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배송굿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김창호(金昌鎬)

정의

천연두에 걸린 뒤 13일째 되는 날 마마신을 공손하게 돌려보내며 행하는 굿.

내용

천연두는 ‘두창(痘瘡)’, ‘포창(疱瘡)’이라고도 하고 속칭 ‘마마(媽媽)손님’이라고도 하는 질병이다. 이 질병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 창궐하면 큰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종두법 개발 이전에는 천연두에 걸리면 큰 사고 없이 잘 낫길 기원하는 뜻에서 천연두를 신격으로 여겼다. 또한 찾아온 천연두신을 잘 모시고 잘 보내드리는 의례행위로 그 기원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16세기 때 문장가로 유명했던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4~1567)도 『양아록(養兒錄)』에 손자가 천연두에 걸린 후 13일 뒤 얼굴의 딱지가 떨어질 즈음에 마마배송굿을 했음을 기록하였다. 이를 보아 마마배송굿은 매우 보편적인 무(巫)의 의례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연두신은 매우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글을 통해 무지한 민중이 미신 숭상을 타파하고 계몽되기를 바란 소설가 이해조(李海朝)는 1908년 『제국신문(帝國新聞)』에 연재한 신소설 『구마검(驅魔劍)』에서 사람들의 천연두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두라 하는 것이 다 무엇인가? 그까짓 것으로 호구별성(戶口別星)을 못 오시게 하겠군. 우두 한 아이들이 역질(疫疾)을 하면 별성 박대한 벌역으로 더구나 중하게 한답디다. 나는 아무 때든지 마마께서 우리 만득에게 전좌하시면 손발 정히 씻고 정성을 지극하게 들이어서 열사흘이 되거든 장안에 한골 나가는 만신을 청하고, 입담 좋은 마부나 불러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배송(拜送) 한 번을 쩍지게 내어 볼 터이오.

이 글에서도 천연두신은 호구별성•별성•마마님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이 외에도 호구신•손님•강남대한국마마님•별상 등 수많은 명칭이 있다. 이들 중 손님이라는 명칭은 천연두신이 외국에서 건너왔기에 붙은 것이라는 해석이 주가 된다. 동해안별신굿의 손님굿에서 구송되는 무가를 보면 “조선(朝鮮)이 살기 좋다 하여 강남대한국(江南大漢國)에서 손님 쉰세 분이 들어오다가 쉰 분은 도로 돌아가고 세 분만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능화(李能和) 또한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두신(痘神)이 강남에서 왔기에 손님이라 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생기면 먼저 종이 깃대를 만들고 강남호구별성사명기(江南戶口別星司命旗)라는 글을 써 달아서 대문 앞에 꽂아 천연두를 앓고 있는 집임을 표시한다. 천연두는 보통 고열을 동반하는데 이로 인하여 환자는 헛소리를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호구신이 몸에 머물며 환자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으로 여겼다.

천연두에 걸린 지 5일 정도가 지나 환자의 몸에 발진이 생기기 시작하면 정한수를 떠 놓고 호구신을 맞이하는 기원을 시작한다. 호구신은 보통 환자의 몸에 12일 정도를 머무는 것으로 여겨 13일째 되는 날 호구신을 보내는 의례인 마마배송굿을 연행한다.

마마배송굿은 보통 2~3일 전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무당은 우선 호구신과 함께 집에 들어온 식문(瘜門)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는 것으로 의례 준비를 시작한다. 식문은 천연두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컫는 말로, 호구신에게 한을 품고 있어 호구신 주변으로 몰려든다고 여겨진다. 몰려든 식문으로 인해 호구신이 노하면 환자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게 때문에 식문을 가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무당은 우선 싸리바구니에 붉은 팥죽 한 그릇을 담아 추녀 밑에 두고 그 위에 시루를 뒤집어 덮은 후 시루의 밑구멍을 사금파리 등으로 막는다. 이곳이 식문을 가두어 놓은 곳으로, 마마배송굿이 끝나 식문을 거두기 전까지 그대로 두고 하루 세 번의 식사를 시루의 구멍으로 넣어 준다. 식문을 가두는 일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마배송굿을 준비한다. 굿은 반드시 환자의 집에서 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굿을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구신을 태워 보내기 위한 말을 만드는 것이다. 말은 짚을 엮어 만들거나 싸리로 만든다. 호구신을 배송하는 말은 상마(上馬)라고 한다. 상마의 등에는 세 개의 오쟁이를 만들어 단다. 첫번째 오쟁이에는 메, 두 번째에는 떡과 마부의 수고비, 세 번째 오쟁이에는 과일을 담아 준비한다. 각각의 오쟁이에는 청•홍•황색의 깃발을 꽂고 상마의 등에는 붉은색의 일산(日傘)을 고정하여 세운다. 상마의 머리에는 마등(馬燈)을 의미하는 등심지를 묶고 목에는 워낭을 매단다.

