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외연도당제

한자명

保寧外烟島堂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2-17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서 해마다 음력 2월 14~15일에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례. 외연도당제는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장 전횡(田橫) 장군을 풍어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역사

외연도당제는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당제이다. 1598년(선조 31) 보령의 충청수영에 건립된 「유격장군청덕비(遊擊將軍淸德碑)」에 따르면 전횡은 이미 조선 전기에 풍어신으로 좌정하여 외연도당제의 주신격으로 치제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외연도 당산에 최초로 모셔진 신은 산신이고 전횡은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신격화된 존재라는 점을 상기하면, 외연도당제는 늦어도 조선 초기 또는 그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제나라의 무장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오른 전횡은 유방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부하들과 바다로 들어가 섬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936년에 건립된 「전공사당기」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당시 전횡이 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숨은 섬이 바로 외연도라고 구전되고 있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서산의 옛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전횡의 외연도 피신설은 이미 고려 말기에 식자층을 중심으로널리 퍼져 있는 속설이었다고 한다.

실제 전횡이 은거한 섬은 외연도가 아니라 중국 산둥반도에 위치한 텐헝섬[田橫島]이다. 그런데도 세간에 외연도로 알려진 것은 지리적인 입지상 제나라와 긴밀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전횡은 한 고조인 유방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장수이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모두자결을 택하였다. 이러한 전횡과 그 부하들의 의로운 죽음은 연고지로 회자되는 외연도 주민들에게 해원(解寃)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이것은 곧 당제의 주신으로 모셔지는 단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외연도에서는 음력 4월과 11월에 당제를 올리고, 8월에는 간단하게 노구제를 지냈다. 1970년대에는 세 차례 거행하던 제의를 4월 한 번으로 축소하였고, 1987년에 한때 중단되었던 당제를 부활시키면서 음력 2월 14일로 날짜를 고정했다가 2008년 행사부터 다시 2월 14일로 옮겼다.

내용

제장은 속칭 갈당으로 불리는 당산과 전횡장군사당, 음식을 준비하는 제당 세 곳으로 구성된다. 갈당에는 산제당, 전횡장군놀던바위, 김서방바위가 있다. 산 정상부에 위치한산제당은 커다란 바위 동쪽에 세개의 제단을 활모양[弧形]으로 배치하였다. 전횡장군사당에는 전횡장군신위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당산신위(堂山神位)와 도당신위(都堂神位)를안치하였고, 오른쪽 선반에는 소저아지씨신위(小姐阿只氏神位)를 놓았다.

당제의 준비는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당주(堂主)를 정하는 마을회의로부터 시작된다. 당주는 나이가 지긋하고 당제의 전반적인 절차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으로 선출하되 집안에 부정이 없고 몸가짐이 정갈해야 한다. 당주가 정해지면 그 집 대문 앞에는 당기(堂旗)를 꽂고 황토 두 무더기를 놓아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다. 이때부터 당주는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두문불출한 채 금기를 지킨다. 당주가 특히 가려야 할 것은 시신, 초상, 제사, 피 등으로 인한 부정이다. 당주와 더불어 당제의 희생과 제물을 담당할화장(火匠)을 뽑는다. 화장은 안화장과 바깥화장으로 구분된다. 경험이 많은 안화장은 부당주(副堂主)라고도 한다. 안화장은 주로 지미, 떡, 노구메 등 제물 준비와 진설을 도맡는다. 반면에 바깥화장은 희생으로 바칠 ‘지태(소)’의 도살에 관여한다. 특히 당주와 안화장을 보좌하여 온갖 심부름을 비롯하여 지태를 끌어오는 일, 물을 받는 일, 지태를 잡는 일, 지태의 가죽을 그슬리고 닦는 일 등을 맡았다.

당제 비용은 걸립으로 충당했다. 이를 위해 해마다 당제를 앞두고 풍물패가 가가호호를 돌며 성의껏 돈과 곡식을 갹출했다. 마을에서는 “밥은 굶어도 당 추렴은 내야 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비용을 부담하는 일은 외연도에서 절대적인 불문율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섬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당제에 불참하는 가정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이러한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걸립 대신 어촌계의 기금과 희사금, 보령시 보조금으로 약 1,2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충당한다.

