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농바우끄시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2-12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 있는 농바우를 대상으로 비를 기원하는 여성 기우제의 하나.‘끄시기’는‘끌다’의 금산 지역 사투리로, 농바우끄시기는 농처럼 생긴 바위에 동아줄을 걸고 끌어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0년 9월 2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및 유래

농바우끄시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전설에 따르면 수백 년 전부터 날이 가물면 부녀자들이 농바우에 동아줄을 걸어 놓고 비를 기원했다고 한다. 농바우에는 장수 또는 임금님의 갑옷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며, 이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날 천지개벽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1. 옛날에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린 장수가 살고 있었다. 장수의 부인들은 서로 먼저 장수를 차지하려고 늘 투기를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발발하여 장수는 부인들을 남겨 둔 채 싸움터로 나가 커다란 공을 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벗어 놓은 장수의 갑옷을 두고 또다시 두 부인이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장수는 갑옷을 빼앗아 바위로 된 단단한 농 안에 넣고 다시는 꺼내 볼 수 없도록 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때 장수의 갑옷이 보관된 농이 지금의 농바우라고 한다.

  2. 옛날에 힘센 장수가 살고 있었다. 장수는 자기의 갑옷을 농바우에 넣어 두었다. 세상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갑옷을 구경하려고 자꾸만 농바우를 열어 보았다. 이에 화가 난 장수가 농바우를 뒤집어 놓고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3. 언제부터인가 농바우에는 임금의 갑옷이 들어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임금에게는 애첩이 한 명 있었다. 애첩은 갑옷이 몹시 보고 싶어 자꾸만 농바위를 열어보려고 하였다.그러자 화가 난 임금은 장수를 거느리고 직접 이곳에 행차하여 갑옷을 꺼내 입고는 장수로 하여금 농바위를 뒤집어 놓도록 했다.

  4. 옛날에 마음씨 착한 노부부가 살았다.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부부는 뒤늦게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빨이 나고 겨드랑이에 날개와 같은 비늘이 달려 있었다. 아이는 세 살이 되자 무거운 물건을 몰래 옮겨 놓고 병정놀이를 하는 등 신이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 챈 노부부는 장차 집안에 화근이 될것을 두려워하여 자식을 질식시켜 죽였다. 그러자 멀쩡하던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백마 한 마리가 슬피 울면서 농바우 곁에 와서 따라죽었다. 백마는 아이가 장성해 군사를지휘할 때 탈 말이었고, 농바우에는 장수가 되면 입을 갑옷이 들어 있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욕심 많은 석수장이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석수장이는 갑옷을 꺼내 입을 요량으로 농바우를 건드렸다가 오히려 혹독한 가뭄만 불러들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길을 지나던 스님이 비책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농바우를 흔들면 진노한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었다. 스님의 말대로 부녀자들이 몰려가서 농바우를 끄시니 과연 응함이 있어 멍석날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 뒤부터 가뭄이 들면 농바우를 끌어내리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이와 같이 농바우 설화는 장수와 갑옷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농바우에 대한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켜 주면서 농바우끄시기가 널리 확산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농바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속설은 농바우끄시기의 핵심 기재로 작용하였다. 이 때문에 부녀자들은 날이 가물면 농바우를 끌어내리는시늉을 하는 것으로, 이를 보고 깜짝 놀란 하늘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기 전에 비를 내려준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즉 농바우가 산중턱에 남아 있는 한 천지개벽의 가능성은항상 열려 있는 셈이고, 이것은 가뭄을 해갈시켜 줄 운우(雲雨)의 상징인 동시에 민초들에게 마지막 남은 보루였던 것이다.

전승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농바우끄시기는 사실상 1990년대 초에 중단되었다. 이제 더 이상 기우제를 지낼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1993년에 보존회가 결성되어 금강민속축제, 금산인삼축제 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전승 활동을 펼쳐 왔다. 이후 1999년 9월 17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0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연하여 부문별 최우수상인 장관상을 받았다.