마마배송굿에서는 호구신의 상마를 움직일 마부가 필요하다. 마부는 남자로 한정하여 고용하며, 상마를 몰고 나갈 때 무당과의 재담 등이 이어지므로 주로 경험 있는 사람이 고용된다.

굿청의 제상에 올리는 떡은 대부분 팥시루떡이며, 두 개의 시루만은 백설기를 준비한다. 하나는 선생마마시루라 하여 일찍이 천연두에 걸려 죽은 자, 즉 식문을 위한 시루이다. 다른 하나는 후생마마시루라 하여 현재 병에 걸려 앓고 있는 자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마마배송굿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특별히 상마거리•식간거리•호구본풀이가 포함 되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거리가 일반적인 굿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상마거리에서는 호구신을 태워 보내는 말의 마부와 무당 사이에 재담이 오간다. 마부는 무당의 명에 따라 상마를 대문 밖으로 물려서 근처의 나무에 매달고 난 뒤 물러난다. 식문거리에서는 처마 밑에 시루를 덮어 가두어 놓았던 식문을 풀어 굿청으로 모신 후 놀리고 대접하는 의례가 연행된다. 식문거리가 끝날 즈음에는 식문을 감금할 때 두었던 팥죽을 담은 싸리바구니를 대문 밖으로 내던진다.

이어지는 호구본풀이는 호구신에 대한 무가가 구송되는 거리이다. 일명 호구노정기(戶口路程記)라고도 하는 호구본풀이에서는 구송되는 무가를 통해 호구신의 유래와 성격 등이 밝혀지면서 호구신을 잘 모시고 잘 보내드리는 마마배송굿이 연행되는 이유가 굿의 참가자들에게 전해진다.

한국의 굿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그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그리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과거 호환(虎患)이 사람들을 위협할 때 존재했던 경기도의 호영산호대감놀이나 동해안별신굿의 범굿 등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거나 예전같이 않다. 천연두는 1979년에 이미 세계적으로 사라진 질병으로 공표되었다. 그리고 지금 마마배송굿도 찾아볼 수 없는 의례가 되었다. 아직까지 호구신이 굿거리 안에서 무당에 의해 호구거리•별상거리 등에서 모셔지고 있고, 동해안별신굿의 손님굿에서는 서사무가로 그 연원이 구송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들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목적의 굿거리들이 연행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사례

명칭과 형식은 달리 하더라도 호구신에 대한 마마배송굿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제주도의 경우 마마배송굿이라는 명칭 대신 마누라배송굿, 남해안별신굿의 경우 손님풀이, 동해안별신제의 경우 손님배송굿 혹은 손님굿이라고도 한다. 특히 동해안별신제의 강한 연희적 특징은 손님굿 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손님을 말에 태워 보내는 행위나 마부와 무녀의 입담 등에서 나타나는 무극(巫劇)의 행위적 표현은 다채롭고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무속의 현지연구 (秋葉隆 저, 최길성 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 조선무속고 (이능화 저, 이재곤 역, 동문선, 1991), 조선무속의 연구 (秋葉隆·赤松智城 저,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양아록 (이문건 저, 이상주 역, 태학사, 1997), 한국 무의 역사와 현상 (조흥윤, 민족사, 1997), 동해안별신굿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구마검 (이해조 저, 권영민 역, 신소설전집 6, 뿔, 2008)

마마배송굿

마마배송굿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김창호(金昌鎬)

정의

천연두에 걸린 뒤 13일째 되는 날 마마신을 공손하게 돌려보내며 행하는 굿.

