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팔기(卖子礼)

한자명

卖子礼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아이의 명이 짧거나 사주가 좋지 않을 경우 신이나 자연물 또는 사람을 수양부모로 정하여 아이의 수명장수를 비는 비정기적인 의례.

역사

아이팔기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16세기때 이문건이 남겨 놓은 『묵재일기(黙齋日記)』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해생인 손자 숙길의 팔자를 뽑아 점복 김자수에게 물었더니 아이의 운명이 귀하여 3세와 7세 때 액운이 있어서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친모가 길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답이 왔다. 아이를 위해 주성(主星)에게 제사 지낼 날을 택일해 주겠다고도 한다. 이문건은 당시 오랜 사화로 멸문지화를 당하고 자식마저 잃어 오로지 손자에게 가문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만큼 점복 김자수의 예언을 그대로 따랐다.

이문건이 태어난 손자의 사주에 대해 문복한 것, 점복이 손자에게 액이 있으니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 친모가 기르지 말고 유모에게 맡기라고 한 것 등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아이팔기 속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문복이나 제사 행위가 정월 상원을 전후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주목된다. 오늘날의 ‘아이팔기’도 정월 신수를 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정월 초승이나 보름에 제의가 행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 대신 유모의 양육을 강권한 것도 결국 아이의 액운을 벗어나기 위해 수양어머니를 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칠성에게 아이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오늘날의 아이팔기와 비견될 만하다.

담헌 홍대용의 『담헌서외집(湛軒書外集)』 권8 연기(燕記)의 ‘연로기략(沿路記略)’ 부분에도 중국과 한국의 아이팔기[賣兒] 습속에 관한 언급이 있다. 1765년 동지사 서장관이 된 담헌이 계부 홍억(洪檍)의 수행원으로 연경을 다녀와 기록한 것으로, “길가에 늘어선 점사의 주인들이 그 자녀들을 우리나라의 역졸이나 역관들과 부자관계를 맺어주고는 주찬을 대접하고 토산물을 선사했다.”는 내용이다. 담헌은 이것을 어린아이를 위한 액막이라고 하면서 당시 조선에 있던 매아속(賣兒俗)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똑같은 내용이 역시 1832년 서경보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김경선의 『연원직지(燕轅直指)』 6권 유관별록의 인물요속에서도 보인다. 이상의 기록들로 미루어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아이팔기 습속이 널리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수양부모를 정하고 주찬과 토산품으로 수양부모를 대접하는 풍속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

아이팔기의 습속과 제의에 관한 더 오래된 기록은 찾기 어렵다. 다만 광줄이, 실겅이, 바우, 판돌이, 판수와 같은 아명들이 민간에서 흔히 불려졌던 것을 보면 아이팔기 신앙은 근대 이후까지도 강한 전승력을 지니고 지속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광주리에 담아 시렁에 올려놓는 것은 시렁 위에 모셔진 삼신에게 아기를 파는 행위이다. 그래서 아이 이름이 광줄이가 되고 실겅이가 되었다. 바우는 바위에게 판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이고, 판돌이나 판수는 무당에게 판 아이라는 의미이다. 아이팔기 의례를 치른 아이들에게 붙여진 이런 이름들은 늦어도 1950~1960년대까지는 흔하고 친숙한 아명이었다.

근대 의료기관이 보급되기 이전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절을 살았던 세대에게 아이의 수명을 연장하는 아이팔기 의례가 지니는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태어난 아기에게 정기적 일생의례로 행해진 아이팔기가 점차 귀한 자손이나 병치레가 많은 아이, 사주가 좋지 않은 아이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비정기적 의례로 바뀌어 간 것도 높은 영․유아 사망률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강화된 남아선호 사상과 문화가 딸보다는 아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아이팔기를 행하는 변화를 부추겼다.

