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무덤(饭墓)

한자명

饭墓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용어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경상남도 지역에서 동제를 지내고 나서 제사에 올린 밥(메)을 묻는 구덩이. 일부 지역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난 뒤 밥무덤에도 제사를 지낸다.

어원

‘밥무덤’의 어원은 ‘밥’을 일정한 자리에 ‘묻었기’에 생긴 말로, ‘밥+무덤’에서 비롯된 합성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밥무덤의 다른 이름으로는 ‘밥구덩이’, ‘밥구덕’, ‘밥꾸디’ ‘밥돌’ 등이 있다. ‘밥구덩이’는 ‘밥+구덩이’의 형태로서 밥을 구덩이에 넣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밥구덕’은 ‘밥+구덕’의 형태로, ‘구덕’은 ‘구덩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즉 ‘구덩이’를 줄여 ‘구덕’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밥꾸디’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구덩이’를 줄여서 ‘구디’ 또는 ‘꾸디’라발음하기도 한다. ‘밥돌’은 ‘밥+돌’의 형태로 앞의 형식과는 조금 다르게 생산된 말이다. 즉 밥을 집어넣고 덮개돌로 눌러 두기 때문에 밥과 돌을 따와서 밥돌’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드물게 ‘흙무덤’(사천시 사남시화전리) 또는 ‘흙무더기’(창선면 오룡리)라고 하는 데도 있다. ‘흙무덤’은 흙을 묘처럼 봉분을 만들어 여기에 밥을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흙무더기’는 일정한 공간에 흙을 모아 무더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밥을 묻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태

밥무덤의 위치는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나 마을에서 정갈한 곳이라 여겨지는 곳, 마을의 동서남북의 끝 등 적당한 자리에 있다. 옛날에는 밥을 땅에 바로 묻었으나 밥무덤을 신성시하여 밥을 묻을 수 있는 구조물을 제단처럼 만들어 거기다가 밥을 묻는 곳도 있다.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의 밥무덤은 마을 중앙에 3층탑 모양의 밥무덤 구조물이 설치되어있고, 동서쪽에 있는 돌담 벽에 감실을 만들어 밥무덤으로 쓰고 있다. 경남 남해군 상주 대량에는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의 원형으로 돌담을 쌓아 만든 구조물안에 밥을 묻는다. 창선면의 오룡마을에서는 마을회관 마당에 시멘트로 상자형의 흙무더기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 밥을 묻는다.

밥무덤은 구덩이와 황토, 묻는 밥, 덮개돌로 구성된다. 밥을 묻기 위한 장치이므로 땅을 파야 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구덩이의 크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직경약 40~50㎝의 원형이며 깊이는 30㎝ 정도로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덩이를 팔 때에는 삽이나 괭이를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도끼를 이용한다. 이곳 사람들은 밥을 지고지순한제물로 여기기 때문에 밭을 갈거나 거름을 퍼 나르는 농기구인 삽이나 괭이를 이용할 수 없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의 자리를 파는 데 깨끗하지 못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나무를 쪼갤 때 쓰는 도끼는 깨끗하고, 날이 날카로워서 잡귀잡신이 미리 겁을 먹고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밥을 묻기 전에 미리 구덩이를 파 놓고 산에서 금방 채취한 붉은 색깔의 신선한 황토를 깔고 밥을 넣은 다음 다시 황토를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넓적한 덮개돌을 덮는다. 그 이후에는 절대로 건드리지않는다.

내용

밥을 묻을 때에는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 둔다. 이는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이 적어 벼농사가 어려운 남해 섬 지역에서는 쌀밥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귀한 주식이기 때문에 예부터 무척 귀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넣는것은 마을을 지켜 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 즉 지모신(地母神)에게 밥을 드림으로써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그 몇 십 배 또는 몇 백 배의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의 네 방위 끝에 밥을 묻어 방위신을 위로하고, 생명의 근원인 밥의 힘으로써 외부로부터 범접하는 악귀나 부정한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지역사례

