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무(世襲巫)

한자명

世襲巫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용어

집필자 조정현(曺鼎鉉)

정의

조상 대대로 무당의 신분을 이어받아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

내용

강신무와 세습무로 대별되는 한국 무속의 계통설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무업집단의 변신을 통해 설득력을 잃고 있다. 논의의 초기에 최길성은 북방의 샤먼 계통이 들어오기 이전에 사제자 중심의 남방종교 계통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고 보아, 경기 이북의 강신무와 경기 이남의 세습무는 처음부터 계통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세습 계통의 제주도 신방, 역시 세습계통의 경기 이남의 단골, 강신되는 경기 이북의 강신무 순서로 우리나라의 무속이 성립되었다고 하였다. 반면에 김태곤은 북방의 샤먼 계통이 내려와 경기 이북의 강신무, 경기 이남의 세습무, 제주도의 신방이 성립되었다고 보고 이들은 같은 계통으로 지역적 편차만 보일 뿐이라 했다. 김태곤에 따르면 이들이 경기 이북의 강신무, 제주도의 신방, 경기 이남의 세습무 순서대로 우리나라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강신무와 세습무는 기본적으로 입무(入巫) 방식에 따라 구분되는 개념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무당들을 유형화하는 한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학계 일각에서 이 개념이 오랜 세월 무업에 종사하고 있는 무당들 모두를 유형화하여 분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는, 세습무 전통에 속한 무당들 중에서 강신체험을 하거나 했던 무당들이 많이 있으며, 강신무 전통에 속한 무당들 중에서도 자신의 무업이 가진 세습성을 주장하는 무당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무와 세습무는 근대 초기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념에 불과하며, 입무 방식에 따른 강신무와 세습무 유형론에서는 내림굿 이후 무당이 무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과정이 배제된다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강신무와 대별되는 용어로서 세습무와 관련해서 논란이 많다. 초기에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 신내림 없이 무속과 관련한 기예를 학습해서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을 가리킨다고 했지만, 사실상 남한 지역 전체에서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이 많기 때문에 강신무와 세습무라는 용어가 현재의 무당들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강신무의 경우에도 세습적인 면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강신체험, 구체적 신관, 춤과 음악, 점사, 재가집과의 관계, 무가 등의 측면에서 강신무와 세습무의 개념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신무는 신병체험을 통해 무당이 되지만 세습적인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영력을 바탕으로 하되 개인적인 능력과 예술적인 소양으로 굿을 진행한다. 그리고 굿판에나 점사에서 신의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지닌다 점에서 다른 무당과 구별된다.

세습무와 강신무는 개념적으로 구분해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강신무와 세습무의 구분을 역사적·상황적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현실 흐름은 과거와는 달리 강신무의 활동영역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세습무 우위의 당골·점쟁이 관계가 재편되고 있다. 세습무 우위의 대립적·상보적 관계에서 점쟁이가 주도하는 관계로 변하고 있다. 무속 전승의 실상으로 볼 때, 세습무와 강신무의 구분을 고정적인 관점에서 다루기보다 변화 과정과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논의되어온 대표적인 세습무는 전라도의 당골, 강원도와 경상도의 별신굿 무업집단, 서울 경기 남부의 화랭이집단, 제주도 신방 등이다. 이들은 부계와 모계가 얽혀있는 혈연구조 또는 단골판을 이어가는 구조 등을 통해 세습무의 전통을 계승한다. 반면 강신무는 대개 부부 무당보다 여성이 중심이 되고 박수무당이 있으며, 따로 악사집단이 편성되는 형태이다. 결국 세습무들은 굿판 연행의 주체를 혈연계승을 중심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따로 악사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의 무업집단 내에서 충당한다. 즉 신과 소통하는 기술인 가무악극 모두에 능통하다. 하지만 세습무의 전통 속에서 활동하는 무당이라고 해서 모두가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해안별신굿 무업집단만 하더라도 빈순애 등 상당수의 무녀들이 신내림을 받았거나 신이 지펴서 강신무와 유사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기예를 학습하여 굿을 수행하는 세습무의 전통과 신내림 혹은 유사한 형태의 신과 교섭하는 사제자의 전통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안의 굿에서도 마을 인근에 거주하는 점쟁이(점바치, 막음쟁이, 비래쟁이 등) 역할을 하는 주민이 별신굿의 너름받기 등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큰굿이 필요한 점사가 나올 경우 인근의 세습무와 공동으로 굿을 실행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한국 무계의 분화 변천-강신영감무계와 세습사제무계의 분화 원인을 중심으로 (김태곤, 한국민속학 창간호, 한국민속학연구회, 1969), 세습무와 강신무 (최길성, 새로 쓴 한국 무속, 아세아문화사, 1999), 강신무, 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범, 한국무속학 7, 한국무속학회, 2003), 강신무의 사례로 본 강신무와 세습무의 유형 구분 (홍태한, 한국무속학 7, 2003), 강신무·세습무 유형론에 대한 일고찰-강신체험 및 강신무의 세습성 주장에 대한 상징론적 이해 (김동규,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 강신무·세습무 유형론에 따른 무속연구 검토-김태곤, 최길성론을 중심으로 (양종승,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 강신무와 세습무-세습무 유지의 한 조건으로서 경기이남 무부집단의 세습 (손태도,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 세습무 사례를 통해 살펴본 세습무·강신무의 구분 검토-전라도 당골과 점쟁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경엽, 한국무속학 7, 한국무속학회, 2004)

세습무

세습무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용어

집필자 조정현(曺鼎鉉)

