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神竿)

한자명

神竿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우리나라 민속 신앙에서 하늘이나 산속, 또는 신당에서 신을 받거나 옮길 때 쓰는 대나무나 서낭대.

어원

신을 받거나 금역을 표시하는 대나무 등을 신대 혹은 신간(神竿)이라 한다. 농기나 솟대도 신대에 해당한다. ‘신대’의 어원은 ‘신을 받는 대나무’로, 이를 줄여 ‘신대’라 한다. ‘신간’은 신대의 ‘대’ 대신에 한자인 대나무 ‘간’자를 쓴 것이다. 솟대의 목간(木幹)은 나무로 된 긴 서까래를 말하는데, 나무 ‘목’자와 줄기‘간’자를 합하여 ‘목간’이라 하였다.

형태

마을에서 동제를 주관할 제관을 뽑을 때 쓰는 신대는 비교적 작은 2~3m의 생죽(生竹)을 쓰는데, 아랫 부분은 가지를 쳐 버리고 상부의 사분의 일 정도에만 가지와 잎을 달아쓴다. 무당이 개인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신대의 크기도 이것과 비슷하다. 별신굿을 할 때 쓰는 신대는 이보다 큰 것을 쓰는데 보통 5~6m의 생죽을 이용한다.

서낭대는 굵고 긴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드는데, 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맨 대나무로 두고, 그 위로는 흰 베를 감아서 보호하며 상부의 꼭대기에는 꿩의 꽁지를 매단다.

농기도 서낭대와 같은데, 옷을 입힌 것도 있고 입히지 않고 윗부분에 농기를 매달아 사용하는 것이 많다.

솟대는 긴 서까래 나무를 이용하는데, 주로 소나무나 오리나무를 쓴다. 가늘고 긴 나무를 잘 다듬어서 그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새[木鳥]를 앉혀서 완성한다. 솟대의 높이는지역마다 다르다. 대개 5~10m 정도가 많다.

생목신대는 살아 있는 나무에 채단을 감아 신목으로 쓴다. 영산 영명사의 단오제, 함양 마천 오도재 서낭당에서 그러하다. 산에 있는 생목을 베어 신대로 사용하는 예도 있는데, 대관령성황당에서 성황신을 모시고 내려오는 신목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금역 신대는 동제당이나 밥무덤 등의 신역에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세우는 신대이다.

내용

좁은 의미의 신대는 동제신대와 굿당신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제관을 뽑는 데 쓰는 동제신대이다. 동제를 지낼 때는 제사를 맡아 주관할 제주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제주가 되면 금기가 엄격하였기에 아무나 섣불리 이를 수락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무당이나 점쟁이를 시켜 대를 잡아 제관을 뽑는다. 이때 쓰는 것이 동제신대이다.경남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의 경우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대를 잡는 여인이 목욕재계하고 마을 풍물패와 함께 동제당으로 간다. 제사를 올리고 나서 대를 잡으면 신이 강신했다는 표시로 대나무가 떨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잡이 여인은 신대를 잡고 마을로 들어와 제관이 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은 이 신대를보고 합장하며 절을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절을 하지 않으면 신대가 그 사람을 사정없이 후려치는데, 대잡이 여인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 한다. 신대가 들어간 그 집에서는 상을 차려 정화수를 올리고 신대를 정중히 모시게 된다.

둘째로 무당이 쓰는 굿당신대이다. 무당이 별신제 같은 큰굿을 할 때는 신대를 세워 하늘의 신인 천왕이나 마을신인 동신의 강림을 받게 된다. 이때 사용하는 대는 상당히 큰것으로 윗부분에 잎이 붙은 생죽을 쓴다. 신이 쉽게 강림하면 좋은데, 만약에 무슨 부정이 있어 신이 응하지 않으면 여러 번 강신을 시도한다. 풍어를 위한 별신굿을 할 때는첫날 굿당 앞에 신대를 세우고 신내림(강신)부터 맨 먼저 하게 된다.

