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제(四時祭)

한자명

四時祭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임민혁(任敏赫)

정의

사계절의 중월仲月에 4대 조고비祖考妣와 부위祔位를 모두 모시고 지내는 제사.

내용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지내는 제사로서 ‘시제時祭’라고도 한다. 한 철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인데, 이것은 천도天道가 석 달마다 한 차례씩 변하여 한 철이 되는 법을 취한 것이라 한다. 시제가 사용하는 달은 중월仲月이다. 날짜는 특정하지 않고 열흘 전에 점을 쳐서 기일을 정하였다. 길일은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이며 날을 점치는 장소는 사당 앞이었다. 점치는 날은 맹월 하순 초이며, 도구는 배교环珓이다. 이날에 중월의 삼순 중 각하루를 택하여 점을 쳤다.

재계齋戒는 3일 동안 한다. 이틀은 산재散齋이며 마지막 하루는 치재致齋이다. 하루 전에는 신위 자리를 마련하고 그릇을 진설한다. 고조고비의 신위는 당의 서북쪽 벽 아래에 남향하도록 진설하는데, 고가 서쪽이고 비가 동쪽이다. 부위祔位는 모두 동쪽 벽에서 서향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향안은 당 가운데에 진설하고 향로향합은 그 위에 놓는다. 띠풀 묶음과 모래두엄은 향안의 앞과 매 신위 앞의 땅 위에 놓는다. 술시렁은 동쪽 계단 위에 진설하고 별도로 탁자를 그 동쪽에 놓고서 주전자 하나, 뇌주잔 하나, 쟁반 하나, 수조반 하나, 숟가락 하나, 수건 하나, 다합茶合, 다선茶筅, 찻잔, 찻잔받침, 소금그릇, 간장병을 그 위에 놓는다. 화로, 탕병, 향시香匙, 화저火筯는 서쪽 계단 위에 놓는다. 별도로 탁자를 그 서쪽에 놓고서 축판을 그 위에 진설한다. 대야와 수건은 각각 두 개씩 동쪽 계단 아래의 동쪽과 서쪽에 진설한다. 그 서쪽의 것에는 대가臺架가 있다. 또한, 음식을 진설할 큰 상을 그 동쪽에 놓는다.

주인은 뭇 장부를 거느리고 심의를 입고서 희생을 살핀다. 주부는 뭇 부녀를 거느리고 배자를 입고서 제기와 솥을 깨끗이 씻고 제사음식을 갖춘다. 신위마다 과일 여섯 가지와 채소・포・해 각 세 가지, 육어肉魚・만두・떡 각 한 쟁반, 국과 밥 각 한 주발, 간 각 한 꿰미, 고기 각 두 꿰미를 정결하게 차린다.

주인 이하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심의를 입고 집사와 함께 제사 지낼 곳으로 가서 손을 씻고 난 다음에 진찬進饌한다. 과일 접시는 신위마다 탁자의 남쪽 끝에 진설하고, 채소와 포・육장은 서로 사이를 두고 차례로 놓는다. 술잔과 쟁반・간장그릇은 북쪽 끝에 진설하되 술잔은 서쪽에, 접시는 동쪽에 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가운데 놓는다. 현주玄酒 및 술은 각 한 병씩 시렁 위에 진설한다. 현주는 그날 정화수로 채워서 술의 서쪽에 놓는다. 화로에 탄을 피우고 병에 물을 채운다. 주부는 배자를 입고 불을 때서 제사음식을 데운다. 충분히 익혀 합에 담아서 나가 동쪽 계단 아래의 큰 상 위에 놓는다.

동이 틀 무렵에 주인 이하는 각각 성복成服하고 관세盥洗하고서 사당 앞으로 나아간다. 뭇 장부는 차례로 서는데 날짜를 아뢰는 의식과 같게 한다. 주부는 서쪽계단 아래에 북향하여 선다. 주인에게 어머니가 있으면 특별히 주부의 앞에 자리하고 여러 백숙모와 고모가 이어서 선다. 형수와 제수・자매는 주부의 왼쪽에 자리한다. 그 주모와 주부보다 어른인 사람은 모두 조금 나아가 선다. 자손・부녀・내집사는 주부의 뒤에 여러 줄로 자리하는데 모두 북향하되 동쪽이 윗자리이다.

