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서연호(徐淵昊)
갱신일 2019-01-18

정의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든 장난감 또는 인형극의 표현 매체가 되는 도구.

개관

인형人形은 흙이나 나무, 종이나 돌, 천이나 플라스틱, 철물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응용해서 만든다. 장남감 또는 전시용 인형과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차이가 많다. 사람의 모양이 아닌 동물 모양의 장난감이나 그런 모양이 인형극에 등장해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에도 동물 인형이라 일컫는다. 허수아비는 지금도 전시용 인형으로 쓰이고 있다.

동양에서는 나무로 인형을 만들어 막대를 잡고 조종하는 막대기 인형[杖頭形], 천을 자루 또는 장갑처럼 만들어 그 속에 손을 넣어 조종하는 주머니 인형[布袋形], 인형의 마디마디를 가는 줄로 묶어 매달아 손으로 조종하는 줄 인형[懸絲形](marionette, 마리오네트 인형), 인형의 몸통에 줄을 꿰어 잡아당기면서 조종하는 줄타기 인형[走線形] 등이 고대로부터 전승되었다. 우리에게는 독립된 줄 인형은 없고, 줄타기 인형은 만석중놀이가 사라진 이후 매사냥놀음에만 남아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줄 인형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마리오네트가 인형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본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인 16세기 말부터 인형극을 아야쓰리조루리操淨瑠璃라고 일컬었다. 이후 메이지시대明治時代인 1872년부터 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로 명칭이 굳어지면서 인형·인형극이라는 표현으로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전통 인형극으로 막대기 인형과 주머니 인형을 혼용해서 조종하는 꼭두각시놀음이 전승되고, 또한 서양의 마리오네트를 습득한 일부 인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다수를 차지하는 인형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 인형, 일명 완구류 인형들이다.

내용

고대에는 나무 인형을 통칭 목우木偶라고 했다. 목우의 역사는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족 국가였던 동옥저東沃沮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모습을 닮은 목상木像을 만들었다. 그들은 장사를 치를 때 큰 나무 곽槨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10여 장丈이나 되며 한쪽 끝부분에는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시체는 우선 임시로 매장하여 가죽과 살을 모두 썩게 하고, 뒤에 뼈만 추려 곽 안에 안치했다. 온 가족의 유골을 모두 하나의 곽 안에 넣어 두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죽은 사람의 목상을 새겼다. 북방 민족인 흉노匈奴에서도 죽은 사람의 목상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는데, 고대인들에게 목우와 목상은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같은 풍습은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기리는 고구려 사람들의 축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백성들은 이들 두 사람의 등신대等身大 목상을 제작하여 신전에 안치하고 축제를 벌였으며 신상神像으로 추앙하였다. 이런 신상으로부터 전이된 것이 후대의 장승[長栍]이며, 오늘날까지 장승제[長栍祭]가 전승되는 배경으로 여겨진다.

6세기 이후에 조성된 가야와 신라의 무덤에서는 최근까지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흙으로 빚은 인형들, 즉 토우土偶와 토용土俑이다. 죽은 사람의 영화榮華와 명부冥府에서의 행복을 기원하며 같이 묻은 인형들이다. 일반적으로 토우는 흙 인형들을 통칭하고, 토용은 무덤에 넣기 위해 빚은 인형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에는 무덤에 넣는 토우와 토용을 명기明器라고 했다. 매장된 이들 인형의 형체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노래하는 사람·말을 탄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형 토기·기물형器物形 토기들이었다. 남자와 여자상을 비롯한 각종 인물상이 가장 많은데, 그들은 신분과 직분, 연령과 성별, 환경과 생활 방식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의상과 몸치장, 표정과 몸짓을 보이고 있다.

고대에는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처妻와 종자從者들을 산 채로 함께 매장하던 순장殉葬 제도가 있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의 부여국 관련 기록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는데 많을 때는 백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순장 풍습은 신라 지증왕智證王 때인 502년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왕은 순장을 금하라는 영을 내렸다. 이는 전왕이 돌아가시자 남녀 각각 5명씩 순장을 했는데, 이에 이르러 금지한 것이다.”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 후에 산 사람을 묻는 생매장 대신 목용木俑과 같은 나무로 만든 인형이나 토우·토용과 같은 흙으로 만든 인형을 부장품으로 묻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목용만 매장되거나 목용과 토용이 함께 매장되는 경우도 있었겠으나 목용들은 대부분 썩어 없어져 발견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며, 토용만이 남아서 발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의 분묘墳墓에서는 돌로 만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조선시대에 목우는 장례 때 관을 운구하는 상여의 사방 주위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장신구로도 사용되었다. 상여에 사용하는 목우들이라고 하여 그 표정과 색채에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모습은 찾기 힘들며, 오히려 명랑하고 즐거운 기운이 넘친다. 조선의 장례 절차가 특히 유교식을 따랐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가졌다는 점을 상여 장식품인 목우들이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저승 가는 길에 동녀童女·동자童子·여인들을 비롯하여 광대廣大·재인才人들을 함께 거느리고 간다는 발상은 당대當代의 해학과 여유를 느끼게 한다.