마을의 동제 때나 풍어굿을 할 때는 대를 잡아 신의 강림이 있어야 마을 행사를 치를 수 있으므로 이때 신대는 신이 내려앉는 이동식 거처인 셈이다.

서낭대는 서낭신이 내려앉는 신대이다. 평소에는 동제당이나 서낭당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이 서낭신이 필요에 의하여 나들이를 할 때에는 서낭대를 대령하여 여기에 옮아 좌정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서낭대는 이동식 신당인 셈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의식을 차리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서낭신을 모신다. 술을 붓고 고한 후에 서낭기와 서낭대를 모셔 낸다.

서낭대가 외출할 때에는 격식을 차려 몸체에 하얀 광목으로 둘둘 말아 장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두고 ‘서낭대에 옷을 입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서낭기를 정중히 달고 이를 꼿꼿이 세워 두 손으로 받들어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서낭대가 바깥출입을 할 때는 대개 마을에 큰 행사가 있든지 정월대보름날 서낭대 싸움이 있어 출전할 경우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낭기든 서낭대든 다 신체로 여기므로 이에 대한 외경은 대단하다.

동제를 지낼 때 서낭대에 신이 내렸는지 아닌지는 서낭대의 움직임으로 간파한다. 밀양 청운리나 영산의 죽사리 서낭대는 신이 내리면 신대가 떨린다고 한다. 안동 하회 별신굿의 서낭대나 은산별신제의 신장기는 꼭대기에 매달아 놓은 방울이 울면 신이 내린 것으로 안다고 한다.

영산의 마을 서낭대 싸움에서는 동부와 서부의 서낭대가 놀이마당 가운데에 나와 서로 힘을 겨룬다. 동부의 서낭대에는 동부마을의 신이 타고 나온 것이고, 서부의 서낭대에는 서부마을의 신이 타고 나온 것이다. 이 싸움은 신들의 대결이므로 서낭대를 잡고 있는 장정의 완력보다 서낭신의 영험이 얼마나 센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 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마을의 서낭대는 대개 아주 큰 대나무를 쓰는데, 여기에 옷을 입히고 장목(꿩의 꽁지)을 달았다. 한 사람이 붙잡고 옮기기에는 힘겨울 정도로 무겁다.

영산의 영명사 절서낭대는 단오제 때 성황각의 마당에 세워서 단오제를 무사히 치르도록 지켜주는 신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이곳 성황각의 뒤란에는 퇴역한 역대의 서낭대가 여러 개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 유명한 서낭대로는 경남 창녕군 영산면 죽사리, 밀양시 초동면 신호·신월·부북면 청운리, 충남 부여군 은산면,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등지의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신단수가 그러하듯이 마을의 서낭대는 신이 내리는 나무이므로 뿌리는 대지의 중심에 내려 뻗쳐 있고,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우주와 교통한다고 여긴다. 서양에서는 이를 우주목으로 부르는데, 서낭대도 우주목처럼 하늘과 통하고 땅의 힘을 받으며 신령스러운 위상을 갖는다. 그래서 마을의 큰 행사에 나들이를 하고, 중대사에 반응을 보이며, 부정한 일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티를 보이기도 했다.

농기는 지역에 따라 불리는 명칭도 조금씩 다르다. 농신기, 농상기, 덕석기, 두레기, 서낭기 등으로 부른다. 지역에 따라서는 농기와 서낭기를 엄연히 구분하는 곳도 있다. 전라 지역의 기세배에 사용하는 대기는 농기를 쓰는데, 이 지역에서는 농기가 서낭기처럼 마을의 영험한 신이 좌정한 신기로 여긴다. 농신기에는 대개 용이 그려져 있는 것이많다. 경북 청송 진보 농신기에는 조선 태조대왕 신상이 그려져 있다. 농기 대신으로 밀양 백중놀이에서는 겨릅대로 만든 농신대를 놓고 제사를 드린다.