내용

수양부모를 정하여 아이의 수명을 길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아이를 판다.’라고 한다. ‘아이팔기’는 수양부모를 정하는 것이 곧 수양부모에게 아이를 파는 것이라 인식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자식팔기, 수양부모 삼기, 수양어머니 삼기, 시영어매 삼기, 명다리 걸기, 수양 걸기, 신충애기 등으로도 불린다. 언나팔기, 시엉[시영]어매[어머니] 삼기 등의 이칭은 ‘언나’가 아이의 경상도 방언이고 ‘시엉[시영]어매’는 수양어머니의 충청도 방언인 데서 비롯되었다. ‘명다리 걸기’는 무당에게 아이를 판 것을 일컫는 이름이다. 명다리는 긴 무명베에다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시, 주소를 적은 것을 말하며, 아이를 파는 집에서는 이 명다리를 마련하여 수양어미가 될 무당에게 건네준다. 명다리 걸기는 무당이 명다리를 자신의 신당에 거는 행위를 이른 것으로, 실제로는 아이의 이름을 신당에 올린다는 의미이다. ‘아이사기’는 아이를 산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는 아이팔기의 이칭이다. 제주도의 ‘신충애기’도 심방의 자식으로 이름을 올린 애기라는 의미이다.

아이팔기 습속은 거의 전국적 분포를 보이고 있다. 자식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라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귀한 자손이 출생하였을 때, 아이가 단명할 사주일 때, 아이의 사주가 부모와 맞지 않을 때, 태어난 아이가 잔병치레가 잦을 때, 그리고 아이의 신수에 액운이 끼었을 때 부모들은 아이팔기를 했다. 딱히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무당이 태어난 아이의 장래를 위해 팔아 주면 좋다고 권하면 부모로서는 그 권유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팔기도 하지만 대개는 3~7세 때 팔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팔기는 3세 안으로 하면 좋고 늦어도 10세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1, 3, 5, 7, 9와 같은 홀수 나이에 파는 것을 좋게 여겼다. 그러나 20세가 넘어서도 자식의 건강과 일이 순조롭지 않으면 아이팔기를 해 주었다.

아이를 파는 대상은 자연물, 신, 무당, 다복한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자연물은 산, 나무, 바위, 물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연물에 팔 때는 아이의 띠에 따라서 파는 곳이 달라진다. 아이가 용띠라면 샘이나 물가에 팔고, 범띠이면 산이나 바위에 파는 것은 그 곳들이 띠동물과 상관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무당이 잡은 대가 향하는 곳에다 팔거나, 집안에서 특별히 위하는 산, 나무, 샘 등에다 팔기도 하였다. 아이의 사주를 감안하여 무당이 직접 팔 곳을 정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무당이나 스님과 같은 종교직능자에게 아이를 파는 것이다. 단골무당에게 아이의 명다리를 걸거나 다니는 절에 아이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이 때는 무당 또는 스님이 아이의 수양부모가 된다. 수양부모가 된 무당이나 스님에게는 쌀, 돈, 옷, 무구 등을 시주한다. 특히 무당을 수양어머니로 삼을 경우, 징, 북, 꽹과리 등의 악기를 무구로 장만해 주면 아이에게 좋다고 여겼다.

이웃에 사는 다복한 사람에게 아이를 팔기도 했다. 수양어머니로는 첫아들을 낳았거나 아들을 많이 낳은 다복한 부인이 선호되었고, 수양아버지 역시 다복한 집안의 손위 어른에게 부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에는 수양 관계를 위한 의례는 특별히 행하지 않지만, 수양부모에게 새 옷을 장만해 드리거나 명절이나 특별한 날 인사를 가는 등으로 친부모와 다를 바 없이 친밀하게 지낸다. 그리고 수양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과 마찬가지로 상복도 입었다.

용왕, 산신, 부처, 칠성과 같은 신격에게 아이를 파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산신은 산과, 부처는 절과 동일한 의미이다. 때로는 산신당의 무당이나 절의 승려에게 판 것과도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샘이나 물가에 판 것을 용왕에게 팔았다고도 하는 것처럼, 때로 자연물과 신격이 겹쳐지기도 하였다. 특히 수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칠성신은 아이팔기 신앙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아이가 명이 짧으리란 사실 자체가 칠성을 위해 주지 않은 탓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아이팔기가 주로 칠성신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의 제사도 칠석맞이의 하나로 행해지게 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이는 용왕에게 아이를 판 뒤, 용왕먹이기로 제사를 대신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아이팔기의 의례는 주로 무당이나 점복, 때로는 승려와 같은 종교직능자가 주재하는 경우가 많다. 파는 곳이 결정되면 아이를 파는 집에서는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여 무당이나 점복과 함께 그 곳으로 간다. 그리고 금줄을 치고 제물을 진설한 후, “아무것이 동자 사소.”, “○○○, ○살 먹은 중생, 명복 길게 해 주소.”, 또는 “우리 ○○○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고 재죽재죽 잘 봐 주이소.”라고 하면서 아이의 수명장수를 축원한다. 제물은 지역과 집안, 그리고 의례 주재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밥, 떡, 삼색과일 외에 향과 초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실타래나 흰 천[명다리]은 빠뜨리지 않는다. 둘 다 명을 길게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 되기 전에 아기를 팔 경우에는 미역국도 올려야 한다. 나무에 팔면 종이나 헝겊을 묶어 아이 판 곳임을 표시하고, 바위에 팔면 판 아이의 이름을 새기거나 실타래를 걸어 두어 그 흔적을 남겼다. 아이팔기 의례는 비교적 절차가 간단하여 집안 사정에 따라서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신할 수도 있었다.

