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백중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추현태(秋鉉泰)

정의

경상남도 밀양에서 농민들이 논에서 김매기를 마칠 무렵인 백중百中을 전후하여 놀았던 놀이.

역사

백중의 전통은 불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날 아귀보餓鬼報를 받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열었는데, 불교의 유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고려시대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된 행사였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절이었던 백중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移秧法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 농업과 연관된 세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논농사에서 가장 고된 일인 김매기는 대개 음력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끝나는데, 농민들은 이를 기념하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백중과 겹쳐짐으로써, 불교 축제인 백중에 농민 축제의 성격이 덧붙여진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조의 영남루기嶺南樓記를 보면 “긴 강을 굽어 끼고 넓은 들은 평평히 얼싸 안고 있으며, 농사는 부지런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밀양은 예로부터 농업이 성한 곳으로서, 백중놀이의 전통 역시 강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 지역의 농민들이 전승해온 백중놀이는 김매기를 마친 일꾼들이 푸짐한 먹거리를 즐기면서 활발한 놀이 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풍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놀이의 핵심은 그 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상일꾼’을 뽑아서 소의 걸채 또는 작두말 등에 태우고 삿갓을 거꾸로 씌우는 등의 가장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었다.

밀양 백중놀이는 농민들의 백중놀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이 지역 한량들의 친목 조직이라고 전하는 보본계報本契의 들놀이에 그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한다. 이 들놀이의 중심적 연행은 ‘병신놀이(병신굿)’로서,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쉴 때 병신춤을 추며 양반을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근거가 모호하다.

이 놀이는 1970년대에 들어 지역 축제인 밀양아랑제에 첫선을 보였으며, 1972년부터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할 때의 명칭은 ‘병신굿놀이’로서 인사굿·신풀이굿·병신굿·모듬굿 등을 연행하였다. 그 뒤 명칭과 내용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1980년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하면서 놀이의 명칭을 ‘백중놀이’로 바꾸고, 내용도 오늘날 전승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수정, 보완하였다.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뒤 1980년 11월 17일, ‘밀양 백중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가 되었다.

내용

밀양 백중놀이는 주로 논농사가 발달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놀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고 호미를 씻어 둔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미씻이말고도 써레씻이(강원도), 길꼬냉이·대동굿·장원례·술멕이(전라도), 머슴날(전라도, 경상도), 백중놀이·풋굿·꼼배기·꼼비기·깨임말타기(경상도), 초연草宴, 세서연洗鋤宴 등으로 그 명칭이 다양하다. 이 중에서 초연과 세서연은 풋굿과 호미씻이의 한자 명칭이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 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하였다. 이 ‘꼼배기참놀이’와 ‘병신굿놀이’가 합쳐져서 백중놀이가 되었다.

밀양 백중놀이는 앞놀이·본놀이·뒤풀이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앞놀이는 입장굿─잡귀맞이굿─모정자놀이─농신제 순으로 진행되는데, 제의적 요소가 강한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굿은 일종의 문굿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풍물소리로 먼저 흥을 돋우고 나발을 길게 세 번 불어 시작을 알린다. 농신대를 앞세워 나발─쇠─징─북─장고─놀이꾼 등의 순으로 입장하여 허튼춤으로 한바탕 논다. 다음으로 놀이마당을 깨끗이 하는 의미의 잡귀맞이굿을 한다. 잡귀맞이굿은 놀이꾼들이 놀이판 가운데에 세운 농신대를 중심에 두고 춤추며 감아 들어간 후 들당산가락을 울리면서 삼배三拜를 올리는데, 이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을 일으켜 잡귀를 막고 신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모정자놀이는 모심기와 논매기소리를 부르면서 모심고 논매는 동작을 흉내 내는 놀이이다. 풍물꾼들이 덧배기장단을 치며 놀이판의 한옆으로 서고, 놀이꾼은 마당 한가운데에 둥근 원으로 둘러선 후 모심기 흉내를 내며 모심기소리를 주고받는다. 모심기가 끝난 후 덧배기춤으로 한동안 놀다가 김매기를 시작한다. 놀이꾼들은 한 줄로 땅에 엎드리듯 앉아 김을 매며 김매기소리를 주고받는다. 이 놀이가 끝나면 씨름이나 들돌들기로 좌상, 무상, 숫총각을 뽑고 덧배기춤을 춘다. 이렇게 배역을 정하고 나발을 길게 불어 신호를 하면 농신제를 지낸다. 먼저 농신대 앞에 제관축문을 읽을 사람이 서고 그 다음으로 앞서 뽑은 좌상, 무상, 수총각이 선다. 북을 ‘둥 둥 둥’ 세 번 울리면 강신했다고 하여 세 번 절하고 모두 엎드리면 제관이 제를 올린다. 이때 잡귀를 쫓기 위해 약쑥을 태운다. 제를 마치고 음복을 하는 동안, 구경꾼과 놀이꾼은 복주머니에 쌀, 돈 등과 함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어 농신대의 용끈에 매달고 복을 빈다. 농신대는 저릅대(삼대) 360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묶고 위에서부터 새끼줄 열두 개를 늘어뜨린 모양이다. 농신대의 네 묶음은 사계절을, 새끼줄 열두 개는 일 년 열두 달을, 삼대 360개는 일 년 360일을 상징한다. 또한 사방으로 네 가지 색깔의 베를 묶어 사선으로 당겨 매는데, 북쪽에는 흑색, 남쪽에는 적색, 동쪽에는 청색, 서쪽에는 백색을 각각 매고 중앙에는 황색을 감아 오방신장을 표현한다.

