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줏단지(坛位)

한자명

坛位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신주(神主)와 단지[甕]의 합성어이며, 신주는 조상신을 의미하고 단지는 조상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로서, 곧 조상단지를 뜻한다.

역사

신줏단지는 조상숭배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역사성이 매우 유구하다. 물론 이것은 신체의 본질인 조상신이라는 신격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단군신화, 주몽신화, 김알지신화, 혁거세신화 등 신화에서는 시조의 신성한 탄생을 강조한다. 특히 김알지신화에서 김알지가 알에서 나온 사실이나 알지라는 이름이 곡식을 나타내고, 그가 태어난 금궤가 조상신을 모신 상자로 생각한다면 이 또한 신줏단지와 무관치 않다. 삼국시대에 하늘과 산천에 제사하고 시조묘를 세워 시조신에 대한 제사를 중요시했음을 볼 때 조상신의 역사성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고려를 거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종묘제도의 틀을 갖추어 조상신을 숭배하는 것을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귀족에서 일반에 이르기까지 조상신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건립을 강조하고 그 비중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즉 자손은 부모가 살아있을 때 효도를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죽은 뒤에 제사로써 정성껏 받들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농가에서의 신줏단지는 조선시대 이후 사당의 영향을 받아서 위패 대신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농가의 조상에 대한 제사는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자학이 크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윤회봉사(輪回奉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제사를 주로 사찰에서 지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사찰에서 가정으로 옮겨진 것은 고려 말에 논의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주자학은 조선 중기까지 그리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17세기 후기로 접어들면서 양반은 물론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확대 보급되었다. 이 시기에 반친영제도가 정착하고 장자와 장손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장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18세기 무렵에는 장자 위주의 제사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고 양반가에서 사당, 농가에서 사당이나 위패 대신 신줏단지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줏단지를 주로 장손의 집에서만 모시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제사습속의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신줏단지는 크게 쌀 등 곡식을 넣은 단지ㆍ바가지ㆍ주머니형태와 위패봉안한 상자ㆍ감실형태로 나뉜다.

곡식을 신체로 삼은 것은 곡령숭배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곡령숭배사상은 세계의 여러 농경민족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특히 한민족의 곡령신앙은 가을철에 수확이 끝난 뒤 햇곡식을 담아놓고 명절에 간단한 제사를 지내는 식이다. 여기서 곡식은 신앙적 차원에서 곡령이 지니고 있는 풍양의 힘을 강화하고자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주로 벼농사 지역에서는 벼나 쌀을 담아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보리를 많이 재배한 영남, 충북, 전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벼와 더불어 보리를 넣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중남부의 밭농사 중심지대나 동북부 화전지대에서는 조, 기장, 메밀, 콩, 팥 등 밭작물의 곡식을 넣기도 한다.

