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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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갱신일 2019-01-21

정의

민중 및 그들과 연관된 계층이 전승해온 전통적 놀이 활동.

내용

지금까지 민속놀이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었지만 막상 민속놀이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민속놀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놀이’라는 의미로 이 말을 써왔고, 같은 맥락에서 전래놀이 또는 전통놀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해 왔다.

한국 민속놀이의 존재양상에 대해 폭넓은 접근을 시도한 김광언은 민속놀이의 ‘시간적 기준’과 ‘주체자의 계층’, ‘놀이의 분포 정도’ 등이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고 범주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요소들을 확정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따른다고 하면서 결국 민속놀이를 “우리의 어린이와 어른이 예부터 즐겨 오던 놀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동안 놀이를 조사하고 연구해 온 이가 이처럼 두루뭉술한 정의를 제시한 것은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고 범주를 정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속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다. 민속놀이는 ‘민속이라는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인 놀이’이므로 민속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그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1970년대 후반 이래 민속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명쾌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고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민속의 개념을 거론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여기서는 일단 일종의 작업개념을 설정해보려고 한다.

민속은 말 그대로 민중의 문화이다. 문제는 민중이 과연 누구인가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전개된 한국민속학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연구자들의 담론과 실천을 고려할 때, 민중은 정치·사회·경제적 하층을 의미한다. 민속학에서 다루는 문화현상들이 대개 전근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속놀이의 주체로서 민중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근대, 특히 근대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기인 조선 후기의 민중을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의 민중 대다수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고 신분상으로는 평민, 직업상으로는 농민이었다. 이들을 전근대의 민중이라고 할 때, 이들이 전승해온 문화를 민속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것이 곧 ‘민속 개념의 중심’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이 다른 신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배타적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중은 다른 신분 및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연립적이고 연대적이며, 위계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 문화를 구성해 왔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놀이를 비롯한 다수의 문화를 공유해 왔다. 따라서 ‘민속개념의 중심’에 해당하는 문화만을 딱 꼬집어 내기가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문화의 역동성을 해명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민속 개념의 주변’을 상정할 필요가 있는데, 민중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던 신분과 직업 집단의 문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신분상으로는 양반·중인·천민의 문화, 직업상으로는 상공인과 특수 직업 집단의 문화가 ‘민속 개념의 주변’에 속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민속은 정치·사회·경제적 하층으로서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그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신분과 직업 집단의 문화를 주변으로 하는 포괄적 문화현상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놀이의 개념이다. 일찍이 하위징아(J. Huijinga)와 카이와(R. Caillois)는 유럽의 일상적 놀이문화를 주 대상으로 삼아 놀이를 정의한 바 있다. 이들의 정의는 비일상적인 놀이에 관한 고려가 부족한 점, 놀이의 이상적 성격과 상태를 전제한 점, 양식화한 놀이와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놀이를 구분하지 않은 점, 사회문화적 상황 및 주체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점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놀이 전승의 문화적 맥락과 놀이의 존재양상에 부합하게 놀이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한시적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간 활동
  2. 참여와 몰입을 통해서 재미(즐거움)를 얻는 활동
  3. 대체로 전개과정과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활동
  4. 질서와 흐름이 있는 활동
  5.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정신적 산물을 잉태하는 활동
  6. 반복을 통한 지속성을 갖고 있으며 타인들도 공유할 수 있는 활동

지속성과 반복성을 가진 놀이, 즉 양식화한 놀이를 대상으로 한 이 정의를 수용한다면, 민속놀이는 일단 민중 및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벌이던 활동 가운데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일찍이 김광언이 민속놀이의 개념 설정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 ‘시간적 기준’, ‘주체자의 계층’, ‘놀이의 분포 정도’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시간성의 문제이다. 놀이 앞에 ‘민속’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놀이의 전통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정 기간 이상 전승되어야만 전통으로서 민속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기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전통 개념에 의거할 때, 적어도 3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기간, 즉 60년 이상 지속된 경우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다음으로 놀이 주체의 계층 문제이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민속은 민중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되 그들과 유기적 연관을 맺은 계층들의 문화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민속놀이 역시 민중들의 놀이 활동을 중심에 두되 주변 계층의 놀이 활동까지 일정하게 포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중의 놀이는 물론 여타 계층의 놀이들까지 광의의 민속놀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놀이의 분포 정도이다. 어느 정도의 지리적 분포를 보여야만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한반도에 두루 분포하는 놀이를 말 그대로 ‘한국의 민속놀이’라 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더욱 광범한 지역에서 전승된 놀이를 중심에 두되, 생활공동체이자 놀이공동체의 성격을 지녔던, 마을 단위 이상의 지역을 배경으로 전승된 놀이면 민속놀이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다. 예컨대 줄다리기의 뒤놀이를 특화시킨 ‘곳나무싸움’은 경상북도 영천 지역과 그 인근 지역에서만 전승되었고, ‘달봉뛰기’는 경북 영덕 남정면 남정리에서만 전승되었다. 이들 놀이는 비록 한 고을과 한 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었지만 민속놀이의 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놀이의 범주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범주화하면 민속놀이는 전국적 또는 광역적으로 분포한 민중들의 놀이 및 모든 계층이 공유한 놀이를 기본 범주로 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전승된 놀이 및 다른 계층의 놀이까지를 확장 범주로 포괄하는 놀이현상이라고 하겠다.

민속놀이는 그 존재양상이 다채롭고 현재까지 파악한 놀이만 해도 2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데, 전승 집단의 규모에 따라 대동놀이와 소집단놀이, 개인놀이로 나눌 수 있다. 대동놀이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참여와 후원, 그리고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비일상적 놀이인데 비해 소집단놀이는 연령, 직업, 친교 등을 매개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일상적 놀이이다. 소집단놀이에는 투전화투 등 개인의 역량이 강조되는 내기놀이도 포함되는데, 이들 놀이의 경우 여럿이 함께 하지 않으면 놀이의 재미가 줄어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개인놀이는 놀이의 집단성보다는 놀이자의 개별성이 부각되는 놀이들이다.

