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메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황루시(黃縷詩)

정의

주로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속신앙. ‘산멕이’, ‘산맥이’라고도 부른다. 산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봄 또는 가을에 날을 받아 가족, 친족, 또는 주민들 단위로 산에 올라가 ‘산’을 대접하고 가정의 편안과 자손 발복을 기원하는 산간신앙 의례.

역사

산메기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때에 볼 수 있다. “문중별로 모여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무당과 함께 산 속으로 가서 산제를 올린다”는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삼척 산제에 대한 기록은 바로 산메기를 지칭한 것이다.

내용

산메기는 봄, 가을에 산에 올라가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발복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신앙이다. 산메기는 문자 그대로 산을 먹이는(멕이는) 행위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산을 대접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산메기는 발음대로 쓴 것이고, 산멕이는 ‘산을 멕인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산맥이는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현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는 축귀보다는 ‘산’을 대접한다는 뜻이 더 강하다.

산메기에서 모시는 신은 산신, 조상, 삼신, 군웅, 용신, 말명 등이다. 산메기를 하는 사람들은 ‘산’과 산신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산의 신령인 산신을 모시는 의례는 흔히 산당제라고 부른다. ‘산’은 이보다 복합적인 성격을 지녀 산신령이면서 조상이고 가족의 안녕과 자손번창, 가축의 무병과 번성을 돕는 신으로 믿고 있다.

현재까지 산메기를 가장 활발하게 전승하는 지역은 삼척이다. 삼척 지역의 산메기는 집안 단위,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다. 가까이 사는 집안이 모여서 함께 가는 경우도 있고, 한 마을에 사는 여러 집안이 함께 가는 수도 있다. 무당이나 독경하는 복자를 데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입담 좋은 사람이 비손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산메기는 집단신앙과 개인신앙의 양상이 모두 존재하고, 산에서 이루어지지만 집안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는 신앙이라는 점에서 가정신앙의 면모를 지닌다.

지역사례

삼척에서 산메기로 가장 유명한 산은 쉰움산이다. 쉰움산은 정상에 둥글게 우물처럼 파인 것이 50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가운데 용신당이 있다.

내미로리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날을 잡아 쉰움산으로 산메기를 간다. 2005년 6월 9일에 실연된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마을의 산메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메기는 17가구가 참여했다. 마을 주민들은 김동철 복자와 천순자·강행자 무녀를 사제로 초청했다. 날을 잡은 사람을 당주라고 한다. 해뜨기 전에 당주집에서 조상을 대우한 뒤에 다 함께 쉰움산으로 올라간다.

간단한 제물을 장만하여 산의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복자가 거리부정을 친다. 쉰움산은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이상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 있는 은선암에서 망제(望祭)로 올리는 사람도 많다. 쉰움산 정상에 있는 조상당에는 높이 1m정도의 돌탑제단이 약 10m 가량 둥글게 펼쳐져 있다. 당주가 가운데에 자리를 잡으면 집 단위로 각각 제물을 진설한다. 쌀가루로 둥글게 만든 동돌개비떡·삼실과 메·과일·포 등을 놓는다.

산메기 절차를 보면 먼저 부정경을 읽은 뒤 산맞이를 한다. 산신메에 수저를 꽂은 다음 모두 잔을 올리고 절한다. 웃대 어른들이 다른 산을 모신 집안에서는 먼산맞이를 한다. 산이 있는 방향에 가서 제물을 진설한 뒤에 간단히 비는 것이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조상맞이를 한다. 복자와 무녀들이 각 집의 조상당을 돌면서 축원해 준다. 조상맞이가 끝나면 삼신을 모신다. 삼신당은 조상당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사람들은 삼신메와 한지, 실 한 타래를 가지고 가서 바위에 걸어놓은 뒤 치성을 드린다. 무녀는 돌아다니면서 삼신메로 대를 내려준다. 비는 사람이 들고 있는 삼신메가 흔들리는 것으로 대가 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신제는 부녀자들만 참여한다. 쌀과 시루떡, 동돌개비떡, 술을 가지고 용신당에 모여서 절한 뒤에 쌀을 뿌리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다시 조상당에 돌아와서 집에서 키우는 소를 위해 군웅축원을 한다. 마지막에 조상을 위해 삼베조각을 갈라주는 길가르기를 한다. 천은 조상당 앞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어두고 뒷전을 메기면 모든 제의가 끝난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고 놀다가 내려온다.

