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극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인형극

집필자 허용호(許龍鎬)
갱신일 2019-01-18

정의

인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보여주는 독립적 연행예술.

개관

인형극은 인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아 다른 무엇으로 가장假裝시키는 연행예술을 말한다. 인형극이라는 명칭 이외에도 인형연희, 인형연행, 인형놀이, 인형놀음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명칭에 따라 그 포함되는 영역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고 그것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이루는 독립적 연행예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여기에는 인형 배우가 직접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간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인형 배우가 직접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나가는 독립적 연행예술로서의 인형극에 부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흔히 꼭두각시놀음, 만석중놀이, 발탈 등을 인형극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지만 이것들이 위의 정의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발탈인 경우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인간 배우의 역할 비중이 작지 않다. 만석중놀이 역시 입체적인 인형들이 직접 눈앞에서 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막에 비추어진 인형들의 그림자를 통해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인형극과 거리가 있다. 위의 정의에 부합하는 인형극은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들뿐이다. 이러한 실정을 근거로 한국의 인형극을 꼭두각시놀이, 꼭두각시놀음, 꼭두극, 덜미, 박첨지놀이 등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곧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의 명칭을 인형극 자체의 명칭으로 부르자는 의견이다. 현재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으로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서산 박첨지놀이, 장연 꼭두각시극 등이 있다.

그동안 한국 인형극의 기원에 대해 외래 기원설과 자생설, 그리고 양자의 절충설 등이 주장되었다. 연구 초창기에는 외래 기원설이 주장되었다. 한국의 인형극은 인도에서 서역과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고, 그것이 다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외래 기원설의 근거로는, ‘중국·한국·일본의 인형극이 무대 구조와 연출 방식, 인형 조종법 등에서 유사하다’, ‘인형극의 주역들이 모두 해학·풍자·희극적 성격의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형의 형태가 유사하여, 원시 종교나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랑예인집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등이 제시되었다. 한편, 인형극의 자생설이 주장되기도 했다. 우리의 인형극이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우인형木偶人形에서 시작하여 고구려의 악곡괴뢰樂曲傀儡, 고려의 인형놀이와 만석중놀이, 조선시대의 꼭두각시놀음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절충설이 제안되었다. 우리의 자생적 기반에 외래적 요소의 영향이 결합하여 수세기 동안 독자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고대의 각시놀음과 나무 인형, 6세기 이후의 가야와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토우와 토용, 상여의 장신구인 목우 등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이미 꼭두각시놀이의 자생적 기반이 있었고 거기에 외래적 요소의 영향이 결합하여 수세기에 걸친 변화와 발전을 거치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런데 외래기원설, 자생설, 절충설 중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꼭두각시놀음과 연행 방식이 유사한 인형극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연희 내용이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한 인형극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괴뢰붕傀儡棚>, <괴뢰부傀儡賦>, <남성관희자南城觀戲子> 등의 자료들에 나타난 인형극은 오락적 문맥에서 공연된다는 점과 목소리 연기와 조종이라는 연행 방식만 유사하고, 그 내용에서는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등장인물, 연희 내용, 연희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인형극은 적어도 두 계통 이상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은 크게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서산 박첨지놀이, 장연 꼭두각시극 등이 있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은 떠돌이 광대 집단인 남사당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인형극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의 한 종목으로 덜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꼭두각시놀음은 떠돌이 광대패에 의해 역동적으로 연행되고 전승되어 온 인형극이다. 따라서 연행 시기, 연행 장소, 연희자 등에 따라 그 내용의 변화가 크다. 그래서 기존의 채록본들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과장 구성과 등장인물 및 대사 등에서 많은 차이가 발견된다. 현재 남사당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꼭두각시놀음은 심우성이 채록한 보존회본에 의거한 것이다. 보존회본은 심우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인형 연행자들의 구술을 받아 채록한 것으로 비교적 충실한 채록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존회본은 크게 박첨지 마당과 평안 감사 마당으로 나뉜다. 그리고 각각의 마당은 다시 3∼4개의 거리로 나뉜다. 먼저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 유람 거리, 피조리 거리, 꼭두각시 거리, 이심이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첨지 유람 거리는 박첨지가 등장해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꼭두패가 논다는 소리를 듣고 나왔다며 익살스러운 재담을 늘어놓고 유람가를 부르는내용으로 되어 있다. 피조리 거리는 박첨지의 딸과 며느리가 등장하여 뒷절 상좌중들과 어울려 놀다가 홍동지에게 쫓겨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박첨지 딸과 며느리와 함께 어울리는 상좌들의 행위를 통해 종교인의 관념적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이러한 관념적 허위의식 비판은 이심이 거리에 나오는 묵대사의 행태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꼭두각시 거리는 오랫동안 헤어져 지냈던 박첨지와 그의 처 꼭두각시가 첩인 덜머리집 때문에 다툼을 벌이고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횡포를 드러내 비판하고 있다. 이심이 거리는 새를 쫓으러 나왔던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이심이에게 잡아먹히다가, 마지막에는 홍동지가 이심이를 때려잡는 내용이다.