신라인들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처용處容의 얼굴을 종이에 그려 집의 대문에 붙이고 문신門神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술적인 민속으로부터 제웅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제웅은 짚으로 만든 인형인데, 제웅신앙과 제웅놀음[打芻戲](제웅치기)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성행했다. 제웅을 만들어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 액막이를 위해 이름과 생년을 써 넣어 서낭당에 버리는 것, 제웅을 가지고 바다에 나아가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것 등은 신앙적 행위이다. 제웅을 만들 때 속에 동전을 넣어 버림으로써 다른 사람이 쉽게 집어 가도록 하는 호객 행위 등은 민속놀음에 해당한다. 이 모두가 액운을 떨쳐 버리고 다산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고려시대의 나례儺禮에서는 흙으로 빚은 소[黃土牛]를 희생물로 바쳤다. 의종毅宗 때인 1163년의 기록(『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혜민국惠民局 남쪽 거리에 어린아이들이 동·서 두 패로 나뉘어서 각기 풀을 엮어 각시를 만들어서는 비단옷을 차려 입히고 계집종을 꾸미기도 했다. 그렇게 한 후에는 앞에 사방 한 발 되는 탁자를 놓고서 금옥으로 장식하고 음식을 차렸다. 구경꾼들은 많이 모였고, 두 패는 아름다움과 교묘함을 다투며 떠들고 소란을 피웠다. 이렇게 대엿새 동안 하더니 마침내 끝내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라고 전한다. 인형을 누가 더 잘 만드는지 경쟁하는 놀음을 벌였던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아가씨들이 푸른 풀을 한 줌 따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그것을 붙인 다음에 붉은 치마를 입힌 것을 각시閣氏라고 한다. 이부자리와 머릿병풍을 쳐 놓고 그것을 희롱하는 것을 각시놀음이라고 한다.”라고 전한다. 이런 풀각시놀음[草人戲]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아이들의 놀음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지며, ‘각시’는 어린 여자·색시(새색시의 준말)의 의미이고, 각시놀음(각시놀이·색시놀이·반치놀음)은 각시 인형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들의 장난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움직이는 인형으로는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여러 인형과 만석중놀이에 등장하는 만석중 인형이 오랜 전승력을 지녔다.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주요한 인물은 주인공이자 작품 전체의 해설을 맡는 박첨지, 그의 부인인 꼭두각시와 첩인 돌모리집(덜머리집), 그의 조카로서 이심이를 퇴치하는 홍동지, 뒷절의 상좌중들과 어울리는 며느리 및 조카딸을 들 수 있다. 또한 탐관오리로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평안 감사,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는 평안 감사의 아들인 상주,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은 이심이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동방노인, 표생원, 영노, 깜빡이(묵대사), 작은박첨지, 홍백가, 상주, 박첨지 손자, 귀팔이, 사령(관속), 잡탈중, 목낭청, 청노새 같은 작은 인형들이 등장한다.

만석중놀음은 무언의 인형극으로, 재담 없이 줄에 꿰인 인형들만 움직이는 줄타기 인형극[走線形]과 동물 그림자 인형놀음[動物偶影戲]의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줄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으로는 만석중·노루·사슴·잉어·용 등이 있으며, 이 놀음은 꼭두각시놀음과 함께 공연되기도 했다. 동물 그림을 종이에 그려 그것을 등불로 비추는 인형으로는 용·잉어·노루·사슴 등이 있었다.

19세기 후반은 인형사들이 마을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시절이다. 이들은 상자 무대를 목에 걸고 다니며 그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인형을 놀리는 일인 조종 인형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만화를 토대로 만든 만화영화(animation, 움직이는 그림)가 대중에게 인기를 받게 되자 이들 인형들을 모작한 캐릭터(character) 인형이 장난감 인형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형극으로는 텔레비전 방영을 목적으로 제작된 단편 작품들과 현장 공연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인형극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젊은이 한두 사람이 가방에 인형을 넣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간편하게 자신들만의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렇게 활동하는 단체가 전국에 4백여 개가 넘는다. 이때 사용하는 대부분의 인형은 조종이 간편한 주머니(장갑) 인형과 막대기 인형들이다.

