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향토오락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갱신일 2019-01-22

정의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사회생활과 민간신앙 등을 조사하여 간행한 총 47집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전국의 민속놀이를 수집·정리한 자료집.

내용

이 책은 1924년부터 1941년 사이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 제47집에 해당된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 수립을 위한 각종 풍속風俗 조사를 시도했다. 총독부의 식민지 문화에 대한 정책은 식민지 주민용 각종 법령 제도를 마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정교한 통치 제도와 보다 효과적인 통치 요령을 얻어 내려는 조사’를 목표로 이른바 제도 조사와 풍속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조사 목적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다. 그러나 독자적인 민속놀이 조사를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일본이 주도한 조사 자료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런 조사 자료의 학문적 가치에 관한 문제는 어느 정도의 논의를 거쳐 비판의 대상을 넘어서 활용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조선의 계契, 조선의 귀신, 생활 상태 조사, 조선의 무격巫覡, 조선의 풍수, 조선의 점복과 예언, 부락제, 조선의 향토오락 등 일련의 보고 자료는 1923년에 설정한 풍속 조사 항목을 바탕으로 각 분야별로 조사되었다. 실무적인 일은 경성제국대학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선사편수회가 중심이 되어 대부분이 총독부가 촉탁한 인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책의 간행 책임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1891∼1968)은 도쿄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20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총독부의 문서과 조사 제2계 주임 겸 촉탁으로 민간신앙 조사에 주력해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 『부락제部落祭』 등을 펴냈다. 그는 부임 초기에 조선의 사회 제도나 사상에 관심을 두었으나, 차츰 구체적인 민간신앙의 현장 조사 자료 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조사 성과는 조사 자료집으로 간행되었는데,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은 제47집으로 마지막 간행물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그 범위가 실로 넓고 다양하다. 오늘날 민속학의 개념으로 볼 때, 향토오락의 내용은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에 걸쳐 있는 놀이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1961년부터 1981년에 걸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간행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제시된 민속 조사 항목이나, 1971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가 제시한 「한국민속자료분류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놀이들은 「놀이편」 혹은 「오락편」에서만 다룰 수 있는 좁은 의미의 놀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즉 향토오락이라는 범주는 놀이나 오락의 장르를 넘어서 많은 민속 장르와 중복 혹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별신굿은 오락임과 동시에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의 장르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향토오락이란 어린이들의 단순한 유희적 오락은 물론, 세시풍속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적 요소를 포함하는 행위 전반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세시풍속일람표에 열거되는 대부분의 세시풍속명은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서 향토라는 말은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의 향토란 지리 개념으로 시골이라는 의미보다는, 적어도 궁중을 제외한 폭넓은 백성들의 세계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향토는 민간 혹은 민속 사회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향토오락의 향유자들은 농민이나 상인 등의 서민층이 중심을 이루지만, 재야 혹은 재향 양반들도 향토오락의 향유자에 포함되고 있다. 시회詩會, 백일장白日場, 종경도놀이 등도 향토오락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호미씻이농악 등의 경우에 양반 계층은 후원자가 되어 반상이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된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민속놀이의 동의어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이 세시풍속의 표현 양식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민속무용 민속음악 제례 등과 재향양반들의 파한破閑적인 놀이를 포함한다.

이 책에서는 전국을 13개 도道로 나누어 서울은 경기도에, 제주는 전라남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13개 도는 모두 226개의 지방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당시의 행정구역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의 총 항목 수는 약 6,45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놀이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 항목이 약 1,340개, 설명 없이 놀이명만 제시된 항목이 약 5,110개가 된다. 놀이명은 동명同名이 다른 내용인 경우와, 같은 내용에 다른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石遊び─돌 놀이’의 실제 내용이 공기인 경우와 비석치기인 경우가 있고, ‘取り─잡기’라는 단어는 땅재먹기·주인잡기·진치기 등에 두루 대응되고 있었다. ‘강강술래’는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水越來遊び·強羌水越來·水越來·水越遊び·手つなぎ踊り·越來遊び·手つなぎ廻り·水越來踊り’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음차만 하는 경우, 놀이 방법에 일본어로 번역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원 자료의 조사자가 자료에 놀이 명칭을 부여하거나 놀이명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 경우도 있고, 같은 놀이를 지방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생기는 다양함 때문인 경우도 있다.