자리가 정해지면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홀을 꽂고서 분향하고 난 다음, 홀을 빼 들고 다음과 같이 아뢴다. “효손 아무개는 지금 중춘의 달에 황고조고모관부군과 황고조비모봉모씨, 황증조고모관부군과 황증조비모봉모씨, 황조고모관부군과 황조비모봉모씨, 황고모관부군과 황비모봉모씨에게 일이 있어 모친모관부군과 모친모봉모씨를 부식하고자 감히 신주를 청해 정침에 내놓고 공손히 술을 올립니다.” 아뢰는 말에 중하・중추・중동은 각각 그 시절을 따른다. 아뢰기를 마치면 홀을 꽂고 독을 거두어 정위와 부위를 각각 한 상자에 넣고 각각 집사한 사람이 받들어 정침에 이르러서 서쪽 계단의 탁자 위에 놓는다. 주인과 주부는 제고비諸考妣의 신주를 받들어 자리에 내놓고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1. 참신參神: 주인 이하는 차례로 제자리에 서서 재배한다. 강신한다. 주인이 올라가 홀을 꽂고서 분향한 다음, 왼손에 쟁반을 들고 오른손에 술잔을 들고서 띠풀 위에 술을 붓는다. 진찬한다. 주인은 홀을 빼 들고 모든 정위正位를 차례대로 진설하고 모든 자제와 부녀에게 각각 부위를 진설하도록 한다. 다 끝나면, 주인 이하는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2. 초헌初獻: 주인은 올라가 고조고비의 신위 앞으로 나아가 술잔을 들어 먼저 좨주하고서 술잔을 올린다. 주인이 홀을 빼 들고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조금 물러나 서면, 집사가 화로에 간을 구워 접시에 담는다. 형제 중 맏이 한 사람이 그것을 받들어 고조고비의 앞에 있는 시저의 남쪽에 올린다. 축이 축판을 들고 주인의 왼쪽에 서서 무릎 꿇고 다음과 같이 읽는다. “유년세월삭일자維年歲月朔日子에 효현손 모관 아무개가 감히 황고조고모관부군과 황고조비모봉모씨에게 아룁니다. 기서氣序가 흐르고 바뀌어 때는 중춘입니다. 세시에 추감함에 길이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결생, 유모, 자성, 예제로 공경히 세사를 올리고 모친모관부군과 모친모봉모씨를 부식하오니,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읽기를 마치고 일어나면 주인은 재배하고 물러나 모든 신위에 나아가서 술잔을 올리고, 축읽기를 앞서와 같이한다. 신위마다 축 읽기가 끝나면 형제와 뭇 남자 중 아헌이나 종헌이 되지 못한 사람이 차례로 나뉘어 본위에 부식한 신위에 나아가 술을 따라 올리기를 의례대로 하는데 축은 읽지 않는다. 축문의 경우 증조 앞에서는 효증손이라 칭하고 고 앞에서는 효자라 칭한다. ‘불승영모不勝永慕’는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고친다. 합사의 경우 백숙조부는 고조, 백숙부는 증조에 합사하며 형제는 조, 자손은 고에 합사한다. 만약 본위本位가 없으면 아무 친족을 부식祔食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3. 아헌亞獻: 주부가 한다. 모든 부녀는 구운 고기를 받들어 올린다. 나누어 헌작하는 일은 초헌의 의례와 같게 하는데, 다만 축문을 읽지 않는다. 종헌은 형제 중 장자 혹은 친척이나 빈객이 한다. 뭇 자제는 구운 고기를 받들어 올린다. 나누어 헌작하는 일은 아헌의 의례와 같이한다.