내용

어재리 금강변에는 반닫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농바우가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한발이 닥치면 인근의 여러 마을이 이 바위에 동아줄을 매고 농바우를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농바우끄시기에는 어재리를 비롯한 부리면 일대의 수십 개 마을이 참여했으며, 인접한 제원면 용화리·가마골·금성리·저곡리 등에서도 동참했다. 가뭄이 극심한 해에는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금산읍 등 외부에서도 부녀자들이 찾아와 무제(기우제)를 지내며 농바우를 끄셨다고 한다.

그러나 가뭄의 징조가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농바우끄시기가 모의되는 것은 아니다. 농바우끄시기는 인명이 달려 있는 극심한 한발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실행되지 않았다. 실제 촌로들에 따르면 일생 동안 농바우를 끄신 것은 고작 4~5회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천지개벽을 꾀해 비를 기원하는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농바우끄시기는 물병매기-용줄(동아줄)꼬기-용줄매기-무제-농바우끄시기-개막기-날궂이 순으로 진행된다. 또한 농바우끄시기와 연계된 기우 행사로‘암장발굴(暗葬發掘)’과‘대늪치기’가 있다.

  1. 물병매기 : 하지(夏至)가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를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가 행해진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황토를 깔고, 빈병에 물을 가득 담아 주둥이에 솔가지를꽂고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그러면 병에 들어 있는 물이 솔잎을 타고 흘러나와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똑똑 떨어진다. 비가 오는 장면을 가상으로 연출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도운우를 기원하는 유감주술이다.

  2. 용줄꼬기 : 이렇게 정성을 다한 뒤에도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마을에서는 농바우를 끄셔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는다.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 “저놈의 농바우를 깨부셔야지!”, “농바우를 끄셔야 비가 내릴 몬양여!”하고 이구동성으로 농바우를 끄셔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된다. 의견이 모아지면 이틀 사흘 뒤로 다급하게 날짜를잡는다. 비가 예고 없이 내리는 것과 같이 택일을 느닷없이 결정해야 더욱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농바우를 끄실 날이 정해지면 집집마다 짚단을 걷어서 농바우에 걸 동아줄을 튼다. 이때 줄의 굵기는 20㎝ 안팎, 길이는 100발 이상이 되도록 길게 꼰다.

  3. 용줄매기 : 당일 아침에 마을의 청장년들은 전날 밤 늦도록 꼰 동아줄을 가지고 일찌감치 농바우가 있는 시루봉으로 가서 줄을 매어 둔다. 농바우에 줄을 매는 동안 부인네들은 목욕재계하고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은 다음 제물, 음식, 술과 날궂이할 때 사용할 챙이 및 바가지를 가지고 농바우로 향한다. 이때 달거리를 하거나 집안에 부정이 있는 여인은 농바우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4. 무제 : 농바우에 도착하면 그 아래에 제물을 차려 놓고 기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이를“무지(무제) 잡숫는다”고 한다. 제물은 백설기, 삼색실과, 포, 불백기 등이다. 마을 형편에 따라 돼지머리를 올려 놓기도 한다. 무제는 축문 없이 간단하게 잔만 올리고 참여자 모두 재배한다. 이어서 입심 좋은 할머니가 고사덕담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소지를 올린다.

    하늘님네 오늘 그저 비 좀 내리게 해주세요
    하늘님네 산신님네 이렇게 기도를 드리오니
    오늘해전 많은 비를 맞고 가게 점지하옵소서
    하늘님네 만인간이 모두 하늘님네한테 공을 드리오니
    오늘해전 멍석날 같은 비가 쏟아지게 점지하옵소서