한편 강릉 강동면 심곡리와 옥계면 도직리에서 전승되는 산메기는 개인신앙의 형태를 띤다. 평소 부엌에 왼새끼를 걸어두고 고기나 생선 등의 비린 것을 먹을 때마다 날것을 잘라 한 조각씩 걸어둔다. 이것을 ‘산’이라고 부른다. 단옷날 해가 뜨기 전에 일 년 동안 걸어두었던 ‘산’과 제물을 장만하여 안주인 혼자 산에 올라간다. 집집마다 정해진 나무에 ‘산’을 건 다음 그 아래 제물을 차린 뒤에 절하고 비손을 하는 것이다. 안주인은 주로 가족이 무사하고 자손발복 하기를 기원한다. 비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새로 왼새끼를 꼬아 ‘산’을 만들어 부엌에 걸어둔다. 강릉지역의 산메기는 철저하게 여성 중심이며,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승된다.

참고문헌

조선의 향토오락 (村山智順(편)·박전열(역), 집문당, 1992), 삼척의 민속예술 (김태수, 코리아루트, 2000), 강원도 민속의 지역적 정체성-산간민속을 중심으로 (김진순, 비교민속학 29, 비교민속학회, 2000), 산멕이에 관한 논쟁적 해석 (김태수, 한국민속학 43, 한국민속학회, 2006)

산메기

산메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황루시(黃縷詩)

정의

주로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민속신앙. ‘산멕이’, ‘산맥이’라고도 부른다. 산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이 봄 또는 가을에 날을 받아 가족, 친족, 또는 주민들 단위로 산에 올라가 ‘산’을 대접하고 가정의 편안과 자손 발복을 기원하는 산간신앙 의례.

역사

산메기에 대한 기록은 일제강점기 때에 볼 수 있다. “문중별로 모여 집안의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무당과 함께 산 속으로 가서 산제를 올린다”는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의 삼척 산제에 대한 기록은 바로 산메기를 지칭한 것이다.

내용

산메기는 봄, 가을에 산에 올라가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발복을 위해 치성을 드리는 신앙이다. 산메기는 문자 그대로 산을 먹이는(멕이는) 행위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산을 대접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산메기는 발음대로 쓴 것이고, 산멕이는 ‘산을 멕인다’는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산맥이는 ‘액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현지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는 축귀보다는 ‘산’을 대접한다는 뜻이 더 강하다. 산메기에서 모시는 신은 산신, 조상, 삼신, 군웅, 용신, 말명 등이다. 산메기를 하는 사람들은 ‘산’과 산신을 구분하여 사용한다. 산의 신령인 산신을 모시는 의례는 흔히 산당제라고 부른다. ‘산’은 이보다 복합적인 성격을 지녀 산신령이면서 조상이고 가족의 안녕과 자손번창, 가축의 무병과 번성을 돕는 신으로 믿고 있다. 현재까지 산메기를 가장 활발하게 전승하는 지역은 삼척이다. 삼척 지역의 산메기는 집안 단위, 마을 단위로 이루어진다. 가까이 사는 집안이 모여서 함께 가는 경우도 있고, 한 마을에 사는 여러 집안이 함께 가는 수도 있다. 무당이나 독경하는 복자를 데려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입담 좋은 사람이 비손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산메기는 집단신앙과 개인신앙의 양상이 모두 존재하고, 산에서 이루어지지만 집안의 평안과 태평을 기원하는 신앙이라는 점에서 가정신앙의 면모를 지닌다.

