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吉紙)

한자명

吉紙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길(吉)한 운수를 지닌 종이. 마을 제의와 관련한 길지는 매우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내포하는 의미 또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길지는 한지를 두세 겹으로 접어 길게 늘어뜨리거나 시렁에 매기도 하고, 위패나 신체(神體)를 감싸기도 한다.

형태

길지는 마을신앙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당이나 신성 공간을 설정할 때 치는 금줄에 끼운 길지가 있다. 금줄은 왼새끼로 만든 다음 길지를 끼워 완성한다. 이때 중간 중간에 짚의 대궁 쪽이 8~10㎝ 삐쳐 나오게만든다. 이와 같이 만든 금줄은 사람이 지나다니면 머리에 걸릴 정도의 높이에 건다. 그 이유는 어두운 밤에도 금줄을 인지하여 잡인들이 신성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금줄에 불(佛)이나 금(禁)이란 한자를 쓴 길지를 끼우는 예도 있다. 충남 청양군 상송마을에서는 금줄에 끼우는 백지에 각종 잡신을 막기 위한 14분의 신위(神位)를 묵서한다. 이와 같이 금줄에 끼운 길지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가늘고 길게 자른 종이를 끼운 형태로 홀수가 되도록 꽂는다. 이와 같이 금줄에 길지를 꽂은 경우 대부분길지는 잡귀잡신을 막아 주는 신령의 신체로 볼 수 있다.

둘째, 길지를 나무로 만든 위패나 신수(神樹)ㆍ돌탑 등 신체에 실 또는 금줄을 이용하여 걸거나, 종이 고깔 모양으로 씌우는 형태가 있다. 제당에 모신 위패 형태의 신체에 신령을 새긴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은 마을도 있고, 제단 내에 신체의 의미를 지닌 돌에 종이를 두르고 실로 묶은 사례도 있다. 이와 함께 기고사를 지낼 때 깃대에 매거나 서낭대 등에 걸었으며, 배고사 등을 지낼 때 주요 장비에 실과 함께 맨 예도 많다. 강원도 삼척시 월천마을의 봉수대는 봉화 기능을 폐한 뒤 마을신앙의 처소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천제당이라고 부른다. 매년 마을제사를 지낼 때 봉수대 앞에 있는 돌에 길지를 실로 묶어 마을에서 모시는 신령으로 여긴다. 이와 함께 신수를 마을의 신령으로모시는 마을 대부분에서는 신수에 금줄을 두르고 길지를 제단 앞 부분을 향해 걸어둔다. 이와 같은 형태로 길지를 두른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길지를 신령의 신체로 여기고 있다.이와 함께 돌탑을 신앙 대상물로 하는 마을에서도 돌탑 중앙에 길지를 걸거나, 돌탑 머릿돌에 길지[한지]로 옷을 입힌 예가 매우 많다. 이 경우에도 길지를 신체로 여긴 마을도 있고, 신령을 위해 폐백을 드린다고 여기는 마을도 있다.

셋째, 마을 제당 내에 시렁이나 줄을 제당 정면이나 옆에 길게 가로질러 놓았을 때 길지를 시렁에 걸어둔 유형이 있다. 제당 정면에 걸었을 경우 별도의 위패나 당신도가 없으면이는 당연히 모시는 신령의 신체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있더라도 신체로서의 의미일 수도 있고, 신령에게 폐백을 드린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넷째, 길지를 제당 내의 정면 좌우측 모서리나 출입문 입구에 걸어 둔 마을이 있다. 이러한 마을에서는 대부분 한지를 여러 겹으로 접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걸어 둔 마을이많다. 이와 같은 형태로 길지를 건 마을에서는 길지를 신령에게 폐백을 드린 의미로 볼 수 있다. 경북 울진군 봉평마을에는 마을 서낭당과 해신당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없어짐에 따라 해신당을 폐하고 여기에서 모신 신령을 마을 제당으로 모셔와서 마을 제당 입구 출입문 옆에 길지를 걸어 해신당의 신체로 여기고 마을제사를 지낸 뒤 술을 한 잔 올려 준다.

