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강술래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서해숙(徐海淑)

정의

서남 해안 일대에서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때 여성들 중심으로 각종 원무圓舞를 그리면서 춤, 노래, 놀이가 병행되는 민속놀이.

내용

강강술래는 여러 학자가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일찍이 송석하는 강강술래를 ‘음악적・무용적・연극적・유희적인 성격을 지닌 여성들만의 단체놀이요, 계절적 분류로는 8월의 놀이요, 관념적 분류로는 정서 감정상의 놀이요, 지리적 분류로는 남선 지방南鮮地方의 놀이’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김선풍은 강강술래를 명절놀이로 크게 분류하면서, 풍농기원놀이이며 오락을 위한 놀이로서 대보름(추석)에 성인 여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집단놀이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임재해는 강강술래를 각종 원무가 곁들어 있는 춤놀이이자 노래를 불러야 가능한 노래놀이일 뿐만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체 사설과 가장된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극놀이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정의와 함께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고대기원설과 근대기원설로 나누어 논의되었다. 고대기원설은 강강술래를 고대 수확감사제의 자취로 보는 경우, 마한시대 이전의 상고수렵인의 무용으로 보는 경우 그리고 마한시대의 노래나 유희로 보는 경우이다. 그리고 근대기원설은 강강술래를 임진왜란 당시 동원된 해안지대의 부녀자들의 가무로 보는 경우이다.

고대기원설 가운데는 특히 마한시대의 기록을 근거하여 그 연원을 추론하면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자 하였는데, 마한시대의 유희가 강강술래 유희와 상통하는 근거를 문헌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즉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 마한조馬韓條의 ‘많은 사람이 떼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 인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節奏는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라는 마한 유희가 강강술래와 같이 원무 형태를 띤 군중 가무의 집단 유희였다고 하였다. 또한 가무 행사가 농사와 관련 있는 달인 5월・10월에 이루어지며, 마한이라는 지역이 갖는 분포권이 강강술래와 상통함에 따라 마한시대의 유희를 오늘날 현전하는 강강술래의 모체로 보았다. 그러나 마한시대의 무용은 그 동작 면에서 오히려 농악과 비슷한 점이 많아 농악의 원시형으로 보며, 농악의 동작과 기교, 가창면에서 오히려 농악을 강강술래보다 발전・변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대기원설 중 일부는 강강술래를 원무가 갖는 근원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원놀이로서, 다 같이 손을 잡고 힘차게 답무하면서 농작물의 성장의례적인 놀이, 전투적인 놀이, 흥풀이 등을 하고 있는 남녀군취가무의 유풍으로 보았다. 또한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의 발전이라 하였다. 그 외에 고대 사회의 난혼의 교접 결합의 굿판으로 구애와 짝짓기의 혼례의례의 남녀연희에서 강강술래의 기원을 찾기도 하였다. 또한 원시사회에서 만월의 명절을 맞이하여 여성들이 벌이는 축제의 하나가 의병술로 채택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 강강술래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변화 발전한 것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는 것은 특정의 작자가 없이 민중 속에서 생성되고 전승되어 온 민중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강술래의 기원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민속이 그렇듯이 강강술래도 놀이의 형태를 갖추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상황에 맞게 변천하였으므로, 오늘날 남겨진 강강술래의 형태를 토대로 그 기원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강강술래는 단순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율동과 기층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사설 그리고 유장하면서도 흥에 겨운 노랫가락이 삼위일체를 이룬 강강술래는 고대인들에 향유되었던 모든 놀이 문화의 최고의 형태라 규정할 수 있다. 즉 원시종합예술체가 영위되던 부족국가시대의 잔존 양상을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놀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강강술래의 기원에 못지않게 그동안 강강술래의 어원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강강술래를 불렀는지, 실제로 어떠한 뜻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강강술래는 노래 가사의 후렴구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고창 지방에서는 ‘감감술네’, 임자도에서는 ‘광광술래’, 진도・무안・함평・해남・강진 지방에서는 ‘강강술래’, 동남해 근방인 거문도・초도・나로도・고흥 지방에서는 ‘광광광수월래’ 또는 ‘요광광광수월래’로 불리우며, 그 외에 강강수월래, 술래, 수월래, 술래소리, 술래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강강술래는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라는 의미의 ‘强羌水越來’・‘江江水越來’・‘ 羌羌水越來’・‘强羌水越來遊ひ’ 등의 한자어로 표기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모두 일본인에 의해 작성된 조사보고서에 기재된 표기이기에 얼마나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한편, 가장 오래된 기록인 정만조鄭萬朝(1858~1936)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는 ‘힘내어 빨리 오라는 뜻’의 표현으로 ‘强强順來’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말을 한자식으로 해석하여 강강술래를 주의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으며, 호남지방의 방언인 ‘둥글다’의 강과 회전하는 윤輪의 뜻인 돌자가 합하여 강강술래를 ‘둥글게 둥글게 돌자’라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강강술래를 원형의 형적形跡을 지닌 여음이라 하였으며, 악기의 소리(의성)와 뜻말이 합해서 이루어진 여음에서 얻어진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그 외에 강강술래를 행운과 구애의 간절한 소망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 발원사發願詞라 규정하기도 하였다.

