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표고사

한자명

耳標告祀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0

정의

제주도지역에서 자신의 마소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소유주가 음력 10월쯤에 마소의 귀에 표시를 하면서 지내는 고사.

내용

귀표고사는 귀표코’, ‘귀페코’, ‘귀폐코’라고 부른다. 고사라는 말을 생략하여 ‘쉬귀페’라고도 한다. 달리 ‘방둥코’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방둥’은 마소를 들에 놓는다는 뜻이라지만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마소의 귀에 어떤 표시를 하는 이유는 해당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귀표의 모양은 소유주마다 다르다. 귀를 특정한 모양으로 째거나 도려내었다고 한다.

한편 귀표를 할 때는 낙인(烙印)도 함께 이루어진다. 쇠로 특정한 형태의 글자나 기호를 만들고 이를 불에 달구어 마소의 엉덩이 등 특정 부위와 위치에 찍는다. 이를 두고 ‘낙인 지른다.’고 한다. 낙인은 마소를 줄로 잡아 걸고 눕혀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장정 여럿이 모여 함께 역할을 나누어 일을 치렀다. 마소에 대한 특별 표시는 대개 마을이나 가문 단위로 이루어진다. 한 번 그 모양이 정해지면 쉽게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지역 특성으로 인하여 오래 전부터 대개 마소를 가두어서 기르기보다 산과 들에 놓아서 길렀다. 개인만의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기르지 않고 공동으로 방목하여 기르다 보니 자신의 마소를 정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소유주마다 일정한 모양의 표시를 함으로써 서로 명확히 구분하여 다툼을 방지하고 함께 관리할 수 있었다. 특히 마소를 잃었을 때 그 표시를 알리고 수소문하여 찾는 데 유용하였다.

귀표와 낙인의 대상은 보통 한두 살 된 마소이다. 이때쯤 되면 어린 마소들은 들판에서 뛰어 놀 수 있게 된다. 어미 곁을 떠나도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이들 어린 마소에게는 소유주를 나타내는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

귀표고사를 지내는 시기는 대개 음력 10월이지만 마을에 따라 음력 2∼3월에 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상사일(上巳日)을 택한다고 한다. 행하는 장소로 택한 밭은 ‘귀피왓’이라고 부르며, 형편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고사는 마소의 주인들이 귀피왓에 모인 가운데 제물을 차려서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유교식으로 간단히 이루어진다. 제물은 ‘산듸돌레떡(밭벼로 둥그렇게 만든 떡)’과 ‘조오메기떡(좁쌀로 만든 오메기떡)’ 등을 준비하여 간단히 올리는 편이다. 마소가 많은 집안이나 마소를 직접 관리하는 ‘테우리’는 제물을 더 준비하여 고사를 지낸다. 귀표를 할 때 귀의 한 부분을 도려낸다. 도려낸 부위는 구워서 고사의 제물로 쓴다. 귀표고사는 자신의 마소임을 나타내는 의식인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앞으로 농사짓는 밭을 주의하라는 경계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귀표고사가 끝나면 마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 곡식을 먹어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한다.

제주도지역에서 마소를 산과 들에 놓아기르는 것은 매우 오래된 풍속이다. 17세기 기록인 이건(李健)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도 마소를 들에 놓아길렀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마소를 방목하여 기른 사정을 생각하면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인 귀표고사 역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귀표고사는 현재 사라졌다. 과거처럼 집집마다 마소를 기르는 일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른다 해도 공동으로 방목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귀표와 낙인은 한라산 자락에 공동으로 방목하는 사정 때문에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동으로 방목하는 일이 없어짐으로써 자연히 그 의례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사례

제주도 대부분 마을에서 귀표고사를 행하였다. 몇 가지 지역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시 영평동에서는 음력 2월쯤에 낙인을 찍었다. 강씨는 ‘태(太)’자, 오씨는 ‘십(十)’자, 김씨는 ‘중(中)’자였다고 한다. 조천읍 대흘1리에서는 보통 마소를 40∼50마리 길렀다고 한다. 낙인고사를 지낼 때에는 제물을 차려서 마소가 질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구좌읍 김녕리에서는 매해 음력 10월 갑자일(甲子日)을 택해서 가문별로 마소의 낙인을 찍고 귀도 함께 잘랐다. 이때 마소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구좌읍 송당리에서는 음력 3월에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겨울 동안 ‘쉐막(외양간)’에서 지내던 마소를 목장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마소의 안녕과 풍등을 비는 고사를 먼저 지낸다. 제물은 메, 떡, 채소, 과일, 고소리술 등이다. 이때 테우리 몫의 메로 큰 양푼 하나를 준비하여 수저를 3∼5개 올려놓는다고 한다. 고사는 절을 하고 잡식하여 음복하는 것으로 간단하다. 절은 마소의 주인만 한다. 송당리에서는 ‘범(凡), 을(乙), , , 니, ㄱ’ 등의 낙인이 있었다. 고씨 집안에서는 ‘범(凡)’, 홍씨 집안에서는 ‘을(乙)’, 광산 김씨 집안에서는 ‘’자를 각각 새겼다고 한다.