첫 번째 단지형태는 먼저 단지나 큰 항아리에 쌀을 가득 채워 놓고 한지로 봉한다. 단지의 경우 안방 시렁, 항아리인 경우 안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에 각각 모셔 둔다. 단지나 항아리의 쌀은 햇곡식이 나면 햇곡식으로 바꾸어 넣고, 묵은쌀은 가족끼리만 밥을 지어 먹는다. 햇곡식으로 갈아 넣을 때는 주부가 목욕재계를 한 다음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서 한다. 이와 같은 단지의 형태는 비교적 널리 분포된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충남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단지 안에 엽전을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바가지형태는 바가지에 찐쌀을 넣어 한지로 봉한 다음 시렁에 모셔놓는다. 생쌀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는 찐쌀을 넣어둔다. 경상도에서는 가을걷이 후 시준단지의 쌀을 갈아 넣는다. 부정이 나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날을 잡아 생쌀을 솥에서 볶아 넣기도 한다. 세 번째 주머니형태는 곡식 서되가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어 쌀로 가득 채워 안방에 걸어두는 것이다. 경기지역에서는 이 주머니를 제석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 번째 위패를 모시는 형태로서 전남 담양 일대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석짝(상자) 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명을 기록한 한지를 넣어 안방 시렁에 올려놓는다. 이를 신줏단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4대조의 위패를 모신 감실형태가 있다. 감실은 조선시대 사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사당이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는 양반가에서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어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사당 대신 감실을 사용하였다. 감실은 사당 건축의 축소된 모형으로서 사당의 모습과 유사하다. 감실은 호남의 완도, 진도, 신안 등 해안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단지나 감실형태의 신줏단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자연스럽게 조상의 영정사진을 안방 벽에 걸어 놓고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기도 한다. 이는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조상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신줏단지는 일반적으로 장손의 집 안방에 모셔진다. 경기도에서는 제석주머니, 경상도에서는 조상단지세존단지ㆍ부루독ㆍ부루단지, 강원도에서는 삼신바가지, 충청도에서는 조상님ㆍ제석, 제주도에서는 조령숭배, 전라도에서는 지석오가리ㆍ제석(帝釋)단지ㆍ세존(世尊)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가에서 신줏단지를 모시는 안방은 의례와 신앙의 중심 공간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각종 의례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안방은 중심 역할을 한다. 안방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출산의례, 생일잔치, 죽음의례를 비롯하여 명절마다 거행되는 각종 의례가 거행된다. 안방은 명절에 차례나 4대조 조상까지의 기제사를 지내는 곳으로서 선영들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조상신앙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조상에 대한 신앙심은 조상신이 한 가문과 자손들을 돌보고 지켜 주며, 화복(禍福)을 좌우한다고 믿는데서 기인된다. 이 때문에 조상을 잘 모시면 복을 받고 자손이 번창하게 되며 그렇지 아니하면 도리어 화를 미치게 하여 가족들이 불행해진다고 믿는다.

조상신의 신체인 신줏단지는 안방의 시렁 위에 단지형태로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신은 4대조까지이며, 5대조 이상은 10월에 무덤에 가서 지내는 묘제(시제)로 통합된다. 조상신에 대한 의례에서 조상신에 대한 제일(祭日)은 전국적으로 일정치 않지만 보통 정월보름, 유월유두, 칠월칠석, 팔월보름, 식구들의 생일이 된다. 형식은 신체 앞에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이 보통이다. 주로 주부에 의해 진행되고, 가족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정도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주로 설과 대보름, 추석에 신체 앞에 촛불을 밝히고 음식을 차려 놓는다. 신체가 감실인 경우는 반드시 감실의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한다. 제물로는 메, 떡, 채소, 과일, 조기, 술등이 진설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화수만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독축은 하지 않으며 대신 비손을 한다. 이러한 제의는 모두 주부가 전담한다. 이와 같은 조상신에 대한 의례행위는 원초적인 여신관념, 김알지신화의 황금궤, 삼국시대 이래의 불교성(세존, 제석 등의 명칭), 조선시대 이후의 4대 봉사성 등 한국의 종교적인 의식이 깊숙이 반영된 것이다.

지역사례

신줏단지의 곡식을 갈아 넣고 처리하는 과정과 의례적인 내용을 지역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남 양산지역에서는 쌀을 갈아 넣는 날 아침 일찍 주부가 목욕재계를 한 뒤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은 햅쌀로 지은 밥, 나물, 정화수이다. 이때 비린 음식이나 육류와 술은 쓰지 않는다. 제물을 준비한 뒤에는 단지를 내려 묵은쌀을 깨끗한 그릇에 담고 햅쌀로 갈아 넣는다. 햅쌀을 넣은 뒤에는 단지 입을 한지로 덮고 무명실이나 한지를 꼬아 만든 끈으로 테두리를 묶은 뒤 뚜껑을 덮어 봉한다. 단지의 쌀을 교체한 뒤에는 미리 장만한 제물을 진설하고 촛불을 밝힌 뒤 안과태평과 자손들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비손하고 소지를 올린다. 단지 안의 묵은쌀로는 밥을 지어 식구끼리만 음복을 한다. 이때 비린 반찬이나 고기는 함께 먹지 않는다. 또 단지 안의 쌀을 교체하고 나서 3일 동안은 설령 외지에 사는 며느리나 딸이 출산했다 해도 출산부정을 탄다 하여 찾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시준단지 안에 담겨 있던 쌀로 집안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이때 집안이 맑고 좋으면 쌀이 그대로 잘 있지만 식구 중에 누가 탈이 나거나 우환이 있으면 살이 시커멓게 변색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쌀의 색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쌀을 볶거나 쪄서 넣기도 한다. 또한 모시던 단지가 깨지거나 오래되어 쓸 수 없어서 더 이상 모시지 않게 되면 시주단지 앞에 술 한 잔을 놓고 모시지 않게 되었음을 고한 뒤 묵은 단지를 산에 묻거나 물에 띄워 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거나 아예 없앤다고 한다.

