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조정현(曺鼎鉉)
갱신일 2019-01-21

정의

열두 달을 상징하는 화초그림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

내용

‘화투花鬪는 12종류 48장으로 되어 있는 놀이딱지의 일종이다. 일본의 카드놀이인 ‘하나후다花札’가 조선시대 후기에 한반도로 전해져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처음 누가 전파시켰는지 알 수 없으나, 쓰시마 섬의 상인들이 장사차 한국에 왕래하면서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투는 한국에 들어온 후 급속히 전파되어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도박의 도구가 되었다. 그 놀이 방법이나 용어는 투전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보인다. 간혹 ‘화토’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의 화투는 일본 하나후다와 유사하게 전해지다가 화투패 그림의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1950년대를 기점으로 화투의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판화를 4색판으로 줄이고 기존의 종이 재질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교체하며 두께도 얇아졌다. 크기는 보통 35㎜×53㎜이며 약 1㎜ 두께로 만들어져 있다. 색깔은 붉은색이 가장 많지만 기타 다양한 색의 화투도 있다.

일본에서 ‘하나후다’가 시작된 시기는 16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과 대대적으로 무역을 시작한 시절에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트럼프가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가루타의 일종인 ‘텐쇼─가루타天正カルタ’로 불리게 된다. 가루타는 카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르타(carta)에서 유래하였으며 훗날 여기에 한자를 도입하여 ‘가류다歌留多’, ‘가류다加留多’, ‘곳파이(골패骨牌)’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트럼프 역시 한반도의 투전 등이 건너가서 생긴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정월이 솔(송학), 2월이 매화(매조), 3월이 벚꽃, 4월이 등나무, 5월이 난초, 6월이 모란, 7월이 홍싸리, 8월이 공산명월, 9월이 국화(국준), 10월이 단풍, 11월이 오동, 12월이 비[雨]이다. 각 달은 넉 장으로 10끗(또는 20끗)짜리·5끗짜리 그리고 숫자로 쓰이지 않는 홑껍데기가 두 장이 있어 모두 48장이고, 열두 달 중 솔·벚·공산명월·오동·비에는 광光자가 씌어 있는 20끗짜리가 하나씩 들어 있다. 이렇듯 화투는 열두 달의 화초를 중심으로 한 화초딱지놀이인 까닭에 일본에서는 ‘하나후다’라 하였고, 우리의 경우는 화투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화투는 놀이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어 보통 월별로 그림을 맞추어 가는 민화투(늘화투), 600점을 따면 이기는 육백과 삼봉·짓고땡·섰다·고스톱 등 다양한 형식의 놀이가 있고, 인원수도 종류에 따라 2명에서 10명까지도 참여할 수 있다.

