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토제

한자명

開土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강영환(姜榮煥)
갱신일 2018-12-17

정의

집을 짓거나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땅을 처음 팔 때 토지신(土地神)에게 올리는 제의. 건물터를 조성할 때는 개기제(開基祭)라고도 한다.

역사

건물의 터나 묘지를 성화된 장소로 만들기 위한 의식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선택할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정한 경계를 갖는 장소를 뜻하는 ‘터’에는 주관하는 토지신이 있다고 믿었다. 민속신앙에서 말하는 터줏신․터줏대감․후토신령 등은 선택된 장소인 터를 주관하는 수호신이다.

선택한 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호신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따라서 그로부터 보호와 발복을 기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땅을 토지신의 소유로 보고, 사람이 빌리거나 매입하여 이용한다는 생각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발견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買地卷)에는 지신으로부터 묘지로 쓸 토지를 돈을 주고 매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개토제나 개기제라는 제의명은 고려시대 문헌에서 발견된다. 여말 선초의 문인인 윤상(1373~1455)의 문집에는 인정문외 남행랑을 지을 때 사용한 개기제 축문이 실려 있다. 변계량(1369~1430)의 문집에서는 개토제의 축문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좋은 날을 받아 이곳에 무덤을 쓰려고 신령에게 고하니 잘 보살펴 달라는 것’으로, 오늘날에 사용하는 고유문과 유사하다.

물론 조선시대 문헌에는 개토제와 개기제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문헌 기록을 검토해 보면 ‘개기제’와 ‘개토제’를 수행하는 의식(흔히 ‘텃고사’라고 칭함)은 동일하지만 제의명은 용도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묘터를 조성할 때 올리는 제의는 ‘개토제’, 건물터를 조성할 때 올리는 제의는 ‘개기제’로 각각 기록된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고대 의례규범에 따라 형식화 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 세종 1년 기해에 따르면 태조의 장사 때 후토신(后土神)에게는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고 천맥장군(阡陌將軍)과 유당혈신(幽堂穴神) 따위에게 제사를 지냈음을 비판하면서, 개토는 옛 제도에 의거하여 다만 후토의 신에게만 제사를 지내라는 논의가 있었다. 이에 따라 후토제로 지낸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는 전래되어 오던 민속신앙의 제의로부터 유교적 제의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내용

개토제는 매장의식 가운데 첫 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선정된 장소를 묘지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토지신에게 알리는 의식이다. 이후 묘광을 파고 시신을 안치한 후, 평토제를 지내고 봉분을 만들면 매장의식이 끝난다. 개토제는 묘의 영역을 표시하고 제상을 차리며, 축문을 읽고 술을 올리며 배례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조선시대 이전에 개토제가 어떠한 의식으로 행해졌는지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시행한 개토제의 형식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친과 대신이 돌아가서 예장할 때 제전을 예조와 의례상정소가 함께 의논하여 작성하였다. 개토제는 옛날 법제에 따라 변(籩), 두(豆), 보(簠), 궤(簋)를 배설하고 일헌삼전례(一獻三奠禮)로 거행한다. 그 찬품(饌品)은 변(籩)이 넷, 두(豆)가 넷, 보(簠)가 둘, 궤(簋)가 둘이다’…” 하였다. 여기서 변, 두, 궤는 모두 제수를 담는 제기의 이름을 말한다. 국가적인 장례에는 개토제의 의식과 절차가 규범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례편람 (四禮便覽)』의 상례조에서는 영역(塋域, 묘)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고 하였다. 즉 묘자리의 네 모퉁이를 파고서 각각 표목을 세운 다음 먼 친척이나 손님 가운데 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 후토(后土), 즉 토지신에게 축문을 읽고 배례를 행하는 것이다. 사토제는 개토제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개토제의 의식 절차나 제수 찬품은 신분이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토지신을 배례의 대상으로 하여 제물을 차리고, 고유문을 지어 고사를 지낸 뒤 터에 술을 뿌리는 ‘텃고사’의 형식적 골격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개기제에도 텃고사가 치러진다. 그 의식과 절차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상택지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전한다.

