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코뚜레(牛鼻环)

한자명

牛鼻环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소를 순조롭게 잘 다루기 위해 소의 코를 뚫어 끼우는 둥근 나무 테. 소는 힘이 세고 고집이 세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 코뚜레를 꿰어 잡아당기면 아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게 된다. 사람이 소를 쉽게 다루고자 고안한 통제 도구이다. 소는 사람과 공존의 관계에 있어서 쇠코뚜레를 매개로 사람과 소가 관계를 맺는 연결고리로도 볼 수 있다.

형태

코뚜레는 굵기가 직경 2, 3㎝ 되는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고 원형으로 모양을 잡아 끈으로 묶어 만든 틀이다. 원형의 크기는 지름 15∼20㎝가 적당하다고 한다. 송아지 때에는 좀 작은 것으로 하여 클수록 점차 큰 것을 채운다. 코뚜레는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른다. 경남의 동부지역에서는 ‘코꾼지’, 서부지역에서는 ‘코빼이’라고 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군들레’라고 부른다.

쇠코뚜레는 노간주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다래나무, 소태나무 등으로 만든다. 이 나무들은 껍질을 벗길 때 물기가 적당하여 잘 벗겨지며, 껍질을 제거한 나무 표면이 매끈하여 소의 콧구멍에 댈 때 마찰이 적고 고통을 덜 주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를 휠 때 목질이 강하여 부러질 염려가 있으면 불에 구워서 휘고, 박달나무처럼 견고한 것은 아예 삶아서 목질을 유연하게 만들어 휘어잡는다. 코뚜레를 오래 쓰기 위해 표면에 들기름이나 면실유 같은 연한 기름을 먹이기도 한다. 이러면 소의 코에 꿸 때도 한결 부드러워 소에게 고통을 덜 주게 된다고 한다.

소에게 코뚜레를 채우는 시기는 태어난 지 5, 6개월 무렵이며, 늦어도 한 살 미만이어야 한다. 겨울철보다는 여름철이 좋다고 한다. 소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면 힘이 무척 세어져서 제압하기도 힘들고 소도 고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농가에서는 대개 음력 오월에 많이 한다. 그 가운데에도 양기가 세고 잡귀의 범접이 없는 단옷날에 행한다. 코뚜레를 할 때는 소가 몸부림치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두고 경험자가 먼저 나무송곳으로 코 사이를 뚫은 뒤에 준비해 둔 코뚜레를 끼우면 끝난다. 상처는 일주일쯤 지나면 아문다.

코뚜레가 너무 작거나 금이 가면 갈아 채운다. 그동안 사용하던 코뚜레는 버리지 않는다. 그 상징성과 주술성 때문에 다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해, 들어온 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코뚜레를 대문간이나 방문 위에 걸어 두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소의 건강을 빌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외양간 처마에 꽂아 두기도 했다.

내용

인간이 소를 부리면서 소에게 코뚜레를 걸기 시작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이미 코뚜레를 했음이 나타난다. 당시에는 코뚜레를 ‘권(棬)’으로 기록한 자료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농사에 이용한 시기가 중국과 비슷해 코뚜레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 것으로 짐작된다.