아이팔기 의례를 한 후에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장성할 때까지는 연중 특별한 세시마다 아이 판 곳을 찾아가 수명장수를 비는 치성을 올린다. 제일은 아이를 판 대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월대보름과 사월초파일, 칠월칠석, 가을맞이, 섣달그믐날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아이를 판 날이나 아이의 생일에 그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판 사람과 아이를 산 종교직능자들이 함께 올리는 이 치성은 아이의 나이가 13세 또는 20세가 될 때까지, 더러는 결혼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명다리를 건다거나 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결국 무당 또는 승려 등의 종교직능자와 아이를 판 집 간의 단골관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곧 아이팔기가 양자 간의 단골관계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단골관계에서 서로 아이를 사고 팔았다면 이 의례를 계기로 단골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

지역사례

경기도 지역의 아이팔기에서는 만신의 존재와 역할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아이를 판 집에서 장만한 명다리를 건네받은 만신은 그것을 신당에 걸어 두었다가 진적굿을 할 때나 그 밖의 특별한 제의가 있을 때 들어내 걸어놓고 아이의 수명장수를 기원해 준다. 이 지역에서는 그것을 ‘명다리 놀린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이 곳에서는 아이팔기보다 명다리 걸기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경북 지역에서는 무당보다는 자연물이나 사람에게 아이를 파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경북 지역의 무당이나 점바치는 주로 아이를 산천에 파는 것을 중개하거나 그 의례를 주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띠에 따라 아이를 파는 자연물의 대상이 다른 지역보다 더 구체적이고 세분된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아이가 용띠이면 샘이나 물가에, 범띠이면 산이나 바위에, 뱀띠 또는 양띠이면 들판에 각각 판다. 또 소띠나 말띠는 풀이 많은 곳, 쥐띠는 변소나 돌담, 돼지띠는 질퍽한 땅에 각각 판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체로 띠동물이 거처하는 곳에 아이를 팔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유사주술의 원리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신충애기’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불리는 제주도 지역의 아이팔기도 독특한 면이 있다. 제주도 서부 지역에서는 아기가 허약할 경우 심방의 자식으로 신당에 이름을 올리고, 때로 심방이 직접 키우기도 한다. 또 심방은 여러 가지 굿을 할 때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귀신이 범접하는 것을 막아 준다. 다만 아이가 15세 정도가 되면 그 이름을 도로 가져와야 한다. 부모가 그것을 무심히 놔두면 아이에게 해롭다고 여겼다. 부모가 자주 굿을 해 주면서 뒷바라지를 하거나 적절한 때에 뒷마무리를 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온전한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함부로 심방 밑으로 올리면 안 된다는 인식도 나타난다. 또 육지와 달리 이 지역에서는 자연물이나 일반인에게 아이를 파는 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이팔기 의례의 실제는 곳곳마다 다양한 사례가 산재하여 지역적 특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참고문헌

湛軒書外集 권8, 묵재일기에 나타난 조선전기의 민속 (이복규, 민속원, 1999), 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8), 서미마을 ‘아이팔기’신앙 연구 (한해숙,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아이팔기

아이팔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아이의 명이 짧거나 사주가 좋지 않을 경우 신이나 자연물 또는 사람을 수양부모로 정하여 아이의 수명장수를 비는 비정기적인 의례.