기세배를 할 때 쓰는 농기도 신대에 들어간다. 기세배 놀이를 하기 전에 마을에서 신기에 제사를 올린다. 이 놀이는 주로 충청·전라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전북 익산의금마, 군산, 김제 등지에서 행하는 기세배 놀이가 유명하다. 그 밖에 공주의 송학리 소라실, 충북 보은 북실에서도 기세배 놀이를 한다. 경상도 쪽에는 유일하게 문경읍 가은읍 성저리에서 기세배 놀이를 하고 있다.

솟대는 기다란 나무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새를 올려서 만든 목간신대이다. 서낭대가 움직이는 신대라면 솟대는 고정형 신대이다. 솟대는 홀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세우기도 하지만 주로 장승과 함께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승과 함께 마을 어귀에 서서 주로 공중으로 들어오는 재액을 막아 주는 것이 주된 임무다. 장승이 지상의 액막이라면 솟대는 새 모양을 해서 공중의 수살막이가 되는 것이다. 솟대를 부르는 이름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솟대, 솔대, 짐대, 진대, 진대배기, 진또배기, 오릿대, 거릿대, 수살대 등이 그것이다.

생목신대는 산 나무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와 나무를 베어 신목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경남 영산의 단오제 때 문호장이란 신인을 모신 영명사 문성황각에서는 앞뜰에 서 있는 서낭목에 흰 베 두 줄기를 나무 위로부터 내려 이 나무의 허리에 묶어 두고, 다른 흰 베로 감싼 작두칼 두 개를 거기에 묶어 달아 아주 신성한 생목신대를 만들어 놓는다.단오제가 베풀어지는 이 신역에 잡귀잡신은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성역화하는 것이다. 또 함양 마천에서는 오도재 서낭당 옆의 오래된 고목에 오색의 채단을 감아서 신목으로 모시고 있다.

산 나무를 베어 신대로 사용하는 것으로는 강릉단오제 때 대관령성황당에서 성황신을 모시고 단오제 굿당으로 옮길 때 쓰는 신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경우를 보면 균형이 잘 잡힌 3m 정도의 곧고 건장한 나무를 베어 여기다 오색의 채단을 두르고 힘센 장정이 두 손으로 받들어 든다. 신목의 사방에다 흰 천으로 벼릿줄을 길게 늘어뜨려 네 사람이 이 줄을 잡고 호위하면서 내려온다. 이때 연도의 사람들은 성황신의 행차를 보고 신성시하여 절을 하게 된다. 생목신대는 단오 굿당에 옮겨져 단오 제사를 받는 주신이되며, 이후 베풀어지는 굿을 관장하게 된다. 따라서 굿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다.

은산별신제에도 생목신대가 등장한다. 별신제가 시작되는 첫날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와 함께 인근 산으로 가서 신대가 될 만한 참나무 네 개를 베어 오는데, 이를 진대라 한다. 이는 생목신대를 말하는데, 별신제가 진행되는 동안 신목으로서 제장을 지키다가 끝나는 날 장승을 세울 때 사방향에 함께 세운다고 한다.

동제당이나 서낭당 혹은 밥무덤, 제관의 집 앞에 황토를 뿌리고 대나무를 세워서 금줄을 쳐 놓았는데, 이때 세워 놓은 대나무도 이른바 금역을 나타내는 신대이다.

강릉, 영산 단오제의 서낭목, 은산의 진대는 모두 생목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나무나 목간신대의 원형은 아무래도 신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신대와 농기 (이보형, 한국문화인류학 8, 문화인류학회, 1976), 은산별신굿 (임동권, 열화당, 1986), 향토문화지 (경상남도, 1989), 한국민속의 현장 (배도식, 집문당, 1993), 강릉단오제 실측조사보고서 (김선풍 외, 문화재관리국, 1994), 문경 모산굴 기세배 (안태현, 문경새재박물관 조사연구총서 3, 문경시, 1999), 솟대 (이필영, 대원사, 2003)

신대

신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우리나라 민속 신앙에서 하늘이나 산속, 또는 신당에서 신을 받거나 옮길 때 쓰는 대나무나 서낭대.