서귀포시 하원동에서는 음력 10월 상사일(上巳日)에 마소에게 귀표를 하였다. 대포동에서도 음력 10월에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남원읍 수망리에서는 좋은 날을 보아서 귀표고사를 한 뒤 마소에 낙인을 찍었다. 표선읍 표선리에서는 음력 10월 갑자일을 택해 가문별로 마소의 낙인을 찍고 귀도 잘랐다. 이때 마소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낙인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표선면 성읍2리 구렁팟마을에서는 음력 10월에 방목이 끝나고 마소를 밭에 모아 ‘바령(마소를 밭에 가두어 놓고 분뇨를 받아 밭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는 일)’을 할 때 ‘바령팟’에서 고사를 지내고 나서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성산읍 온평리에서는 음력 10월에 그해에 태어난 마소를 목장에 모아 놓고 엉덩이에 성씨별로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이때 소는 귀에, 말은 코에 각각 표시한다고 한다. 송아지나 망아지의 귀와 코의 살점을 조금 떼어내어 이것을 구워서 잡식할 때 올렸다. 성산읍 신풍리에서는 음력 9월 자일(子日)을 택해 마소를 가꾸는 접꾼이 바령팟에 모여 낙인을 찍었다고 한다. 낙인을 찍은 뒤에 백중제를 지낼 때와 같이 고사를 지냈다. 오씨 집안은 ‘고’ 또는 ‘고(古)’자로 낙인을 찍고, 귀표로 귀를 ‘ㄱ’자로 쨌다고 한다.

참고문헌

제주의 민속 1 (제주도, 1993)
제주도 민속-세시풍속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 1997)
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고광민, 대원사, 2004)
한국세시풍속사전-겨울 (국립민속박물관, 2006)
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귀표고사

귀표고사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강소전(姜昭全)
갱신일 2018-12-20

정의

제주도지역에서 자신의 마소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소유주가 음력 10월쯤에 마소의 귀에 표시를 하면서 지내는 고사.

내용

귀표고사는 귀표코’, ‘귀페코’, ‘귀폐코’라고 부른다. 고사라는 말을 생략하여 ‘쉬귀페’라고도 한다. 달리 ‘방둥코’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방둥’은 마소를 들에 놓는다는 뜻이라지만 정확한 의미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마소의 귀에 어떤 표시를 하는 이유는 해당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귀표의 모양은 소유주마다 다르다. 귀를 특정한 모양으로 째거나 도려내었다고 한다. 한편 귀표를 할 때는 낙인(烙印)도 함께 이루어진다. 쇠로 특정한 형태의 글자나 기호를 만들고 이를 불에 달구어 마소의 엉덩이 등 특정 부위와 위치에 찍는다. 이를 두고 ‘낙인 지른다.’고 한다. 낙인은 마소를 줄로 잡아 걸고 눕혀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장정 여럿이 모여 함께 역할을 나누어 일을 치렀다. 마소에 대한 특별 표시는 대개 마을이나 가문 단위로 이루어진다. 한 번 그 모양이 정해지면 쉽게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지역 특성으로 인하여 오래 전부터 대개 마소를 가두어서 기르기보다 산과 들에 놓아서 길렀다. 개인만의 어떤 특정한 공간에서 기르지 않고 공동으로 방목하여 기르다 보니 자신의 마소를 정확히 구분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이에 따라 소유주마다 일정한 모양의 표시를 함으로써 서로 명확히 구분하여 다툼을 방지하고 함께 관리할 수 있었다. 특히 마소를 잃었을 때 그 표시를 알리고 수소문하여 찾는 데 유용하였다. 귀표와 낙인의 대상은 보통 한두 살 된 마소이다. 이때쯤 되면 어린 마소들은 들판에서 뛰어 놀 수 있게 된다. 어미 곁을 떠나도 혼자 생활할 수 있는 이들 어린 마소에게는 소유주를 나타내는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 귀표고사를 지내는 시기는 대개 음력 10월이지만 마을에 따라 음력 2∼3월에 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상사일(上巳日)을 택한다고 한다. 행하는 장소로 택한 밭은 ‘귀피왓’이라고 부르며, 형편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질 수 있다. 고사는 마소의 주인들이 귀피왓에 모인 가운데 제물을 차려서 남성들이 중심이 되어 유교식으로 간단히 이루어진다. 제물은 ‘산듸돌레떡(밭벼로 둥그렇게 만든 떡)’과 ‘조오메기떡(좁쌀로 만든 오메기떡)’ 등을 준비하여 간단히 올리는 편이다. 마소가 많은 집안이나 마소를 직접 관리하는 ‘테우리’는 제물을 더 준비하여 고사를 지낸다. 귀표를 할 때 귀의 한 부분을 도려낸다. 도려낸 부위는 구워서 고사의 제물로 쓴다. 귀표고사는 자신의 마소임을 나타내는 의식인 동시에 주위 사람들에게 앞으로 농사짓는 밭을 주의하라는 경계의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귀표고사가 끝나면 마소가 남의 밭에 들어가 곡식을 먹어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한다. 제주도지역에서 마소를 산과 들에 놓아기르는 것은 매우 오래된 풍속이다. 17세기 기록인 이건(李健)의 『제주풍토기(濟州風土記)』에도 마소를 들에 놓아길렀다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오래 전부터 마소를 방목하여 기른 사정을 생각하면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인 귀표고사 역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귀표고사는 현재 사라졌다. 과거처럼 집집마다 마소를 기르는 일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기른다 해도 공동으로 방목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귀표와 낙인은 한라산 자락에 공동으로 방목하는 사정 때문에 마소의 소유주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동으로 방목하는 일이 없어짐으로써 자연히 그 의례도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역사례

