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실(龕室)

한자명

龕室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신상神像이나 초월적 존재의 신체神體를 모셔두는 신성한 공간이자 시설.

역사

유교에서 감실龕室은 기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의 신주를 주독主櫝에 넣어서 모셔두는 목제 시설이다. 원래 감실은 불교에서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은 공간이었는데, 유교・불교・도교 등의 종교에서도 상징적인 물체나 신상을 만들어서 안치해 두는 공간을 감실이라 한다.

당대唐代 이전에는 종묘의 신주를 벽에다 보관하였는데, 송宋나라에서 신주를 보관하기 위해 감실과 같이 만들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이를 받아들여 “사당 안에 조상의 신주를 봉안해 두는 공간으로, 하나의 도리에 네 개의 감실을 만들고 감실마다 탁자를 두어 서쪽에서부터 고조・증조・조부・아버지 순으로 신주를 모신다. 신주는 주독 속에 보관하여 탁자 위에 놓고 남향한다. 감실 바깥에는 각각 작은 발을 드리우고, 발 바깥에는 향탁香卓을 당堂 가운데 설치하여 향로향합香盒을 그 위에 놓는다.”라고 하였다.

『주자가례』에는 구체적인 감실 그림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는 <사당감실지도祠堂龕室之圖>가 나온다. 이를 보면 당에 설치한다는 향탁만 제시되지 않았을 뿐, 나머지는 『주자가례』의 감실 구조 그대로인데, 사실상 감실은 전면에 발이 드리워진 하나의 방이나 마찬가지이다.

내용

유교에서 감실은 일반적으로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주독을 안치하는 사당 내 공간이자 시설이다. 물론 사당이 없는 상태에서도 감실을 설치하여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예가 많다. 우리나라 감실의 형태로는 『주자가례』의 감실구조와 『가례집람』의 <사당감실지도>를 따르는 방형房形 감실, 『주자가례』에서 설명한 감실 구조를 한국화한 벽장형 감실, 『주자가례』에서 사당의 형태로 설명한,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형 감실, 기단 위에 보전寶殿을 앉힌 고급스러운 보전형 감실, 팔작지붕의 목조가옥 형태를 취한 가옥형 감실, 격자문살의 문과 안상문眼象紋이 조각된 기본 형태인 상자형 감실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고식古式에 해당하는 것은 방형 감실과 벽장형 감실이라 판단된다.

감실의 규모는 봉사하는 대수代數에 따라서 차이가있게 마련이다. 불천위不遷位와 4대조를 모시기 위한 다섯 칸 형태의 감실, 그리고 4대조를 모시기 위한 네 칸 형태의 감실이 어느 정도 일반적이다. 불천위만을 모시기 위한 한 칸 형태의 감실, 그 밖에 불천위와 다른 조상을 함께 모시는 두 칸 형태 감실도 있다. 감실의 문은 일반적으로 창살문으로 되어 있고, 안쪽에는 창호지로 발라둔다. 감실에 신주와 주독을 모실 때, 서쪽에 윗대 조상을 모시고 동쪽에 아랫대 조상을 모신다. 사후세계에서는 동쪽보다 서쪽이 더 우위라는 인식에 기초하는 현상이다.

사당이 없는 경우에도 감실을 설치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사당 건립이 어렵거나 감실 혹은 신주를 소실하여 새로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는 후손들이 사는 살림채의 대청이나 사랑방의 한쪽에 감실을 설치한다. 이처럼 사당 없이 벽에 설치한 감실을 ‘벽감壁龕’이라고 한다.

지역사례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의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8) 종가[琴易堂]에서는 한 채의 사당북쪽 벽면으로 총 다섯 개의 문이 달린 벽장형 감실을 길게 만들었는데, 그 내부는 칸막이 없이 모두 하나의 칸으로 되어 있다. 이 감실의 가장 서쪽에 불천위를 모시고, 이어서 그 동쪽에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의 순서로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영덕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재령 이씨 운악 이함李涵(1554~1632) 종가 충효당忠孝堂에서는 하나의 사당에 불천위 조상과 4대 조상을 함께 모시는데, 역시 서쪽 끝에 불천위를 모시면서 간이벽[隔板]을 만들어 구획하고 있지만 감실이 없다. 불천위는 교의交椅 위에 주독을 올리고, 그 나머지는 탁자(제상) 위에 주독을 올려두고 있다. 대전광역시 송촌동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 종가에서는 탁자 뒤쪽으로 교의를 놓고 그 위에 상자형 감실을 올려두었으며, 탁자 밖으로는 발을 치고 그 앞에 향탁을 놓았다.

