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안섬당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29

정의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안섬[內島]’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풍어를 기원할 목적으로 음력 정월에 올리는 ‘당굿’, ‘당제’ 또는 ‘풍어제’라고도 한다. 이 굿은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안섬당제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4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을에서는 주민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즉 옛날에 어느 노부부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외롭고 적적한 나날을 보내던 부부는 어느 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너희가 당을 짓고 잘 위하면 마을이 형성되고 하는 일이 잘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로 당을 짓고 매년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내용

제당은 마을의 서북쪽 야산에 위치한다. 당내 주벽에는 본래 3개의 선반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앞에서 보았을 때 중앙을 본당, 좌측을 장군당, 우측을 소당 또는 각시당이라고 부른다. 3위의 신격 가운데 본당신은 절대적인 존재인 용으로, 당할아버지 또는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런 까닭에 1990년대 화재로 소실된 당집을 새로 건립하면서 용 그림을 봉안했다. 장군당은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소당은 소당애기씨 또는 소당각시로 칭하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성인 서낭신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소당에 올리는 폐백은 청홍색의 옷감과 미역이다. 그런데 안섬 일대에서 파다하게 퍼져 있는 설화에 따르면 이들 세 마을에서 모시는 당신은 가족관계를 이룬다고 한다. 즉 안섬의 본당에 좌정한 주신은 용신인 할아비당(남편), 한진은 여성인 큰할미당(큰마누라), 성구미는 작은할미당(작은마누라)으로 각각 인식되고 있다.

해마다 동짓달 그믐에 열리는 대동계에서 제일의 택일 및 당주의 선출, 제수비용 등 당제와 관련된 제반 절차가 논의된다. 먼저 제일은 새해 첫 용날[上辰日]로 잡되 첫 병진일(丙辰日)과 정월 초하루는 피하는 게 관례이다. 첫 병진일을 꺼리는 이유는 병의 발음이 질병을 뜻하는 병(病)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월 초하루에 용날이 들면 날짜를 연기하는데 이는 마을 사람들이 설 차례를 지내야 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제일을 굳이 용날로 정하는 것은 본당에 모신 당신(堂神)이 속칭 진대할아버지(뱀)로서 바다를 관장하는 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안섬에서 당할아버지는 용이라 하지 않고 흔히 뱀에 빗대어 진대할아버지로 부르는데, 뱀은 곧 용을 뜻하므로 결국 본당에 좌정한 신격을 용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작 본당에는 뱀이 아닌 용의 화상을 그려놓았다. 이처럼 뱀의 존칭인 진대 또는 진대서낭을 모신 사례는 태안 황도 당제, 보령 장고도 당제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 도서지역의 당제에서 공통적으로 전승되는 속신은 돼지를 극히 꺼려한다는 점이다. 돼지는 곧 뱀과 상극인 까닭에 돼지고기를 당제의 제물로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먹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 평소 주민들이 돼지를 사육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당제를 주관하는 제관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당주•주감•당화장을 선출하되 집안에 초상이나 출산, 달거리 등 부정이 없는 정갈한 사람이어야 한다. 당주는 풍어당굿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제수 준비, 제장 관리, 당제 진행 등 전반을 주관한다. 주감은 당주를 보좌하여 그 실무를 집행하는 임무를 띤다. 그리고 당화장은 주감의 지시를 받는 사역인으로 3, 4명을 뽑는다. 이들 사역인은 당제와 관련된 잡역을 도맡아 한다. 이들 중에서 당주와 주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당굿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가 하면 주부라 하여 당제에 소요되는 비용을 갹출하는 사람도 대동계에서 선정한다. 당제에 필요한 경비는 대제(大祭)•소제(小祭)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소제의 경우 500만원 안팎이 소요되지만 대제는 통소를 구입할 뿐 아니라 여러 명의 무당과 악사를 초청하기 때문에 2000만원 이상의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 당제의 비용은 충청남도와 당진군으로부터 일부를 지원받고 있으나 과거에는 중선배를 소유한 선주만 40여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마을 자체에서 모든 비용을 조달했다. 이때 각 호구를 방문하여 돈을 걷는 사람을 돈주부라 하고, 쌀을 갹출하는 사람을 쌀주부라 불렀다.