강강술래는 오늘날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놀이가 갖는 건전성과 신명성을 최소한으로 보유한 채 놀이 유형을 고정화하여 전승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강강술래는 원무 형태의 진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를 하다가 지치면 앞소리꾼의 주도에 의해 남생아놀아라, 고사리꺾자, 청어엮기풀기, 기와밟기, 덕석말아풀기, 쥔쥐새기놀이, 문열어라, 가마타기 등의 오락적이고 경쟁적인 여흥놀이들이 연희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흥놀이가 끝나면 다시 원무 형태의 잦은 강강술래, 중강강술래, 긴강강술래를 하면서 강강술래의 전체 놀이는 끝마치게 된다. 이렇듯 강강술래는 원무놀이와 다른 여흥놀이들을 총망라한 놀이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구연 상황에 따라 일정한 사설 외에도 일시적인 사설을 사용하면서 메기고 받는 소리를 갖는 선후창의 구연 방식을 지니고 놀이의 흥취와 구연자의 분위기에 따라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조정되는 가창민요이다. 그러므로 강강술래는 누구나 앞소리를 메길 수 있으므로 서로 돌려가면서 노래하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연하기도 한다. 강강술래의 후렴은 다른 유희민요의 후렴보다 더 짧으며, 누구나 익숙하고 쉽게 익힐 수 있고, 연행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노래 부르는 이들을 일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짧은 후렴을 가지고 있어 사설의 내용이 후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앞소리의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므로 자연 서사적인 내용의 민요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앞소리가 끝날 때마다 후렴이 배치되어 있어서 메기는 소리의 음의 불규칙성을 정연하게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노래가 공동체의 표현 방법의 하나인 이상 강강술래는 가창자인 여인들의 가장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여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통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삶 그 자체인 것으로 소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끝임 없이 주어지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노래를 통해 자연의 미적 형상화를 승화시키면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삶의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강술래의 사설은 공식적 표현과 내용적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표현은 놀이하는 부녀자들의 주변적인 심정과 놀이 분위기, 희망에 가득한 정서와 염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용적 표현으로는 연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많은데, 주로 남녀간의 화답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의 노래와 임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 따른 즐거움・외로움・그리움・절망감 등을 담고 있어 우리 민요가 갖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강강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사설을 통해 주변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주로 어려운 생활에서 오는 고통과 시집살이의 고달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 사설에는 여인들의 숙명론적인 체념 의식이 한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강강술래 사설에는 꽃과 달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은데, 강강술래에 드러난 꽃은 인간과 동화공존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또는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환원리와 대비하면서 꽃을 님에 대한 그리움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으로 객관화하여 미적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에 드러난 달은 임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그리움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임의 부재에 대한 시적 감흥을 표면적인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강강술래는 여성들에 의한 최고의 집단놀이이자 유희민요로, 아름다움과 율동감을 춤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부수되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더불어 노래를 통하여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고 순화시킨다. 이렇듯 춤, 노래, 놀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강강술래가 갖는 신명은 살아나지 않는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 부르는 사람에 의한 선창과 후창, 그리고 익살스러운 놀이꾼에 의한 놀이 진행이 한데 어우러져, 춤・노래・놀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적인 구비전승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강술래는 고대에는 풍요 기원이라는 의례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신성 지향神聖指向의 놀이이자 노래였으나, 전승집단의 성향에 의해 차츰 오락적인 성향이 강화되면서 세속 지향의 놀이이자 노래로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강술래고(최덕원, 남도민속고, 삼성출판사, 1990), 강강술래와 놋다리밟기의 지역적 전승양상과 문화적 상황(임재해, 민속연구2,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2), 강강술래의 문학적 형상화(서해숙, 남도민속연구5, 남도민속학회, 1999), 민속론(임동권・정병호・김선풍, 집문당, 1989), 전남의 민요(지춘상, 전라남도, 1988), 한국 민속놀이의 연구(최상수, 성문각, 1985), 한국민속고(송석하, 일신사, 1960).