역사

아이팔기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은 16세기때 이문건이 남겨 놓은 『묵재일기(黙齋日記)』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신해생인 손자 숙길의 팔자를 뽑아 점복 김자수에게 물었더니 아이의 운명이 귀하여 3세와 7세 때 액운이 있어서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친모가 길러서는 안 되며 반드시 유모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는 답이 왔다. 아이를 위해 주성(主星)에게 제사 지낼 날을 택일해 주겠다고도 한다. 이문건은 당시 오랜 사화로 멸문지화를 당하고 자식마저 잃어 오로지 손자에게 가문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만큼 점복 김자수의 예언을 그대로 따랐다. 이문건이 태어난 손자의 사주에 대해 문복한 것, 점복이 손자에게 액이 있으니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 친모가 기르지 말고 유모에게 맡기라고 한 것 등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아이팔기 속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문복이나 제사 행위가 정월 상원을 전후하여 이루어지는 것도 주목된다. 오늘날의 ‘아이팔기’도 정월 신수를 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정월 초승이나 보름에 제의가 행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부모 대신 유모의 양육을 강권한 것도 결국 아이의 액운을 벗어나기 위해 수양어머니를 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수명을 주관하는 별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칠성에게 아이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오늘날의 아이팔기와 비견될 만하다. 담헌 홍대용의 『담헌서외집(湛軒書外集)』 권8 연기(燕記)의 ‘연로기략(沿路記略)’ 부분에도 중국과 한국의 아이팔기[賣兒] 습속에 관한 언급이 있다. 1765년 동지사 서장관이 된 담헌이 계부 홍억(洪檍)의 수행원으로 연경을 다녀와 기록한 것으로, “길가에 늘어선 점사의 주인들이 그 자녀들을 우리나라의 역졸이나 역관들과 부자관계를 맺어주고는 주찬을 대접하고 토산물을 선사했다.”는 내용이다. 담헌은 이것을 어린아이를 위한 액막이라고 하면서 당시 조선에 있던 매아속(賣兒俗)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똑같은 내용이 역시 1832년 서경보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김경선의 『연원직지(燕轅直指)』 6권 유관별록의 인물요속에서도 보인다. 이상의 기록들로 미루어 늦어도 조선시대에는 아이팔기 습속이 널리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수양부모를 정하고 주찬과 토산품으로 수양부모를 대접하는 풍속도 오늘과 다르지 않다. 아이팔기의 습속과 제의에 관한 더 오래된 기록은 찾기 어렵다. 다만 광줄이, 실겅이, 바우, 판돌이, 판수와 같은 아명들이 민간에서 흔히 불려졌던 것을 보면 아이팔기 신앙은 근대 이후까지도 강한 전승력을 지니고 지속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광주리에 담아 시렁에 올려놓는 것은 시렁 위에 모셔진 삼신에게 아기를 파는 행위이다. 그래서 아이 이름이 광줄이가 되고 실겅이가 되었다. 바우는 바위에게 판 아이에게 붙여진 이름이고, 판돌이나 판수는 무당에게 판 아이라는 의미이다. 아이팔기 의례를 치른 아이들에게 붙여진 이런 이름들은 늦어도 1950~1960년대까지는 흔하고 친숙한 아명이었다. 근대 의료기관이 보급되기 이전 영․유아 사망률이 높은 시절을 살았던 세대에게 아이의 수명을 연장하는 아이팔기 의례가 지니는 의미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태어난 아기에게 정기적 일생의례로 행해진 아이팔기가 점차 귀한 자손이나 병치레가 많은 아이, 사주가 좋지 않은 아이를 대상으로 행해지는 비정기적 의례로 바뀌어 간 것도 높은 영․유아 사망률과 무관하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강화된 남아선호 사상과 문화가 딸보다는 아들에 대해 우선적으로 아이팔기를 행하는 변화를 부추겼다.