지역사례

삼척에서 산메기로 가장 유명한 산은 쉰움산이다. 쉰움산은 정상에 둥글게 우물처럼 파인 것이 50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가운데 용신당이 있다. 내미로리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날을 잡아 쉰움산으로 산메기를 간다. 2005년 6월 9일에 실연된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마을의 산메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산메기는 17가구가 참여했다. 마을 주민들은 김동철 복자와 천순자·강행자 무녀를 사제로 초청했다. 날을 잡은 사람을 당주라고 한다. 해뜨기 전에 당주집에서 조상을 대우한 뒤에 다 함께 쉰움산으로 올라간다. 간단한 제물을 장만하여 산의 초입에 들어서면 먼저 복자가 거리부정을 친다. 쉰움산은 가파른 오르막을 한 시간 이상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때문에 중간에 있는 은선암에서 망제(望祭)로 올리는 사람도 많다. 쉰움산 정상에 있는 조상당에는 높이 1m정도의 돌탑제단이 약 10m 가량 둥글게 펼쳐져 있다. 당주가 가운데에 자리를 잡으면 집 단위로 각각 제물을 진설한다. 쌀가루로 둥글게 만든 동돌개비떡·삼실과 메·과일·포 등을 놓는다. 산메기 절차를 보면 먼저 부정경을 읽은 뒤 산맞이를 한다. 산신메에 수저를 꽂은 다음 모두 잔을 올리고 절한다. 웃대 어른들이 다른 산을 모신 집안에서는 먼산맞이를 한다. 산이 있는 방향에 가서 제물을 진설한 뒤에 간단히 비는 것이다. 아침을 먹은 뒤에는 조상맞이를 한다. 복자와 무녀들이 각 집의 조상당을 돌면서 축원해 준다. 조상맞이가 끝나면 삼신을 모신다. 삼신당은 조상당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사람들은 삼신메와 한지, 실 한 타래를 가지고 가서 바위에 걸어놓은 뒤 치성을 드린다. 무녀는 돌아다니면서 삼신메로 대를 내려준다. 비는 사람이 들고 있는 삼신메가 흔들리는 것으로 대가 내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신제는 부녀자들만 참여한다. 쌀과 시루떡, 동돌개비떡, 술을 가지고 용신당에 모여서 절한 뒤에 쌀을 뿌리면서 풍년을 기원한다. 다시 조상당에 돌아와서 집에서 키우는 소를 위해 군웅축원을 한다. 마지막에 조상을 위해 삼베조각을 갈라주는 길가르기를 한다. 천은 조상당 앞에 있는 소나무 가지에 걸어두고 뒷전을 메기면 모든 제의가 끝난다. 사람들은 음식을 나눠 먹고 놀다가 내려온다. 한편 강릉 강동면 심곡리와 옥계면 도직리에서 전승되는 산메기는 개인신앙의 형태를 띤다. 평소 부엌에 왼새끼를 걸어두고 고기나 생선 등의 비린 것을 먹을 때마다 날것을 잘라 한 조각씩 걸어둔다. 이것을 ‘산’이라고 부른다. 단옷날 해가 뜨기 전에 일 년 동안 걸어두었던 ‘산’과 제물을 장만하여 안주인 혼자 산에 올라간다. 집집마다 정해진 나무에 ‘산’을 건 다음 그 아래 제물을 차린 뒤에 절하고 비손을 하는 것이다. 안주인은 주로 가족이 무사하고 자손발복 하기를 기원한다. 비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새로 왼새끼를 꼬아 ‘산’을 만들어 부엌에 걸어둔다. 강릉지역의 산메기는 철저하게 여성 중심이며,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전승된다.

참고문헌

조선의 향토오락 (村山智順(편)·박전열(역), 집문당, 1992)삼척의 민속예술 (김태수, 코리아루트, 2000)강원도 민속의 지역적 정체성-산간민속을 중심으로 (김진순, 비교민속학 29, 비교민속학회, 2000)산멕이에 관한 논쟁적 해석 (김태수, 한국민속학 43, 한국민속학회,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