평안 감사 마당은 매사냥 거리, 상여 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사냥 거리는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그 전후에 일어난 길 닦기, 꿩 팔기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여 거리는 평안 감사의 급작스런 죽음과 이에 따른 장례식 광경을 보여준다. 장례에 어울리지 않는 상주의 경박한 행동과 벌거벗은 채로 상여를 밀고 가는 홍동지의 파격적인 모습이 이 대목에서 나타난다. 평안 감사 마당에서는 평안 감사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벼슬아치의 신분적 특권을 비판하고 있다. 매사냥을 통해서 백성을 괴롭히는 평안 감사, 이에 대해 파격적으로 대응하는 홍동지, 그리고 평안 감사의 희화화된 죽음과 장례식 등이 이 주제의 맥락 속에 있다. 절 짓고 허는 거리에서는 상좌중들이 절을 짓고 허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봉건적인 조선 사회에서 남사당패는 천시의 대상이었으며 마을에 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남사당패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에서 내준 부적을 가지고 다니며 팔았고, 그 수입으로 불사佛事를 돕는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절 짓고 허는 거리에서는 인형 배우를 통해 절을 지어 그동안 진행되어온 갈등을 해소하면서 화해하고, 시주를 해준 관중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었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충청남도 서산 음암면 탑곡4리에서 전승되는 인형극이다. 서산 박첨지놀이 채록본은 김동익 채록본과 허용호 채록본이 있다. 김동익 채록본은 서산 박첨지놀이의 형성자인 주연산의 구술을 받아 연희자인 김동익이 채록한 것이다. 허용호 채록본은 1998년 11월 28일 서산시 음암면 탑곡4리 마을회관 안에서 벌어진 연행을 채록한 것이다. 허용호 채록본을 바탕으로 서산 박첨지놀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장면 전환의 지표로 기능하는 악사들의 “떼루 떼루아 떼루야”라는 구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산 박첨지놀이는 20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은 다시 크게 세 과장으로 나눌 수 있다. 박첨지 유람과 가족 갈등 마당, 평안 감사 매사냥과 장례 마당, 절 짓기와 소경 눈뜨는 마당이 그것이다. 이렇게 3마당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은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남과 여,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종교인과 세속인 등으로 정리되는 각 마당 속 등장인물간의 역학 관계 역시 두 인형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사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희 내용에서는 서산 박첨지놀이만의 특징도 발견된다.