당굿이 임박하면 안섬마을은 아연 활기를 띤다. 당주와 주감은 당집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제수는 당진읍내로 나가 각 당에 진설할 제물을 골고루 준비하되 값을 깎거나 흥정을 벌이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손짓이나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구입한 뒤에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온다. 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제 때 올리는 황소이다. 실한 소를 고르면 다른 제물과 마찬가지로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한다. 시장에서 구입한 소는 진일(辰日)에 잡으며, 대동샘에서 목욕을 시킨 다음 당산으로 끌고 올라간다. 이때 무당이 기다리고 있다가 부정풀이를 해 준다. 제주로 사용될 조라술은 섣달그믐날 당집을 도배한 후에 직접 담근다. 이 술은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잘 익는다고 한다. 본당과 장군당에 진설될 해적은 새해 첫 출어를 한 어민이 잡아온 준치나 숭어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당집 입구에 매달아둔다. 이것을 지숙이라고 한다.

안섬당제의 화려함을 더해 주는 장식물은 단연 뱃기봉죽기이다. 뱃기는 단색•삼색•오색으로 만든다. 이를 각각 외폭기•세폭기•오폭기라고 한다. 뱃기의 일종인 봉죽기는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만선의 기쁨을 알리는 깃발이다. 깃발의 최상부에 꽃장식을 길게 늘인 서리화를 매고, 그 아래에 청•홍•백의 삼색 또는 노랑과 초록을 더해 오색천을 달았다. 서리화는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를 모방한 것이다. 곧 출어를 떠난 중선배가 예상보다 많은 어획량을 올렸을 때 봉죽기를 만들어 상부에 꽂고 신명나는 배치기를 하며 포구로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이는 고기잡이에서 장원을 하였다는 뜻이다.

안섬당제는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의 당산에 좌정한 수호신에게 풍어 및 고깃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제차는 본제, 당굿, 뱃고사, 거리굿, 지신밟기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일 오후 3, 4시가 지나면 당주와 무당, 선주들은 뱃기를 들고 당산으로 향한다. 당주와 보살이 앞장서고, 그 주위에 풍물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방 길군악을 울린다. 그 뒤에는 선주들의 뱃기가 서열에 따라 길게 장사진을 친다. 서열은 배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행진 과정에는 일명 봉죽타령으로 불리는 배치기가 풍어의 소망을 담아 흥겹게 좌중을 압도한다. 당 입구에 이르면 잠시 행진을 멈추고 무당이 부정풀이를 한다. 이윽고 당에 도착하면 뱃기를 가지런히 세워 놓고 할아버지당•장군당•각시당에 제물 두 벌씩을 진설한다. 본제는 당주가 먼저 술을 따르고 세 당에 각각 재배한 다음 물러난다. 이어서 선주들이 뱃기의 순서에 따라 재배한다. 마지막으로 무당이 굿을 한 자리 하고 소지를 올린 뒤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본제에 이은 당굿은 무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예전에는 대개 여섯 석의 굿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부정풀이, 본당굿, 대동굿, 어망굿, 지석굿, 하전굿이 그것이다. 첫 석인 부정풀이는 여느 굿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당굿을 시작하기 전에 부정을 물리치는 의식이다. 둘째 석인 본당굿은 당의 신령을 위해 축원하는 굿이고, 셋째 석인 대동굿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가가호호의 재복을 기원하는 굿으로 무슨 일이든 잘되게 해 달라고 축원한다. 넷째 석인 어망굿은 풍어를 빌고 어선의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굿이다. 이 과정에서 무당은 선주들을 대상으로 배소지와 선주소지를 올려 준다. 이어서 연장자 순으로 마을 사람들의 소지를 불사르며 축원을 해 준다. 다섯째 석인 지석굿은 원한에 맺혀 죽은 혼령이나 무주고혼을 위한 해원풀이로서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굿이고, 여섯째 석인 하전굿은 당굿의 마지막 절차로서 마무리를 고하는 굿이다. 여섯 석의 굿이 모두 끝나면 명도를 가린다. 이는 당에 좌정한 신에게 이틀간의 치성을 잘 받았는지를 묻는 의식이다.