밥무덤에 밥을 묻는 제의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동제나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거기에 쓴 밥을 인근의 밥구덩이에 묻는 경우, 밥무덤에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한 밥을 묻는 경우, 이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이행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사례를 보면 경남 남해군의 봉화, 내산, 숙호, 대지포, 선구와 창선면의 오룡 등지의 당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 근처에 있는 밥무덤에 밥을 묻는다. 이 가운데 오룡마을의 밥무덤은 다섯 곳이나 된다. 마을회관 마당의 밥무덤, 동쪽의 숲당산에 있는 돌탑 앞의 밥무덤, 서쪽 산자락의 돌탑 앞의 밥무덤, 마을 남쪽 끝과 북쪽 끝의 밥무덤이 그것이다. 오룡마을에서는 아직도 밥무덤 제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 일은 제관인 동수(洞首, 이장)가 맡아서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남해군의 가천·대량·창선·오룡의 중앙 흙무더기, 사천시 화전리의 사례를 들 수있다. 가천마을에서는 10월 보름날 저녁에 밥무덤 앞에서 동제를 지내고 거기에 쓴 밥을 바로 밥무덤에 묻는다. 밥무덤이 당산목 구실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마을에는 밥무덤이 세 군데 있다. 마을 한가운데 네거리에 만들어 놓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 안에 밥무덤이 있다. 조형물의 크기는 밑변이 180㎝, 높이가 162㎝나 된다. 이 밖에 마을의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밥무덤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것은 모두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밥을 묻어 둔다. 밥무덤의 조형물을 만들기 전(1975년)까지는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그 옆의 당산나무 아래에 밥을 묻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제사를 지내기 앞서 밥무덤 양쪽에 볏짚 7~8개를 묶어 세워 놓는다. 제사 뒤에는 밥무덤 주위에 목화씨와 오곡을 뿌리며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요즘은목화씨를 구하기가 어렵고, 오곡을 구하기도 번거로워서 다섯 장의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동제를 지내기 전에 각 가정에서는 개인적으로 함지에 메·국·떡·정화수등 제물을 차려 밥무덤 앞에 갖다 놓고 개인제를 지낸다.

대량마을에서는 먼저 뒷산 중턱의 산신에게 가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밥을 묻은 다음 마을로 내려와 돌을 쌓아 만든 밥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때에는 제수를 성대히차린다. 독축하고 소지를 올리며, 밥무덤 둘레에 목화씨와 오곡을 흩어 뿌린다. 또 당산나무 가지에 마른 명태를 짚으로 싸서 매달아 둔다. 이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당산신이흠향하기를 바라는 뜻이 있으며, 바닷고기의 풍요를 비는 의미도 있다. 이곳에서도 가천마을처럼 각 가정에서 제물을 차려와 개인제를 드리기도 한다. 밥무덤의 크기는 가로147㎝, 세로 100㎝, 높이 100㎝ 정도나 된다.

창선면 오룡리에서는 마을회관 마당의 흙무더기에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밥을 묻는다. 마을의 다섯 곳 밥무덤 가운데 이곳이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제물을 많이 차린다고 한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화전마을에서는 봉분을 쌓은 밥무덤에 바로 제사를 지낸다. 마을 한가운데 도로가의 밭머리에 묘를 만들고 잔디를 입혔으며, 그 앞에는 상석도 놓았다. 상석의 전면에는 ‘화전천룡신제단(花田天龍神祭壇)’이라 각자되어 있다. 원래 마을 안쪽의 연못가에 할배·할매 당산목과 밥무덤이 있었지만 나무가 오래되어 고사하는 바람에두 신위를 이곳으로 옮겨와 가상으로 두 신을 합묘하여 봉분을 만들었다. 다른 곳과는 드물게 무덤의 상봉에 밥무덤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 봉분을 ‘흙무덤’이라 부르기도한다. 상석의 오른쪽 측면에는 봉분이 만들어진 내력을 기록해 두었다.

세 번째 사례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 무림마을의 경우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먼저 뒷산자락에 있는 당산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는 오악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어서밥 다섯 그릇, 국 다섯 그릇만 차린다고 한다. 당산 제사 뒤에 밥을 묻고 마을로 내려와 동네 들머리에 있는 밥무덤에 가서 다시 제사를 지내고 밥을 묻는다. 이곳에서는 제사의 절차를 중히 여겨 초헌·독축·아헌·종헌 하고 나서 다시 일동 사배하고 끝낸다. 이 마을에서는 제사를 관리하는 제관을 ‘판주’라고 하며 이 사람이 모든 일을 주관한다.

