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거북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김종대(金宗大)

정의

경기도 이천 지역에서 전승되던 동물 가장놀이로, 추석에 거북이를 만들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노는 놀이.

내용

경기도는 충청도와 함께 추석에 거북놀이가 집중적으로 행해졌던 곳이다. 대개 이들 지역은 평택을 제외하고는 대개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천 역시 그런 특징을 지닌 곳이라는 점에서 거북놀이가 활발하게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사된 내용을 보면 장호원읍부터 시작하여 율면, 설성면, 대월면, 백사면, 모가면, 호법면, 마장면, 신둔면 등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너른 지역에서 전승되었다고 한다. 주로 추석에 행해진 것이 일반적인데, 장호원읍 송산 4리 산대마을은 정월 보름에 행해진 경우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에 이 놀이는 대략 10대에서 20대 초까지의 청소년들이 모여 놀았기 때문에 정식적인 풍물패의 형식보다는 북이나 꽹과리만 있거나, 혹은 풍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풍물패를 구성한 마을도 있으나, 신둔면 지석리처럼 처음에는 풍물패가 참여하지 않다가 흥이 생기면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 전체의 놀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거북의 경우도 지게에 소쿠리를 얹어서 거북의 등을 만든 후 수숫잎을 엮어 덮고 밤송이를 막개기 끝에 달아 머리라고 흔들었다. 제작이 개량되어 맷방석 위에 수숫잎을 엮어서 거북 몸통을 만들고, 여러 겹의 맨드라미 꽃대로 머리를 만들었다. 이런 형태는 이천 거북놀이가 단절되기 직전까지 사용하였다.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현재의 모습의 거북으로 정착되었다.

이천 거북놀이를 발굴한 인물은 1972년 당시 대월국민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김종린으로 당시 국민학생들을 중심으로 전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거북놀이 구성을 갖추게 된 것은 1976년 심우성의 ‘경기도 지방 전통문화 개발 세미나’에서 발표한 형식을 김종린이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구성은 지신밟기굿이나 걸립과 유사하며, 다만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아비가 추가된다고 하였다. 즉 농기잡이, 영기잡이, 용기잡이, 질라아비, 큰 거북, 남생이, 양반 차림의 어릿광대, 머슴, 여종, 쑥불, 풍물재비 등 대략 27∼29명 정도의 구성이다. 그러나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할 때는 51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출연자로 구성했다. 2006년의 공연 내용을 보면 거북이 2명, 질라아비 3명, 양반 2명, 안주인과 집주인, 머슴 2명, 마을 아이들 8명, 마을 사람 10명, 풍물 8명 등 38명으로 구성되었다.

2006년에 행해진 이천 거북놀이의 절차는 길놀이─문굿─대청굿─터주굿─조왕굿─마당판굿─마을판굿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985년에 발간된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에서는 길놀이를 한 후에 장승굿이 배치되고 마을판굿─문굿─터주굿─조왕굿─대청굿─마당놀이 등의 순서가 제시되었다. 이 방식은 마을굿에서 집안굿으로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특히 장승굿이 배치된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승굿이 제거되고, 집안굿에서 마을굿으로 전개 방식을 변화시킨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이천 지역에서는 장승제가 전승되지 않는데, 왜 장승굿을 맨 앞에 배치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현재는 장승굿을 없앤 상태이다.

길놀이의 대사부터 거북이를 ‘백석 천석 만석만큼 복을 주는 복 거북’으로 표현하여 거북놀이의 기능이 복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민속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대청굿은 지신밟기에서 행해지는 고사소리를 읊는 모습으로 진행되며, 이후 샘굿이나 터주굿, 조왕굿은 간략한 소리로 마무리한다. 이후 마당판굿에 와서 거북이가 쓰러지는데, 집주인이 음식을 제공하면 거북이가 기운을 차리고 놀이가 전개된다. 무엇보다도 이천 거북놀이에서는 거북을 ‘백 석 천 석 만 석 거북이’이라는 공식적 표현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거북을 통한 풍요 기원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본다면 이천 거북놀이는 원래의 전승 내용과는 약간 변화된 상태로 복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중심의 거북놀이에서 고사가 강조된 의례 형식의 어른 놀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들이 주동이 되어 거북놀이가 행해졌을 당시에는 풍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청굿이나 터주굿 등에서 행해지는 고사소리가 삽입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천뿐만 아니라, 평택이나 천안 등의 거북놀이에도 지신밟기류의 고사소리가 모두 등장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전승되고 있는 거북놀이 중에서도 대표성을 띠고 있는 이천 거북놀이는 현재 조사된 내용으로 보아 이천 전역에서 행해진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여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전승력을 보였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정은 이 지역이 과거에 수수를 많이 경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이천 지역에서의 거북놀이는 충북 음성과 달리 멍석 등 짚을 이용하지 않는다 점을 들 수 있으며, 거북이와 질라아비는 모두 수숫잎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이천 지역의 전승 지역과 견주어 볼 때 수수 경작이 행해지지 않을 경우 전승이 불가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천의 거북놀이는 이천 지역이 현재의 논농사 중심이 아니라 과거에는 밭농작 중심권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증거라고도 할 만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 거북놀이 중에서 유일하게 이천 거북놀이만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경기도 거북놀이의 전승양상(김종대, 민속원, 2014), 이천거북놀이(김종대 외, 민속원, 2007), 이천의 거북놀이(김종린, 이천군향토문화자료총람2, 이천문화원, 1983),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하주성, 이천문화원, 1985).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김종대(金宗大)

정의

경기도 이천 지역에서 전승되던 동물 가장놀이로, 추석에 거북이를 만들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노는 놀이.

