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 두레풍장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9-01-21

정의

충청남도 부여 세도면 동사리 일대에서 김매기를 할 때 치는 풍물놀이.

개관

세도 두레풍장은 두레가 성립된 조선 후기 이래 오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온 풍물굿의 하나이다. 세도 지역에서 전승된 두레 노동의 관행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대부분 소멸되었지만, 그 유습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던 동사리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두레로 논을 매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당시 두레풍장을 이끌었던 인물은 뛰어난 소리꾼이자 풍물잡이였던 박산봉(장구)이었고, 이미 고인이 된 최종남(상쇠), 박춘실(장구), 박종기(장구), 윤병택(쇠), 조형구(쇠) 등이 알져져 있다.

두레의 소멸과 더불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세도 두레풍장은 1986년 옛 풍물꾼과 소리꾼이 하나둘 타계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몇몇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부여 산유화가 예능 보유자 이병호·조택구(장구, 쇠)를 비롯, 서재억(장구, 징)·권현주(쇠)·김백복(장구)·전대선(북) 등이 가담하였다. 이들 예능인들은 당시 빠르게 변질되고 사라져 가는 세도의 풍물 가락을 보존·계승하자는 취지에서 풍물회를 결성하였고, 이것이 모태가 되어 ‘세도 두레풍장 보존회’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1997년 전북 익산에서 개최된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현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세도 지역 특유의 두레 풍물을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이후 관련 학계에서 무형문화재로 보존·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2000년 1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도 두레풍장의 기본 가락은 두레꾼들이 김매기를 하는 동안 논 속에서 울리는 논풍장(세마치가락)을 비롯, 두레패가 다른 논배미로 이동하거나 행진할 때 연주하는 두렁질굿(질굿), 그리고 칠석날 두레먹이나 정초의 마당밟기(지신밟기)에 수반되는 두마치가락·나비춤가락·칠채가락 등이 중심이 된다. 여기에 더해 풍물을 시작하고 맺을 때 치는 인사가락과 매조지가락은 세도 두레풍장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세도 두레풍장은 동사리에서 전승되는 풍물을 근간으로 성립되었다. 이 마을의 두레풍물은 ‘신농지업神農之業’을 묵서한 농기영기, 악기는 꽹과리·징·장구·북으로 구성되었을 뿐 일체의 잡색은 편성되지 않았다. 세도 두레풍장은 크게는 다섯 종류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칠채는 다시 원칠채·마당밟기·반채, 매조지가락으로 분류되어 모두 아홉 개의 가락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도 두레풍장의 가락은 다음과 같다.

  1. 두렁질굿: ‘질굿’ 또는 ‘세마치질굿’이라고 한다. 굿거리와 동일하나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에서 접할 수 없는 세도 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을 하거나 먼 길을 갈 때 치는 가락이므로 질굿이라고 하는데, 동사리에서는 늦은질굿·두렁질굿·늦은세마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렁질굿이란 명칭은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하면서 주로 치는 풍물이기 때문에 유래된 호칭이다. 두렁질굿은 가락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늦은질굿과 자진질굿으로 나뉜다. 늦은질굿은 논에서 김매기 등 일을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인데 평소의 질굿보다 조금 늦게 친다. 이에 비해 자진질굿은 명절을 맞이하여 마당에서 풍물놀이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