먼저 대동놀이이다. 전근대의 공동체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사회였다. 농업사회의 구성원들은 농사를 중심에 두고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였으며 시간의 큰 마디, 즉 해年와 계절의 전환이라는 역법曆法·자연력自然曆상의 변화나 파종·성장·수확 등 생업력生業曆상의 전환점 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명절을 배치하였다. 명절은 생업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시간과는 달리 생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비일상적 시간으로서 공동체의 축제는 바로 이때 열렸고, 대부분의 대동놀이는 축제의 중심적 연행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대동놀이는 곧 축제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사회의 지연공동체는 크게 보아 마을과 고을, 나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삶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생활 단위로서 귀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마을과 고을이었고 지역의 민속은 대개 이 두 공동체를 배경으로 전승되게 마련이었다. 대동놀이 역시 다른 민속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마을과 고을을 기반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마을을 기반으로 전승된 ‘마을형’ 놀이와 고을을 기반으로 전승된 ‘고을형’ 놀이로 대별된다. ‘마을형’과 ‘고을형’은 다시 외집단外集團의 참여에 대한 개방 여부에 따라서 ‘열린마을형’과 ‘닫힌마을형’, ‘열린고을형’과 ‘닫힌고을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닫힌마을형’은 한 마을 또는 두 마을이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대동놀이로서 연례적으로 행해졌다. 이에 비해 ‘열린마을형’은 하나의 중심 마을과 여러 개의 주변 마을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의 놀이로서, 대개 먹고 사는 형편이 괜찮을 때나 기념할만한 일이 있을 때 이웃마을들이 함께 하는 대동놀이를 벌였다. ‘열린마을형’의 중심 마을은 보통 그 지역에서 행정, 교통, 상업, 군사 등의 중심지이게 마련이었다. 한편 ‘고을형’ 대동놀이의 중심지는 그 고을의 치소治所가 있는 읍치邑治였다. 지방관이 거주하면서 고을을 다스리는 지역인 읍치는 고을의 정치, 문화, 상업, 교통, 군사 등의 중심지였다. 평시에는 읍치를 구성하는 마을들만 참여하는 ‘닫힌고을형’의 대동놀이를 벌이다가 특별한 계기, 예컨대 풍년이 들어 시절이 좋거나 가뭄이나 역병으로 시절이 나쁠 때, 그리고 무언가 기념할 일이 있을 때면 고을에 소속된 거의 모든 마을이 참여하는 ‘열린고을형’의 초대형 대동놀이를 벌였다.

한편 대동놀이는 놀이의 방식에 따라서도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지신밟기와 재판놀이, 그리고 강강술래를 비롯한 여성들의 가무놀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동놀이는 경쟁적인 놀이, 즉 편을 갈라서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便戰]’들이다. 이제까지 확인된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를 겨루는 방식을 기준으로 유형화하면 ‘당기기형’, ‘밀기형’, ‘밀고 당기기형’, ‘먼저 도달하기형’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당기기형’의 놀이로는 줄다리기가 유일하다. 줄다리기는 양편이 놀이의 도구인 줄을 잡아당겨 자기편으로 끌어옴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다음으로 ‘밀기형’은 상대편을 밀어붙임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여기에는 석전石戰, 차전車戰, 쇠머리대기, 고싸움, 횃불싸움, 박시싸움, 농기싸움 등의 놀이가 해당된다. 이들 놀이는 돌팔매, 동채, 쇠머리, 고, 맨몸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편과 접전을 벌이고, 마침내 상대편을 밀어붙임으로써 승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가장 격렬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놀이들이 바로 ‘밀기형’에 속한다.

다음으로 ‘밀고 당기기형’은 상대편을 밀어붙이는 요소와 끌어당기는 요소가 복합된 놀이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영천 지역에서 전승되었던 곳나무싸움이 유일하다. 곳나무싸움은 쌍줄을 결합시키는 데 사용한 ‘곳나무’를 뺏고 빼앗기며, 숨기고 찾는 놀이로서 곳나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요소와 상대편을 밀어붙이는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한편 ‘먼저 도달하기형’은 목표 지점에 먼저 도달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놀이로는 영덕에서 전승되었던 달봉뛰기와 울진의 해안 지역에서 전승된 놀쌈 등이 있다. 달봉뛰기는 달봉이라는 나무 막대를 계속 앞사람에게 던져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놀이이고, 놀쌈은 목선과 떼배 등을 이용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배 경주이다.

한편 소집단놀이의 경우 어른과 어린이, 그리고 유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생업과 가사 노동을 책임진 어른들의 경우 여럿이 함께 놀이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소집단놀이의 전승이 활발하지 않았다. 남성들의 경우 비교적 생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농한기에 화투, 투전, 골패, 마작 등의 놀이를 벌였는데 이들 놀이는 한결같이 내기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이밖에도 수렵과 천렵 등이 있었지만 이런 활동은 노동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었다.

여성들의 경우 경쟁적인 놀이로는 게줄당기기가 눈에 띈다. 이 놀이는 영남의 해안과 일부 내륙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전승되었다. 이에 비해 도둑잡기, 춘향이놀이, 수건돌리기, 콩심기 등의 자족적인 놀이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데, 이들 놀이는 미혼의 여성들도 공유한 것으로서 주로 농한기의 밤에 연행되었다. 한편 남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로는 윷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명절을 비롯해서 가처분 시간이 넉넉한 농한기에 벌어졌는데, 어린이들도 즐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대보름 명절 기간에 마을의 남녀가 편을 나누어 벌이는 ‘동네윷놀이’ 또는 ‘장작윷놀이’는 대동놀이의 성격까지 갖고 있었다.