  4. 유식侑食: 주인은 올라가 홀을 꽂고 주전자를 들어 모든 신위에 술을 가득 따르고 향안의 동남쪽에 선다. 주부가 올라가 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꽂되, 손잡이를 서쪽으로 하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며 향안의 서남쪽에 선다. 모두 북향하여 재배하고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 이하가 모두 나오면 축이 문을 닫는데 문이 없는 곳이면 발을 드리우는 것도 괜찮다. 일식구반一食九飯하는 정도의 시간이 지나 축이 ‘어흠’하고 세 번 소리를 내고 문을 열면 주인 이하는 모두 들어간다. 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 고비의 앞에 나누어 바친다. 부위는 여러 자제와 부녀가 바친다. 음복하고 나서 축이 ‘이성利成’을 아뢰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재배한다. 주인은 절하지 않고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 이하는 모두 재배하여 사신辭神한다. 주인과 주부는 모두 올라가 각각 신주를 받들어 독에 들여놓고 받들어 사당으로 돌아간다. 복주福酒와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러한 『가례』 상의 사시제는 조선에서는 보통 묘제로 행해졌다. 광복 이후 1973년에 반포한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이를 ‘연시제’라 칭하고 매년 1월 1일 아침에 지내되 그 대상과 장소, 참사자의 범위는 기제에 준한다고 하였다. 기제의 참사자의 범위는 사망자의 직계자손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1999년의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는 제례가 기제 및 명절차례(차례)로 바뀌고 시제가 삭제되었다. 그러나 현재 각 문중에서는 시제를 보통 1년에 한 차례씩 날짜를 정하여 거행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사시제는 사대조와 부위를 모두 모시고 지내는 제사이므로 합식合食의 의미가 크다. 제사가 길례이기는 하지만, 사시제의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가례』 「제례」의 제일 앞에 놓였다. 이는 한 가문의 족속이 친함과 화합을 밝히는 경사인데, 이를 묘제로 대체한 것은 그 당시 사회의 배경을 통해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가정의례준칙, 시제 전승의 지속과 변화(방인아, 역사민속학37, 역사민속학회, 2011),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

사시제

사시제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임민혁(任敏赫)

정의

사계절의 중월仲月에 4대 조고비祖考妣와 부위祔位를 모두 모시고 지내는 제사.