다섯째, 좋은 한지를 생산하는 집이나 마을에서 품질 좋은 한지를 개인적으로 가져와서 신령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소지를 올리는 사례도 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서는 예부터 품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었으며, 일부 주민들은 마을굿을 할 때 한지를 가져와서 서낭님께 소지 형태로 헌공하는 사례가 있다.

여섯째, 마을 제사를 지내는 제당을 정화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길지를 살라 제당과 제관들을 정화하는 사례도 있다.

내용

길지를 일부 마을에서 소지를 올린 뒤 천장에 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제물을 진설하기 전에 걸거나 신체를 덮는다. 길지는 제당 내에 거는 유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기능을 구분하면 네 가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신체의 의미를 지닌 사례를 들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의 대부분 마을에서 제수를 진설하기 전에 한지를 시렁에 걸거나 정면 벽에 걸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위패나 신체로 여기는 돌 등에 실로 매어 두기도 한다. 이를 ‘위목을 맨다’라고 한다. 즉 한지를 성황님의 신체로 여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위목을 성황님의 신체로 여겨 걸거나 또 다른 의미로 성황님께 폐백을 드린다고 하여 봉헌물로서의 의미로 여기는 사례도 있다. 즉 제당 내에 위목만 거는 경우, 위패에 ‘위목’이라 칭하면서 거는 경우, 위패가 있어 서낭님께 폐백드린다고 여기며 거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서낭당이 당집 형태가 아닌 신목을 위하는 마을에서도 신목에 한지를 걸어 성황님의 신체로 여기는 마을이 많다.

서낭당 내에 위패나 당신도 등이 있으면서 한지를 매는 것은 서낭님께 폐백 드리는 의미에서 봉헌한다고 여기지만 이렇게 폐백 드린다는 것은 이전에 위패가 없을 때 한지를 신체로 여겨 걸었다. 그러나 위패나 당신도를 모시는 등 별도의 신체를 모신 경우에도 예전의 전통을 이어 계속 한지를 거는 것으로 여길 수있다. 가곡면 탕곡리 6반(절골)의 경우 서낭당 내부의 중앙 제단 위에 ‘성황사신위(城隍祠神位)’라고 한지에 묵서하여 신체로 여기면서 서낭고사를 지낼 때마다 위목이라 하여 한지를 걸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다른 마을에서도 발견된다.

충남 외연도에서는 당주가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길지를 선주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다. 길지를 받은 선주들은 오색기가 내걸린 배로 달려가 기관실 안의 서낭을 모신 곳에 묶어만선을 기원하면서 다시 용왕제를 진행한다. 이때 선주들이 기관실 안에 맨 길지 또한 신체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서낭당에 서낭신과 함께 수부신을 모시는 마을도 매우 많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서 신령으로 ‘성황지신신위(城隍之神神位)’라고 제당 내에 써서 서낭신을모시면서 함께 수부신을 모신다. 이는 서낭신을 생전에 위하던 사람이 돌아가시면 서낭신을 위한 수부신으로 좌정한 것으로 여긴다. 이와 유사한 예로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큰서낭에서 천씨를 수부신으로 모시는 예, 근덕면 교곡리 양지마을에서 단오굿을 할 때 이장집에서 수부상을 차려오는 예,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현내에서의 가오상 할아버지, 임원·장호·초곡 등 기타 지역에서 수부를 당신도로 그려 모시고, 별도의 제물을 차려 위하는 마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수부신을 위해 별도의 제수를 준비하거나 당신도를 그려 모시는 마을에서는 위목지를 걸 때 서낭과 함께 수부신을 위한 위목지도 함께 거는 마을이 많다. 그러나 마을서낭 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수부신에 대한 의례가 매우 약하거나 객귀와 같은 존재로 여겨 간단히 위하는 마을에서는 수부신을 위해 특별히 위목지를 거는 곳이 많지 않다.