제일이 다가오면 먼저 당샘을 품는다. 외연도 동남쪽에 있는 이 샘은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당샘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뚜껑을 덮고 황토를 뿌리면 주민들은 일절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그 전에 미리 사용할 물을 길어다 놓아야 했다. 이즈음 당주와 화장은 광천 장이나 대천장날에 맞추어 제수를 구입하러 장배를 타고 뭍으로 간다. 장배 역시 부정이 없어야 하고, 출항할 때 뱃머리에 ‘상(上)’이라고 쓴 흰색 당기를 부착한다. 예전에 장배가 떠나면 임산부는 외딴곳에 떨어진 해막(解幕)으로 몸을 피했다가 당제를 마친 뒤에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장에서 제수를 구입할 때에도 부정을 엄하게 가린다. 값을 깎거나 흥정을 벌이지 않아야 함은 물론 일단 구입한 물건은 각별히 조심해서 다룬다. 또한 식사를 할 때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는다. 희생으로 사용될 지태는 코가 뚫린 중소를구입하되 잡털이 박히지 않은 수소여야 한다.

제일 아침이 되면 화장은 당제에 사용할 제물을 지게로 운반한다. 아울러 당샘에서 끌어올린 물로 당산 주변과 전횡장군사당을 말끔히 청소하고, 제물을 진설할 제단을 정비한다. 그리고 전횡장군사당, 당산, 전횡장군놀던바위에 각각 술·향·초·생미 등을 진설한다. 제물이 차려지면 당주는 전횡장군신위에 올릴 바지저고리, 당산신위 및 도당신위에 바칠 치마저고리를 감실(龕室, 신주를 모셔두는 장) 위에 놓고 절한다. 이어서 화장은 갈당의 산신제에 올릴 김, 더덕산적, 노구메, 고두메, 찰떡 등을 준비한다. 특히 노구메를 지을 쌀은 싸라기나 부러진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상에다 놓고 일일이 고르는 작업을 거친다. 이때 행여 침이 튀지 않도록 입마개를 쓰고 작업한다. 제물 준비가 마무리되면 다음의 절차에 따라 당제가 진행된다.

  1. 산제(노구제·지미제) : 당제는 산제당에 노구메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물 준비를 마친 당주와 화장은 노구메 지을 쌀과 제물을 들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산제당에 도착하면 화장은 화덕에 불을 지펴 노구메를 짓는다. 이때 당주는 김, 더덕산적, 수저 등을 세개의 제단에 진설하고 제단마다 헌작·재배한다. 이윽고 노구메가 다 되면 중앙 및 좌측, 우측 제단 순으로 진설한다. 노구제는 솥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은 다음 젓가락을 산적 위에 올려놓고 중앙의 제단부터 차례로 재배를 한다. 이때 곁에 있던 징잡이는 한곳의 제사가 끝날 때마다 징을 세 번 울린다. 이어서 당주는 동일한 순서로 세 곳의 제단에 각각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노구제를 마친다.

    당산을 내려온 화장은 당주 집에서 멥쌀가루를 떡시루에 안치고 불을 땐다. 지미는 일종의 절편을 일컫는다. 시루에서 김이 오르면 절구통에 쏟아 놓고 떡메로 쳐서 덩어리가되게 한 다음 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지미를 만든다. 밤 12시가 가까워지면 당주와 화장은 다시 당산에 오른다. 당주는 중앙 제단부터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각각 진설하고 헌작·재배한다. 이어서 당주는 산신께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재배한다. 이와 동일한 절차로 당주는 좌측과 우측 제단에도 각각 제의를 향하며, 세 곳의신위에 제의를 올릴 때마다 징을 울려 마을 사람들에게 제의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 지미제를 마친 당주는 김서방바위에 술,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올린다. 이때에는 절을하지 않는다.

  2. 전횡장군사당제 : 산제가 끝나면 당주와 화장은 전횡장군사당에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진설한다. 사당제는 당산에서의 지미제와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다만 사당 바닥에는 여섯 신위에 대한 제상을 별도로 준비한다.