박첨지 유람과 가족 갈등 마당은 집안을 돌보지 않고 축첩을 일삼는 박첨지에게 다른 가족들이 비판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큰마누라는 물론이고 처남, 동생 등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에서는 큰마누라만이 남성의 횡포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서산 박첨지놀이에서는 박첨지 가족 모두가 박첨지의 횡포를 비판한다. 여기에는 축첩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집안이 어지럽게 된다는 마을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평안 감사 매사냥과 장례 마당은 벼슬아치와 일반 서민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신분적 특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비해 홍동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상층 계급에 대한 풍자의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하층민들에게 피해만 주는 평안 감사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식은 그대로 살아 있다. 절 짓기와 소경 눈뜨는 마당은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이 갖는 독특함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지배층인 평안 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은 고통 받는 민중이 불교적 해원解冤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갈등을 통해서 관념적 허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꼭두각시놀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서산 박첨지놀이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기보다는 불교적 기적 혹은 불교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황해도 장연 지역에서 전승되던 인형극이다. 이 인형극은 모두 열 개의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각 과장의 제목이 따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각 과장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과장은 박첨지 유람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과장에서는 박첨지의 두 딸, 상좌중, 상전중, 목랑청, 현묵대사 등이 등장한다. 제3과장은 삼천갑자와 박첨지가 등장해서 나이 자랑을 하는 내용이다. 제4과장은 장안활자와 목랑청이 서로 싸운 후에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5과장은 평안 감사가 꿩 사냥을 하는 내용이다. 제6과장은 박첨지의 딸과 장안활자가 <도라지타령>을 부르면서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7과장은 산몽혜 곧, 이심이가 사람들을 잡아먹고 박첨지까지 잡아먹으려다가 박첨지가 박첨지 아들에게 구출되는 내용이다. 이심이는 박첨지 아들에게 잡혀 껍질이 벗겨진다. 제8과장은 꿩의 모가지를 먹다가 죽은 평안 감사의 장례와 관련된 내용이다. 제9과장은 박첨지의 식구가 모두 나와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10과장은 상좌중 둘이 나와서 절을 짓고 허무는 내용이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그 내용이 유사하면서도 다른 대목이 많다. 제1과장은 박첨지 유람 거리와 유사하다. 제2과장은 피조리 거리와 유사한데, 장연 꼭두각시극의 내용이 더 확장되어 있고 상세하다. 제3과장과 제4과장은 꼭두각시놀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다. 제5과장은 매사냥 거리와 유사하다. 제6과장은 꼭두각시놀음에는 없는 대목이다. 제7과장은 이심이 거리와 유사하다. 그런데 홍동지가 아니라 박첨지 아들이 이심이를 때려잡는다는 설정이 다르다. 제8과장은 상여 거리와 유사하다. 제9과장은 꼭두각시놀음의 맨 마지막 장면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꼭두각시놀음에는 없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제10과장은 건사 거리와 유사하다. 이와 같이 장연 꼭두각시극은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 번째 차이점은 꼭두각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두각시놀음의 꼭두각시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꼭두각시가 없으므로 자연히 덜머리집과 박첨지까지 포함되어 전개되는 부부 혹은 남녀 간의 갈등 전개가 없다. 두 번째 차이점은 홍동지 역할을 박첨지 아들이 대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홍동지에 비해 그 역할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꼭두각시놀음에서 홍동지가 수행해 내는 파괴적이고 저항적인 여러 행동의 가능성을 장연 꼭두각시극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양반층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현저하게 약하다. 세 번째 차이점은 장연 꼭두각시극은 인형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는 장면이 확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형을 연행하는 인간 연행자들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연극적 갈등보다는 농촌의 오락으로서의 유희적 요소가 확장된 면모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은 마을 주민들 가운데 선발된 연희자들이 연행하는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과 전문연희자인 떠돌이 광대패가 연행하는 인형극으로 나눌 수 있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이 전문연희자인 떠돌이 광대패가 연행하는 인형극이라면, 서산 박첨지놀이장연 꼭두각시극은 마을 주민들 가운데 선발된 연희자들이 전승하는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이다. 그런데 떠돌이 광대패의 인형극과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유기적인 관련성을 지닌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음의 영향 아래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자생적으로 형성된 독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음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 주는 요소들이 나타난다. 즉,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은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문적인 떠돌이 광대패 인형극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세 인형극은 나름의 특징에 따라 그 주제의 심도가 달리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관념의 허구성 비판, 남성의 횡포 비판, 계급적 특권의 비판이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형극의 핵심적 요소인 인형은 스스로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인간 연행자의 조종을 통한 움직임은 투박하다. 인간 연행자의 목소리 연기를 통한 발화發話 역시 자연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인형극은 오랜 기간 존재해 왔고 앞으로 존속할 것이다. 인형극이 인간의 일탈적 욕망과 초월적 욕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형극 속에서 인형은 인간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것을 능히 해낼 수 있다. 인형극이 갖는 드넓은 표현의 가능성은 거의 제한이 없어서, 인간이 상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을 인형극에서는 능히 해낼 수 있다. 더구나 그 드넓은 가능성 속에서 여러 표현들의 교배가 이루어지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인형극이다. 우리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인형극에서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무제한의 상상력과 그 실현이다. 이는 인형극이라는 장르가 새로운 상상력 훈련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참고문헌