내용

천연두는 ‘두창(痘瘡)’, ‘포창(疱瘡)’이라고도 하고 속칭 ‘마마(媽媽)손님’이라고도 하는 질병이다. 이 질병은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한번 창궐하면 큰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종두법 개발 이전에는 천연두에 걸리면 큰 사고 없이 잘 낫길 기원하는 뜻에서 천연두를 신격으로 여겼다. 또한 찾아온 천연두신을 잘 모시고 잘 보내드리는 의례행위로 그 기원이 표현되기도 하였다. 16세기 때 문장가로 유명했던 묵재(默齋) 이문건(李文楗, 1494~1567)도 『양아록(養兒錄)』에 손자가 천연두에 걸린 후 13일 뒤 얼굴의 딱지가 떨어질 즈음에 마마배송굿을 했음을 기록하였다. 이를 보아 마마배송굿은 매우 보편적인 무(巫)의 의례행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천연두신은 매우 다양한 명칭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글을 통해 무지한 민중이 미신 숭상을 타파하고 계몽되기를 바란 소설가 이해조(李海朝)는 1908년 『제국신문(帝國新聞)』에 연재한 신소설 『구마검(驅魔劍)』에서 사람들의 천연두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우두라 하는 것이 다 무엇인가? 그까짓 것으로 호구별성(戶口別星)을 못 오시게 하겠군. 우두 한 아이들이 역질(疫疾)을 하면 별성 박대한 벌역으로 더구나 중하게 한답디다. 나는 아무 때든지 마마께서 우리 만득에게 전좌하시면 손발 정히 씻고 정성을 지극하게 들이어서 열사흘이 되거든 장안에 한골 나가는 만신을 청하고, 입담 좋은 마부나 불러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배송(拜送) 한 번을 쩍지게 내어 볼 터이오. 이 글에서도 천연두신은 호구별성•별성•마마님 등의 명칭으로 불린다. 이 외에도 호구신•손님•강남대한국마마님•별상 등 수많은 명칭이 있다. 이들 중 손님이라는 명칭은 천연두신이 외국에서 건너왔기에 붙은 것이라는 해석이 주가 된다. 동해안별신굿의 손님굿에서 구송되는 무가를 보면 “조선(朝鮮)이 살기 좋다 하여 강남대한국(江南大漢國)에서 손님 쉰세 분이 들어오다가 쉰 분은 도로 돌아가고 세 분만이 압록강을 건넜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이능화(李能和) 또한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서 두신(痘神)이 강남에서 왔기에 손님이라 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천연두에 걸린 사람이 생기면 먼저 종이 깃대를 만들고 강남호구별성사명기(江南戶口別星司命旗)라는 글을 써 달아서 대문 앞에 꽂아 천연두를 앓고 있는 집임을 표시한다. 천연두는 보통 고열을 동반하는데 이로 인하여 환자는 헛소리를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호구신이 몸에 머물며 환자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으로 여겼다. 천연두에 걸린 지 5일 정도가 지나 환자의 몸에 발진이 생기기 시작하면 정한수를 떠 놓고 호구신을 맞이하는 기원을 시작한다. 호구신은 보통 환자의 몸에 12일 정도를 머무는 것으로 여겨 13일째 되는 날 호구신을 보내는 의례인 마마배송굿을 연행한다. 마마배송굿은 보통 2~3일 전부터 준비가 시작된다. 무당은 우선 호구신과 함께 집에 들어온 식문(瘜門)을 일정한 공간에 가두는 것으로 의례 준비를 시작한다. 식문은 천연두에 걸려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일컫는 말로, 호구신에게 한을 품고 있어 호구신 주변으로 몰려든다고 여겨진다. 몰려든 식문으로 인해 호구신이 노하면 환자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 벌어지게 때문에 식문을 가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무당은 우선 싸리바구니에 붉은 팥죽 한 그릇을 담아 추녀 밑에 두고 그 위에 시루를 뒤집어 덮은 후 시루의 밑구멍을 사금파리 등으로 막는다. 이곳이 식문을 가두어 놓은 곳으로, 마마배송굿이 끝나 식문을 거두기 전까지 그대로 두고 하루 세 번의 식사를 시루의 구멍으로 넣어 준다. 식문을 가두는 일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마마배송굿을 준비한다. 