  3. 희생 : 밤 12시가 지나면 당주와 화장은 목욕한다. 이어서 찹쌀가루와 삶은 팥을 켜켜이 섞어 떡시루에 안치고 불을 지핀다. 이 무렵, 화장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곧 희생으로 바칠 지태의 도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징소리를 신호로 지태의 정수리를 도끼로 힘껏 내리친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지태의 다리를 묶은줄을 잡아당겨 넘어뜨린 뒤 떡메와 도끼로 엉덩이와 정수리를 몇 차례 더 가격한다.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지태의 목을 예리한 칼로 찔러 피를 빼내고 가죽을 벗기고 각 부위를 해체한다. 가장 먼저 잘라내는 것은 성기, 불알, 꼬리이다. 해체된 각 부위는 가마솥에 넣어 익혀서 전횡장군사당에 올린다. 지태가 넘어질 때 땅에 닿은 부분은 부정하다 하여 희생으로 쓰지 않는다. 또한 다리, 간·콩팥·허파·지라·심장·처녑 등 내장, 머리, 뼈, 불알, 꼬리 등은 낱낱이 해체하여 전횡장군사당·전횡장군놀던바위·김서방바위 등에 올린다. 당산에는 희생의 어느 부위도 올리지 않는다. 이는 산신제가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소산제(素山祭)이기 때문이다. 새벽이 되어 각 부위의 진설을 모두 마치면 도마에 술을 한 잔 따르고 절을 한다. 이를 ‘칼판고사’라고 한다. 이후에는 화장도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된다.

  4. 팥떡 올리기 : 2월 보름날 새벽 5시 무렵이 되면 당주와 화장은 팥떡을 지게에 지고 당산에 올라 세 곳의 제단에 각각 떡을 올린 다음 분향과 헌작을 하고 재배한다. 이어서전횡장군놀던바위에도 떡을 올리고 동일한 예를 갖춘 뒤 김서방바위에 떡을 놓는다. 그런 다음 전횡장군사당의 모든 신위에 떡을 올리고 분향·헌작·재배한다.

  5. 당 내리기 : 당 내리기는 당산에 하직인사를 드리고 제물을 수습하는 절차이다. 이와 아울러 하산길에 몇 곳의 제장에 들러 간단하게 고사를 지낸다. 제의행렬이 풍물패를대동하고 전횡장군사당에 도착하면 당주가 먼저 사당의 삼면에 재배한다. 이때 행사에 참석한 내빈과 마을 사람들도 차례로 절을 한다. 당 내리기 행진을 할 때에는 맨 앞에 당기가 서서 길라잡이를 하고, 술병을 든 당주가 그 뒤를 따른다. 이어서 화장 두 명이 지태의 피와 간·허파를 썰어서 섞은 것을 들고 간다. 그 뒤로 제물을 지게에 진 짐꾼,풍물패, 맨뒤에 주민들이 장사진을 친다. 당 내리기 행렬은 당산으로 가서 산제당과 전횡장군놀던바위에 차례로 절을 하고 모든 제물을 뼈 묻는 바위 밑에 넣고 당산 동쪽 으로 내려온다.

  6. 팽나무제와 등장마당제 : 당 내리기 행렬이 초등학교 뒤쪽과 앞쪽의 팽나무에 이르면 각각 제물을 차리고 당주가 헌작 재배한다. 제물은 고두메, 지미, 떡, 삼색실과, 쇠고기 세 덩어리이다. 한편 바닷가에서 안당으로 통하는 길목에 등장마당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당주는 동일한 제물과 절차로 이곳에 제를 지낸다. 예전에 등장마당 두 곳에는 각각돌탑 1기가 세워져 있었다.

  7. 용왕제띠배 퇴송 : 마을 앞 노인복지회관 앞에 14위의 제물을 각각 진설한다. 이 제의는 쇠간, 처녑, 허파 등을 날것으로 썰어서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흥겨운 풍물이울리는 가운데 당주는 14위에 술을 따르고 재배한다. 이어서 제물과 삶은 고기를 쇠피에 섞어 바다에 세 번 뿌리는 것으로 제의를 마친다. 이를 ‘희식’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용왕제를 지낸 뒤 당주가 선주들에게 길지(吉紙)를 나누어 주면 앞을 다투어 뛰어가서 이를 어선의 기관실에 매달아 놓고 풍어와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배고사를 지냈다. 배서낭을 새로 모시는 이 의식을 ‘당맞이’라 한다. 당맞이는 중선배를 부리던 시절에는 외연도를 비롯한 서해안 당제의 보편적인 의례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녀가 주관하는 몇몇 어촌에서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용왕제를 마치면 당주와 화장은 임시로 제작한 띠배에 제물을 실은 다음 띠배를 이끌면서 바다로 나간다. 당주는 뱃머리에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낸 뒤 띠배를 바다에 띄워 퇴송(退送)하는 것으로 한 해의 모든 액운을 추방한다고 믿는다.