본놀이인 놀이마당은 앞놀이에 비해 극적 요소가 강한 작두말타기와 양반춤·병신춤·범부춤 등의 춤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두말타기는 백중놀이를 호미씻이의 재구성이라고 이해하였을 때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앞의 힘자랑에서 뽑힌 좌상과 무상을 작두말이나 소에 태우고 마당을 돌아다닌다. 작두말은 지게와 비슷한 모양인데, 이 작두말을 네 명의 놀이꾼이 어깨에 멘다. 작두말 위에 좌상과 무상을 태우고 삿갓을 머리에 뒤집어 씌워 정자관처럼 하고 도롱이를 거꾸로 걸쳐서 도포를 입은 것처럼 하여 놀이판을 돌면서 양반 행차를 흉내 낸다. 작두말타기의 행렬은 맨 앞에 말이나 소를 끄는 시늉을 하는 놀이꾼이 서고, 그 뒤로 작두말 옆에서 지게 작대기에 큰 삿갓을 세워서 햇빛을 가리는 놀이꾼이 따른다. 작두말놀이는 일종의 길놀이이며 가장행렬이다. 작두말타기부터 시작하여 점차 신명이 오르면 양반이 머슴들의 놀이판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양반춤을 추는데, 두세 명 정도 등장한다. 양반춤은 주로 곱덧배기장단에 맞춰 춘다. 이러한 양반의 모습이 못마땅한 머슴들은 우스꽝스러운 병신춤을 추면서 양반을 놀이판에서 쫓아낸다. 병신춤 대목에서는 곱추춤·난쟁이춤·꼬부랑할미춤·떨떨이춤·문둥이춤·배불뚝이춤·봉사춤·절름발이춤·중풍쟁이춤·히줄래기춤 등 여러 명의 배역들이 각자의 장기인 병신 모양새를 희화화하여 다양하게 보여 준다. 이런 춤은 양반춤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구경꾼을 격동시킨다. 놀이판에서 쫓겨난 양반은 이를 보고 흥겨움을 참지 못하여 의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놀이판에 뛰어들어 범부춤을 춘다. 범부춤은 덧배기장단에 맞춰 추는데, 경상도 춤의 활달하고 박력 있는 패기를 보여준다. 장구재비와 마주하여 어르기도 하고 마당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활발한 춤을 춘다.

뒷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구성되는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노는 대동의 장이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의 안과 밖으로 들락거리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풍물재비들이 추었던 북춤에서 한층 더 세련되고 흥겹게 재구성하였다. 북재비의 인원수와 관계없이 다수의 북이 등장하였으나, 근래에 이르러 다섯 명의 북재비로 고정하여 오북춤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곱덧배기장단에 맞추어 능청능청 허튼춤을 추다가, 다시 흥겨운 배기장단에 맞추어 원을 만들면서 조이고 푸는 것을 거듭하며 북배김을 한다. 북배김은 북재비들이 원의 가운데를 향해 모여들어 서로 마주 보며 북을 힘차게 치는 것으로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오북춤은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고 오체가 성하며, 오곡이 잘되어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데서 착안하였다. 화동마당은 놀이꾼들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바탕 춤을 추며 신명을 맘껏 풀어내는 장으로서 이 놀이의 대단원을 이룬다.

