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물

집필자 박종익(朴鍾翼)
갱신일 2019-01-31

정의

실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타래. 실타래는 가신(家神)이나 마을신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의례와 집안의 고사 등에 수명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신령에게 바치는 제물 또는 폐백으로 진설되는 게 일반적이다.

역사

실은 인류의 삶과 더불어 출현하였다. 최초의 실은 덩굴이나 나무껍질, 풀 껍질 등을 재료로 하여 서로 이어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실은 생활도구를 묶거나 신체의 장식, 옷의 제작 등에 사용되었다. 역사시대에 이르면 목화, 삼베, 누에고치, 동물의 털 등으로 다양한 실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이들 실은 재료로 이용되어 옷감을 직조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유리왕 때의 가배(嘉俳) 풍속을 통하여 삼베의 직조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타래와 관련된 풍속으로 조선시대의 토실치기가 있다. 토실치기는 정월 첫 토끼(卯日)날에 일곱 개의 씨가 든 목화를 자아내어 동쪽을 향해 앉아 실을 뽑아서 어린아이들에게 채워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토실’ 또는 ‘톳실’이라도 한다. 한자로는 이 실을 ‘장명사(長命絲)’라고 하였다. 이 단어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수명을 길게 해주려는 뜻이 담긴 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아래와 같은 칠언시가 실려 있다.

일곱 씨앗 목화를 올올이 자아내어
아침 해 밝을 때까지 물레소리 스릉스릉
가늘고 가는 장명실을 뽑아내어
새 봄 첫 토끼날에 아이에게 채워주네

이와 유사한 조선시대의 풍속으로 ‘실공드리기’가 있다. 실공드리기는 정월 열나흗날에 하던 풍속의 하나이다. 이날 시루떡을 쪄서 성주께 올리고, 그릇에 쌀을 가득 담아 떡시루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쌀그릇에 숟가락을 꽂은 다음 긴 실을 축원할 사람의 나이만큼 둥글게 감아 서린다. 이처럼 실을 제물로 삼아 공을 드리는 것을 ‘실(絲)공 들인다.’고 한다. ‘명(命)공 들인다.’고도 한다. 대개 이러한 실공드리기는 정초에 신수점을 보아 가족 가운데 운수가 사나운 사람이 있는 경우에 행한다. 조선시대의 세시기인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정월대보름에 “상원사(上元絲)를 서로 선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실공드리기이다.

형태

실은 천연섬유(면화, 양모, 생사 등)와 인공섬유(레이온, 함성섬유)를 재료로 가공하여 만든다. 실타래는 이들 섬유를 가공하여 만든 실의 수십 가닥을 타원형으로 감아놓은 실이다. 신앙이나 의례에 사용되는 실타래는 주로 천연섬유를 가공해 만든 면사이다. 곧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실타래는 주로 흰색 면사이다. 동제나 보편적인 고사 때 올리는 실타래 역시 흰색 면사임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혼례식이나 장례 때 사용되는 실타래는 곱게 물을 들인 청홍색이다.

내용

실타래는 실생활 외에 출산과 육아, 민간신앙, 무속, 혼례, 상례 등 다양한 의례에 사용된다. 곧 민속에서의 실타래는 제의나 기원과 관련된 행위에 주로 이용됨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산과 관련하여 실타래가 등장하는 것은 삼신상 차림이다. 임신한 여성은 출산이 임박하면 산방(産房)에서 해산을 기다린다. 이때 여성의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산방 한쪽에 짚을 깔고 미역, 쌀, 실타래를 놓아둔다. 이들은 모두 임부의 순산을 기원하며 삼신께 올리는 제물이다. 이 실타래에는 태어날 아기의 수명장수를 소망하는 뜻이 담겨 있다.

돌을 기념하기 위한 돌잡이 행사에서도 실타래가 등장한다. 돌잡이 상에 올려놓는 각각의 물건은 그들 나름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한 예로 돈이나 쌀은 부, 책이나 연필은 학식, 실타래는 장수를 각각 뜻한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아기가 돌잡이 상의 여러 물건을 선택할 때 실타래를 잡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아기가 실타래를 잡으면 부모는 이것을 아기의 목에 걸어준다. 실타래를 아기의 목에 걸어주는 것은 실타래의 긴 실처럼 아기의 수명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다.