내용

수양부모를 정하여 아이의 수명을 길게 해 달라고 비는 것을 ‘아이를 판다.’라고 한다. ‘아이팔기’는 수양부모를 정하는 것이 곧 수양부모에게 아이를 파는 것이라 인식한 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지역에 따라서는 자식팔기, 수양부모 삼기, 수양어머니 삼기, 시영어매 삼기, 명다리 걸기, 수양 걸기, 신충애기 등으로도 불린다. 언나팔기, 시엉[시영]어매[어머니] 삼기 등의 이칭은 ‘언나’가 아이의 경상도 방언이고 ‘시엉[시영]어매’는 수양어머니의 충청도 방언인 데서 비롯되었다. ‘명다리 걸기’는 무당에게 아이를 판 것을 일컫는 이름이다. 명다리는 긴 무명베에다 아이의 이름, 생년월일시, 주소를 적은 것을 말하며, 아이를 파는 집에서는 이 명다리를 마련하여 수양어미가 될 무당에게 건네준다. 명다리 걸기는 무당이 명다리를 자신의 신당에 거는 행위를 이른 것으로, 실제로는 아이의 이름을 신당에 올린다는 의미이다. ‘아이사기’는 아이를 산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는 아이팔기의 이칭이다. 제주도의 ‘신충애기’도 심방의 자식으로 이름을 올린 애기라는 의미이다. 아이팔기 습속은 거의 전국적 분포를 보이고 있다. 자식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누구라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대체로 귀한 자손이 출생하였을 때, 아이가 단명할 사주일 때, 아이의 사주가 부모와 맞지 않을 때, 태어난 아이가 잔병치레가 잦을 때, 그리고 아이의 신수에 액운이 끼었을 때 부모들은 아이팔기를 했다. 딱히 그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무당이 태어난 아이의 장래를 위해 팔아 주면 좋다고 권하면 부모로서는 그 권유를 무시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팔기도 하지만 대개는 3~7세 때 팔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이팔기는 3세 안으로 하면 좋고 늦어도 10세를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1, 3, 5, 7, 9와 같은 홀수 나이에 파는 것을 좋게 여겼다. 그러나 20세가 넘어서도 자식의 건강과 일이 순조롭지 않으면 아이팔기를 해 주었다. 아이를 파는 대상은 자연물, 신, 무당, 다복한 사람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자연물은 산, 나무, 바위, 물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자연물에 팔 때는 아이의 띠에 따라서 파는 곳이 달라진다. 아이가 용띠라면 샘이나 물가에 팔고, 범띠이면 산이나 바위에 파는 것은 그 곳들이 띠동물과 상관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무당이 잡은 대가 향하는 곳에다 팔거나, 집안에서 특별히 위하는 산, 나무, 샘 등에다 팔기도 하였다. 아이의 사주를 감안하여 무당이 직접 팔 곳을 정하기도 했다. 다음으로는 무당이나 스님과 같은 종교직능자에게 아이를 파는 것이다. 단골무당에게 아이의 명다리를 걸거나 다니는 절에 아이의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이 때는 무당 또는 스님이 아이의 수양부모가 된다. 수양부모가 된 무당이나 스님에게는 쌀, 돈, 옷, 무구 등을 시주한다. 특히 무당을 수양어머니로 삼을 경우, 징, 북, 꽹과리 등의 악기를 무구로 장만해 주면 아이에게 좋다고 여겼다. 이웃에 사는 다복한 사람에게 아이를 팔기도 했다. 수양어머니로는 첫아들을 낳았거나 아들을 많이 낳은 다복한 부인이 선호되었고, 수양아버지 역시 다복한 집안의 손위 어른에게 부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경우에는 수양 관계를 위한 의례는 특별히 행하지 않지만, 수양부모에게 새 옷을 장만해 드리거나 명절이나 특별한 날 인사를 가는 등으로 친부모와 다를 바 없이 친밀하게 지낸다. 그리고 수양부모가 돌아가시면 자식과 마찬가지로 상복도 입었다. 용왕, 산신, 부처, 칠성과 같은 신격에게 아이를 파는 경우도 많이 있다. 산신은 산과, 부처는 절과 동일한 의미이다. 때로는 산신당의 무당이나 절의 승려에게 판 것과도 같은 의미로 이해된다. 샘이나 물가에 판 것을 용왕에게 팔았다고도 하는 것처럼, 때로 자연물과 신격이 겹쳐지기도 하였다. 특히 수명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칠성신은 아이팔기 신앙에서 중요한 존재이다. 아이가 명이 짧으리란 사실 자체가 칠성을 위해 주지 않은 탓이라 여겨지기도 했다. 아이팔기가 주로 칠성신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의 제사도 칠석맞이의 하나로 행해지게 된 것과도 관계가 있다. 이는 용왕에게 아이를 판 뒤, 용왕먹이기로 제사를 대신하는 것과도 유사하다. 아이팔기의 의례는 주로 무당이나 점복, 때로는 승려와 같은 종교직능자가 주재하는 경우가 많다. 파는 곳이 결정되면 아이를 파는 집에서는 간단한 제물을 준비하여 무당이나 점복과 함께 그 곳으로 간다. 그리고 금줄을 치고 제물을 진설한 후, “아무것이 동자 사소.”, “○○○, ○살 먹은 중생, 명복 길게 해 주소.”, 또는 “우리 ○○○ 무럭무럭 자라게 해주고 재죽재죽 잘 봐 주이소.”라고 하면서 아이의 수명장수를 축원한다. 제물은 지역과 집안, 그리고 의례 주재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밥, 떡, 삼색과일 외에 향과 초를 준비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실타래나 흰 천[명다리]은 빠뜨리지 않는다. 둘 다 명을 길게 잇는다는 상징적 의미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 되기 전에 아기를 팔 경우에는 미역국도 올려야 한다. 나무에 팔면 종이나 헝겊을 묶어 아이 판 곳임을 표시하고, 바위에 팔면 판 아이의 이름을 새기거나 실타래를 걸어 두어 그 흔적을 남겼다. 아이팔기 의례는 비교적 절차가 간단하여 집안 사정에 따라서는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신할 수도 있었다. 아이팔기 의례를 한 후에도 아이가 어느 정도 장성할 때까지는 연중 특별한 세시마다 아이 판 곳을 찾아가 수명장수를 비는 치성을 올린다. 제일은 아이를 판 대상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정월대보름과 사월초파일, 칠월칠석, 가을맞이, 섣달그믐날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아이를 판 날이나 아이의 생일에 그 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판 사람과 아이를 산 종교직능자들이 함께 올리는 이 치성은 아이의 나이가 13세 또는 20세가 될 때까지, 더러는 결혼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명다리를 건다거나 절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결국 무당 또는 승려 등의 종교직능자와 아이를 판 집 간의 단골관계가 형성되었음을 의미한다. 곧 아이팔기가 양자 간의 단골관계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이미 단골관계에서 서로 아이를 사고 팔았다면 이 의례를 계기로 단골관계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