각 지역의 놀이의 기술 순서는 정월에 하는 놀이부터 차례대로 연말의 놀이까지 배치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수시로 하는 놀이는 연말에 이어서 배치하였다. 각각의 놀이는 맨앞에 놀이 명칭를 제시하고, 놀이 하는 시기, 놀이의 주체, 놀이의 방식, 특별한 경우에는 놀이의 유래, 노래나 고전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경우도 있다. 현재의 서울인 경성京城 지방의 서두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윷놀이 | 정월 | 일반: <놀이법> 등과 배가 있는 네 개의 윷가락을 동시에 던진다. 윷가락 하나만 젖혀지면 1점(도), 두 개가 젖혀지면 2점(개), 세 개가 젖혀지면 3점(걸), 전부 젖혀지면 4점(윷), 네 개가 모두 엎어지면 5점(모)로 계산한다. 두 명, 네 명 혹은 여섯 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엇바꾸어 가며 윷을 던지며, 가진 말로 말판 위를 달리게 하여 승패를 정한다. <유래>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널뛰기 | 정월 | 젊은 부녀자: <놀이법> 긴 널판때기의 한 가운데 아래쪽에 짚단 따위를 둘둘 감아서 받쳐 베개로 삼고, 널판때기의 양 끝에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서로 뛰어 오르면서 논다. <유래>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돈치기 | 정월 | 남아, 일꾼: <놀이법> 땅바닥에 작은 구멍을 파 놓고, 5~6m 떨어진 곳에서 이 구멍을 향해서, 놀이 상대방이 내어놓은 돈을 던져 맞춘다. 혹은 구멍에 돈을 던져 넣거나, 구멍 바깥에 있는 상대방이 정한 물건에 큰 동전이나 둥근 돌을 던져서 맞추면 그 물건을 차지하게 된다. 일종의 승부 겨루기 놀이이다.

특징 및 의의

1920년대 일본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민속놀이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전승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무라야마 지준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집하던 시기에는 ‘향토오락 보호 조장. 200여 종을 조사·수집하여 지방의 특수성에 적응된 것은 민중의 오락으로 지도·발전시킨다. 씨름, 그네, 널뛰기, 달맞이, 답교, 농악 등은 활성화한다(동아일보 1938년 7월 28일자).’라는 정책을 펼쳤다.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록한 이 책은 저자 무라야마 지준이 전국을 답사하여 얻은 부분도 있지만, 총독부가 전국의 초등학교에 행정 명령을 내려 수집한 일종의 설문조사를 정리한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놀이를 일본어 문서로 번역·기록하는 과정에 명칭이나 놀이 방법에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놀이 명칭과 시기·주체만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놀이 방법이 생략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의 분량이나 서술의 치밀성을 살펴보면 앞서 나온 무라야마 지준의 다른 저술에 비하여 완성도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당시의 민속놀이의 전체 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전국의 놀이 명칭과 분포를 파악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사회문화 조사활동(박현수, 한국문화인류학12, 한국문화인류학회, 1980), 한국세시풍속연구(임동권, 집문당, 1985), 村山智順師の謎(朝倉敏夫, 民博通信79, 日本国立民族学博物館, 1997).

조선의 향토오락

조선의 향토오락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박전열(朴銓烈)
갱신일 2019-01-22

정의

조선총독부가 조선의 사회생활과 민간신앙 등을 조사하여 간행한 총 47집 시리즈의 한 권으로 전국의 민속놀이를 수집·정리한 자료집.

