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일국사

한자명

梵日國師/泛日國師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신

집필자 황루시(黃縷詩)
갱신일 2018-11-30

정의

신라 말의 선승(禪僧). 범일국사(810~889)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대관령국사성황’으로 신앙되고 있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 지역의 수호신으로, 해마다 강릉단오제를 통해 제의를 받는다.

내용

범일은 신라 헌덕왕 2년(810), 강릉 학산에서 태어나 진성여왕 3년(889) 강릉 굴산사에서 입적하였다. 속성(俗姓)은 계림(鷄林) 김씨이고, 조부는 명주도독 겸 평찰을 지낸 술원(述元)이다. 어머니의 성은 문(文)씨로 강릉에 세거한 호문(豪門) 출신이다. 범일은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경주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흥덕왕 6년(831)에 입당(入唐)하여 선종(禪宗)을 계승하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문성왕 13년(851)에 당시 명주도독 김공이 청하여 굴산사 주지로 오게 되고 그 후 40여 년간 영동 지역에 선불교를 퍼뜨리는 활동을 하였다.

범일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로, 동해 삼화사(三和寺)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神福寺)도 건립했다. 당시 영동 지역의 사찰은 신라 왕실을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신앙되었던 교학불교에서 선학불교로 전환되었다. 그 중심이 바로 범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71년에는 경문왕, 880년에는 헌강왕이 각각 범일에게 국사(國師)로 의봉(擬封)하여 청했으나 범일은 나가지 않았다. 신라 왕실이 신앙한 교종과 대립되는 위치에서 범일은 지방 호족세력과 결합하여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범일국사는 강릉단오제를 하는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제의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무당굿으로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시고 소원을 빈다. 대관령 국사성황은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으로 인식된다. 실존했던 승려가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좌정하게 된 시기나 경위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강릉단오제의 연원으로 935년 왕순식(王順式)이 왕건(王建, 877~943)을 도와 전쟁에 나가면서 대관령에서 제사 지낸 기록을 들고 있다. 이는 범일이 신라 왕실과 대립하면서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려 건국에 도움을 준 시기와 가깝다. 강릉 지역에는 범일의 신성화된 탄생담이 전승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산의 양갓집 규수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하여 몰래 뒷산 학바위에 버렸다. 며칠 뒤에 가보니 학이 붉은 구슬을 입에서 내어 먹이면서 돌보고 있었다. 하늘이 아는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집에 데려와 길렀다. 후에 당(唐)나라에 수학하여 범일국사라는 고승이 되었고, 죽은 뒤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이 되었다. 범일의 탄생담은 태양을 숭배하는 천부수모(天父水母)형 신화구조의 주몽신화와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범일은 조선조 강릉시내 대성황사에서 모신 12성황 중 한 분이기도 했다. 강릉단오제는 지역 출신의 인물을 성황으로 모심으로써 역사를 반영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기능을 지녔다.

참고문헌

강릉단오굿 (김선풍, 열화당, 1987)
조선민속지 (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3)
완역 증수 임영지 (강릉문화원, 1997)
강릉국사성황제와 향촌사회의 변화 (이규대, 역사민속학 7, 한국역사민속학회, 1998)
강릉단오제 백서 (강릉문화원, 1999)
강릉단오제의 전통성과 지속성 (황루시, 역사민속학 9, 학국역사민속학회, 1999)

범일국사

범일국사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신

집필자 황루시(黃縷詩)
갱신일 2018-11-30

정의

신라 말의 선승(禪僧). 범일국사(810~889)는 강릉단오제의 주신인 ‘대관령국사성황’으로 신앙되고 있다. 강릉을 비롯한 영동 지역의 수호신으로, 해마다 강릉단오제를 통해 제의를 받는다.

내용

범일은 신라 헌덕왕 2년(810), 강릉 학산에서 태어나 진성여왕 3년(889) 강릉 굴산사에서 입적하였다. 속성(俗姓)은 계림(鷄林) 김씨이고, 조부는 명주도독 겸 평찰을 지낸 술원(述元)이다. 어머니의 성은 문(文)씨로 강릉에 세거한 호문(豪門) 출신이다. 범일은 15세에 출가하여 20세에 경주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후 흥덕왕 6년(831)에 입당(入唐)하여 선종(禪宗)을 계승하고 문성왕 9년(847)에 귀국하였다. 그리고 문성왕 13년(851)에 당시 명주도독 김공이 청하여 굴산사 주지로 오게 되고 그 후 40여 년간 영동 지역에 선불교를 퍼뜨리는 활동을 하였다. 범일은 신라 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사굴산파의 창시자로, 동해 삼화사(三和寺)를 세우고 양양의 낙산사(洛山寺)를 중건했으며 강릉 신복사(神福寺)도 건립했다. 당시 영동 지역의 사찰은 신라 왕실을 비롯하여 전통적으로 신앙되었던 교학불교에서 선학불교로 전환되었다. 그 중심이 바로 범일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871년에는 경문왕, 880년에는 헌강왕이 각각 범일에게 국사(國師)로 의봉(擬封)하여 청했으나 범일은 나가지 않았다. 신라 왕실이 신앙한 교종과 대립되는 위치에서 범일은 지방 호족세력과 결합하여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범일국사는 강릉단오제를 하는 동안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제의의 대상이 된다.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무당굿으로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시고 소원을 빈다. 대관령 국사성황은 사람들의 삶을 보살피고 자연재해로부터 보호해 주는 신으로 인식된다. 실존했던 승려가 대관령 국사성황으로 좌정하게 된 시기나 경위는 뚜렷하지 않다. 다만 강릉단오제의 연원으로 935년 왕순식(王順式)이 왕건(王建, 877~943)을 도와 전쟁에 나가면서 대관령에서 제사 지낸 기록을 들고 있다. 이는 범일이 신라 왕실과 대립하면서 영동 지역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고려 건국에 도움을 준 시기와 가깝다. 강릉 지역에는 범일의 신성화된 탄생담이 전승되고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학산의 양갓집 규수가 우물에 물을 길으러 갔다. 바가지에 물을 뜨니 해가 담겼다. 처녀는 그 물을 마시고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하여 몰래 뒷산 학바위에 버렸다. 며칠 뒤에 가보니 학이 붉은 구슬을 입에서 내어 먹이면서 돌보고 있었다. 하늘이 아는 자손이라고 생각하여 다시 집에 데려와 길렀다. 후에 당(唐)나라에 수학하여 범일국사라는 고승이 되었고, 죽은 뒤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이 되었다. 범일의 탄생담은 태양을 숭배하는 천부수모(天父水母)형 신화구조의 주몽신화와 상당 부분 일치하고 있다. 범일은 조선조 강릉시내 대성황사에서 모신 12성황 중 한 분이기도 했다. 강릉단오제는 지역 출신의 인물을 성황으로 모심으로써 역사를 반영하고 공동체의식을 강화하는 기능을 지녔다.

참고문헌

강릉단오굿 (김선풍, 열화당, 1987)조선민속지 (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3)완역 증수 임영지 (강릉문화원, 1997)강릉국사성황제와 향촌사회의 변화 (이규대, 역사민속학 7, 한국역사민속학회, 1998)강릉단오제 백서 (강릉문화원, 1999)강릉단오제의 전통성과 지속성 (황루시, 역사민속학 9, 학국역사민속학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