이곳의 밥무덤은 원래 마을 들머리의 풀밭에 있었다. 풀밭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야제(野祭)’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곳에 한 변이 2.5m 길이의 정삼각형 모양으로 높이 약 45㎝의 단을 만들어 그 가운데에 밥을 묻었다. 삼각형의 한 모서리를 개방하여 그곳을 출입구처럼 여겼다. 야제를 지내고 나서 목화씨와 오곡의 씨를 밥무덤 주위에 뿌리고 소지를 올리며 풍농을 기원하였다. 이 제사에는 부정이 없는 사람이면 마을 사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야제를 지내던 옛날의 밥무덤은 몇 년 전의 구획정리로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회관 앞마당에 높이 약 60㎝의 단을 쌓아 화단 모양의 새 밥무덤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두었다. 요새는 10월 보름에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내고 밥무덤에 밥만 묻는다고 한다. 남해군 서면 작장리 작장마을에서도 야제를 지낸다.

밥무덤에 밥을 묻을 때 밥만 단독으로 묻는 경우도 있고, 밥과 생선·과일 등 다른 제물도 조금씩 곁들여 함께 묻는 경우도 있다.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노량리·문의리·문항리·비난리·진목리와 사천시 초양도가 그렇다. 이는 처음에는 밥만 묻던 것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약간 변화되어 밥에다 다른 제물도 곁들인 경우이다.

다른 곳과 드물게 동제 하루 전날 미리 밥을 묻는 곳도 있다. 남해의 설천면 진목마을에서는 하루 전날 새벽에 밥을 묻는다. 설천면 문항리 문항마을, 비난리 정태마을 등도 그러하다. 정태마을에서는 밥과 제물을 묻고, 목화씨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내산과 대지포, 상주면 금포, 남해읍 서변동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밥을 묻고 난 뒤 당산나무에 쳐진 금줄에 쇠뼈를 매단다. 쇠뼈를 매다는 것은 쇠뼈를 희생으로 바쳐서 오랫동안 신이 흠향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되지만, 쇠뼈로 악귀나 잡귀잡신을 위협하여 그들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미도 있다.

요즘은 제사를 맡아 지낼 사람이 없어 주로 마을 이장이 주관하지만 옛날에는 생기복덕한 사람을 가려 뽑아 그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숱한 금기를 지켜가면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예전에는 풍물도 치고 횃불놀이도 하였으나 요즘은 생략한다. 간혹 신이 나면 간단히 풍물을 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처에 동제 또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많지만 밥무덤 제사를 지내거나 밥을 묻는 제의를 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예부터 이런 제의가 전승되고 있는 곳으로는 남해군 본섬과 창선도, 남해군과 사천시 사이 해협에 있는 섬인 신수도·초양도·마도·늑도와 사천시의 사남면 화전리·용현면 용치리·곤양면 환덕리 정도이다. 사천시의 경우 앞에 든 섬을 제외하고 현재 사남면 화전에서만 밥무덤제를 지내고 있다.

특징

남해안 지역에서 유독 밥무덤 제사를 지내 오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논이 없어 쌀이 귀한 지역이어서 쌀에 대한 애착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신앙으로 변모하여 오늘날까지전승되고 있는 특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밥을 정갈한 땅속에 묻었지만 가천·대량·오룡 등지에서는 이를 신성시하여 밥무덤의 실체를 시각적으로 격상시켜 보이기 위해 구조물을 만드는 등 밥에 대한 신앙심이 지극함을 보여 주고 있다. 가천에서는 자연석을 쌓아 삼층탑 모양으로 만들었고, 대량에서는 돌을 쌓아 안락의자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무림에서는 단을 쌓아 화단처럼 만들었고, 화전에서는 봉분을 쌓아 묘처럼 만들었다.

무림에서는 당산과 밥무덤에 제를 지내기 전에 앞서 소금을 뿌려 잡귀를 몰아낸 다음 금줄을 친다. 밥무덤을 팔 때에는 삽이나 호미·괭이는 더럽다하여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도끼를 사용한다. 밥을 묻고 나서 가천, 소량, 대량, 무림, 정태 등지에서는 목화씨와 오곡을 뿌리고 풍농을 빌었다. 가천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밥무덤 옆에 볏짚 7~8개를 묶어서 양 옆에 세워 둔다. 이것도 벼농사의 풍농을 빌기 위한 모의행위이다. 그리고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안과태평과 각 가정의 염원 달성을 빌었다. 가천과 대량에서는 당제를 지내기 전 밥무덤 앞에 개인적으로 제물을 차려 놓고 개인제를 지내기도 한다.