강강술래

강강술래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놀이

집필자 서해숙(徐海淑)

정의

서남 해안 일대에서 정월대보름이나 추석 때 여성들 중심으로 각종 원무圓舞를 그리면서 춤, 노래, 놀이가 병행되는 민속놀이.

내용

강강술래는 여러 학자가 정의를 내린 바 있다. 일찍이 송석하는 강강술래를 ‘음악적・무용적・연극적・유희적인 성격을 지닌 여성들만의 단체놀이요, 계절적 분류로는 8월의 놀이요, 관념적 분류로는 정서 감정상의 놀이요, 지리적 분류로는 남선 지방南鮮地方의 놀이’로 분류하였다. 그리고 김선풍은 강강술래를 명절놀이로 크게 분류하면서, 풍농기원놀이이며 오락을 위한 놀이로서 대보름(추석)에 성인 여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집단놀이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임재해는 강강술래를 각종 원무가 곁들어 있는 춤놀이이자 노래를 불러야 가능한 노래놀이일 뿐만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체 사설과 가장된 행위가 포함되어 있는 극놀이로 규정하였다. 이러한 정의와 함께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고대기원설과 근대기원설로 나누어 논의되었다. 고대기원설은 강강술래를 고대 수확감사제의 자취로 보는 경우, 마한시대 이전의 상고수렵인의 무용으로 보는 경우 그리고 마한시대의 노래나 유희로 보는 경우이다. 그리고 근대기원설은 강강술래를 임진왜란 당시 동원된 해안지대의 부녀자들의 가무로 보는 경우이다. 고대기원설 가운데는 특히 마한시대의 기록을 근거하여 그 연원을 추론하면서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자 하였는데, 마한시대의 유희가 강강술래 유희와 상통하는 근거를 문헌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즉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魏志東夷傳」 마한조馬韓條의 ‘많은 사람이 떼지어 노래 부르고 춤추며 술을 마셔 밤낮을 쉬지 않았다. 그 춤추는 모양은 수십 인이 같이 일어나서 서로 따르며, 땅을 낮게 혹은 높게 밟되 손과 발이 서로 응하여 그 절주節奏는 마치 중국의 탁무와 같았다.’라는 마한 유희가 강강술래와 같이 원무 형태를 띤 군중 가무의 집단 유희였다고 하였다. 또한 가무 행사가 농사와 관련 있는 달인 5월・10월에 이루어지며, 마한이라는 지역이 갖는 분포권이 강강술래와 상통함에 따라 마한시대의 유희를 오늘날 현전하는 강강술래의 모체로 보았다. 그러나 마한시대의 무용은 그 동작 면에서 오히려 농악과 비슷한 점이 많아 농악의 원시형으로 보며, 농악의 동작과 기교, 가창면에서 오히려 농악을 강강술래보다 발전・변화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대기원설 중 일부는 강강술래를 원무가 갖는 근원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원놀이로서, 다 같이 손을 잡고 힘차게 답무하면서 농작물의 성장의례적인 놀이, 전투적인 놀이, 흥풀이 등을 하고 있는 남녀군취가무의 유풍으로 보았다. 또한 고대 농경시대의 파종과 수확 때의 공동축제에서 노래 부르며 춤을 추던 놀이 형태의 발전이라 하였다. 그 외에 고대 사회의 난혼의 교접 결합의 굿판으로 구애와 짝짓기의 혼례의례의 남녀연희에서 강강술래의 기원을 찾기도 하였다. 또한 원시사회에서 만월의 명절을 맞이하여 여성들이 벌이는 축제의 하나가 의병술로 채택되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 강강술래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변화 발전한 것으로 확대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는 것은 특정의 작자가 없이 민중 속에서 생성되고 전승되어 온 민중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강강술래의 기원을 정확하게 밝혀내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민속이 그렇듯이 강강술래도 놀이의 형태를 갖추면서 오랜 시간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상황에 맞게 변천하였으므로, 오늘날 남겨진 강강술래의 형태를 토대로 그 기원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강강술래는 단순하면서도 단조롭지 않은 율동과 기층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사설 그리고 유장하면서도 흥에 겨운 노랫가락이 삼위일체를 이룬 강강술래는 고대인들에 향유되었던 모든 놀이 문화의 최고의 형태라 규정할 수 있다. 즉 원시종합예술체가 영위되던 부족국가시대의 잔존 양상을 가장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놀이라 할 수 있다. 