  5. 농바우끄시기 : 무제를 마치면 “농바우끄시세”라는 신호와 함께 동아줄을 당긴다. 이때 신명이 좋은 아주머니(또는 남성 소리꾼)가 농바우 꼭대기에 올라앉아 온갖 재담을 섞어가며 구성지게 선소리를 매기면 아래에서 줄을 잡고 있던 부녀자들은 뒷소리를 받으며 마치 줄다리기 하듯이 흥겹게 농바우를 끄신다. 선소리꾼사설에는 농바우에 대한 신성 관념과 민간 사고, 농바우끄시기의 전개 과정이 함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여차 어구여차 우여차)
    우리가 무지 지낼 때 비를 내리라고 무제 지내잉께
    칠년대한 가물음에도 비를 내려야 농사를 지지
    (어구여차)
    힘껏 댕겨서 질겁게 하고 힘껏 댕겨서 질겁게 놀고
    기분 좋게 고사를 해야지 비를 하느님이 내레주지
    이 바우는 특수한 바우요 하나님이 마련한 바우고
    옛날옛적 장수바우니 갑오(옷)들은 가보니
    이 바우를 건들기만 하면 비를 내리게 하는 바우니
    동애줄을 묶어 가주구 시방 사람이 끌으면
    뇌성겉은 우루루루 하늘에 울며불며
    구름에 모여들며 소내기가 오면은
    가뭄을 해소하는 옛날에 전설에
    전통 있는 명문 옷 그런 갑옷 바우로다
    (어구여차)
    소내기 오게만 계속해서 끌어주소
    (어구여차 우여차)
    계속해서 끌어주소
    (어구여차 우여차 에헤헤)
    이 마당에 고사를 하고 징 장구를 울려가면
    갱변이서 그 개[洑]를 막고 한 마대기 풍장치고
    지깔지게 놀다가면 무지꾼이 소내기 맞고
    출출하고 도망가데 어구여차 재미좋다
    해소했네 가뭄을 해소했네 ….

  6. 개막기 : 농바우끄시기를 마치면 마을에서 신기(神氣) 있는 할머니(또는 단골네)가 점을 쳐서 언제쯤 비가 내릴 것인지를 예언하기도 한다. 점을 치는 곳은 갓바위 밑에 움푹들어간 부분이며, 한 사람을 선정해 신장대를 잡게 한 다음 무당이 공수를 내리듯이 비 올 시기와 강우량을 예언하는 것이다. 점괘가 잘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점을 쳐서언제 비가 내릴 것 인지를 알아본다. 이때 할머니의 입에서 “날궂이를 하고 나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든가 “집으로 돌아갈 때 비를 맞고 갈 것이다”라는 점괘가 나오면 아낙네들은 흡족히 여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날궂이를 하러 개여울로 간다. 강변에 내려오면 돌을 날라다가 둑을 쌓고 여울물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다. 이것을‘개[洑] 막는다’고 한다. 곧 가뭄이 심해 강물조차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니 여울을 막아야만 물 속에서 날궂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날궂이 : 개를 막은 뒤에는 “우리 동네 큰애기들이 날이 가물어서 빨래를 못해 시집을 못 가니 오늘내로 비 좀 내려 주시오” 하고 간곡히 호소한다. 날궂이를 할 때는 모든 아낙네가 벌거벗거나 고쟁이만 걸치고 물 속에 들어가서 개여울이 떠나가도록 물장난을 치고 춤을 추며 논다. 또는 더러운 고쟁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강물에 속옷을 빨면서 온갖해괴망측한 행동을 하는가 하면 물 속에 오줌을 누기도 한다. 강물을 더럽혀야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인들의 날궂이는 단순히 물장난을 치고 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비를 염원하는 유감주술의 의미가 내재된 것이다. 아낙네들은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머리에 물을 부으면서 “비 맞아라, 비요! 비요! 이 비맞고 목깡이나 하거라”라고 실제 소낙비를 맞는 흉내를 낸다. 또한 챙이[키]에 물을 담아 마을을 향해 까부르며 비가 내리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농바우를 끄시고 날궂이를 하면 신통하게도 비가 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어느 해에는 농바우를 끄시는데 진악산 줄기에서 먹구름이 일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고, 날궂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서 장대비를 맞고 간 일도 있다고 한다. 또한 농바우를 끄시다가 비가 내리면 갓바우 밑에서 종종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

한편 농바우가 있는 시루봉 정상에는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구전에 따르면 그 밑에는 천하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곳에 묘를 쓰면 그 집안은 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정작 어재리 주변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전에 여자들이 농바우를 끄시고 날궂이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시루봉으로 올라가서 몰래 묘를 쓴 흔적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암장의 흔적이 있으면 여지없이 파헤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농바우를 끄신 뒤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대늪치기’를 했다. 대늪은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앞을 흐르는 금강 상류의 깊은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에 있는 용머리바위와 웅덩이에 돌을 던지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의의

