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례(喪禮)

한자명

喪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사람이 태어나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죽음을 처리하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의례.

역사

고분과 고인돌, 육탈하는 복차장複次葬 등 선사시대부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일정한 형식의 상례가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기록으로도 나타난다.『위지동이전』 고구려조高句麗條의 “혼인하면 곧바로 죽어서 입을 옷을 만든다.”라는 기록에서 수의襚衣, 널과 덧널의 존재에서 습襲과 염殮, 그리고 장사하는 날의 택일, 집안에 차리는 빈소殯所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이 다르긴 하지만 1년 혹은 3년의 상복제가 있었고, 신라에서는 504년(지증왕 5)에 상복법 제정, 귀족의 예장禮葬을 시행했다. 또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과 무열왕武烈王의 상례에는 빈장殯葬도 행했다. 단편적이지만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유교식 상례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에서는 불교식 화장 중심의 상례가 성행했었다.

고려시대에는 운명하면 집이나 원찰願刹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여 일정 기간 모셨다가 날을 잡아 화장하였다. 그래서 유골을 수습하여 길게는 6년간 권안權安하면서 자손과 승려가 극락왕생을 기원한 후 본장을 하는 불교식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985년(성종 4) 오복제도五服制度를 정하고 오례五禮의 틀 속에 흉례로서 상례를 위치시킨다. 그 결과 삼일장을 금하고 13개월에 소상小祥, 25개월에 대상大祥, 27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내는 유교식 상례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3년이 너무 길다고 하여 달을 날로 바꾸어 계산하는 일역월제日易月制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상례 역시 유교식으로 일원화한다. 초기부터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7품 이하 관료에게 의무적으로 『가례家禮』를 시험 보게 하고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 『경제육전經濟六典』(1397),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 『경국대전經國大典』(1485) 등의 법전을 편찬하여 모든 제도와 의례를 유교식으로 전환한다. 상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16세기 초반부터 이미 조선식 예서禮書들이 등장하였고, 성리학자의 예학 연구와 실학자의 실천예학연구 등 유학자의 솔선수범으로 유교식 상례는 점차 일반화하기에 이른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유교식 상례는 완전한 조선의 상례문화로 정착하여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화장이 도입되고 「의례준칙」(1934)이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상복의 변화, 상기의 단축 등 전통의례를 강제하면서 상례의 문화적 전통이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1900년에 『사례편람四禮便覽』이 증보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출판되어 문화적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1969년 대한민국 최초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1969)과 함께 「가정의례준칙」이 공포되고, 1999년 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 현재까지 국가가 간소화를 명분으로 일생의례로서 개인의 의례를 ‘규제’하였지만, 문화적 전통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일상생활의 변화로 상기의 단축, 상복의 변화 등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장례식장과 상조회사相助會社의 장례지도사가 상례를 대행하면서 의례의 전문직업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내용

일생을 살면서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를 처리하는 의례가 상례이다. 그래서 『국조오례의』에서는 길吉・가嘉・빈賓・군軍・흉凶의 오례五禮 중 하나인 흉례凶禮로 상례를 다루었다. 흉례에는 임금이 유언으로 나라의 뒷일을 부탁하는 국휼고명國恤顧命을 비롯하여 총 91개 항목이 있는데, 그 마지막에 대부사서인상의大夫士庶人喪儀를 두어 민간의 상례도 제도로 정하였다.

죽음을 보는 종교적 견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경우에는 가능한 한 빨리 시신을 처리하여 이승과 분리하는 것이 의례의 핵심이 된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조상숭배를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견해로, 고인을 조상으로 승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의례를 치른다. 유교식 삼년상이 이러한 의례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신주神主를 모시는 것을 전제로 하는 유교식 상례는 19개의 대절차로 구성되고 그 안에는 수 많은 소절차가 포함되는데, 대절차는 다음과 같다.

  1. 초종의初終儀: 죽음의 확인 및 상례를 준비하는 절차이다.

  2. 습襲: 1일째 의례로 시신을 목욕시켜 수의를 입히는 시신처리의 첫 단계이다.