이처럼 하층 남성들의 소집단놀이가 주로 실내에서 농한기에 벌어졌던 데 비해 양반 남성들의 소집단놀이는 야외에서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벌어졌다. 여럿이 산으로 가 자연의 풍광을 음미하면서 시작詩作과 음주 등을 즐기던 산놀이[遊山]와 배에 올라 머물거나 움직이면서 역시 시작과 음주 등을 즐기던 뱃놀이[船遊]가 대표적이다. 양반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탓에,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삶터를 벗어나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쌍륙투호는 남녀 어른이 함께 또는 따로 했던 놀이인데, 놀이 도구를 갖추어야 할 수 있는 놀이라서 모두 양반을 비롯한 유한계층有閑階層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일상적 소집단놀이가 제한적인 데 비해서, 생업에 덜 매여 있던 어린이들의 경우 놀이 시간의 확보와 놀이 집단의 구성이 용이했기 때문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남아들이 하는 놀이는 자치기, 장치기, 군사놀이, 비석치기, 말타기, 진놀이, 깡통차기와 같이 신체 동작이 활발하고 주변 공간을 넓게 사용하며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놀이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 여아들은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망차기와 같이 단계가 조금씩 높아짐에 따라 목표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목표수행형 놀이와 소꿉놀이, 가락지찾기, 까막잡기와 같이 서로 어울리며 즐기는 놀이들이 많았다. 이처럼 남아와 여아의 놀이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나이가 어릴 경우 함께 놀기도 했다. 깨금발싸움이나 봉사놀이, 닭살이, 숨바꼭질 등과 같은 놀이는 모든 어린이가 즐겨하던 놀이였다. 한편 양반 집안의 어린이는 대개 실외에서의 역동적인 놀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 받았기 때문에 주로 실내에서 놀았는데, 고을의 이름을 외워야 이길 수 있는 고을모둠, 벼슬의 위계를 파악하는 승경도, 전국의 명승지를 신분에 따라 유람하는 남승도놀이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 개인놀이이다. 남성 어른들의 경우 장기, 바둑과 같이 내기가 가능한 전략수행형의 경쟁적 놀이가 대부분이다. 바둑의 경우 놀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주로 양반을 비롯한 유한계층에서 많이 즐긴 데 비해 장기는 바둑에 비해 놀이 방법이 간단하고 시간이 적게 걸려서 민중들이 즐겼다. “갓 쓴 분은 바둑을 두고 수건 맨 놈은 장기를 둔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여성 어른들의 경우 누가 많은 실을 잣는가를 겨루는 길쌈놀이가 있지만, 이 놀이는 가사 노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양식화한 놀이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이밖에 여성 어른들의 개인놀이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역시 가처분시간의 절대적 부족 및 여성의 정숙한 처신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유교 이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의 개인놀이가 제한적인 데 비해서 어린이들의 놀이는 소집단놀이와 마찬가지로 다채롭다. 남아놀이의 경우, 놀이 이름에 ‘치기’ 또는 ‘차기’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경쟁적인 요소를 담고 있거나 경쟁이 가능한 놀이들이다. 상대방이 가진 놀잇감을 걸고 경쟁하는 딱지치기, 돈치기, 못치기, 엿치기 등과 자족적인 놀이면서도 언제든지 경쟁적인 놀이로 바뀔 수 있는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이 그러하다. 이밖에 완력과 몸의 조정력을 겨루는 놀이로 씨름, 팔씨름, 깨금발싸움 등과 전략적 사고 및 지적 능력을 겨루는 고누 등이 있었다. 이에 비해 여아들은 풀싸움, 널뛰기, 실뜨기, 꽈리불기와 같이 경쟁적인 요소가 있긴 해도 승부의 결과보다는 놀이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놀이들을 많이 했다. 한편 혼자서 하는 놀이는 드물었는데 남아의 경우 굴렁쇠굴리기, 여아의 경우 꽈리불기 등이 있었다.

개인놀이는 개별성이 우선되는 놀이인 만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즐긴 놀이들이 많았다. 이들 놀이는 대개 경쟁적이기보다는 자족적인 것이었다. 방아깨비를 잡아서 방아를 찧게 하는 방아깨비놀이, 풍뎅이를 잡아서 마당을 쓸게 하는 풍뎅이놀이, 잠자리를 잡아서 하는 잠자리시집보내기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곤충을 가지고 하는 놀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다니며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즐기거나 수수깡과 풀, 헝겊으로 풀각시를 만들어 시집·장가가는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으며, 달빛이나 촛불을 이용해 개나 고양이 등 여러 가지 형상의 그림자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한편 경쟁적인 놀이는 많지 않았는데, 쫄기접시(물수제비)와 깃대쓰러뜨리기(흙놀이) 등이 있었다.

한편 유아들의 놀이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회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유안진의 연구가 돋보인다. 그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유아 및 아동의 발달 단계를 태교 단계(잉태 전∼출생), 감각 및 동작 훈련 단계(출생∼3세), 무릎학교 단계(3∼5세), 자발적 학습 단계(5∼7세), 성역할 교육 단계(7∼13세) 등으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유아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각 및 동작 훈련 단계의 놀이는 성인이 주도하는 실내놀이로서 감각 및 동작 기능의 훈련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신체와 인지, 언어 발달 등의 교육적 효과를 갖고 있다. 다음으로 무릎학교 단계의 놀이는 전 단계에 비해 놀이가 한층 복잡해지고, 놀이의 흥겨움과 동작 변화를 돕기 위해 동요가 따른다. 또한 이 시기의 유아가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 즉 이유離乳 및 배변과 관련된 놀이가 등장한다. 한편 자발적 학습 단계의 놀이는 자율적으로 진행되는데, 놀이 규칙이 복잡해지고 놀이 도구가 등장하며 놀이 장소와 계절 및 시간에 적응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전통생활문화를 교육하는 수단으로서 발달 과업 수행 및 버릇 교정의 효과를 보여준다. 교육적 효과로는 신체 발달, 성격 및 사회성 발달, 인지 및 도덕성 발달, 언어 및 표현의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놀이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기존의 연구에서 대동놀이는 대개 거론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대동놀이를 어른들의 놀이로만 인식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동놀이는 어른들의 놀이만이 아니었다. 축제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대동놀이는 대개 아이들에 의해서 선행되었고, 아이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놀이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런 양상은 사회화의 특정한 단계에서만 연령 구속적으로 행해진 놀이들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공동체문화와 사회화의 상관성을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아이들이 대동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과 운영의 원리이다. 줄다리기를 예로 들어보면, 열 살 안팎의 아이들은 정초부터 가는 줄을 만들어 이른바 ‘애기줄’을 당기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하는 연령도 높아진다. 어른들은 이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아이들이 당기는 줄을 더 크게 만들거나 새 줄을 만들어 노소가 함께 하는 줄다리기를 벌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경비를 마련하고 줄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튼튼한 줄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참여하여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익힌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윤리와 공동체의 운영 원리로서 협화協和와 상생相生을 체득하게 된다.