정의

조상 대대로 무당의 신분을 이어받아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

내용

강신무와 세습무로 대별되는 한국 무속의 계통설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무업집단의 변신을 통해 설득력을 잃고 있다. 논의의 초기에 최길성은 북방의 샤먼 계통이 들어오기 이전에 사제자 중심의 남방종교 계통이 먼저 들어와 있었다고 보아, 경기 이북의 강신무와 경기 이남의 세습무는 처음부터 계통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리고 시기적으로 세습 계통의 제주도 신방, 역시 세습계통의 경기 이남의 단골, 강신되는 경기 이북의 강신무 순서로 우리나라의 무속이 성립되었다고 하였다. 반면에 김태곤은 북방의 샤먼 계통이 내려와 경기 이북의 강신무, 경기 이남의 세습무, 제주도의 신방이 성립되었다고 보고 이들은 같은 계통으로 지역적 편차만 보일 뿐이라 했다. 김태곤에 따르면 이들이 경기 이북의 강신무, 제주도의 신방, 경기 이남의 세습무 순서대로 우리나라에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강신무와 세습무는 기본적으로 입무(入巫) 방식에 따라 구분되는 개념으로 현재 활동하고 있는 무당들을 유형화하는 한 방법으로 자리 잡은 게 현실이다. 최근 들어 학계 일각에서 이 개념이 오랜 세월 무업에 종사하고 있는 무당들 모두를 유형화하여 분류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는, 세습무 전통에 속한 무당들 중에서 강신체험을 하거나 했던 무당들이 많이 있으며, 강신무 전통에 속한 무당들 중에서도 자신의 무업이 가진 세습성을 주장하는 무당들이 많이 보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신무와 세습무는 근대 초기에 역사적으로 형성된 개념에 불과하며, 입무 방식에 따른 강신무와 세습무 유형론에서는 내림굿 이후 무당이 무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재창조하는 과정이 배제된다는 문제점을 드러낸다. 강신무와 대별되는 용어로서 세습무와 관련해서 논란이 많다. 초기에는 한강 이남 지역에서 신내림 없이 무속과 관련한 기예를 학습해서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을 가리킨다고 했지만, 사실상 남한 지역 전체에서 신내림을 받고 무업을 수행하는 무당이 많기 때문에 강신무와 세습무라는 용어가 현재의 무당들을 구분하는 주요 기준이 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강신무의 경우에도 세습적인 면이 매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강신체험, 구체적 신관, 춤과 음악, 점사, 재가집과의 관계, 무가 등의 측면에서 강신무와 세습무의 개념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 강신무는 신병체험을 통해 무당이 되지만 세습적인 성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영력을 바탕으로 하되 개인적인 능력과 예술적인 소양으로 굿을 진행한다. 그리고 굿판에나 점사에서 신의 뜻을 알아낼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지닌다 점에서 다른 무당과 구별된다. 세습무와 강신무는 개념적으로 구분해 설명이 가능하지만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다. 강신무와 세습무의 구분을 역사적·상황적 맥락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중요한 현실 흐름은 과거와는 달리 강신무의 활동영역이 대폭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세습무 우위의 당골·점쟁이 관계가 재편되고 있다. 세습무 우위의 대립적·상보적 관계에서 점쟁이가 주도하는 관계로 변하고 있다. 무속 전승의 실상으로 볼 때, 세습무와 강신무의 구분을 고정적인 관점에서 다루기보다 변화 과정과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동안 논의되어온 대표적인 세습무는 전라도의 당골, 강원도와 경상도의 별신굿 무업집단, 서울 경기 남부의 화랭이집단, 제주도 신방 등이다. 이들은 부계와 모계가 얽혀있는 혈연구조 또는 단골판을 이어가는 구조 등을 통해 세습무의 전통을 계승한다. 반면 강신무는 대개 부부 무당보다 여성이 중심이 되고 박수무당이 있으며, 따로 악사집단이 편성되는 형태이다. 결국 세습무들은 굿판 연행의 주체를 혈연계승을 중심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따로 악사를 부르지 않고 자신들의 무업집단 내에서 충당한다. 즉 신과 소통하는 기술인 가무악극 모두에 능통하다. 하지만 세습무의 전통 속에서 활동하는 무당이라고 해서 모두가 신내림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동해안별신굿 무업집단만 하더라도 빈순애 등 상당수의 무녀들이 신내림을 받았거나 신이 지펴서 강신무와 유사한 체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기예를 학습하여 굿을 수행하는 세습무의 전통과 신내림 혹은 유사한 형태의 신과 교섭하는 사제자의 전통은 자연스럽게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해안의 굿에서도 마을 인근에 거주하는 점쟁이(점바치, 막음쟁이, 비래쟁이 등) 역할을 하는 주민이 별신굿의 너름받기 등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큰굿이 필요한 점사가 나올 경우 인근의 세습무와 공동으로 굿을 실행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한국 무계의 분화 변천-강신영감무계와 세습사제무계의 분화 원인을 중심으로 (김태곤, 한국민속학 창간호, 한국민속학연구회, 1969)세습무와 강신무 (최길성, 새로 쓴 한국 무속, 아세아문화사, 1999)강신무, 세습무 개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이용범, 한국무속학 7, 한국무속학회, 2003)강신무의 사례로 본 강신무와 세습무의 유형 구분 (홍태한, 한국무속학 7, 2003)강신무·세습무 유형론에 대한 일고찰-강신체험 및 강신무의 세습성 주장에 대한 상징론적 이해 (김동규,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강신무·세습무 유형론에 따른 무속연구 검토-김태곤, 최길성론을 중심으로 (양종승,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강신무와 세습무-세습무 유지의 한 조건으로서 경기이남 무부집단의 세습 (손태도, 한국무속학 8, 한국무속학회, 2004)세습무 사례를 통해 살펴본 세습무·강신무의 구분 검토-전라도 당골과 점쟁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경엽, 한국무속학 7, 한국무속학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