  3. 소렴小殮: 2일째 의례로 시신을 베로 싸서 묶는 절차이다.

  4. 대렴大殮: 3일째 의례로 시신을 입관入棺하는 절차이다. 요즘은 목욕과 습, 소렴과 대렴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염습殮襲이라 한다.

  5. 성복成服: 4일째 의례로, 상주가 상복喪服으로 갈아입고 정식으로 상주가 되는 절차이다.

  6. 조弔: 조문을 받는 절차로, 성복 후부터 조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문상聞喪: 상주가 출타 중 부고訃告를 받았을 때 행하는 의례로 상가로 뛰어가는 분상奔喪을 한다.

  8. 치장治葬: 장사葬事할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등 장사지낼 준비를 하는 절차이다.

  9. 천구遷柩: 발인 전날 영구를 옮길 것을 고하고, 다음날발인 전에 고인을 영원히 보내는 견전遣奠을 지낸다.

  10. 발인發靷: 견전을 지낸 후 상여가 장지로 떠나는 일이다. 중간에 노제를 지낸다.

  11. 급묘及墓: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는 절차이다. 먼저 방상시方相氏가 광중壙中의 잡귀를 몰아낸다. 하관下棺하고 봉문을 만들며, 신주에 글씨를 쓰는 제주題主를 하고 제주전題主奠을 올린다.

  12. 반곡反哭: 새로 만든 신주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13. 우제虞祭: 시신을 보내고 영혼을 맞이하여 편안히 한다는 의미의 제사이다. 처음으로 맏상주가 주인이 되어 지내는 흉제凶祭로,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초우 후 유일柔日, 혹은 다음날에 재우再虞, 그다음 날 혹은 강일剛日에 삼우三虞를 지낸다. 삼우제 때 혼백을 산소에 묻고 성묘한다.

  14. 졸곡卒哭: 삼우 후 강일에 지내는 제사로 무시곡無時哭을 그쳐 슬픔의 강도를 줄이는 의례이다.

  15. 부제祔祭: 제주한 고인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게 되었음을 고하는 의례이다.

  16. 소상小祥: 1주기 제사로 추모와 상주의 슬픔을 경감하는 의례이다. 연복練服이 슬픔이 줄었음을 상징한다.

  17. 대상大祥: 운명 후 2주기에 지내는 제사로 빈소를 철거하여 탈상한다. 소복이 슬픔의 감소를 상징한다.

  18. 담제禫祭: 탈상 후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한 시절을 더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로 27개월째에 지낸다. 담복禫服이 이를 상징한다.

  19. 길제吉祭: 사당의 신주를 상주의 이름으로 바꾸고, 당일에 개제한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친진親盡한 신주를 체천遞遷하거나 매주埋主하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이다. 『가례』에는 없으나 『의례儀禮』 「사우례士虞禮」에 따라 『상례비요喪禮備要』와 『사례편람』에서 보충하였다. 길제를 마치면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신주를 모시지 않으면 신주와 관련된 습과 염의 절차가 통합되고, 천구・부제・길제 등의 대절차가 생략되어 약 15~16개 절차로 진행된다. 또한, 작주作主, 제주, 제주전과 같은 소절차도 생략된다. 그리고 신주를 모실때는 대렴을 해야 죽음을 인정하고 우제를 지내 조상신으로 인정하지만, 신주가 없을 때는 운명과 동시에 죽음을 인정하고 성복하면 곧바로 조상신으로 인정하는 차이가 있다.

상례는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의례이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여 가계 계승을 정상화하는 의례적 장치이기도 하다. 초종의에서 급묘까지가 죽음을 처리하는 장사葬事라면, 우제에서 길제까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하고, 상주가 일상으로 돌아와 가계를 계승하는 상례喪禮였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삼년이라는 기간을 요구한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졸곡卒哭에서 무시곡無時哭을 그치고,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서 역복으로 상주의 슬픔을 경감하며, 빈소殯所를 철거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 또한, 담제를 지내면서 완충 기간을 두고, 길제를 지내면서 상주의 의무를 마친 주손冑孫으로 주인의 역할을 바꾸면서 삼년상을 마무리한다.