한편 대동놀이가 이웃 마을과 대항전으로 벌어질 경우, 마을은 더욱 결속력이 강한 놀이 집단이 된다. 놀이 준비는 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아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강한 귀속감을 바탕으로 이웃 마을 아이들과 전초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자각, 강화하게 된다.

대동놀이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갖는 또 다른 역할은 집단적으로 신명을 풀어내는 방식에 대한 학습과 대동을 원리로 하는 축제 정신에 대한 이해이다. 대동놀이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일상의 윤리도덕적 판단이 정지되고 대동을 기조로 하는 축제적 판단이 우선된다. 일상적 차별이 약화하거나 무화하고, 일상적 규범이 효력을 정지한 상태에서 민중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에 도전하고 전복을 도모함으로써 집단적으로 신명을 풀어낸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형父兄과 함께 놀이에 참여하는 동안 축제의 존재양상과 전승 방식을 이해하는 한편,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비일상적 신명풀이의 진면목을 배우면서 일상적 질서와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일상의 영역에서는 절대의 영역에 속하던 것들이 축제의 영역에서는 상대화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차츰 일상에서 추구되는 가치의 상대성에 눈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곧 한 아이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확보해가는 학습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한편 오늘날 우리의 민속놀이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근대 사회에서처럼 삶과 밀착한 모습으로 전승되지 않고, 새로운 문화적 맥락 속에 편입되어 전승되고 있다. 성글게나마 그 전승의 양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민속놀이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전승이 단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동놀이 가운데 그나마 전래의 놀이 집단에 의해 세시풍속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줄다리기에 국한된다. 이밖에 전래 놀이집단에 의해 전승이 이뤄지는 것으로는 숨바꼭질·비석치기·말타기와 같은 어린이들의 소집단놀이, 팽이치기·제기차기·쫄기접시와 같은 개인놀이, 그리고 도리도리·곤지곤지 등 유아기의 놀이들이 있다. 또한 윷놀이도 아직 전승력을 가지고 있는 놀이인데, 놀이 도구의 간편성과 놀이 규칙의 가변성 때문에 전승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전승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역 축제를 매개로 한 전승이다. 1960년대 이후 전국 곳곳에서 지역 축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역의 문화 자원으로서 민속놀이가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1995년 이후, 축제를 문화·관광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함에 따라 지역에서 전승되었거나 전승되고 있는 민속놀이들이 무대화되어 축제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씨름과 택견, 그리고 투우 등은 스포츠화함으로써 전승력을 확보한 경우이다. 이들은 아마추어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 또는 합법화된 내기놀이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변화하는 전승 환경에 적응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요무형문화재 및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는 경우이다. 이들 지정 문화재는 무형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한 전승의 의무와 전수교육의 체계 등에 따라 전승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가 또는 지방 정부로부터 전승에 필요한 지원을 일정하게 받음으로써 그 전승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지역 축제의 행사로 편입되어서 지역 정체성의 구성과 지역 문화의 관광상품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놀이와 인간(R. Caillois,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1994), 민속놀이의 조사와 자원화(한양명, 마을민속조사 어떻게 할 것인가, 민속원, 2002), 한국 민속놀이 연구의 시각과 전망(한양명, 비교민속학38, 비교민속학회, 2009), 한국의 민속놀이(김광언, 인하대학교출판부, 1982),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유안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호모루덴스(J. Huijinga, 김윤수 역, 까치, 1993).

민속놀이

민속놀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갱신일 2019-01-21

정의

민중 및 그들과 연관된 계층이 전승해온 전통적 놀이 활동.