소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코뚜레를 하게 되면 고통 때문에 자유를 구속당하고 인간에게 속박된 채 한평생을 살아간다. 쇠코뚜레는 한 번 채우면 벗어날 수 없는 상징성이 큰 도구여서 대단히 무서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소가 오랫동안 사용한 코뚜레는 상당한 주력(呪力)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고 침범해 올지도 모르는 잡귀잡신이나 악귀를 막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힘센 소가 코뚜레에 꿰여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 있듯 집안에 들어온 복이나 부(富)가 폐쇄성을 띠는 코뚜레에 갇혀 다시 나가지 못하고 이 집 안에 머물러 있도록 붙잡아 두는 힘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에서는 정초에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불러들이고자 대문에나 방문 위에 쇠코뚜레를 걸어두는 예가 많았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에는 대문 가운데에 짐승의 뼈와 함께 쇠코뚜레가 걸려 있다. 주인 류홍수(남, 1954년생)씨에 따르면 이 코뚜레는 약 50년이 됐단다. 자기 집에서 부리던 소의 코뚜레를 잡귀의 범접을 막고 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걸었다고 한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서는 대문에 쇠코뚜레와 워낭을 매달아 놓았다. 악귀의 침입을 막고 도둑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소리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같은 동네의 어떤 집에서는 방문 위에 입춘첩을 써 붙이고 쇠코뚜레를 걸어두었다. 이 역시 악귀의 침입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며, 이미 들어온 복은 코뚜레에 갇혀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근의 단장면 법흥리에서는 소의 질병을 막기 위해서 쇠코뚜레를 외양간에 꽂아두었다. 멍에와 써레 역시 외양간에 매달아 두어 악귀나 역귀를 막고자 했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지역에서도 외양간에 쇠코뚜레와 엄나무 가지를 매단 곳이 있다. 이곳의 한 식당에서는 악귀는 쫓고 복은 받아들이고자 정월대보름복조리와 코뚜레를 매달아 두었다.

이 밖에 여러 지역에서 집이 팔리지 않을 때 코뚜레를 구해다 팔 집의 대문 앞에 걸면 금방 팔리고 장삿집의 벽에다 코뚜레를 걸어두면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또 병자가 있는 집에서도 대문에 코뚜레를 구해다 걸거나 엄나무 가지 7개를 걸어두면 쾌차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 고물품 가게에서는 쇠코뚜레와 워낭을 매달아 두고 팔고 있었다. 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주로 장사하는 사람이나 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선호하여 산다고 한다. 소의 코에 오래 꿰어 닳아진 코뚜레는 비싼 값을 치러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코뚜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인기 품목이 되어 거래의 대상물이 된 지 오래이다. 코뚜레를 걸어 행운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뚜레 매달기 행사도 있었다. 2010년 7~8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대관령 눈꽃마을에서는 행운의 코뚜레 만들기 행사를 벌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 우리나라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코뚜레 걸기를 했다. 이 행사에서 사람들은 동계올림픽 유치뿐만 아니라 가정의 번영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기원문까지 적어 코뚜레탑에다 걸었으니, 나라와 가정과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복합적 신앙심을 보여준다. 이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 복을 불러들이고자 코뚜레 문패달기 행사도 벌였다. 박재동 씨는 2018년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개최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2018개의 코뚜레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코뚜레의 주력을 한껏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삿집의 상호에도 코뚜레라는 명칭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쇠고기를 재료로 하는 식당에 붙여진 이름이 그러했다. 코뚜레의 속성처럼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인다. 진짜 코뚜레는 아니지만 사람들도 코뚜레의 주력을 빌리기 위해 장식품 코뚜레를 단 적이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축구경기 때 우리나라의 일부 열성 응원단원들은 코뚜레를 상징하는 액세서리를 코에 걸고 응원했다.

2004년 국립민속박물관이 간행한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의 ‘엄나무 걸기’ 항목에는 “아산에서는 정초에 제마초복을 위해 소의 코뚜레, 엄나무, 복조리를 함께 걸기도 했다.”,『여름편』에는 “강원도 삼척에서는 단옷날 소군들레(코뚜레)를 끼우고, 약쑥을 매단다. 홍천 삼척 고성 등지에서는 정초에 안방 위에 코뚜레를 걸기도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쇠코뚜레를 매단 이러한 사례는 전국에 산재한다. 코뚜레와 엄나무 가지를 매단 여러 지역의 사례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도별 『세시풍속』에서 발췌하여 소개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것은 모두 전국적으로 보이는 사례들이다.

먼저 악귀의 범접을 막기 위해 건 사례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벌응절리에서는 정초에 귀신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코뚜레와 가시가 많은 엄나무 가지를 대문에 걸어둔다. 군포시 대야동 속달마을 납덕골에서는 정초에 노간주나무로 만든 쇠코뚜레를 대문에 달고, 귀신날이라고 여기는 정월 열나흗날에는 노간주나무로 밥을 지으며 소리를 내어 귀신을 쫓기도 했다.