이튿날 당주는 아침 일찍 당에 올라가서 당굿을 한 제물을 선주들에게 분배한다. 이때 당화장과 주감이 “고사바구니 가져오시오”라고 신호를 보내면 선주들은 바구니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당집으로 들인다. 이 음식을 당맞은 음식이라고 하며, 선주들의 바구니마다 골고루 나누어 담는다. 이어서 무당은 당집에서 가져온 뱃기를 차례로 대쌀바지에 세우고 공수를 내린다. 이 같은 행위를 신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뱃기마다 길지를 매어 깃손을 달아주면 각자 음식을 자신의 어선으로 가져가서 뱃고사를 지낸다.

뱃고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면 장승제•용왕제(샘제)•거리제(서낭제)가 거행된다. 안섬에서는 이를 일러 ‘거리굿 나간다’고 표현한다. 안섬은 바다로 막혀 있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쪽 세 방향에 장승이 위치한다. 당굿 하루 전날에 인근의 야산에서 장승목을 베어와 마을 입구에 각각 남녀 한 쌍씩 6기의 장승을 세운다. 장승제는 당집 입구의 장승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무당이 치성과 축원을 드린다. 그런 다음 마을 안에 위치한 대동샘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어서 무당과 풍물패는 마을 한복판 사거리로 나가 거리제를 올리고, 나머지 두 곳의 장승에도 제를 지낸다. 이즈음이 되면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풍물패는 밤이 늦도록 가가호호를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하루를 넘겨 이튿날 오전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모든 절차가 갈무리되면 대동회의를 열고 비용을 결산한다.

의의

안섬당제는 이웃한 한진과 성구미 마을의 당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흥미롭게 본당의 신이 남편·부인·첩실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당제의 형성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되는 장군신을 함께 모시는 등 안섬 일대의 당제는 조선 후기 이래 중선배를 이용한 연평도 조기잡이의 관행이 일정하게 반영된 산물로 이해된다. 이는 안섬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홍성 성호리의 임장군당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조기의 신, 풍어의 신으로 숭앙을 받는 임경업 장군은 조선 후기 어업생산력의 변화와 더불어 이미 18세기 초·중엽에 서해안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된 새로운 당신앙이었다. 실제로 지난날 전형적인 어촌의 면모를 지니고 있던 안섬 사람들에게 연평도 근해의 조기잡이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고, 임 장군의 조력 여하에 따라 출어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믿어 왔다. 이런 까닭에 해마다 신년의례로 마을 앞 당산에서 수호신인 당신(堂神)을 맞이하여 풍어를 빌고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성대한 당굿을 베풀었던 것이다. 이러한 당맞이(당맞이굿) 의식은 서해안 당제의 연행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당진의 민간신앙 (이인화, 당진문화원, 1996)
도서지 (충청남도·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7)
한국의 마을제당 -충청남도편 (국립민속박물관, 1998)
충청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서해안배연신굿 (하효길 글·송봉화 사진, 화산문화, 2002)
안섬풍어제 (이인화, 도서출판신화, 2003)
당진풍어굿 (박종익·송봉화, 당진문화원, 2003)
충남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안섬 당제의 실상과 활로 모색 (박종익, 한국민속학 39, 한국민속학회, 2004)
조선후기 홍성 성호리 동제의 성립과 신격의 변화 (강성복,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0권 2호, 역사문화학회, 2007)

당진안섬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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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1-29

정의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안섬[內島]’에서 새해를 맞이하여 풍어를 기원할 목적으로 음력 정월에 올리는 ‘당굿’, ‘당제’ 또는 ‘풍어제’라고도 한다. 이 굿은 2001년 6월 30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안섬당제의 유래는 분명치 않으나 400여 년 전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을에서는 주민의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계시를 내렸다고 한다. 즉 옛날에 어느 노부부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외롭고 적적한 나날을 보내던 부부는 어느 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서 이르기를 “너희가 당을 짓고 잘 위하면 마을이 형성되고 하는 일이 잘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 뒤로 당을 짓고 매년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내용