내용

지금까지 민속놀이에 대한 연구는 상당히 축적되었지만 막상 민속놀이가 무엇인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민속놀이로 볼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오는 놀이’라는 의미로 이 말을 써왔고, 같은 맥락에서 전래놀이 또는 전통놀이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해 왔다. 한국 민속놀이의 존재양상에 대해 폭넓은 접근을 시도한 김광언은 민속놀이의 ‘시간적 기준’과 ‘주체자의 계층’, ‘놀이의 분포 정도’ 등이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고 범주를 설정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요소들을 확정하는 데는 많은 문제가 따른다고 하면서 결국 민속놀이를 “우리의 어린이와 어른이 예부터 즐겨 오던 놀이”라고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오랜 세월 동안 놀이를 조사하고 연구해 온 이가 이처럼 두루뭉술한 정의를 제시한 것은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고 범주를 정하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은 것임을 보여준다. 민속놀이의 개념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속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에 답할 필요가 있다. 민속놀이는 ‘민속이라는 문화현상 가운데 하나인 놀이’이므로 민속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그 실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1970년대 후반 이래 민속의 개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명쾌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고 이런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민속의 개념을 거론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여기서는 일단 일종의 작업개념을 설정해보려고 한다. 민속은 말 그대로 민중의 문화이다. 문제는 민중이 과연 누구인가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전개된 한국민속학의 역사와 성격, 그리고 연구자들의 담론과 실천을 고려할 때, 민중은 정치·사회·경제적 하층을 의미한다. 민속학에서 다루는 문화현상들이 대개 전근대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민속놀이의 주체로서 민중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근대, 특히 근대로부터 가장 가까운 시기인 조선 후기의 민중을 살필 필요가 있다. 당시의 민중 대다수는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하층에 속하고 신분상으로는 평민, 직업상으로는 농민이었다. 이들을 전근대의 민중이라고 할 때, 이들이 전승해온 문화를 민속이라고 할 수 있겠고, 이것이 곧 ‘민속 개념의 중심’에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민중이 다른 신분,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배타적 관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민중은 다른 신분 및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연립적이고 연대적이며, 위계적인 관계 속에서 우리 문화를 구성해 왔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놀이를 비롯한 다수의 문화를 공유해 왔다. 따라서 ‘민속개념의 중심’에 해당하는 문화만을 딱 꼬집어 내기가 만만치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는 문화의 역동성을 해명하기 어렵다. 이 지점에서 ‘민속 개념의 주변’을 상정할 필요가 있는데, 민중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던 신분과 직업 집단의 문화가 여기에 포함된다. 신분상으로는 양반·중인·천민의 문화, 직업상으로는 상공인과 특수 직업 집단의 문화가 ‘민속 개념의 주변’에 속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민속은 정치·사회·경제적 하층으로서 농업에 종사하는 평민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고, 그들과 일정한 관계를 맺고 있던 신분과 직업 집단의 문화를 주변으로 하는 포괄적 문화현상이라고 하겠다. 다음으로 놀이의 개념이다. 일찍이 하위징아(J. Huijinga)와 카이와(R. Caillois)는 유럽의 일상적 놀이문화를 주 대상으로 삼아 놀이를 정의한 바 있다. 이들의 정의는 비일상적인 놀이에 관한 고려가 부족한 점, 놀이의 이상적 성격과 상태를 전제한 점, 양식화한 놀이와 일시적이고 임의적인 놀이를 구분하지 않은 점, 사회문화적 상황 및 주체의 입장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지 않은 점 등의 문제를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해서 놀이 전승의 문화적 맥락과 놀이의 존재양상에 부합하게 놀이를 정의해보면 다음과 같다.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한시적으로 독립된 공간에서 행해지는 인간 활동 참여와 몰입을 통해서 재미(즐거움)를 얻는 활동 대체로 전개과정과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활동 질서와 흐름이 있는 활동 재화를 생산하지는 않으나 정신적 산물을 잉태하는 활동 반복을 통한 지속성을 갖고 있으며 타인들도 공유할 수 있는 활동 지속성과 반복성을 가진 놀이, 즉 양식화한 놀이를 대상으로 한 이 정의를 수용한다면, 민속놀이는 일단 민중 및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계층의 사람들이 벌이던 활동 가운데 위의 조건을 충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은 문제는 일찍이 김광언이 민속놀이의 개념 설정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한 ‘시간적 기준’, ‘주체자의 계층’, ‘놀이의 분포 정도’ 등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먼저 시간성의 문제이다. 놀이 앞에 ‘민속’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놀이의 전통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일정 기간 이상 전승되어야만 전통으로서 민속놀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기간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전통 개념에 의거할 때, 적어도 3세대가 함께 할 수 있는 기간, 즉 60년 이상 지속된 경우로 봄이 타당할 것이다. 다음으로 놀이 주체의 계층 문제이다. 이미 앞에서 살펴본 대로 민속은 민중의 문화를 중심으로 하되 그들과 유기적 연관을 맺은 계층들의 문화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민속놀이 역시 민중들의 놀이 활동을 중심에 두되 주변 계층의 놀이 활동까지 일정하게 포괄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민중의 놀이는 물론 여타 계층의 놀이들까지 광의의 민속놀이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놀이의 분포 정도이다. 