특징 및 의의

인형은 신의 대체물인 신상으로서, 또한 인간의 대체물인 한 인격체로서 예로부터 전승되었다. 사람과 유사한 몸짓을 하는 의인체擬人體로서 귀신 인형과 동물 인형까지를 포용하고 있다. 마치 사람인 양 동작이 가능한 인형 제작과 조종 기술의 향상은 인형의 섬세한 동작과 미묘한 움직임까지 표현할 수 있다. 아울러 인형극은 관람자들의 관점을 객관화시키고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행위를 확대시켜 보여 주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인형사의 탁월한 조종 능력은 관람자들에게 경이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처럼 오늘날 인형은 더 이상 2·3차원의 단순한 형태적인 물상이 아니며, 고차원의 생명체로서 그 상징성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인형은 다양한 매체라는 콘텐츠를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 활동에 영향력을 가진 매개체로서 부상하였으며, 그 기능과 소재, 표현 기법 또한 인간의 기술력과 상상력에 비례하여 급성장하며 진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조선연극사(김재철, 학예사, 1939), 周書, 後漢書, 인형예술의 재발견(김청자, 대원사, 1989), 한국의 전통목우(이두현, 한국무속과 연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한국 전통 인형극의 공연학적 연구(최락용, 민속원, 2013), 인형극조사보고(서승우, 문화재35, 문화재청, 2002), 토우(이난영, 대원사, 1991), 演劇百科大事典(早稻田大學演劇博物館, 平凡社, 1990).

인형

인형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민속극 > 용어

집필자 서연호(徐淵昊)
갱신일 2019-01-18

정의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만든 장난감 또는 인형극의 표현 매체가 되는 도구.

개관

인형人形은 흙이나 나무, 종이나 돌, 천이나 플라스틱, 철물 등 여러 가지 재료를 응용해서 만든다. 장남감 또는 전시용 인형과 인형극에 사용하는 인형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차이가 많다. 사람의 모양이 아닌 동물 모양의 장난감이나 그런 모양이 인형극에 등장해서 사람처럼 행동하는 경우에도 동물 인형이라 일컫는다. 허수아비는 지금도 전시용 인형으로 쓰이고 있다. 동양에서는 나무로 인형을 만들어 막대를 잡고 조종하는 막대기 인형[杖頭形], 천을 자루 또는 장갑처럼 만들어 그 속에 손을 넣어 조종하는 주머니 인형[布袋形], 인형의 마디마디를 가는 줄로 묶어 매달아 손으로 조종하는 줄 인형[懸絲形](marionette, 마리오네트 인형), 인형의 몸통에 줄을 꿰어 잡아당기면서 조종하는 줄타기 인형[走線形] 등이 고대로부터 전승되었다. 우리에게는 독립된 줄 인형은 없고, 줄타기 인형은 만석중놀이가 사라진 이후 매사냥놀음에만 남아 있다. 반면, 서양에서는 르네상스시대부터 줄 인형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면서 마리오네트가 인형극의 대명사가 되었다. 일본은 무로마치시대室町時代인 16세기 말부터 인형극을 아야쓰리조루리操淨瑠璃라고 일컬었다. 이후 메이지시대明治時代인 1872년부터 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로 명칭이 굳어지면서 인형·인형극이라는 표현으로 일반화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전통 인형극으로 막대기 인형과 주머니 인형을 혼용해서 조종하는 꼭두각시놀음이 전승되고, 또한 서양의 마리오네트를 습득한 일부 인형사들이 활동하고 있다. 실제로 다수를 차지하는 인형은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 인형, 일명 완구류 인형들이다.