대량에서는 당산제를 지낸 뒤 당산목 가지에 마른 명태를 짚으로 싸서 매달아 두기도 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제사 후 쇠뼈를 금줄에 매달아 둔다. 소량의 당산이 있는 언덕에는 그 입구에 커다란 신대 두 개를 세우고 금줄을 쳐 두었다. 이곳이 신역이므로 평상시에도 잡인의 접근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당산목 아래에는 밥무덤이 있고, 산에서 채취해 온 붉은 황토 한 부대를 밥무덤 옆에 놓았다. 선구마을에서는 밥무덤에 작은 대나무 네 개를 세우고 왼새끼 금줄을 쳤는데, 붉은 고추를 매달아 놓았다. 고추의 붉은 색깔과 매운 독기로 잡귀잡신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이다.

참고문헌

남해안의 민속신앙 (하종갑, 우석, 1984), 남해의 얼 (남해군, 1985), 향토문화지 (경상남도, 1989), 삼천포의 동제 연구 (정인진, 마루문학 3, 마루문학회, 1990), 남해군지 (남해군지편찬위원회, 1994), 향토의 민속문화 (강용권,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1996), 주강현의 우리문화 기행 (주강현, 해냄, 1997), 경남의 막돌탑과 선돌 (김봉우, 집문당, 2000), 경상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이색마을 이색기행 (이용한, 실천문학사, 2002)

밥무덤

밥무덤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용어

집필자 배도식(裵桃植)

정의

경상남도 지역에서 동제를 지내고 나서 제사에 올린 밥(메)을 묻는 구덩이. 일부 지역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난 뒤 밥무덤에도 제사를 지낸다.

어원

‘밥무덤’의 어원은 ‘밥’을 일정한 자리에 ‘묻었기’에 생긴 말로, ‘밥+무덤’에서 비롯된 합성어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밥무덤의 다른 이름으로는 ‘밥구덩이’, ‘밥구덕’, ‘밥꾸디’ ‘밥돌’ 등이 있다. ‘밥구덩이’는 ‘밥+구덩이’의 형태로서 밥을 구덩이에 넣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밥구덕’은 ‘밥+구덕’의 형태로, ‘구덕’은 ‘구덩이’의 경상도 사투리다. 즉 ‘구덩이’를 줄여 ‘구덕’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밥꾸디’는 경상도 사투리에서 ‘구덩이’를 줄여서 ‘구디’ 또는 ‘꾸디’라발음하기도 한다. ‘밥돌’은 ‘밥+돌’의 형태로 앞의 형식과는 조금 다르게 생산된 말이다. 즉 밥을 집어넣고 덮개돌로 눌러 두기 때문에 밥과 돌을 따와서 밥돌’이라 이름 붙인 것이다. 드물게 ‘흙무덤’(사천시 사남시화전리) 또는 ‘흙무더기’(창선면 오룡리)라고 하는 데도 있다. ‘흙무덤’은 흙을 묘처럼 봉분을 만들어 여기에 밥을 묻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흙무더기’는 일정한 공간에 흙을 모아 무더기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밥을 묻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형태

밥무덤의 위치는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나 마을에서 정갈한 곳이라 여겨지는 곳, 마을의 동서남북의 끝 등 적당한 자리에 있다. 옛날에는 밥을 땅에 바로 묻었으나 밥무덤을 신성시하여 밥을 묻을 수 있는 구조물을 제단처럼 만들어 거기다가 밥을 묻는 곳도 있다. 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의 밥무덤은 마을 중앙에 3층탑 모양의 밥무덤 구조물이 설치되어있고, 동서쪽에 있는 돌담 벽에 감실을 만들어 밥무덤으로 쓰고 있다. 경남 남해군 상주 대량에는 마을 한 가운데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의 원형으로 돌담을 쌓아 만든 구조물안에 밥을 묻는다. 창선면의 오룡마을에서는 마을회관 마당에 시멘트로 상자형의 흙무더기를 만들어 놓고 거기다 밥을 묻는다. 밥무덤은 구덩이와 황토, 묻는 밥, 덮개돌로 구성된다. 밥을 묻기 위한 장치이므로 땅을 파야 하는 것이 선결 문제이다. 구덩이의 크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직경약 40~50㎝의 원형이며 깊이는 30㎝ 정도로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 구덩이를 팔 때에는 삽이나 괭이를 이용하지 않고 반드시 도끼를 이용한다. 이곳 사람들은 밥을 지고지순한제물로 여기기 때문에 밭을 갈거나 거름을 퍼 나르는 농기구인 삽이나 괭이를 이용할 수 없다. 신에게 바치는 제물의 자리를 파는 데 깨끗하지 못한 도구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비해 나무를 쪼갤 때 쓰는 도끼는 깨끗하고, 날이 날카로워서 잡귀잡신이 미리 겁을 먹고 범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밥을 묻기 전에 미리 구덩이를 파 놓고 산에서 금방 채취한 붉은 색깔의 신선한 황토를 깔고 밥을 넣은 다음 다시 황토를 덮는다. 그리고 그 위에 넓적한 덮개돌을 덮는다. 그 이후에는 절대로 건드리지않는다.