  2. 두마치가락: 굿거리장단보다 조금 빠르게 치는 가락으로서 ‘잦은굿거리’와 흡사하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조화롭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잔칫집에 초대를 받거나 김매기를 마친 뒤 베푸는 두레먹이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과 풍물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풍물 잔치를 벌일 때 치는 가락이다. 이때 풍물꾼은 온갖 개인기를 선보이며 흥겹게 풍물을 치는데, 가락이 단순하고 경쾌하여 누구나 악기를 둘러매고 칠 수 있는 그런 가락이다. 두마치의 끝 가락은 휘몰이인 자진마치이다. 그러나 평소 두레의 김매기 현장이나 마당밟기에서 두마치는 거의 치지 않는 가락이다. 호흡이 빠른 만큼 진종일 풍장을 쳐야 하는 풍물패들로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3. 논풍장(세마치): 굿거리장단과 대동소이하면서도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마치의 수는 굿거리와 같으나 가락에 다소 변화를 준 점이 차이가 있다. 예전에 두레로 김을 맬 때 논 속에서 즐겨 쳤으므로 속칭 ‘논풍장’으로 불린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의 풍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세도 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이다. 논풍장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유려하여 30리 밖까지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논풍장은 두레가 중단된 이후 풍물경연대회의 판굿에 수용되어 전승되고 있다. 세도면 청포리 만개 두레에서는 지심 매는 논 풍장을 ‘더드랭이’라고 한다. 장구 소리가 ‘더드렁거린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호남의 풍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락인데, 만개마을이 전북과 이웃한 까닭에 두레풍장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4. 나비춤가락: 충남 전역에서 전승되는 속칭 ‘쩍쩍이’와 거의 흡사한 가락이다. 때문에 타 지역의 풍물꾼들은 나비춤가락을 ‘쩍쩍이’로 부르기도 한다. 나비춤가락은 마당에서 연희되는 판굿이나 풍물경연대회 등과 같은 행사에 출연할 때 전후좌우로 흥겹게 역동적으로 치는 가락이다. 풍물패들은 상쇠를 따라 흥겹게 풍물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다시 우측으로 갔다 좌측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때문에 ‘전후좌우치기’로 불리기도 한다. 세도에서는 ‘쩍쩍이’라는 명칭 대신 나비춤가락 혹은 꽃나비가락이란 용어를 쓴다. 나비춤가락은 가락이 단순하여 여럿이 호흡을 맞추기에 용이하다. 논에서 일을 할 때는 칠 수 없고, 놀이마당이나 두레먹이를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이다.

  5. 칠채가락: 동사리와 세도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칠채가락은 원칠채, 마당밟기가락, 반채, 매조지가락, 인사가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원칠채는 풍물놀이를 처음 시작할 때 치는 가락이다. 가령 풍물꾼들이 풍물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놀이터로 이동하거나 걸립패들이 지신밟기(마당밟기)를 위해 마당으로 들어갈 때 주로 친다. 마당밟기가락은 속칭 ‘칠채끝가락’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가가호호 걸립을 돌면 풍물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구경꾼이 마당으로 몰려들어 풍물패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때 풍물패가 마당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그러면 주변에 원을 둘러 공간을 확보한 다음 빙글빙글 마당을 돌며 마당밟기에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반채가락은 칠채가락을 절반으로 줄여서(현지에서는 ‘반으로 뽀갠다.’ 또는 ‘꺾는다.’고 한다.) 빠르고 흥겹게 풍물을 치는 것을 말한다. 풍물패들이 거나하게 술이 오르면 호기가 발동하여 서로 누가 잘 치는가를 겨룰 때 즐겨 사용한다. 아주 신나게 풍물을 칠 때는 더욱 빠르게 하여 마무리를 하는데 이를 ‘반채끝무리가락’이라고 한다. 매조지가락은 인사가락을 두 번 반복해서 치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서 풍물을 치고 놀거나 집집을 돌며 마당밟기를 할 때 매조지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세도면에서만 이 가락이 전승된다고 한다. 끝으로 인사가락은 풍물패가 행사장으로 입장하면서 인사할 때 치는 가락인데, 매조지가락을 반으로 줄여서 치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 들어 농악경연대회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자주 참가하면서 만들어낸 가락이다. 매조지가락과 더불어 세도 두레풍장 특유의 가락이다.