어원

신을 받거나 금역을 표시하는 대나무 등을 신대 혹은 신간(神竿)이라 한다. 농기나 솟대도 신대에 해당한다. ‘신대’의 어원은 ‘신을 받는 대나무’로, 이를 줄여 ‘신대’라 한다. ‘신간’은 신대의 ‘대’ 대신에 한자인 대나무 ‘간’자를 쓴 것이다. 솟대의 목간(木幹)은 나무로 된 긴 서까래를 말하는데, 나무 ‘목’자와 줄기‘간’자를 합하여 ‘목간’이라 하였다.

형태

마을에서 동제를 주관할 제관을 뽑을 때 쓰는 신대는 비교적 작은 2~3m의 생죽(生竹)을 쓰는데, 아랫 부분은 가지를 쳐 버리고 상부의 사분의 일 정도에만 가지와 잎을 달아쓴다. 무당이 개인 굿을 할 때 사용하는 신대의 크기도 이것과 비슷하다. 별신굿을 할 때 쓰는 신대는 이보다 큰 것을 쓰는데 보통 5~6m의 생죽을 이용한다. 서낭대는 굵고 긴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드는데, 손으로 잡는 아랫부분은 맨 대나무로 두고, 그 위로는 흰 베를 감아서 보호하며 상부의 꼭대기에는 꿩의 꽁지를 매단다. 농기도 서낭대와 같은데, 옷을 입힌 것도 있고 입히지 않고 윗부분에 농기를 매달아 사용하는 것이 많다. 솟대는 긴 서까래 나무를 이용하는데, 주로 소나무나 오리나무를 쓴다. 가늘고 긴 나무를 잘 다듬어서 그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새[木鳥]를 앉혀서 완성한다. 솟대의 높이는지역마다 다르다. 대개 5~10m 정도가 많다. 생목신대는 살아 있는 나무에 채단을 감아 신목으로 쓴다. 영산 영명사의 단오제, 함양 마천 오도재 서낭당에서 그러하다. 산에 있는 생목을 베어 신대로 사용하는 예도 있는데, 대관령성황당에서 성황신을 모시고 내려오는 신목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금역 신대는 동제당이나 밥무덤 등의 신역에 사람의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세우는 신대이다.