천지개벽을 도모함으로써 비를 기원하는 농바우끄시기는 금강 상류의 여러 마을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 여성기우제이다. 농바우를 매개로 성립된 독특한 형식의 이 기우제는 조선시대 후기 아기장수 전설과 같은 혁세사상과 결합되면서 금강변 최대의 기우제로 전승될 수 있었다. 농바우끄시기가 여성 중심의 기우제임에도 이처럼 광범위한 전승력을 지닌 것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기우풍속 중에서도 분명 전례가 드문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농바우에 깃든 유래전설의 상징성, 벌거벗은 아낙네들에 의한 날궂이 기우와 동아줄을 바위에 매고 끌어내리는 주술적 행위, 곧 천지개벽의 관념을 역이용하여 비를 기원하는 역동적인 놀이와 의식은 기존의 기우제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연행이다. 이에 따라 농바우끄시기에 내재된 주술적 의미와 민간사고는 우리나라의 기우풍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금산의 민간기우와 민중들의 사고 (김미순, 금산의 마을공동체신앙, 금산문화원, 1990)
한국민요대전-충남민요해설집 (문화방송, 1994)
농바우끄시기 (충청남도, 제4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자료집, 1999)
천지개벽을 도모하는 파격의 여성기우 농바우끄시기 (강성복, 충청민속문화론, 민속원, 2005)
충청남도문화재대관 2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9)

금산농바우끄시기

금산농바우끄시기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8-12-12

정의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어재리에 있는 농바우를 대상으로 비를 기원하는 여성 기우제의 하나.‘끄시기’는‘끌다’의 금산 지역 사투리로, 농바우끄시기는 농처럼 생긴 바위에 동아줄을 걸고 끌어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00년 9월 20일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되었다.

역사 및 유래

농바우끄시기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역사를 분명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주변에 파다하게 퍼져 있는 전설에 따르면 수백 년 전부터 날이 가물면 부녀자들이 농바우에 동아줄을 걸어 놓고 비를 기원했다고 한다. 농바우에는 장수 또는 임금님의 갑옷이 들어 있다고 전해지며, 이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날 천지개벽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전한다. 옛날에 두 명의 부인을 거느린 장수가 살고 있었다. 장수의 부인들은 서로 먼저 장수를 차지하려고 늘 투기를 일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발발하여 장수는 부인들을 남겨 둔 채 싸움터로 나가 커다란 공을 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벗어 놓은 장수의 갑옷을 두고 또다시 두 부인이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장수는 갑옷을 빼앗아 바위로 된 단단한 농 안에 넣고 다시는 꺼내 볼 수 없도록 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때 장수의 갑옷이 보관된 농이 지금의 농바우라고 한다. 옛날에 힘센 장수가 살고 있었다. 장수는 자기의 갑옷을 농바우에 넣어 두었다. 세상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갑옷을 구경하려고 자꾸만 농바우를 열어 보았다. 이에 화가 난 장수가 농바우를 뒤집어 놓고 다시는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언제부터인가 농바우에는 임금의 갑옷이 들어 있다는 전설이 내려왔다. 임금에게는 애첩이 한 명 있었다. 애첩은 갑옷이 몹시 보고 싶어 자꾸만 농바위를 열어보려고 하였다.그러자 화가 난 임금은 장수를 거느리고 직접 이곳에 행차하여 갑옷을 꺼내 입고는 장수로 하여금 농바위를 뒤집어 놓도록 했다. 옛날에 마음씨 착한 노부부가 살았다. 후사를 이을 자식이 없어 근심하던 부부는 뒤늦게 아들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이빨이 나고 겨드랑이에 날개와 같은 비늘이 달려 있었다. 아이는 세 살이 되자 무거운 물건을 몰래 옮겨 놓고 병정놀이를 하는 등 신이한 능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 챈 노부부는 장차 집안에 화근이 될것을 두려워하여 자식을 질식시켜 죽였다. 그러자 멀쩡하던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백마 한 마리가 슬피 울면서 농바우 곁에 와서 따라죽었다. 백마는 아이가 장성해 군사를지휘할 때 탈 말이었고, 농바우에는 장수가 되면 입을 갑옷이 들어 있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져서 욕심 많은 석수장이의 귀에 흘러 들어갔다. 석수장이는 갑옷을 꺼내 입을 요량으로 농바우를 건드렸다가 오히려 혹독한 가뭄만 불러들였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을 때 길을 지나던 스님이 비책을 일러주었다. 그것은 여자들이 농바우를 흔들면 진노한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었다. 스님의 말대로 부녀자들이 몰려가서 농바우를 끄시니 과연 응함이 있어 멍석날 같은 비가 쏟아졌다. 그 뒤부터 가뭄이 들면 농바우를 끌어내리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이와 같이 농바우 설화는 장수와 갑옷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농바우에 대한 신비감을 더욱 증폭시켜 주면서 농바우끄시기가 널리 확산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산중턱에 걸려 있는 농바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날 천지개벽이 일어난다는 속설은 농바우끄시기의 핵심 기재로 작용하였다. 이 때문에 부녀자들은 날이 가물면 농바우를 끌어내리는시늉을 하는 것으로, 이를 보고 깜짝 놀란 하늘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나기 전에 비를 내려준다는 사고가 전제되어 있다. 즉 농바우가 산중턱에 남아 있는 한 천지개벽의 가능성은항상 열려 있는 셈이고, 이것은 가뭄을 해갈시켜 줄 운우(雲雨)의 상징인 동시에 민초들에게 마지막 남은 보루였던 것이다. 전승 현장에서 이루어지던 농바우끄시기는 사실상 1990년대 초에 중단되었다. 이제 더 이상 기우제를 지낼 필요가 없어진 까닭이다. 그러나 1993년에 보존회가 결성되어 금강민속축제, 금산인삼축제 등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전승 활동을 펼쳐 왔다. 이후 1999년 9월 17일 제주도에서 열린 제40회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충청남도 대표로 출연하여 부문별 최우수상인 장관상을 받았다.