신앙의례에 있어서도 실타래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가정신앙의 경우 성줏단지한지와 실타래를 올려놓는 예를 볼 수 있다. 또는 주택의 상량에 한지를 놓은 뒤 실타래로 감아놓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 밖에 서낭고사나 삼신고사를 지낼 때에도 실타래를 바치는 풍습이 있다. 아울러 안택고사를 지낼 때에도 실타래가 제물로 놓여진다.

이처럼 실타래가 고사에 등장하는 것은 이미 예부터 실타래가 건강과 장수의 의미로 관념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상원사(上元絲)’나 ‘토실치기’의 실타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민족에게 실타래는 장수 소망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보편 관념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다양한 신앙의례에 실타래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가정신앙이 집안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의라고 하는 점에서 장수의 상징물인 실타래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을신을 제사하는 동제에서도 실타래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때 실타래는 제물과 더불어 제사상에 진설되었다가 제를 마감하면 폐백을 상징하는 신물(神物)로 바친다. 곧 북어나 한지에 실타래를 묶어 제물의 일부로 상 위에 놓고, 제사가 끝나면 이것을 신목이나 장승․탑․선돌․미륵․서낭당 등에 묶거나 걸어두는 등의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다수가 발견되며, 실타래를 봉안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 예로 충남 금산지역에서는 탑제를 지내기 전에 탑의 머릿돌에 한지를 씌우고 실타래를 묶어두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를 ‘옷을 입힌다’고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신에게 치성을 드리면서 폐백의 의미로 새옷을 갈아입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제의 제물로 사용되는 실타래에는 개인이 아닌 마을이라는 공동체의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무속에서 실타래는 중요한 제물의 하나이다. 안택굿이나 재수굿에 으레 실타래가 사용됨을 볼 수 있다. 특히 성주를 모실 때 실타래는 대주와 그 가족의 수명장수 기원이라고 하는 점에서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충남지역에서는 성주를 받을 때 실타래가 중요한 제물이다. 무당이 성주를 받기 위해 성주가 앉은 나무를 찾아 나서면 그 가정의 대주가 대추, 밤, 곶감, 술, 실타래를 들고 뒤를 따른다. 무당이 특정 나무 앞에서 멈추면 그 전면에 대주가 가지고 간 제물을 차려놓는다. 그러면 무당이 경 한 석을 베푼다. 독경을 마치고 무당이 나무로부터 성주를 찾아 방으로 되돌아오면 대주가 제물을 거두어 뒤따라 들어온다. 그러고는 꺾어온 나뭇가지와 동전, 쌀 등을 한지에 담아 접은 뒤 가져온 실타래로 묶어 성주목에 달아맨다. 이와 같이 성주받기에 있어서의 실타래는 제물이자 성주에게 올리는 폐백임을 알 수 있다.

어로민속에서도 실타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고사나 풍어제 때 실타래가 제물로 사용됨을 볼 수 있다. 배서낭을 모시는 데에 있어서도 실타래가 주요 폐백의 하나로 등장한다. 물론 배서낭에서의 실타래는 여성 배서낭신에게 바느질 도구와 함께 올리는 폐백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배서낭의 실타래 또한 수명장수의 보편적 관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 예로 북어를 묶은 실타래를 배서낭으로 두는 어선도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거친 바다 위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어민들에게 실타래의 의미는 위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혼례와 상례에서도 실타래가 사용된다. 전통 혼례의 경우 대례상에 송죽 화병이 놓이며 이 화병의 소나무와 대나무에 청홍색의 실타래를 올려놓는 예가 있다. 이처럼 화병 위에 실타래를 올려놓는 것은 가연을 맺은 신랑 신부의 백년해로를 빌어주기 위한 것이다.

상례에서는 폐백으로 실타래가 사용된다. 한 예로 충남 공주에서는 입관을 마친 뒤 상주가 폐백으로 청색 홍색 실타래를 망자에게 올린다. 맏상주가 청홍색 실타래를 받아 망자의 주검 앞에 놓고 재배 함으로써 폐백의식을 마친다.

지역사례

비근한 예로 출산 때 삼신에게 치성을 드리며 실타래를 올리는 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돌잡이 상에 실타래를 놓고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거나 성줏단지 위에 실타래를 올려놓고 봉안하는 예는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전승되는 풍속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지역에서는 성줏단지 안에 돈, 삼베조각, 종이 등과 더불어 실타래를 넣어 놓는다. 이처럼 대청의 성주목에 한지와 실타래를 묶어두는 사례는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도․전라도 등지에서 산견된다.