꼭두각시놀이(서연호, 열화당, 1990), 남북한 꼭두각시놀음의 전승양상과 해석의 비교연구(임재해, 구비문학연구3, 한국구비문학회, 1996), 남사당놀이(심우성, 화산문화, 2000), 인형연행의 문화전통 연구(허용호, 민속원, 2004), 조선민간극(권택무,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6),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의 전승 양상(허용호, 구비문학연구20, 한국구비문학회, 2005),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

인형극

인형극
사전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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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허용호(許龍鎬)
갱신일 2019-01-18

정의

인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아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여 보여주는 독립적 연행예술.

개관

인형극은 인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아 다른 무엇으로 가장假裝시키는 연행예술을 말한다. 인형극이라는 명칭 이외에도 인형연희, 인형연행, 인형놀이, 인형놀음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각각의 명칭에 따라 그 포함되는 영역이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지만, 형을 주된 표현 도구로 삼고 그것이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이루는 독립적 연행예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여기에는 인형 배우가 직접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간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인형 배우가 직접 등장하여 극을 이끌어나가는 독립적 연행예술로서의 인형극에 부합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흔히 꼭두각시놀음, 만석중놀이, 발탈 등을 인형극의 범주 속에 포함시키지만 이것들이 위의 정의에 꼭 부합되는 것은 아니다. 발탈인 경우 인간 배우와 인형 배우가 함께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인간 배우의 역할 비중이 작지 않다. 만석중놀이 역시 입체적인 인형들이 직접 눈앞에서 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막에 비추어진 인형들의 그림자를 통해서 평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인형극과 거리가 있다. 위의 정의에 부합하는 인형극은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들뿐이다. 이러한 실정을 근거로 한국의 인형극을 꼭두각시놀이, 꼭두각시놀음, 꼭두극, 덜미, 박첨지놀이 등으로 부르자는 주장도 있다. 이는 곧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의 명칭을 인형극 자체의 명칭으로 부르자는 의견이다. 현재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으로는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서산 박첨지놀이, 장연 꼭두각시극 등이 있다. 그동안 한국 인형극의 기원에 대해 외래 기원설과 자생설, 그리고 양자의 절충설 등이 주장되었다. 연구 초창기에는 외래 기원설이 주장되었다. 한국의 인형극은 인도에서 서역과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고, 그것이 다시 일본으로 전해졌다는 주장이다. 외래 기원설의 근거로는, ‘중국·한국·일본의 인형극이 무대 구조와 연출 방식, 인형 조종법 등에서 유사하다’, ‘인형극의 주역들이 모두 해학·풍자·희극적 성격의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인형의 형태가 유사하여, 원시 종교나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유랑예인집단에 의해 공연되었다’ 등이 제시되었다. 한편, 인형극의 자생설이 주장되기도 했다. 우리의 인형극이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의 목우인형木偶人形에서 시작하여 고구려의 악곡괴뢰樂曲傀儡, 고려의 인형놀이와 만석중놀이, 조선시대의 꼭두각시놀음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절충설이 제안되었다. 우리의 자생적 기반에 외래적 요소의 영향이 결합하여 수세기 동안 독자적인 변화와 발전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주장이다. 이에 따르면 고대의 각시놀음과 나무 인형, 6세기 이후의 가야와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된 토우와 토용, 상여의 장신구인 목우 등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는 이미 꼭두각시놀이의 자생적 기반이 있었고 거기에 외래적 요소의 영향이 결합하여 수세기에 걸친 변화와 발전을 거치면서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고 본다. 그런데 외래기원설, 자생설, 절충설 중 어떤 입장을 취하든지 한계가 존재하는데, 이는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의 자취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꼭두각시놀음과 연행 방식이 유사한 인형극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있으나, 연희 내용이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한 인형극 자료는 찾아볼 수 없다. 조선시대의 , , 등의 자료들에 나타난 인형극은 오락적 문맥에서 공연된다는 점과 목소리 연기와 조종이라는 연행 방식만 유사하고, 그 내용에서는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 인형극과 전혀 다르다. 따라서 등장인물, 연희 내용, 연희자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의 인형극은 적어도 두 계통 이상이 존재했었다고 할 수 있다.