내용

고대에는 나무 인형을 통칭 목우木偶라고 했다. 목우의 역사는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족 국가였던 동옥저東沃沮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모습을 닮은 목상木像을 만들었다. 그들은 장사를 치를 때 큰 나무 곽槨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10여 장丈이나 되며 한쪽 끝부분에는 여닫을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사람이 죽게 되면 시체는 우선 임시로 매장하여 가죽과 살을 모두 썩게 하고, 뒤에 뼈만 추려 곽 안에 안치했다. 온 가족의 유골을 모두 하나의 곽 안에 넣어 두며, 살아 있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죽은 사람의 목상을 새겼다. 북방 민족인 흉노匈奴에서도 죽은 사람의 목상을 만드는 풍습이 있었는데, 고대인들에게 목우와 목상은 신앙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 같은 풍습은 기원전 37년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과 그의 어머니 유화부인을 기리는 고구려 사람들의 축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백성들은 이들 두 사람의 등신대等身大 목상을 제작하여 신전에 안치하고 축제를 벌였으며 신상神像으로 추앙하였다. 이런 신상으로부터 전이된 것이 후대의 장승[長栍]이며, 오늘날까지 장승제[長栍祭]가 전승되는 배경으로 여겨진다. 6세기 이후에 조성된 가야와 신라의 무덤에서는 최근까지도 많은 유물이 발견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명한 것이 흙으로 빚은 인형들, 즉 토우土偶와 토용土俑이다. 죽은 사람의 영화榮華와 명부冥府에서의 행복을 기원하며 같이 묻은 인형들이다. 일반적으로 토우는 흙 인형들을 통칭하고, 토용은 무덤에 넣기 위해 빚은 인형을 지칭한다. 조선시대에는 무덤에 넣는 토우와 토용을 명기明器라고 했다. 매장된 이들 인형의 형체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노래하는 사람·말을 탄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형 토기·기물형器物形 토기들이었다. 남자와 여자상을 비롯한 각종 인물상이 가장 많은데, 그들은 신분과 직분, 연령과 성별, 환경과 생활 방식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의상과 몸치장, 표정과 몸짓을 보이고 있다. 고대에는 왕이나 귀족이 죽었을 때 처妻와 종자從者들을 산 채로 함께 매장하던 순장殉葬 제도가 있었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의 부여국 관련 기록에 따르면,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을 죽여 순장을 하는데 많을 때는 백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순장 풍습은 신라 지증왕智證王 때인 502년에 이르러 폐지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왕은 순장을 금하라는 영을 내렸다. 이는 전왕이 돌아가시자 남녀 각각 5명씩 순장을 했는데, 이에 이르러 금지한 것이다.”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된다. 그 후에 산 사람을 묻는 생매장 대신 목용木俑과 같은 나무로 만든 인형이나 토우·토용과 같은 흙으로 만든 인형을 부장품으로 묻는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목용만 매장되거나 목용과 토용이 함께 매장되는 경우도 있었겠으나 목용들은 대부분 썩어 없어져 발견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며, 토용만이 남아서 발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의 분묘墳墓에서는 돌로 만든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이 발견되기도 했다. 한편, 조선시대에 목우는 장례 때 관을 운구하는 상여의 사방 주위를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드는 장신구로도 사용되었다. 상여에 사용하는 목우들이라고 하여 그 표정과 색채에서 죽음을 연상케 하는 어두운 모습은 찾기 힘들며, 오히려 명랑하고 즐거운 기운이 넘친다. 조선의 장례 절차가 특히 유교식을 따랐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영혼불멸의 내세관을 가졌다는 점을 상여 장식품인 목우들이 잘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저승 가는 길에 동녀童女·동자童子·여인들을 비롯하여 광대廣大·재인才人들을 함께 거느리고 간다는 발상은 당대當代의 해학과 여유를 느끼게 한다. 신라인들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처용處容의 얼굴을 종이에 그려 집의 대문에 붙이고 문신門神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술적인 민속으로부터 제웅이 만들어졌다는 설이 유력하다. 제웅은 짚으로 만든 인형인데, 제웅신앙과 제웅놀음[打芻戲](제웅치기)으로 일제강점기까지 성행했다. 제웅을 만들어 세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 액막이를 위해 이름과 생년을 써 넣어 서낭당에 버리는 것, 제웅을 가지고 바다에 나아가 무사와 풍어를 기원하는 것 등은 신앙적 행위이다. 제웅을 만들 때 속에 동전을 넣어 버림으로써 다른 사람이 쉽게 집어 가도록 하는 호객 행위 등은 민속놀음에 해당한다. 이 모두가 액운을 떨쳐 버리고 다산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였다. 고려시대의 나례儺禮에서는 흙으로 빚은 소[黃土牛]를 희생물로 바쳤다. 의종毅宗 때인 1163년의 기록(『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의하면, “혜민국惠民局 남쪽 거리에 어린아이들이 동·서 두 패로 나뉘어서 각기 풀을 엮어 각시를 만들어서는 비단옷을 차려 입히고 계집종을 꾸미기도 했다. 그렇게 한 후에는 앞에 사방 한 발 되는 탁자를 놓고서 금옥으로 장식하고 음식을 차렸다. 구경꾼들은 많이 모였고, 두 패는 아름다움과 교묘함을 다투며 떠들고 소란을 피웠다. 이렇게 대엿새 동안 하더니 마침내 끝내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라고 전한다. 인형을 누가 더 잘 만드는지 경쟁하는 놀음을 벌였던 것이다. 또한 조선시대의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아가씨들이 푸른 풀을 한 줌 따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그것을 붙인 다음에 붉은 치마를 입힌 것을 각시閣氏라고 한다. 이부자리와 머릿병풍을 쳐 놓고 그것을 희롱하는 것을 각시놀음이라고 한다.”라고 전한다. 이런 풀각시놀음[草人戲]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아이들의 놀음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여겨지며, ‘각시’는 어린 여자·색시(새색시의 준말)의 의미이고, 각시놀음(각시놀이·색시놀이·반치놀음)은 각시 인형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들의 장난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움직이는 인형으로는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여러 인형과 만석중놀이에 등장하는 만석중 인형이 오랜 전승력을 지녔다.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주요한 인물은 주인공이자 작품 전체의 해설을 맡는 박첨지, 그의 부인인 꼭두각시와 첩인 돌모리집(덜머리집), 그의 조카로서 이심이를 퇴치하는 홍동지, 뒷절의 상좌중들과 어울리는 며느리 및 조카딸을 들 수 있다. 또한 탐관오리로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평안 감사,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는 평안 감사의 아들인 상주, 마을 사람들을 잡아먹은 이심이 등을 들 수 있다. 이 밖에도 동방노인, 표생원, 영노, 깜빡이(묵대사), 작은박첨지, 홍백가, 상주, 박첨지 손자, 귀팔이, 사령(관속), 잡탈중, 목낭청, 청노새 같은 작은 인형들이 등장한다. 만석중놀음은 무언의 인형극으로, 재담 없이 줄에 꿰인 인형들만 움직이는 줄타기 인형극[走線形]과 동물 그림자 인형놀음[動物偶影戲]의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줄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으로는 만석중·노루·사슴·잉어·용 등이 있으며, 이 놀음은 꼭두각시놀음과 함께 공연되기도 했다. 동물 그림을 종이에 그려 그것을 등불로 비추는 인형으로는 용·잉어·노루·사슴 등이 있었다. 19세기 후반은 인형사들이 마을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하며 생계를 꾸렸던 시절이다. 이들은 상자 무대를 목에 걸고 다니며 그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인형을 놀리는 일인 조종 인형극을 공연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만화를 토대로 만든 만화영화(animation, 움직이는 그림)가 대중에게 인기를 받게 되자 이들 인형들을 모작한 캐릭터(character) 인형이 장난감 인형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형극으로는 텔레비전 방영을 목적으로 제작된 단편 작품들과 현장 공연으로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인형극이 크게 성행하고 있다.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젊은이 한두 사람이 가방에 인형을 넣고 다니면서 어디서나 간편하게 자신들만의 공연을 펼치기도 한다. 이렇게 활동하는 단체가 전국에 4백여 개가 넘는다. 이때 사용하는 대부분의 인형은 조종이 간편한 주머니(장갑) 인형과 막대기 인형들이다.