  8. 당샘제와 안당제 : 띠배를 배송하고 돌아온 당주 일행은 당기를 앞세우고 풍물패와 함께 안당으로 가다가 당샘에 이르면 제물을 차리고 헌작 재배한다. 이어서 전횡장군사당 남쪽에 있는 팽나무 아래에서 북쪽과 동쪽을 향해 각각 제상을 차리고 안당제를 지낸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의례절차를 마치면 회관에 모여 음복을 겸하여 주연을 베푼다.

의의

산신과 전횡 장군을 치제하는 외연도당제는 어로활동을 매개로 성립된 서해안 당제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의례이다. 무엇보다 전횡은 중국의 인물이면서도 서해안에 좌정한 다양한 인물신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풍어의 신으로 모셔진 존재이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의 임경업 장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전횡과 같은장군신이 서해안 당신앙(堂信仰)의 근간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외연도당제는 서해안 섬마을에서 전승되는 당신앙의 원형적인 모습과 문화상이 잘 녹아 있는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충남 서해도서의 민속연구 (박계홍, 백제연구 4,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73)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5)
史記 (湖山錄, 도서지, 충청남도·한남대 충청문화연구소, 1997)
한국의 마을제당-충청남도 (국립민속박물관, 1998)
외연도 동제 (황의호, 보령문화 17, 보령문화연구회, 2008)
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충청남도문화재대관 2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9)

보령외연도당제

보령외연도당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2-17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외연도에서 해마다 음력 2월 14~15일에 풍어와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례. 외연도당제는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의 무장 전횡(田橫) 장군을 풍어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역사

외연도당제는 충남 서해안 일대에서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당제이다. 1598년(선조 31) 보령의 충청수영에 건립된 「유격장군청덕비(遊擊將軍淸德碑)」에 따르면 전횡은 이미 조선 전기에 풍어신으로 좌정하여 외연도당제의 주신격으로 치제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외연도 당산에 최초로 모셔진 신은 산신이고 전횡은 그 이후 어느 시점에 신격화된 존재라는 점을 상기하면, 외연도당제는 늦어도 조선 초기 또는 그 이전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제나라의 무장으로서 재상의 지위에 오른 전횡은 유방과 같은 시대에 활약한 인물이다. 사마천의『사기(史記)』에는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자 자신을 따르는 500명의 부하들과 바다로 들어가 섬에서 살았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1936년에 건립된 「전공사당기」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려 있다. 그런데 당시 전횡이 피살될 것을 두려워하여숨은 섬이 바로 외연도라고 구전되고 있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서산의 옛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전횡의 외연도 피신설은 이미 고려 말기에 식자층을 중심으로널리 퍼져 있는 속설이었다고 한다. 실제 전횡이 은거한 섬은 외연도가 아니라 중국 산둥반도에 위치한 텐헝섬[田橫島]이다. 그런데도 세간에 외연도로 알려진 것은 지리적인 입지상 제나라와 긴밀한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더욱이 전횡은 한 고조인 유방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생을 마감한 비운의 장수이고, 자신을 따르는 무리 역시 그 소식을 듣고 모두자결을 택하였다. 이러한 전횡과 그 부하들의 의로운 죽음은 연고지로 회자되는 외연도 주민들에게 해원(解寃)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이것은 곧 당제의 주신으로 모셔지는 단초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외연도에서는 음력 4월과 11월에 당제를 올리고, 8월에는 간단하게 노구제를 지냈다. 1970년대에는 세 차례 거행하던 제의를 4월 한 번으로 축소하였고, 1987년에 한때 중단되었던 당제를 부활시키면서 음력 2월 14일로 날짜를 고정했다가 2008년 행사부터 다시 2월 14일로 옮겼다.