충남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서는 어민이 자신의 거실 벽에 닻줄 일부를 둥그렇게 감아 걸어놓은 뒤 그것을 실타래로 묶어놓은 예가 있다. 이때 닻줄은 어민의 선박을 상징하는 동시에 선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닻줄에 건 실타래는 선주의 생명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서낭에서의 실타래 사례도 발견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돌무더기 서낭당에 간혹 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현납속의 일환으로 실타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례로 충남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리에서는 서낭당의 신목에 청색 홍색 실을 매달아 놓았다. 정초에 개인이 서낭고사를 지내고 이와 같은 폐백을 올리는 것이다.

한편 성주받기는 무당이나 법사가 의식을 주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때 사용되는 실타래는 대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제물이다.

동제에서의 실타래 사용도 폭넓게 발견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 종이골에서는 느티나무고사를 지낼 때 실타래를 사용한다. 곧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떡시루 안에 넣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북어를 감은 실타래를 신목에 걸쳐 놓는다. 여주군 강천면 적금2리 장승고사에서도 동일한 예가 발견된다.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떡시루 안에 넣고 제를 지낸 뒤 이 실타래를 장승의 허리에 묶어놓는다. 이천시 율면 오성2리 은행나무제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북어에 실타래를 묶어 제사를 지내고, 제가 끝난 뒤 이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장승의 입 안에 넣어 놓는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장재터 서낭제에서는 서낭신을 위하여 제당의 천장 가름목에 한지를 대고 실타래로 감아 놓았다. 부연하면 한지 한 권을 천장의 나무에 대고 실타래를 감아 묶어 놓았다. 홍천군 동면 성수리 짓골 당제사에서는 당제 때 떡시루 한가운데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올려놓았다. 횡성군 강림면 강림2리 노고소마을 서낭제에서는 제당 내부에 신의 위패를 모신 단이 있고, 그 단 위의 나무에 한지로 감싼 북어를 실타래로 묶어 걸어놓았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장승제에서는 제사상 위에 떡시루를 놓고 떡시루 양쪽 고리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꽂아놓았다. 마찬가지로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2구 용산마을 장승제에서도 제사상 위 떡시루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떡시루 양 손잡이에 꽂아놓았다. 제관은 제사가 끝난 뒤 한지에 제물을 담아 감싸서 실타래로 묶는다. 그리고 이것을 실타래를 이용해 장승의 양귀에 걸어놓는다.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 새재마을의 깃고사에서는 떡시루의 양쪽 손잡이에 북어를 꽂아 세운다. 그리고 각각의 북어 입에 실타래 끝을 물려 길게 늘여놓는다. 제사가 끝나면 제에 쓰인 제물을 한지에 담아 싼 뒤 마을회관 앞의 깃대에 실타래로 감아 묶어둔다.

의의

실은 피륙의 직조에 가장 근원이 되는 원료이다. 이 때문에 여러 공정을 거쳐서 뽑아낸 실은 의식주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질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나아가 실은 그것이 지닌 속성으로 인해 수명장수를 뜻하는 상징물로 부각되어 각종 신앙의례에 빠지지 않는 제물이자 신령을 위한 폐백으로 바쳐졌다. 조선시대의 토실치기[장명사]나 실공드리기[상원사], 오늘날의 각종 의례에 제물과 공물로 바치는 실타래와 신체에 거는 현납속 등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柳得恭)
東國歲時記 (洪錫謨)
歲時記 (趙秀三)
海東竹枝 (崔永年)
五洲衍文長箋散稿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민속대관 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한국민속대사전 2 (민족문화사, 1991)
금산의 탑신앙 (강성복, 금산문화원, 1999)
조선대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의 가정신앙-충남ㆍ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7)
공주 상여소리와 쑥불동화의 고향 봉현리 (강성복, 공주시, 2011)

실타래

실타래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물

집필자 박종익(朴鍾翼)
갱신일 2019-01-31

정의

실을 쉽게 풀어 쓸 수 있도록 한데 뭉치거나 감아 놓은 타래. 실타래는 가신(家神)이나 마을신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의례와 집안의 고사 등에 수명장수를 축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거나 신령에게 바치는 제물 또는 폐백으로 진설되는 게 일반적이다.