특징 및 의의

세도 두레풍장은 특별한 기교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치는 투박한 풍물이라 하여 속칭 ‘말뚝풍장’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지역의 두레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동사리 두레 특유의 공동 노동 관행이 반영된 산물이다. 즉 동사리에서는 매년 두레가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한발이 지속되어 논을 매지 못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렸을 때만 두레가 났다고 한다. 물 사정이 좋은 해는 품앗이나 놉을 얻어서 김매기를 해결했고, 가뭄의 해갈로 인해 일시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해에만 두레로 김을 맸다. 그런 까닭에 두레가 조직되는 해는 일손이 있는 집은 그 수를 불문하고 모두 김매기에 참여했다. 과거에는 100호가 훨씬 넘었기 때문에 두레의 일꾼들은 200여 명을 웃도는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이처럼 많은 두레꾼들이 작업을 하다 보니 육성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두레풍장이다. 다시 말해 김매기의 방향과 이동은 좌상이나 공원의 지시를 받은 총각대방이 영기를 들고 신호를 보내면, 풍물패들은 그것을 보고 그때그때 논풍장·두렁질굿 등을 울려 두레꾼들에게 전달하는 소통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도 두레풍장의 성립은 동사리의 오랜 김매기 전통과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이는 여느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두레풍장이 잉태되고 전승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17·8세기 향도 조직의 분화와 두레 발생(이태진, 진단학보67, 진단학회, 1989), 산유화가(배인교·오문선, 부여문화원, 2010), 세도두레풍장(강성복·박종익, 민속원, 2011),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 세도두레풍장(강성복, 무형문화재 활성화방안 조사연구, 한국전통문화학교 부설 한국전통문화연구소·부여군, 2008).

세도 두레풍장

세도 두레풍장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강성복(姜成福)
갱신일 2019-01-21

정의

충청남도 부여 세도면 동사리 일대에서 김매기를 할 때 치는 풍물놀이.

