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비요(喪禮備要)

한자명

喪禮備要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예학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친구 신의경申義慶(1557~1648)이 지은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수정・첨삭・보완하여 완성한 상례喪禮에 관한 실천적 예서禮書.

내용

2권 1책의 목판본이며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상례비요喪禮備要』는 『가례家禮』를 위주로, 고금 제가諸家의 예설을 참고하여 초상初喪에서 장제葬祭까지의 모든 상례의식을 알기 쉽게 기술한 예서이다. 『상례비요』의 초본은 원래 김장생의 친구로 함께 다년간 『가례』를 강론하였던 신의경이 저술한 것을 김장생이 교정・첨삭・증보한 것이다. 1620년에 전라도 유생들이 1차로 간행하였고, 다시 김집金集(1574~1656)과 송시열宋時烈(1607~1689), 송준길宋浚吉(1606~1672), 이유태李惟泰(1607~1684) 등이 꼼꼼한 교정을 더하여 1648년(인조 26)에 2차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사당祠堂・신주神主・의금衣衾・최질衰絰・오복五服・상구喪具・발인發靷・성분成墳・입비立碑・수조]受弔・진찬進饌 등의 도설圖說을 실었다. 권두에 1620년(광해군 12)에 쓴 김장생의 서문과 1648년에 쓴 김집의 서문이 있고, 책 끝에는 1621년에 쓴 신흠申欽의 발문이 있다.

신의경이 지은 이른바 ‘『상례비요』 초본’은 현재 동일한 이름의 책자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김장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에 나오는 인용서목 중에는 『신씨비요申氏備要』가 있는데, 그것이 곧 신의경의 초본 『상례비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신설申渫의 『가례통재家禮通載』 초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례 중에서도 상례喪禮는 대개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누구나 실수하기가 쉽고,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특히 죽은 부모에게 불효하기 쉬워서 자녀는 전전긍긍하게 된다. 주자朱子는 일찍이 『가례』를 저술하였지만, 곧바로 그 존재가 잊쳐졌다가 주자 사후에야 발견되었다. 또한, 만년에 집필한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서 주자는 「상례喪禮」와 「장례葬禮」에는 미처 손대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제례喪祭禮에 대한 연구는 특히 도통道統 계승을 자부하는 주자학자들에게 커다란 과제였다. 김장생은 이 점을 고려하여 제일 먼저 상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상례비요』를 지었는데, 정례情禮(인정과 성인이 정한 예법)에 합당하면서도 알기 쉽고 요령 있게 쓰여서, 후대에 『사례편람四禮便覽』 같은 가례 실천서의 모범이 되었다. 『상례비요』는 전후로 당색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대중적 예서였다.

상례비요

상례비요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한기범(韓基範)

정의

조선 중기의 예학자 김장생金長生(1548~1631)이 친구 신의경申義慶(1557~1648)이 지은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수정・첨삭・보완하여 완성한 상례喪禮에 관한 실천적 예서禮書.

내용

2권 1책의 목판본이며 연세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상례비요喪禮備要』는 『가례家禮』를 위주로, 고금 제가諸家의 예설을 참고하여 초상初喪에서 장제葬祭까지의 모든 상례의식을 알기 쉽게 기술한 예서이다. 『상례비요』의 초본은 원래 김장생의 친구로 함께 다년간 『가례』를 강론하였던 신의경이 저술한 것을 김장생이 교정・첨삭・증보한 것이다. 1620년에 전라도 유생들이 1차로 간행하였고, 다시 김집金集(1574~1656)과 송시열宋時烈(1607~1689), 송준길宋浚吉(1606~1672), 이유태李惟泰(1607~1684) 등이 꼼꼼한 교정을 더하여 1648년(인조 26)에 2차로 간행하였다. 책머리에는 사당祠堂・신주神主・의금衣衾・최질衰絰・오복五服・상구喪具・발인發靷・성분成墳・입비立碑・수조]受弔・진찬進饌 등의 도설圖說을 실었다. 권두에 1620년(광해군 12)에 쓴 김장생의 서문과 1648년에 쓴 김집의 서문이 있고, 책 끝에는 1621년에 쓴 신흠申欽의 발문이 있다. 신의경이 지은 이른바 ‘『상례비요』 초본’은 현재 동일한 이름의 책자로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나 김장생의 『의례문해疑禮問解』에 나오는 인용서목 중에는 『신씨비요申氏備要』가 있는데, 그것이 곧 신의경의 초본 『상례비요』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그것은 신설申渫의 『가례통재家禮通載』 초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사례 중에서도 상례喪禮는 대개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누구나 실수하기가 쉽고, 두 번 다시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특히 죽은 부모에게 불효하기 쉬워서 자녀는 전전긍긍하게 된다. 주자朱子는 일찍이 『가례』를 저술하였지만, 곧바로 그 존재가 잊쳐졌다가 주자 사후에야 발견되었다. 또한, 만년에 집필한 『의례경전통해儀禮經傳通解』에서 주자는 「상례喪禮」와 「장례葬禮」에는 미처 손대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제례喪祭禮에 대한 연구는 특히 도통道統 계승을 자부하는 주자학자들에게 커다란 과제였다. 김장생은 이 점을 고려하여 제일 먼저 상례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상례비요』를 지었는데, 정례情禮(인정과 성인이 정한 예법)에 합당하면서도 알기 쉽고 요령 있게 쓰여서, 후대에 『사례편람四禮便覽』 같은 가례 실천서의 모범이 되었다. 『상례비요』는 전후로 당색을 넘어서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대중적 예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