내용

사시제四時祭는 사계절에 지내는 제사로서 ‘시제時祭’라고도 한다. 한 철에 한 번씩 지내는 제사인데, 이것은 천도天道가 석 달마다 한 차례씩 변하여 한 철이 되는 법을 취한 것이라 한다. 시제가 사용하는 달은 중월仲月이다. 날짜는 특정하지 않고 열흘 전에 점을 쳐서 기일을 정하였다. 길일은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이며 날을 점치는 장소는 사당 앞이었다. 점치는 날은 맹월 하순 초이며, 도구는 배교环珓이다. 이날에 중월의 삼순 중 각하루를 택하여 점을 쳤다. 재계齋戒는 3일 동안 한다. 이틀은 산재散齋이며 마지막 하루는 치재致齋이다. 하루 전에는 신위 자리를 마련하고 그릇을 진설한다. 고조고비의 신위는 당의 서북쪽 벽 아래에 남향하도록 진설하는데, 고가 서쪽이고 비가 동쪽이다. 부위祔位는 모두 동쪽 벽에서 서향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향안은 당 가운데에 진설하고 향로와 향합은 그 위에 놓는다. 띠풀 묶음과 모래두엄은 향안의 앞과 매 신위 앞의 땅 위에 놓는다. 술시렁은 동쪽 계단 위에 진설하고 별도로 탁자를 그 동쪽에 놓고서 주전자 하나, 뇌주잔 하나, 쟁반 하나, 수조반 하나, 숟가락 하나, 수건 하나, 다합茶合, 다선茶筅, 찻잔, 찻잔받침, 소금그릇, 간장병을 그 위에 놓는다. 화로, 탕병, 향시香匙, 화저火筯는 서쪽 계단 위에 놓는다. 별도로 탁자를 그 서쪽에 놓고서 축판을 그 위에 진설한다. 대야와 수건은 각각 두 개씩 동쪽 계단 아래의 동쪽과 서쪽에 진설한다. 그 서쪽의 것에는 대가臺架가 있다. 또한, 음식을 진설할 큰 상을 그 동쪽에 놓는다. 주인은 뭇 장부를 거느리고 심의를 입고서 희생을 살핀다. 주부는 뭇 부녀를 거느리고 배자를 입고서 제기와 솥을 깨끗이 씻고 제사음식을 갖춘다. 신위마다 과일 여섯 가지와 채소・포・해 각 세 가지, 육어肉魚・만두・떡 각 한 쟁반, 국과 밥 각 한 주발, 간 각 한 꿰미, 고기 각 두 꿰미를 정결하게 차린다. 주인 이하는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심의를 입고 집사와 함께 제사 지낼 곳으로 가서 손을 씻고 난 다음에 진찬進饌한다. 과일 접시는 신위마다 탁자의 남쪽 끝에 진설하고, 채소와 포・육장은 서로 사이를 두고 차례로 놓는다. 술잔과 쟁반・간장그릇은 북쪽 끝에 진설하되 술잔은 서쪽에, 접시는 동쪽에 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은 가운데 놓는다. 현주玄酒 및 술은 각 한 병씩 시렁 위에 진설한다. 현주는 그날 정화수로 채워서 술의 서쪽에 놓는다. 화로에 탄을 피우고 병에 물을 채운다. 주부는 배자를 입고 불을 때서 제사음식을 데운다. 충분히 익혀 합에 담아서 나가 동쪽 계단 아래의 큰 상 위에 놓는다. 동이 틀 무렵에 주인 이하는 각각 성복成服하고 관세盥洗하고서 사당 앞으로 나아간다. 뭇 장부는 차례로 서는데 날짜를 아뢰는 의식과 같게 한다. 주부는 서쪽계단 아래에 북향하여 선다. 주인에게 어머니가 있으면 특별히 주부의 앞에 자리하고 여러 백숙모와 고모가 이어서 선다. 형수와 제수・자매는 주부의 왼쪽에 자리한다. 그 주모와 주부보다 어른인 사람은 모두 조금 나아가 선다. 자손・부녀・내집사는 주부의 뒤에 여러 줄로 자리하는데 모두 북향하되 동쪽이 윗자리이다. 자리가 정해지면 주인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 홀을 꽂고서 분향하고 난 다음, 홀을 빼 들고 다음과 같이 아뢴다. “효손 아무개는 지금 중춘의 달에 황고조고모관부군과 황고조비모봉모씨, 황증조고모관부군과 황증조비모봉모씨, 황조고모관부군과 황조비모봉모씨, 황고모관부군과 황비모봉모씨에게 일이 있어 모친모관부군과 모친모봉모씨를 부식하고자 감히 신주를 청해 정침에 내놓고 공손히 술을 올립니다.” 아뢰는 말에 중하・중추・중동은 각각 그 시절을 따른다. 아뢰기를 마치면 홀을 꽂고 독을 거두어 정위와 부위를 각각 한 상자에 넣고 각각 집사한 사람이 받들어 정침에 이르러서 서쪽 계단의 탁자 위에 놓는다. 주인과 주부는 제고비諸考妣의 신주를 받들어 자리에 내놓고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참신參神: 주인 이하는 차례로 제자리에 서서 재배한다. 강신한다. 주인이 올라가 홀을 꽂고서 분향한 다음, 왼손에 쟁반을 들고 오른손에 술잔을 들고서 띠풀 위에 술을 붓는다. 진찬한다. 주인은 홀을 빼 들고 모든 정위正位를 차례대로 진설하고 모든 자제와 부녀에게 각각 부위를 진설하도록 한다. 