둘째, 모시는 신령에게 폐백을 드리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 지동마을에서는 서낭제를 지낼 때 제수를 진설하기 전에 제당 내에 있는 신이 내린 돌에 씌워 놓은 고깔을 벗기고 새 고깔로 접어 씌운다. 이는 단종신에게 새 옷을 입히는 의미로 보인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노고소마을 서낭제에서는 제당 정면 위패 위에 예단이라 불리는 한지와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한 마리씩 걸어 두었다. 대전시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에서 탑제를 지낼 때 제를 지내기 전에 고양주는 탑 윗돌에 사고지를 입히고 새끼를 둘러 옷을 입힌다고 한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아랫담·윗담마을 탑제에서는 탑의 머릿돌에 한지로 옷을 입힌다고 한다. 이들 마을에서 길지를 걸어 둔 것은 폐백을 드리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길지는 부정을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즉 마을제사를 지내기 전에 제당 내외와 제관들의 부정을 벗겨내기 위한 행동으로 한지를 사르는 것은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 길지는 신을 의미하거나 신의 손길이 닿은 것이기 때문에 영험함이 스며 있다. 많은 마을에서 길지에 한자를 쓰거나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이용하면 글씨를 잘 쓰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믿는다. 일부 마을에서는 제당 내에 있는 길지를 가져와서 연을 만들어 날렸다는 마을도 있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장재터 서낭제에서는 소지를 모두 올리고 나서한지를 실과 함께 제당 내 천장에 매단다. 그리고 제당에 묶어 둔 한지를 일부 거둬 연을 만든다. 마을 어른과 아이들은 제당의 한지로 연을 만들어 높이 띄워 날리다가 놓아 주면 이것을 묶은 액을 날려 보내며 마을에 축복을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행위로 보았다.

이와 같이 길지를 마을 제당 내부나 외부에 어떤 형태로 걸었느냐와 더불어 제당 내 위패, 당신도 등에 따라 길지의 의미를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을 단위로 마을 주민들이 길지를 어떤 성격으로 여겼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이필영, 웅진닷컴, 2000), 삼척 임원리 굿과 음식 (김도현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한국의 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7), 강원도 영동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 (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내포지역 마을신앙의 전승과 변이 (이관호,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 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0)

길지

길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구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길(吉)한 운수를 지닌 종이. 마을 제의와 관련한 길지는 매우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내포하는 의미 또한 다양하다. 일반적으로 길지는 한지를 두세 겹으로 접어 길게 늘어뜨리거나 시렁에 매기도 하고, 위패나 신체(神體)를 감싸기도 한다.