내용

좁은 의미의 신대는 동제신대와 굿당신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제관을 뽑는 데 쓰는 동제신대이다. 동제를 지낼 때는 제사를 맡아 주관할 제주가 필요하다. 그러나 막상 제주가 되면 금기가 엄격하였기에 아무나 섣불리 이를 수락하려 들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무당이나 점쟁이를 시켜 대를 잡아 제관을 뽑는다. 이때 쓰는 것이 동제신대이다.경남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의 경우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대를 잡는 여인이 목욕재계하고 마을 풍물패와 함께 동제당으로 간다. 제사를 올리고 나서 대를 잡으면 신이 강신했다는 표시로 대나무가 떨리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잡이 여인은 신대를 잡고 마을로 들어와 제관이 될 사람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때 마을 사람들은 이 신대를보고 합장하며 절을 한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절을 하지 않으면 신대가 그 사람을 사정없이 후려치는데, 대잡이 여인은 자기도 모르는 일이라 한다. 신대가 들어간 그 집에서는 상을 차려 정화수를 올리고 신대를 정중히 모시게 된다. 둘째로 무당이 쓰는 굿당신대이다. 무당이 별신제 같은 큰굿을 할 때는 신대를 세워 하늘의 신인 천왕이나 마을신인 동신의 강림을 받게 된다. 이때 사용하는 대는 상당히 큰것으로 윗부분에 잎이 붙은 생죽을 쓴다. 신이 쉽게 강림하면 좋은데, 만약에 무슨 부정이 있어 신이 응하지 않으면 여러 번 강신을 시도한다. 풍어를 위한 별신굿을 할 때는첫날 굿당 앞에 신대를 세우고 신내림(강신)부터 맨 먼저 하게 된다. 마을의 동제 때나 풍어굿을 할 때는 대를 잡아 신의 강림이 있어야 마을 행사를 치를 수 있으므로 이때 신대는 신이 내려앉는 이동식 거처인 셈이다. 서낭대는 서낭신이 내려앉는 신대이다. 평소에는 동제당이나 서낭당에 고이 모셔져 있지만, 이 서낭신이 필요에 의하여 나들이를 할 때에는 서낭대를 대령하여 여기에 옮아 좌정하도록 한다. 말하자면 서낭대는 이동식 신당인 셈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의식을 차리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서낭신을 모신다. 술을 붓고 고한 후에 서낭기와 서낭대를 모셔 낸다. 서낭대가 외출할 때에는 격식을 차려 몸체에 하얀 광목으로 둘둘 말아 장대가 노출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두고 ‘서낭대에 옷을 입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서낭기를 정중히 달고 이를 꼿꼿이 세워 두 손으로 받들어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서낭대가 바깥출입을 할 때는 대개 마을에 큰 행사가 있든지 정월대보름날 서낭대 싸움이 있어 출전할 경우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낭기든 서낭대든 다 신체로 여기므로 이에 대한 외경은 대단하다. 동제를 지낼 때 서낭대에 신이 내렸는지 아닌지는 서낭대의 움직임으로 간파한다. 밀양 청운리나 영산의 죽사리 서낭대는 신이 내리면 신대가 떨린다고 한다. 안동 하회 별신굿의 서낭대나 은산별신제의 신장기는 꼭대기에 매달아 놓은 방울이 울면 신이 내린 것으로 안다고 한다. 영산의 마을 서낭대 싸움에서는 동부와 서부의 서낭대가 놀이마당 가운데에 나와 서로 힘을 겨룬다. 동부의 서낭대에는 동부마을의 신이 타고 나온 것이고, 서부의 서낭대에는 서부마을의 신이 타고 나온 것이다. 이 싸움은 신들의 대결이므로 서낭대를 잡고 있는 장정의 완력보다 서낭신의 영험이 얼마나 센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 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마을의 서낭대는 대개 아주 큰 대나무를 쓰는데, 여기에 옷을 입히고 장목(꿩의 꽁지)을 달았다. 한 사람이 붙잡고 옮기기에는 힘겨울 정도로 무겁다. 영산의 영명사 절서낭대는 단오제 때 성황각의 마당에 세워서 단오제를 무사히 치르도록 지켜주는 신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이곳 성황각의 뒤란에는 퇴역한 역대의 서낭대가 여러 개 보관되어 있다. 그 밖에 유명한 서낭대로는 경남 창녕군 영산면 죽사리, 밀양시 초동면 신호·신월·부북면 청운리, 충남 부여군 은산면,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 청도군 풍각면 차산리등지의 것을 들 수 있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신단수가 그러하듯이 마을의 서낭대는 신이 내리는 나무이므로 뿌리는 대지의 중심에 내려 뻗쳐 있고, 꼭대기는 하늘에 닿아 우주와 교통한다고 여긴다. 