내용

어재리 금강변에는 반닫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듯한 농바우가 벼랑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다. 한발이 닥치면 인근의 여러 마을이 이 바위에 동아줄을 매고 농바우를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농바우끄시기에는 어재리를 비롯한 부리면 일대의 수십 개 마을이 참여했으며, 인접한 제원면 용화리·가마골·금성리·저곡리 등에서도 동참했다. 가뭄이 극심한 해에는 용하다는 소문을 듣고 금산읍 등 외부에서도 부녀자들이 찾아와 무제(기우제)를 지내며 농바우를 끄셨다고 한다. 그러나 가뭄의 징조가 있다고 해서 처음부터 농바우끄시기가 모의되는 것은 아니다. 농바우끄시기는 인명이 달려 있는 극심한 한발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실행되지 않았다. 실제 촌로들에 따르면 일생 동안 농바우를 끄신 것은 고작 4~5회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천지개벽을 꾀해 비를 기원하는 행위를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농바우끄시기는 물병매기-용줄(동아줄)꼬기-용줄매기-무제-농바우끄시기-개막기-날궂이 순으로 진행된다. 또한 농바우끄시기와 연계된 기우 행사로‘암장발굴(暗葬發掘)’과‘대늪치기’가 있다. 물병매기 : 하지(夏至)가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비를 기원하는 다양한 의례가 행해진다. 집집마다 대문 앞에 황토를 깔고, 빈병에 물을 가득 담아 주둥이에 솔가지를꽂고 거꾸로 매달아 놓는다. 그러면 병에 들어 있는 물이 솔잎을 타고 흘러나와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똑똑 떨어진다. 비가 오는 장면을 가상으로 연출함으로써 실제 상황에서도운우를 기원하는 유감주술이다. 용줄꼬기 : 이렇게 정성을 다한 뒤에도 별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마을에서는 농바우를 끄셔야 한다는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는다. 특히 부녀자들 사이에서 “저놈의 농바우를 깨부셔야지!”, “농바우를 끄셔야 비가 내릴 몬양여!”하고 이구동성으로 농바우를 끄셔야 한다는 여론이 급속히 확산된다. 의견이 모아지면 이틀 사흘 뒤로 다급하게 날짜를잡는다. 비가 예고 없이 내리는 것과 같이 택일을 느닷없이 결정해야 더욱 효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농바우를 끄실 날이 정해지면 집집마다 짚단을 걷어서 농바우에 걸 동아줄을 튼다. 이때 줄의 굵기는 20㎝ 안팎, 길이는 100발 이상이 되도록 길게 꼰다. 용줄매기 : 당일 아침에 마을의 청장년들은 전날 밤 늦도록 꼰 동아줄을 가지고 일찌감치 농바우가 있는 시루봉으로 가서 줄을 매어 둔다. 농바우에 줄을 매는 동안 부인네들은 목욕재계하고 깨끗하게 옷을 갈아입은 다음 제물, 음식, 술과 날궂이할 때 사용할 챙이 및 바가지를 가지고 농바우로 향한다. 이때 달거리를 하거나 집안에 부정이 있는 여인은 농바우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는다. 무제 : 농바우에 도착하면 그 아래에 제물을 차려 놓고 기우제를 지낸다. 마을에서는 이를“무지(무제) 잡숫는다”고 한다. 제물은 백설기, 삼색실과, 포, 불백기 등이다. 마을 형편에 따라 돼지머리를 올려 놓기도 한다. 무제는 축문 없이 간단하게 잔만 올리고 참여자 모두 재배한다. 이어서 입심 좋은 할머니가 고사덕담으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며 소지를 올린다. 하늘님네 오늘 그저 비 좀 내리게 해주세요하늘님네 산신님네 이렇게 기도를 드리오니오늘해전 많은 비를 맞고 가게 점지하옵소서하늘님네 만인간이 모두 하늘님네한테 공을 드리오니오늘해전 멍석날 같은 비가 쏟아지게 점지하옵소서 농바우끄시기 : 무제를 마치면 “농바우끄시세”라는 신호와 함께 동아줄을 당긴다. 이때 신명이 좋은 아주머니(또는 남성 소리꾼)가 농바우 꼭대기에 올라앉아 온갖 재담을 섞어가며 구성지게 선소리를 매기면 아래에서 줄을 잡고 있던 부녀자들은 뒷소리를 받으며 마치 줄다리기 하듯이 흥겹게 농바우를 끄신다. 