이 중 대개의 놀이는 같은 달의 그림을 맞추어 패를 모으는 형식인데 경우에 따라 3단 3약과 같은 특정한 규약이 있어 이들 패를 모두 차지하면 점수를 더 가산할 수 있다. 3단은 5끗짜리 띠를 모으는 것으로 솔·매화·벚꽃으로 된 홍단과, 모란·국화·단풍으로 된 청단, 난초·흑싸리·홍싸리로 된 초단이 있고, 3약에는 난초약·단풍약·비약이 있어 그 달에 해당하는 넉 장의 패를 모두 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화투놀이는 자기에게 들어온 패의 끗수도 문제가 되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패를 추리하여 눈치 빠르게 치게 되므로 고도의 지능과 심리작전을 요하게 되며, 아무 끗수도 없이 홑껍데기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기도 하여 흥미를 진작시킨다. 이밖에도 화투는 아낙네와 노인들의 심심풀이로서 ‘재수보기’와 ‘운수 떼기’를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오랜 세월 동안 투전이라는 도박놀이가 있었으나 자연 소멸하고 화투치기로 대체된 감이 있다. 이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까닭으로 일본풍이 짙다 하여 항일·반일의 민족적 감정으로 일제 말기와 광복 후 몇 해 동안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그 뒤 조금씩 사용되다가 현재는 가장 성행하는 대중놀이로 정착되었다. 이는 상점에 가서 화투 한 짝만 사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손쉽게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원래 놀이의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박놀이로 변질 되어가는 흠이 없지 않다. 일본에서도 도박성 문제로 에도江戸 막부에서 1791년에 금지령이 떨어지면서 이를 다른 그림을 그려서 대체하는 새로운 가루타를 만들면서 금지령을 피해간 것이 하나후다의 원형이다. 뒤에 하나후다도 수차례 금지령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하나후다’가 전해져 한국의 화투로 변형되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보급된 된 화투와 달리 일본의 ‘하나후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급이 점차 줄어들어 ‘이로하가루타’와 함께 정월 한정으로 특별히 하는 놀이로 이용되어 하나후다를 즐기는 일본인이 매우 드물다. 그리고 화투에 비해 ‘하나후다’가 실용성에서 불리한 점도 있어서 한국식 화투가 일본에 역수출 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하나후다’는 전통적인 일본식 기법으로 제작하며 뽕나무 또는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점토와 혼합하여 만든 화지를 여러 겹으로 겹쳐 판을 만든 후 위에 전통 일본식 인쇄법으로 인쇄한다. 화투가 플라스틱 재질에 현대적 기법으로 인쇄하는 반면, ‘하나후다’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법으로 제작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게임 회사인 닌텐도도 창립 초기에는 하나후다 제작 회사로 출발하였으며, 이후 ‘하나후다’ 사업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현재도 ‘하나후다’ 관련 카드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 한국의 화투와 일본의 ‘하나후다’가 가지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패의 테두리와 뒷면이 화투는 붉은색인 반면, ‘하나후다’는 검은색이다. 종이를 여러 겹으로 만드는 공정 특성상 ‘하나후다’의 두께는 화투의 2∼3배 정도가 된다. ‘하나후다’는 적색, 흑색, 녹색, 황색, 자색(보라색)의 5색을 사용하며 패의 그림이 복잡하고 상세한 반면, 화투는 녹색, 자색의 2색이 제외되고 청색이 추가된 4색을 사용하며, 녹색은 흑색으로 자색은 청색으로 대체되었고, 패의 그림도 단순화 되었다. 비광의 인물 모습이‘하나후다’에서는 일본식 의상이었으나, 화투에서는 왜색으로 인해 중국식 의상으로 바뀌었다. 청단의 색깔이 ‘하나후다’는 보라색이나 화투는 청색이며, 더불어 ‘하나후다’에는 없는 글씨로 1980년대 이후에 ‘청단’ 문구가 추가되었다. 또한 ‘하나후다’에서는 따로 광光 표시를 하지 않았으나 화투에는 추가되었다. 홍단의 문구가 ‘하나후다’에서는 ‘あかよろし’(단, 벚꽃의 홍단은 ‘みよしの’)가 표시되어 있으나, 화투에서는 ‘홍단’으로 통일되어 있다.

