속절에 사당에 제사를 올려야 하나, 속절에는 이전 시기의 비유교적인 관행이 여전히 실행되었으므로 『가례』에 입각한 예제를 시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대해 “비록 황당무계하고 비루한 풍속이 있더라도 시대에 따라 풍속을 따르는 데에는 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주자는 제철에 나는 음식을 바치는 예를 만들었고 , 공자는 너희가 알 바 아니라는 훈계를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절일이 쓰이는 까닭입니다.”라는 두 가지 인식론이 대두하지만, 결국 주자의 견해가 수용되었다. 그러나 『가례』의 규정을 수행하면서 문제가 된 것은 사당의 부재이다. 조선에서는 사명일에 상총上塚 제사를 올렸으나, 『주자가례』에서 사시제는 사당에서 거행하고, 상묘는 10월 초하루에 한다고 했다. 『가례』의 이론과 실제 상황이 달랐기에, 이를 절충하여 속절에 대한 제사가 완비되었다. 이이의 『율곡선생전서栗谷先生全書』에서는 사명일에는 참례參禮하고, 그 밖의 속절에는 천신薦新하라고 했는데, 이러한 주장이 수용됨에 따라 속절은 지금까지도 천신하는 날로 간주된다.

내용

우주가 운행하면서 발생하는 사계절의 변화를 비롯하여, 추위와 더위가 갈마드는 자연의 흐름 속에서 특별한 날들이 의미를 부여받는다. 특별한 날들로는 고정불변의 태양력에 근거하여 15일 단위로 나눈 절기節氣를 비롯해, 시대마다 공휴일과 축제일, 제사일 등으로 활용되었던 특별한 날인 ‘속절’이 있다. 그런데 속절은 절기를 포함하기도 하므로 가장 광의의 용어라 할 만하다. 속절은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명절’, ‘세시’, ‘가절’, ‘영절 ’, ‘유명일’, ‘명일’, ‘절령’, ‘절일’ 등과 유사하다. 이 단어는 구어口語가 아니라 문어文語의 성격을 띤 용어로, 전근대 사회에서 관찬 사서나 의례집 등에 주로 사용되었다. 오늘날은 명절이라 통칭하지만 전근대사회에서는 각 용어가 조금 달리 사용되었다. ‘세시歲時’는 한 해를 단위로 반복되는 주기적 시간의 특정한 때를 통칭한다. 그러한 날들에 베풀어지는 행사의 길흉吉凶에 따라 흉한 일을 행하는 날은 ‘속절’이라 하고, 길한 것을 행하는 날은 ‘세시’라 칭하기도 한다. ‘영절令節’은 국가로부터 명령[令]을 부여받은 날을 지칭하는데, 정사政事 즉 각 나라가 정한 경축일의 의미를 지닌다. ‘명절名節’은 오늘날 흔히 사용하지만, 전근대사회에서는 별반 그 쓰임이 없었다. 그래서 세시와 혼용되기도 하였지만, 세시의 쓰임이 더욱 많다. ‘명일名日’은 그저 이름 있는 날이라는 뜻이지만, 여느 세시와 달리 유독 이름이 난 날들로 특별한 의미를 담아 ‘삼명일’, ‘사명일’, ‘육명일’ 등으로 구분했다. 조선시대의 ‘삼명일三名日’은 대표적인 경축일로 정조正朝・단오・동지를 말하며, ‘육명일六名日’은 선대 왕의 어진을 모신 곳이나 왕실 외가 조상의 분묘에 봉제하는 정조・한식・단오・중추・동지・납향臘享 등을 일컫는다. 반면에 세속에서 가장 귀히 여긴 날은 ‘사명일四名日’은 설・한식・추석・동지이다. ‘절일節日’은 세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영절이나 임금의 탄강일・성절일・춘추절 등으로 탄생일을 포함하여 더욱 넓은 의미의 개념이다. ‘속절’은 사신을 위한 잔칫날을 비롯하여, 시식時食을 올리는 날, 민간 상례와 연관되는 날, 국가의례와 관련된 날을 두루 포함한다. 조선에서 ‘속절’이라 할 때는 정조・상원・답청(3월 3일)・한식・단오・유두・칠석・중원・중추・중구・동지・납일 등을 두루 일컫는다. 고려시대에도 금형일禁刑日을 ‘속절’로 지칭했는데, 그것에 유두・칠석・중원・납일 등을 추가한 것이다. 조선의 ‘속절’은 고려의 금형일에 도교의 축일인 칠석과 중원, 수렵사회의 전통을 지닌 납일, 중국에 연원을 둔 유두 등을 포함하는 용어로, 더욱 넓은 개념이라 하겠다. 속절에 담긴 개념의 폭이 넓은 것은 ‘속俗’자가 지닌 의미와 연관 깊다. ‘속’은 마음이 안정된 상태를 일컬으므로, ‘속절’은 거부감 없이 내재화되어 있고 특별히 의미가 부여된 시간을 뜻하며, 따라서 국가에서 지정한 공휴일이나 국가의례일, 사대부의 묘사일, 민속축제일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는 속절이 국가에서 임금, 사대부, 백성까지 안정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시간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 때문에 속절은 칠석, 중원, 납일 등처럼 시대적 의미를 잃어버린것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결국 속절은 공식적인 의미를 지닌 세시를 포함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승되어 온 채로 그 의미를 상징하는 비공식적인 것까지 모두 포함하는 가장 광의적인 용어라 하겠다. 속절은 해당 시기에 이미 널리 알려져 익숙한 날들을 칭하므로 시대마다 그 대상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징 및 의의

명절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전근대사회에는 ‘속절’이라 불렀다. 자연의 움직임에 의 존해 생활하던 시기에 속절은 중요한 공무를 수행하는 날로 중시되었지만, 조선시대가 되면 제사일 혹은 민속관행을 실행하는 날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속절은 자연의 주기를 인간 세상에 활용하는 한 방법이었기에 오늘날까지 그 의미가 축소된 채 전승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經國大典, 高麗史, 沙溪全書, 牛溪先生集, 栗谷先生全書, 朝鮮王朝實錄, 朱子家禮, 泰村先生文集, 澤堂先生別集, 문헌으로 보는 고려시대 민속(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조선전기 속절의 명칭과 인식체계(김효경, 역사민속학53, 역사민속학회, 201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조선전기 문집(국립민속박물관, 2004), 한국중세예사상연구(고영진, 한길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