선소리꾼의 사설에는 농바우에 대한 신성 관념과 민간 사고, 농바우끄시기의 전개 과정이 함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우여차 어구여차 우여차)우리가 무지 지낼 때 비를 내리라고 무제 지내잉께칠년대한 가물음에도 비를 내려야 농사를 지지(어구여차)힘껏 댕겨서 질겁게 하고 힘껏 댕겨서 질겁게 놀고기분 좋게 고사를 해야지 비를 하느님이 내레주지이 바우는 특수한 바우요 하나님이 마련한 바우고옛날옛적 장수바우니 갑오(옷)들은 가보니이 바우를 건들기만 하면 비를 내리게 하는 바우니동애줄을 묶어 가주구 시방 사람이 끌으면뇌성겉은 우루루루 하늘에 울며불며구름에 모여들며 소내기가 오면은가뭄을 해소하는 옛날에 전설에전통 있는 명문 옷 그런 갑옷 바우로다(어구여차)소내기 오게만 계속해서 끌어주소(어구여차 우여차)계속해서 끌어주소(어구여차 우여차 에헤헤)이 마당에 고사를 하고 징 장구를 울려가면갱변이서 그 개[洑]를 막고 한 마대기 풍장치고지깔지게 놀다가면 무지꾼이 소내기 맞고출출하고 도망가데 어구여차 재미좋다해소했네 가뭄을 해소했네 …. 개막기 : 농바우끄시기를 마치면 마을에서 신기(神氣) 있는 할머니(또는 단골네)가 점을 쳐서 언제쯤 비가 내릴 것인지를 예언하기도 한다. 점을 치는 곳은 갓바위 밑에 움푹들어간 부분이며, 한 사람을 선정해 신장대를 잡게 한 다음 무당이 공수를 내리듯이 비 올 시기와 강우량을 예언하는 것이다. 점괘가 잘 나오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점을 쳐서언제 비가 내릴 것 인지를 알아본다. 이때 할머니의 입에서 “날궂이를 하고 나면 비가 내릴 것이다”라든가 “집으로 돌아갈 때 비를 맞고 갈 것이다”라는 점괘가 나오면 아낙네들은 흡족히 여기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날궂이를 하러 개여울로 간다. 강변에 내려오면 돌을 날라다가 둑을 쌓고 여울물이 흐르지 않도록 막는다. 이것을‘개[洑] 막는다’고 한다. 곧 가뭄이 심해 강물조차 바닥을 드러낼 지경이니 여울을 막아야만 물 속에서 날궂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궂이 : 개를 막은 뒤에는 “우리 동네 큰애기들이 날이 가물어서 빨래를 못해 시집을 못 가니 오늘내로 비 좀 내려 주시오” 하고 간곡히 호소한다. 날궂이를 할 때는 모든 아낙네가 벌거벗거나 고쟁이만 걸치고 물 속에 들어가서 개여울이 떠나가도록 물장난을 치고 춤을 추며 논다. 또는 더러운 고쟁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강물에 속옷을 빨면서 온갖해괴망측한 행동을 하는가 하면 물 속에 오줌을 누기도 한다. 강물을 더럽혀야 하늘에서 비를 내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인들의 날궂이는 단순히 물장난을 치고 노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비를 염원하는 유감주술의 의미가 내재된 것이다. 아낙네들은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머리에 물을 부으면서 “비 맞아라, 비요! 비요! 이 비맞고 목깡이나 하거라”라고 실제 소낙비를 맞는 흉내를 낸다. 또한 챙이[키]에 물을 담아 마을을 향해 까부르며 비가 내리는 시늉을 한다. 이렇게 농바우를 끄시고 날궂이를 하면 신통하게도 비가 오는 일이 적지 않았다. 어느 해에는 농바우를 끄시는데 진악산 줄기에서 먹구름이 일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졌고, 날궂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비구름이 몰려와서 장대비를 맞고 간 일도 있다고 한다. 또한 농바우를 끄시다가 비가 내리면 갓바우 밑에서 종종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구전된다. 한편 농바우가 있는 시루봉 정상에는 병풍처럼 생긴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구전에 따르면 그 밑에는 천하의 명당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 이곳에 묘를 쓰면 그 집안은 대대로 영화를 누릴 수 있지만 정작 어재리 주변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아 농사를 망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전에 여자들이 농바우를 끄시고 날궂이를 하는 동안 남자들은 시루봉으로 올라가서 몰래 묘를 쓴 흔적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암장의 흔적이 있으면 여지없이 파헤쳤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농바우를 끄신 뒤에도 비가 내리지 않으면‘대늪치기’를 했다. 대늪은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앞을 흐르는 금강 상류의 깊은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에 있는 용머리바위와 웅덩이에 돌을 던지고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다.