특징 및 의의

백중놀이는 고된 농업 활동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펼친 축제이다.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농이었고 지주 부농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머슴과 소농들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신명을 풀어냈다. 지주와 부농들은 이를 용인하고 후원함으로써, 고용인과 피고용인,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相生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 백중놀이는 민속예술과 놀이 그리고 신앙을 바탕으로 구성한 공연물로서,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우리 마당놀음의 연행 원리를 수용하여 신명풀이의 미학을 구현함으로써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전통적 농경세시풍속 중 백중날을 즈음으로 펼쳐졌던 마을 공동체 놀이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과거의 농경 모습과 놀이를 엿볼 수 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연희자들의 복장과 소품, 놀이 구성 등에서는 전통적인 농경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놀이에 등장하는 춤과 놀이를 통해서는 농민문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東國輿地勝覽, 밀양 백중놀이(김미숙·박원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밀양백중놀이(한양명,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10), 밀양백중놀이의 전통창출과 사회문화적 의미(추현태,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호미씻이(김수남·김미숙, 평민사, 1986).

밀양 백중놀이

밀양 백중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추현태(秋鉉泰)

정의

경상남도 밀양에서 농민들이 논에서 김매기를 마칠 무렵인 백중百中을 전후하여 놀았던 놀이.

역사

백중의 전통은 불교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불교에서는 이날 아귀보餓鬼報를 받는 중생의 구제를 위해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열었는데, 불교의 유입과 함께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고려시대에는 왕실부터 민간에 이르기까지 일반화된 행사였다고 한다. 이처럼 불교의 명절이었던 백중은 조선 후기에 이앙법移秧法이 일반화하기 시작하면서, 농업과 연관된 세시 행사로 자리 잡았다. 논농사에서 가장 고된 일인 김매기는 대개 음력 7월 보름을 전후하여 끝나는데, 농민들은 이를 기념하고 즐기기 위해 그들만의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그 시기가 백중과 겹쳐짐으로써, 불교 축제인 백중에 농민 축제의 성격이 덧붙여진것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조의 영남루기嶺南樓記를 보면 “긴 강을 굽어 끼고 넓은 들은 평평히 얼싸 안고 있으며, 농사는 부지런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보아 밀양은 예로부터 농업이 성한 곳으로서, 백중놀이의 전통 역시 강성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밀양 지역의 농민들이 전승해온 백중놀이는 김매기를 마친 일꾼들이 푸짐한 먹거리를 즐기면서 활발한 놀이 활동을 펼치는 것이었다. 풍물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놀이의 핵심은 그 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상일꾼’을 뽑아서 소의 걸채 또는 작두말 등에 태우고 삿갓을 거꾸로 씌우는 등의 가장을 시켜, 마을을 돌면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것이었다. 밀양 백중놀이는 농민들의 백중놀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이 지역 한량들의 친목 조직이라고 전하는 보본계報本契의 들놀이에 그 뿌리를 둔 것이라고 한다. 이 들놀이의 중심적 연행은 ‘병신놀이(병신굿)’로서,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논두렁이나 밭두렁에서 쉴 때 병신춤을 추며 양반을 풍자한 데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근거가 모호하다. 이 놀이는 1970년대에 들어 지역 축제인 밀양아랑제에 첫선을 보였으며, 1972년부터 경남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였다.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할 때의 명칭은 ‘병신굿놀이’로서 인사굿·신풀이굿·병신굿·모듬굿 등을 연행하였다. 그 뒤 명칭과 내용이 여러 번 바뀌었으며 1980년 제2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여하면서 놀이의 명칭을 ‘백중놀이’로 바꾸고, 내용도 오늘날 전승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수정, 보완하였다. 이 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뒤 1980년 11월 17일, ‘밀양 백중놀이’로 중요무형문화재 제68호가 되었다.