내용

밥을 묻을 때에는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덮어 둔다. 이는 제물로 넣은 밥을 쥐,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치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바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이 적어 벼농사가 어려운 남해 섬 지역에서는 쌀밥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귀한 주식이기 때문에 예부터 무척 귀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넣는것은 마을을 지켜 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 즉 지모신(地母神)에게 밥을 드림으로써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그 몇 십 배 또는 몇 백 배의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마을의 네 방위 끝에 밥을 묻어 방위신을 위로하고, 생명의 근원인 밥의 힘으로써 외부로부터 범접하는 악귀나 부정한 것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다고 한다.

지역사례

밥무덤에 밥을 묻는 제의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이루어진다. 동제나 당산제를 지내고 나서 거기에 쓴 밥을 인근의 밥구덩이에 묻는 경우, 밥무덤에 제물을 차리고 절을 한 밥을 묻는 경우, 이 두 가지를 복합적으로 이행하는 경우이다. 첫 번째 사례를 보면 경남 남해군의 봉화, 내산, 숙호, 대지포, 선구와 창선면의 오룡 등지의 당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 그 근처에 있는 밥무덤에 밥을 묻는다. 이 가운데 오룡마을의 밥무덤은 다섯 곳이나 된다. 마을회관 마당의 밥무덤, 동쪽의 숲당산에 있는 돌탑 앞의 밥무덤, 서쪽 산자락의 돌탑 앞의 밥무덤, 마을 남쪽 끝과 북쪽 끝의 밥무덤이 그것이다. 오룡마을에서는 아직도 밥무덤 제의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 이 일은 제관인 동수(洞首, 이장)가 맡아서 한다. 두 번째 사례는 남해군의 가천·대량·창선·오룡의 중앙 흙무더기, 사천시 화전리의 사례를 들 수있다. 가천마을에서는 10월 보름날 저녁에 밥무덤 앞에서 동제를 지내고 거기에 쓴 밥을 바로 밥무덤에 묻는다. 밥무덤이 당산목 구실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마을에는 밥무덤이 세 군데 있다. 마을 한가운데 네거리에 만들어 놓은 삼층탑 모양의 조형물 안에 밥무덤이 있다. 조형물의 크기는 밑변이 180㎝, 높이가 162㎝나 된다. 이 밖에 마을의 동쪽 언덕과 서쪽 언덕에 밥무덤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것은 모두 돌을 쌓아 감실처럼 만든 것으로 그 안에 밥을 묻어 둔다. 밥무덤의 조형물을 만들기 전(1975년)까지는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낸 다음 그 옆의 당산나무 아래에 밥을 묻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제사를 지내기 앞서 밥무덤 양쪽에 볏짚 7~8개를 묶어 세워 놓는다. 제사 뒤에는 밥무덤 주위에 목화씨와 오곡을 뿌리며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요즘은목화씨를 구하기가 어렵고, 오곡을 구하기도 번거로워서 다섯 장의 소지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동제를 지내기 전에 각 가정에서는 개인적으로 함지에 메·국·떡·정화수등 제물을 차려 밥무덤 앞에 갖다 놓고 개인제를 지낸다. 대량마을에서는 먼저 뒷산 중턱의 산신에게 가서 간단한 제사를 드리고 밥을 묻은 다음 마을로 내려와 돌을 쌓아 만든 밥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때에는 제수를 성대히차린다. 독축하고 소지를 올리며, 밥무덤 둘레에 목화씨와 오곡을 흩어 뿌린다. 또 당산나무 가지에 마른 명태를 짚으로 싸서 매달아 둔다. 이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당산신이흠향하기를 바라는 뜻이 있으며, 바닷고기의 풍요를 비는 의미도 있다. 이곳에서도 가천마을처럼 각 가정에서 제물을 차려와 개인제를 드리기도 한다. 밥무덤의 크기는 가로147㎝, 세로 100㎝, 높이 100㎝ 정도나 된다. 