한편 강강술래의 기원에 못지않게 그동안 강강술래의 어원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언제부터 강강술래를 불렀는지, 실제로 어떠한 뜻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없다. 강강술래는 노래 가사의 후렴구로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고창 지방에서는 ‘감감술네’, 임자도에서는 ‘광광술래’, 진도・무안・함평・해남・강진 지방에서는 ‘강강술래’, 동남해 근방인 거문도・초도・나로도・고흥 지방에서는 ‘광광광수월래’ 또는 ‘요광광광수월래’로 불리우며, 그 외에 강강수월래, 술래, 수월래, 술래소리, 술래놀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강강술래는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라는 의미의 ‘强羌水越來’・‘江江水越來’・‘ 羌羌水越來’・‘强羌水越來遊ひ’ 등의 한자어로 표기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모두 일본인에 의해 작성된 조사보고서에 기재된 표기이기에 얼마나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을지 의문이 남는다. 한편, 가장 오래된 기록인 정만조鄭萬朝(1858~1936)의 『은파유필恩波濡筆』에는 ‘힘내어 빨리 오라는 뜻’의 표현으로 ‘强强順來’라고 표기하였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말을 한자식으로 해석하여 강강술래를 주의를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있으며, 호남지방의 방언인 ‘둥글다’의 강과 회전하는 윤輪의 뜻인 돌자가 합하여 강강술래를 ‘둥글게 둥글게 돌자’라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강강술래를 원형의 형적形跡을 지닌 여음이라 하였으며, 악기의 소리(의성)와 뜻말이 합해서 이루어진 여음에서 얻어진 명칭으로 보기도 한다. 그 외에 강강술래를 행운과 구애의 간절한 소망의 의의를 가지고 있는 발원사發願詞라 규정하기도 하였다. 강강술래는 오늘날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놀이가 갖는 건전성과 신명성을 최소한으로 보유한 채 놀이 유형을 고정화하여 전승함으로써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강강술래는 원무 형태의 진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를 하다가 지치면 앞소리꾼의 주도에 의해 남생아놀아라, 고사리꺾자, 청어엮기풀기, 기와밟기, 덕석말아풀기, 쥔쥐새기놀이, 문열어라, 가마타기 등의 오락적이고 경쟁적인 여흥놀이들이 연희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흥놀이가 끝나면 다시 원무 형태의 잦은 강강술래, 중강강술래, 긴강강술래를 하면서 강강술래의 전체 놀이는 끝마치게 된다. 이렇듯 강강술래는 원무놀이와 다른 여흥놀이들을 총망라한 놀이 형태로 전승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구연 상황에 따라 일정한 사설 외에도 일시적인 사설을 사용하면서 메기고 받는 소리를 갖는 선후창의 구연 방식을 지니고 놀이의 흥취와 구연자의 분위기에 따라 유연한 성격을 가지고 조정되는 가창민요이다. 그러므로 강강술래는 누구나 앞소리를 메길 수 있으므로 서로 돌려가면서 노래하기도 하고, 서로 주고받는 형식으로 구연하기도 한다. 강강술래의 후렴은 다른 유희민요의 후렴보다 더 짧으며, 누구나 익숙하고 쉽게 익힐 수 있고, 연행에 쉽게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노래 부르는 이들을 일체화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강강술래는 짧은 후렴을 가지고 있어 사설의 내용이 후렴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앞소리의 내용 연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므로 자연 서사적인 내용의 민요를 많이 가지고 있다. 또한 앞소리가 끝날 때마다 후렴이 배치되어 있어서 메기는 소리의 음의 불규칙성을 정연하게 유지하도록 돕고 있다. 