지역사례

유교식 상례의 근본은 차이가 없으나, 환경과 상황 및 지역에 따라 그 시행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여 집안, 지역, 학자에 따라 의례가 다르지만 세부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영남지역에서는 주부主婦가 길제원삼족두리를 쓰는데, 이것은 새로운 주손과 집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영남지역에서는 관을 유택幽宅이라고 하여 반드시 맏사위가 준비하는 것으로 여긴다. 경기도 가평 등의 지역에서는 조릿대라는 봉을 들고 ‘회다지’를 한다. 기호지역에서는 관을 제거하고 매장하는 퇴관退棺 혹은 탈관脫棺을 한다. 서남 해안에서는 초분草墳을 한다.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이 되는 과정에서 ‘사잣밥’, ‘취토’, ‘회다지’ 등과 융화하면서 지역 특성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진도의 ‘진도다시래기’, 전라도의 씻김굿, 중부지역과 경상도 및 강원도 영동지역의 오구굿(진오구굿) 등이 그것이다.

특징 및 의의

우리나라 상례의 특징은 유교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에 조선의 고유문화와 융화하여 우리 고유의 유교식 상례로 변화하고, 이것이 상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정착하였다.

이러한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개의 주체가 등장하여 상례를 구성한다는 주체론으로 구조분석을 할 수 있다. 첫째, ‘고인을 위한 의례’는 시신 처리를 위한 의례로, 상례의 초반부에 등장한다. 둘째, ‘영혼을 위한 의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전 단계의 영혼과 관련된 의례이다. 셋째, ‘조상신을 위한 의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의례로 매장 이후에 집중된다. 넷째, ‘상주와 그의 공동체를 위한 의례’는 전 과정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네 개의 주체를 위한 의례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3년간의 대서사시를 엮어나간다.

지금까지 상례는 효의 실천이라는 철학적 의미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상례는 구성원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는 의례로 해석할 수 있다. 상례는 죽음의 충격을 완화하고 죽은 자에 대한 애통과 아쉬움의 여운餘韻을 표현하는 장치이다. 여운은 슬픔이 줄어드는 ‘점차’와 차마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차마’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여운은 첫째, ‘3’과 관계 깊다. 초혼할 때 반드시 세 번 불러야 하고, 3일에 걸쳐 시신 처리를 하며, 3일이 지나야 죽음을 인정하고, 세 단계를 거쳐야 조상신으로 승화된다. 둘째, ‘반복과 추가’의 과정을 거친다. 소상을 지내면 다시 대상을 지내야 하고, 다시 미더워 담제길제를 지내 마무리한다. 이처럼 상례는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아쉬움을 여운으로 표현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상례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이기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특히 요즘 장례식장의 장례에서는 그러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종교의 상례 역시 기본 틀은 전통상례와 닮은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諺解, 四禮便覽, 士儀, 喪禮備要, 유교의 상제례에 담긴 생사의식(김기현, 유교사상연구15, 한국유교학회, 2001),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민속원, 1995), 한국의 상례문화(김시덕, 민속원, 2012), CELEBRATIONS OF DEATH(Richard Huntington・Peter Metcalf, Cambridge Univ Press, 1979), THE RITES OF PASSAGE(Anold Van Gennep, Monika B. Vizedom, Gavrille I. Caffee, Univ of Chicago Press, 1960).

상례

상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김시덕(金時德)

정의

사람이 태어나 마지막으로 맞이하는 죽음을 처리하고 가계의 계승을 정상화하는 의례.

