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인명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1-29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보유자.

내용

김윤수(金允洙, 남)는 1946년에 제주시 이도1동의 속칭 ‘남수각’에서 태어났다. 2남 2녀 중 장남이다. 그의 집안의 원래 고향은 북제주군(현재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이다. 이용옥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부인 이용옥 역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심방이다.

김윤수는 본인까지 4대째 무업이 이어지고 있는 심방 집안출신이다. 그의 집안에는 심방 자손이 나오게 된 내력이 전한다. 김윤수의 6대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조부가 산터(묘지터)를 보기 위해 아는 지관을 데려갔다고 한다. 지관이 한 장소를 가리키며 그 곳에 산(묘지)을 쓰면 자손은 많이 생기지만 심방 자손이 나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조부는 심방 자손이 나와도 좋으니 그곳에 산을 쓰게끔 달라고 해서 묘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지관이 하관(下棺)할 시간이 되면 서쪽으로 삼석소리, 즉 굿 하는 소리가 날 것이고 굿 소리가 나면 그때 하관하라고 말하고 갔다고 한다. 하관 시간이 되니 정말 ‘궷드르’(궤평동.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의 지명) 마을에서 굿 소리가 났다. 굿 소리가 난 후에 하관을 했는데 그 후에 증조부 때부터 심방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성편(姓便)으로 4대째 무업을 계속 이어온 것이다. 성편에서는 증조부부터 김윤수까지 모두 13명의 심방을 배출했다. 외가 쪽으로도 외조부 때부터 심방일을 하기 시작해 외삼촌인 홍명관과 이모가 심방이다.

김윤수를 처음 무업(巫業)의 길로 이끈 이는 큰어머니 문옥선 심방이다. 문옥선은 큰아버지 김천년의 둘째 부인이다. 김천년은 당시 제주도에서 이름난 심방 중 한 사람이었다. 문옥선은 김천년의 자식들이 무업에 관심이 없자 김윤수에게 큰아버지 대를 이으라고 했다. 김윤수는 13세 무렵부터 문옥선을 따라 굿판에 다니기는 했으나 무업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1, 2년이 지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하자 문옥선이 큰아버지의 대를 이으라고 계속 권했다. 그 뒤로 큰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굿을 배우기 시작, 16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심방에 대한 차별이 심한 데다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어 김윤수는 심적 갈등도 많이 겪고 방탕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제대 후 계부인 양금석 심방의 권유에 따라 굿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후 김윤수는 당시 조천읍 신촌리에 살던 고군찬 심방을 수양어머니로 삼아 따라다니며 일을 했다. 수양어머니의 배려로 거주지도 신촌으로 옮겨 지금까지 살고 있다. 29세 때 처음으로 제주시 봉개동 강씨 단골의 굿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점차 심방으로 이름이 나서 굿을 활발하게 하였다. 김윤수는 계부인 양금석, 큰어머니인 문옥선, 수양어머니인 고군찬 등에게 굿을 배웠다. 그의 첫 신굿은 1986년에 신촌리 자신의 집에서 진부옥이 수심방을 맡아 14일 동안 하였다.

김윤수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기능보유자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첫 기능보유자는 안사인 심방이다. 김윤수는 안사인과도 일찍부터 굿을 함께 다니던 사이였다. 1986년에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가 만들어지면서 안사인과 함께 많은 활동을 하였다. 안사인이 작고하자 5년 후인 1995년에 그의 뒤를 이어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한편 김윤수는 현재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 외에도 수양어머니가 물려준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의 불돗당도 매고 있다. 굿을 하러 다니는 중심적인 지역은 제주시 건입동 산지와 봉개동, 조천읍 일대인 와산리, 신촌리, 와흘리, 조천리, 선흘리 등지이다.

참고문헌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제주도 굿의 ‘공시풀이’ 고찰 (강소전, 한국무속학 14, 한국무속학회, 2007)
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8)

김윤수

김윤수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인명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1-29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 제주칠머리당영등굿 기능보유자.