한편, 사당은 없더라도 사당방을 마련하여 감실을 모시거나, 건물의 일정 지점에 독립된 벽감을 설치하기도 한다. 경기도 여주 해평 윤씨가에서는 사당방을 마련하여 전면이 터진 벽장과 같은 시설을 하고, 세대별로 조상의 신주를 모신 감실을 그 속에 넣어 둔다. 경북 영덕에 있는 강파江波 권상임權尙任(1622~1700) 종가에서는 사랑방 머리에 벽장형 감실을 만들고 불천위와 4대조를 모신다. 경기도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종가에서는 아파트 서재 벽에 한 칸짜리 감실을 설치하고 이이의 신주를 모시는데, 감실 앞에는 발 대신 커튼 모양의 앙장仰帳을 둘렀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지산志山 류지영柳芝榮(1828~1896)의 고택에서는 사랑대청 한쪽에 두 칸 형태의 벽감을 설치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감실은 사당・신주와 함께 조선시대 조상제사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신주를 모신 주독을 보관하는 공간이자 시설이다. 주독에 넣은 신주를 다시 감실에 보관하여 모신다는 점에서 신주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또한 조상신의 성향이 얼마나 조용하고 안온한 곳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감실의 규모와 형태를 통해서 가문의 위상과 경제적 규모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감실과 주독에 대한 고찰(최순권, 생활문물연구17, 국립민속박물관, 2005), 조선시대 유교 감실의 수용과 변용(박종민, 문화재44,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종가의 사당을 통해 본 조상관(배영동, 한국민속학39, 한국민속학회, 2004),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주자가례에 나타난 사당의 구조에 관한 연구(장철수, 한국의 사회와 문화2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한국의 사당제도에 대하여(김시황, 동양예학2, 동양예학회,1999), 한국의 제사(국립민속박물관, 2003).

감실

감실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배영동(裵永東)

정의

신상神像이나 초월적 존재의 신체神體를 모셔두는 신성한 공간이자 시설.

역사

유교에서 감실龕室은 기제사의 대상이 되는 조상의 신주를 주독主櫝에 넣어서 모셔두는 목제 시설이다. 원래 감실은 불교에서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 만든 작은 공간이었는데, 유교・불교・도교 등의 종교에서도 상징적인 물체나 신상을 만들어서 안치해 두는 공간을 감실이라 한다. 당대唐代 이전에는 종묘의 신주를 벽에다 보관하였는데, 송宋나라에서 신주를 보관하기 위해 감실과 같이 만들었다. 『주자가례朱子家禮』는 이를 받아들여 “사당 안에 조상의 신주를 봉안해 두는 공간으로, 하나의 도리에 네 개의 감실을 만들고 감실마다 탁자를 두어 서쪽에서부터 고조・증조・조부・아버지 순으로 신주를 모신다. 신주는 주독 속에 보관하여 탁자 위에 놓고 남향한다. 감실 바깥에는 각각 작은 발을 드리우고, 발 바깥에는 향탁香卓을 당堂 가운데 설치하여 향로와 향합香盒을 그 위에 놓는다.”라고 하였다. 『주자가례』에는 구체적인 감실 그림이 제시되지 않았지만, 김장생金長生의 『가례집람家禮輯覽』에는 가 나온다. 이를 보면 당에 설치한다는 향탁만 제시되지 않았을 뿐, 나머지는 『주자가례』의 감실 구조 그대로인데, 사실상 감실은 전면에 발이 드리워진 하나의 방이나 마찬가지이다.