제당은 마을의 서북쪽 야산에 위치한다. 당내 주벽에는 본래 3개의 선반이 나란히 안치되어 있다. 앞에서 보았을 때 중앙을 본당, 좌측을 장군당, 우측을 소당 또는 각시당이라고 부른다. 3위의 신격 가운데 본당신은 절대적인 존재인 용으로, 당할아버지 또는 진대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런 까닭에 1990년대 화재로 소실된 당집을 새로 건립하면서 용 그림을 봉안했다. 장군당은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소당은 소당애기씨 또는 소당각시로 칭하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성인 서낭신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소당에 올리는 폐백은 청홍색의 옷감과 미역이다. 그런데 안섬 일대에서 파다하게 퍼져 있는 설화에 따르면 이들 세 마을에서 모시는 당신은 가족관계를 이룬다고 한다. 즉 안섬의 본당에 좌정한 주신은 용신인 할아비당(남편), 한진은 여성인 큰할미당(큰마누라), 성구미는 작은할미당(작은마누라)으로 각각 인식되고 있다. 해마다 동짓달 그믐에 열리는 대동계에서 제일의 택일 및 당주의 선출, 제수비용 등 당제와 관련된 제반 절차가 논의된다. 먼저 제일은 새해 첫 용날[上辰日]로 잡되 첫 병진일(丙辰日)과 정월 초하루는 피하는 게 관례이다. 첫 병진일을 꺼리는 이유는 병의 발음이 질병을 뜻하는 병(病)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월 초하루에 용날이 들면 날짜를 연기하는데 이는 마을 사람들이 설 차례를 지내야 하는 까닭이다. 이처럼 제일을 굳이 용날로 정하는 것은 본당에 모신 당신(堂神)이 속칭 진대할아버지(뱀)로서 바다를 관장하는 용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안섬에서 당할아버지는 용이라 하지 않고 흔히 뱀에 빗대어 진대할아버지로 부르는데, 뱀은 곧 용을 뜻하므로 결국 본당에 좌정한 신격을 용신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때문에 정작 본당에는 뱀이 아닌 용의 화상을 그려놓았다. 이처럼 뱀의 존칭인 진대 또는 진대서낭을 모신 사례는 태안 황도 당제, 보령 장고도 당제 등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이들 도서지역의 당제에서 공통적으로 전승되는 속신은 돼지를 극히 꺼려한다는 점이다. 돼지는 곧 뱀과 상극인 까닭에 돼지고기를 당제의 제물로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먹어서도 안 되고, 심지어 평소 주민들이 돼지를 사육하는 것조차 금기시했다. 당제를 주관하는 제관은 생기복덕(生氣福德)을 보아 당주•주감•당화장을 선출하되 집안에 초상이나 출산, 달거리 등 부정이 없는 정갈한 사람이어야 한다. 당주는 풍어당굿을 총괄하는 책임자로서 제수 준비, 제장 관리, 당제 진행 등 전반을 주관한다. 주감은 당주를 보좌하여 그 실무를 집행하는 임무를 띤다. 그리고 당화장은 주감의 지시를 받는 사역인으로 3, 4명을 뽑는다. 이들 사역인은 당제와 관련된 잡역을 도맡아 한다. 이들 중에서 당주와 주감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당굿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그런가 하면 주부라 하여 당제에 소요되는 비용을 갹출하는 사람도 대동계에서 선정한다. 당제에 필요한 경비는 대제(大祭)•소제(小祭)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소제의 경우 500만원 안팎이 소요되지만 대제는 통소를 구입할 뿐 아니라 여러 명의 무당과 악사를 초청하기 때문에 2000만원 이상의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현재 당제의 비용은 충청남도와 당진군으로부터 일부를 지원받고 있으나 과거에는 중선배를 소유한 선주만 40여 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마을 자체에서 모든 비용을 조달했다. 이때 각 호구를 방문하여 돈을 걷는 사람을 돈주부라 하고, 쌀을 갹출하는 사람을 쌀주부라 불렀다. 당굿이 임박하면 안섬마을은 아연 활기를 띤다. 당주와 주감은 당집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왼새끼를 꼬아 금줄을 치고, 황토를 편다. 제수는 당진읍내로 나가 각 당에 진설할 제물을 골고루 준비하되 값을 깎거나 흥정을 벌이지 않는다. 말을 할 수 없으므로 손짓이나 눈짓으로 대화를 나누고, 구입한 뒤에는 서둘러 마을로 돌아온다. 제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제 때 올리는 황소이다. 실한 소를 고르면 다른 제물과 마찬가지로 달라는 대로 값을 지불한다. 시장에서 구입한 소는 진일(辰日)에 잡으며, 대동샘에서 목욕을 시킨 다음 당산으로 끌고 올라간다. 이때 무당이 기다리고 있다가 부정풀이를 해 준다. 제주로 사용될 조라술은 섣달그믐날 당집을 도배한 후에 직접 담근다. 이 술은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잘 익는다고 한다. 