전남 강진군 옴천지역에서는 조상을 모신 항아리를 신줏단지 또는 차독그릇(곡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부르며, 말레(마루)의 선반 위에 둔다. 올벼심리를 할 무렵에는 추수를 하고 난 뒤 손 없는 날을 골라 신줏단지에 들어 있는 기존의 쌀을 털고 새 쌀을 넣는다. 과거에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단지 안의 쌀은 봄부터 조금씩 꺼내서 밥을 해먹지만 새 쌀이 나와 단지 안의 쌀을 갈기 전까지 한 주먹 정도의 쌀은 절대로 먹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한다. 신줏단지의 쌀을 새 쌀로 간 뒤에 기존의 쌀은 밥을 해서 먹는다. 이때는 반드시 식구끼리만 먹어야 한다. 밥알 하나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고 가축에게 주어서도 안 된다. 신줏단지 안의 쌀을 통해 집안의 평안을 엿볼 수도 있다. 집안이 평안한 것으로 보이면 쌀이 깨끗하고 좋거나 단지 안의 쌀이 불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집안에 궂은일이 생기는 것으로 보이면 쌀에 곰팡이가 핀다고 한다. 신줏단지를 그만 모시고 버릴 때에는 그달 초열흘이나 그믐에 손 없는 날을 받아 깨끗한 물에 띄워 보낸다. 또한 신줏단지를 모시는 집에서는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무슨 일이 있어서 음식을 하면 항상 신줏단지 앞에 한 접시를 먼저 올린다.

전북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조상단지, 지앙단지, 제석오가리, 시주단지, 대감단지 등으로 부른다. 조상단지는 쌀을 담은 작은 단지를 말하며 안방의 시렁 위에 올려두는 형태로 모신다. 이러한 조상단지는 집안에 따라 한개 또는 두개를 모시기도 한다. 단지 안에는 쌀을 넣어둔 뒤 그 위를 한지로 덮고 다시 단지 뚜껑을 덮는다. 단지 안의 쌀은 매년 깨끗한 날을 받아 그해 수확한 햅쌀로 가장 먼저 갈아놓는다. 쌀을 갈기 전에는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올벼심리할 때 단지에 쌀을 넣으면서 쌀의 상태를 보기도 한다. 이렇게 조상단지는 쌀만 담아두고 모시는 것을 말하며 명절 때 딱히 음식을 차려 올리지는 않는다. 남원 조상단지의 경우 그냥 쌀만 갈면 되는 것이 아니라 떡을 하고 묵을 쒀서 집안의 사방 네 곳에 놓아둔 다음 쌀을 갈았다고 한다. 단지 안에 있던 그 전의 쌀은 버리거나 함부로 다루지 않고 밥을 해서 먹는다. 설령 밥이 남더라도 동냥치나 개에게 주지 않고 오직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충청도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모시는 경우가 적다. 오히려 터줏단지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이 터주가 조상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조상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은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조상단지라고 부르며 조상이 죽으면 단지에 앉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어느 집에 딸을 셋 둔 주부가 아들이 없는 것에 화가 나서 조상단지를 마당에 냅다 던졌다고 한다. 자신은 열심히 조상을 위했지만 조상이 자손을 돌봐주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뒤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 ○○○로 갈란다”라고 말하고 나서 아들을 낳고 집안도 더욱 화목했다는 구술이 전하기도 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제석이라 부르면서 주로 영서지역의 농촌에서 많이 모시고 있다. 춘천지역에서는 웅방에 커다란 항아리를 놓고 햅쌀을 담아 놓는다. 항아리의 크기는 집안 형편에 따라 다르다. 형편이 좋으면 큰 항아리, 형편이 좋지 않으면 작은 항아리를 각각 모신다. 그 쌀은 아무도 주지 않고 있다가 봄에 가족들만 먹는다. 제석항아리를 헐 때에는 쌀을 꺼내 밥을 해서 한 그릇을 앞에 바치고 나서 먹는다.