“집터를 닦아서 집을 지을 때 주인은 반드시 지운(地運)과 연운(年運)을 가려야 한다. 좋은 날을 택하여 밤중에 술과 과일, 포와 식혜, 향과 촛불 등을 정성껏 갖추고 글을 지어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집을 짓는다고 고한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 비로소 흙을 판다. 땅을 깊게 파서 겉흙을 걷어내고 반드시 생흙을 봐야만 파기를 그만둔다. 나무뿌리나 머리털, 다른 더러운 물건이 있으면 모두 걷어 낸다. 만약 생흙 위에 흙의 성질이 부드러운 데가 있으면 그 밑에는 반드시 매장된 물건이 있다는 말이므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지역사례

근대 이후 개토제의 의식은 축약, 간소화 하면서 지역과 개별 사례에 따라 약간씩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묏자리를 파기 전에 제상을 차리고 고유문을 낭독하고 술을 뿌리는 텃고사 의식은 지역과 관계없이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대개 묘소의 왼편에 남향으로 제상을 놓고 고사자가 신위 앞에 북향하여 분향한 뒤 두 번 절하고, 술을 부어 놓고 개토고사를 읽은 뒤 또 두 번 절한다.

개기제는 지역에 따라 제물과 의식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 전남지역의 예를 들면 선택된 날에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목욕재계한 뒤 제상을 준비한다. 집터 가운데 흙을 적당히 모아 놓고 주위에 왼새끼를 둘러친 뒤 백토를 정결하게 깔고 제상을 차린다. 술과 과일, 포, 식혜, 향, 촛불 등의 제물을 차리고 향을 피운 다음 “땅을 빌려주신 후토신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고유문을 낭독한다. 소지하고 음복하기 전에 집을 세울 자리에 술을 골고루 붓는다.

전남 거금도지역에서는 밥 한 그릇, 술 한 잔, 물고기(건어 또는 선어)를 제수로 사용한다. 건축주가 집터를 새로 마련하고, 땅을 파고 다져서 집을 짓게 되어 미안하다는 뜻을 지신에게 고한다. 또한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아무 사고 없이 진행되도록 기원한다. 지신에게 공양하는 제수의 일부를 집터 한 쪽에 한 자 반 정도로 파서 묻는다. 보통 공사의 안전을 위한 의식은 개공제(開工祭) 또는 모탕고사라고 하여 개토제와 별도로 지낸다. 그러나 거금도에서는 두 제의가 결합된 형식을 취한다.

고령지역에서는 묘를 만들기 위한 개토를 사흘 전부터 시작한다. 개토제는 땅을 파기 전에 지낸다. 제수로는 명태 한 마리, 돼지고기 한 접시, 술 한 잔, 사과와 배 한 개씩을 올린다. 이후 하관이 진행된다. 무덤이 다 만들어지면 평토제를 지낸다.

강원도 강릉이나 전남 여수지역과 같이 산신제와 개토제를 별개로 시행하는 사례도 있다.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서 술, 과일, 어포를 차려놓고 “오늘 이 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를 지낸다. 그 후 장지로 가서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 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 개토제를 지낸다.

의의

개토제나 개기제는 땅에 관한 한국인의 의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제의이다. 땅은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관념을 보여 준다. 이는 땅을 특별한 장소, 즉 신성한 장소로 축성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 거주할 장소가 토지신의 가호로 거룩해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민가연구 (장보웅, 진보제, 1986)
한국의 살림집 (신영훈, 열화당, 1986)
민족건축론 (김홍식, 한길사, 1987)
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언, 민음사, 1988)
집의 사회사 (강영환, 웅진출판, 1992)

개토제

개토제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강영환(姜榮煥)
갱신일 2018-12-17

정의

집을 짓거나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땅을 처음 팔 때 토지신(土地神)에게 올리는 제의. 건물터를 조성할 때는 개기제(開基祭)라고도 한다.