내용

밀양 백중놀이는 주로 논농사가 발달한 중부 이남 지역에서 보편적으로 전승되었으며, 지역에 따라 그 명칭과 놀이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일반적으로 호미씻이라고 부르는데 ‘논매기가 끝나고 호미를 씻어 둔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호미씻이말고도 써레씻이(강원도), 길꼬냉이·대동굿·장원례·술멕이(전라도), 머슴날(전라도, 경상도), 백중놀이·풋굿·꼼배기·꼼비기·깨임말타기(경상도), 초연草宴, 세서연洗鋤宴 등으로 그 명칭이 다양하다. 이 중에서 초연과 세서연은 풋굿과 호미씻이의 한자 명칭이다. 밀양에서는 머슴날이라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꼼배기참을 먹으며 논다 해서 ‘꼼배기참놀이’라고도 하였다. 이 ‘꼼배기참놀이’와 ‘병신굿놀이’가 합쳐져서 백중놀이가 되었다. 밀양 백중놀이는 앞놀이·본놀이·뒤풀이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앞놀이는 입장굿─잡귀맞이굿─모정자놀이─농신제 순으로 진행되는데, 제의적 요소가 강한 놀이로 구성되어 있다. 입장굿은 일종의 문굿으로 대신할 수 있는데, 마당에 들어서기 전에 풍물소리로 먼저 흥을 돋우고 나발을 길게 세 번 불어 시작을 알린다. 농신대를 앞세워 나발─쇠─징─북─장고─놀이꾼 등의 순으로 입장하여 허튼춤으로 한바탕 논다. 다음으로 놀이마당을 깨끗이 하는 의미의 잡귀맞이굿을 한다. 잡귀맞이굿은 놀이꾼들이 놀이판 가운데에 세운 농신대를 중심에 두고 춤추며 감아 들어간 후 들당산가락을 울리면서 삼배三拜를 올리는데, 이는 오방신장五方神將을 일으켜 잡귀를 막고 신이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모정자놀이는 모심기와 논매기소리를 부르면서 모심고 논매는 동작을 흉내 내는 놀이이다. 풍물꾼들이 덧배기장단을 치며 놀이판의 한옆으로 서고, 놀이꾼은 마당 한가운데에 둥근 원으로 둘러선 후 모심기 흉내를 내며 모심기소리를 주고받는다. 모심기가 끝난 후 덧배기춤으로 한동안 놀다가 김매기를 시작한다. 놀이꾼들은 한 줄로 땅에 엎드리듯 앉아 김을 매며 김매기소리를 주고받는다. 이 놀이가 끝나면 씨름이나 들돌들기로 좌상, 무상, 숫총각을 뽑고 덧배기춤을 춘다. 이렇게 배역을 정하고 나발을 길게 불어 신호를 하면 농신제를 지낸다. 먼저 농신대 앞에 제관과 축문을 읽을 사람이 서고 그 다음으로 앞서 뽑은 좌상, 무상, 수총각이 선다. 북을 ‘둥 둥 둥’ 세 번 울리면 강신했다고 하여 세 번 절하고 모두 엎드리면 제관이 제를 올린다. 이때 잡귀를 쫓기 위해 약쑥을 태운다. 제를 마치고 음복을 하는 동안, 구경꾼과 놀이꾼은 복주머니에 쌀, 돈 등과 함께 소원을 적은 종이를 넣어 농신대의 용끈에 매달고 복을 빈다. 농신대는 저릅대(삼대) 360개를 크게 네 부분으로 묶고 위에서부터 새끼줄 열두 개를 늘어뜨린 모양이다. 농신대의 네 묶음은 사계절을, 새끼줄 열두 개는 일 년 열두 달을, 삼대 360개는 일 년 360일을 상징한다. 또한 사방으로 네 가지 색깔의 베를 묶어 사선으로 당겨 매는데, 북쪽에는 흑색, 남쪽에는 적색, 동쪽에는 청색, 서쪽에는 백색을 각각 매고 중앙에는 황색을 감아 오방신장을 표현한다. 본놀이인 놀이마당은 앞놀이에 비해 극적 요소가 강한 작두말타기와 양반춤·병신춤·범부춤 등의 춤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두말타기는 백중놀이를 호미씻이의 재구성이라고 이해하였을 때 가장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앞의 힘자랑에서 뽑힌 좌상과 무상을 작두말이나 소에 태우고 마당을 돌아다닌다. 작두말은 지게와 비슷한 모양인데, 이 작두말을 네 명의 놀이꾼이 어깨에 멘다. 작두말 위에 좌상과 무상을 태우고 삿갓을 머리에 뒤집어 씌워 정자관처럼 하고 도롱이를 거꾸로 걸쳐서 도포를 입은 것처럼 하여 놀이판을 돌면서 양반 행차를 흉내 낸다. 작두말타기의 행렬은 맨 앞에 말이나 소를 끄는 시늉을 하는 놀이꾼이 서고, 그 뒤로 작두말 옆에서 지게 작대기에 큰 삿갓을 세워서 햇빛을 가리는 놀이꾼이 따른다. 작두말놀이는 일종의 길놀이이며 가장행렬이다. 작두말타기부터 시작하여 점차 신명이 오르면 양반이 머슴들의 놀이판에 슬그머니 끼어들어 양반춤을 추는데, 두세 명 정도 등장한다. 양반춤은 주로 곱덧배기장단에 맞춰 춘다. 이러한 양반의 모습이 못마땅한 머슴들은 우스꽝스러운 병신춤을 추면서 양반을 놀이판에서 쫓아낸다. 병신춤 대목에서는 곱추춤·난쟁이춤·꼬부랑할미춤·떨떨이춤·문둥이춤·배불뚝이춤·봉사춤·절름발이춤·중풍쟁이춤·히줄래기춤 등 여러 명의 배역들이 각자의 장기인 병신 모양새를 희화화하여 다양하게 보여 준다. 이런 춤은 양반춤과는 대조적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로 구경꾼을 격동시킨다. 놀이판에서 쫓겨난 양반은 이를 보고 흥겨움을 참지 못하여 의관을 벗어던지고 다시 놀이판에 뛰어들어 범부춤을 춘다. 범부춤은 덧배기장단에 맞춰 추는데, 경상도 춤의 활달하고 박력 있는 패기를 보여준다. 장구재비와 마주하여 어르기도 하고 마당을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활발한 춤을 춘다. 뒷풀이는 오북춤과 화동마당으로 구성되는데, 놀이꾼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며 노는 대동의 장이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둥그렇게 원무를 추거나 원의 안과 밖으로 들락거리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풍물재비들이 추었던 북춤에서 한층 더 세련되고 흥겹게 재구성하였다. 북재비의 인원수와 관계없이 다수의 북이 등장하였으나, 근래에 이르러 다섯 명의 북재비로 고정하여 오북춤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곱덧배기장단에 맞추어 능청능청 허튼춤을 추다가, 다시 흥겨운 배기장단에 맞추어 원을 만들면서 조이고 푸는 것을 거듭하며 북배김을 한다. 북배김은 북재비들이 원의 가운데를 향해 모여들어 서로 마주 보며 북을 힘차게 치는 것으로서 가장 역동적인 부분이다. 오북춤은 오행과 오기가 순조롭고 오체가 성하며, 오곡이 잘되어 오복을 누릴 수 있도록 기원하는 데서 착안하였다. 화동마당은 놀이꾼들과 구경꾼이 한데 어우러져서 한바탕 춤을 추며 신명을 맘껏 풀어내는 장으로서 이 놀이의 대단원을 이룬다.