특징 및 의의

인형은 신의 대체물인 신상으로서, 또한 인간의 대체물인 한 인격체로서 예로부터 전승되었다. 사람과 유사한 몸짓을 하는 의인체擬人體로서 귀신 인형과 동물 인형까지를 포용하고 있다. 마치 사람인 양 동작이 가능한 인형 제작과 조종 기술의 향상은 인형의 섬세한 동작과 미묘한 움직임까지 표현할 수 있다. 아울러 인형극은 관람자들의 관점을 객관화시키고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자신의 행위를 확대시켜 보여 주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 인형사의 탁월한 조종 능력은 관람자들에게 경이로운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처럼 오늘날 인형은 더 이상 2·3차원의 단순한 형태적인 물상이 아니며, 고차원의 생명체로서 그 상징성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인형은 다양한 매체라는 콘텐츠를 통해 인간의 삶과 정신 활동에 영향력을 가진 매개체로서 부상하였으며, 그 기능과 소재, 표현 기법 또한 인간의 기술력과 상상력에 비례하여 급성장하며 진화하고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節要,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조선연극사(김재철, 학예사, 1939), 周書, 後漢書, 인형예술의 재발견(김청자, 대원사, 1989), 한국의 전통목우(이두현, 한국무속과 연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6), 한국 전통 인형극의 공연학적 연구(최락용, 민속원, 2013), 인형극조사보고(서승우, 문화재35, 문화재청, 2002), 토우(이난영, 대원사, 1991), 演劇百科大事典(早稻田大學演劇博物館, 平凡社, 1990).