경기도지역에서 신줏단지의 형태로는 주머니형, 항아리형, 바가지형이 있다. 주머니형은 제석주머니 또는 제석고깔 등, 항아리형은 제석항아리, 바가지형은 제석바가지라고 각각 부른다. 제석은 주머니에 쌀을 담고 고깔을 씌워놓거나 질그릇 항아리에 쌀을 담은 것이며 안방 구석이나 윗목에 모신다. 농사를 짓고 타작해서 방아로 찧어 햅쌀을 얻으면 원래 있던 쌀은 쏟고 새것으로 갈아준다. 이전 쌀은 밥을 해먹는다. 이때에는 제석에 먼저 올려서 위하고 그다음에 식구끼리 먹는다. 제석의 쌀로 밥을 하면 남을 주지 않고 식구끼리만 먹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속학개론 (박계홍, 형설출판사, 1992), 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일조각, 1993), 한국민속의 이해 (민속학회, 문학아카데미, 1994), 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방, 2000), 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8), 남도민속학 (표인주,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0)

신줏단지

신줏단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체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신주(神主)와 단지[甕]의 합성어이며, 신주는 조상신을 의미하고 단지는 조상신을 상징하는 신체(神體)로서, 곧 조상단지를 뜻한다.

역사

신줏단지는 조상숭배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역사성이 매우 유구하다. 물론 이것은 신체의 본질인 조상신이라는 신격의 측면에서 그러하다. 단군신화, 주몽신화, 김알지신화, 혁거세신화 등 신화에서는 시조의 신성한 탄생을 강조한다. 특히 김알지신화에서 김알지가 알에서 나온 사실이나 알지라는 이름이 곡식을 나타내고, 그가 태어난 금궤가 조상신을 모신 상자로 생각한다면 이 또한 신줏단지와 무관치 않다. 삼국시대에 하늘과 산천에 제사하고 시조묘를 세워 시조신에 대한 제사를 중요시했음을 볼 때 조상신의 역사성을 가늠할 수 있다. 특히 고려를 거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종묘제도의 틀을 갖추어 조상신을 숭배하는 것을 새로운 통치이념으로 삼기도 했다. 그러면서 조선왕조는 초기부터 귀족에서 일반에 이르기까지 조상신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의 건립을 강조하고 그 비중이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즉 자손은 부모가 살아있을 때 효도를 다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들이 죽은 뒤에 제사로써 정성껏 받들어야 했던 것이다. 따라서 농가에서의 신줏단지는 조선시대 이후 사당의 영향을 받아서 위패 대신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농가의 조상에 대한 제사는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주자학이 크게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들 딸 구분하지 않고 동등하게 윤회봉사(輪回奉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불교가 국교였기 때문에 제사를 주로 사찰에서 지냈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는 장소가 사찰에서 가정으로 옮겨진 것은 고려 말에 논의되기 시작해 조선시대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다. 주자학은 조선 중기까지 그리 일반화되지 않았지만 17세기 후기로 접어들면서 양반은 물론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확대 보급되었다. 이 시기에 반친영제도가 정착하고 장자와 장손을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조상에 대한 제사가 장자 위주로 이루어졌다. 그러면서 18세기 무렵에는 장자 위주의 제사가 본격적으로 정착되고 양반가에서 사당, 농가에서 사당이나 위패 대신 신줏단지가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신줏단지를 주로 장손의 집에서만 모시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제사습속의 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형태