특징 및 의의

백중놀이는 고된 농업 활동을 일단락 지은 농민들이 펼친 축제이다. 축제의 주체는 머슴과 소농이었고 지주 부농들은 이들을 후원하는 입장에 있었다. 축제가 벌어지는 동안, 머슴과 소농들은 맘껏 먹고 마시면서 신명을 풀어냈다. 지주와 부농들은 이를 용인하고 후원함으로써, 고용인과 피고용인, 지주와 소작인이 상생相生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편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밀양 백중놀이는 민속예술과 놀이 그리고 신앙을 바탕으로 구성한 공연물로서, 내고 달고 맺고 푸는 우리 마당놀음의 연행 원리를 수용하여 신명풀이의 미학을 구현함으로써 뛰어난 예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전통적 농경세시풍속 중 백중날을 즈음으로 펼쳐졌던 마을 공동체 놀이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서 과거의 농경 모습과 놀이를 엿볼 수 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연희자들의 복장과 소품, 놀이 구성 등에서는 전통적인 농경의 모습을 담고 있으며, 놀이에 등장하는 춤과 놀이를 통해서는 농민문화의 예술적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東國輿地勝覽, 밀양 백중놀이(김미숙·박원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4), 밀양백중놀이(한양명,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10), 밀양백중놀이의 전통창출과 사회문화적 의미(추현태, 안동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호미씻이(김수남·김미숙, 평민사, 19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