제주도 대부분 마을에서 귀표고사를 행하였다. 몇 가지 지역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주시 영평동에서는 음력 2월쯤에 낙인을 찍었다. 강씨는 ‘태(太)’자, 오씨는 ‘십(十)’자, 김씨는 ‘중(中)’자였다고 한다. 조천읍 대흘1리에서는 보통 마소를 40∼50마리 길렀다고 한다. 낙인고사를 지낼 때에는 제물을 차려서 마소가 질병에 걸리지 않고 잘 자라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구좌읍 김녕리에서는 매해 음력 10월 갑자일(甲子日)을 택해서 가문별로 마소의 낙인을 찍고 귀도 함께 잘랐다. 이때 마소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고사를 지냈다. 구좌읍 송당리에서는 음력 3월에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겨울 동안 ‘쉐막(외양간)’에서 지내던 마소를 목장으로 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마소의 안녕과 풍등을 비는 고사를 먼저 지낸다. 제물은 메, 떡, 채소, 과일, 고소리술 등이다. 이때 테우리 몫의 메로 큰 양푼 하나를 준비하여 수저를 3∼5개 올려놓는다고 한다. 고사는 절을 하고 잡식하여 음복하는 것으로 간단하다. 절은 마소의 주인만 한다. 송당리에서는 ‘범(凡), 을(乙), , , 니, ㄱ’ 등의 낙인이 있었다. 고씨 집안에서는 ‘범(凡)’, 홍씨 집안에서는 ‘을(乙)’, 광산 김씨 집안에서는 ‘’자를 각각 새겼다고 한다. 서귀포시 하원동에서는 음력 10월 상사일(上巳日)에 마소에게 귀표를 하였다. 대포동에서도 음력 10월에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남원읍 수망리에서는 좋은 날을 보아서 귀표고사를 한 뒤 마소에 낙인을 찍었다. 표선읍 표선리에서는 음력 10월 갑자일을 택해 가문별로 마소의 낙인을 찍고 귀도 잘랐다. 이때 마소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낙인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표선면 성읍2리 구렁팟마을에서는 음력 10월에 방목이 끝나고 마소를 밭에 모아 ‘바령(마소를 밭에 가두어 놓고 분뇨를 받아 밭의 기력을 회복하게 하는 일)’을 할 때 ‘바령팟’에서 고사를 지내고 나서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성산읍 온평리에서는 음력 10월에 그해에 태어난 마소를 목장에 모아 놓고 엉덩이에 성씨별로 귀표와 낙인을 하였다. 이때 소는 귀에, 말은 코에 각각 표시한다고 한다. 송아지나 망아지의 귀와 코의 살점을 조금 떼어내어 이것을 구워서 잡식할 때 올렸다. 성산읍 신풍리에서는 음력 9월 자일(子日)을 택해 마소를 가꾸는 접꾼이 바령팟에 모여 낙인을 찍었다고 한다. 낙인을 찍은 뒤에 백중제를 지낼 때와 같이 고사를 지냈다. 오씨 집안은 ‘고’ 또는 ‘고(古)’자로 낙인을 찍고, 귀표로 귀를 ‘ㄱ’자로 쨌다고 한다.

참고문헌

제주의 민속 1 (제주도, 1993)제주도 민속-세시풍속 (진성기, 제주민속연구소, 1997)제주도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 (고광민, 대원사, 2004)한국세시풍속사전-겨울 (국립민속박물관, 2006)한국의 가정신앙-제주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