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정형호(鄭亨鎬)
갱신일 2019-01-21

정의

사월초파일에 불교의 연등회 의식에 부가되어 이루어지는 놀이.

내용

연등회 시기에는 불교의식 이외에 줄불놀이·낙화놀이와 같은 불놀이, 다양한 등을 구경하는 관등, 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어린이놀이인 호기놀이[呼旗戲]·수부水缶놀이 등의 여러 놀이가 이루어진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의식과 행위는 일종의 수행 과정이지만, 연등회가 사찰만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의 다양한 놀이가 삽입된다. 따라서 후대에 오면서 점차 종교의식과 놀이는 엄격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연등회는 신라시대부터 석가탄신을 기념하는 사찰의 불교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놀이와 연희를 수용했다. 특히 고려 후기에 오면 궁중이나 민간의 가무악희와 결합되어 매우 복합적 양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민간이나 궁중의 가무악희가 결합된 종합 예술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곧 연등회에는 불과 등, 그림자, 물 등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가 이루어졌다. 또 그 시기도 정월대보름(상원) 연등─2월 보름 연등─사월초파일 연등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연등회놀이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난다. 화려한 장식을 한 무대에 각종 등을 산처럼 켜 놓고 나무에도 불을 밝혔는데, 대낮처럼 밝았다고 한다. 고려 말부터 화희火戲가 등장하며 화산火山이라 해서 연등을 산처럼 걸고, 각종 불을 붙였으며 음악에 맞춰 춤과 놀이를 했다. 특히 고려 말에는 탈놀이, 인형극, 그림자극, 줄타기, 솟대타기 등의 다양한 연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연등회가 대규모 축제 성격을 지닌다.

조선 후기에 오면 민간에서는 사월초파일에 줄불, 또는 낙화落火놀이 형태인 불놀이가 자주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시가지의 다리 난간에 화려한 장식을 하고, 사람들이 등과 줄불 형태의 불구름 속을 다녔고, 물 위에는 유등을 띄우거나 화약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당시 줄불은 지금의 하회의 줄불놀이처럼 화약을 종이에 싸서 줄 위에 매달고 불을 붙여서 비가 내리 듯이 불꽃을 쏟아지게 한 것이다. 이런 줄불과 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남한산성, 평양의 대동강, 개성 등에서도 행해졌다.

한편 탈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는 사월초파일에 양주 별산대놀이를 했다. 또 마을 앞 개천가에 줄을 매고 참나무 껍질로 만든 숯가루 봉지와 등불을 매달고, 숯 봉지에 일제히 불을 붙여 불꽃을 내며 타게 했다. 이런 식으로 조선 후기부터 다양한 등을 구경하는 관등觀燈과 함께 불 관련 놀이가 이루어졌다.

연등회 시기에는 그림자극도 나타난다. ‘만석중놀이’는 음력 사월초파일에 이루어진 인형을 활용한 그림자극이다. 이 놀이는 고려시대에 개성 지방에서 사월초파일에 독립적으로 연희되는 무언의 인형극으로 만석중, 사슴, 노루, 잉어, 용 등의 인형이 등장하여 불교의 깨달음을 알리는 포교적 그림자극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1920년대까지 사월초파일에 개성의 사찰과 인근 마을에서 불교의 포교 수단으로 연희되었으며, 서울에서도 그네뛰기와 함께 행해졌다.

‘영등影燈’은 공중에 매단 다양한 형태의 등이 바람에 빙빙 도는 것을 그림자로 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본격적인 그림자극은 아니지만, 등의 이중 장치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가 비치게 한 것이다.