지역사례

경기도 지역의 아이팔기에서는 만신의 존재와 역할이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다. 아이를 판 집에서 장만한 명다리를 건네받은 만신은 그것을 신당에 걸어 두었다가 진적굿을 할 때나 그 밖의 특별한 제의가 있을 때 들어내 걸어놓고 아이의 수명장수를 기원해 준다. 이 지역에서는 그것을 ‘명다리 놀린다’고 표현한다. 따라서 이 곳에서는 아이팔기보다 명다리 걸기라는 명칭이 더 일반적이다. 이에 비해 경북 지역에서는 무당보다는 자연물이나 사람에게 아이를 파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경북 지역의 무당이나 점바치는 주로 아이를 산천에 파는 것을 중개하거나 그 의례를 주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띠에 따라 아이를 파는 자연물의 대상이 다른 지역보다 더 구체적이고 세분된 특징이 있다. 이를테면 아이가 용띠이면 샘이나 물가에, 범띠이면 산이나 바위에, 뱀띠 또는 양띠이면 들판에 각각 판다. 또 소띠나 말띠는 풀이 많은 곳, 쥐띠는 변소나 돌담, 돼지띠는 질퍽한 땅에 각각 판다고 하는 것을 보면 대체로 띠동물이 거처하는 곳에 아이를 팔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유사주술의 원리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또한 ‘신충애기’라는 독특한 명칭으로 불리는 제주도 지역의 아이팔기도 독특한 면이 있다. 제주도 서부 지역에서는 아기가 허약할 경우 심방의 자식으로 신당에 이름을 올리고, 때로 심방이 직접 키우기도 한다. 또 심방은 여러 가지 굿을 할 때 그 아이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귀신이 범접하는 것을 막아 준다. 다만 아이가 15세 정도가 되면 그 이름을 도로 가져와야 한다. 부모가 그것을 무심히 놔두면 아이에게 해롭다고 여겼다. 부모가 자주 굿을 해 주면서 뒷바라지를 하거나 적절한 때에 뒷마무리를 해 주지 않으면 오히려 온전한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함부로 심방 밑으로 올리면 안 된다는 인식도 나타난다. 또 육지와 달리 이 지역에서는 자연물이나 일반인에게 아이를 파는 사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이팔기 의례의 실제는 곳곳마다 다양한 사례가 산재하여 지역적 특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참고문헌

湛軒書外集 권8, 묵재일기에 나타난 조선전기의 민속 (이복규, 민속원, 1999)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8)서미마을 ‘아이팔기’신앙 연구 (한해숙,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