내용

현전하는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은 크게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 서산 박첨지놀이, 장연 꼭두각시극 등이 있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은 떠돌이 광대 집단인 남사당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인형극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남사당놀이의 한 종목으로 덜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꼭두각시놀음은 떠돌이 광대패에 의해 역동적으로 연행되고 전승되어 온 인형극이다. 따라서 연행 시기, 연행 장소, 연희자 등에 따라 그 내용의 변화가 크다. 그래서 기존의 채록본들을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과장 구성과 등장인물 및 대사 등에서 많은 차이가 발견된다. 현재 남사당패에 의해 전승되고 있는 꼭두각시놀음은 심우성이 채록한 보존회본에 의거한 것이다. 보존회본은 심우성이 여러 차례에 걸쳐 인형 연행자들의 구술을 받아 채록한 것으로 비교적 충실한 채록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보존회본은 크게 박첨지 마당과 평안 감사 마당으로 나뉜다. 그리고 각각의 마당은 다시 3∼4개의 거리로 나뉜다. 먼저 박첨지 마당은 박첨지 유람 거리, 피조리 거리, 꼭두각시 거리, 이심이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박첨지 유람 거리는 박첨지가 등장해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꼭두패가 논다는 소리를 듣고 나왔다며 익살스러운 재담을 늘어놓고 유람가를 부르는내용으로 되어 있다. 피조리 거리는 박첨지의 딸과 며느리가 등장하여 뒷절 상좌중들과 어울려 놀다가 홍동지에게 쫓겨나는 내용으로 되어있다. 박첨지 딸과 며느리와 함께 어울리는 상좌들의 행위를 통해 종교인의 관념적 허위의식을 비판한다. 이러한 관념적 허위의식 비판은 이심이 거리에 나오는 묵대사의 행태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꼭두각시 거리는 오랫동안 헤어져 지냈던 박첨지와 그의 처 꼭두각시가 첩인 덜머리집 때문에 다툼을 벌이고 헤어지게 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횡포를 드러내 비판하고 있다. 이심이 거리는 새를 쫓으러 나왔던 여러 인물들이 차례로 이심이에게 잡아먹히다가, 마지막에는 홍동지가 이심이를 때려잡는 내용이다. 평안 감사 마당은 매사냥 거리, 상여 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사냥 거리는 평안 감사의 매사냥과 그 전후에 일어난 길 닦기, 꿩 팔기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여 거리는 평안 감사의 급작스런 죽음과 이에 따른 장례식 광경을 보여준다. 장례에 어울리지 않는 상주의 경박한 행동과 벌거벗은 채로 상여를 밀고 가는 홍동지의 파격적인 모습이 이 대목에서 나타난다. 평안 감사 마당에서는 평안 감사와 인물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벼슬아치의 신분적 특권을 비판하고 있다. 매사냥을 통해서 백성을 괴롭히는 평안 감사, 이에 대해 파격적으로 대응하는 홍동지, 그리고 평안 감사의 희화화된 죽음과 장례식 등이 이 주제의 맥락 속에 있다. 절 짓고 허는 거리에서는 상좌중들이 절을 짓고 허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봉건적인 조선 사회에서 남사당패는 천시의 대상이었으며 마을에 들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에 남사당패는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그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찰에서 내준 부적을 가지고 다니며 팔았고, 그 수입으로 불사佛事를 돕는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절 짓고 허는 거리에서는 인형 배우를 통해 절을 지어 그동안 진행되어온 갈등을 해소하면서 화해하고, 시주를 해준 관중들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주었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충청남도 서산 음암면 탑곡4리에서 전승되는 인형극이다. 서산 박첨지놀이 채록본은 김동익 채록본과 허용호 채록본이 있다. 김동익 채록본은 서산 박첨지놀이의 형성자인 주연산의 구술을 받아 연희자인 김동익이 채록한 것이다. 허용호 채록본은 1998년 11월 28일 서산시 음암면 탑곡4리 마을회관 안에서 벌어진 연행을 채록한 것이다. 허용호 채록본을 바탕으로 서산 박첨지놀이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장면 전환의 지표로 기능하는 악사들의 “떼루 떼루아 떼루야”라는 구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산 박첨지놀이는 20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은 다시 크게 세 과장으로 나눌 수 있다. 박첨지 유람과 가족 갈등 마당, 평안 감사 매사냥과 장례 마당, 절 짓기와 소경 눈뜨는 마당이 그것이다. 이렇게 3마당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은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남과 여,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 종교인과 세속인 등으로 정리되는 각 마당 속 등장인물간의 역학 관계 역시 두 인형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유사점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연희 내용에서는 서산 박첨지놀이만의 특징도 발견된다. 