연등회에 어린이놀이가 등장한다. 호기呼旗놀이는 고려 말기 사월초파일 전에 어린이들이 긴 장대에 종이 깃발을 달고, 성안을 다니며 비용을 추렴하는 놀이 형태이다. 성안에서 이루어지고 왕이 장려했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초파일 연등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수부놀이는 조선 말기 사월초파일에 아이들이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리며 노는 놀이이다. 초파일에 바가지 물장구를 하는 것은 불교의식에서 법고의 두드림을 통해 중생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특징 및 의의

연등회는 단순한 불교의식에서 벗어나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관과 민이 참여하는 종합 예술적인 축제 성격을 지녔다. 위로는 왕부터 관리, 불교 신도와 일반인, 전문 예인에 이르기까지, 또한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등과 불, 물, 그림자와 인형을 통한 놀이와 연희가 행해진다. 따라서 연등회는 불교 행사면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태였다.

연등회는 한국의 대표 축제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제등 행렬이 연등회의 핵심으로 부각되었지만, 이것은 본 행사 이전의 길놀이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적 전승과정을 고려할 때, 연등회는 불교의식, 관등과 제등, 다양한 연희와 놀이가 어우러지면서 불교 사찰, 관, 민간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高麗史, 東國歲時記, 東國通鑑, 歲時風謠, 洌陽歲時記, 朝鮮王朝實錄, 海東竹枝, 조선 연극사(김재철, 1933), 동화 이해응의 계산기정 연구(김미경, 민속원, 2012), 물장구놀이(전신재, 한국세시풍속사전-여름, 국립민속박물관, 2005), 조선후기의 연희(윤광봉, 박이정, 1998), 한국 연등회에 나타난 연희와 놀이의 수용양상(정형호,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 민속원, 2013),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화희 부 수희(양재연, 국문학연구산고, 전예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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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정형호(鄭亨鎬)
갱신일 2019-01-21

정의

사월초파일에 불교의 연등회 의식에 부가되어 이루어지는 놀이.

