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상호(李相昊)
갱신일 2019-01-21

정의

시조 카드를 바닥에 깔고 누가 더 많은 시조를 외고 있는지를 겨루는 놀이.

내용

화가투花歌鬪라는 말을 그대로 풀면 꽃과 같은 노래(시조)로 다툰다는 뜻으로 누가 더 많은 시조를 외고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다.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가패歌牌로 소개되어 있고, 카드의 매수가 60매로 경상북도 영주에서 수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시조잇기놀이, 시조연상놀이, 가투, 가패라 불리는데 만든 사람의 취향에 따라 시조 선택이 조금씩 다르나 놀이 방법이나 규격 등은 거의 비슷하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놀이로 추정된다. 특히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고 우리말을 말살하려고 하자 우리말과 시조를 잊지 않게 하려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일제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70대 노인들이 이 놀이를 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광복 후에도 널리 행해졌던 놀이이다. 현재 전해지는 화가투는 모두 인쇄된 것으로 종이 질도 좋아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상당수 있어 박물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놀이 도구는 가로×세로의 크기가 5∼6㎝×7∼8㎝ 정도의 두꺼운 종이 200장이다. 이 중에 100장(읽는 패)은 시조의 초장·중장·종장이 모두 적혀 있고, 나머지 100장(깔패, 바닥패)은 종장만 적혀 있다. 읽는 패와 바닥 패의 뒷면을 달리하여 구분하기 쉽도록 했다. 화가투가 준비되면 시조의 종장(끝 구절)이 적힌 화가투 100장을 놀이하는 사람 앞에 흩어 놓는다. 놀이를 이끄는 사람은 시조가 모두 적힌 100장의 화가투를 초장(첫구절)부터 읽어 내려간다. 이때 찾기 힘들게 하느라고 바닥에 종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며 읊기도 한다. 나머지 사람은 이끄는 사람이 읽는 시조의 종장에 해당하는 화가투를 바닥에서 찾는다. 찾으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았음을 알리기 위해 해당 카드를 손바닥으로 내려친다. 그런 다음 카드를 들어 종장을 읽는다. 종장과 일치하면 화가투를 가지고 가고, 맞지 않으면 바닥에 내려놓고 계속 한다. 잘못 찾은 사람은 찾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시작할 때 정해야 한다. 놀이가 끝나면 화가투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되고, 그 사람이 다음 판에 놀이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 다시 시작한다.

특징 및 의의

화가투를 복원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993년 ‘박씨네 시조놀이’라 이름 하여 복원한 박덕권 3형제와 2001년 조기석이 그들이다. 박씨네 시조놀이는 고시조 89수와 현대 시조 11수를 실어 화가투의 현대화를 꾀하려 했고 조기석은 지역 학자들의 고증을 들어 옛 모습을 되살렸다. 명절에 마땅한 놀이가 없는 상황에서 시조도 외고 모두 즐길 수 있었지만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해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참고문헌

민속놀이와 명절-상(조선의민속전통편찬위원회, 대산출판사, 2000), 전통놀이 모음집(문화체육부, 1995),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시조놀이 복원 보급나선 박덕권씨 3형제(주은수, 중앙일보, 1993년 9월 9일).

화가투

화가투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이상호(李相昊)
갱신일 2019-01-21

정의

시조 카드를 바닥에 깔고 누가 더 많은 시조를 외고 있는지를 겨루는 놀이.

내용

화가투花歌鬪라는 말을 그대로 풀면 꽃과 같은 노래(시조)로 다툰다는 뜻으로 누가 더 많은 시조를 외고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이다.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가패歌牌로 소개되어 있고, 카드의 매수가 60매로 경상북도 영주에서 수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시조잇기놀이, 시조연상놀이, 가투, 가패라 불리는데 만든 사람의 취향에 따라 시조 선택이 조금씩 다르나 놀이 방법이나 규격 등은 거의 비슷하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는 정확한 기록이 없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놀이로 추정된다. 특히 일제가 우리나라를 수탈하고 우리말을 말살하려고 하자 우리말과 시조를 잊지 않게 하려고 널리 보급함으로써 일제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지금도 70대 노인들이 이 놀이를 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광복 후에도 널리 행해졌던 놀이이다. 현재 전해지는 화가투는 모두 인쇄된 것으로 종이 질도 좋아 아직 남아 있는 것도 상당수 있어 박물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놀이 도구는 가로×세로의 크기가 5∼6㎝×7∼8㎝ 정도의 두꺼운 종이 200장이다. 이 중에 100장(읽는 패)은 시조의 초장·중장·종장이 모두 적혀 있고, 나머지 100장(깔패, 바닥패)은 종장만 적혀 있다. 읽는 패와 바닥 패의 뒷면을 달리하여 구분하기 쉽도록 했다. 화가투가 준비되면 시조의 종장(끝 구절)이 적힌 화가투 100장을 놀이하는 사람 앞에 흩어 놓는다. 놀이를 이끄는 사람은 시조가 모두 적힌 100장의 화가투를 초장(첫구절)부터 읽어 내려간다. 이때 찾기 힘들게 하느라고 바닥에 종장이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보며 읊기도 한다. 나머지 사람은 이끄는 사람이 읽는 시조의 종장에 해당하는 화가투를 바닥에서 찾는다. 찾으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찾았음을 알리기 위해 해당 카드를 손바닥으로 내려친다. 그런 다음 카드를 들어 종장을 읽는다. 종장과 일치하면 화가투를 가지고 가고, 맞지 않으면 바닥에 내려놓고 계속 한다. 잘못 찾은 사람은 찾을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시작할 때 정해야 한다. 놀이가 끝나면 화가투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이기게 되고, 그 사람이 다음 판에 놀이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 다시 시작한다.

특징 및 의의

화가투를 복원하려고 시도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993년 ‘박씨네 시조놀이’라 이름 하여 복원한 박덕권 3형제와 2001년 조기석이 그들이다. 박씨네 시조놀이는 고시조 89수와 현대 시조 11수를 실어 화가투의 현대화를 꾀하려 했고 조기석은 지역 학자들의 고증을 들어 옛 모습을 되살렸다. 명절에 마땅한 놀이가 없는 상황에서 시조도 외고 모두 즐길 수 있었지만 일반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해 대중화에는 실패했다.

참고문헌

민속놀이와 명절-상(조선의민속전통편찬위원회, 대산출판사, 2000), 전통놀이 모음집(문화체육부, 1995),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시조놀이 복원 보급나선 박덕권씨 3형제(주은수, 중앙일보, 1993년 9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