내용

제장은 속칭 갈당으로 불리는 당산과 전횡장군사당, 음식을 준비하는 제당 세 곳으로 구성된다. 갈당에는 산제당, 전횡장군놀던바위, 김서방바위가 있다. 산 정상부에 위치한산제당은 커다란 바위 동쪽에 세개의 제단을 활모양[弧形]으로 배치하였다. 전횡장군사당에는 전횡장군신위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당산신위(堂山神位)와 도당신위(都堂神位)를안치하였고, 오른쪽 선반에는 소저아지씨신위(小姐阿只氏神位)를 놓았다. 당제의 준비는 제일(祭日) 일주일 전에 당주(堂主)를 정하는 마을회의로부터 시작된다. 당주는 나이가 지긋하고 당제의 전반적인 절차에 대하여 잘 아는 사람으로 선출하되 집안에 부정이 없고 몸가짐이 정갈해야 한다. 당주가 정해지면 그 집 대문 앞에는 당기(堂旗)를 꽂고 황토 두 무더기를 놓아 외부인의 진입을 막는다. 이때부터 당주는 부정한 것이 눈에 띄지 않도록 두문불출한 채 금기를 지킨다. 당주가 특히 가려야 할 것은 시신, 초상, 제사, 피 등으로 인한 부정이다. 당주와 더불어 당제의 희생과 제물을 담당할화장(火匠)을 뽑는다. 화장은 안화장과 바깥화장으로 구분된다. 경험이 많은 안화장은 부당주(副堂主)라고도 한다. 안화장은 주로 지미, 떡, 노구메 등 제물 준비와 진설을 도맡는다. 반면에 바깥화장은 희생으로 바칠 ‘지태(소)’의 도살에 관여한다. 특히 당주와 안화장을 보좌하여 온갖 심부름을 비롯하여 지태를 끌어오는 일, 물을 받는 일, 지태를 잡는 일, 지태의 가죽을 그슬리고 닦는 일 등을 맡았다. 당제 비용은 걸립으로 충당했다. 이를 위해 해마다 당제를 앞두고 풍물패가 가가호호를 돌며 성의껏 돈과 곡식을 갹출했다. 마을에서는 “밥은 굶어도 당 추렴은 내야 한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비용을 부담하는 일은 외연도에서 절대적인 불문율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섬마을에 교회가 들어오면서 당제에 불참하는 가정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다.이러한 갈등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걸립 대신 어촌계의 기금과 희사금, 보령시 보조금으로 약 1,20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충당한다. 제일이 다가오면 먼저 당샘을 품는다. 외연도 동남쪽에 있는 이 샘은 상수도가 설치되기 전까지 유일한 식수원이었다. 당샘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뚜껑을 덮고 황토를 뿌리면 주민들은 일절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그 전에 미리 사용할 물을 길어다 놓아야 했다. 이즈음 당주와 화장은 광천 장이나 대천장날에 맞추어 제수를 구입하러 장배를 타고 뭍으로 간다. 장배 역시 부정이 없어야 하고, 출항할 때 뱃머리에 ‘상(上)’이라고 쓴 흰색 당기를 부착한다. 예전에 장배가 떠나면 임산부는 외딴곳에 떨어진 해막(解幕)으로 몸을 피했다가 당제를 마친 뒤에야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시장에서 제수를 구입할 때에도 부정을 엄하게 가린다. 값을 깎거나 흥정을 벌이지 않아야 함은 물론 일단 구입한 물건은 각별히 조심해서 다룬다. 또한 식사를 할 때에는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가 들어간 음식을 먹지 않는다. 희생으로 사용될 지태는 코가 뚫린 중소를구입하되 잡털이 박히지 않은 수소여야 한다. 제일 아침이 되면 화장은 당제에 사용할 제물을 지게로 운반한다. 아울러 당샘에서 끌어올린 물로 당산 주변과 전횡장군사당을 말끔히 청소하고, 제물을 진설할 제단을 정비한다. 그리고 전횡장군사당, 당산, 전횡장군놀던바위에 각각 술·향·초·생미 등을 진설한다. 제물이 차려지면 당주는 전횡장군신위에 올릴 바지저고리, 당산신위 및 도당신위에 바칠 치마저고리를 감실(龕室, 신주를 모셔두는 장) 위에 놓고 절한다. 이어서 화장은 갈당의 산신제에 올릴 김, 더덕산적, 노구메, 고두메, 찰떡 등을 준비한다. 