역사

고분과 고인돌, 육탈하는 복차장複次葬 등 선사시대부터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일정한 형식의 상례가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기록으로도 나타난다.『위지동이전』 고구려조高句麗條의 “혼인하면 곧바로 죽어서 입을 옷을 만든다.”라는 기록에서 수의襚衣, 널과 덧널의 존재에서 습襲과 염殮, 그리고 장사하는 날의 택일, 집안에 차리는 빈소殯所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이 다르긴 하지만 1년 혹은 3년의 상복제가 있었고, 신라에서는 504년(지증왕 5)에 상복법 제정, 귀족의 예장禮葬을 시행했다. 또한,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과 무열왕武烈王의 상례에는 빈장殯葬도 행했다. 단편적이지만 이러한 기록을 통해 유교식 상례도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에서는 불교식 화장 중심의 상례가 성행했었다. 고려시대에는 운명하면 집이나 원찰願刹에 빈소殯所를 마련하여 일정 기간 모셨다가 날을 잡아 화장하였다. 그래서 유골을 수습하여 길게는 6년간 권안權安하면서 자손과 승려가 극락왕생을 기원한 후 본장을 하는 불교식이 유행하였다. 그러나 985년(성종 4) 오복제도五服制度를 정하고 오례五禮의 틀 속에 흉례로서 상례를 위치시킨다. 그 결과 삼일장을 금하고 13개월에 소상小祥, 25개월에 대상大祥, 27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내는 유교식 상례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3년이 너무 길다고 하여 달을 날로 바꾸어 계산하는 일역월제日易月制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조선에서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으면서 상례 역시 유교식으로 일원화한다. 초기부터 숭유억불정책에 따라 7품 이하 관료에게 의무적으로 『가례家禮』를 시험 보게 하고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1394), 『경제육전經濟六典』(1397),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1474), 『경국대전經國大典』(1485) 등의 법전을 편찬하여 모든 제도와 의례를 유교식으로 전환한다. 상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16세기 초반부터 이미 조선식 예서禮書들이 등장하였고, 성리학자의 예학 연구와 실학자의 실천예학연구 등 유학자의 솔선수범으로 유교식 상례는 점차 일반화하기에 이른다.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유교식 상례는 완전한 조선의 상례문화로 정착하여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식 화장이 도입되고 「의례준칙」(1934)이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상복의 변화, 상기의 단축 등 전통의례를 강제하면서 상례의 문화적 전통이 위기에 봉착한다. 그럼에도 1900년에 『사례편람四禮便覽』이 증보되고, 그 이후에도 계속 출판되어 문화적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1969년 대한민국 최초로 「가정의례준칙에 관한 법률」(1969)과 함께 「가정의례준칙」이 공포되고, 1999년 개정된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 현재까지 국가가 간소화를 명분으로 일생의례로서 개인의 의례를 ‘규제’하였지만, 문화적 전통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산업화・도시화에 따른 일상생활의 변화로 상기의 단축, 상복의 변화 등 많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장례식장과 상조회사相助會社의 장례지도사가 상례를 대행하면서 의례의 전문직업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내용