신줏단지는 크게 쌀 등 곡식을 넣은 단지ㆍ바가지ㆍ주머니형태와 위패를 봉안한 상자ㆍ감실형태로 나뉜다. 곡식을 신체로 삼은 것은 곡령숭배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곡령숭배사상은 세계의 여러 농경민족 사이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특히 한민족의 곡령신앙은 가을철에 수확이 끝난 뒤 햇곡식을 담아놓고 명절에 간단한 제사를 지내는 식이다. 여기서 곡식은 신앙적 차원에서 곡령이 지니고 있는 풍양의 힘을 강화하고자 하는 대상이 된 것이다. 주로 벼농사 지역에서는 벼나 쌀을 담아놓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보리를 많이 재배한 영남, 충북, 전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벼와 더불어 보리를 넣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를 비롯한 중남부의 밭농사 중심지대나 동북부 화전지대에서는 조, 기장, 메밀, 콩, 팥 등 밭작물의 곡식을 넣기도 한다. 첫 번째 단지형태는 먼저 단지나 큰 항아리에 쌀을 가득 채워 놓고 한지로 봉한다. 단지의 경우 안방 시렁, 항아리인 경우 안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에 각각 모셔 둔다. 단지나 항아리의 쌀은 햇곡식이 나면 햇곡식으로 바꾸어 넣고, 묵은쌀은 가족끼리만 밥을 지어 먹는다. 햇곡식으로 갈아 넣을 때는 주부가 목욕재계를 한 다음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서 한다. 이와 같은 단지의 형태는 비교적 널리 분포된 일반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충남 서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단지 안에 엽전을 넣어두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바가지형태는 바가지에 찐쌀을 넣어 한지로 봉한 다음 시렁에 모셔놓는다. 생쌀을 넣는 경우도 있지만 원래는 찐쌀을 넣어둔다. 경상도에서는 가을걷이 후 시준단지의 쌀을 갈아 넣는다. 부정이 나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날을 잡아 생쌀을 솥에서 볶아 넣기도 한다. 세 번째 주머니형태는 곡식 서되가 들어갈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어 쌀로 가득 채워 안방에 걸어두는 것이다. 경기지역에서는 이 주머니를 제석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네 번째 위패를 모시는 형태로서 전남 담양 일대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석짝(상자) 안에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명을 기록한 한지를 넣어 안방 시렁에 올려놓는다. 이를 신줏단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4대조의 위패를 모신 감실형태가 있다. 감실은 조선시대 사당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 사당이 경제적인 뒷받침이 있는 양반가에서 조상을 모시는 공간이어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사당 대신 감실을 사용하였다. 감실은 사당 건축의 축소된 모형으로서 사당의 모습과 유사하다. 감실은 호남의 완도, 진도, 신안 등 해안지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단지나 감실형태의 신줏단지가 자취를 감추면서 자연스럽게 조상의 영정사진을 안방 벽에 걸어 놓고 조상에 대한 예를 갖추기도 한다. 이는 최근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내용

조상의 영혼이라고 부르는 신줏단지는 일반적으로 장손의 집 안방에 모셔진다. 경기도에서는 제석주머니, 경상도에서는 조상단지ㆍ세존단지ㆍ부루독ㆍ부루단지, 강원도에서는 삼신바가지, 충청도에서는 조상님ㆍ제석, 제주도에서는 조령숭배, 전라도에서는 지석오가리ㆍ제석(帝釋)단지ㆍ세존(世尊)주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농가에서 신줏단지를 모시는 안방은 의례와 신앙의 중심 공간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각종 의례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안방은 중심 역할을 한다. 안방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출산의례, 생일잔치, 죽음의례를 비롯하여 명절마다 거행되는 각종 의례가 거행된다. 안방은 명절에 차례나 4대조 조상까지의 기제사를 지내는 곳으로서 선영들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조상신앙의 중심 공간이기도 하다. 조상에 대한 신앙심은 조상신이 한 가문과 자손들을 돌보고 지켜 주며, 화복(禍福)을 좌우한다고 믿는데서 기인된다. 이 때문에 조상을 잘 모시면 복을 받고 자손이 번창하게 되며 그렇지 아니하면 도리어 화를 미치게 하여 가족들이 불행해진다고 믿는다. 조상신의 신체인 신줏단지는 안방의 시렁 위에 단지형태로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신은 4대조까지이며, 5대조 이상은 10월에 무덤에 가서 지내는 묘제(시제)로 통합된다. 조상신에 대한 의례에서 조상신에 대한 제일(祭日)은 전국적으로 일정치 않지만 보통 정월보름, 유월유두, 칠월칠석, 팔월보름, 식구들의 생일이 된다. 형식은 신체 앞에 음식을 차려 놓는 것이 보통이다. 주로 주부에 의해 진행되고, 가족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정도이다. 호남지역에서는 주로 설과 대보름, 추석에 신체 앞에 촛불을 밝히고 음식을 차려 놓는다. 신체가 감실인 경우는 반드시 감실의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한다. 제물로는 메, 떡, 채소, 과일, 조기, 술등이 진설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화수만을 바치는 경우도 있다. 독축은 하지 않으며 대신 비손을 한다. 이러한 제의는 모두 주부가 전담한다. 이와 같은 조상신에 대한 의례행위는 원초적인 여신관념, 김알지신화의 황금궤, 삼국시대 이래의 불교성(세존, 제석 등의 명칭), 조선시대 이후의 4대 봉사성 등 한국의 종교적인 의식이 깊숙이 반영된 것이다.