박첨지 유람과 가족 갈등 마당은 집안을 돌보지 않고 축첩을 일삼는 박첨지에게 다른 가족들이 비판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큰마누라는 물론이고 처남, 동생 등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에서는 큰마누라만이 남성의 횡포에 대한 비판을 했다면, 서산 박첨지놀이에서는 박첨지 가족 모두가 박첨지의 횡포를 비판한다. 여기에는 축첩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집안이 어지럽게 된다는 마을 공동체 의식이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평안 감사 매사냥과 장례 마당은 벼슬아치와 일반 서민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신분적 특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비해 홍동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상층 계급에 대한 풍자의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하층민들에게 피해만 주는 평안 감사의 행태에 대한 비판의식은 그대로 살아 있다. 절 짓기와 소경 눈뜨는 마당은 서산 박첨지놀이의 내용이 갖는 독특함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지배층인 평안 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은 고통 받는 민중이 불교적 해원解冤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갈등을 통해서 관념적 허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꼭두각시놀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서산 박첨지놀이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기보다는 불교적 기적 혹은 불교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황해도 장연 지역에서 전승되던 인형극이다. 이 인형극은 모두 열 개의 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각 과장의 제목이 따로 설정되어 있지는 않다. 각 과장의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과장은 박첨지 유람과 관련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2과장에서는 박첨지의 두 딸, 상좌중, 상전중, 목랑청, 현묵대사 등이 등장한다. 제3과장은 삼천갑자와 박첨지가 등장해서 나이 자랑을 하는 내용이다. 제4과장은 장안활자와 목랑청이 서로 싸운 후에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5과장은 평안 감사가 꿩 사냥을 하는 내용이다. 제6과장은 박첨지의 딸과 장안활자가 을 부르면서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7과장은 산몽혜 곧, 이심이가 사람들을 잡아먹고 박첨지까지 잡아먹으려다가 박첨지가 박첨지 아들에게 구출되는 내용이다. 이심이는 박첨지 아들에게 잡혀 껍질이 벗겨진다. 제8과장은 꿩의 모가지를 먹다가 죽은 평안 감사의 장례와 관련된 내용이다. 제9과장은 박첨지의 식구가 모두 나와 춤을 추는 내용이다. 제10과장은 상좌중 둘이 나와서 절을 짓고 허무는 내용이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그 내용이 유사하면서도 다른 대목이 많다. 제1과장은 박첨지 유람 거리와 유사하다. 제2과장은 피조리 거리와 유사한데, 장연 꼭두각시극의 내용이 더 확장되어 있고 상세하다. 제3과장과 제4과장은 꼭두각시놀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다. 제5과장은 매사냥 거리와 유사하다. 제6과장은 꼭두각시놀음에는 없는 대목이다. 제7과장은 이심이 거리와 유사하다. 그런데 홍동지가 아니라 박첨지 아들이 이심이를 때려잡는다는 설정이 다르다. 제8과장은 상여 거리와 유사하다. 제9과장은 꼭두각시놀음의 맨 마지막 장면과 유사하기도 하지만, 꼭두각시놀음에는 없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제10과장은 건사 거리와 유사하다. 이와 같이 장연 꼭두각시극은 꼭두각시놀음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차이점도 존재한다. 첫 번째 차이점은 꼭두각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꼭두각시놀음의 꼭두각시 거리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꼭두각시가 없으므로 자연히 덜머리집과 박첨지까지 포함되어 전개되는 부부 혹은 남녀 간의 갈등 전개가 없다. 두 번째 차이점은 홍동지 역할을 박첨지 아들이 대신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홍동지에 비해 그 역할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꼭두각시놀음에서 홍동지가 수행해 내는 파괴적이고 저항적인 여러 행동의 가능성을 장연 꼭두각시극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양반층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현저하게 약하다. 세 번째 차이점은 장연 꼭두각시극은 인형들이 나와서 춤추고 노는 장면이 확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인형을 연행하는 인간 연행자들의 전문성이 드러나는 연극적 갈등보다는 농촌의 오락으로서의 유희적 요소가 확장된 면모를 여기서 찾아볼 수 있다.