내용

김윤수(金允洙, 남)는 1946년에 제주시 이도1동의 속칭 ‘남수각’에서 태어났다. 2남 2녀 중 장남이다. 그의 집안의 원래 고향은 북제주군(현재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이다. 이용옥과 혼인하여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부인 이용옥 역시 뛰어난 기량을 지닌 심방이다. 김윤수는 본인까지 4대째 무업이 이어지고 있는 심방 집안출신이다. 그의 집안에는 심방 자손이 나오게 된 내력이 전한다. 김윤수의 6대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고조부가 산터(묘지터)를 보기 위해 아는 지관을 데려갔다고 한다. 지관이 한 장소를 가리키며 그 곳에 산(묘지)을 쓰면 자손은 많이 생기지만 심방 자손이 나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조부는 심방 자손이 나와도 좋으니 그곳에 산을 쓰게끔 달라고 해서 묘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지관이 하관(下棺)할 시간이 되면 서쪽으로 삼석소리, 즉 굿 하는 소리가 날 것이고 굿 소리가 나면 그때 하관하라고 말하고 갔다고 한다. 하관 시간이 되니 정말 ‘궷드르’(궤평동.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의 지명) 마을에서 굿 소리가 났다. 굿 소리가 난 후에 하관을 했는데 그 후에 증조부 때부터 심방일을 하기 시작하였고 성편(姓便)으로 4대째 무업을 계속 이어온 것이다. 성편에서는 증조부부터 김윤수까지 모두 13명의 심방을 배출했다. 외가 쪽으로도 외조부 때부터 심방일을 하기 시작해 외삼촌인 홍명관과 이모가 심방이다. 김윤수를 처음 무업(巫業)의 길로 이끈 이는 큰어머니 문옥선 심방이다. 문옥선은 큰아버지 김천년의 둘째 부인이다. 김천년은 당시 제주도에서 이름난 심방 중 한 사람이었다. 문옥선은 김천년의 자식들이 무업에 관심이 없자 김윤수에게 큰아버지 대를 이으라고 했다. 김윤수는 13세 무렵부터 문옥선을 따라 굿판에 다니기는 했으나 무업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1, 2년이 지나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하자 문옥선이 큰아버지의 대를 이으라고 계속 권했다. 그 뒤로 큰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굿을 배우기 시작, 16세 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업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심방에 대한 차별이 심한 데다 당국의 단속도 강화되어 김윤수는 심적 갈등도 많이 겪고 방탕하게 지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다시 아프기 시작하였다. 제대 후 계부인 양금석 심방의 권유에 따라 굿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이후 김윤수는 당시 조천읍 신촌리에 살던 고군찬 심방을 수양어머니로 삼아 따라다니며 일을 했다. 수양어머니의 배려로 거주지도 신촌으로 옮겨 지금까지 살고 있다. 29세 때 처음으로 제주시 봉개동 강씨 단골의 굿을 맡아서 하게 되었다. 그 뒤로는 점차 심방으로 이름이 나서 굿을 활발하게 하였다. 김윤수는 계부인 양금석, 큰어머니인 문옥선, 수양어머니인 고군찬 등에게 굿을 배웠다. 그의 첫 신굿은 1986년에 신촌리 자신의 집에서 진부옥이 수심방을 맡아 14일 동안 하였다. 김윤수는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인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기능보유자이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은 1980년 11월 17일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첫 기능보유자는 안사인 심방이다. 김윤수는 안사인과도 일찍부터 굿을 함께 다니던 사이였다. 1986년에 제주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가 만들어지면서 안사인과 함께 많은 활동을 하였다. 안사인이 작고하자 5년 후인 1995년에 그의 뒤를 이어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의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한편 김윤수는 현재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 외에도 수양어머니가 물려준 제주시 조천읍 와산리의 불돗당도 매고 있다. 굿을 하러 다니는 중심적인 지역은 제주시 건입동 산지와 봉개동, 조천읍 일대인 와산리, 신촌리, 와흘리, 조천리, 선흘리 등지이다.

참고문헌

제주 칠머리당영등굿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제주도 굿의 ‘공시풀이’ 고찰 (강소전, 한국무속학 14, 한국무속학회, 2007)인간과 신령을 잇는 상징 무구-전라남도·전라북도·제주도 (국립문화재연구소, 민속원,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