지역사례

신줏단지의 곡식을 갈아 넣고 처리하는 과정과 의례적인 내용을 지역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경남 양산지역에서는 쌀을 갈아 넣는 날 아침 일찍 주부가 목욕재계를 한 뒤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제물을 준비한다. 제물은 햅쌀로 지은 밥, 나물, 정화수이다. 이때 비린 음식이나 육류와 술은 쓰지 않는다. 제물을 준비한 뒤에는 단지를 내려 묵은쌀을 깨끗한 그릇에 담고 햅쌀로 갈아 넣는다. 햅쌀을 넣은 뒤에는 단지 입을 한지로 덮고 무명실이나 한지를 꼬아 만든 끈으로 테두리를 묶은 뒤 뚜껑을 덮어 봉한다. 단지의 쌀을 교체한 뒤에는 미리 장만한 제물을 진설하고 촛불을 밝힌 뒤 안과태평과 자손들의 운수대통을 기원하며 비손하고 소지를 올린다. 단지 안의 묵은쌀로는 밥을 지어 식구끼리만 음복을 한다. 이때 비린 반찬이나 고기는 함께 먹지 않는다. 또 단지 안의 쌀을 교체하고 나서 3일 동안은 설령 외지에 사는 며느리나 딸이 출산했다 해도 출산부정을 탄다 하여 찾아보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시준단지 안에 담겨 있던 쌀로 집안의 운세를 점치기도 한다. 이때 집안이 맑고 좋으면 쌀이 그대로 잘 있지만 식구 중에 누가 탈이 나거나 우환이 있으면 살이 시커멓게 변색이 되기도 한다고 한다. 따라서 쌀의 색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쌀을 볶거나 쪄서 넣기도 한다. 또한 모시던 단지가 깨지거나 오래되어 쓸 수 없어서 더 이상 모시지 않게 되면 시주단지 앞에 술 한 잔을 놓고 모시지 않게 되었음을 고한 뒤 묵은 단지를 산에 묻거나 물에 띄워 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거나 아예 없앤다고 한다. 전남 강진군 옴천지역에서는 조상을 모신 항아리를 신줏단지 또는 차독그릇(곡식을 담는 그릇)이라고 부르며, 말레(마루)의 선반 위에 둔다. 올벼심리를 할 무렵에는 추수를 하고 난 뒤 손 없는 날을 골라 신줏단지에 들어 있는 기존의 쌀을 털고 새 쌀을 넣는다. 과거에는 쌀이 매우 귀했기 때문에 단지 안의 쌀은 봄부터 조금씩 꺼내서 밥을 해먹지만 새 쌀이 나와 단지 안의 쌀을 갈기 전까지 한 주먹 정도의 쌀은 절대로 먹지 않고 남겨 두어야 한다. 신줏단지의 쌀을 새 쌀로 간 뒤에 기존의 쌀은 밥을 해서 먹는다. 이때는 반드시 식구끼리만 먹어야 한다. 밥알 하나라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되고 가축에게 주어서도 안 된다. 신줏단지 안의 쌀을 통해 집안의 평안을 엿볼 수도 있다. 집안이 평안한 것으로 보이면 쌀이 깨끗하고 좋거나 단지 안의 쌀이 불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집안에 궂은일이 생기는 것으로 보이면 쌀에 곰팡이가 핀다고 한다. 신줏단지를 그만 모시고 버릴 때에는 그달 초열흘이나 그믐에 손 없는 날을 받아 깨끗한 물에 띄워 보낸다. 또한 신줏단지를 모시는 집에서는 집안에 행사가 있거나 무슨 일이 있어서 음식을 하면 항상 신줏단지 앞에 한 접시를 먼저 올린다. 전북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조상단지, 지앙단지, 제석오가리, 시주단지, 대감단지 등으로 부른다. 조상단지는 쌀을 담은 작은 단지를 말하며 안방의 시렁 위에 올려두는 형태로 모신다. 이러한 조상단지는 집안에 따라 한개 또는 두개를 모시기도 한다. 