특히 노구메를 지을 쌀은 싸라기나 부러진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상에다 놓고 일일이 고르는 작업을 거친다. 이때 행여 침이 튀지 않도록 입마개를 쓰고 작업한다. 제물 준비가 마무리되면 다음의 절차에 따라 당제가 진행된다. 산제(노구제·지미제) : 당제는 산제당에 노구메 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제물 준비를 마친 당주와 화장은 노구메 지을 쌀과 제물을 들고 당산으로 올라간다. 산제당에 도착하면 화장은 화덕에 불을 지펴 노구메를 짓는다. 이때 당주는 김, 더덕산적, 수저 등을 세개의 제단에 진설하고 제단마다 헌작·재배한다. 이윽고 노구메가 다 되면 중앙 및 좌측, 우측 제단 순으로 진설한다. 노구제는 솥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은 다음 젓가락을 산적 위에 올려놓고 중앙의 제단부터 차례로 재배를 한다. 이때 곁에 있던 징잡이는 한곳의 제사가 끝날 때마다 징을 세 번 울린다. 이어서 당주는 동일한 순서로 세 곳의 제단에 각각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노구제를 마친다. 당산을 내려온 화장은 당주 집에서 멥쌀가루를 떡시루에 안치고 불을 땐다. 지미는 일종의 절편을 일컫는다. 시루에서 김이 오르면 절구통에 쏟아 놓고 떡메로 쳐서 덩어리가되게 한 다음 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지미를 만든다. 밤 12시가 가까워지면 당주와 화장은 다시 당산에 오른다. 당주는 중앙 제단부터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각각 진설하고 헌작·재배한다. 이어서 당주는 산신께 마을의 평안을 축원하는 소지를 올리고 재배한다. 이와 동일한 절차로 당주는 좌측과 우측 제단에도 각각 제의를 향하며, 세 곳의신위에 제의를 올릴 때마다 징을 울려 마을 사람들에게 제의 진행 상황을 알려준다. 지미제를 마친 당주는 김서방바위에 술,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올린다. 이때에는 절을하지 않는다. 전횡장군사당제 : 산제가 끝나면 당주와 화장은 전횡장군사당에 지미, 고두메, 삼색실과를 진설한다. 사당제는 당산에서의 지미제와 동일한 절차로 진행한다. 다만 사당 바닥에는 여섯 신위에 대한 제상을 별도로 준비한다. 희생 : 밤 12시가 지나면 당주와 화장은 목욕한다. 이어서 찹쌀가루와 삶은 팥을 켜켜이 섞어 떡시루에 안치고 불을 지핀다. 이 무렵, 화장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곧 희생으로 바칠 지태의 도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징소리를 신호로 지태의 정수리를 도끼로 힘껏 내리친다. 이때 나머지 사람들은 지태의 다리를 묶은줄을 잡아당겨 넘어뜨린 뒤 떡메와 도끼로 엉덩이와 정수리를 몇 차례 더 가격한다. 아직 채 숨이 끊어지지 않은 지태의 목을 예리한 칼로 찔러 피를 빼내고 가죽을 벗기고 각 부위를 해체한다. 가장 먼저 잘라내는 것은 성기, 불알, 꼬리이다. 해체된 각 부위는 가마솥에 넣어 익혀서 전횡장군사당에 올린다. 지태가 넘어질 때 땅에 닿은 부분은 부정하다 하여 희생으로 쓰지 않는다. 또한 다리, 간·콩팥·허파·지라·심장·처녑 등 내장, 머리, 뼈, 불알, 꼬리 등은 낱낱이 해체하여 전횡장군사당·전횡장군놀던바위·김서방바위 등에 올린다. 당산에는 희생의 어느 부위도 올리지 않는다. 이는 산신제가 육류를 사용하지 않는 소산제(素山祭)이기 때문이다. 새벽이 되어 각 부위의 진설을 모두 마치면 도마에 술을 한 잔 따르고 절을 한다. 이를 ‘칼판고사’라고 한다. 이후에는 화장도 고기를 먹는 것이 허용된다. 팥떡 올리기 : 2월 보름날 새벽 5시 무렵이 되면 당주와 화장은 팥떡을 지게에 지고 당산에 올라 세 곳의 제단에 각각 떡을 올린 다음 분향과 헌작을 하고 재배한다. 이어서전횡장군놀던바위에도 떡을 올리고 동일한 예를 갖춘 뒤 김서방바위에 떡을 놓는다. 그런 다음 전횡장군사당의 모든 신위에 떡을 올리고 분향·헌작·재배한다. 당 내리기 : 당 내리기는 당산에 하직인사를 드리고 제물을 수습하는 절차이다. 이와 아울러 하산길에 몇 곳의 제장에 들러 간단하게 고사를 지낸다. 