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걸어둔 예로는 경남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원기마을을 들 수 있다. 정초에 대문이나 방문 위에 엄나무와 코뚜레를 매단다. 특히 코뚜레를 걸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이곳에 와서 코뚜레를 사가기도 했다고 한다. 경북 김천시 농소면 연명리에서도 엄나무를 걸고 코뚜레를 서랍 안에 넣어두면 그해에는 집안에 탈이 없다고 한다. 단, 코뚜레는 반드시 나무로 만든 것이어야 하고 실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용동마을의 사례도 위와 같다. 정초에 집에 매다는 코뚜레는 새것이 아니라 사용하던 것이어야 한다. 특히 소를 잡는 사람이 만든 것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서는 동네에 열병이 돌 때 역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왼새끼로 묶어 걸었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의상마을에서도 정초에 액막이용으로 집의 대문에 엄나무를 걸어둔다. 특히 옛날에는 전염병(장질부사)이 많이 돌았기 때문에 엄나무와 무쇠솥을 왼새끼로 연결하여 대문 가운데에 매달아 둔다. 이는 병마가 접근하면 가시로 막고, 그것도 안 되면 솥에 달구어 죽이겠다는 엄포의 뜻이다.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사암리 사래울마을에서는 정초에 마마를 예방하기 위해 엄나무 가지를 매단다. 이 지역에서는 이를 ‘뱅이’한다고 한다.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내화촌에서도 엄나무를 매달아 천연두나 홍역 등을 예방한다고 한다.

이사한 뒤에 새집에 코뚜레를 걸어 두는 예로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상구산마을을 들 수 있다. 소를 지배하는 무서운 주력이 있는 코뚜레가 먼저 들어가서 잡귀를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알미마을에서는 이사 갈 때 그날 일진이 좋지 않으면 쇠코뚜레를 이사 간 집의 안방에 걸어둔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하강리 강성마을에서는 이사 가서 잡귀의 집 안 침범을 막으려고 걸어 두며, 경남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덕곡마을에서는 이사 가서 금줄을 치고 코뚜레를 건다고 한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 기정마을에서는 장삿집이나 살림집에 재수가 좋으라고 쇠코뚜레를 건다. 이때 반드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어야 한다. 광양시 황길동 통사마을에서는 엄나무와 코뚜레를 걸면 장사가 잘된다고 여겼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과 신수동에서도 엄나무를 걸고, 장삿집에서 코뚜레를 건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알미마을의 장삿집에서는 손님이 많이 오라고 가게 벽에 코뚜레를 걸어놓았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에서도 집에 코뚜레를 걸면 차 운전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집이 팔리지 않아서 걸어둔 예는 다음과 같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에서는 팔려고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으면 코뚜레를 대문에다 걸어둔다. 이렇게 하면 금방 팔린다고 한다.

사천시 서포면 선전리 선창마을에서는 정초 첫날 소의 병을 막기 위해 코뚜레를 건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하위마을에서는 소에게 잔병이 없어지라고 코뚜레를 건다. 이렇게 하면 사람에게도 병이 없고 재수가 좋다고 한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마을에서도 정초에 외양간에서 쇠코뚜레를 건다. 이렇게 하면 소가 건강하다고 한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문산마을에서도 엄나무와 코뚜레를 걸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전국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코뚜레를 허리에 차면 득남한다고 한다. 이때는 진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라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코뚜레나 엄나무 가지는 모두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데 도구로 쓰였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 어디서나 채집되는 가정신앙이다. 엄나무를 매달 때는 옆으로 가지런히 하여 묶어 달기도 하지만 가지를 흩뜨려 가시가 여러 방향으로 돌출하게 함으로써 잡귀가 잘 걸리도록 매달기도 한다. 대문의 구조에 따라 엄나무 가지를 대부분 X형태, 열 십(十)자 모양으로 배치한다. 엄나무를 구하지 못하면 두릅나무나 탱자나무를 대신 매달았다.