단지 안에는 쌀을 넣어둔 뒤 그 위를 한지로 덮고 다시 단지 뚜껑을 덮는다. 단지 안의 쌀은 매년 깨끗한 날을 받아 그해 수확한 햅쌀로 가장 먼저 갈아놓는다. 쌀을 갈기 전에는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올벼심리할 때 단지에 쌀을 넣으면서 쌀의 상태를 보기도 한다. 이렇게 조상단지는 쌀만 담아두고 모시는 것을 말하며 명절 때 딱히 음식을 차려 올리지는 않는다. 남원 조상단지의 경우 그냥 쌀만 갈면 되는 것이 아니라 떡을 하고 묵을 쒀서 집안의 사방 네 곳에 놓아둔 다음 쌀을 갈았다고 한다. 단지 안에 있던 그 전의 쌀은 버리거나 함부로 다루지 않고 밥을 해서 먹는다. 설령 밥이 남더라도 동냥치나 개에게 주지 않고 오직 가족끼리만 나누어 먹는다고 한다. 충청도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모시는 경우가 적다. 오히려 터줏단지를 모시는 경우가 많다. 이 터주가 조상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조상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보은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조상단지라고 부르며 조상이 죽으면 단지에 앉는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어느 집에 딸을 셋 둔 주부가 아들이 없는 것에 화가 나서 조상단지를 마당에 냅다 던졌다고 한다. 자신은 열심히 조상을 위했지만 조상이 자손을 돌봐주지 않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 뒤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나, ○○○로 갈란다”라고 말하고 나서 아들을 낳고 집안도 더욱 화목했다는 구술이 전하기도 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신줏단지를 제석이라 부르면서 주로 영서지역의 농촌에서 많이 모시고 있다. 춘천지역에서는 웅방에 커다란 항아리를 놓고 햅쌀을 담아 놓는다. 항아리의 크기는 집안 형편에 따라 다르다. 형편이 좋으면 큰 항아리, 형편이 좋지 않으면 작은 항아리를 각각 모신다. 그 쌀은 아무도 주지 않고 있다가 봄에 가족들만 먹는다. 제석항아리를 헐 때에는 쌀을 꺼내 밥을 해서 한 그릇을 앞에 바치고 나서 먹는다. 경기도지역에서 신줏단지의 형태로는 주머니형, 항아리형, 바가지형이 있다. 주머니형은 제석주머니 또는 제석고깔 등, 항아리형은 제석항아리, 바가지형은 제석바가지라고 각각 부른다. 제석은 주머니에 쌀을 담고 고깔을 씌워놓거나 질그릇 항아리에 쌀을 담은 것이며 안방 구석이나 윗목에 모신다. 농사를 짓고 타작해서 방아로 찧어 햅쌀을 얻으면 원래 있던 쌀은 쏟고 새것으로 갈아준다. 이전 쌀은 밥을 해먹는다. 이때에는 제석에 먼저 올려서 위하고 그다음에 식구끼리 먹는다. 제석의 쌀로 밥을 하면 남을 주지 않고 식구끼리만 먹는다.

참고문헌

한국민속학개론 (박계홍, 형설출판사, 1992)한국민속학개설 (이두현 외, 일조각, 1993)한국민속의 이해 (민속학회, 문학아카데미, 1994)한국의 집지킴이 (김광언, 다락방, 2000)한국의 가정신앙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2008)남도민속학 (표인주, 전남대학교 출판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