내용

유교에서 감실은 일반적으로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주독을 안치하는 사당 내 공간이자 시설이다. 물론 사당이 없는 상태에서도 감실을 설치하여 조상의 신주를 모시는 예가 많다. 우리나라 감실의 형태로는 『주자가례』의 감실구조와 『가례집람』의 를 따르는 방형房形 감실, 『주자가례』에서 설명한 감실 구조를 한국화한 벽장형 감실, 『주자가례』에서 사당의 형태로 설명한, 맞배지붕으로 된 사당형 감실, 기단 위에 보전寶殿을 앉힌 고급스러운 보전형 감실, 팔작지붕의 목조가옥 형태를 취한 가옥형 감실, 격자문살의 문과 안상문眼象紋이 조각된 기본 형태인 상자형 감실 등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 중에서 고식古式에 해당하는 것은 방형 감실과 벽장형 감실이라 판단된다. 감실의 규모는 봉사하는 대수代數에 따라서 차이가있게 마련이다. 불천위不遷位와 4대조를 모시기 위한 다섯 칸 형태의 감실, 그리고 4대조를 모시기 위한 네 칸 형태의 감실이 어느 정도 일반적이다. 불천위만을 모시기 위한 한 칸 형태의 감실, 그 밖에 불천위와 다른 조상을 함께 모시는 두 칸 형태 감실도 있다. 감실의 문은 일반적으로 창살문으로 되어 있고, 안쪽에는 창호지로 발라둔다. 감실에 신주와 주독을 모실 때, 서쪽에 윗대 조상을 모시고 동쪽에 아랫대 조상을 모신다. 사후세계에서는 동쪽보다 서쪽이 더 우위라는 인식에 기초하는 현상이다. 사당이 없는 경우에도 감실을 설치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사당 건립이 어렵거나 감실 혹은 신주를 소실하여 새로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때는 후손들이 사는 살림채의 대청이나 사랑방의 한쪽에 감실을 설치한다. 이처럼 사당 없이 벽에 설치한 감실을 ‘벽감壁龕’이라고 한다.

지역사례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의 임연재臨淵齋 배삼익裵三益(1534~1588) 종가[琴易堂]에서는 한 채의 사당북쪽 벽면으로 총 다섯 개의 문이 달린 벽장형 감실을 길게 만들었는데, 그 내부는 칸막이 없이 모두 하나의 칸으로 되어 있다. 이 감실의 가장 서쪽에 불천위를 모시고, 이어서 그 동쪽에 고조부, 증조부, 조부, 부의 순서로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영덕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재령 이씨 운악 이함李涵(1554~1632) 종가 충효당忠孝堂에서는 하나의 사당에 불천위 조상과 4대 조상을 함께 모시는데, 역시 서쪽 끝에 불천위를 모시면서 간이벽[隔板]을 만들어 구획하고 있지만 감실이 없다. 불천위는 교의交椅 위에 주독을 올리고, 그 나머지는 탁자(제상) 위에 주독을 올려두고 있다. 대전광역시 송촌동의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1606~1672) 종가에서는 탁자 뒤쪽으로 교의를 놓고 그 위에 상자형 감실을 올려두었으며, 탁자 밖으로는 발을 치고 그 앞에 향탁을 놓았다. 한편, 사당은 없더라도 사당방을 마련하여 감실을 모시거나, 건물의 일정 지점에 독립된 벽감을 설치하기도 한다. 경기도 여주 해평 윤씨가에서는 사당방을 마련하여 전면이 터진 벽장과 같은 시설을 하고, 세대별로 조상의 신주를 모신 감실을 그 속에 넣어 둔다. 경북 영덕에 있는 강파江波 권상임權尙任(1622~1700) 종가에서는 사랑방 머리에 벽장형 감실을 만들고 불천위와 4대조를 모신다. 경기도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 종가에서는 아파트 서재 벽에 한 칸짜리 감실을 설치하고 이이의 신주를 모시는데, 감실 앞에는 발 대신 커튼 모양의 앙장仰帳을 둘렀다. 경북 안동 하회마을 지산志山 류지영柳芝榮(1828~1896)의 고택에서는 사랑대청 한쪽에 두 칸 형태의 벽감을 설치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감실은 사당・신주와 함께 조선시대 조상제사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신주를 모신 주독을 보관하는 공간이자 시설이다. 주독에 넣은 신주를 다시 감실에 보관하여 모신다는 점에서 신주의 중요성이 얼마나 컸는지, 또한 조상신의 성향이 얼마나 조용하고 안온한 곳을 좋아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조상을 모시는 감실의 규모와 형태를 통해서 가문의 위상과 경제적 규모 등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감실과 주독에 대한 고찰(최순권, 생활문물연구17, 국립민속박물관, 2005), 조선시대 유교 감실의 수용과 변용(박종민, 문화재44, 국립문화재연구소, 2011), 종가의 사당을 통해 본 조상관(배영동, 한국민속학39, 한국민속학회, 2004),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주자가례에 나타난 사당의 구조에 관한 연구(장철수, 한국의 사회와 문화2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4), 한국의 사당제도에 대하여(김시황, 동양예학2, 동양예학회,1999), 한국의 제사(국립민속박물관,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