역사

건물의 터나 묘지를 성화된 장소로 만들기 위한 의식은 인간이 삶과 죽음을 위한 특별한 장소를 선택할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일정한 경계를 갖는 장소를 뜻하는 ‘터’에는 주관하는 토지신이 있다고 믿었다. 민속신앙에서 말하는 터줏신․터줏대감․후토신령 등은 선택된 장소인 터를 주관하는 수호신이다. 선택한 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호신의 허락을 받아야한다. 따라서 그로부터 보호와 발복을 기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땅을 토지신의 소유로 보고, 사람이 빌리거나 매입하여 이용한다는 생각은 백제의 무령왕릉에서 발견된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매지권(買地卷)에는 지신으로부터 묘지로 쓸 토지를 돈을 주고 매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개토제나 개기제라는 제의명은 고려시대 문헌에서 발견된다. 여말 선초의 문인인 윤상(1373~1455)의 문집에는 인정문외 남행랑을 지을 때 사용한 개기제 축문이 실려 있다. 변계량(1369~1430)의 문집에서는 개토제의 축문을 볼 수 있다. 그 내용은 ‘좋은 날을 받아 이곳에 무덤을 쓰려고 신령에게 고하니 잘 보살펴 달라는 것’으로, 오늘날에 사용하는 고유문과 유사하다. 물론 조선시대 문헌에는 개토제와 개기제에 대한 기록이 풍부하게 남아있다. 문헌 기록을 검토해 보면 ‘개기제’와 ‘개토제’를 수행하는 의식(흔히 ‘텃고사’라고 칭함)은 동일하지만 제의명은 용도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즉 묘터를 조성할 때 올리는 제의는 ‘개토제’, 건물터를 조성할 때 올리는 제의는 ‘개기제’로 각각 기록된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의 고대 의례규범에 따라 형식화 된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 세종 1년 기해에 따르면 태조의 장사 때 후토신(后土神)에게는 제사를 지내지 아니하고 천맥장군(阡陌將軍)과 유당혈신(幽堂穴神) 따위에게 제사를 지냈음을 비판하면서, 개토는 옛 제도에 의거하여 다만 후토의 신에게만 제사를 지내라는 논의가 있었다. 이에 따라 후토제로 지낸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는 전래되어 오던 민속신앙의 제의로부터 유교적 제의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내용

개토제는 매장의식 가운데 첫 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선정된 장소를 묘지로 사용한다는 사실을 토지신에게 알리는 의식이다. 이후 묘광을 파고 시신을 안치한 후, 평토제를 지내고 봉분을 만들면 매장의식이 끝난다. 개토제는 묘의 영역을 표시하고 제상을 차리며, 축문을 읽고 술을 올리며 배례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조선시대 이전에 개토제가 어떠한 의식으로 행해졌는지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시행한 개토제의 형식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예조에서 아뢰기를 ‘종친과 대신이 돌아가서 예장할 때 제전을 예조와 의례상정소가 함께 의논하여 작성하였다. 개토제는 옛날 법제에 따라 변(籩), 두(豆), 보(簠), 궤(簋)를 배설하고 일헌삼전례(一獻三奠禮)로 거행한다. 그 찬품(饌品)은 변(籩)이 넷, 두(豆)가 넷, 보(簠)가 둘, 궤(簋)가 둘이다’…” 하였다. 여기서 변, 두, 궤는 모두 제수를 담는 제기의 이름을 말한다. 국가적인 장례에는 개토제의 의식과 절차가 규범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례편람 (四禮便覽)』의 상례조에서는 영역(塋域, 묘) 공사를 시작하면서 사토제(祠土祭)를 지낸다고 하였다. 즉 묘자리의 네 모퉁이를 파고서 각각 표목을 세운 다음 먼 친척이나 손님 가운데 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 후토(后土), 즉 토지신에게 축문을 읽고 배례를 행하는 것이다. 사토제는 개토제의 또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개토제의 의식 절차나 제수 찬품은 신분이나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나 토지신을 배례의 대상으로 하여 제물을 차리고, 고유문을 지어 고사를 지낸 뒤 터에 술을 뿌리는 ‘텃고사’의 형식적 골격은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개기제에도 텃고사가 치러진다. 그 의식과 절차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상택지에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전한다. “집터를 닦아서 집을 지을 때 주인은 반드시 지운(地運)과 연운(年運)을 가려야 한다. 좋은 날을 택하여 밤중에 술과 과일, 포와 식혜, 향과 촛불 등을 정성껏 갖추고 글을 지어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집을 짓는다고 고한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 비로소 흙을 판다. 땅을 깊게 파서 겉흙을 걷어내고 반드시 생흙을 봐야만 파기를 그만둔다. 나무뿌리나 머리털, 다른 더러운 물건이 있으면 모두 걷어 낸다. 만약 생흙 위에 흙의 성질이 부드러운 데가 있으면 그 밑에는 반드시 매장된 물건이 있다는 말이므로 자세히 살펴야 한다.”