이 밖에 집으로 침입하는 잡귀잡신을 막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에서는 정초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대문에 꽂아 둔다. 또 단옷날 채취한 쑥 묶음을 매달아 두는 데도 많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에서 보인다. 잡귀나 역질을 막기 위해 헌 짚신을 대문에 매달기도 했으며, 고추씨나 목화씨를 태워 매운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용(龍)’과 ‘호(虎)’ 글자를 써 붙여 잡귀나 사악한 기운을 막으려고 한 예도 있다.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설날 대청마루나 방문 위에 복조리나 복주머니를 매달기도 하고, 입춘날 춘첩을 써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도 코뚜레를 매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의 현장 (배도식, 집문당, 1993), 소의 민속 (배도식, 한국민속의 원형, 집문당, 1995), 소에 얽힌 민속 (배도식, 민속학연구 2, 국립민속박물관, 1995), 소 우경에 나타난 민속학적 의미와 상징 (정연학, 민속학연구 6, 국립민속박물관, 1999),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쇠코뚜레

쇠코뚜레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소를 순조롭게 잘 다루기 위해 소의 코를 뚫어 끼우는 둥근 나무 테. 소는 힘이 세고 고집이 세어서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이를 제압하기 위해 코뚜레를 꿰어 잡아당기면 아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순종하게 된다. 사람이 소를 쉽게 다루고자 고안한 통제 도구이다. 소는 사람과 공존의 관계에 있어서 쇠코뚜레를 매개로 사람과 소가 관계를 맺는 연결고리로도 볼 수 있다.

형태

코뚜레는 굵기가 직경 2, 3㎝ 되는 나뭇가지의 껍질을 벗겨내고 원형으로 모양을 잡아 끈으로 묶어 만든 틀이다. 원형의 크기는 지름 15∼20㎝가 적당하다고 한다. 송아지 때에는 좀 작은 것으로 하여 클수록 점차 큰 것을 채운다. 코뚜레는 지역에 따라 달리 부른다. 경남의 동부지역에서는 ‘코꾼지’, 서부지역에서는 ‘코빼이’라고 한다. 강원도지역에서는 ‘군들레’라고 부른다. 쇠코뚜레는 노간주나무, 박달나무, 물푸레나무, 다래나무, 소태나무 등으로 만든다. 이 나무들은 껍질을 벗길 때 물기가 적당하여 잘 벗겨지며, 껍질을 제거한 나무 표면이 매끈하여 소의 콧구멍에 댈 때 마찰이 적고 고통을 덜 주는 것이 특징이다. 나무를 휠 때 목질이 강하여 부러질 염려가 있으면 불에 구워서 휘고, 박달나무처럼 견고한 것은 아예 삶아서 목질을 유연하게 만들어 휘어잡는다. 코뚜레를 오래 쓰기 위해 표면에 들기름이나 면실유 같은 연한 기름을 먹이기도 한다. 이러면 소의 코에 꿸 때도 한결 부드러워 소에게 고통을 덜 주게 된다고 한다. 소에게 코뚜레를 채우는 시기는 태어난 지 5, 6개월 무렵이며, 늦어도 한 살 미만이어야 한다. 겨울철보다는 여름철이 좋다고 한다. 소가 태어난 지 1년이 지나면 힘이 무척 세어져서 제압하기도 힘들고 소도 고통을 더 크게 느끼기 때문이다. 농가에서는 대개 음력 오월에 많이 한다. 그 가운데에도 양기가 세고 잡귀의 범접이 없는 단옷날에 행한다. 코뚜레를 할 때는 소가 몸부림치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 두고 경험자가 먼저 나무송곳으로 코 사이를 뚫은 뒤에 준비해 둔 코뚜레를 끼우면 끝난다. 상처는 일주일쯤 지나면 아문다. 코뚜레가 너무 작거나 금이 가면 갈아 채운다. 그동안 사용하던 코뚜레는 버리지 않는다. 그 상징성과 주술성 때문에 다시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악귀의 침범을 막기 위해, 들어온 복을 오래 붙잡아 두기 위해 코뚜레를 대문간이나 방문 위에 걸어 두기도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소의 건강을 빌고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외양간 처마에 꽂아 두기도 했다.