화투는 여러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왔는데 재수띠기, 운수띠기 등으로 진화하면서 점풍의 성격을 갖기도 했고, 화투타령(화투풀이, 화투뒤풀이) 등의 민요가 전승되기도 하면서 민초들의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였다. 가사를 살펴보면, “정월 솔가지 속속헌 마음 이월 매조에 맺어놓고/ 삼월 사꾸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사리 흣쳐놓고/ 오월 난초 나비가 되어 유월 목단에 춤 잘 추네/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공산에 달이 뜬다/ 구월 국화 굳은한 마음 시월 단풍에 뚝 떨어지고/ 동짓달 오동달은 열두 비를 넘어가네” 등으로 구연된다. <화투타령>은 근대에 생성되어 일제강점기 때부터 많이 불린 것으로 보인다. 화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가져왔다는 설도 있지만 19세기 말 대마도의 일본 상인들이 항구를 통해 조선에 퍼뜨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일본인이 조선 땅에 거류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화투 노름을 하면서 더욱 확산됐다고 보고 있다. 화투의 1(솔)부터 12(비)까지를 각 달과 연결해 식민지 백성의 ‘허무한 삶’을 읊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미 화투가 서민층에게 널리 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로 나라 잃은 백성의 무력감을 짙게 드러낸 것도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이 전해지다가 1970년대부터 고스톱이 화투의 대명사가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예사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랫사람과 윗사람들이 두루 즐기는 놀이로 일반화되기에 이르면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정치풍자 고스톱이 새로운 규칙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싹쓸이 규칙과 거기에 따른 변형규칙, 즉 전두환 고스톱을 기점으로 정계 거물급 인물들의 정치행태가 고스톱의 규칙으로 반영되었던 셈이다.

특징 및 의의

화투의 전승양상은 곧 우리 역사와 사회문화적 변화의 다양한 국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시간을 달래주었던 대중적 놀이로서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전두환 고스톱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놀이규칙의 변개를 통해 민중적 처지에 입각해서 집권자를 풍자하하고 그들의 권력획득 과정과 정치형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양식으로 삼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스톱의 사회사와 민중적 현실인식(임재해, 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 지식산업사, 1994), 한국민속대관4·세시풍속·전승놀이(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