본당과 장군당에 진설될 해적은 새해 첫 출어를 한 어민이 잡아온 준치나 숭어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당집 입구에 매달아둔다. 이것을 지숙이라고 한다. 안섬당제의 화려함을 더해 주는 장식물은 단연 뱃기와 봉죽기이다. 뱃기는 단색•삼색•오색으로 만든다. 이를 각각 외폭기•세폭기•오폭기라고 한다. 뱃기의 일종인 봉죽기는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만선의 기쁨을 알리는 깃발이다. 깃발의 최상부에 꽃장식을 길게 늘인 서리화를 매고, 그 아래에 청•홍•백의 삼색 또는 노랑과 초록을 더해 오색천을 달았다. 서리화는 임금이 과거 급제자에게 내리는 어사화를 모방한 것이다. 곧 출어를 떠난 중선배가 예상보다 많은 어획량을 올렸을 때 봉죽기를 만들어 상부에 꽂고 신명나는 배치기를 하며 포구로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이 마중을 나와 반갑게 맞이한다. 이는 고기잡이에서 장원을 하였다는 뜻이다. 안섬당제는 새해를 맞이하여 마을의 당산에 좌정한 수호신에게 풍어 및 고깃배의 안전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제차는 본제, 당굿, 뱃고사, 거리굿, 지신밟기의 순으로 진행된다. 당일 오후 3, 4시가 지나면 당주와 무당, 선주들은 뱃기를 들고 당산으로 향한다. 당주와 보살이 앞장서고, 그 주위에 풍물패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연방 길군악을 울린다. 그 뒤에는 선주들의 뱃기가 서열에 따라 길게 장사진을 친다. 서열은 배의 규모에 의해 결정된다. 행진 과정에는 일명 봉죽타령으로 불리는 배치기가 풍어의 소망을 담아 흥겹게 좌중을 압도한다. 당 입구에 이르면 잠시 행진을 멈추고 무당이 부정풀이를 한다. 이윽고 당에 도착하면 뱃기를 가지런히 세워 놓고 할아버지당•장군당•각시당에 제물 두 벌씩을 진설한다. 본제는 당주가 먼저 술을 따르고 세 당에 각각 재배한 다음 물러난다. 이어서 선주들이 뱃기의 순서에 따라 재배한다. 마지막으로 무당이 굿을 한 자리 하고 소지를 올린 뒤 저녁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본제에 이은 당굿은 무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예전에는 대개 여섯 석의 굿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부정풀이, 본당굿, 대동굿, 어망굿, 지석굿, 하전굿이 그것이다. 첫 석인 부정풀이는 여느 굿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당굿을 시작하기 전에 부정을 물리치는 의식이다. 둘째 석인 본당굿은 당의 신령을 위해 축원하는 굿이고, 셋째 석인 대동굿은 마을의 무사태평과 가가호호의 재복을 기원하는 굿으로 무슨 일이든 잘되게 해 달라고 축원한다. 넷째 석인 어망굿은 풍어를 빌고 어선의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굿이다. 이 과정에서 무당은 선주들을 대상으로 배소지와 선주소지를 올려 준다. 이어서 연장자 순으로 마을 사람들의 소지를 불사르며 축원을 해 준다. 다섯째 석인 지석굿은 원한에 맺혀 죽은 혼령이나 무주고혼을 위한 해원풀이로서 극락왕생을 빌어주는 굿이고, 여섯째 석인 하전굿은 당굿의 마지막 절차로서 마무리를 고하는 굿이다. 여섯 석의 굿이 모두 끝나면 명도를 가린다. 이는 당에 좌정한 신에게 이틀간의 치성을 잘 받았는지를 묻는 의식이다. 이튿날 당주는 아침 일찍 당에 올라가서 당굿을 한 제물을 선주들에게 분배한다. 이때 당화장과 주감이 “고사바구니 가져오시오”라고 신호를 보내면 선주들은 바구니에 자신의 이름을 써서 당집으로 들인다. 이 음식을 당맞은 음식이라고 하며, 선주들의 바구니마다 골고루 나누어 담는다. 이어서 무당은 당집에서 가져온 뱃기를 차례로 대쌀바지에 세우고 공수를 내린다. 이 같은 행위를 신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뱃기마다 길지를 매어 깃손을 달아주면 각자 음식을 자신의 어선으로 가져가서 뱃고사를 지낸다. 뱃고사를 마치고 오후가 되면 장승제•용왕제(샘제)•거리제(서낭제)가 거행된다. 안섬에서는 이를 일러 ‘거리굿 나간다’고 표현한다. 안섬은 바다로 막혀 있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쪽 세 방향에 장승이 위치한다. 당굿 하루 전날에 인근의 야산에서 장승목을 베어와 마을 입구에 각각 남녀 한 쌍씩 6기의 장승을 세운다. 장승제는 당집 입구의 장승 앞에 제물을 차려 놓고 무당이 치성과 축원을 드린다. 그런 다음 마을 안에 위치한 대동샘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이어서 무당과 풍물패는 마을 한복판 사거리로 나가 거리제를 올리고, 나머지 두 곳의 장승에도 제를 지낸다. 이즈음이 되면 날이 어둑어둑해지며, 풍물패는 밤이 늦도록 가가호호를 돌며 지신밟기를 한다. 지신밟기는 하루를 넘겨 이튿날 오전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해서 모든 절차가 갈무리되면 대동회의를 열고 비용을 결산한다.

