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省墓)

한자명

省墓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

역사

성묘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寒食 같은 절기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조상의 육체가 묻혀 있는 묘를 관리하는 것은 조상의 영혼을 모셔와 섬기는 제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져왔다. 원래 한식에 성묘하는 것은 당나라에서 전래되었다. 고려시대 국가에서는 한식에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묘소에 올라가 성묘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기제에 성묘하거나 사시제四時祭에 성묘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묘소 근처에 원찰願刹이나 원당願堂을 지어 묘소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3월 상순 묘제 때 “무덤 안팎을 다니면서 둘러 슬피 살피며 세 번 돈다. 풀과 가시가 있으면 칼이나 도끼, 호미를 사용하여 자르고 김매어 없앤다. 청소를 마치면 돌아와 재배한다. 또한, 무덤왼쪽의 땅을 소제하고 후토신后土神에게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다. 겨울이 지나 풀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때에 조상의 묘를 살피도록 한 것이다. 성묘는 묘제의 한 부분으로 기능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주자가례』가 수용된 이후에는 사당에서 예를 갖추는 것이 강조되었지만, 사당이 없는 민간에서는 조상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아,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것이 허락되었다.

1821년에 간행된 조운종趙雲從(1783~1820)의 『면암집勉菴集』에는 한식에 국가에서 능원과 묘궁에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하인들도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산소를 찾아 성묘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는 술과 과일을 산소에 올리는 것을 한식 때처럼 하도록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한식과 추석에 조상의 묘를 살피는데, 이때 머슴이나 거지라도 모두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을 돌보았다고 할 정도이다 . 주인은 머슴에게 새 옷과 신발, 허리띠를 해주기도 했다. 성묘한 이후에는 묘소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성묘에 제례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까지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음력 10월에도 묘제를 올렸는데, 10월의 묘제는 사대봉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산소를 살피고 예를 올리는 것으로서 ‘시제時祭’ 또는 ‘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한다. 아울러 평상시에도 조상의 묘를 살피고 깨끗하게 청소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육전六典』에 의해 현임관이 성묘를 갈 때에는 반드시 모두 사직辭職한 이후에 가도록 했으나, 1407년(태종 7)에는 군사들에게 3년에 한 번씩 돌아가 근친하게 하고, 부모가 이미 죽은 사람은 근친하는 예에 의하여 돌아가 분묘를 성소省掃하도록 하는 규정을 세우기도 했다.

지역 혹은 가정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4대 명절 가운데 한식과 추석에 절사節祀를 지내거나 한식과 10월에 시제를 지내는데, 특히 추석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냈다.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경우에는 9월 중양절에 제를 지내기도 하고, 10월의 묘제를 큰 제사로 여기고 추석에는 성묘만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도시생활로 바쁜 가정에서는 추석 차례 때 묘제와 성묘를 함께 치르는 풍속이 형성되기도 한다.

내용

성묘는 조상의 묘를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지만 , 사실상 조상의 묘를 손질하는 것과 배례拜禮가 합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로 한식・추석 때 성묘를 하는 것이 정착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했다. 10월 묘제를 지내면서 추석에는 성묘만 하기도 했으나, 요즘 일반 가정에서는 일정한 날을 정하여 묘제를 지내는 것이 힘이 들자 추석 차례 때 성묘하면서 묘제를 함께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특히 추석에 성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일 년 동안의 경작으로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바친다는 의미가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지역사례

기호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설날과 추석에도 성묘하는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영남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설날과 추석에는 성묘하지 않고, 한식에만 성묘하였다. 그런데 인구의 도시집중화가 이루어진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추석에 성묘하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밖의 날에는 성묘의 전통이 약화하였다. 묘제를 조상의 묘에서 지내지 않고 재실齋室에서 지내는 사례가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상북도 안동의 퇴계 종가에서는 재실에서 묘제를 지내거나 지방으로 합동묘제를 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2014년에도 옛 전통에 따라서 한식 성묘를 하는 문중도 있다. 흥해 배씨興海裵氏 안동 입향조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1351~1413)와 그의 배위 묘소(상하 연속 배치)에서는 매년 한식에 성묘하는 전통이 이어진다. 이 문중에서는 가을에 올리는 시향제, 즉 묘제 때에는 제물을 성대하게 갖추어서 올리는데 반해 한식 성묘를 할 때는 독축讀祝 없이 단헌單獻으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낸다. 두 묘소의 상석에 각각 주과포酒果脯와 육적肉炙・어적魚炙으로 이루어진 간소한 제물을 갖추고 한 사람의 창홀唱笏에 따라 상하 연속된 묘소에 참사자들이 나누어 서서 동시에 제사를 지내는 형식이다.