내용

인간이 소를 부리면서 소에게 코뚜레를 걸기 시작한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이미 코뚜레를 했음이 나타난다. 당시에는 코뚜레를 ‘권(棬)’으로 기록한 자료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소를 농사에 이용한 시기가 중국과 비슷해 코뚜레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 것으로 짐작된다. 소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지만 코뚜레를 하게 되면 고통 때문에 자유를 구속당하고 인간에게 속박된 채 한평생을 살아간다. 쇠코뚜레는 한 번 채우면 벗어날 수 없는 상징성이 큰 도구여서 대단히 무서운 존재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소가 오랫동안 사용한 코뚜레는 상당한 주력(呪力)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대문이나 집 안에 걸어두고 침범해 올지도 모르는 잡귀잡신이나 악귀를 막는 데 이용되기도 했다. 힘센 소가 코뚜레에 꿰여 도망가지 못하고 잡혀 있듯 집안에 들어온 복이나 부(富)가 폐쇄성을 띠는 코뚜레에 갇혀 다시 나가지 못하고 이 집 안에 머물러 있도록 붙잡아 두는 힘이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러한 이유로 가정에서는 정초에 나쁜 것을 물리치고 좋은 것을 불러들이고자 대문에나 방문 위에 쇠코뚜레를 걸어두는 예가 많았다.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의 운조루에는 대문 가운데에 짐승의 뼈와 함께 쇠코뚜레가 걸려 있다. 주인 류홍수(남, 1954년생)씨에 따르면 이 코뚜레는 약 50년이 됐단다. 자기 집에서 부리던 소의 코뚜레를 잡귀의 범접을 막고 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걸었다고 한다. 경남 밀양시 단장면 고례리에서는 대문에 쇠코뚜레와 워낭을 매달아 놓았다. 악귀의 침입을 막고 도둑이 집 안으로 들어오면 소리가 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같은 동네의 어떤 집에서는 방문 위에 입춘첩을 써 붙이고 쇠코뚜레를 걸어두었다. 이 역시 악귀의 침입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며, 이미 들어온 복은 코뚜레에 갇혀서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의미라고 한다. 인근의 단장면 법흥리에서는 소의 질병을 막기 위해서 쇠코뚜레를 외양간에 꽂아두었다. 멍에와 써레 역시 외양간에 매달아 두어 악귀나 역귀를 막고자 했다. 경남 창녕군 영산면지역에서도 외양간에 쇠코뚜레와 엄나무 가지를 매단 곳이 있다. 이곳의 한 식당에서는 악귀는 쫓고 복은 받아들이고자 정월대보름날 복조리와 코뚜레를 매달아 두었다. 이 밖에 여러 지역에서 집이 팔리지 않을 때 코뚜레를 구해다 팔 집의 대문 앞에 걸면 금방 팔리고 장삿집의 벽에다 코뚜레를 걸어두면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또 병자가 있는 집에서도 대문에 코뚜레를 구해다 걸거나 엄나무 가지 7개를 걸어두면 쾌차할 것으로 여기고 있다.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 중앙시장 고물품 가게에서는 쇠코뚜레와 워낭을 매달아 두고 팔고 있었다. 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없어서 못 판다고 한다. 주로 장사하는 사람이나 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선호하여 산다고 한다. 소의 코에 오래 꿰어 닳아진 코뚜레는 비싼 값을 치러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전했다. 코뚜레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인기 품목이 되어 거래의 대상물이 된 지 오래이다. 코뚜레를 걸어 행운을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뚜레 매달기 행사도 있었다. 2010년 7~8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대관령 눈꽃마을에서는 행운의 코뚜레 만들기 행사를 벌였다. 많은 사람이 모여 우리나라 평창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코뚜레 걸기를 했다. 