개관

세도 두레풍장은 두레가 성립된 조선 후기 이래 오랜 역사적 전통을 이어온 풍물굿의 하나이다. 세도 지역에서 전승된 두레 노동의 관행은 1945년 광복을 전후하여 대부분 소멸되었지만, 그 유습이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던 동사리에서는 1960년대 초까지 두레로 논을 매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당시 두레풍장을 이끌었던 인물은 뛰어난 소리꾼이자 풍물잡이였던 박산봉(장구)이었고, 이미 고인이 된 최종남(상쇠), 박춘실(장구), 박종기(장구), 윤병택(쇠), 조형구(쇠) 등이 알져져 있다. 두레의 소멸과 더불어 중단될 위기에 처한 세도 두레풍장은 1986년 옛 풍물꾼과 소리꾼이 하나둘 타계하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몇몇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은 부여 산유화가 예능 보유자 이병호·조택구(장구, 쇠)를 비롯, 서재억(장구, 징)·권현주(쇠)·김백복(장구)·전대선(북) 등이 가담하였다. 이들 예능인들은 당시 빠르게 변질되고 사라져 가는 세도의 풍물 가락을 보존·계승하자는 취지에서 풍물회를 결성하였고, 이것이 모태가 되어 ‘세도 두레풍장 보존회’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1997년 전북 익산에서 개최된 제38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현 전국민속예술축제)에 세도 지역 특유의 두레 풍물을 선보여서 눈길을 끌었다. 이후 관련 학계에서 무형문화재로 보존·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었고, 2000년 1월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도 두레풍장의 기본 가락은 두레꾼들이 김매기를 하는 동안 논 속에서 울리는 논풍장(세마치가락)을 비롯, 두레패가 다른 논배미로 이동하거나 행진할 때 연주하는 두렁질굿(질굿), 그리고 칠석날 두레먹이나 정초의 마당밟기(지신밟기)에 수반되는 두마치가락·나비춤가락·칠채가락 등이 중심이 된다. 여기에 더해 풍물을 시작하고 맺을 때 치는 인사가락과 매조지가락은 세도 두레풍장에서만 보유하고 있는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세도 두레풍장은 동사리에서 전승되는 풍물을 근간으로 성립되었다. 이 마을의 두레풍물은 ‘신농지업神農之業’을 묵서한 농기와 영기, 악기는 꽹과리·징·장구·북으로 구성되었을 뿐 일체의 잡색은 편성되지 않았다. 세도 두레풍장은 크게는 다섯 종류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칠채는 다시 원칠채·마당밟기·반채, 매조지가락으로 분류되어 모두 아홉 개의 가락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세도 두레풍장의 가락은 다음과 같다. 두렁질굿: ‘질굿’ 또는 ‘세마치질굿’이라고 한다. 굿거리와 동일하나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에서 접할 수 없는 세도 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으로 알려져 있다.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을 하거나 먼 길을 갈 때 치는 가락이므로 질굿이라고 하는데, 동사리에서는 늦은질굿·두렁질굿·늦은세마치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다. 두렁질굿이란 명칭은 두레패가 논두렁으로 이동하면서 주로 치는 풍물이기 때문에 유래된 호칭이다. 두렁질굿은 가락의 빠르고 느림에 따라 늦은질굿과 자진질굿으로 나뉜다. 늦은질굿은 논에서 김매기 등 일을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인데 평소의 질굿보다 조금 늦게 친다. 이에 비해 자진질굿은 명절을 맞이하여 마당에서 풍물놀이를 할 때 흥을 돋우기 위해 조금 빠르게 치는 것이 특징이다. 두마치가락: 굿거리장단보다 조금 빠르게 치는 가락으로서 ‘잦은굿거리’와 흡사하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면서도 조화롭고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잔칫집에 초대를 받거나 김매기를 마친 뒤 베푸는 두레먹이 행사에 참석한 주민들과 풍물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신명나는 풍물 잔치를 벌일 때 치는 가락이다. 이때 풍물꾼은 온갖 개인기를 선보이며 흥겹게 풍물을 치는데, 가락이 단순하고 경쾌하여 누구나 악기를 둘러매고 칠 수 있는 그런 가락이다. 두마치의 끝 가락은 휘몰이인 자진마치이다. 그러나 평소 두레의 김매기 현장이나 마당밟기에서 두마치는 거의 치지 않는 가락이다. 호흡이 빠른 만큼 진종일 풍장을 쳐야 하는 풍물패들로서는 이를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논풍장(세마치): 굿거리장단과 대동소이하면서도 흥겨운 것이 특징이다. 마치의 수는 굿거리와 같으나 가락에 다소 변화를 준 점이 차이가 있다. 예전에 두레로 김을 맬 때 논 속에서 즐겨 쳤으므로 속칭 ‘논풍장’으로 불린다. 엇가락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며, 다른 지역의 풍물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세도 두레풍장의 독특한 가락이다. 논풍장 소리는 은은하면서도 유려하여 30리 밖까지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고 한다. 논풍장은 두레가 중단된 이후 풍물경연대회의 판굿에 수용되어 전승되고 있다. 세도면 청포리 만개 두레에서는 지심 매는 논 풍장을 ‘더드랭이’라고 한다. 장구 소리가 ‘더드렁거린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호남의 풍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락인데, 만개마을이 전북과 이웃한 까닭에 두레풍장 역시 그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비춤가락: 충남 전역에서 전승되는 속칭 ‘쩍쩍이’와 거의 흡사한 가락이다. 때문에 타 지역의 풍물꾼들은 나비춤가락을 ‘쩍쩍이’로 부르기도 한다. 나비춤가락은 마당에서 연희되는 판굿이나 풍물경연대회 등과 같은 행사에 출연할 때 전후좌우로 흥겹게 역동적으로 치는 가락이다. 풍물패들은 상쇠를 따라 흥겹게 풍물을 울리며 앞으로 나아가다가 뒤로 물러나고, 다시 우측으로 갔다 좌측으로 이동하기를 반복한다. 때문에 ‘전후좌우치기’로 불리기도 한다. 세도에서는 ‘쩍쩍이’라는 명칭 대신 나비춤가락 혹은 꽃나비가락이란 용어를 쓴다. 나비춤가락은 가락이 단순하여 여럿이 호흡을 맞추기에 용이하다. 논에서 일을 할 때는 칠 수 없고, 놀이마당이나 두레먹이를 할 때 주로 치는 가락이다. 칠채가락: 동사리와 세도면 일대에서 전승되는 칠채가락은 원칠채, 마당밟기가락, 반채, 매조지가락, 인사가락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원칠채는 풍물놀이를 처음 시작할 때 치는 가락이다. 가령 풍물꾼들이 풍물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놀이터로 이동하거나 걸립패들이 지신밟기(마당밟기)를 위해 마당으로 들어갈 때 주로 친다. 마당밟기가락은 속칭 ‘칠채끝가락’이라고도 한다. 예전에 가가호호 걸립을 돌면 풍물 소리를 듣고 아이들과 구경꾼이 마당으로 몰려들어 풍물패들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이때 풍물패가 마당에 들어서면 구경꾼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공간이 점점 넓어진다. 그러면 주변에 원을 둘러 공간을 확보한 다음 빙글빙글 마당을 돌며 마당밟기에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반채가락은 칠채가락을 절반으로 줄여서(현지에서는 ‘반으로 뽀갠다.’ 또는 ‘꺾는다.’고 한다.) 빠르고 흥겹게 풍물을 치는 것을 말한다. 풍물패들이 거나하게 술이 오르면 호기가 발동하여 서로 누가 잘 치는가를 겨룰 때 즐겨 사용한다. 아주 신나게 풍물을 칠 때는 더욱 빠르게 하여 마무리를 하는데 이를 ‘반채끝무리가락’이라고 한다. 매조지가락은 인사가락을 두 번 반복해서 치는 것을 말한다. 마을에서 풍물을 치고 놀거나 집집을 돌며 마당밟기를 할 때 매조지가락으로 끝을 맺는다. 세도면에서만 이 가락이 전승된다고 한다. 끝으로 인사가락은 풍물패가 행사장으로 입장하면서 인사할 때 치는 가락인데, 매조지가락을 반으로 줄여서 치는 것이 특징이다. 근래 들어 농악경연대회나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자주 참가하면서 만들어낸 가락이다. 매조지가락과 더불어 세도 두레풍장 특유의 가락이다.