경북 안동 풍산읍 안교리에서는 한식이 사방팔방의 잡귀가 없는 날, 즉 ‘손이 없는 날(무방수날)’로 인식되어 무슨 일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산소에 난 잡풀을 뽑고, 떼를 새로 입히며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 조상의 묘를 두루 손질한다. 설에는 성묘를 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경기도 일부지역에서는 ‘햇세배’라 하여 반드시 성묘한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추석에 성묘를 가지 않는 가정이 많다.

특징 및 의의

성묘는 한식과 추석 명절에 조상의 묘를 찾아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단순히 묘소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제물과 함께 재배를 하기도 한다. 조상의 영혼만큼 육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오늘날까지 조상의 묘를 손질하고 살피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定宗實錄, 太宗實錄, 동국세시기(정승모 역, 풀빛, 2009), 세시풍속(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 조선대세시기1(국립민속박물관, 2003),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한국세시풍속1(김명자, 민속원, 2005), 한국의 제사(국립민속박물관, 2003).

성묘

성묘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

역사

성묘는 추석 같은 명절이나 한식寒食 같은 절기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전통적으로 조상의 육체가 묻혀 있는 묘를 관리하는 것은 조상의 영혼을 모셔와 섬기는 제사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겨져왔다. 원래 한식에 성묘하는 것은 당나라에서 전래되었다. 고려시대 국가에서는 한식에 종묘와 각 능원에 제향하고, 민간에서는 묘소에 올라가 성묘하였다. 『고려사高麗史』에는 기제에 성묘하거나 사시제四時祭에 성묘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묘소 근처에 원찰願刹이나 원당願堂을 지어 묘소를 관리하거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주자가례朱子家禮』에는 3월 상순 묘제 때 “무덤 안팎을 다니면서 둘러 슬피 살피며 세 번 돈다. 풀과 가시가 있으면 칼이나 도끼, 호미를 사용하여 자르고 김매어 없앤다. 청소를 마치면 돌아와 재배한다. 또한, 무덤왼쪽의 땅을 소제하고 후토신后土神에게 제사 지낸다.”라고 하였다. 겨울이 지나 풀이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는 때에 조상의 묘를 살피도록 한 것이다. 성묘는 묘제의 한 부분으로 기능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주자가례』가 수용된 이후에는 사당에서 예를 갖추는 것이 강조되었지만, 사당이 없는 민간에서는 조상의 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아,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것이 허락되었다. 1821년에 간행된 조운종趙雲從(1783~1820)의 『면암집勉菴集』에는 한식에 국가에서 능원과 묘궁에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하고, 하인들도 술과 과일을 마련하여 산소를 찾아 성묘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추석에는 술과 과일을 산소에 올리는 것을 한식 때처럼 하도록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한식과 추석에 조상의 묘를 살피는데, 이때 머슴이나 거지라도 모두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을 돌보았다고 할 정도이다 . 주인은 머슴에게 새 옷과 신발, 허리띠를 해주기도 했다. 성묘한 이후에는 묘소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성묘에 제례가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까지 설・단오・한식・추석의 4대 명절에 묘제를 지내는 풍속이 계속되었다. 음력 10월에도 묘제를 올렸는데, 10월의 묘제는 사대봉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산소를 살피고 예를 올리는 것으로서 ‘시제時祭’ 또는 ‘시향제時享祭’라고도 한다. 아울러 평상시에도 조상의 묘를 살피고 깨끗하게 청소하기도 했다. 조선 초기에는 『육전六典』에 의해 현임관이 성묘를 갈 때에는 반드시 모두 사직辭職한 이후에 가도록 했으나, 1407년(태종 7)에는 군사들에게 3년에 한 번씩 돌아가 근친하게 하고, 부모가 이미 죽은 사람은 근친하는 예에 의하여 돌아가 분묘를 성소省掃하도록 하는 규정을 세우기도 했다. 지역 혹은 가정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4대 명절 가운데 한식과 추석에 절사節祀를 지내거나 한식과 10월에 시제를 지내는데, 특히 추석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냈다.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는 경우에는 9월 중양절에 제를 지내기도 하고, 10월의 묘제를 큰 제사로 여기고 추석에는 성묘만 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 도시생활로 바쁜 가정에서는 추석 차례 때 묘제와 성묘를 함께 치르는 풍속이 형성되기도 한다.