화투

화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조정현(曺鼎鉉)
갱신일 2019-01-21

정의

열두 달을 상징하는 화초그림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

내용

‘화투花鬪는 12종류 48장으로 되어 있는 놀이딱지의 일종이다. 일본의 카드놀이인 ‘하나후다花札’가 조선시대 후기에 한반도로 전해져 변형된 것으로 보이며, 이것을 처음 누가 전파시켰는지 알 수 없으나, 쓰시마 섬의 상인들이 장사차 한국에 왕래하면서 퍼뜨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투는 한국에 들어온 후 급속히 전파되어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는 도박의 도구가 되었다. 그 놀이 방법이나 용어는 투전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도 보인다. 간혹 ‘화토’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초기의 화투는 일본 하나후다와 유사하게 전해지다가 화투패 그림의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1950년대를 기점으로 화투의 현지화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판화를 4색판으로 줄이고 기존의 종이 재질에서 플라스틱 재질로 교체하며 두께도 얇아졌다. 크기는 보통 35㎜×53㎜이며 약 1㎜ 두께로 만들어져 있다. 색깔은 붉은색이 가장 많지만 기타 다양한 색의 화투도 있다. 일본에서 ‘하나후다’가 시작된 시기는 16세기 후반으로 보고 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과 대대적으로 무역을 시작한 시절에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트럼프가 전해지게 되어 이것이 가루타의 일종인 ‘텐쇼─가루타天正カルタ’로 불리게 된다. 가루타는 카드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카르타(carta)에서 유래하였으며 훗날 여기에 한자를 도입하여 ‘가류다歌留多’, ‘가류다加留多’, ‘곳파이(골패骨牌)’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서양에서 들어온 트럼프 역시 한반도의 투전 등이 건너가서 생긴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정월이 솔(송학), 2월이 매화(매조), 3월이 벚꽃, 4월이 등나무, 5월이 난초, 6월이 모란, 7월이 홍싸리, 8월이 공산명월, 9월이 국화(국준), 10월이 단풍, 11월이 오동, 12월이 비[雨]이다. 각 달은 넉 장으로 10끗(또는 20끗)짜리·5끗짜리 그리고 숫자로 쓰이지 않는 홑껍데기가 두 장이 있어 모두 48장이고, 열두 달 중 솔·벚·공산명월·오동·비에는 광光자가 씌어 있는 20끗짜리가 하나씩 들어 있다. 이렇듯 화투는 열두 달의 화초를 중심으로 한 화초딱지놀이인 까닭에 일본에서는 ‘하나후다’라 하였고, 우리의 경우는 화투라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화투는 놀이의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어 보통 월별로 그림을 맞추어 가는 민화투(늘화투), 600점을 따면 이기는 육백과 삼봉·짓고땡·섰다·고스톱 등 다양한 형식의 놀이가 있고, 인원수도 종류에 따라 2명에서 10명까지도 참여할 수 있다. 이 중 대개의 놀이는 같은 달의 그림을 맞추어 패를 모으는 형식인데 경우에 따라 3단 3약과 같은 특정한 규약이 있어 이들 패를 모두 차지하면 점수를 더 가산할 수 있다. 3단은 5끗짜리 띠를 모으는 것으로 솔·매화·벚꽃으로 된 홍단과, 모란·국화·단풍으로 된 청단, 난초·흑싸리·홍싸리로 된 초단이 있고, 3약에는 난초약·단풍약·비약이 있어 그 달에 해당하는 넉 장의 패를 모두 차지하면 되는 것이다. 화투놀이는 자기에게 들어온 패의 끗수도 문제가 되지만,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패를 추리하여 눈치 빠르게 치게 되므로 고도의 지능과 심리작전을 요하게 되며, 아무 끗수도 없이 홑껍데기만 가지고도 많은 점수를 내기도 하여 흥미를 진작시킨다. 이밖에도 화투는 아낙네와 노인들의 심심풀이로서 ‘재수보기’와 ‘운수 떼기’를 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오랜 세월 동안 투전이라는 도박놀이가 있었으나 자연 소멸하고 화투치기로 대체된 감이 있다. 이 화투는 일본에서 들어온 까닭으로 일본풍이 짙다 하여 항일·반일의 민족적 감정으로 일제 말기와 광복 후 몇 해 동안은 거의 하지 않았으나 그 뒤 조금씩 사용되다가 현재는 가장 성행하는 대중놀이로 정착되었다. 이는 상점에 가서 화투 한 짝만 사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지 손쉽게 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서는 원래 놀이의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의 도박놀이로 변질 되어가는 흠이 없지 않다. 일본에서도 도박성 문제로 에도江戸 막부에서 1791년에 금지령이 떨어지면서 이를 다른 그림을 그려서 대체하는 새로운 가루타를 만들면서 금지령을 피해간 것이 하나후다의 원형이다. 