다 끝나면, 주인 이하는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초헌初獻: 주인은 올라가 고조고비의 신위 앞으로 나아가 술잔을 들어 먼저 좨주하고서 술잔을 올린다. 주인이 홀을 빼 들고 부복하였다가 일어나서 조금 물러나 서면, 집사가 화로에 간을 구워 접시에 담는다. 형제 중 맏이 한 사람이 그것을 받들어 고조고비의 앞에 있는 시저의 남쪽에 올린다. 축이 축판을 들고 주인의 왼쪽에 서서 무릎 꿇고 다음과 같이 읽는다. “유년세월삭일자維年歲月朔日子에 효현손 모관 아무개가 감히 황고조고모관부군과 황고조비모봉모씨에게 아룁니다. 기서氣序가 흐르고 바뀌어 때는 중춘입니다. 세시에 추감함에 길이 사모함을 이기지 못하여 감히 결생, 유모, 자성, 예제로 공경히 세사를 올리고 모친모관부군과 모친모봉모씨를 부식하오니, 흠향하시기 바랍니다.” 읽기를 마치고 일어나면 주인은 재배하고 물러나 모든 신위에 나아가서 술잔을 올리고, 축읽기를 앞서와 같이한다. 신위마다 축 읽기가 끝나면 형제와 뭇 남자 중 아헌이나 종헌이 되지 못한 사람이 차례로 나뉘어 본위에 부식한 신위에 나아가 술을 따라 올리기를 의례대로 하는데 축은 읽지 않는다. 축문의 경우 증조 앞에서는 효증손이라 칭하고 고 앞에서는 효자라 칭한다. ‘불승영모不勝永慕’는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고친다. 합사의 경우 백숙조부는 고조, 백숙부는 증조에 합사하며 형제는 조, 자손은 고에 합사한다. 만약 본위本位가 없으면 아무 친족을 부식祔食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헌亞獻: 주부가 한다. 모든 부녀는 구운 고기를 받들어 올린다. 나누어 헌작하는 일은 초헌의 의례와 같게 하는데, 다만 축문을 읽지 않는다. 종헌은 형제 중 장자 혹은 친척이나 빈객이 한다. 뭇 자제는 구운 고기를 받들어 올린다. 나누어 헌작하는 일은 아헌의 의례와 같이한다. 유식侑食: 주인은 올라가 홀을 꽂고 주전자를 들어 모든 신위에 술을 가득 따르고 향안의 동남쪽에 선다. 주부가 올라가 숟가락을 밥 가운데에 꽂되, 손잡이를 서쪽으로 하고 젓가락을 바르게 하며 향안의 서남쪽에 선다. 모두 북향하여 재배하고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 이하가 모두 나오면 축이 문을 닫는데 문이 없는 곳이면 발을 드리우는 것도 괜찮다. 일식구반一食九飯하는 정도의 시간이 지나 축이 ‘어흠’하고 세 번 소리를 내고 문을 열면 주인 이하는 모두 들어간다. 주인과 주부가 차를 받들어 고비의 앞에 나누어 바친다. 부위는 여러 자제와 부녀가 바친다. 음복하고 나서 축이 ‘이성利成’을 아뢰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재배한다. 주인은 절하지 않고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주인 이하는 모두 재배하여 사신辭神한다. 주인과 주부는 모두 올라가 각각 신주를 받들어 독에 들여놓고 받들어 사당으로 돌아간다. 복주福酒와 제사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이러한 『가례』 상의 사시제는 조선에서는 보통 묘제로 행해졌다. 광복 이후 1973년에 반포한 「가정의례준칙」에서는 이를 ‘연시제’라 칭하고 매년 1월 1일 아침에 지내되 그 대상과 장소, 참사자의 범위는 기제에 준한다고 하였다. 기제의 참사자의 범위는 사망자의 직계자손으로 제한하였다. 그러나 1999년의 「건전가정의례준칙」에서는 제례가 기제 및 명절차례(차례)로 바뀌고 시제가 삭제되었다. 그러나 현재 각 문중에서는 시제를 보통 1년에 한 차례씩 날짜를 정하여 거행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사시제는 사대조와 부위를 모두 모시고 지내는 제사이므로 합식合食의 의미가 크다. 제사가 길례이기는 하지만, 사시제의 이러한 성격으로 말미암아 『가례』 「제례」의 제일 앞에 놓였다. 이는 한 가문의 족속이 친함과 화합을 밝히는 경사인데, 이를 묘제로 대체한 것은 그 당시 사회의 배경을 통해 이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가정의례준칙, 시제 전승의 지속과 변화(방인아, 역사민속학37, 역사민속학회, 2011), 주자가례(임민혁 역, 예문서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