노래가 공동체의 표현 방법의 하나인 이상 강강술래는 가창자인 여인들의 가장 전형적인 삶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노래를 통해 여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절망과 고통을 운명적으로 타고난 삶 그 자체인 것으로 소화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끝임 없이 주어지는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노래를 통해 자연의 미적 형상화를 승화시키면서 그들의 감정을 솔직하고 진솔하게 때로는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주어진 삶의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인내하고 극복하면서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지혜의 산물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강강술래의 사설은 공식적 표현과 내용적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공식적인 표현은 놀이하는 부녀자들의 주변적인 심정과 놀이 분위기, 희망에 가득한 정서와 염원하는 바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내용적 표현으로는 연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노래들이 많은데, 주로 남녀간의 화답으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 내용의 노래와 임의 존재가 있고 없음에 따른 즐거움・외로움・그리움・절망감 등을 담고 있어 우리 민요가 갖는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강강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내용의 사설을 통해 주변 생활에서 오는 고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있는데, 주로 어려운 생활에서 오는 고통과 시집살이의 고달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주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한을 노래한 사설에는 여인들의 숙명론적인 체념 의식이 한 성향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강강술래 사설에는 꽃과 달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은데, 강강술래에 드러난 꽃은 인간과 동화공존하면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하게 또는 살아가는 생활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다. 또한 한편으로는 자연의 순환원리와 대비하면서 꽃을 님에 대한 그리움과 초라한 자신의 모습으로 객관화하여 미적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강강술래에 드러난 달은 임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로서 그리움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으며, 임의 부재에 대한 시적 감흥을 표면적인 의미로 형상화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강강술래는 여성들에 의한 최고의 집단놀이이자 유희민요로, 아름다움과 율동감을 춤이라는 형태를 통해 보여준다. 또한 여러 가지 부수되는 놀이를 통해 즐거움을 배가시키고 더불어 노래를 통하여 개인의 감정을 발산하고 순화시킨다. 이렇듯 춤, 노래, 놀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만 빠져도 강강술래가 갖는 신명은 살아나지 않는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추는 사람들과 노래 부르는 사람에 의한 선창과 후창, 그리고 익살스러운 놀이꾼에 의한 놀이 진행이 한데 어우러져, 춤・노래・놀이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종합예술적인 구비전승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강강술래는 고대에는 풍요 기원이라는 의례적인 행위를 수행하는 신성 지향神聖指向의 놀이이자 노래였으나, 전승집단의 성향에 의해 차츰 오락적인 성향이 강화되면서 세속 지향의 놀이이자 노래로 변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강강술래고(최덕원, 남도민속고, 삼성출판사, 1990), 강강술래와 놋다리밟기의 지역적 전승양상과 문화적 상황(임재해, 민속연구2,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2), 강강술래의 문학적 형상화(서해숙, 남도민속연구5, 남도민속학회, 1999), 민속론(임동권・정병호・김선풍, 집문당, 1989), 전남의 민요(지춘상, 전라남도, 1988), 한국 민속놀이의 연구(최상수, 성문각, 1985), 한국민속고(송석하, 일신사, 1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