어느 정도의 지리적 분포를 보여야만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융통성 있는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상적으로는 한반도에 두루 분포하는 놀이를 말 그대로 ‘한국의 민속놀이’라 하겠지만 이런 경우는 제한적이다. 따라서 더욱 광범한 지역에서 전승된 놀이를 중심에 두되, 생활공동체이자 놀이공동체의 성격을 지녔던, 마을 단위 이상의 지역을 배경으로 전승된 놀이면 민속놀이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이 현실적일 것 같다. 예컨대 줄다리기의 뒤놀이를 특화시킨 ‘곳나무싸움’은 경상북도 영천 지역과 그 인근 지역에서만 전승되었고, ‘달봉뛰기’는 경북 영덕 남정면 남정리에서만 전승되었다. 이들 놀이는 비록 한 고을과 한 마을을 중심으로 전승되었지만 민속놀이의 제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속놀이의 범주 속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범주화하면 민속놀이는 전국적 또는 광역적으로 분포한 민중들의 놀이 및 모든 계층이 공유한 놀이를 기본 범주로 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전승된 놀이 및 다른 계층의 놀이까지를 확장 범주로 포괄하는 놀이현상이라고 하겠다. 민속놀이는 그 존재양상이 다채롭고 현재까지 파악한 놀이만 해도 2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다양한데, 전승 집단의 규모에 따라 대동놀이와 소집단놀이, 개인놀이로 나눌 수 있다. 대동놀이는 공동체 구성원 다수의 참여와 후원, 그리고 관심 속에서 진행되는 비일상적 놀이인데 비해 소집단놀이는 연령, 직업, 친교 등을 매개로 소수의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일상적 놀이이다. 소집단놀이에는 투전과 화투 등 개인의 역량이 강조되는 내기놀이도 포함되는데, 이들 놀이의 경우 여럿이 함께 하지 않으면 놀이의 재미가 줄어드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편 개인놀이는 놀이의 집단성보다는 놀이자의 개별성이 부각되는 놀이들이다. 먼저 대동놀이이다. 전근대의 공동체는 농업을 위주로 하는 사회였다. 농업사회의 구성원들은 농사를 중심에 두고 시간의 변화에 주목하였으며 시간의 큰 마디, 즉 해年와 계절의 전환이라는 역법曆法·자연력自然曆상의 변화나 파종·성장·수확 등 생업력生業曆상의 전환점 등에 의미를 부여하여 명절을 배치하였다. 명절은 생업을 영위하는 일상적인 시간과는 달리 생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비일상적 시간으로서 공동체의 축제는 바로 이때 열렸고, 대부분의 대동놀이는 축제의 중심적 연행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었다. 따라서 대동놀이는 곧 축제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사회의 지연공동체는 크게 보아 마을과 고을, 나라로 구성되었다. 이 가운데 삶의 맥락에서 의미 있는 생활 단위로서 귀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마을과 고을이었고 지역의 민속은 대개 이 두 공동체를 배경으로 전승되게 마련이었다. 대동놀이 역시 다른 민속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마을과 고을을 기반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마을을 기반으로 전승된 ‘마을형’ 놀이와 고을을 기반으로 전승된 ‘고을형’ 놀이로 대별된다. ‘마을형’과 ‘고을형’은 다시 외집단外集團의 참여에 대한 개방 여부에 따라서 ‘열린마을형’과 ‘닫힌마을형’, ‘열린고을형’과 ‘닫힌고을형’으로 나눌 수 있다. ‘닫힌마을형’은 한 마을 또는 두 마을이 제한적으로 참여하는 대동놀이로서 연례적으로 행해졌다. 이에 비해 ‘열린마을형’은 하나의 중심 마을과 여러 개의 주변 마을들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의 놀이로서, 대개 먹고 사는 형편이 괜찮을 때나 기념할만한 일이 있을 때 이웃마을들이 함께 하는 대동놀이를 벌였다. ‘열린마을형’의 중심 마을은 보통 그 지역에서 행정, 교통, 상업, 군사 등의 중심지이게 마련이었다. 한편 ‘고을형’ 대동놀이의 중심지는 그 고을의 치소治所가 있는 읍치邑治였다. 지방관이 거주하면서 고을을 다스리는 지역인 읍치는 고을의 정치, 문화, 상업, 교통, 군사 등의 중심지였다. 평시에는 읍치를 구성하는 마을들만 참여하는 ‘닫힌고을형’의 대동놀이를 벌이다가 특별한 계기, 예컨대 풍년이 들어 시절이 좋거나 가뭄이나 역병으로 시절이 나쁠 때, 그리고 무언가 기념할 일이 있을 때면 고을에 소속된 거의 모든 마을이 참여하는 ‘열린고을형’의 초대형 대동놀이를 벌였다. 한편 대동놀이는 놀이의 방식에 따라서도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지신밟기와 재판놀이, 그리고 강강술래를 비롯한 여성들의 가무놀이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대동놀이는 경쟁적인 놀이, 즉 편을 갈라서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便戰]’들이다. 이제까지 확인된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를 겨루는 방식을 기준으로 유형화하면 ‘당기기형’, ‘밀기형’, ‘밀고 당기기형’, ‘먼저 도달하기형’ 등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당기기형’의 놀이로는 줄다리기가 유일하다. 줄다리기는 양편이 놀이의 도구인 줄을 잡아당겨 자기편으로 끌어옴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다음으로 ‘밀기형’은 상대편을 밀어붙임으로써 승부를 결정하는 놀이이다. 여기에는 석전石戰, 차전車戰, 쇠머리대기, 고싸움, 횃불싸움, 박시싸움, 농기싸움 등의 놀이가 해당된다. 이들 놀이는 돌팔매, 동채, 쇠머리, 고, 맨몸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상대편과 접전을 벌이고, 마침내 상대편을 밀어붙임으로써 승부를 결정한다. 이에 따라 가장 격렬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놀이들이 바로 ‘밀기형’에 속한다. 다음으로 ‘밀고 당기기형’은 상대편을 밀어붙이는 요소와 끌어당기는 요소가 복합된 놀이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영천 지역에서 전승되었던 곳나무싸움이 유일하다. 곳나무싸움은 쌍줄을 결합시키는 데 사용한 ‘곳나무’를 뺏고 빼앗기며, 숨기고 찾는 놀이로서 곳나무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요소와 상대편을 밀어붙이는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한편 ‘먼저 도달하기형’은 목표 지점에 먼저 도달하는 편이 이기는 놀이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놀이로는 영덕에서 전승되었던 달봉뛰기와 울진의 해안 지역에서 전승된 놀쌈 등이 있다. 달봉뛰기는 달봉이라는 나무 막대를 계속 앞사람에게 던져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놀이이고, 놀쌈은 목선과 떼배 등을 이용해서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배 경주이다. 