역사

실은 인류의 삶과 더불어 출현하였다. 최초의 실은 덩굴이나 나무껍질, 풀 껍질 등을 재료로 하여 서로 이어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실은 생활도구를 묶거나 신체의 장식, 옷의 제작 등에 사용되었다. 역사시대에 이르면 목화, 삼베, 누에고치, 동물의 털 등으로 다양한 실의 제작이 이루어졌다. 이들 실은 재료로 이용되어 옷감을 직조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유리왕 때의 가배(嘉俳) 풍속을 통하여 삼베의 직조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실타래와 관련된 풍속으로 조선시대의 토실치기가 있다. 토실치기는 정월 첫 토끼(卯日)날에 일곱 개의 씨가 든 목화를 자아내어 동쪽을 향해 앉아 실을 뽑아서 어린아이들에게 채워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토실’ 또는 ‘톳실’이라도 한다. 한자로는 이 실을 ‘장명사(長命絲)’라고 하였다. 이 단어의 뜻에서 볼 수 있듯이 수명을 길게 해주려는 뜻이 담긴 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아래와 같은 칠언시가 실려 있다. 일곱 씨앗 목화를 올올이 자아내어아침 해 밝을 때까지 물레소리 스릉스릉가늘고 가는 장명실을 뽑아내어새 봄 첫 토끼날에 아이에게 채워주네 이와 유사한 조선시대의 풍속으로 ‘실공드리기’가 있다. 실공드리기는 정월 열나흗날에 하던 풍속의 하나이다. 이날 시루떡을 쪄서 성주께 올리고, 그릇에 쌀을 가득 담아 떡시루 옆에 놓는다. 그러고는 쌀그릇에 숟가락을 꽂은 다음 긴 실을 축원할 사람의 나이만큼 둥글게 감아 서린다. 이처럼 실을 제물로 삼아 공을 드리는 것을 ‘실(絲)공 들인다.’고 한다. ‘명(命)공 들인다.’고도 한다. 대개 이러한 실공드리기는 정초에 신수점을 보아 가족 가운데 운수가 사나운 사람이 있는 경우에 행한다. 조선시대의 세시기인 『경도잡지(京都雜志)』에도 정월대보름에 “상원사(上元絲)를 서로 선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것이 바로 실공드리기이다.

형태

실은 천연섬유(면화, 양모, 생사 등)와 인공섬유(레이온, 함성섬유)를 재료로 가공하여 만든다. 실타래는 이들 섬유를 가공하여 만든 실의 수십 가닥을 타원형으로 감아놓은 실이다. 신앙이나 의례에 사용되는 실타래는 주로 천연섬유를 가공해 만든 면사이다. 곧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실타래는 주로 흰색 면사이다. 동제나 보편적인 고사 때 올리는 실타래 역시 흰색 면사임을 볼 수 있다. 반면에 혼례식이나 장례 때 사용되는 실타래는 곱게 물을 들인 청홍색이다.