내용

연등회 시기에는 불교의식 이외에 줄불놀이·낙화놀이와 같은 불놀이, 다양한 등을 구경하는 관등, 그림자극인 만석중놀이, 어린이놀이인 호기놀이[呼旗戲]·수부水缶놀이 등의 여러 놀이가 이루어진다. 사찰에서 이루어지는 의식과 행위는 일종의 수행 과정이지만, 연등회가 사찰만의 행사가 아니기 때문에 민간의 다양한 놀이가 삽입된다. 따라서 후대에 오면서 점차 종교의식과 놀이는 엄격한 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혼재되는 양상을 보인다. 연등회는 신라시대부터 석가탄신을 기념하는 사찰의 불교의식에서 출발하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한 놀이와 연희를 수용했다. 특히 고려 후기에 오면 궁중이나 민간의 가무악희와 결합되어 매우 복합적 양상을 나타낸다. 따라서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민간이나 궁중의 가무악희가 결합된 종합 예술적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곧 연등회에는 불과 등, 그림자, 물 등을 활용한 다양한 놀이가 이루어졌다. 또 그 시기도 정월대보름(상원) 연등─2월 보름 연등─사월초파일 연등으로 점차 바뀌어 갔다. 연등회놀이에 대한 기록은 고려시대부터 나타난다. 화려한 장식을 한 무대에 각종 등을 산처럼 켜 놓고 나무에도 불을 밝혔는데, 대낮처럼 밝았다고 한다. 고려 말부터 화희火戲가 등장하며 화산火山이라 해서 연등을 산처럼 걸고, 각종 불을 붙였으며 음악에 맞춰 춤과 놀이를 했다. 특히 고려 말에는 탈놀이, 인형극, 그림자극, 줄타기, 솟대타기 등의 다양한 연희가 이루어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에는 연등회가 대규모 축제 성격을 지닌다. 조선 후기에 오면 민간에서는 사월초파일에 줄불, 또는 낙화落火놀이 형태인 불놀이가 자주 나타난다. 민간에서는 시가지의 다리 난간에 화려한 장식을 하고, 사람들이 등과 줄불 형태의 불구름 속을 다녔고, 물 위에는 유등을 띄우거나 화약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 당시 줄불은 지금의 하회의 줄불놀이처럼 화약을 종이에 싸서 줄 위에 매달고 불을 붙여서 비가 내리 듯이 불꽃을 쏟아지게 한 것이다. 이런 줄불과 낙화놀이는 일제강점기에 남한산성, 평양의 대동강, 개성 등에서도 행해졌다. 한편 탈놀이가 전승되고 있는 경기도 양주 지역에서는 사월초파일에 양주 별산대놀이를 했다. 또 마을 앞 개천가에 줄을 매고 참나무 껍질로 만든 숯가루 봉지와 등불을 매달고, 숯 봉지에 일제히 불을 붙여 불꽃을 내며 타게 했다. 이런 식으로 조선 후기부터 다양한 등을 구경하는 관등觀燈과 함께 불 관련 놀이가 이루어졌다. 연등회 시기에는 그림자극도 나타난다. ‘만석중놀이’는 음력 사월초파일에 이루어진 인형을 활용한 그림자극이다. 이 놀이는 고려시대에 개성 지방에서 사월초파일에 독립적으로 연희되는 무언의 인형극으로 만석중, 사슴, 노루, 잉어, 용 등의 인형이 등장하여 불교의 깨달음을 알리는 포교적 그림자극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는 1920년대까지 사월초파일에 개성의 사찰과 인근 마을에서 불교의 포교 수단으로 연희되었으며, 서울에서도 그네뛰기와 함께 행해졌다. ‘영등影燈’은 공중에 매단 다양한 형태의 등이 바람에 빙빙 도는 것을 그림자로 보는 방식이다. 이것은 본격적인 그림자극은 아니지만, 등의 이중 장치를 통해 다양한 형태의 그림자가 비치게 한 것이다. 연등회에 어린이놀이가 등장한다. 호기呼旗놀이는 고려 말기 사월초파일 전에 어린이들이 긴 장대에 종이 깃발을 달고, 성안을 다니며 비용을 추렴하는 놀이 형태이다. 성안에서 이루어지고 왕이 장려했다는 점에서 어린이들이 초파일 연등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 수부놀이는 조선 말기 사월초파일에 아이들이 물동이에 바가지를 엎어 놓고 두드리며 노는 놀이이다. 초파일에 바가지 물장구를 하는 것은 불교의식에서 법고의 두드림을 통해 중생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의미와 서로 통한다.

특징 및 의의

연등회는 단순한 불교의식에서 벗어나 일찍이 고려시대부터 관과 민이 참여하는 종합 예술적인 축제 성격을 지녔다. 위로는 왕부터 관리, 불교 신도와 일반인, 전문 예인에 이르기까지, 또한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등과 불, 물, 그림자와 인형을 통한 놀이와 연희가 행해진다. 따라서 연등회는 불교 행사면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의 형태였다. 연등회는 한국의 대표 축제로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제등 행렬이 연등회의 핵심으로 부각되었지만, 이것은 본 행사 이전의 길놀이적 성격을 지닌다. 역사적 전승과정을 고려할 때, 연등회는 불교의식, 관등과 제등, 다양한 연희와 놀이가 어우러지면서 불교 사찰, 관, 민간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로 전승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京都雜志, 高麗史, 東國歲時記, 東國通鑑, 歲時風謠, 洌陽歲時記, 朝鮮王朝實錄, 海東竹枝, 조선 연극사(김재철, 1933), 동화 이해응의 계산기정 연구(김미경, 민속원, 2012), 물장구놀이(전신재, 한국세시풍속사전-여름, 국립민속박물관, 2005), 조선후기의 연희(윤광봉, 박이정, 1998), 한국 연등회에 나타난 연희와 놀이의 수용양상(정형호, 연등회의 종합적 고찰, 민속원, 2013),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화희 부 수희(양재연, 국문학연구산고, 전예원, 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