한편 소집단놀이의 경우 어른과 어린이, 그리고 유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생업과 가사 노동을 책임진 어른들의 경우 여럿이 함께 놀이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소집단놀이의 전승이 활발하지 않았다. 남성들의 경우 비교적 생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농한기에 화투, 투전, 골패, 마작 등의 놀이를 벌였는데 이들 놀이는 한결같이 내기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이밖에도 수렵과 천렵 등이 있었지만 이런 활동은 노동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었다. 여성들의 경우 경쟁적인 놀이로는 게줄당기기가 눈에 띈다. 이 놀이는 영남의 해안과 일부 내륙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전승되었다. 이에 비해 도둑잡기, 춘향이놀이, 수건돌리기, 콩심기 등의 자족적인 놀이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데, 이들 놀이는 미혼의 여성들도 공유한 것으로서 주로 농한기의 밤에 연행되었다. 한편 남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로는 윷놀이가 있다. 이 놀이는 명절을 비롯해서 가처분 시간이 넉넉한 농한기에 벌어졌는데, 어린이들도 즐길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민속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뿐만 아니라 대보름 명절 기간에 마을의 남녀가 편을 나누어 벌이는 ‘동네윷놀이’ 또는 ‘장작윷놀이’는 대동놀이의 성격까지 갖고 있었다. 이처럼 하층 남성들의 소집단놀이가 주로 실내에서 농한기에 벌어졌던 데 비해 양반 남성들의 소집단놀이는 야외에서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벌어졌다. 여럿이 산으로 가 자연의 풍광을 음미하면서 시작詩作과 음주 등을 즐기던 산놀이[遊山]와 배에 올라 머물거나 움직이면서 역시 시작과 음주 등을 즐기던 뱃놀이[船遊]가 대표적이다. 양반들은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탓에, 그들이 원하는 시간에 삶터를 벗어나서 풍류를 즐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쌍륙과 투호는 남녀 어른이 함께 또는 따로 했던 놀이인데, 놀이 도구를 갖추어야 할 수 있는 놀이라서 모두 양반을 비롯한 유한계층有閑階層에서만 즐길 수 있는 것이었다. 어른들의 일상적 소집단놀이가 제한적인 데 비해서, 생업에 덜 매여 있던 어린이들의 경우 놀이 시간의 확보와 놀이 집단의 구성이 용이했기 때문에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남아들이 하는 놀이는 자치기, 장치기, 군사놀이, 비석치기, 말타기, 진놀이, 깡통차기와 같이 신체 동작이 활발하고 주변 공간을 넓게 사용하며 경쟁의 원리를 바탕으로 행해지는 놀이들이 많았다. 이에 비해 여아들은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망차기와 같이 단계가 조금씩 높아짐에 따라 목표의 달성이 어려워지는 목표수행형 놀이와 소꿉놀이, 가락지찾기, 까막잡기와 같이 서로 어울리며 즐기는 놀이들이 많았다. 이처럼 남아와 여아의 놀이가 구분되어 있었지만 나이가 어릴 경우 함께 놀기도 했다. 깨금발싸움이나 봉사놀이, 닭살이, 숨바꼭질 등과 같은 놀이는 모든 어린이가 즐겨하던 놀이였다. 한편 양반 집안의 어린이는 대개 실외에서의 역동적인 놀이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 받았기 때문에 주로 실내에서 놀았는데, 고을의 이름을 외워야 이길 수 있는 고을모둠, 벼슬의 위계를 파악하는 승경도, 전국의 명승지를 신분에 따라 유람하는 남승도놀이 등이 있었다. 다음으로 개인놀이이다. 남성 어른들의 경우 장기, 바둑과 같이 내기가 가능한 전략수행형의 경쟁적 놀이가 대부분이다. 바둑의 경우 놀이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주로 양반을 비롯한 유한계층에서 많이 즐긴 데 비해 장기는 바둑에 비해 놀이 방법이 간단하고 시간이 적게 걸려서 민중들이 즐겼다. “갓 쓴 분은 바둑을 두고 수건 맨 놈은 장기를 둔다.”라는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여성 어른들의 경우 누가 많은 실을 잣는가를 겨루는 길쌈놀이가 있지만, 이 놀이는 가사 노동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양식화한 놀이 활동으로 보기 어렵다. 이밖에 여성 어른들의 개인놀이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는 역시 가처분시간의 절대적 부족 및 여성의 정숙한 처신을 요구하는 가부장적 유교 이념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른들의 개인놀이가 제한적인 데 비해서 어린이들의 놀이는 소집단놀이와 마찬가지로 다채롭다. 남아놀이의 경우, 놀이 이름에 ‘치기’ 또는 ‘차기’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경쟁적인 요소를 담고 있거나 경쟁이 가능한 놀이들이다. 상대방이 가진 놀잇감을 걸고 경쟁하는 딱지치기, 돈치기, 못치기, 엿치기 등과 자족적인 놀이면서도 언제든지 경쟁적인 놀이로 바뀔 수 있는 팽이치기, 제기차기 등이 그러하다. 이밖에 완력과 몸의 조정력을 겨루는 놀이로 씨름, 팔씨름, 깨금발싸움 등과 전략적 사고 및 지적 능력을 겨루는 고누 등이 있었다. 이에 비해 여아들은 풀싸움, 널뛰기, 실뜨기, 꽈리불기와 같이 경쟁적인 요소가 있긴 해도 승부의 결과보다는 놀이의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놀이들을 많이 했다. 한편 혼자서 하는 놀이는 드물었는데 남아의 경우 굴렁쇠굴리기, 여아의 경우 꽈리불기 등이 있었다. 개인놀이는 개별성이 우선되는 놀이인 만큼 성별을 가리지 않고 즐긴 놀이들이 많았다. 이들 놀이는 대개 경쟁적이기보다는 자족적인 것이었다. 방아깨비를 잡아서 방아를 찧게 하는 방아깨비놀이, 풍뎅이를 잡아서 마당을 쓸게 하는 풍뎅이놀이, 잠자리를 잡아서 하는 잠자리시집보내기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곤충을 가지고 하는 놀이들이 여기에 속한다. 또한 바람개비를 들고 뛰어다니며 바람개비가 돌아가는 모습을 즐기거나 수수깡과 풀, 헝겊으로 풀각시를 만들어 시집·장가가는 모습을 흉내 내기도 했으며, 달빛이나 촛불을 이용해 개나 고양이 등 여러 가지 형상의 그림자를 만들며 놀기도 했다. 한편 경쟁적인 놀이는 많지 않았는데, 쫄기접시(물수제비)와 깃대쓰러뜨리기(흙놀이) 등이 있었다. 한편 유아들의 놀이는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사회화의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유안진의 연구가 돋보인다. 그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유아 및 아동의 발달 단계를 태교 단계(잉태 전∼출생), 감각 및 동작 훈련 단계(출생∼3세), 무릎학교 단계(3∼5세), 자발적 학습 단계(5∼7세), 성역할 교육 단계(7∼13세) 등으로 나누었다. 이 가운데 유아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각 및 동작 훈련 단계의 놀이는 성인이 주도하는 실내놀이로서 감각 및 동작 기능의 훈련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신체와 인지, 언어 발달 등의 교육적 효과를 갖고 있다. 다음으로 무릎학교 단계의 놀이는 전 단계에 비해 놀이가 한층 복잡해지고, 놀이의 흥겨움과 동작 변화를 돕기 위해 동요가 따른다. 또한 이 시기의 유아가 수행해야 할 발달 과업, 즉 이유離乳 및 배변과 관련된 놀이가 등장한다. 