뒤에 하나후다도 수차례 금지령이 떨어진 적이 있었다. 이후 조선 후기에 ‘하나후다’가 전해져 한국의 화투로 변형되었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보급된 된 화투와 달리 일본의 ‘하나후다’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보급이 점차 줄어들어 ‘이로하가루타’와 함께 정월 한정으로 특별히 하는 놀이로 이용되어 하나후다를 즐기는 일본인이 매우 드물다. 그리고 화투에 비해 ‘하나후다’가 실용성에서 불리한 점도 있어서 한국식 화투가 일본에 역수출 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하나후다’는 전통적인 일본식 기법으로 제작하며 뽕나무 또는 닥나무 껍질을 벗기고 점토와 혼합하여 만든 화지를 여러 겹으로 겹쳐 판을 만든 후 위에 전통 일본식 인쇄법으로 인쇄한다. 화투가 플라스틱 재질에 현대적 기법으로 인쇄하는 반면, ‘하나후다’는 아직도 이러한 전통적인 기법으로 제작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게임 회사인 닌텐도도 창립 초기에는 하나후다 제작 회사로 출발하였으며, 이후 ‘하나후다’ 사업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현재도 ‘하나후다’ 관련 카드들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외에 한국의 화투와 일본의 ‘하나후다’가 가지는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패의 테두리와 뒷면이 화투는 붉은색인 반면, ‘하나후다’는 검은색이다. 종이를 여러 겹으로 만드는 공정 특성상 ‘하나후다’의 두께는 화투의 2∼3배 정도가 된다. ‘하나후다’는 적색, 흑색, 녹색, 황색, 자색(보라색)의 5색을 사용하며 패의 그림이 복잡하고 상세한 반면, 화투는 녹색, 자색의 2색이 제외되고 청색이 추가된 4색을 사용하며, 녹색은 흑색으로 자색은 청색으로 대체되었고, 패의 그림도 단순화 되었다. 비광의 인물 모습이‘하나후다’에서는 일본식 의상이었으나, 화투에서는 왜색으로 인해 중국식 의상으로 바뀌었다. 청단의 색깔이 ‘하나후다’는 보라색이나 화투는 청색이며, 더불어 ‘하나후다’에는 없는 글씨로 1980년대 이후에 ‘청단’ 문구가 추가되었다. 또한 ‘하나후다’에서는 따로 광光 표시를 하지 않았으나 화투에는 추가되었다. 홍단의 문구가 ‘하나후다’에서는 ‘あかよろし’(단, 벚꽃의 홍단은 ‘みよしの’)가 표시되어 있으나, 화투에서는 ‘홍단’으로 통일되어 있다. 화투는 여러 문화 속에서 영향력을 발휘해왔는데 재수띠기, 운수띠기 등으로 진화하면서 점풍의 성격을 갖기도 했고, 화투타령(화투풀이, 화투뒤풀이) 등의 민요가 전승되기도 하면서 민초들의 정서를 담아내기도 하였다. 가사를 살펴보면, “정월 솔가지 속속헌 마음 이월 매조에 맺어놓고/ 삼월 사꾸라 산란한 마음 사월 흑사리 흣쳐놓고/ 오월 난초 나비가 되어 유월 목단에 춤 잘 추네/ 칠월 홍돼지 홀로 누워 팔월공산에 달이 뜬다/ 구월 국화 굳은한 마음 시월 단풍에 뚝 떨어지고/ 동짓달 오동달은 열두 비를 넘어가네” 등으로 구연된다. 은 근대에 생성되어 일제강점기 때부터 많이 불린 것으로 보인다. 화투는 임진왜란 때 일본인이 가져왔다는 설도 있지만 19세기 말 대마도의 일본 상인들이 항구를 통해 조선에 퍼뜨렸다는 설이 유력하다. 이후 일본인이 조선 땅에 거류지를 만들고 이곳에서 일본인들이 화투 노름을 하면서 더욱 확산됐다고 보고 있다. 화투의 1(솔)부터 12(비)까지를 각 달과 연결해 식민지 백성의 ‘허무한 삶’을 읊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 이미 화투가 서민층에게 널리 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들어온 화투로 나라 잃은 백성의 무력감을 짙게 드러낸 것도 흥미롭다.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놀이 방법이 전해지다가 1970년대부터 고스톱이 화투의 대명사가 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예사 사람들을 중심으로 아랫사람과 윗사람들이 두루 즐기는 놀이로 일반화되기에 이르면서, 사회적 상황을 반영한 정치풍자 고스톱이 새로운 규칙으로 등장한다. 이른바 싹쓸이 규칙과 거기에 따른 변형규칙, 즉 전두환 고스톱을 기점으로 정계 거물급 인물들의 정치행태가 고스톱의 규칙으로 반영되었던 셈이다.

특징 및 의의

화투의 전승양상은 곧 우리 역사와 사회문화적 변화의 다양한 국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일제강점기와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힘겨웠던 시간을 달래주었던 대중적 놀이로서 성격을 보여준다. 또한 전두환 고스톱 등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놀이규칙의 변개를 통해 민중적 처지에 입각해서 집권자를 풍자하하고 그들의 권력획득 과정과 정치형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양식으로 삼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고스톱의 사회사와 민중적 현실인식(임재해, 한국민속과 오늘의 문화, 지식산업사, 1994), 한국민속대관4·세시풍속·전승놀이(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