이 행사에서 사람들은 동계올림픽 유치뿐만 아니라 가정의 번영과 개인의 소원을 비는 기원문까지 적어 코뚜레탑에다 걸었으니, 나라와 가정과 개인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복합적 신앙심을 보여준다. 이 뿐만 아니라 각 가정에 복을 불러들이고자 코뚜레 문패달기 행사도 벌였다. 박재동 씨는 2018년의 동계올림픽이 평창에서 개최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2018개의 코뚜레를 만들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코뚜레의 주력을 한껏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장삿집의 상호에도 코뚜레라는 명칭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도 쇠고기를 재료로 하는 식당에 붙여진 이름이 그러했다. 코뚜레의 속성처럼 돈을 많이 벌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보인다. 진짜 코뚜레는 아니지만 사람들도 코뚜레의 주력을 빌리기 위해 장식품 코뚜레를 단 적이 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축구경기 때 우리나라의 일부 열성 응원단원들은 코뚜레를 상징하는 액세서리를 코에 걸고 응원했다. 2004년 국립민속박물관이 간행한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의 ‘엄나무 걸기’ 항목에는 “아산에서는 정초에 제마초복을 위해 소의 코뚜레, 엄나무, 복조리를 함께 걸기도 했다.”,『여름편』에는 “강원도 삼척에서는 단옷날 소군들레(코뚜레)를 끼우고, 약쑥을 매단다. 홍천 삼척 고성 등지에서는 정초에 안방 위에 코뚜레를 걸기도 한다.”는 기록이 보인다. 쇠코뚜레를 매단 이러한 사례는 전국에 산재한다. 코뚜레와 엄나무 가지를 매단 여러 지역의 사례를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간한 도별 『세시풍속』에서 발췌하여 소개한다. 아래에 소개하는 것은 모두 전국적으로 보이는 사례들이다. 먼저 악귀의 범접을 막기 위해 건 사례이다.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역곡동 벌응절리에서는 정초에 귀신이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코뚜레와 가시가 많은 엄나무 가지를 대문에 걸어둔다. 군포시 대야동 속달마을 납덕골에서는 정초에 노간주나무로 만든 쇠코뚜레를 대문에 달고, 귀신날이라고 여기는 정월 열나흗날에는 노간주나무로 밥을 지으며 소리를 내어 귀신을 쫓기도 했다. 복을 붙잡아 두기 위해 걸어둔 예로는 경남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원기마을을 들 수 있다. 정초에 대문이나 방문 위에 엄나무와 코뚜레를 매단다. 특히 코뚜레를 걸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이곳에 와서 코뚜레를 사가기도 했다고 한다. 경북 김천시 농소면 연명리에서도 엄나무를 걸고 코뚜레를 서랍 안에 넣어두면 그해에는 집안에 탈이 없다고 한다. 단, 코뚜레는 반드시 나무로 만든 것이어야 하고 실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용동마을의 사례도 위와 같다. 정초에 집에 매다는 코뚜레는 새것이 아니라 사용하던 것이어야 한다. 특히 소를 잡는 사람이 만든 것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에서는 동네에 열병이 돌 때 역질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 위에 엄나무 가지를 왼새끼로 묶어 걸었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의상마을에서도 정초에 액막이용으로 집의 대문에 엄나무를 걸어둔다. 특히 옛날에는 전염병(장질부사)이 많이 돌았기 때문에 엄나무와 무쇠솥을 왼새끼로 연결하여 대문 가운데에 매달아 둔다. 이는 병마가 접근하면 가시로 막고, 그것도 안 되면 솥에 달구어 죽이겠다는 엄포의 뜻이다. 강원도 춘천시 동내면 사암리 사래울마을에서는 정초에 마마를 예방하기 위해 엄나무 가지를 매단다. 이 지역에서는 이를 ‘뱅이’한다고 한다. 전남 무안군 삼향읍 내화촌에서도 엄나무를 매달아 천연두나 홍역 등을 예방한다고 한다. 이사한 뒤에 새집에 코뚜레를 걸어 두는 예로는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상구산마을을 들 수 있다. 