특징 및 의의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인형극은 마을 주민들 가운데 선발된 연희자들이 연행하는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과 전문연희자인 떠돌이 광대패가 연행하는 인형극으로 나눌 수 있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이 전문연희자인 떠돌이 광대패가 연행하는 인형극이라면, 서산 박첨지놀이와 장연 꼭두각시극은 마을 주민들 가운데 선발된 연희자들이 전승하는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이다. 그런데 떠돌이 광대패의 인형극과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유기적인 관련성을 지닌다. 서산 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음의 영향 아래서 형성된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독자성을 가지고 있다. 장연 꼭두각시극은 자생적으로 형성된 독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남사당패 꼭두각시놀음의 영향을 받았음을 드러내 주는 요소들이 나타난다. 즉,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은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전문적인 떠돌이 광대패 인형극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꼭두각시놀음 계통의 세 인형극은 나름의 특징에 따라 그 주제의 심도가 달리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관념의 허구성 비판, 남성의 횡포 비판, 계급적 특권의 비판이라는 공통된 주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인형극의 핵심적 요소인 인형은 스스로 말을 하지도 움직이지도 못한다. 인간 연행자의 조종을 통한 움직임은 투박하다. 인간 연행자의 목소리 연기를 통한 발화發話 역시 자연스럽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인형극은 오랜 기간 존재해 왔고 앞으로 존속할 것이다. 인형극이 인간의 일탈적 욕망과 초월적 욕망을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인형극 속에서 인형은 인간이 할 수 없거나 하지 않는 것을 능히 해낼 수 있다. 인형극이 갖는 드넓은 표현의 가능성은 거의 제한이 없어서, 인간이 상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들을 인형극에서는 능히 해낼 수 있다. 더구나 그 드넓은 가능성 속에서 여러 표현들의 교배가 이루어지며,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 인형극이다. 우리가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에도 인형극에서 언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무제한의 상상력과 그 실현이다. 이는 인형극이라는 장르가 새로운 상상력 훈련의 장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참고문헌

꼭두각시놀이(서연호, 열화당, 1990), 남북한 꼭두각시놀음의 전승양상과 해석의 비교연구(임재해, 구비문학연구3, 한국구비문학회, 1996), 남사당놀이(심우성, 화산문화, 2000), 인형연행의 문화전통 연구(허용호, 민속원, 2004), 조선민간극(권택무, 조선문학예술총동맹출판사, 1966),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의 전승 양상(허용호, 구비문학연구20, 한국구비문학회, 2005), 한국의 전통연희(전경욱, 학고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