일생을 살면서 마지막으로 거쳐야 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를 처리하는 의례가 상례이다. 그래서 『국조오례의』에서는 길吉・가嘉・빈賓・군軍・흉凶의 오례五禮 중 하나인 흉례凶禮로 상례를 다루었다. 흉례에는 임금이 유언으로 나라의 뒷일을 부탁하는 국휼고명國恤顧命을 비롯하여 총 91개 항목이 있는데, 그 마지막에 대부사서인상의大夫士庶人喪儀를 두어 민간의 상례도 제도로 정하였다. 죽음을 보는 종교적 견해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죽음을 두려운 존재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경우에는 가능한 한 빨리 시신을 처리하여 이승과 분리하는 것이 의례의 핵심이 된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조상숭배를 위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견해로, 고인을 조상으로 승화하기 위해 오랜 기간 의례를 치른다. 유교식 삼년상이 이러한 의례의 과정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신주神主를 모시는 것을 전제로 하는 유교식 상례는 19개의 대절차로 구성되고 그 안에는 수 많은 소절차가 포함되는데, 대절차는 다음과 같다. 초종의初終儀: 죽음의 확인 및 상례를 준비하는 절차이다. 습襲: 1일째 의례로 시신을 목욕시켜 수의를 입히는 시신처리의 첫 단계이다. 소렴小殮: 2일째 의례로 시신을 베로 싸서 묶는 절차이다. 대렴大殮: 3일째 의례로 시신을 입관入棺하는 절차이다. 요즘은 목욕과 습, 소렴과 대렴을 한꺼번에 처리하며, 염습殮襲이라 한다. 성복成服: 4일째 의례로, 상주가 상복喪服으로 갈아입고 정식으로 상주가 되는 절차이다. 조弔: 조문을 받는 절차로, 성복 후부터 조문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상聞喪: 상주가 출타 중 부고訃告를 받았을 때 행하는 의례로 상가로 뛰어가는 분상奔喪을 한다. 치장治葬: 장사葬事할 장소와 시간을 정하는 등 장사지낼 준비를 하는 절차이다. 천구遷柩: 발인 전날 영구를 옮길 것을 고하고, 다음날발인 전에 고인을 영원히 보내는 견전遣奠을 지낸다. 발인發靷: 견전을 지낸 후 상여가 장지로 떠나는 일이다. 중간에 노제를 지낸다. 급묘及墓: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는 절차이다. 먼저 방상시方相氏가 광중壙中의 잡귀를 몰아낸다. 하관下棺하고 봉문을 만들며, 신주에 글씨를 쓰는 제주題主를 하고 제주전題主奠을 올린다. 반곡反哭: 새로 만든 신주와 혼백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온다. 우제虞祭: 시신을 보내고 영혼을 맞이하여 편안히 한다는 의미의 제사이다. 처음으로 맏상주가 주인이 되어 지내는 흉제凶祭로,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하는 첫 번째 단계이다. 초우 후 유일柔日, 혹은 다음날에 재우再虞, 그다음 날 혹은 강일剛日에 삼우三虞를 지낸다. 삼우제 때 혼백을 산소에 묻고 성묘한다. 졸곡卒哭: 삼우 후 강일에 지내는 제사로 무시곡無時哭을 그쳐 슬픔의 강도를 줄이는 의례이다. 부제祔祭: 제주한 고인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게 되었음을 고하는 의례이다. 소상小祥: 1주기 제사로 추모와 상주의 슬픔을 경감하는 의례이다. 연복練服이 슬픔이 줄었음을 상징한다. 대상大祥: 운명 후 2주기에 지내는 제사로 빈소를 철거하여 탈상한다. 소복이 슬픔의 감소를 상징한다. 담제禫祭: 탈상 후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한 시절을 더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사로 27개월째에 지낸다. 담복禫服이 이를 상징한다. 길제吉祭: 사당의 신주를 상주의 이름으로 바꾸고, 당일에 개제한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친진親盡한 신주를 체천遞遷하거나 매주埋主하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이다. 『가례』에는 없으나 『의례儀禮』 「사우례士虞禮」에 따라 『상례비요喪禮備要』와 『사례편람』에서 보충하였다. 길제를 마치면 완전히 일상으로 돌아간다. 신주를 모시지 않으면 신주와 관련된 습과 염의 절차가 통합되고, 천구・부제・길제 등의 대절차가 생략되어 약 15~16개 절차로 진행된다. 또한, 작주作主, 제주, 제주전과 같은 소절차도 생략된다. 그리고 신주를 모실때는 대렴을 해야 죽음을 인정하고 우제를 지내 조상신으로 인정하지만, 신주가 없을 때는 운명과 동시에 죽음을 인정하고 성복하면 곧바로 조상신으로 인정하는 차이가 있다. 상례는 고인의 시신을 처리하는 의례이지만,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여 가계 계승을 정상화하는 의례적 장치이기도 하다. 초종의에서 급묘까지가 죽음을 처리하는 장사葬事라면, 우제에서 길제까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하고, 상주가 일상으로 돌아와 가계를 계승하는 상례喪禮였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충격을 최소화하려고 삼년이라는 기간을 요구한다.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졸곡卒哭에서 무시곡無時哭을 그치고, 소상小祥과 대상大祥에서 역복으로 상주의 슬픔을 경감하며, 빈소殯所를 철거하여 일상으로 돌아올 준비를 한다. 또한, 담제를 지내면서 완충 기간을 두고, 길제를 지내면서 상주의 의무를 마친 주손冑孫으로 주인의 역할을 바꾸면서 삼년상을 마무리한다.