소를 지배하는 무서운 주력이 있는 코뚜레가 먼저 들어가서 잡귀를 쫓아낸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알미마을에서는 이사 갈 때 그날 일진이 좋지 않으면 쇠코뚜레를 이사 간 집의 안방에 걸어둔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하강리 강성마을에서는 이사 가서 잡귀의 집 안 침범을 막으려고 걸어 두며, 경남 고성군 동해면 양촌리 덕곡마을에서는 이사 가서 금줄을 치고 코뚜레를 건다고 한다. 전남 순천시 낙안면 창녕리 기정마을에서는 장삿집이나 살림집에 재수가 좋으라고 쇠코뚜레를 건다. 이때 반드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어야 한다. 광양시 황길동 통사마을에서는 엄나무와 코뚜레를 걸면 장사가 잘된다고 여겼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과 신수동에서도 엄나무를 걸고, 장삿집에서 코뚜레를 건다.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알미마을의 장삿집에서는 손님이 많이 오라고 가게 벽에 코뚜레를 걸어놓았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연양리 양촌에서도 집에 코뚜레를 걸면 차 운전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집이 팔리지 않아서 걸어둔 예는 다음과 같다. 경남 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원항마을에서는 팔려고 내놓은 집이 팔리지 않으면 코뚜레를 대문에다 걸어둔다. 이렇게 하면 금방 팔린다고 한다. 사천시 서포면 선전리 선창마을에서는 정초 첫날 소의 병을 막기 위해 코뚜레를 건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하위마을에서는 소에게 잔병이 없어지라고 코뚜레를 건다. 이렇게 하면 사람에게도 병이 없고 재수가 좋다고 한다. 화순군 이서면 야사리 용호마을에서도 정초에 외양간에서 쇠코뚜레를 건다. 이렇게 하면 소가 건강하다고 한다. 경남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문산마을에서도 엄나무와 코뚜레를 걸면 재수가 좋다고 한다. 전국적인 사례는 아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 코뚜레를 허리에 차면 득남한다고 한다. 이때는 진짜 소의 코에 걸었던 것이라야 효험이 있다고 한다. 코뚜레나 엄나무 가지는 모두 악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데 도구로 쓰였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 어디서나 채집되는 가정신앙이다. 엄나무를 매달 때는 옆으로 가지런히 하여 묶어 달기도 하지만 가지를 흩뜨려 가시가 여러 방향으로 돌출하게 함으로써 잡귀가 잘 걸리도록 매달기도 한다. 대문의 구조에 따라 엄나무 가지를 대부분 X형태, 열 십(十)자 모양으로 배치한다. 엄나무를 구하지 못하면 두릅나무나 탱자나무를 대신 매달았다. 이 밖에 집으로 침입하는 잡귀잡신을 막기 위해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광지원리에서는 정초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대문에 꽂아 둔다. 또 단옷날 채취한 쑥 묶음을 매달아 두는 데도 많다. 이러한 사례는 전국에서 보인다. 잡귀나 역질을 막기 위해 헌 짚신을 대문에 매달기도 했으며, 고추씨나 목화씨를 태워 매운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용(龍)’과 ‘호(虎)’ 글자를 써 붙여 잡귀나 사악한 기운을 막으려고 한 예도 있다. 복을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설날 대청마루나 방문 위에 복조리나 복주머니를 매달기도 하고, 입춘날 춘첩을 써 붙이기도 한다. 이러한 행위도 코뚜레를 매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참고문헌

한국민속의 현장 (배도식, 집문당, 1993)소의 민속 (배도식, 한국민속의 원형, 집문당, 1995)소에 얽힌 민속 (배도식, 민속학연구 2, 국립민속박물관, 1995)소 우경에 나타난 민속학적 의미와 상징 (정연학, 민속학연구 6, 국립민속박물관, 1999)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