특징 및 의의

세도 두레풍장은 특별한 기교나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치는 투박한 풍물이라 하여 속칭 ‘말뚝풍장’이란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은 다른 지역의 두레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동사리 두레 특유의 공동 노동 관행이 반영된 산물이다. 즉 동사리에서는 매년 두레가 조직되는 것이 아니라 한발이 지속되어 논을 매지 못하다가 갑자기 비가 내렸을 때만 두레가 났다고 한다. 물 사정이 좋은 해는 품앗이나 놉을 얻어서 김매기를 해결했고, 가뭄의 해갈로 인해 일시에 집중적인 노동력이 필요한 해에만 두레로 김을 맸다. 그런 까닭에 두레가 조직되는 해는 일손이 있는 집은 그 수를 불문하고 모두 김매기에 참여했다. 과거에는 100호가 훨씬 넘었기 때문에 두레의 일꾼들은 200여 명을 웃도는 대규모의 인력이 동원되었다. 이처럼 많은 두레꾼들이 작업을 하다 보니 육성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두레풍장이다. 다시 말해 김매기의 방향과 이동은 좌상이나 공원의 지시를 받은 총각대방이 영기를 들고 신호를 보내면, 풍물패들은 그것을 보고 그때그때 논풍장·두렁질굿 등을 울려 두레꾼들에게 전달하는 소통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이처럼 세도 두레풍장의 성립은 동사리의 오랜 김매기 전통과 긴밀히 맞닿아 있으며, 이는 여느 지역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두레풍장이 잉태되고 전승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참고문헌

17·8세기 향도 조직의 분화와 두레 발생(이태진, 진단학보67, 진단학회, 1989), 산유화가(배인교·오문선, 부여문화원, 2010), 세도두레풍장(강성복·박종익, 민속원, 2011),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 세도두레풍장(강성복, 무형문화재 활성화방안 조사연구, 한국전통문화학교 부설 한국전통문화연구소·부여군,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