내용

경기도는 충청도와 함께 추석에 거북놀이가 집중적으로 행해졌던 곳이다. 대개 이들 지역은 평택을 제외하고는 대개 내륙에 위치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천 역시 그런 특징을 지닌 곳이라는 점에서 거북놀이가 활발하게 전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조사된 내용을 보면 장호원읍부터 시작하여 율면, 설성면, 대월면, 백사면, 모가면, 호법면, 마장면, 신둔면 등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너른 지역에서 전승되었다고 한다. 주로 추석에 행해진 것이 일반적인데, 장호원읍 송산 4리 산대마을은 정월 보름에 행해진 경우도 있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후에 이 놀이는 대략 10대에서 20대 초까지의 청소년들이 모여 놀았기 때문에 정식적인 풍물패의 형식보다는 북이나 꽹과리만 있거나, 혹은 풍물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물론 풍물패를 구성한 마을도 있으나, 신둔면 지석리처럼 처음에는 풍물패가 참여하지 않다가 흥이 생기면 풍물을 치며 마을 사람 전체의 놀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거북의 경우도 지게에 소쿠리를 얹어서 거북의 등을 만든 후 수숫잎을 엮어 덮고 밤송이를 막개기 끝에 달아 머리라고 흔들었다. 제작이 개량되어 맷방석 위에 수숫잎을 엮어서 거북 몸통을 만들고, 여러 겹의 맨드라미 꽃대로 머리를 만들었다. 이런 형태는 이천 거북놀이가 단절되기 직전까지 사용하였다.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현재의 모습의 거북으로 정착되었다. 이천 거북놀이를 발굴한 인물은 1972년 당시 대월국민학교 교감으로 재직하고 있었던 김종린으로 당시 국민학생들을 중심으로 전수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거북놀이 구성을 갖추게 된 것은 1976년 심우성의 ‘경기도 지방 전통문화 개발 세미나’에서 발표한 형식을 김종린이 채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 구성은 지신밟기굿이나 걸립과 유사하며, 다만 거북이를 몰고 다니는 질라아비가 추가된다고 하였다. 즉 농기잡이, 영기잡이, 용기잡이, 질라아비, 큰 거북, 남생이, 양반 차림의 어릿광대, 머슴, 여종, 쑥불, 풍물재비 등 대략 27∼29명 정도의 구성이다. 그러나 1978년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연할 때는 51명이나 되는 대규모의 출연자로 구성했다. 2006년의 공연 내용을 보면 거북이 2명, 질라아비 3명, 양반 2명, 안주인과 집주인, 머슴 2명, 마을 아이들 8명, 마을 사람 10명, 풍물 8명 등 38명으로 구성되었다. 2006년에 행해진 이천 거북놀이의 절차는 길놀이─문굿─대청굿─터주굿─조왕굿─마당판굿─마을판굿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1985년에 발간된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에서는 길놀이를 한 후에 장승굿이 배치되고 마을판굿─문굿─터주굿─조왕굿─대청굿─마당놀이 등의 순서가 제시되었다. 이 방식은 마을굿에서 집안굿으로 전개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특히 장승굿이 배치된 특징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승굿이 제거되고, 집안굿에서 마을굿으로 전개 방식을 변화시킨 상태이다. 무엇보다도 이천 지역에서는 장승제가 전승되지 않는데, 왜 장승굿을 맨 앞에 배치한 것인지 정확하지 않다. 현재는 장승굿을 없앤 상태이다. 길놀이의 대사부터 거북이를 ‘백석 천석 만석만큼 복을 주는 복 거북’으로 표현하여 거북놀이의 기능이 복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민속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대청굿은 지신밟기에서 행해지는 고사소리를 읊는 모습으로 진행되며, 이후 샘굿이나 터주굿, 조왕굿은 간략한 소리로 마무리한다. 이후 마당판굿에 와서 거북이가 쓰러지는데, 집주인이 음식을 제공하면 거북이가 기운을 차리고 놀이가 전개된다. 무엇보다도 이천 거북놀이에서는 거북을 ‘백 석 천 석 만 석 거북이’이라는 공식적 표현구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거북을 통한 풍요 기원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을 본다면 이천 거북놀이는 원래의 전승 내용과는 약간 변화된 상태로 복원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 중심의 거북놀이에서 고사가 강조된 의례 형식의 어른 놀이로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이들이 주동이 되어 거북놀이가 행해졌을 당시에는 풍물이 없었기 때문에 대청굿이나 터주굿 등에서 행해지는 고사소리가 삽입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이천뿐만 아니라, 평택이나 천안 등의 거북놀이에도 지신밟기류의 고사소리가 모두 등장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징 및 의의

현재 전승되고 있는 거북놀이 중에서도 대표성을 띠고 있는 이천 거북놀이는 현재 조사된 내용으로 보아 이천 전역에서 행해진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여타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전승력을 보였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인데, 무엇보다도 이러한 사정은 이 지역이 과거에 수수를 많이 경작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먼저 이천 지역에서의 거북놀이는 충북 음성과 달리 멍석 등 짚을 이용하지 않는다 점을 들 수 있으며, 거북이와 질라아비는 모두 수숫잎으로 치장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이천 지역의 전승 지역과 견주어 볼 때 수수 경작이 행해지지 않을 경우 전승이 불가하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이천의 거북놀이는 이천 지역이 현재의 논농사 중심이 아니라 과거에는 밭농작 중심권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데 중요한 증거라고도 할 만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 거북놀이 중에서 유일하게 이천 거북놀이만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경기도 거북놀이의 전승양상(김종대, 민속원, 2014), 이천거북놀이(김종대 외, 민속원, 2007), 이천의 거북놀이(김종린, 이천군향토문화자료총람2, 이천문화원, 1983), 이천의 민속 거북놀이(하주성, 이천문화원,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