내용

이 책은 1924년부터 1941년 사이에 간행된 조선총독부 조사 자료 제47집에 해당된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정책 수립을 위한 각종 풍속風俗 조사를 시도했다. 총독부의 식민지 문화에 대한 정책은 식민지 주민용 각종 법령 제도를 마련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정교한 통치 제도와 보다 효과적인 통치 요령을 얻어 내려는 조사’를 목표로 이른바 제도 조사와 풍속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이런 조사 목적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기 쉽다. 그러나 독자적인 민속놀이 조사를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일본이 주도한 조사 자료의 가치는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이런 조사 자료의 학문적 가치에 관한 문제는 어느 정도의 논의를 거쳐 비판의 대상을 넘어서 활용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된다. 조선의 계契, 조선의 귀신, 생활 상태 조사, 조선의 무격巫覡, 조선의 풍수, 조선의 점복과 예언, 부락제, 조선의 향토오락 등 일련의 보고 자료는 1923년에 설정한 풍속 조사 항목을 바탕으로 각 분야별로 조사되었다. 실무적인 일은 경성제국대학과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선사편수회가 중심이 되어 대부분이 총독부가 촉탁한 인사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책의 간행 책임자인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1891∼1968)은 도쿄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20년부터 1941년까지 조선총독부의 문서과 조사 제2계 주임 겸 촉탁으로 민간신앙 조사에 주력해서 『조선의 귀신朝鮮の鬼神』, 『조선의 풍수朝鮮の風水』, 『부락제部落祭』 등을 펴냈다. 그는 부임 초기에 조선의 사회 제도나 사상에 관심을 두었으나, 차츰 구체적인 민간신앙의 현장 조사 자료 작성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조사 성과는 조사 자료집으로 간행되었는데,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은 제47집으로 마지막 간행물이 되었다.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그 범위가 실로 넓고 다양하다. 오늘날 민속학의 개념으로 볼 때, 향토오락의 내용은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에 걸쳐 있는 놀이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 1961년부터 1981년에 걸쳐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간행한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에 제시된 민속 조사 항목이나, 1971년에 한국문화인류학회가 제시한 「한국민속자료분류표」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놀이들은 「놀이편」 혹은 「오락편」에서만 다룰 수 있는 좁은 의미의 놀이에 한정되지 않는다. 즉 향토오락이라는 범주는 놀이나 오락의 장르를 넘어서 많은 민속 장르와 중복 혹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면 별신굿은 오락임과 동시에 민간신앙, 민속예술, 세시풍속, 구비전승 등의 장르와도 관련된다. 따라서 향토오락이란 어린이들의 단순한 유희적 오락은 물론, 세시풍속의 전개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놀이적 요소를 포함하는 행위 전반을 그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 세시풍속일람표에 열거되는 대부분의 세시풍속명은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자료에서 향토라는 말은 매우 넓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여기서의 향토란 지리 개념으로 시골이라는 의미보다는, 적어도 궁중을 제외한 폭넓은 백성들의 세계라는 개념으로 쓰이고 있다. 향토는 민간 혹은 민속 사회라는 개념과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향토오락의 향유자들은 농민이나 상인 등의 서민층이 중심을 이루지만, 재야 혹은 재향 양반들도 향토오락의 향유자에 포함되고 있다. 시회詩會, 백일장白日場, 종경도놀이 등도 향토오락의 영역에서 다루어지고 있으며, 호미씻이나 농악 등의 경우에 양반 계층은 후원자가 되어 반상이 함께 즐기는 놀이가 된다. 결국 이 책의 내용을 이루고 있는 향토오락이란 민속놀이의 동의어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이 세시풍속의 표현 양식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민속무용 민속음악 제례 등과 재향양반들의 파한破閑적인 놀이를 포함한다. 이 책에서는 전국을 13개 도道로 나누어 서울은 경기도에, 제주는 전라남도에 포함시키고 있다. 13개 도는 모두 226개의 지방으로 분류했는데, 이는 당시의 행정구역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책에 제시된 놀이명의 총 항목 수는 약 6,450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놀이법에 대한 설명이 있는 항목이 약 1,340개, 설명 없이 놀이명만 제시된 항목이 약 5,110개가 된다. 놀이명은 동명同名이 다른 내용인 경우와, 같은 내용에 다른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石遊び─돌 놀이’의 실제 내용이 공기인 경우와 비석치기인 경우가 있고, ‘取り─잡기’라는 단어는 땅재먹기·주인잡기·진치기 등에 두루 대응되고 있었다. ‘강강술래’는 일본어로 번역하는 사람에 따라 ‘水越來遊び·強羌水越來·水越來·水越遊び·手つなぎ踊り·越來遊び·手つなぎ廻り·水越來踊り’ 등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음차만 하는 경우, 놀이 방법에 일본어로 번역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는 원 자료의 조사자가 자료에 놀이 명칭을 부여하거나 놀이명을 일본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인 경우도 있고, 같은 놀이를 지방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에 생기는 다양함 때문인 경우도 있다. 각 지역의 놀이의 기술 순서는 정월에 하는 놀이부터 차례대로 연말의 놀이까지 배치하고, 계절과 상관없이 수시로 하는 놀이는 연말에 이어서 배치하였다. 각각의 놀이는 맨앞에 놀이 명칭를 제시하고, 놀이 하는 시기, 놀이의 주체, 놀이의 방식, 특별한 경우에는 놀이의 유래, 노래나 고전을 인용하기도 하고 그림이나 사진을 넣은 경우도 있다. 현재의 서울인 경성京城 지방의 서두 부분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 윷놀이 | 정월 | 일반: 등과 배가 있는 네 개의 윷가락을 동시에 던진다. 윷가락 하나만 젖혀지면 1점(도), 두 개가 젖혀지면 2점(개), 세 개가 젖혀지면 3점(걸), 전부 젖혀지면 4점(윷), 네 개가 모두 엎어지면 5점(모)로 계산한다. 두 명, 네 명 혹은 여섯 명이 두 편으로 나뉘어 엇바꾸어 가며 윷을 던지며, 가진 말로 말판 위를 달리게 하여 승패를 정한다.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 널뛰기 | 정월 | 젊은 부녀자: 긴 널판때기의 한 가운데 아래쪽에 짚단 따위를 둘둘 감아서 받쳐 베개로 삼고, 널판때기의 양 끝에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서로 뛰어 오르면서 논다. 고려시대부터 전래되어 왔다. • 돈치기 | 정월 | 남아, 일꾼: 땅바닥에 작은 구멍을 파 놓고, 5~6m 떨어진 곳에서 이 구멍을 향해서, 놀이 상대방이 내어놓은 돈을 던져 맞춘다. 혹은 구멍에 돈을 던져 넣거나, 구멍 바깥에 있는 상대방이 정한 물건에 큰 동전이나 둥근 돌을 던져서 맞추면 그 물건을 차지하게 된다. 일종의 승부 겨루기 놀이이다.