지역사례

유교식 상례의 근본은 차이가 없으나, 환경과 상황 및 지역에 따라 그 시행에는 차이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가례家家禮’라고 하여 집안, 지역, 학자에 따라 의례가 다르지만 세부적인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영남지역에서는 주부主婦가 길제 때 원삼에 족두리를 쓰는데, 이것은 새로운 주손과 집의 탄생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영남지역에서는 관을 유택幽宅이라고 하여 반드시 맏사위가 준비하는 것으로 여긴다. 경기도 가평 등의 지역에서는 조릿대라는 봉을 들고 ‘회다지’를 한다. 기호지역에서는 관을 제거하고 매장하는 퇴관退棺 혹은 탈관脫棺을 한다. 서남 해안에서는 초분草墳을 한다. 유교식 상례가 문화적 전통이 되는 과정에서 ‘사잣밥’, ‘취토’, ‘회다지’ 등과 융화하면서 지역 특성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진도의 ‘진도다시래기’, 전라도의 씻김굿, 중부지역과 경상도 및 강원도 영동지역의 오구굿(진오구굿) 등이 그것이다.

특징 및 의의

우리나라 상례의 특징은 유교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여기에 조선의 고유문화와 융화하여 우리 고유의 유교식 상례로 변화하고, 이것이 상례의 문화적 전통으로 정착하였다. 이러한 상례는 고인, 영혼, 조상신, 상주라는 네 개의 주체가 등장하여 상례를 구성한다는 주체론으로 구조분석을 할 수 있다. 첫째, ‘고인을 위한 의례’는 시신 처리를 위한 의례로, 상례의 초반부에 등장한다. 둘째, ‘영혼을 위한 의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전 단계의 영혼과 관련된 의례이다. 셋째, ‘조상신을 위한 의례’는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의례로 매장 이후에 집중된다. 넷째, ‘상주와 그의 공동체를 위한 의례’는 전 과정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네 개의 주체를 위한 의례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3년간의 대서사시를 엮어나간다. 지금까지 상례는 효의 실천이라는 철학적 의미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상례는 구성원 상실의 위기를 극복하는 의례로 해석할 수 있다. 상례는 죽음의 충격을 완화하고 죽은 자에 대한 애통과 아쉬움의 여운餘韻을 표현하는 장치이다. 여운은 슬픔이 줄어드는 ‘점차’와 차마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차마’의 마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여운은 첫째, ‘3’과 관계 깊다. 초혼할 때 반드시 세 번 불러야 하고, 3일에 걸쳐 시신 처리를 하며, 3일이 지나야 죽음을 인정하고, 세 단계를 거쳐야 조상신으로 승화된다. 둘째, ‘반복과 추가’의 과정을 거친다. 소상을 지내면 다시 대상을 지내야 하고, 다시 미더워 담제와 길제를 지내 마무리한다. 이처럼 상례는 고인을 보내는 아쉬움, 조상신으로 승화시키는 아쉬움을 여운으로 표현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이것이 죽음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하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 상례는 기본적으로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이기에 불교, 기독교 등의 종교적인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하나의 특징이다. 특히 요즘 장례식장의 장례에서는 그러한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종교의 상례 역시 기본 틀은 전통상례와 닮은 것이 특징이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諺解, 四禮便覽, 士儀, 喪禮備要, 유교의 상제례에 담긴 생사의식(김기현, 유교사상연구15, 한국유교학회, 2001),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민속원, 1995), 한국의 상례문화(김시덕, 민속원, 2012), CELEBRATIONS OF DEATH(Richard Huntington・Peter Metcalf, Cambridge Univ Press, 1979), THE RITES OF PASSAGE(Anold Van Gennep, Monika B. Vizedom, Gavrille I. Caffee, Univ of Chicago Press,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