형태

길지는 마을신앙 공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당이나 신성 공간을 설정할 때 치는 금줄에 끼운 길지가 있다. 금줄은 왼새끼로 만든 다음 길지를 끼워 완성한다. 이때 중간 중간에 짚의 대궁 쪽이 8~10㎝ 삐쳐 나오게만든다. 이와 같이 만든 금줄은 사람이 지나다니면 머리에 걸릴 정도의 높이에 건다. 그 이유는 어두운 밤에도 금줄을 인지하여 잡인들이 신성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일부 마을에서는 금줄에 불(佛)이나 금(禁)이란 한자를 쓴 길지를 끼우는 예도 있다. 충남 청양군 상송마을에서는 금줄에 끼우는 백지에 각종 잡신을 막기 위한 14분의 신위(神位)를 묵서한다. 이와 같이 금줄에 끼운 길지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가늘고 길게 자른 종이를 끼운 형태로 홀수가 되도록 꽂는다. 이와 같이 금줄에 길지를 꽂은 경우 대부분길지는 잡귀잡신을 막아 주는 신령의 신체로 볼 수 있다. 둘째, 길지를 나무로 만든 위패나 신수(神樹)ㆍ돌탑 등 신체에 실 또는 금줄을 이용하여 걸거나, 종이 고깔 모양으로 씌우는 형태가 있다. 제당에 모신 위패 형태의 신체에 신령을 새긴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은 마을도 있고, 제단 내에 신체의 의미를 지닌 돌에 종이를 두르고 실로 묶은 사례도 있다. 이와 함께 기고사를 지낼 때 깃대에 매거나 서낭대 등에 걸었으며, 배고사 등을 지낼 때 주요 장비에 실과 함께 맨 예도 많다. 강원도 삼척시 월천마을의 봉수대는 봉화 기능을 폐한 뒤 마을신앙의 처소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에서는 이곳을 천제당이라고 부른다. 매년 마을제사를 지낼 때 봉수대 앞에 있는 돌에 길지를 실로 묶어 마을에서 모시는 신령으로 여긴다. 이와 함께 신수를 마을의 신령으로모시는 마을 대부분에서는 신수에 금줄을 두르고 길지를 제단 앞 부분을 향해 걸어둔다. 이와 같은 형태로 길지를 두른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길지를 신령의 신체로 여기고 있다.이와 함께 돌탑을 신앙 대상물로 하는 마을에서도 돌탑 중앙에 길지를 걸거나, 돌탑 머릿돌에 길지[한지]로 옷을 입힌 예가 매우 많다. 이 경우에도 길지를 신체로 여긴 마을도 있고, 신령을 위해 폐백을 드린다고 여기는 마을도 있다. 셋째, 마을 제당 내에 시렁이나 줄을 제당 정면이나 옆에 길게 가로질러 놓았을 때 길지를 시렁에 걸어둔 유형이 있다. 제당 정면에 걸었을 경우 별도의 위패나 당신도가 없으면이는 당연히 모시는 신령의 신체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있더라도 신체로서의 의미일 수도 있고, 신령에게 폐백을 드린 의미로도 볼 수 있다. 넷째, 길지를 제당 내의 정면 좌우측 모서리나 출입문 입구에 걸어 둔 마을이 있다. 이러한 마을에서는 대부분 한지를 여러 겹으로 접지 않고 적당한 크기로 잘라 걸어 둔 마을이많다. 이와 같은 형태로 길지를 건 마을에서는 길지를 신령에게 폐백을 드린 의미로 볼 수 있다. 경북 울진군 봉평마을에는 마을 서낭당과 해신당이 있었다. 마을 주민들 가운데수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없어짐에 따라 해신당을 폐하고 여기에서 모신 신령을 마을 제당으로 모셔와서 마을 제당 입구 출입문 옆에 길지를 걸어 해신당의 신체로 여기고 마을제사를 지낸 뒤 술을 한 잔 올려 준다. 다섯째, 좋은 한지를 생산하는 집이나 마을에서 품질 좋은 한지를 개인적으로 가져와서 신령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소지를 올리는 사례도 있다.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서는 예부터 품질 좋은 한지가 생산되었으며, 일부 주민들은 마을굿을 할 때 한지를 가져와서 서낭님께 소지 형태로 헌공하는 사례가 있다. 여섯째, 마을 제사를 지내는 제당을 정화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길지를 살라 제당과 제관들을 정화하는 사례도 있다.