서양에서는 이를 우주목으로 부르는데, 서낭대도 우주목처럼 하늘과 통하고 땅의 힘을 받으며 신령스러운 위상을 갖는다. 그래서 마을의 큰 행사에 나들이를 하고, 중대사에 반응을 보이며, 부정한 일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동티를 보이기도 했다. 농기는 지역에 따라 불리는 명칭도 조금씩 다르다. 농신기, 농상기, 덕석기, 두레기, 서낭기 등으로 부른다. 지역에 따라서는 농기와 서낭기를 엄연히 구분하는 곳도 있다. 전라 지역의 기세배에 사용하는 대기는 농기를 쓰는데, 이 지역에서는 농기가 서낭기처럼 마을의 영험한 신이 좌정한 신기로 여긴다. 농신기에는 대개 용이 그려져 있는 것이많다. 경북 청송 진보 농신기에는 조선 태조대왕 신상이 그려져 있다. 농기 대신으로 밀양 백중놀이에서는 겨릅대로 만든 농신대를 놓고 제사를 드린다. 기세배를 할 때 쓰는 농기도 신대에 들어간다. 기세배 놀이를 하기 전에 마을에서 신기에 제사를 올린다. 이 놀이는 주로 충청·전라 지역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전북 익산의금마, 군산, 김제 등지에서 행하는 기세배 놀이가 유명하다. 그 밖에 공주의 송학리 소라실, 충북 보은 북실에서도 기세배 놀이를 한다. 경상도 쪽에는 유일하게 문경읍 가은읍 성저리에서 기세배 놀이를 하고 있다. 솟대는 기다란 나무 위에 오리 모양의 나무새를 올려서 만든 목간신대이다. 서낭대가 움직이는 신대라면 솟대는 고정형 신대이다. 솟대는 홀로 마을 어귀나 고갯마루에 세우기도 하지만 주로 장승과 함께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장승과 함께 마을 어귀에 서서 주로 공중으로 들어오는 재액을 막아 주는 것이 주된 임무다. 장승이 지상의 액막이라면 솟대는 새 모양을 해서 공중의 수살막이가 되는 것이다. 솟대를 부르는 이름도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솟대, 솔대, 짐대, 진대, 진대배기, 진또배기, 오릿대, 거릿대, 수살대 등이 그것이다. 생목신대는 산 나무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와 나무를 베어 신목으로 쓰는 경우가 있다. 경남 영산의 단오제 때 문호장이란 신인을 모신 영명사 문성황각에서는 앞뜰에 서 있는 서낭목에 흰 베 두 줄기를 나무 위로부터 내려 이 나무의 허리에 묶어 두고, 다른 흰 베로 감싼 작두칼 두 개를 거기에 묶어 달아 아주 신성한 생목신대를 만들어 놓는다.단오제가 베풀어지는 이 신역에 잡귀잡신은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성역화하는 것이다. 또 함양 마천에서는 오도재 서낭당 옆의 오래된 고목에 오색의 채단을 감아서 신목으로 모시고 있다. 산 나무를 베어 신대로 사용하는 것으로는 강릉단오제 때 대관령성황당에서 성황신을 모시고 단오제 굿당으로 옮길 때 쓰는 신목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경우를 보면 균형이 잘 잡힌 3m 정도의 곧고 건장한 나무를 베어 여기다 오색의 채단을 두르고 힘센 장정이 두 손으로 받들어 든다. 신목의 사방에다 흰 천으로 벼릿줄을 길게 늘어뜨려 네 사람이 이 줄을 잡고 호위하면서 내려온다. 이때 연도의 사람들은 성황신의 행차를 보고 신성시하여 절을 하게 된다. 생목신대는 단오 굿당에 옮겨져 단오 제사를 받는 주신이되며, 이후 베풀어지는 굿을 관장하게 된다. 따라서 굿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의 경배를 받는다. 은산별신제에도 생목신대가 등장한다. 별신제가 시작되는 첫날 마을 사람들이 풍물패와 함께 인근 산으로 가서 신대가 될 만한 참나무 네 개를 베어 오는데, 이를 진대라 한다. 이는 생목신대를 말하는데, 별신제가 진행되는 동안 신목으로서 제장을 지키다가 끝나는 날 장승을 세울 때 사방향에 함께 세운다고 한다. 동제당이나 서낭당 혹은 밥무덤, 제관의 집 앞에 황토를 뿌리고 대나무를 세워서 금줄을 쳐 놓았는데, 이때 세워 놓은 대나무도 이른바 금역을 나타내는 신대이다. 강릉, 영산 단오제의 서낭목, 은산의 진대는 모두 생목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나무나 목간신대의 원형은 아무래도 신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참고문헌

신대와 농기 (이보형, 한국문화인류학 8, 문화인류학회, 1976)은산별신굿 (임동권, 열화당, 1986)향토문화지 (경상남도, 1989)한국민속의 현장 (배도식, 집문당, 1993)강릉단오제 실측조사보고서 (김선풍 외, 문화재관리국, 1994)문경 모산굴 기세배 (안태현, 문경새재박물관 조사연구총서 3, 문경시, 1999)솟대 (이필영, 대원사,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