의의

천지개벽을 도모함으로써 비를 기원하는 농바우끄시기는 금강 상류의 여러 마을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진 여성기우제이다. 농바우를 매개로 성립된 독특한 형식의 이 기우제는 조선시대 후기 아기장수 전설과 같은 혁세사상과 결합되면서 금강변 최대의 기우제로 전승될 수 있었다. 농바우끄시기가 여성 중심의 기우제임에도 이처럼 광범위한 전승력을 지닌 것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기우풍속 중에서도 분명 전례가 드문 희귀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농바우에 깃든 유래전설의 상징성, 벌거벗은 아낙네들에 의한 날궂이 기우와 동아줄을 바위에 매고 끌어내리는 주술적 행위, 곧 천지개벽의 관념을 역이용하여 비를 기원하는 역동적인 놀이와 의식은 기존의 기우제에서 볼 수 없는 파격적인 연행이다. 이에 따라 농바우끄시기에 내재된 주술적 의미와 민간사고는 우리나라의 기우풍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다.

참고문헌

금산의 민간기우와 민중들의 사고 (김미순, 금산의 마을공동체신앙, 금산문화원, 1990)한국민요대전-충남민요해설집 (문화방송, 1994)농바우끄시기 (충청남도, 제4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자료집, 1999)천지개벽을 도모하는 파격의 여성기우 농바우끄시기 (강성복, 충청민속문화론, 민속원, 2005)충청남도문화재대관 2 (충청남도 역사문화연구원,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