의의

안섬당제는 이웃한 한진과 성구미 마을의 당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흥미롭게 본당의 신이 남편·부인·첩실의 관계를 이루는 것은 당제의 형성 과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임경업 장군으로 추정되는 장군신을 함께 모시는 등 안섬 일대의 당제는 조선 후기 이래 중선배를 이용한 연평도 조기잡이의 관행이 일정하게 반영된 산물로 이해된다. 이는 안섬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홍성 성호리의 임장군당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듯이 조기의 신, 풍어의 신으로 숭앙을 받는 임경업 장군은 조선 후기 어업생산력의 변화와 더불어 이미 18세기 초·중엽에 서해안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된 새로운 당신앙이었다. 실제로 지난날 전형적인 어촌의 면모를 지니고 있던 안섬 사람들에게 연평도 근해의 조기잡이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고, 임 장군의 조력 여하에 따라 출어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믿어 왔다. 이런 까닭에 해마다 신년의례로 마을 앞 당산에서 수호신인 당신(堂神)을 맞이하여 풍어를 빌고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는 성대한 당굿을 베풀었던 것이다. 이러한 당맞이(당맞이굿) 의식은 서해안 당제의 연행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당진의 민간신앙 (이인화, 당진문화원, 1996)도서지 (충청남도·한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1997)한국의 마을제당 -충청남도편 (국립민속박물관, 1998)충청남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서해안배연신굿 (하효길 글·송봉화 사진, 화산문화, 2002)안섬풍어제 (이인화, 도서출판신화, 2003)당진풍어굿 (박종익·송봉화, 당진문화원, 2003)충남 당진군 송악면 고대리 안섬 당제의 실상과 활로 모색 (박종익, 한국민속학 39, 한국민속학회, 2004)조선후기 홍성 성호리 동제의 성립과 신격의 변화 (강성복,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0권 2호, 역사문화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