굿은 반드시 환자의 집에서 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굿을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구신을 태워 보내기 위한 말을 만드는 것이다. 말은 짚을 엮어 만들거나 싸리로 만든다. 호구신을 배송하는 말은 상마(上馬)라고 한다. 상마의 등에는 세 개의 오쟁이를 만들어 단다. 첫번째 오쟁이에는 메, 두 번째에는 떡과 마부의 수고비, 세 번째 오쟁이에는 과일을 담아 준비한다. 각각의 오쟁이에는 청•홍•황색의 깃발을 꽂고 상마의 등에는 붉은색의 일산(日傘)을 고정하여 세운다. 상마의 머리에는 마등(馬燈)을 의미하는 등심지를 묶고 목에는 워낭을 매단다. 마마배송굿에서는 호구신의 상마를 움직일 마부가 필요하다. 마부는 남자로 한정하여 고용하며, 상마를 몰고 나갈 때 무당과의 재담 등이 이어지므로 주로 경험 있는 사람이 고용된다. 굿청의 제상에 올리는 떡은 대부분 팥시루떡이며, 두 개의 시루만은 백설기를 준비한다. 하나는 선생마마시루라 하여 일찍이 천연두에 걸려 죽은 자, 즉 식문을 위한 시루이다. 다른 하나는 후생마마시루라 하여 현재 병에 걸려 앓고 있는 자를 위해 바치는 것이다. 마마배송굿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으나 특별히 상마거리•식간거리•호구본풀이가 포함 되는 것 이외에는 대부분의 거리가 일반적인 굿거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상마거리에서는 호구신을 태워 보내는 말의 마부와 무당 사이에 재담이 오간다. 마부는 무당의 명에 따라 상마를 대문 밖으로 물려서 근처의 나무에 매달고 난 뒤 물러난다. 식문거리에서는 처마 밑에 시루를 덮어 가두어 놓았던 식문을 풀어 굿청으로 모신 후 놀리고 대접하는 의례가 연행된다. 식문거리가 끝날 즈음에는 식문을 감금할 때 두었던 팥죽을 담은 싸리바구니를 대문 밖으로 내던진다. 이어지는 호구본풀이는 호구신에 대한 무가가 구송되는 거리이다. 일명 호구노정기(戶口路程記)라고도 하는 호구본풀이에서는 구송되는 무가를 통해 호구신의 유래와 성격 등이 밝혀지면서 호구신을 잘 모시고 잘 보내드리는 마마배송굿이 연행되는 이유가 굿의 참가자들에게 전해진다. 한국의 굿은 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민중의 요구를 수용하여 그 모습을 변화시켜 왔다. 그리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과거 호환(虎患)이 사람들을 위협할 때 존재했던 경기도의 호영산호대감놀이나 동해안별신굿의 범굿 등은 이제 자취를 감추었거나 예전같이 않다. 천연두는 1979년에 이미 세계적으로 사라진 질병으로 공표되었다. 그리고 지금 마마배송굿도 찾아볼 수 없는 의례가 되었다. 아직까지 호구신이 굿거리 안에서 무당에 의해 호구거리•별상거리 등에서 모셔지고 있고, 동해안별신굿의 손님굿에서는 서사무가로 그 연원이 구송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들의 자리를 차지한 다른 목적의 굿거리들이 연행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사례

명칭과 형식은 달리 하더라도 호구신에 대한 마마배송굿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인다. 제주도의 경우 마마배송굿이라는 명칭 대신 마누라배송굿, 남해안별신굿의 경우 손님풀이, 동해안별신제의 경우 손님배송굿 혹은 손님굿이라고도 한다. 특히 동해안별신제의 강한 연희적 특징은 손님굿 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손님을 말에 태워 보내는 행위나 마부와 무녀의 입담 등에서 나타나는 무극(巫劇)의 행위적 표현은 다채롭고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조선무속의 현지연구 (秋葉隆 저, 최길성 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87)조선무속고 (이능화 저, 이재곤 역, 동문선, 1991)조선무속의 연구 (秋葉隆·赤松智城 저, 심우성 역, 동문선, 1991)양아록 (이문건 저, 이상주 역, 태학사, 1997)한국 무의 역사와 현상 (조흥윤, 민족사, 1997)동해안별신굿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구마검 (이해조 저, 권영민 역, 신소설전집 6, 뿔,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