내용

실타래는 실생활 외에 출산과 육아, 민간신앙, 무속, 혼례, 상례 등 다양한 의례에 사용된다. 곧 민속에서의 실타래는 제의나 기원과 관련된 행위에 주로 이용됨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출산과 관련하여 실타래가 등장하는 것은 삼신상 차림이다. 임신한 여성은 출산이 임박하면 산방(産房)에서 해산을 기다린다. 이때 여성의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산방 한쪽에 짚을 깔고 미역, 쌀, 실타래를 놓아둔다. 이들은 모두 임부의 순산을 기원하며 삼신께 올리는 제물이다. 이 실타래에는 태어날 아기의 수명장수를 소망하는 뜻이 담겨 있다. 돌을 기념하기 위한 돌잡이 행사에서도 실타래가 등장한다. 돌잡이 상에 올려놓는 각각의 물건은 그들 나름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한 예로 돈이나 쌀은 부, 책이나 연필은 학식, 실타래는 장수를 각각 뜻한다. 이 때문에 부모들은 아기가 돌잡이 상의 여러 물건을 선택할 때 실타래를 잡도록 유도하기도 한다. 아기가 실타래를 잡으면 부모는 이것을 아기의 목에 걸어준다. 실타래를 아기의 목에 걸어주는 것은 실타래의 긴 실처럼 아기의 수명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뜻이다. 신앙의례에 있어서도 실타래는 다양하게 사용된다. 가정신앙의 경우 성줏단지에 한지와 실타래를 올려놓는 예를 볼 수 있다. 또는 주택의 상량에 한지를 놓은 뒤 실타래로 감아놓는 사례도 발견된다. 이 밖에 서낭고사나 삼신고사를 지낼 때에도 실타래를 바치는 풍습이 있다. 아울러 안택고사를 지낼 때에도 실타래가 제물로 놓여진다. 이처럼 실타래가 고사에 등장하는 것은 이미 예부터 실타래가 건강과 장수의 의미로 관념화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상원사(上元絲)’나 ‘토실치기’의 실타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민족에게 실타래는 장수 소망의 표현이었다. 이러한 보편 관념이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다양한 신앙의례에 실타래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가정신앙이 집안의 안녕과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제의라고 하는 점에서 장수의 상징물인 실타래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을신을 제사하는 동제에서도 실타래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때 실타래는 제물과 더불어 제사상에 진설되었다가 제를 마감하면 폐백을 상징하는 신물(神物)로 바친다. 곧 북어나 한지에 실타래를 묶어 제물의 일부로 상 위에 놓고, 제사가 끝나면 이것을 신목이나 장승․탑․선돌․미륵․서낭당 등에 묶거나 걸어두는 등의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실제 이러한 사례는 전국적으로 다수가 발견되며, 실타래를 봉안하는 방식도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한 예로 충남 금산지역에서는 탑제를 지내기 전에 탑의 머릿돌에 한지를 씌우고 실타래를 묶어두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를 ‘옷을 입힌다’고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신에게 치성을 드리면서 폐백의 의미로 새옷을 갈아입히는 것이다. 이처럼 동제의 제물로 사용되는 실타래에는 개인이 아닌 마을이라는 공동체의 건강과 장수를 염원하는 상징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다. 무속에서 실타래는 중요한 제물의 하나이다. 안택굿이나 재수굿에 으레 실타래가 사용됨을 볼 수 있다. 특히 성주를 모실 때 실타래는 대주와 그 가족의 수명장수 기원이라고 하는 점에서 빠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충남지역에서는 성주를 받을 때 실타래가 중요한 제물이다. 무당이 성주를 받기 위해 성주가 앉은 나무를 찾아 나서면 그 가정의 대주가 대추, 밤, 곶감, 술, 실타래를 들고 뒤를 따른다. 무당이 특정 나무 앞에서 멈추면 그 전면에 대주가 가지고 간 제물을 차려놓는다. 그러면 무당이 경 한 석을 베푼다. 독경을 마치고 무당이 나무로부터 성주를 찾아 방으로 되돌아오면 대주가 제물을 거두어 뒤따라 들어온다. 그러고는 꺾어온 나뭇가지와 동전, 쌀 등을 한지에 담아 접은 뒤 가져온 실타래로 묶어 성주목에 달아맨다. 이와 같이 성주받기에 있어서의 실타래는 제물이자 성주에게 올리는 폐백임을 알 수 있다. 어로민속에서도 실타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배고사나 풍어제 때 실타래가 제물로 사용됨을 볼 수 있다. 배서낭을 모시는 데에 있어서도 실타래가 주요 폐백의 하나로 등장한다. 물론 배서낭에서의 실타래는 여성 배서낭신에게 바느질 도구와 함께 올리는 폐백인 측면도 있다. 그러나 배서낭의 실타래 또한 수명장수의 보편적 관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한 예로 북어를 묶은 실타래를 배서낭으로 두는 어선도 많기 때문이다. 요컨대 거친 바다 위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어민들에게 실타래의 의미는 위안과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혼례와 상례에서도 실타래가 사용된다. 전통 혼례의 경우 대례상에 송죽 화병이 놓이며 이 화병의 소나무와 대나무에 청홍색의 실타래를 올려놓는 예가 있다. 이처럼 화병 위에 실타래를 올려놓는 것은 가연을 맺은 신랑 신부의 백년해로를 빌어주기 위한 것이다. 상례에서는 폐백으로 실타래가 사용된다. 한 예로 충남 공주에서는 입관을 마친 뒤 상주가 폐백으로 청색 홍색 실타래를 망자에게 올린다. 맏상주가 청홍색 실타래를 받아 망자의 주검 앞에 놓고 재배 함으로써 폐백의식을 마친다.