내용

길지를 일부 마을에서 소지를 올린 뒤 천장에 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제물을 진설하기 전에 걸거나 신체를 덮는다. 길지는 제당 내에 거는 유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기능을 구분하면 네 가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신체의 의미를 지닌 사례를 들 수 있다.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의 대부분 마을에서 제수를 진설하기 전에 한지를 시렁에 걸거나 정면 벽에 걸기도 하고, 나무로 만든 위패나 신체로 여기는 돌 등에 실로 매어 두기도 한다. 이를 ‘위목을 맨다’라고 한다. 즉 한지를 성황님의 신체로 여긴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위목을 성황님의 신체로 여겨 걸거나 또 다른 의미로 성황님께 폐백을 드린다고 하여 봉헌물로서의 의미로 여기는 사례도 있다. 즉 제당 내에 위목만 거는 경우, 위패에 ‘위목’이라 칭하면서 거는 경우, 위패가 있어 서낭님께 폐백드린다고 여기며 거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가 있다. 서낭당이 당집 형태가 아닌 신목을 위하는 마을에서도 신목에 한지를 걸어 성황님의 신체로 여기는 마을이 많다. 서낭당 내에 위패나 당신도 등이 있으면서 한지를 매는 것은 서낭님께 폐백 드리는 의미에서 봉헌한다고 여기지만 이렇게 폐백 드린다는 것은 이전에 위패가 없을 때 한지를 신체로 여겨 걸었다. 그러나 위패나 당신도를 모시는 등 별도의 신체를 모신 경우에도 예전의 전통을 이어 계속 한지를 거는 것으로 여길 수있다. 가곡면 탕곡리 6반(절골)의 경우 서낭당 내부의 중앙 제단 위에 ‘성황사신위(城隍祠神位)’라고 한지에 묵서하여 신체로 여기면서 서낭고사를 지낼 때마다 위목이라 하여 한지를 걸고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다른 마을에서도 발견된다. 충남 외연도에서는 당주가 만선(滿船)을 기원하는 길지를 선주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다. 길지를 받은 선주들은 오색기가 내걸린 배로 달려가 기관실 안의 서낭을 모신 곳에 묶어만선을 기원하면서 다시 용왕제를 진행한다. 이때 선주들이 기관실 안에 맨 길지 또한 신체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서낭당에 서낭신과 함께 수부신을 모시는 마을도 매우 많다.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서 신령으로 ‘성황지신신위(城隍之神神位)’라고 제당 내에 써서 서낭신을모시면서 함께 수부신을 모신다. 이는 서낭신을 생전에 위하던 사람이 돌아가시면 서낭신을 위한 수부신으로 좌정한 것으로 여긴다. 이와 유사한 예로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큰서낭에서 천씨를 수부신으로 모시는 예, 근덕면 교곡리 양지마을에서 단오굿을 할 때 이장집에서 수부상을 차려오는 예, 경북 울진군 울진읍 읍남리 현내에서의 가오상 할아버지, 임원·장호·초곡 등 기타 지역에서 수부를 당신도로 그려 모시고, 별도의 제물을 차려 위하는 마을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수부신을 위해 별도의 제수를 준비하거나 당신도를 그려 모시는 마을에서는 위목지를 걸 때 서낭과 함께 수부신을 위한 위목지도 함께 거는 마을이 많다. 그러나 마을서낭 고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수부신에 대한 의례가 매우 약하거나 객귀와 같은 존재로 여겨 간단히 위하는 마을에서는 수부신을 위해 특별히 위목지를 거는 곳이 많지 않다. 둘째, 모시는 신령에게 폐백을 드리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사례들이 있다.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내리 지동마을에서는 서낭제를 지낼 때 제수를 진설하기 전에 제당 내에 있는 신이 내린 돌에 씌워 놓은 고깔을 벗기고 새 고깔로 접어 씌운다. 이는 단종신에게 새 옷을 입히는 의미로 보인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노고소마을 서낭제에서는 제당 정면 위패 위에 예단이라 불리는 한지와 실타래로 묶은 북어를 한 마리씩 걸어 두었다. 대전시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에서 탑제를 지낼 때 제를 지내기 전에 고양주는 탑 윗돌에 사고지를 입히고 새끼를 둘러 옷을 입힌다고 한다. 충남 금산군 부리면 아랫담·윗담마을 탑제에서는 탑의 머릿돌에 한지로 옷을 입힌다고 한다. 이들 마을에서 길지를 걸어 둔 것은 폐백을 드리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셋째, 길지는 부정을 정화하는 의미가 있다. 즉 마을제사를 지내기 전에 제당 내외와 제관들의 부정을 벗겨내기 위한 행동으로 한지를 사르는 것은 여기에 해당한다. 넷째, 길지는 신을 의미하거나 신의 손길이 닿은 것이기 때문에 영험함이 스며 있다. 많은 마을에서 길지에 한자를 쓰거나 공부할 때 연습장으로 이용하면 글씨를 잘 쓰거나 공부를 잘한다고 믿는다. 일부 마을에서는 제당 내에 있는 길지를 가져와서 연을 만들어 날렸다는 마을도 있다. 강원도 속초시 설악동 장재터 서낭제에서는 소지를 모두 올리고 나서한지를 실과 함께 제당 내 천장에 매단다. 그리고 제당에 묶어 둔 한지를 일부 거둬 연을 만든다. 마을 어른과 아이들은 제당의 한지로 연을 만들어 높이 띄워 날리다가 놓아 주면 이것을 묶은 액을 날려 보내며 마을에 축복을 내려 달라고 기원하는 행위로 보았다. 이와 같이 길지를 마을 제당 내부나 외부에 어떤 형태로 걸었느냐와 더불어 제당 내 위패, 당신도 등에 따라 길지의 의미를 다양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마을 단위로 마을 주민들이 길지를 어떤 성격으로 여겼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참고문헌

마을신앙으로 보는 우리 문화 이야기 (이필영, 웅진닷컴, 2000)삼척 임원리 굿과 음식 (김도현 외,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한국의 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07)강원도 영동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 (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내포지역 마을신앙의 전승과 변이 (이관호,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9)조선후기 충청지역의 동제 연구 (강성복, 공주대학교박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