창선면 오룡리에서는 마을회관 마당의 흙무더기에 가장 먼저 제사를 드리고 밥을 묻는다. 마을의 다섯 곳 밥무덤 가운데 이곳이 가장 으뜸이기 때문에 제물을 많이 차린다고 한다. 경남 사천시 사남면 화전마을에서는 봉분을 쌓은 밥무덤에 바로 제사를 지낸다. 마을 한가운데 도로가의 밭머리에 묘를 만들고 잔디를 입혔으며, 그 앞에는 상석도 놓았다. 상석의 전면에는 ‘화전천룡신제단(花田天龍神祭壇)’이라 각자되어 있다. 원래 마을 안쪽의 연못가에 할배·할매 당산목과 밥무덤이 있었지만 나무가 오래되어 고사하는 바람에두 신위를 이곳으로 옮겨와 가상으로 두 신을 합묘하여 봉분을 만들었다. 다른 곳과는 드물게 무덤의 상봉에 밥무덤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 봉분을 ‘흙무덤’이라 부르기도한다. 상석의 오른쪽 측면에는 봉분이 만들어진 내력을 기록해 두었다. 세 번째 사례는 경남 남해군 이동면 무림마을의 경우이다. 이곳에서는 가장 먼저 뒷산자락에 있는 당산에 가서 제사를 지낸다. 당산제는 오악산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어서밥 다섯 그릇, 국 다섯 그릇만 차린다고 한다. 당산 제사 뒤에 밥을 묻고 마을로 내려와 동네 들머리에 있는 밥무덤에 가서 다시 제사를 지내고 밥을 묻는다. 이곳에서는 제사의 절차를 중히 여겨 초헌·독축·아헌·종헌 하고 나서 다시 일동 사배하고 끝낸다. 이 마을에서는 제사를 관리하는 제관을 ‘판주’라고 하며 이 사람이 모든 일을 주관한다. 이곳의 밥무덤은 원래 마을 들머리의 풀밭에 있었다. 풀밭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야제(野祭)’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곳에 한 변이 2.5m 길이의 정삼각형 모양으로 높이 약 45㎝의 단을 만들어 그 가운데에 밥을 묻었다. 삼각형의 한 모서리를 개방하여 그곳을 출입구처럼 여겼다. 야제를 지내고 나서 목화씨와 오곡의 씨를 밥무덤 주위에 뿌리고 소지를 올리며 풍농을 기원하였다. 이 제사에는 부정이 없는 사람이면 마을 사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야제를 지내던 옛날의 밥무덤은 몇 년 전의 구획정리로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회관 앞마당에 높이 약 60㎝의 단을 쌓아 화단 모양의 새 밥무덤을 큼지막하게 만들어 두었다. 요새는 10월 보름에 마을회관에서 제사를 지내고 밥무덤에 밥만 묻는다고 한다. 남해군 서면 작장리 작장마을에서도 야제를 지낸다. 밥무덤에 밥을 묻을 때 밥만 단독으로 묻는 경우도 있고, 밥과 생선·과일 등 다른 제물도 조금씩 곁들여 함께 묻는 경우도 있다. 남해군 설천면 덕신리·노량리·문의리·문항리·비난리·진목리와 사천시 초양도가 그렇다. 이는 처음에는 밥만 묻던 것에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약간 변화되어 밥에다 다른 제물도 곁들인 경우이다. 다른 곳과 드물게 동제 하루 전날 미리 밥을 묻는 곳도 있다. 남해의 설천면 진목마을에서는 하루 전날 새벽에 밥을 묻는다. 설천면 문항리 문항마을, 비난리 정태마을 등도 그러하다. 정태마을에서는 밥과 제물을 묻고, 목화씨를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남해군 삼동면 내산과 대지포, 상주면 금포, 남해읍 서변동에서는 당산제를 지내고 밥을 묻고 난 뒤 당산나무에 쳐진 금줄에 쇠뼈를 매단다. 쇠뼈를 매다는 것은 쇠뼈를 희생으로 바쳐서 오랫동안 신이 흠향하도록 배려하는 것도 되지만, 쇠뼈로 악귀나 잡귀잡신을 위협하여 그들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미도 있다. 요즘은 제사를 맡아 지낼 사람이 없어 주로 마을 이장이 주관하지만 옛날에는 생기복덕한 사람을 가려 뽑아 그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숱한 금기를 지켜가면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였다. 제의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예전에는 풍물도 치고 횃불놀이도 하였으나 요즘은 생략한다. 간혹 신이 나면 간단히 풍물을 치기도 한다. 우리나라 도처에 동제 또는 당산제를 지내는 곳은 많지만 밥무덤 제사를 지내거나 밥을 묻는 제의를 행하는 곳은 많지 않다. 예부터 이런 제의가 전승되고 있는 곳으로는 남해군 본섬과 창선도, 남해군과 사천시 사이 해협에 있는 섬인 신수도·초양도·마도·늑도와 사천시의 사남면 화전리·용현면 용치리·곤양면 환덕리 정도이다. 사천시의 경우 앞에 든 섬을 제외하고 현재 사남면 화전에서만 밥무덤제를 지내고 있다.