지역사례

비근한 예로 출산 때 삼신에게 치성을 드리며 실타래를 올리는 것은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돌잡이 상에 실타래를 놓고 아기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거나 성줏단지 위에 실타래를 올려놓고 봉안하는 예는 지역을 불문하고 보편적으로 전승되는 풍속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지역에서는 성줏단지 안에 돈, 삼베조각, 종이 등과 더불어 실타래를 넣어 놓는다. 이처럼 대청의 성주목에 한지와 실타래를 묶어두는 사례는 경기도를 비롯해 충청도․전라도 등지에서 산견된다. 충남 서해안의 어촌 마을에서는 어민이 자신의 거실 벽에 닻줄 일부를 둥그렇게 감아 걸어놓은 뒤 그것을 실타래로 묶어놓은 예가 있다. 이때 닻줄은 어민의 선박을 상징하는 동시에 선주 그 자체를 의미한다. 닻줄에 건 실타래는 선주의 생명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서낭에서의 실타래 사례도 발견된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돌무더기 서낭당에 간혹 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현납속의 일환으로 실타래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실례로 충남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리에서는 서낭당의 신목에 청색 홍색 실을 매달아 놓았다. 정초에 개인이 서낭고사를 지내고 이와 같은 폐백을 올리는 것이다. 한편 성주받기는 무당이나 법사가 의식을 주도하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때 사용되는 실타래는 대주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수명장수를 기원하기 위한 제물이다. 동제에서의 실타래 사용도 폭넓게 발견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기도 동두천시 지행동 종이골에서는 느티나무고사를 지낼 때 실타래를 사용한다. 곧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떡시루 안에 넣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가 끝나면 북어를 감은 실타래를 신목에 걸쳐 놓는다. 여주군 강천면 적금2리 장승고사에서도 동일한 예가 발견된다. 북어에 실타래를 감아 떡시루 안에 넣고 제를 지낸 뒤 이 실타래를 장승의 허리에 묶어놓는다. 이천시 율면 오성2리 은행나무제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북어에 실타래를 묶어 제사를 지내고, 제가 끝난 뒤 이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장승의 입 안에 넣어 놓는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장재터 서낭제에서는 서낭신을 위하여 제당의 천장 가름목에 한지를 대고 실타래로 감아 놓았다. 부연하면 한지 한 권을 천장의 나무에 대고 실타래를 감아 묶어 놓았다. 홍천군 동면 성수리 짓골 당제사에서는 당제 때 떡시루 한가운데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올려놓았다. 횡성군 강림면 강림2리 노고소마을 서낭제에서는 제당 내부에 신의 위패를 모신 단이 있고, 그 단 위의 나무에 한지로 감싼 북어를 실타래로 묶어 걸어놓았다.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리 장승제에서는 제사상 위에 떡시루를 놓고 떡시루 양쪽 고리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꽂아놓았다. 마찬가지로 천안시 동남구 성남면 용원리 2구 용산마을 장승제에서도 제사상 위 떡시루에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떡시루 양 손잡이에 꽂아놓았다. 제관은 제사가 끝난 뒤 한지에 제물을 담아 감싸서 실타래로 묶는다. 그리고 이것을 실타래를 이용해 장승의 양귀에 걸어놓는다. 연기군 금남면 금천리 새재마을의 깃고사에서는 떡시루의 양쪽 손잡이에 북어를 꽂아 세운다. 그리고 각각의 북어 입에 실타래 끝을 물려 길게 늘여놓는다. 제사가 끝나면 제에 쓰인 제물을 한지에 담아 싼 뒤 마을회관 앞의 깃대에 실타래로 감아 묶어둔다.

의의

실은 피륙의 직조에 가장 근원이 되는 원료이다. 이 때문에 여러 공정을 거쳐서 뽑아낸 실은 의식주에서도 으뜸으로 여겨질 정도로 귀하게 여겼다. 나아가 실은 그것이 지닌 속성으로 인해 수명장수를 뜻하는 상징물로 부각되어 각종 신앙의례에 빠지지 않는 제물이자 신령을 위한 폐백으로 바쳐졌다. 조선시대의 토실치기[장명사]나 실공드리기[상원사], 오늘날의 각종 의례에 제물과 공물로 바치는 실타래와 신체에 거는 현납속 등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柳得恭)東國歲時記 (洪錫謨)歲時記 (趙秀三)海東竹枝 (崔永年)五洲衍文長箋散稿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전남 (문화재관리국, 1969)한국민속대관 2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한국민속대사전 2 (민족문화사, 1991)금산의 탑신앙 (강성복, 금산문화원, 1999)조선대세시기 (국립민속박물관, 2003)한국의 가정신앙-충남ㆍ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한국의 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7)공주 상여소리와 쑥불동화의 고향 봉현리 (강성복, 공주시,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