내용

성묘는 조상의 묘를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지만 , 사실상 조상의 묘를 손질하는 것과 배례拜禮가 합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로 한식・추석 때 성묘를 하는 것이 정착되었다. 한식인 음력 3월에는 개사초改莎草라고하여 겨울부터 봄 사이에 생긴 구덩이를 비롯하여 조상의 묘에 생긴 손상을 손질하여 바로잡는다. 이때 부족한 떼(잔디)를 다시 입혀준다.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한식 이후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과 작은 나무 등을 베거나 깎아주어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했다. 10월 묘제를 지내면서 추석에는 성묘만 하기도 했으나, 요즘 일반 가정에서는 일정한 날을 정하여 묘제를 지내는 것이 힘이 들자 추석 차례 때 성묘하면서 묘제를 함께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다. 특히 추석에 성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일 년 동안의 경작으로 수확한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바친다는 의미가 덧붙여졌기 때문이다.

지역사례

기호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설날과 추석에도 성묘하는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영남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설날과 추석에는 성묘하지 않고, 한식에만 성묘하였다. 그런데 인구의 도시집중화가 이루어진 1980년대 후반 이후로 추석에 성묘하는 것은 전국적인 현상이 되었고, 그 밖의 날에는 성묘의 전통이 약화하였다. 묘제를 조상의 묘에서 지내지 않고 재실齋室에서 지내는 사례가 많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상북도 안동의 퇴계 종가에서는 재실에서 묘제를 지내거나 지방으로 합동묘제를 지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2014년에도 옛 전통에 따라서 한식 성묘를 하는 문중도 있다. 흥해 배씨興海裵氏 안동 입향조 백죽당栢竹堂 배상지裵尙志(1351~1413)와 그의 배위 묘소(상하 연속 배치)에서는 매년 한식에 성묘하는 전통이 이어진다. 이 문중에서는 가을에 올리는 시향제, 즉 묘제 때에는 제물을 성대하게 갖추어서 올리는데 반해 한식 성묘를 할 때는 독축讀祝 없이 단헌單獻으로 간단하게 제사를 지낸다. 두 묘소의 상석에 각각 주과포酒果脯와 육적肉炙・어적魚炙으로 이루어진 간소한 제물을 갖추고 한 사람의 창홀唱笏에 따라 상하 연속된 묘소에 참사자들이 나누어 서서 동시에 제사를 지내는 형식이다. 경북 안동 풍산읍 안교리에서는 한식이 사방팔방의 잡귀가 없는 날, 즉 ‘손이 없는 날(무방수날)’로 인식되어 무슨 일을 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때 산소에 난 잡풀을 뽑고, 떼를 새로 입히며 주변에 나무를 심는 등 조상의 묘를 두루 손질한다. 설에는 성묘를 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데, 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경기도 일부지역에서는 ‘햇세배’라 하여 반드시 성묘한다. 경기도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추석에 성묘를 가지 않는 가정이 많다.

특징 및 의의

성묘는 한식과 추석 명절에 조상의 묘를 찾아 손질하고 살피는 일이다. 단순히 묘소만 살피는 것이 아니라 간단한 제물과 함께 재배를 하기도 한다. 조상의 영혼만큼 육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오늘날까지 조상의 묘를 손질하고 살피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참고문헌

定宗實錄, 太宗實錄, 동국세시기(정승모 역, 풀빛, 2009), 세시풍속(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 조선대세시기1(국립민속박물관, 2003),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한국세시풍속1(김명자, 민속원, 2005), 한국의 제사(국립민속박물관,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