한편 자발적 학습 단계의 놀이는 자율적으로 진행되는데, 놀이 규칙이 복잡해지고 놀이 도구가 등장하며 놀이 장소와 계절 및 시간에 적응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또한 전통생활문화를 교육하는 수단으로서 발달 과업 수행 및 버릇 교정의 효과를 보여준다. 교육적 효과로는 신체 발달, 성격 및 사회성 발달, 인지 및 도덕성 발달, 언어 및 표현의 발달 등을 들 수 있다. 한편 놀이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 기존의 연구에서 대동놀이는 대개 거론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게 된 것은 대동놀이를 어른들의 놀이로만 인식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동놀이는 어른들의 놀이만이 아니었다. 축제의 시공간에서 벌어진 대동놀이는 대개 아이들에 의해서 선행되었고, 아이들이 함께 하는 가운데 놀이 활동이 이루어졌다. 이런 양상은 사회화의 특정한 단계에서만 연령 구속적으로 행해진 놀이들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공동체문화와 사회화의 상관성을 파악하는 데 매우 긴요한 의미를 갖는다. 먼저 아이들이 대동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은 공동체가 추구하는 이념과 운영의 원리이다. 줄다리기를 예로 들어보면, 열 살 안팎의 아이들은 정초부터 가는 줄을 만들어 이른바 ‘애기줄’을 당기기 시작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참여하는 연령도 높아진다. 어른들은 이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아이들이 당기는 줄을 더 크게 만들거나 새 줄을 만들어 노소가 함께 하는 줄다리기를 벌인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경비를 마련하고 줄을 제작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튼튼한 줄을 만드는 방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의무적으로 참여하여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원만하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과정을 익힌다. 이런 가운데 아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지켜야할 윤리와 공동체의 운영 원리로서 협화協和와 상생相生을 체득하게 된다. 한편 대동놀이가 이웃 마을과 대항전으로 벌어질 경우, 마을은 더욱 결속력이 강한 놀이 집단이 된다. 놀이 준비는 긴장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고 아이들은 공동체에 대한 강한 귀속감을 바탕으로 이웃 마을 아이들과 전초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더욱 분명하게 인식하고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정체성을 자각, 강화하게 된다. 대동놀이가 아이들의 사회화 과정에서 갖는 또 다른 역할은 집단적으로 신명을 풀어내는 방식에 대한 학습과 대동을 원리로 하는 축제 정신에 대한 이해이다. 대동놀이가 벌어지는 현장에서는 일상의 윤리도덕적 판단이 정지되고 대동을 기조로 하는 축제적 판단이 우선된다. 일상적 차별이 약화하거나 무화하고, 일상적 규범이 효력을 정지한 상태에서 민중은 기존의 지배적 가치에 도전하고 전복을 도모함으로써 집단적으로 신명을 풀어낸다. 아이들은 자신의 부형父兄과 함께 놀이에 참여하는 동안 축제의 존재양상과 전승 방식을 이해하는 한편,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비일상적 신명풀이의 진면목을 배우면서 일상적 질서와 가치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일상의 영역에서는 절대의 영역에 속하던 것들이 축제의 영역에서는 상대화되고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이들은 차츰 일상에서 추구되는 가치의 상대성에 눈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곧 한 아이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을 확보해가는 학습의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한편 오늘날 우리의 민속놀이는 일부를 제외하면 전근대 사회에서처럼 삶과 밀착한 모습으로 전승되지 않고, 새로운 문화적 맥락 속에 편입되어 전승되고 있다. 성글게나마 그 전승의 양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민속놀이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그리고 산업화시기를 거치면서 전승이 단절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동놀이 가운데 그나마 전래의 놀이 집단에 의해 세시풍속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줄다리기에 국한된다. 이밖에 전래 놀이집단에 의해 전승이 이뤄지는 것으로는 숨바꼭질·비석치기·말타기와 같은 어린이들의 소집단놀이, 팽이치기·제기차기·쫄기접시와 같은 개인놀이, 그리고 도리도리·곤지곤지 등 유아기의 놀이들이 있다. 또한 윷놀이도 아직 전승력을 가지고 있는 놀이인데, 놀이 도구의 간편성과 놀이 규칙의 가변성 때문에 전승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면서 전승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지역 축제를 매개로 한 전승이다. 1960년대 이후 전국 곳곳에서 지역 축제가 만들어짐에 따라 지역의 문화 자원으로서 민속놀이가 주목받게 되었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1995년 이후, 축제를 문화·관광상품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화함에 따라 지역에서 전승되었거나 전승되고 있는 민속놀이들이 무대화되어 축제 행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편 씨름과 택견, 그리고 투우 등은 스포츠화함으로써 전승력을 확보한 경우이다. 이들은 아마추어 스포츠와 프로 스포츠 또는 합법화된 내기놀이로 자리매김함으로써 변화하는 전승 환경에 적응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요무형문화재 및 지방의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전승되는 경우이다. 이들 지정 문화재는 무형문화재보호법에서 규정한 전승의 의무와 전수교육의 체계 등에 따라 전승 활동을 하고 있으며, 국가 또는 지방 정부로부터 전승에 필요한 지원을 일정하게 받음으로써 그 전승이 법적·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경우 지역 축제의 행사로 편입되어서 지역 정체성의 구성과 지역 문화의 관광상품화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참고문헌

놀이와 인간(R. Caillois, 이상률 역, 문예출판사, 1994), 민속놀이의 조사와 자원화(한양명, 마을민속조사 어떻게 할 것인가, 민속원, 2002), 한국 민속놀이 연구의 시각과 전망(한양명, 비교민속학38, 비교민속학회, 2009), 한국의 민속놀이(김광언, 인하대학교출판부, 1982), 한국전통사회의 유아교육(유안진, 서울대학교출판부, 1990), 호모루덴스(J. Huijinga, 김윤수 역, 까치,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