지역사례

근대 이후 개토제의 의식은 축약, 간소화 하면서 지역과 개별 사례에 따라 약간씩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묏자리를 파기 전에 제상을 차리고 고유문을 낭독하고 술을 뿌리는 텃고사 의식은 지역과 관계없이 동일한 형식으로 나타난다. 대개 묘소의 왼편에 남향으로 제상을 놓고 고사자가 신위 앞에 북향하여 분향한 뒤 두 번 절하고, 술을 부어 놓고 개토고사를 읽은 뒤 또 두 번 절한다. 개기제는 지역에 따라 제물과 의식에 약간씩 차이가 있다. 전남지역의 예를 들면 선택된 날에 의식을 치르기 전에 목욕재계한 뒤 제상을 준비한다. 집터 가운데 흙을 적당히 모아 놓고 주위에 왼새끼를 둘러친 뒤 백토를 정결하게 깔고 제상을 차린다. 술과 과일, 포, 식혜, 향, 촛불 등의 제물을 차리고 향을 피운 다음 “땅을 빌려주신 후토신에게 감사드립니다.”라는 고유문을 낭독한다. 소지하고 음복하기 전에 집을 세울 자리에 술을 골고루 붓는다. 전남 거금도지역에서는 밥 한 그릇, 술 한 잔, 물고기(건어 또는 선어)를 제수로 사용한다. 건축주가 집터를 새로 마련하고, 땅을 파고 다져서 집을 짓게 되어 미안하다는 뜻을 지신에게 고한다. 또한 건물이 완공될 때까지 아무 사고 없이 진행되도록 기원한다. 지신에게 공양하는 제수의 일부를 집터 한 쪽에 한 자 반 정도로 파서 묻는다. 보통 공사의 안전을 위한 의식은 개공제(開工祭) 또는 모탕고사라고 하여 개토제와 별도로 지낸다. 그러나 거금도에서는 두 제의가 결합된 형식을 취한다. 고령지역에서는 묘를 만들기 위한 개토를 사흘 전부터 시작한다. 개토제는 땅을 파기 전에 지낸다. 제수로는 명태 한 마리, 돼지고기 한 접시, 술 한 잔, 사과와 배 한 개씩을 올린다. 이후 하관이 진행된다. 무덤이 다 만들어지면 평토제를 지낸다. 강원도 강릉이나 전남 여수지역과 같이 산신제와 개토제를 별개로 시행하는 사례도 있다. 장지 근처의 바위나 개울가에서 술, 과일, 어포를 차려놓고 “오늘 이 산에 손님이 들어오니 산신께서는 손님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면서 산신제를 지낸다. 그 후 장지로 가서 명태를 막대기나 삽에 묶어 꽂아 세우고 그 주위에 술을 뿌리고는 개토제를 지낸다.

의의

개토제나 개기제는 땅에 관한 한국인의 의식을 보여 주는 중요한 제의이다. 땅은 인간이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는 관념을 보여 준다. 이는 땅을 특별한 장소, 즉 신성한 장소로 축성하기 위한 의식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이나 산 사람이 거주할 장소가 토지신의 가호로 거룩해지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민가연구 (장보웅, 진보제, 1986)한국의 살림집 (신영훈, 열화당, 1986)민족건축론 (김홍식, 한길사, 1987)한국의 주거민속지 (김광언, 민음사, 1988)집의 사회사 (강영환, 웅진출판,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