제의행렬이 풍물패를대동하고 전횡장군사당에 도착하면 당주가 먼저 사당의 삼면에 재배한다. 이때 행사에 참석한 내빈과 마을 사람들도 차례로 절을 한다. 당 내리기 행진을 할 때에는 맨 앞에 당기가 서서 길라잡이를 하고, 술병을 든 당주가 그 뒤를 따른다. 이어서 화장 두 명이 지태의 피와 간·허파를 썰어서 섞은 것을 들고 간다. 그 뒤로 제물을 지게에 진 짐꾼,풍물패, 맨뒤에 주민들이 장사진을 친다. 당 내리기 행렬은 당산으로 가서 산제당과 전횡장군놀던바위에 차례로 절을 하고 모든 제물을 뼈 묻는 바위 밑에 넣고 당산 동쪽 으로 내려온다. 팽나무제와 등장마당제 : 당 내리기 행렬이 초등학교 뒤쪽과 앞쪽의 팽나무에 이르면 각각 제물을 차리고 당주가 헌작 재배한다. 제물은 고두메, 지미, 떡, 삼색실과, 쇠고기 세 덩어리이다. 한편 바닷가에서 안당으로 통하는 길목에 등장마당으로 부르는 곳이 있다. 당주는 동일한 제물과 절차로 이곳에 제를 지낸다. 예전에 등장마당 두 곳에는 각각돌탑 1기가 세워져 있었다. 용왕제 및 띠배 퇴송 : 마을 앞 노인복지회관 앞에 14위의 제물을 각각 진설한다. 이 제의는 쇠간, 처녑, 허파 등을 날것으로 썰어서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흥겨운 풍물이울리는 가운데 당주는 14위에 술을 따르고 재배한다. 이어서 제물과 삶은 고기를 쇠피에 섞어 바다에 세 번 뿌리는 것으로 제의를 마친다. 이를 ‘희식’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용왕제를 지낸 뒤 당주가 선주들에게 길지(吉紙)를 나누어 주면 앞을 다투어 뛰어가서 이를 어선의 기관실에 매달아 놓고 풍어와 안전항해를 기원하는 배고사를 지냈다. 배서낭을 새로 모시는 이 의식을 ‘당맞이’라 한다. 당맞이는 중선배를 부리던 시절에는 외연도를 비롯한 서해안 당제의 보편적인 의례였다. 그러나 지금은 무녀가 주관하는 몇몇 어촌에서만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용왕제를 마치면 당주와 화장은 임시로 제작한 띠배에 제물을 실은 다음 띠배를 이끌면서 바다로 나간다. 당주는 뱃머리에 간단하게 제물을 차리고 제를 지낸 뒤 띠배를 바다에 띄워 퇴송(退送)하는 것으로 한 해의 모든 액운을 추방한다고 믿는다. 당샘제와 안당제 : 띠배를 배송하고 돌아온 당주 일행은 당기를 앞세우고 풍물패와 함께 안당으로 가다가 당샘에 이르면 제물을 차리고 헌작 재배한다. 이어서 전횡장군사당 남쪽에 있는 팽나무 아래에서 북쪽과 동쪽을 향해 각각 제상을 차리고 안당제를 지낸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의례절차를 마치면 회관에 모여 음복을 겸하여 주연을 베푼다.

의의

산신과 전횡 장군을 치제하는 외연도당제는 어로활동을 매개로 성립된 서해안 당제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의례이다. 무엇보다 전횡은 중국의 인물이면서도 서해안에 좌정한 다양한 인물신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풍어의 신으로 모셔진 존재이다. 이에 따라 조선 후기의 임경업 장군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전횡과 같은장군신이 서해안 당신앙(堂信仰)의 근간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점에서 외연도당제는 서해안 섬마을에서 전승되는 당신앙의 원형적인 모습과 문화상이 잘 녹아 있는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참조

보령외연도전횡장군사당전횡장군칼판고사

참고문헌

충남 서해도서의 민속연구 (박계홍, 백제연구 4, 충남대학교백제연구소, 1973)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남 (문화공보부문화재관리국, 1975)史記 (湖山錄, 도서지, 충청남도·한남대 충청문화연구소, 1997)한국의 마을제당-충청남도 (국립민속박물관, 1998)외연도 동제 (황의호, 보령문화 17, 보령문화연구회, 2008)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충청남도문화재대관 2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