특징

남해안 지역에서 유독 밥무덤 제사를 지내 오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논이 없어 쌀이 귀한 지역이어서 쌀에 대한 애착과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신앙으로 변모하여 오늘날까지전승되고 있는 특수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옛날에는 밥을 정갈한 땅속에 묻었지만 가천·대량·오룡 등지에서는 이를 신성시하여 밥무덤의 실체를 시각적으로 격상시켜 보이기 위해 구조물을 만드는 등 밥에 대한 신앙심이 지극함을 보여 주고 있다. 가천에서는 자연석을 쌓아 삼층탑 모양으로 만들었고, 대량에서는 돌을 쌓아 안락의자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무림에서는 단을 쌓아 화단처럼 만들었고, 화전에서는 봉분을 쌓아 묘처럼 만들었다. 무림에서는 당산과 밥무덤에 제를 지내기 전에 앞서 소금을 뿌려 잡귀를 몰아낸 다음 금줄을 친다. 밥무덤을 팔 때에는 삽이나 호미·괭이는 더럽다하여 사용하지 않고, 반드시 도끼를 사용한다. 밥을 묻고 나서 가천, 소량, 대량, 무림, 정태 등지에서는 목화씨와 오곡을 뿌리고 풍농을 빌었다. 가천에서는 당산제를 지낼 때 밥무덤 옆에 볏짚 7~8개를 묶어서 양 옆에 세워 둔다. 이것도 벼농사의 풍농을 빌기 위한 모의행위이다. 그리고 소지를 올리면서 마을의 안과태평과 각 가정의 염원 달성을 빌었다. 가천과 대량에서는 당제를 지내기 전 밥무덤 앞에 개인적으로 제물을 차려 놓고 개인제를 지내기도 한다. 대량에서는 당산제를 지낸 뒤 당산목 가지에 마른 명태를 짚으로 싸서 매달아 두기도 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제사 후 쇠뼈를 금줄에 매달아 둔다. 소량의 당산이 있는 언덕에는 그 입구에 커다란 신대 두 개를 세우고 금줄을 쳐 두었다. 이곳이 신역이므로 평상시에도 잡인의 접근을 막는다는 의미이다. 당산목 아래에는 밥무덤이 있고, 산에서 채취해 온 붉은 황토 한 부대를 밥무덤 옆에 놓았다. 선구마을에서는 밥무덤에 작은 대나무 네 개를 세우고 왼새끼 금줄을 쳤는데, 붉은 고추를 매달아 놓았다. 고추의 붉은 색깔과 매운 독기로 잡귀잡신의 범접을 막으려는 의도이다.

참고문헌

남해안의 민속신앙 (하종갑, 우석, 1984)남해의 얼 (남해군, 1985)향토문화지 (경상남도, 1989)삼천포의 동제 연구 (정인진, 마루문학 3, 마루문학회, 1990)남해군지 (남해군지편찬위원회, 1994)향토의 민속문화 (강용권, 동아대학교 석당전통문화연구원, 1996)주강현의 우리문화 기행 (주강현, 해냄, 1997)경남의 막돌탑과 선돌 (김봉우, 집문당, 2000)경상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이색마을 이색기행 (이용한, 실천문학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