특징 및 의의

1920년대 일본은 많은 사람이 모여서 하는 민속놀이를 탄압하였기 때문에 전승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서도 무라야마 지준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해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집하던 시기에는 ‘향토오락 보호 조장. 200여 종을 조사·수집하여 지방의 특수성에 적응된 것은 민중의 오락으로 지도·발전시킨다. 씨름, 그네, 널뛰기, 달맞이, 답교, 농악 등은 활성화한다(동아일보 1938년 7월 28일자).’라는 정책을 펼쳤다. 전국의 향토오락을 수록한 이 책은 저자 무라야마 지준이 전국을 답사하여 얻은 부분도 있지만, 총독부가 전국의 초등학교에 행정 명령을 내려 수집한 일종의 설문조사를 정리한 자료집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놀이를 일본어 문서로 번역·기록하는 과정에 명칭이나 놀이 방법에 오류가 나타나기도 하고, 놀이 명칭과 시기·주체만 제시되었을 뿐 구체적인 놀이 방법이 생략된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의 분량이나 서술의 치밀성을 살펴보면 앞서 나온 무라야마 지준의 다른 저술에 비하여 완성도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당시의 민속놀이의 전체 상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전국의 놀이 명칭과 분포를 파악하는 데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의 향토오락(村山智順, 박전열 역, 집문당, 1992),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사회문화 조사활동(박현수, 한국문화인류학12, 한국문화인류학회, 1980), 한국세시풍속연구(임동권, 집문당, 1985), 村山智順師の謎(朝倉敏夫, 民博通信79, 日本国立民族学博物館,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